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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앤 존 Martin & Jhon 4
박희정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제 읽었는데, 통 내용 파악이 어려웠다. 3권을 다시 읽어보자 결심했는데 책을 찾지 못했다. 한시간 정도 찾았는데도 말이다.
오늘, 2권을 다시 읽었다. 읽고 나니 더 애가 타서 3권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20분 정도 헤맸나 보다. 무심코 눈길을 돌리니 책상 옆 책장에 버젓이 꽂혀 있었다. 아, 이렇게 황당할 데가...
지척에 두고는 그렇게 오래 찾다니... 하지만 화가 나기보단 반가움이 앞섰다. 4권까지 연달아 읽어버렸다. 어제의 흐릿했던 이미지들이 밝아오면서 내용파악이 되시 시작한다. 다시 보아도 어쩜 이리 절절할까, 수많은 트릭들을 손꼽아 가며, 앞서 제시됐던 예언들을 곱씹어 가며, 그들의 관습과 역사를 염두에 두고서 내용을 접수해 가니, 이건 기대 이상의 '대작'이지 뭔가!
그림만 훌륭했던 게 아니다. 너무 아릿해서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기도 벅찰 만큼의 감동이 밀려온다. 박희정 작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ㅠ.ㅠ
지구력으로 일만 년이 넘은 시점이다. 지구에서 130광년 떨어진 우주의 어느 행성. 서로 다른 기질의 나라들이 대립했고, 하나는 지구에 항복해서 평화를 얻었지만, 한 나라는 사막으로 쫓겨난 채 그들의 관습을 지키며 명예를 보호했다.
예언의 임금 이스티스라. 그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 첫 아이는 후계자로 지목했고, 둘째 아이는 지구인과의 혼혈아였다. 때문에 레라올 기간에 사랑하는 이를 위해 아이를 잉태할 수 없고, 아이를 잉태하게도 할 수 없는 몸이었다. 한 번도 손 내밀어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첫 아이를 후계자로 지목한 것은 둘째 아이를 위함이었다. 첫 아이는, 부친의 그 마음을 알면서도 자신의 운명에 순응했다. 그러나 연속해서 아이를 잃게 되고, 하나 남은 아이마저 죽어가게 되고, 또 예언의 굴레 속에서 정인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자신의 가혹한 운명에 지친 나머지 생을 내던진다. 이스티스라를 사랑했던 하난은, 왕의 동생... 이 가혹한 운명의 중심에 서 있는 그 자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이곳 외계 행성에 불시착한 지구인 마틴. 그는 사막에서 왕의 동생 샤하다를 만나 목숨을 구해 받았고, 운명처럼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의 목숨을 담보로 사막에서 빠져나온다. 죽다가 살아난 그들의 재회는 한 편의 시 같았고 음악 같았고 한폭의 그림 같았다.
타는 듯한 사막의 그 뜨거운 고통... 그 고통이 차라리 달콤하다고 추억하는 그들. 차라리 돌아가고 싶다고 말을 하지만, 그들은 갈 수 없다. 너무 많이 와버렸다. 그들의 운명이 그렇게 허락해 주지 않는다.
왕의 동생 샤하다를 새 왕 이스티스라로 명명하려는 자들이 있고, 하난처럼 그를 죽이려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충격처럼 다가온 사건. 마틴은... 그러니까 마틴은... 마틴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 '존'을 사랑하게 된 정인에게 내준 것이었다. 그의 정체는 짐작했던 것보다 더 무서운 인물인지도 모른다. 보여진 것처럼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가 보여준 마음만은 진심임을 알고 있다. 설령 그 모습이 진짜 그의 자아가 아닐지라 하더라도, 조작된 기억 속의 그가 더 인간적이었음을 샤하다-존도 알고 있다. 인간이기에 사랑한 것이 아니었으니, 인간이 아니더라도 사랑은 사랑이라고 말한 샤하다의 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어쩌면 다음 권에서 이들의 애달프고 가여운 사랑 이야기는 끝이 날수도 있겠다. 굳이 마틴&존의 타이틀을 걸지 않아도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로서 '호텔 아프리카'를 능가할 서사를 갖고 있지만, 이 작품이 또 하나의 상징을 갖는 것은 바로 그 이름, '마틴'과 '존'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제 이름을 내준 사랑, 이름을 지어달라 청한 마음, 이름이 사람을 정하고 사랑을 정하고 운명을 결정했다. 과연 예언자의 지적대로 샤하다는 평생토록 불행해질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목숨을 걸어도 좋을 사람 하나 만났으니, 목숨 걸고 사랑했으니, 그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존'으로서 살았던 그 시간들, 그 아름다운 추억을 끌어안고 그는 얼마든지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독자는 그들이 '천국'을 만나기를 바라지만, 아니라 할지라도,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참으로 좋겠다.
낱권으로 끊어 읽지 않고 이어서 읽으니 참 좋다. 이런 기분 오랜만이다. 다음 권이 나오면 또 복습을 해야겠다. 어차피 한참 뒤에 나올 것. 그 사이 까먹기 쉬우니 꼭 다시 읽자.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