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9
아시하라 히나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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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안의 엄마 미와코의 어릴 적 이야기가 첫번째 이야기였다.  누구보다 상냥하고 예쁘고 재능도 많았던 미와코. 그래서 처음엔 다들 호감을 갖고 그녀를 좋아하지만, 어떤 계기만 생기면 그녀의 진심을 모두들 의심한다.  그저 친절을 베풀어 길 안내를 했을 뿐인데, 소문은 꼬리를 물어 낯선 남자에게 끌려가 사흘 만에 돌아왔다고 하고, 몇 년 지나자 한달로 둔갑해 버린다.  늘 그런 식이었다.  그녀는 애탈 정도로 노력하는데, 그 상냥함과 친절은 늘 미모에 묻혀서 진심이 아닐 거라고 오해 받고 그녀를 향해 구애하는 인물들간의 다툼으로 인해 난처해지기만 한다.  그때마다 미와코는 너무 난처하고 그런 소문을 늘 양산해 내는 마을이 싫어서 시마네를 떠나는 것을 간절히 소망한다.

다이고의 어머니인 히로코는 둥글둥글하게 생겼고 넉넉한 인상만큼이나 넉넉한 마음을 가진 평범한 소녀였다.  언제나 비교되는 미와코를 부러워했지만 그 마음으로 인해 미와코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의 어머니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 모두 '악의'는 없다 해도 근거 없는 소문을 낳고 또 낳고 퍼뜨린다.  작은 마을의 함정은 그런 데에 있다. 모두가 남의 집 숟가락 숫자까지 셀 만큼 속속들이 사정을 알고 정겨움과 친숙함이 있지만 사생활이 지켜지지 않거나 근거 없는 소문이 너무 빨리 퍼져버려 마을을 지배해 버린다.  그들은 악의 없이 던진 돌멩이에 지나치게 섬세한 미와코 같은 인물은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는 것이다.

반면, 츠키시마가에 시집온  후지의 엄마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다. 열 다섯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반해 후처로 들어온 그녀는 아주 불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미와코를 따라다니는 모든 소문을 잠재우고 마을의 뒷담화 주인공으로 우뚝 선다.  전처는 아이를 낳지 못해서 쫓겨났다고, 자신은 꼭 아들을 낳고 말거라고 당당하게 말을 하는 그녀. 미와코로선 놀랍고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그녀도 남편의 사랑이 식었을 때 새장같은 츠키시마가에서 살기 힘들어 외도를 하는 둥 평범치 않고 평탄치 않은 삶을 살지만, 적어도 그녀는 자신이 '지켜야 할' 두 아이를 책임질 생각과 각오는 하고 있었다.  반면 새장을 뛰쳐나간 미와코는 안을 지키지 못하고 자살했다.  어느 곳에서 살든지 그녀가 극복해 내기 힘든 세상살이였다는 것을 그녀도 알았을까.  그녀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녀의 막바지 선택은 참으로 안타깝다. 그리고 그 유산을 그대로 짊어진 채 안이 모질게 살아야 했던 시간도.

엄마가 죽고 나서 다이고와 지내며 밝아진 안에게 히로코는 얘기한다. '적당히', '대충', '마이페이스' 이런 말을 좋아한다고. 입버릇은 '뭐 됐어!' 이런 말...

아무리 튼튼해 보이는 새장도 의외로 문은 열려 있다며 새장 문을 열어 카나리아를 날려보내주는 히로코 아줌마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새장 속에 갇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카나리아였던 미와코는 그 새장 문을 나가지 못한 채 새장에 머리를 박고 죽어버린 셈이다.  안이 그 길로 따라가지 않아서 참 다행인 일!

두번째 이야기는 안과 결혼 직전까지 갔다가 깨져버린 사쿠라편이다. 안의 이복동생 치이가 후지의 여동생 시이카가 있는 뉴욕으로 여름방학 때 놀러간다.  때마침 회사에서 자신이 차버린 여자의 술수로 인해 막대한 책임을 지고 징계를 먹은 사쿠라는 감기몸살까지 겹쳐서 아주 곤란한 지경에 빠지는데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치이와 만나게 된다.  어린 치이의 눈을 통해서 자신이 늘 부정하고 살았던 가치들을 다시 돌아보는 사쿠라. 여전히 자신이 옳다고 믿지만, 새로운 다짐도 해본다.  열심히 일하다가 힘들면 쉬고, 다시 또 열심히 일하는 생활.  멈추는 순간 그대로 끝이 아니라는 것을 사쿠라도 알아차린다.  앞서 7편인가에서는 참 밉게 나왔는데 이렇게 보면 또 귀여운 구석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도 저만의 상처가 있고 사정이 있다는 만고의 진리.

맨 마지막 아주 짧은 페이지에 후지의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나오는데 진짜 귀여웠다.  어릴 때부터 삐딱하게 굴었던 후지는 사실 정에 굶주려 있었다.  엄마는 여동생만 챙겨주었고 아버지는 무뚝뚝 그 자체.  그토록 부자인데도 크리스마스 선물 한 번도 못 받아본 후지는, 초등학교 2학년, 양말 속에 담긴 선물을 보고 진짜 산타의 존재를 믿고 말았다.(엄마 아빠는 그런 선물을 해줄 리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리고 열일곱의 크리스마스 때 안으로부터 교재의 가능성을 들었다.  어린 시절 그 이후 가장 간절했던 크리스마스 선물. 그리고 가장 행복한 선물.  그 행복이 끝까지 지켜지진 못했지만, 그로서는 다시 바꾸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크리스마스가 되었을 것이다.

이야기들이 참 예쁘다. '네가 없는 낙원'과는 다른 느낌으로 순수하고 절절하다.  바사라가 받았던 대단히 큰 상을 받은 작품인데 정확히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아무튼 무척 권위있는 상이었는데 수상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한권 남았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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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 8
아시하라 히나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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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내가 아직 보지 못한 '하백의 신부' 뒷권과 내가 아직 보지 못한 '모래시계' 뒷권이 동시에 내 손에 들어온다면, 나는 아마도 하백의 신부를 먼저 읽을 것이다.  더 궁금한 것은 하백의 신부가 맞지만, 그러나 더 잘 쓴, 완성도 높은 작품을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코 '모래시계' 쪽이다.  그러니까 이건 드라마로 치면 '온에어'와 '한성별곡'을 비교하는 것이랄까? 온에어 엔딩이 더 궁금하지만, 내 속에 오래오래 남을 명드라마는 한성별곡을 제칠 수 없다. 꼭 그런 느낌.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또 보여주는 그 무수한 메시지들과 감동에 비해 '모래시계'라는 제목은 좀 안 어울린다. 모래시계가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지만 아무래도 13년 전 '우우우우~'그 음악과 함께 최민수, 고현정을 먼저 떠올리게 하니 우리나라 독자에게 제목은 좀 미스다.

실질적으로 '완결'편이다.  번외편으로 두권이 더 있지만 내용은 완결을 맞는다.  시원하고 또 동시에 섭섭하다.

안은 확실히 엄마보다 할머니를 닮았다.  결코 떨쳐낼 수 없었던 엄마의 죽음의 그림자보다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추억, 그들에게 안길 상처가 더 크게 다가왔다.  살고 싶었고, 살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녀를 살려낸 구원은 곧 그녀로부터 구함을 받는다.

다이고와 평생 함께 해달라고 빌었던 꼬마 적의 소원. 그 소원을 털어내고 그의 순수한 행복을 빌어주는 안.  욕심과 상심과 또 집착을 버릴 때 그녀 안에 새 길이 열렸다.  진심이 담긴 그 순수한 마음이 기적을 이뤘달까.

회사 여직원들의 미팅 씬이 압권이었다. 엘리트 집단이라고 모두들 잔뜩 기대하고 나갔는데 평균 나이 45세의 머리 벗겨진 아저씨들의 폭탄!  그 다음엔 자뻑 왕자님.  그래도 스무 살의 그 미팅 때보다 안은 더 성장했고 당당해졌고 여유로워졌다.

일본 내의 많은 가정들이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재혼으로 새엄마가 생기고 이복 동생이 생겼는데, 이들의 관계가 참 이상적이다.  언니의 친모 무덤 앞에서 쫌 미안해 하며 그래도 언니를 낳아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어린 동생이 예쁘고 사랑스럽다.

갑작스런 기상 악화로 열차가 멈추고 그 바람에 하룻밤 신세지게 된 시골 어느 가정. 그 식구들의 꾸밈없는 웃음과 순수한 도움이 참 따뜻했다.  친절을 사기로 되갚아 버리는 무서운 세상에 살면서, 그런 그림 같은 인심이 더 그리워진다.

하나의 추억과 또 하나의 추억과 또 하나의 추억을 모아모아 삶을 이뤄간다.  사랑하고 있음에도 감당할 수 없는 상대의 아픔에 헤어졌던 그들이, 이제 서로의 짐을 무거워하지도 않고 애써 함께 지고 가려고 하지도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누군가에 기대어 행복을 원하던 안이, 이제는 자신으로 하여금 행복을 주게 만드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들이 이뤄낸 사랑의 결실이 너무 곱고 예뻐서, 또 그 동안의 아픔이 참으로 가여워서 한껏 눈물이 났다.  게다가 부럽기까지 했다는....;;;;

시이카도 당당히 자신의 길을 가고, 후지도 출사표(?)를 던진 셈인데, 번외편에선 후지 이야기도 좀 보고 싶다. 그나저나 일본에선 사촌끼리의 결혼이 가능한가 보다. 그러고 보니 '네가 없는 낙원'에서도 야가미의 사촌이 야가미를 좋아하긴 했다.  그녀가 수상한 게 아니라 가능한 얘기였구나....(어째 남자끼리 사랑하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느낌이다...ㆀ)

좋은 작품을 만나 행복하다. 나중에 나의 야곱에게 빌려준 뒤 감상을 물어봐야겠다. 나만큼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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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2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에게 '모래시계'란 그 드라마를 의미하겠죠.
우리도 삼국시대는 친족끼리 결혼했죠~ 형이 죽으면 도련님이 형수와 결혼하기도 했고...
추억을 모아 모아서 삶이 이어진다는 것 좋지요! ^^

마노아 2008-05-24 12:21   좋아요 0 | URL
드라마 모래시계의 포스가 강하긴 하죠^^ 삼국시대야 지켜야 할 골품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이야 어디 그런가요. 게다가 가까운 친족끼리 결혼하면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가 생길 확률이 크다는 것을 아는 세상인데요. 아무래도 사촌은 너무 가깝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놀라웠나봐요. 엘에이에서 동성 간의 결혼을 허한다는 기사를 지난 주엔가 보았는데 그쪽이 덜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아무래도 순정만화의 영향 때문인 것 같아요...;;;;;
 
모래시계 7
아시하라 히나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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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의 겨울, 엄마의 자살과 함께 친구들을 얻었다.  신사에 가서 소원을 빌기를 평생 다이고와 함께 있게 해주세요...라고 했던 안. 어쩌면 그 소원은 정말 이뤄졌는 지도 모르겠다.  다이고와 사귀고 헤어지고, 그러고도 잊지 못해 후지와도 헤어져야 했던 안.  스무 살 성인식에 모처럼 시마네를 방문해 다이고를 만나지만 마음은 열 두 살 그 겨울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아빠를 따라 도쿄로 돌아갔던 일. 다이고와 심하게 싸웠던 일, 헤어지자고 말했던 일.  그 모든 것들을 다 후회한다고 말하는 안과 달리, 다이고는 어느 것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둘 모두에게 최선이었노라고. 어떻게 가도, 어떤 길로 가도 결과는 똑같았을 거라고.  누구도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고. 스스로 행복해져야 한다고. 힘내라는 그 말.

그 말이 진짜 이별이 되어, 안은 울보 자신과도 이별을 한다.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대로 울지 않는 커리어 우먼이 되어 열심히 일을 하는 26세 성인이 된다.  단기대를 졸업한 그녀가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그 '울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인데, 날마다 막차를 타고 퇴근하다가 지하철에서 만나게 된 사쿠라씨. 일류 회사를 다니고 건방진 면도 있지만 나름 어린애 같기도 한 이 사내.  처음으로 다이고가 아니어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와의 결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1권의 맨 첫부분, 모래시계를 6년 만에 다시 발견하는 장면으로 돌아간다.  다이고와 후지와 달리 상냥한 면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또 다른 매력으로 안을 품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약함'을 저주하는, 눈물을 혐오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었다.  배려도 없고 따뜻함도 없는 그런 사내와는 차라리 결혼이 깨진 것이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안은 자신의 한계에 부딪힘을 인정한다.  신경쇠약으로 찾은 병원에서 일러준 그 말. 너무 애쓰지 말라고. 너무 노력해서 병이 생겼다고...  12년 전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도 그랬다.  너무 애쓰고 노력해다가 지나치게 지쳐버려서 결국 삶의 끈을 놓아버린 엄마.  그 엄마의 발자취를 안이 따라가고 있었다.  모래 박물관에 찾아가는 야간 기차 안에서 우연히 알게 된 아주머니의 말처럼, 그녀는 지쳐 있었다.  마치 '원죄'처럼 그녀가 끌어안고 가는 엄마의 자살.  누군가에게 기대보기도 하고 혼자 힘으로 일어서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 보았지만, 그 어느 쪽도 그녀에게 휴식을 주지 않았다.  안타까움이 모래처럼 스민다. 잘 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아직 7권이니까 남은 3권의 분량에서 반드시 행복해지길 기원하며...(꼭 그렇게 되어야 해!)

성인식날 기모노를 입고 동창회를 열어 은사님께도 인사하고 자기들끼리 축하주를 나누는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성인식날이라고 한복을 입는 모습은 볼 수 없지 않은가.  전통한복은 평상시에 입고 생활하기 너무 힘이 드니, 생활한복이라도 좀 대중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너무 비싸기도 하거니와 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야 말이지...;;;;;

일본 만화를 보면 확실히 문화차이를 느낀다.  우리나라에선 졸업 후 진로가 어떻게 되든 일단 대다수가 대학진학을 결정하는데, 그래서 고학력 백수를 많이 배출하기도 하지만. 일본은 대학 진학하는 애들과 애초에 진학하지 않고 취업을 결정하는 학생들이 많아 보인다. (혹시 나의 착각인가?) 집을 팔아야 학비를 댈 수 있을 것 같은 지금의 대학 등록금과 살리지 못하는 전공들을 떠올려 보면 너무 비생산적이란 생각이 든다.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좀 실속있는 교욱정책과 교육관이 필요하다.

얘기가 샜다. 뒷권도 들고 나올 것을 한권만 들고 나온 게 아쉽다.  여기는 언니의 가게 매장.  들어오는 손님들이 귀찮으려고 하니 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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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 5
아시하라 히나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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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까지 다 읽고서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감동이 너무 벅차서 중간에 한 번 끊었다. (지금 다 읽기도 힘들고..;;;)

엄마의 자살이라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있는 안.  그 안을 보살펴 주겠다고 맹세한 다이고.  둘은 열두 살 처음 만난 그 겨울부터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었지만 결국 열일곱에 헤어진다.  사랑이 식어서도 아니고, 방해꾼이 나타나서도 아니다.  사랑하지만 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삼류소설의  뻔한 대사가 아닌 그들의 진심으로부터 읽었다.

사랑하지만 이기적일 수 있고, 사랑하지만 해줄 수 없는 일도 있다. 잊을 수 없는 그 사람이지만 함께 할 수 없을 때도 있는 것이다.  후지의 말처럼 두번째 세번째 사랑도 있으니 '첫사랑'이라는 것도 있는 것이다. '평생'이란 단서를 함부로 내뱉어서는 안 된다.  인생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기니까.  모래 시계의 마지막 모래가 더 빨리 내려가는 것같은 느낌이 드는 것처럼, 나이를 먹어갈수록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체감하지만, 그 인생이 짧은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랑 밖에 생각하지 못해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다이고가 있는 시마네 현으로 돌아갈 생각만 했던 안.  그런데 이제 진로를 고민한다.  진정한 홀로서기를 위한 마음 다지기에 들어갔다고 할까.  다이고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교사라는 꿈이 생겼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선 대학을 가야 했고, 집안의 '룰'에 의해 국립 대학을 진학해야 하는데 현재의 성적으로선 택도 없지만, 꿈을 믿고 의지를 믿고 새로이 도전한다.  도전하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대견하다.

도쿄와 시마네 현을 오가며 이야기가 펼쳐졌는데, 마음의 고향 시마네에선 지방색과 전통색이 잘 묻어나서 부러움마저 일었다.  전통 명절이든 서양 명절이든 그들의 것으로 체화하여 맘껏 즐기고 또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하 정겹고 아름다워서 나는 한숨이 다 나왔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오래 고민했던 후지.  그리고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어 삶의 구심점이 흔들려버린 시이카까지.  그네들의 고민과 혼란과 또 극복해 내가는 방법까지 진지하게 지켜보았다.  방황은 할지언정 자신을 잃지 않았던 후지가 대견했고, 욕망과 애증 사이에서 흔들린 시이카의 외로운 삶에도 안타까움을 느낀다.

자식을 두고 스스로를 죽여버린 비정한 모정엔 의지가 약하다고 야단이라도 치고 싶지만, 그녀가 감당해내지 못한 삶의 무게의 고단함도 인정한다.  그 무게가 안의 어깨에 내려앉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쩔 수 없이 지고 가는 엄마의 그림자이지만, 그것이 그녀의 행복을 잠식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야기가 참 예쁘다. 무겁고 진지하기도 하지만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고 있고, 급기야 감동의 눈물까지 주어버렸다.  작가의 이름을 다시 새겨본다.  눈여겨 보아야겠다.

작품을 선물해 준 날개님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비록 보내주시고 한참 뒤에야 읽게 되었지만 이런 만남을 갖게 되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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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앤 존 Martin & Jhon 6
박희정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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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또 다른 마틴과 존 이야기. 이주홍과 이석주의 이야기.

고등학교 3년을 알고 지냈고, 잊을 수 없는 졸업식 날의 해프닝, 그리고 단 일주일을 함께 보냈다. 그 강렬한 기억에 의지하여 7년을 잊지 못하고 비어있는 채로, 공허한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그 공허한 마음에 다시 한 사람이 비집고 들어오려 한다.

진심인 것을 아니까, 그 마음이 얼마나 절실한 지를 아니까, 그랬기에 더 받아들일 수가 없다.  상처줄 거라는 것을 아니까.  그러나 예스든, 노든, 이미 상처는 주었고, 피해갈 길도 없다.  어쩌면, 또 다른 인연으로 옛 상처를 덮고 새 살이 돋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어있는 틈새로 감정이 새어버린다. 계기만 생기면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을 만큼 약한 마음의 기반이었다.  그 사람을 꼭 닮은 그의 아이를 만났을 때. 그리고 자신에게서 떼어가놓고는 함께 살지도 않은 그녀를 만났을 때. 그의 연락처를 알아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미 자신은 새 사람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7년. 아무 것도 소중하지 않고, 동시에 모든 것이 하찮았던 7년인데, 기다리는 전화가 생겼다. 광고 문자에 실망을 느끼고,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입사 3년 만에 동료들과 술자리를 같이 했다.  그렇게, 사람이 변해 갔다.

이주홍의 어머니는 특별했다.  아무리 미국에서 살다 온 아이라고 해도, 한국인 정서에 남자를 사랑하는 아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터인데, 어머니는 오히려 아들에게서 삶을 배우고 그의 사랑을 인정해 준다.  그 어머니에게 이 석주는 '이런 나라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지극히 만화적인 상상력이기 때문에 가능한 설정.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절절하게 느끼는 그들의 대화.

7년 만에 통화를 했다. 그 해 여름 우리가 나눈 것은 무엇이었냐고...... 왜 나를 떠났냐고......

그것은 미련을 남기기 위함이 아닌 미련을 떨치기 위한 물음. 잊을 수 없지만 더는 생각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는 떠났지만 자신의 날개 한쪽을 남겨 놓았다. 한쪽 날개로는 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존의 이야기.

그리고 여기 내게 다가온 마틴. 

마틴과 존의 이야기가 점점 다양해진다. 꼭 둘이 주인공일 필요도 없고, 꼭 둘만 사랑할 필요도 없다. 어쨌거나 이것은 마틴과 존의 이야기.  지극히 환상적이고 애틋한, 상상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그들의 이야기. 내가 참 좋아하는, 박희정샘이 만들어낸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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