익히 알고 있는 만화 <광수생각>을 어떻게 연극으로 만든다는 건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마지막에 나오는 짤막한 메시지들로 엮어나간다는 것인가???

뭐, 그런 상상을 하며 도착했던 대학로 신연아트홀.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연극 <순정만화>를 보았던 곳이다.  한마디로 좌석 제대로 꽝!인 곳.  그러나 어쩌랴, 열악한 소규모 공연에선 몸이 편한 공연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을.

연극의 내용을 본다면, 굳이 '광수생각'이라는 제목을 붙일 이유는 없었다.  내용이 연관이 있지도 않았고, 매 장마다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광수생각 만화 페이지와도 연관이 없었다.  굳이 관련성을 꼽자면, 주인공 이름이 '광수'이며 직업이 '만화가'라는 것 정도?

소심쟁이 광수가, 첫사랑 지현이 곁에서 오래도록 맴돌다가 끝내 마음을 전해 사랑을 이룬다는 내용인데, 그나마도 주변 사람들이 열심히 폼푸질을 해주어서 기어이 고백을 한다.  거의 복장터질 뻔한 수준.

그래도, 조연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연극을 보면 주인공을 빼고는 모두 일인 다역을 소화해 내는데, 주연보다 오히려 빛이 날 때가 많았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

많이 웃고, 많이 박수 쳐 주고, 즐겁게 감상하고 돌아갈 수 있었던 공연.

스승의 날 기념 20%할인도 매력적이었다. (>_<)

그리고, 공연 마치고 관객들과 일일이 사진을 찍어주셨는데, 맨 앞에 앉아있었던 관계로 1번 타자로 사진 찍고 나왔다.  덕분에 싸이월드 클럽에 가입해야 했지만, 그 정도야 뭐^^

(사진 펑!)

저 사진의 핵심은 'Hwnatastic' 티셔츠에 있다.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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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5-19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훠, 속닥님! 가슴이 설레었어요. 어떡해요(>_<)
 

만 하루가 지났는데도, 꿈결같이 느껴지던 순간 순간들이 계속 떠올라요.  금단증상같은 이 설레임과 두근거림이 한 동안 지속될 테지요.

4년 전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공연할 때도 비 소식이 있었지만 당일 엄청 화창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도 비 소식이 있었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어요. 기상청에서도 오후엔 분명히 갠다고 했구요. 

친구랑은 주경기장 역에서 2시에 만났어요. 점심을 먹고 나니 비가 떨어지더군요. 지하철 역으로 되돌아가 우비를 샀는데, 공연장에서 나눠줬다고 하네요. 전혀 몰랐어요. 후기 보고 알았지^^;;;

3시부터 사전 행사를 한다고 했지만, 리허설도 아직 끝나지 않았고 입장이 지연되어서 마냥 기다려야 했어요. '왜'를 부르는 것을 밖에서 들으며 두근두근 했었죠.

4시가 넘어서야 입장이 되었죠.  사전 행사가 시작되긴 했지만, 비가 너무 쏟아져서 즐길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어요. 운동화가 이미 다 젖어서 찔꺽거렸고, 가방이 다 젖어서 속에 있던 책이 다 젖어 뭉쳐졌고, 들고 갔던 카메라가 너무 커서 방해가 되더군요. 물품 보관소에 맡겨버렸죠. 결국 한 장도 못 찍었어요ㅠ.ㅠ

환타스틱 기념 티를 사서 입고, 이른 저녁을 김밥으로 때우고, 6시에는 좌석에 앉았더랬죠.  비는 점점 그치는 듯 보였어요.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했기 때문에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지만요.

그런데 어머나.  천둥 번개를 동반하여서 비가 더 세차게 내리더군요.  황망했어요. 그래도 시원하게 한 번 내려주고 그치기를 고대했죠.

6시 반에 아이비가 나오고 이어서 빅뱅, 그리고 이적이 나왔어요.  그때 쯤엔 비가 그쳐서 우린 모두 하늘에 감사하고 그랬는데... 이럴 수가... 갑자기 비가 더 쏟아지는 거야요.  그것도 아주 많이.

공장장님은 바로 나오시지 못했어요.  걷으려고 접어두었던 천막을 다시 쳐야 했고, 음향을 다시 잡아야 했고, 영상은 아무 것도 나오지 않고...ㅠ.ㅠ

그렇게 해서 7시 35분 쯤에 우리 공장장님 등장하셨지요.

원래대로라면 오프닝 영상과 함께 멋지게 등장하셔야 했지만, 당신의 말씀대로 '우물쭈물', '쭈삣쭈삣' 등장하셔야 했죠.

그래도, 그 순간 얼마나 뜨겁게 반갑던지요.  공연을 포기하고 새 날짜를 잡을 것인가, 이대로 감행해도 될 것인가, 안전사고에 어떻게 대비를 할 것인가, 그 머리 속이 얼마나 복잡했겠어요.  관객의 입장에서도 애가 타 미칠 것 같은데, 공연을 준비하신 그 무대의 주인공은 오죽할까, 정말 안타까움에 몸둘 바를 몰랐죠.

아무튼, 첫 노래는 '세상에 뿌려진 사랑 만큼'으로 열어주셨어요.  비는 점점 더 거세게 내리구요. 우리야 우비라도 입고 있지만 공장장님은 홀로 그 비를 몽땅 맞으면서 열창을 해주시는데 안쓰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우산이라도 씌어주고 싶고, 뭔가 바람막이라도 되어주고팠던 마음.

두번째 노래는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였는데, 끝장 때가 생각났더랬죠. 그때 오프닝 곡이었잖아요.  "날씨 조오타!"라고 크게 외쳐주셨던 그 모습이 아른거렸죠.  이번엔 날씨 정말 안 도와준다!가 정답이었어요ㅠ.ㅠ


세번째 곡은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거대한 로봇 인형이 등장했지만, 가슴에 빨간 하트는 보여주질 못했어요.  날이 그러니, 그 커다란 인형이 참 쓸쓸해 보였답니다.  무대 위에 넘치는 그 비 때문에 혹시라도 미끄러질까 봐, 혹시라도 감전 사고 있을까 봐 보고 있는 마음이 너무 불안했어요.

노래를 마치시고 마이크를 잡아주신  공장장님,

미안하고, 고맙다고 하셨죠.  그 한 마디에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많은 우여곡절이 있다고... 많은 것들을 준비했지만... 보여줄 수 없게 되었노라고...
영상은 전체가 다 안 나오고, 관객과 밴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고... 그래서 무대 위에서 자중지란이 일어났다고 하셨죠.

업그레이드된, 진화된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그래도... 준비한 것을 보여주지 못하더라도, 혹은 마이크가 삑삑거린다 하더라도, 몸으로 으스러져라 달리겠다고 하셨죠.  우린 열광할 수밖에 없었어요.  무대 위에 공장장님이 서 있고, 그 아래 우리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

네번째 곡은 "울다"였죠.  정말 울고 싶었을 공장장님, 하지만 우리 웃기로 해요.
노래 중간에 나오는 댄서분들은 평소와 달리 정장을 입지 않고 좀 더 파격적인 의상을 입고 나왔어요.
궁금한 것 하나.  미국 공연 때도 이 노래 불렀을 텐데, 댄서분들도 같이 가셨나요?(갑자기 궁금...;;;)

다섯번째 곡은 "내게"

이 노래 부르실 때 기타 쳐주시잖아요. 지난 무적 공연 때부터.  이번 공연에 기타 소리 났나요?  표정이 석연치 않아서 이번에도 소리가 안 났나 걱정이 되더라구요. 제 자리에선 옆으로 틀어져 있어서 공장장님이 잘 안 보였거든요.  뭐, 기타 소리가 났든 안 났든, 포즈는 최고였어요6^^

다음 곡은 아주 예쁜 가사의 노래 "세가지 소원"

첫번째 소원~을 같이 부르며 손가락을 흔들 때 몹시 즐거워져요.  아주아주 순수해지는 기분이랄까...

다음 곡도 역시 발랄 쾌활한 곡 "사랑하나요"

꽃가루를 준비 못한 게 아쉬웠어요.  팬들이 일제히 꽃가루 뿌릴 때 약간 소외감 느낌... 그치만 뿌리지도 않았는데 제 수건에 물이 들어 있더라구요. 옷에도 물이 들어 있구...ㅠ.ㅠ

습자지 말고 포장지... 뭐 이런 걸로 준비해야 될 것 같아요^^;;;;

정성미양과 박신혜 양이 나와서 예쁘게 춤을 추었구요, 바구니 들고서 꽃가루도 날려주었죠.  보기만 해도 흐뭇하게 예뻤어요^^ 

이 무렵 주경기장의 전광판에 영상이 잡혔어요.  공장장님도 신이 난 모습이었구요. 그리고 하늘도 맑게 개었어요. 어두워서 잘 안 보였지만 공기의 무게감이 달랐거든요. 공장장님, 자그마한 소원이 있다고 하셨죠.  무대 위에 치렁치렁 걸쳐진 천막을 걷었으면 좋겠다고... 우리도 모두 치워라!를 외쳤죠.  무려 여섯 개가 있더군요. 단계적으로 차례대로 걷어갔어요.  비가 완전히 그친 이 때가 대략 8시 15분이었답니다ㅠ.ㅠ

암튼, 이제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멤버 소개 시간을 갖게 되었죠.  반가운 얼굴들을 한차례씩 만나고, 발라드 타임이 이어졌지요.

여덟번 째 노래, "텅빈 마음"

무대 위에 하얀 나무가 올려졌는데, 그 앙상한 나무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우리로선 알 수가 없지요.  원래 영상이 준비되어 있어서 매치시킨 것이라고 했는데, 영상이 나오질 않았으니까요ㅠ.ㅠ

무대 위에 LED 화면이 세 개 있었지만 모두 젖어 있어서 틀 수가 없었대요.  객석에도 전기선이 모두 바닥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모두 감전될 위험이.....(으... 생각만 해도 오싹해요..>_<...)

이번 편곡 대단히 청량했어요.  맑고 투명한 느낌.  이어진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의 편곡도 마찬가지였구요. 지난 주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들을 수 있었던 그 곡을 현장에서 제대로 들으니 감동의 눈물이..T^T

주경기장이 워낙 넓어서인지 에코가 장난이 아니었거든요.  노래소리는 괜찮은 편이었는데, 멘트를 할 때는 세번씩 울리면서 시간차가 발생하더라구요.  헌데, 그게 노래를 들을 때는 그 큰 경기장 안을 가득 메우는 소리가 되어서 너무 근사하게 변하는 겁니다.  가슴이 꽉 차버린 느낌이었어요.

열번째 곡은 이번 공연에서 제가 최고로 친 5곡 중 하나인 "당부"였어요.

무대 꼭대기에 폐가에서 나올 법한 뜯어진 천들이 걸려 있는데,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아니라 아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겁니다.

무대 위에선 앤디가 가야금을 뜯고, 우리 공장장님은 너무도 정적인 자세로, 정적인 곡을, 그러나 가슴을 울리면서 불러주셨죠.



끝부분의 여음구를 '창'을 하는 분이 나오셨는데 이번엔 한복을 아니 입으셨더라구요.  입었더라면 좀 더 눈에 띠었을 텐데... 왜 그랬을까나... 하고 궁금했어요.  이전에 들었던 버전들보다 '창'이 굉장히 좋았는데, 여음구의 후주가 평소보다 훨씬 길었던 것 같아요.  공장장님의 허밍과, 코러스들의 화음과, 또 창의 삼박자가 잘 어우러져서, 진부한 표현이지만 '천상의 소리'를 듣는 기분이었어요.  얼마나 아름답고, 또 얼마나 슬프던지요.

심각한 분위기는 잠시 그만두려나봐요.  공장장님, 악동같은 표정으로 우리에게 뭔가 주문을 하시네요.

전광판에는 "사랑해요 이승환, 악질동안 이승환"이란 문구가 세로로 교차되고 있었구요.  우린 보통 '잘못'을 부를 때 외쳤던 구호를 이 노래에 맞춰서 부르게 되었죠.  어떤 곡이냐구요?  휴지폭탄 어여 준비하세요.  바로, "물어본다"니까요.

장관도, 그런 장관이 없었어요. 휴지폭탄의 물결을 공중에서 바라보았더라면 별천지라고 외쳤을 지도 몰라요. 평지에서 바라보아도 그리 멋진데, 관중석에서 보신 분들은 정말 감탄을 금할 수 없었겠죠. 공장장님 표정도 얼마나 신이나 있는지 몰라요.  구호도 최고였구요^^ 소문내지 말라고 했지만, 소문 벌써 내고 있어요...;;;;

이제 무대 위에 남아 있던 남은 천막도 마저 걷으라는 주문을 하시네요.  다음 곡을 위해서라구요.  그 다음곡은 "제리제리 고고"예요.  공장장님 어찌나 재치가 있으시던지, 원래 가사에서 "엘비스도 문제 없다고~"를 "비가 와도 문제 없다고~"로 바꿔 불러주셨어요.  ^^

지난 겨울 편곡 버전인 "젤젤"이 아니라 "제리제리"라고 빠르게 중얼거리는 버전이었는데, 밴드분들이 솔로곡을 연주하기에 좋은 타이밍이었죠.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경로경로" "삼희삼희" "지운지운" 이런 식으로요6^^

아, 이번 솔로 연주에서 우린 모두 케니의 연주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그가 왜 세계적인 드러머인지 온 몸으로 전율을 느끼며 깨닫게 해주었죠.  정말, 북 찢어지는 줄 알았어요. 그 파워풀함이란.... 옆에 있던 제 친구도 환상이야!라는 말을 연신 했더랬죠.  미안한 얘기지만, 기존의 드럼 연주와... '격'이 달랐어요ㅠ.ㅠ 다음에도 와달라는 말을.... 차마 하고 싶었어요^^;;;;

다음 곡은, 전주를 듣는 순간 '아' 소리가 나왔더랬죠.  "위험한 낙원"... 제목부터 너무 매력적이잖아요? ^^

뜨겁게 부르시는 공장장님, 뜨거운 불쇼가 이어지네요.  서커스단(?)이라고 해야 하나.. 그 분들의 쇼가 이전보다 스케일이 더 커진 느낌이었어요.  너무 추웠던 날씨여서 그 불의 기운으로 좀 온기를 느끼고 싶었건만 제 자리에선 열기가 전해지진 않더라구요. 그거 내뿜을 때 엄청 더워지던데^^;;;


공장장님이 올려준 사진의 보조무대^^;;;

이제, 우리가 있는 객석 쪽으로 좀 더 다가오시네요.  보조무대를 활용할 시간이 온 거죠.  준비하면서 멋있는 영상을 보여주셨는데, 정성미양과 공장장님의 모습이 엄청 카리스마 있게 담겨 있었어요.  전 그게 뮤직비디오인줄 알았거든요.  알고 보니 그게 오프닝 영상이었대요.  그 영상과 함께 멋지게 등장하는 게 당신의 계획이셨지만... 알다시피 비가...ㅠ.ㅠ

암튼, 하늘이 도와주는지 아까까지만 해도 보조무대에 전기가 안 들어왔었는데 지금은 들어온대요.  참 다행이죠.  엄훠, 이번 보조 무대는 돌아가기까지 하네요.  공장장님 얼굴이 안 보여서 속상했는데, 천천히 '고르게' 얼굴 비쳐주십니다.  이어진 곡은 "심장병"이었어요.  이수님 독주하실 때 엄청 근사했지요.  이번에 현악세션이 20인조였나요?  무대 뒤를 다 메웠던걸요.  그 풍부한 소리들... 귀가 황홀했어요.

다음으로 이어진 곡은 이오공감에 실린 곡이죠.  제목이 짜안한 곡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시계 방향으로 한 번 돌고, 어지러우니 반대 방향으로 다시 돌며 노래를 부르시는 공장장님^^

그 위에 있음 정말 어지러울까요?  내심 궁금했어요..;;;;

 까마득히 옛곡, 1집의 '좋은 날'도 불러주셨죠.

저 공연 따라다닌지 8년째인데, 이 곡 처음 들어봐요^^ 기뻤답니다.

다음 곡은 케니를 위해서 영어로 제목을 말씀해 주셨죠.ㅋㅋㅋ "why"였어요^^ 제가 리허설 때 밖에서 들었던 유일한 곡.

이제 보조무대에서 본무대로 돌아가십니다.  무대 위에는 대형 거울(?) 세개가 등장했는데, 각각 각을 잡고 공장장님 뒤에서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죠.  조명과 함께 어떤 연출을 준비하신 듯한데, 원한 만큼의 효과를 못 본 것 같아요.  저만 못 알아차린 걸까요? ..;;;;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제가 이번 공연에서 최고의 곡 5개로 뽑은 두번째 노래였거든요. "Pray For Me"

공장장님의 목소리가 잠실벌에 뻗어 나가는데, 소름이 끼칠 것 같았어요.  너무 맑고 너무 선명하고, 너무 깨끗해서요.  어쩌면 우리를 향한 '미안함'과 또 '아쉬움'으로 인해 공장장님의 목소리 컨디션은 최고조로 올라간 것일까요?  평소에도 늘 최선을 다하시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200%, 아니 20000%는 발휘한 것 같았어요.  심장이 방망이질 쳐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답니다.  9집 앨범에서 제가 참 좋아하는 곡이기도 했구요. 확실히 대곡 스타일을 유난히 더 잘 소화하시는 듯 했어요.

벌써 열아홉 번째 곡이에요.  이 곡에서는 우리가 종이 비행기를 날리곤 하죠. 마음을 담아서 말예요.  "가족"....  너무도 따뜻한 곡이에요.

종이가 많이 젖어 있어서 생각한 만큼 잘 날아가진 않았지만, 미리 접어온 비행기를 주변에 배포(?)하며 함께 날릴 때 유독 동지애가 느껴지던걸요. 우린 이미 그 자리에서 가족이나 마찬가지였어요. ^^

공장장님은 기타 연주도 해주셨구요.  이번 기타는 통기타인가요?  소리가 달랐던 것 같아요.  우리의 비행기에 답해주시려는 듯 공장장님은 거대한 불꽃 놀이를 보여주셨지요.  그 소리하며, 그 아름다운 불꽃하며... 죄송한 표현이지만, 돈 제대로 썼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너무, 멋졌어요.  너무 아름다웠구요.  흥분이 좀처럼 가라앉질 않더라구요. 

이제... 좀 뛰어볼까요?  추울수록 에너지를 더 쏟아야 해요.  이어진 곡은 "덩크슛"

양옆의 날개처럼 펼쳐진 긴 무대 위를 내내 달리시는 공장장님, 발 밑으로 물이 엄청 튀었어요.  그날 내렸던 비의 무게가 다시금 느껴지는 순간이었죠ㅠ.ㅠ

"착한 내 친구"는 따라부르면서 자꾸 입이 꼬였어요. 너무 추웠던 탓일까요?  그래도 결국 다 따라했다구요^^

앗, 이 전주는....! "let it all out" 오옷, 강렬한 곡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게 누구 목소리죠?  보조 무대 위로 불쑥 튀어올라온 저 수건 두른 청년은???? JP김진표였어요.  랩을 얼마나 재밌게 하시던지...ㅋㅋㅋ 히트곡 없다라는 말은 농담이죠?? ^^

김진표만 나온 게 아니에요.  싸이도 같이 나왔거든요.  중간에 챔피언을 맛깔나게 불러주었죠.  두 사람을 양 옆에 어깨동무 하고서 노래 부르시는 공장장님!  와우, 흥이 절로 나고 있죠.



(jp홈에 올려진 사진)

다음 곡은 "나의 영웅+너의 나라"예요.  제가 이번 공연 베스트 5로 꼽는 두 곡이죠.  김종서씨 출연한다고 했을 때 이미 짐작하긴 했지만, 소름에 소름! 

기사를 보니 원래 '폭포'를 연출할 예정이었건만 진행할 수 없었다고...ㅠ.ㅠ 세상에... 노래만 듣고도 이렇게 아찔했는데, 그 거대한 쇼까지 보았더라면 우린 모두 기절했을 지도 몰라요.  일요일 낮에 라디오에서 김종서씨가 나왔는데 전날 생각이 간절히 났어요.  너의 나라에서 김종서님이 마지막 구절을 부르시고, 다시 반주 뒤에 나의 영웅으로 돌아오는데... 아우... 지금도 숨이 헐떡여져요.  숨막히는 노래였거든요. 

이제 우리 호흡을 좀 틔워줘야겠지요?  다음 곡은 "멋있게 사는 거야"였어요.  여기서 더 멋져질 수 있나요, 공장장님? 하고 묻고 싶었답니다. ^^  노래 들으면서 인생에 대한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어요. 이 노래 들을 때면 전 언제나 심각해지거든요.  가사가 너무 가슴에 콕콕 박혀서요.  안 돼!  노래에 집중하자고!!!를 외치며 고개를 흔들었죠.  어느새 곡이 끝나가더군요.ㅠ.ㅠ

 "너를 향한 마음"을 부를 때에는 김원준씨와 이적씨가  나왔어요.  

정말 잠깐 씩 밖에 출연을 못했는데도  그 순간에 함께 해주면서 자리를 빛내준 게스트 분들, 참으로 고마왔다죠.  그리고 공장장님이 더 뿌듯해졌구요^^

이제 거의 막바지로 달리는 것 같아요.  27번째 곡은 "rewind" 우리의 카드섹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죠.  A4 한장에 글자를 담아놓으니까 머리 위로 올렸을 때 좀 답답하더라구요. 담에는 두장을 붙여갈까 봐요.

암튼, 우리 모두 손을 하늘높이 올려 "rewind"를 외칠 때, 공장장님 엄청 자랑스러워지셨죠?  우리가 그리 느낀 것처럼요.  팬들과 한 호흡으로 이끌어가는 살아있는 우리 공연, 자부심도 이런 자부심이 없어요^^

이제 물쇼도 한 판 해줘야겠죠?  다음 곡은 "붉은 낙타"예요.  가사 중에 '내 이십 대~'라는 부분에서 마이크 스탠드를 발로 찼는데, 이게 공중 부양을 하는 겁니다.  꺄악.... 알고 보니 와이어에 매달려 있던 거예요.  근데 진자, 멋졌어요^^  공장장님, 보조 무대에서 소방호수처럼 보이는 거대한 호수로 물을 들이부었구요. 제 자리까진 미치지 않았어요. 이제 막 더워지고 있었는데 말예요. 근데 그날 물 맞은 분들 감기 걸리진 않았나요?  좀 걱정이^^;;;;;

이제 한 호흡 멈추고, 마지막 곡을 알려주셨어요.  우리를 향한 고마움도 표현해 주시구요.  안타까운 마음도 보여주셨구요. 다음에, 기필코, 반드시 만회하고 말리라 하셨죠.  이것보다는 다섯 배는 더 잘할 수 있다고... 우린 모두 알고 있죠.  지금 아무리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셔도, 다음 번에는 또 진화하고 마는, 그래서 늘 자신의 경쟁 상대는 본인이었던 당신을요.

마지막을 장식해준 곡은 "천일동안"이에요.  이번 공연 제 베스트 5의 마지막 곡이었죠.  숨을, 멈추고 들어야 했어요.  너무 고와서... 제가 무슨 상상을 했는지 아세요?  <나이팅게일>이라는 안데르센의 동화를 보면 아주 고운 노래를 부르는 작은 새를, 중국의 황제가 독차지하는 내용이 나와요.  그 순간, 그 황제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어요.  할 수만 있다면 잡아다가(..;;;;) 듣고 싶을 때에 계속 노래해 달라고 요청하고 싶었거든요.  이런 노래를 계속해서 들을 수만 있다면 무엇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을 그런 기분이요. 

공장장님은 들어가시고, 우린 목이 터져라 앵콜을 외쳤지요.  주경기장이 어찌나 넓은지 목이 터져라 외치는데 별로 표가 안 나더라구요ㅠ.ㅠ  진짜 기침 많이 했어요. 흑흑...

밴드가 나와주고, 공장장님도 분명 나오셔야 하는데, 보이지가 않는 겁니다.  아니, 대체 어디 계신 거죠???? 하고 보니, 어머나!  공중에서 내려오시네요. 공중그네 같은 기구에 타신 채로, 이어 마이크를 꽂고 우리를 향해 최고였다고 말씀해 주셨죠.  그리고 시원스런 반주 깔리고 역시 시원한 목청으로 노래 불러주시네요.  앵콜 첫곡은 "그대가, 그대를"

확실히 이어 마이크는 출력이 좀 더 낮은가 봐요.  무대에 내려오셔서 당신의 하얀 스탠드 앞에 서니 목소리가 훨씬 커지던데요.  무대 위에 대형 선풍기가 등장했구요. 거기에 붉은 천이 두 줄 걸려 있었는데, 처음엔 바람을 잘 못 받아서 안 뜨더라구요. 그러다가 노래가 절정에 이를 때 쯤 하늘로 솟았는데 바람을 받으면서 마구 펄럭이고 그 붉은 천 앞의 공장장님은 너무 근사했어요.  분위기... 제대로 잡아주셨죠^^

두번째 앵콜곡은 "세월이 가면"이었어요.

애석하게도, 친구 때문에 전 이 때 일어나야 했어요.  짐을 챙겨서 주섬주섬 나오는데, 그 사이 두번째 앵콜을 외치고, 공장장님은 옷을 갈아입고 나오셨죠.

그리고, 기대했던 그 곡이... 드디어 나오는 겁니다.  전 끝장 이후 4년 만에 처음 들었어요.  눈물이 날 것 같았죠 .  바로, "변해가는 그대"였으니까요.

친구에게 양해를 구해서 전 운동장의 트랙에 멈춰섰어요.  너무 멀어 보이지 않는 공장장님을 멀찍이서 바라보며,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그 목소리에 온통 귀를 기울였죠.  친구는 저 대신 제 짐을 찾으러 먼저 나갔어요.  그 바람에 손목의 밴드를 급히 찢어야 했는데 너무 아쉬웠답니다.  그것마저도요^^;;;;

변해가는 그대가 끝나고 "끝"이 백뮤직으로 깔리면서 공연의 끝을 알려왔어요.  뮤직비디오 찍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답니다.  이번만큼은 친구를 위해서 함께 뛰어야 했거든요.

예전에 쎈 콘서트 때 대전에서 물의가 있었잖아요.  기획사에서 표를 이중으로 팔아서 공연 지연되고 난리가 났었던... 전 가지 못했지만 후기만 읽었었는데, 그때 다녀오신 분들의 표현이 남아있기를 잘했다고... 공연은 최고였다고... 잊지 못할 노래를 들었다고.. 그런 말씀들을 하셨어요.

전, 그때 그 사람들의 기분을 이번에 제대로 공감했어요.  비가 오는 그 악천후 속에서 끝까지 남아있고, 함께 있기를 정말 잘했다구요.  그 자리에 함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다구요. 

언제나 최선을 다하셔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시곤 했지만, 이때처럼 절절히, 아찔하게끔 마음이 흔들린 적은 없었던 듯 해요. 

공장장님이 자랑스럽고, 우리 팬들이 자랑스럽고, 함께였던 우리의 시간이 자랑스러웠어요.

이 행복한 기분으로 삶의 에너지를 삼아 더 멋진 내가 될 테죠.  더 멋진 우리가 될 테죠. 

정말 아름다운, 정말 행복한 우리였어요.  고맙고, 또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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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5-14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게스트로 나오기로 했던 박정현씨는 공연장까지 왔지만 급작스런 알레르기 증상으로 병원으로 가셨다고 해요. 아, 정말 운이 없던 순간이에요ㅠ.ㅠ

무스탕 2007-05-14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제가 공연엘 다녀온것 같아요... 나도 흥분... ^///^
이러다 저도 팬되겠어요. 무지막지하게 노래를 불렀군요. 30곡이 넘게... @.@
정말 비가 웬수였네요. 버뜨..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것!! 다음엔 정말 다섯배도 더 멋있게 공연할수 있을거에요 ^^
(마노아님. 노래부르는 <조금 큰 새> 잡아다 드릴깝쇼? ^^)

마노아 2007-05-14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스탕님, 정규공연보다는 약간 덜 부른 셈이에요. 정말 4년 전엔 40곡 넘게 불렀거든요^^;;; 웬수 같은 비였지만, 남다른 추억을 안겨준 셈이죠. 다음 번 다섯 배 업그레이드를 기대하고 있어요. 노래 부르는 조금 큰 새 꼭 부탁해요^^ㅎㅎㅎ

뽀송이 2007-05-14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역쉬!!! 멋지네요!!!
마노아님^^ 혹여 감기에 걸리신 건 아니죠??
에너지 충전 가득 하셨으니 씩씩한 날들^^;; 보내셔요.^.~

마노아 2007-05-14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요일 밤에 기침 나오고 열나고 그랬는데, 보일러 높여놓고 잠을 잤더니 괜찮아졌어요. 근데 계속 외출할 일이 생겨서 좀 피곤해요^^;;; 에너지 한 가득 채웠으니 피곤도 다 이겨낼 겁니다^^

비로그인 2007-05-14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시간 보내셨네요.
읽는 저도 즐거워졌어요.
가보고 싶었지만 일이 많아 아쉽네요. 다음엔.. 꼭...

마노아 2007-05-14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악의 조건이 최선의 결과를 끄집어낼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었어요. 사람의 일은, 정말 죽으란 법은 없나봐요. 다음 기회에 꼭 같이 해요^^
 
 전출처 : Ritournelle > * [김훈을 읽는 열가지 코드] (1) 숭고와 비장: "손만 대면 - 황금이 되는 자의 괴로움"

* 김훈은 지난 몇 년간 한국 문학계에 그야말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하고 있는(물론 판매부수를 포함하여) '대중적 작가'이다. 그의 소설을 한 권도 읽지 않아서 왈가왈부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작품에는 대중적 인기를 지닌 뭔가를 포함하고 있는 것같다. 언젠가 그가 신작을 출간할 즈음에 인터뷰에서 "문학이 인간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문학 본연의 목적을 이야기하는 소설가들은 모두 쓰레기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만 놓고 보더라도 그는 문학가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뭔가 특이한 면모(아래의 글에서도 나타나지만 '로쟈'님은 그의 글이 소설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에세이적이다고 평하고 있다)를 지니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아래는 담론비평에 앞으로 게재 될 '김훈을 읽는 열가지 코드'를 옮겨 놓은 것이다. 첫 번째 코드가 '숭고와 비장'이라니 뭔가 '큰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같다.

 

* 담론비평(2007. 5. 10)  / "손만 대면 황금이 되는 자의 괴로움"

 

[기획연재: 김훈을 읽는 열가지 코드] (1) 숭고와 비장

 

강성민 학술평론 ksm@dambee.net

 

 

   
 
 
김훈을 읽을 때마다 받는 느낌이 있다. 다들 그랬겠지만 처음은 강렬했다. 하지만 자꾸 읽다보니 형식이 보였고 사유의 문법이 보였다. 그러자 점점 질리게 되었다. 그런데도 스타일에 기대는 자의 한계로 가볍게 치부할 건 아니다 싶었다. 그건 김훈의 개성이기보다는 우리의 감각적 깊이가 닿지 못한 보편적인 것에 대한, 김훈이기 때문에 가능한 말걸기로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숭고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미학용어 숭고(崇高, sublime)와는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고, 대충 말하자면 김훈이 거대한 것에 압도당할 때가 많다는 것, 접근의 한계, 견딤의 한계, 관계맺음의 한계 등 한계가 많다는 것, 사물을 공들여 분석해놓고 그 결과물로부터 시적인 초월을 해버린다는 것, 사람들이 허무주의라고 말하는 그런 태도를 보면서 갖게 된 생각이다.


이렇게 말하니 갑자기 양념간장이 떠오른다. 우리가 깔끔하게 시 한편을 읽거나 대금 연주 같은 걸 듣는다면 조선간장의 깊고 그윽한 맛을 느낄 수 있으리라. 헌데 김훈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상처가 있고 그 상처를 너무 처연하게 바라봐서 진하디 진하지만 끝 맛에서 조미료를 쳤다는 의혹이 묻어난다. 하지만 그 조미료는 모두 천연재료로 즉석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맛도 좋고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그런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김훈의 숭고는 몰아의 경지는 아니다. 그는 이미 예전에 『풍경과 상처』(문학동네, 1994)에서 “나는 자연을 해독하거나 자연을 자아의 일부로 편입시키지 못한다. 나는 거기에 가담하지 못하고, 늘 그 바깥을 서성거린다”라고 말한 바 있다. 김훈은 솔직한 편이다. 앞에서 한 말은 “아득한 염전벌판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다시 아득한 갯벌이 펼쳐지고, 바다는 그 갯벌이 끝나는 곳까지 물러가 있다”라고 말할 때 사실임이 증명된다.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여 연못처럼 가두지 못하고, 저 멀리 수평선까지 밀어낸다. 그 밀어낸 아득한 거리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말이다. 풍경은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그를 매혹시킨다. 그래서 전군가도(全群街道)의 벚꽃을 보며 그는 “여자 생각”에 쩔쩔 맸던 것이리라. 애초에 여자는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가짜로 가진다고 한들 뭐가 변하겠는가 하는 자의식일 뿐이다.

 

 

 


김훈이 몰입을 못하거나 기피한다면 차라리 비장함을 떠올려야 옳을까. 비장함과 숭고는 둘 다 숨이 턱턱 막히는 감정이란 점에선 똑같지만, 메카니즘이 다르다. 세상과 자아의 불일치나 대립이 자아의 꺾어짐으로 귀결될 때 비장미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김훈은 꺾어지는가. 비장하게 전사해서 연민을 일으키는가. 그렇진 않다. 오히려 날렵하고 현란하게 말(言)에 올라타고 자아와 세계 사이의 그 넓은 공간을 달린다. 그 팽팽한 긴장이 풀어질 때 아마 문필가 김훈도 죽는 것이리라.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니다.


김훈 고유의 숭고를 나는 김훈이 누군가를 위해 써준 추천글에서 확인한 적이 있다. 바로 곽의진이라는 소설가인데, 출판저널 기자시절 이 분이 펴낸 『향 따라 여백 찾아가는 길』의 인터뷰를 하러 진도에 내려간 일이 있다. 말이 인터뷰이지 사실은 진도에 한 이틀 가보고 싶어 일부러 그 책을 골랐다는 게 맞다. 진도가 고향인 작가가 서울로 상경해 소설가로 성공해서 애도 낳고 살다가, 소설과 가정을 통째로 버리고 홀로 귀향해서 살다가 고향의 언어와 눈으로 고향을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한땀 두땀 지어낸 책이다. 그는 인터뷰를 대충 마치고 먼 데 까지 온 손님들을 위해 진도 곳곳을 구경시켜 주고, 자기가 친하게 지내는 카페에 가서 커피도 사주고, 옆동네 잔칫집에 데려가 홍어회와 함께 술도 질펀하게 먹여주었다. 그러더니 차를 몰고 산속 깊숙이 지어놓은 자신의 거처로 우리를 데려간다. 산비탈이 간신히 평지를 이루고 있는 곳에 아슬아슬하게 지어놓은 나무집이었다. 마당 바로 앞이 낭떠러지였다. 그래도 바다는 고요하고 잔잔했으며, 달빛에 교교히 물결지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싶었다. 곽 선생의 말이 김훈은 자기와 친구처럼 지낸다고 한다. 그가 진도에 올 때마다 이곳에서 하룻밤은 머문다고 얘기를 전해준다. 김훈과 사진작가 허용무는 진도 돌김을 간장에 찍어 먹으며 홍주를 많이 마셨다고 했다.

 

 


 

김훈은 추천글에서 “이 글의 저자 곽의진이 고향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고향으로 유배당한 자의 삶과 같다. 곽의진은 고향을 유배지로 만들고 그 유배지에서 다시 고향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 후 그 집 마당을 온통 붉게 칠하는 일몰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나는 이 곳의 풍경을 견딜 수 없다. 그런 장엄한 소멸을 견디어낼 힘이 나에겐 없었다”라고 말이다. 매일매일 세상이 허물어지는 것 같은 전면적인 일몰 앞에서 김훈은 무너졌다. 그러고 보니 그는 너무 자주 장렬하게 전사하는 듯하다. 그러니 비장하기는 비장하다.


최근 펴낸 『남한산성』(학고재, 2007)을 보면 김훈의 숭고성이 전쟁이라는 공간, 그것도 성안에 갇힌 약소국의 예정된 죽음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한 구절을 보자.


“신하는 임금의 몸을 막아서서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 살아남은 백성들이 농장기를 들고 일어서서 아비는 아들을 죽인 적을 베고, 아들은 누이를 간음한 적을 찢어서 마침내 사직을 회복하리라는 말은 크고 높았다. 하지만 적들은 이미 임진강을 건넜으므로 그 말의 크기와 높이는 보이지 않았다.”


   
 
 
적은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적을 표상하는 무수한 말도 보이지 않는다. 칸트가 보편적 이성을 정초하기 위해 일부러 물자체를 고안했듯이, 김훈 또한 실존의 명료함을 표현하기 위해 그것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듯하다. 남한산성은 어떤 곳인가. 그 산성은 병자호란 때 대피한 조선왕실이 10만 적군에 둘러싸여 있던 돌로 된 수갑이었다. 조선은 이미 체포된 상태였다. 밖으로 나가 투항할 수도, 구원을 기다리고 앉아있을 수도 없는 상황, 그러나 칸에게 무릎 꿇는 일이 오로지 살 길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들의 내면을 그려놓은 소설이다. 투항은 곧 사는 길이었지만, 투항의 논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그 마음고통을 다시 겪어내는 것에 김훈의 작가정신이 깃들어 있다.


“청병에 대항하여 싸우자”, “아니다 항복함이 최선이다”라고 예조판서 김상헌과 이조판서 최명길이 치열하게 대립하다가 결국 “사흘 뒤에 성을 나가”는 것으로 모든 것이 결판이 난 뒤 최명길은 말한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고,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하여 못할 짓이 없는 것이옵니다.” 청나라 측이 저항을 고집한 신하 2명의 목을 베어 올리라고 하자 2명의 젊은 당하관이 자청하고 나섰고, 그 이유를 캐묻다가 왕은 쓰러져 운다. 그 때 최명길은 다시 말한다. “군신이 함께 삼전도로 가더라도 전하의 길이 있고, 저 두 사람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전하, 먼 후일에 그 두 길이 합쳐질 것이옵니다.”


김훈은 최명길이 사직을 보호하기 위해 총대를 멨다는 것을 분명히 묘사하고자 한다. 최명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홀로 적진을 뚫고 최초로 교섭하러 갈 수 있었다. 항복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했지만 아무도 그 주장을 하지 않았기에 최명길이 입을 열었다고 보는 것이다.


김훈은 한국일보 기자시절 군사정권의 용비어천가를 썼다. “니가 글을 잘 쓰니 니가 써라”고 위에서 요구했고, “그래 내가 쓴다”라고 김훈은 썼다. 그가 쓴 정권찬양 기사는 데스크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활자화되었다. 그들의 책임까지 몽땅 김훈이 떠안았다. 하지만 총대를 메었다고 그게 무슨 영웅의 행위는 아닌 것. 언론인으로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고, 김훈은 그것이 치욕스럽다고 수시로 말해왔다. 하지만 그런 행위에 대해 사죄하기보다는 그냥 치욕을 끌어안고 살겠다고 또한 말해왔다.


그렇다면 남한산성의 최명길은 누구인가. 백관이 입을 모아 장렬히 싸우자고 머리를 땅에 박으며 합창을 할 때 오직 최명길 혼자 항복을 주장했다. 그렇다고 최명길이 강경일변도였던 예판 김상헌을 덜떨어진 인간으로 취급하지는 않았다. 최명길은 예판과 끈질긴 논리대결을 벌인 뒤에도 “일 리가 있는 말씀이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다만 인간으로서, 왕을 모신 신하로서 그 상황에서 취할 최선의 행동원칙을 정하고 밀어붙였을 따름이다. 김훈은 자기 또한 그런 심정으로 곡필을 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소설 『남한산성』은 이러한 김훈의 자전적 에피소드 위에 특유의 비단결처럼 유장한 문체로 내려앉으면서 더욱 굳게 입을 다무는 듯하다.


이렇게 써놓고 나니 ‘남성적 숭고’라는 느낌도 살짝 든다. 루카치가 소설은 성숙한 남성의 문학양식이라 말했던 것은 소설가가 비극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김훈은 천상병 시인의 정치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추방된 자리에서, 자신을 쫓아내버린 세계와 대칭되는 존재의 삶을 영롱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 천상병의 정치의식이다.” 이 대목을 김훈은 혹시 자신의 글쓰기가 생에 대한 과장된 제스처인지, 아니면 필연적인 정치의식의 소산인지를 떠올렸을까, 떠올리지 않았을까.


가령 『칼의 노래』는 자신을 겨누고 있는 왕의 칼과 왜구의 칼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한 외로운 장군의 얘기다. 이순신은 교활한 선조의 칼을 받을 수는 없었다. 이순신은 “적의 적으로서 살거나 죽어야지 왕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함을 참을 수 없었”으며 “왕의 칼이 닿을 수 없는 곳에 나의 충이 세워지길 바란다”고 했다. 김훈은 ‘쾌도난담’ 사태로 자질 여론이 일자 시사저널에 사표를 던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내 30년 기자생활을 오욕으로 마무리하자.”자폐적인 태도로 비치기도 하지만, 그에겐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그는 이순신을 복원하면서 “내면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나와 이순신을 동일시했다.” 이미 10년 전부터 김훈은 “벗이여, 나는 3인칭으로 글을 쓸 수가 없네. 앞으로도 한동안 그럴 것이네”라고 해왔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가 되는 발언이다. 그렇다면 왕의 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김훈을 몰아세웠던 그 여론이 아니었을까. 그는 노회하고도 교활한 여론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칼을 꽂았고, 아무도 해내지 못한 그 일에 대한 나름의 만족감을 흘려왔다.


 

 

 

하지만 나는 김훈이 역사를 호출해서 자신을 변호한 정치인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개인의 실존적 고뇌와 고통스러운 결단을 역사에 기대서 표현했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러니 『칼의 노래』는 역사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우의소설(寓意小說)이다. 이것은 『현의 노래』의 우륵에게로 거의 유사하게 이어졌는데 연대기적으로 정리하자면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으로 이어지는 사극들은 김훈 내면의 알레고리인 셈이다.


이런 그의 세계관이 늙은 여성으로 확장된 것이 「언니의 폐경」이고 사랑이라는 인간의 감정으로 형상화된 것이 「火葬」이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남한산성』을 통해 김훈은 다시 자기 이야기로 돌아온 셈이 됐지만, 그 이전에 이미 그는 타인들의 삶을 글로서 많이 어루만진 바 있다. 그래서 김훈을 미워할 수가 없다. 저 멀리 『내가 읽은 책과 세상』에 나오는 마성역장 박창하 씨, 토박이농부 정진호 씨, 금속장인 김인태 씨, 간이음식점 주인 심동순 씨 등과 같은 보통사람들, 『원형의 섬 진도』(이레, 2001)에 나오는 사라져가는 농꾼, 춤꾼, 소리꾼, 무인(巫人)들의 삶은 김훈에 의해 하나의 작품으로 빚어진다.


 

 

 

이처럼 그는 자기에게만큼 타인에게도 애정을 베푸는데 거기서 발생하는 장점이자 단점 중의 하나는 손만 대면 작품으로 만들어버린다는 데에 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독특하고 깊이 있는 북 리뷰로 필명을 떨치고 있는 ‘로쟈’라는 분은 김훈의 문체가 기본적으로 에세이스트의 것이고 소설가의 문체는 아니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그 이유는 아름다워도 적당히 아름다워야지 너무 아름다우면 소설이 안 된다는 데 있었다. 평범한 것도 김훈이 묘사하면 평범함의 극단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공감이 가는 지적이라 해두고 싶다.

이 글은 월간 '인물과사상' 6월호에 실릴 예정인 '탈아카데미 저자열전-김훈편' 총 6개 챕터 중 첫번째 챕터를 떼어 내어 확장한 것입니다. 담비에서는 앞으로 김훈을 10가지 코드로 읽어내는 글을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 편집자주

* '숭고'(sublime)이라는 개념을 접하면서 단번에 떠오른 책은 몇 권이 된다. 그런데 '비장'이라는 개념을 적절히 풀고 있는 책들은 그렇지가 못해서 조금 아쉽다. 덧붙여 '로쟈' 님은 알라딘의 스타를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스타로서 공인받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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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andora.tv/7979

무료로 볼 수 있는 지 몰랐다.  지금 오만석 편 보고 있음. 멋져!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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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5-10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그인 없이도 볼 수 있다.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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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5-0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해가 남자였군. 1탄은 뭐였을까나???

멜기세덱 2007-05-08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안 똑같은데요...모창스럽지 않은데....ㅎㅎ

마노아 2007-05-08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느낌' 면에서 닮은 것 같아요. 따라가긴 힘들구요^^;;;

멜기세덱 2007-05-09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소리하면 마노아님께 실례가 될까 조심스러운데요, 약감 생김새가 비슷도 해 보여요...ㅎㅎ

마노아 2007-05-09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정말 좀 비슷해요. 일부러 컨셉을 그렇게 잡은 걸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