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벽돌창고와 노란전차 - 산업유산으로 다시 살린 일본이야기 비온후 도시이야기 1
강동진 글.사진 / 비온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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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후 도시이야기 시리즈의 1권 빨간벽돌창고와 노란전차를 만나는 날은 아주 설레는 날이었다. 바쁜 일상속에 아껴 읽고 싶은 마음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역시나 다 읽고 난 후에는 이 시리즈의 다른 책도 읽고 싶어졌다. 특히 쿠바..

도서관에서 보지 않고 구입하게 되는 책은 역시 소장가치가 있는 책, 두고두고 읽을 책을 구입하게 되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소장가치가 있는 책..

일본하면 일본의 온천여행이나 도쿄, 롯본기, 오사카 등 큰 이미지만 덩어리째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이 책을 읽고 정말이지 우리나라의 지방도 이런 식이라면 당장 여행하고 싶을 정도였다.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지방은 그 지방색이 퇴색된다고나 할까..남아있는 것은 안동의 하회마을 정도..는 되야 특색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소지방도시는 너무나 비슷비슷해서 뭔가 이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우리의 자연을..지방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빨간벽돌창고와 노란전차'라는 제목처럼 일본에는 빨간벽돌건물도 많고 운하 비슷한 곳도 많고 섬나라인 만큼 포구, 항구도 많고..우리나라에 없는 백조도 고즈넉히 떠다니고 무엇보다 유럽의 향기가 배어있는 운치있고 아름다운 곳이 공장부지며 창고근처며 곳곳에 너무나 많다. 일본맥주 삿포로를 알 것이다. 시원한 맛에 가끔 먹어보면 반하는 맥주인데 그 삿포로공장을 취재한 부분을 보면...그곳에 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강동진님의 사진은 그만큼 멋지고 글솜씨 역시 시원하다. 단순히 개인적인 여행기가 아니다. 그 도서의 생성과 유래, 그리고 근대 일본의 산업까지 골고루 다루어주고 있다. 그렇다고 지루한 책도 아니다. 저자가 좋아한다는 라멘집은 메모를 할만큼 따라서 먹고 싶어지는 곳..그리고 일본전통의 여관(료깐)에서 50년동안 변치않았던 저녁식사의 메뉴를 훔쳐보고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음에 일본에 가게되면 꼭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불끈 솟는다.

 
그런데 저자는 보통사람들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공장이나 창고를 어떻게 눈여겨 보게 되었을까..바로 저자의 어린 시절 통영바닷가의 목재공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웅장했던 공장에서 톱밥을 가득채웠던 거대한 모습에 반했을 그 유년시절의 기억이 지금도 멋진 공장이나 창고부지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이리라. 

 
우리는 어린 시절 누구나 눈여겨보았던 장소가 있을 것이다. 그런 장소를 테마로 여행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유년시절로의 추억여행...가슴이 휑하니 뚫려있는 것 같은 요즘같은때..심리적인 치유가 되리라.

일본만화를 즐겨 보는데 김전일의 추리만화를 보면 잘 알려지지 않은 지방도시니 현이니..하는 곳의 모습이 꼭 유럽의 고성이나 고풍스런 마을이 있어서 정말 일본에 이런 곳이 많은가..? 궁금했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곳곳에 이런 유럽식의 아름다운 건물이 많이 남아있다. 아마도 쇄국정책을 풀면서 유럽의 많은 것을 일본 전역에 받아들였던 역사적인 배경이 녹아나와 있으리라. 북쪽의 광산마을에서는 분명한 광산마을인데 르네상스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코사카제련소사무소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어 남쪽의 광산마을 그리고 누에마을등 짙은 삼나무 숲 속 여관마을, 러브레터가 날아든 운하의 도시 등..정말 멋진 장소로의 여행의 향연에 빠진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비온후 이런 도시들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보는 것..그곳에 내가 있을 것이라는 미래적인 상상만으로도 어느 정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두고두고 간직하며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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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가 사라진 날
스벤 누르드크비스트 글.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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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은 너무 어린 아이들보다는 초등학교 2학년 이상이 읽으면 좋겠다. 3학년인 딸아이가 읽고 나서는 엄마 재미도 있고 감동적이야 끝부분에서..하는데 좀 성의가 없었다. 자 그럼 내가 읽어 볼까. 괴팍한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 온다. 소박하고 정리가 안된 살림살이는 늙은이의 고달픔을 보여주는 것 같다. 파자마를 입은 채 일어나자마자 모자를 찾는 할아버지..인상을 쓰고 고함을 치는 대머리에 머리가 삐친 할아버지의 모습과 늘어진채 식탁위에 누워있는 애완견 번개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며 방과 식탁 여기저기에 커피잔이나 커피포트가 보이는 걸로 봐선 커피를 좋아하는 할아버지의 기호가 느껴진다. 참 멋진 삽화구나. 왠지 마음이 편해지고 책에 푹 빠져들고 싶다.

 

번개는 애완견인데 자꾸 자기를 하인 취급하는 할아버지가 서운한가 보다. 자기는 애완견이라며 일단 커피나 마시면서 모자를 찾아보자고 안심을 시키는 번개. 그 그림은 또 커피를 휘휘 젓는 또 하나의 미니 번개가 나와서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사실 이 그림책은 그림마다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커피를 다 마시고 옆집 닭할머니네로 (갑자기 인간옆에 닭할머니가 산다는 설정이나..)가는 장면에서 할아버지네 화분이 닭할머니네 집앞에 있는 커다란 사과나무로 연결이 되고 이 사과나무 아래부분은 뿌리도 없이 통째로 물병에 들어가 있다. 이런 식으로 재미있는 그림들이 군데군데 숨어 있는 재미가' 앤서니 브라운'의 'Change' 에서 사물들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는 삽화와 비슷하면서도 더 작은 디테일이 멋스럽다.

 

닭할머니도 와플과 커피를 권하면서 말은 자기가 할테니 먹기만 하라더니 헛간에 누군가 있다고 귀띔을 해준다. 이번엔 헛간의 모습이 또 재미있다. 유럽의 박물관에 그림으로 걸려있을 법한 빙빙 돌아가는 상징적인 건물이 나무의 몸통이 되는가 하면 메모지가 잔뜩 붙은 궤짝은 또 작은 빨랫줄이 걸려있고 작은 성이 있고..등등..아..할아버지는 여기서도 커피를 권하는 메모지를 보며 미리 준비된 커피를 마신다.

 

할아버지는 먼저 집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작은 병정 인형을 커피통에서 발견했고 닭할머니네 와플에서는 시곗줄을, 또 헛간에서는 작은 주머니칼을 찾게 되는데... 헛간옆에 난데없이 나타난 재봉사 채우리씨네에서도 역시 커피를 대접받다가 할아버지의 모자가 날아가고 있다고 제보해 준다. 급히 모자를 찾아 나선 할아버지..노점에서 작은 물건들을 파는 커다란 토끼를 발견하게 되는데...거기엔 열쇠고리며 양말, 채칼, 지우개,옛날 축구 경기 입장권,고무 해골같은 것들이 쌓여있다. 아마도 누군가의 추억이리라..

 

고물들 한켠에 서있는 고장난 오토바이를 본 할아버지는 왕년의 솜씨를 발휘하여 뚝딱 고치고 토끼와 옆에 매달린 의자를 타고 달리는 둘의 모습은 자유로움..그 자체이다. 언젠가 영화에서 본 풀밭을 따라 난 길을 달리는 (아마도 2차 세계대전 즈음일 것이다.) 장교와 군인이 같이 타는 그런 오토바이...아 통쾌한 기분..

 

기분이 좋아 4단으로 달리자마자 붕 떠버린 토끼와 할아버지는 풀밭으로 떨어지고..오토바이와 토끼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곧 모든 것이 고요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오늘 만난 물건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비로소 기억을 해낸다.

 

이 책은 대충 줄거리를 알고 본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림과 글의 아름다운 만남..직접 보고 감동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라고나 할까..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더 이 맛을 알 것 같다. 참 오랜만에 좋은 그림책을 보고 고요함을 느낀다. 그리고 커피..커피를 마시러 성큼성큼 전기포트로 있는 데로 가고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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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라이크 미 - 흑인이 된 백인 이야기
존 하워드 그리핀 지음, 하윤숙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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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수천개의 학교에서 필독서로 선정한 우리 시대의 위대한 고전이라는 흑인이 된 백인 이야기 '블랙 라이크 미' 과연 어떤 책일까..궁금했다. TV에서 보여 주는 '인간극장'이라던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프로젝트 런어웨이' 같은 리얼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나에게 딱 맞는 책이 아닐까 너무나 가벼운 생각이지만 어짜피 인생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연속이 아닌가..

 

헌데 내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읽는 내내 불편한 심기로 40년전의 책인데도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느끼는 인종차별이 있기는 했었지만 그토록 속으로는 썩어들어가는 고목처럼 내부적인 혹은 암묵적인 인종차별이 있었을 줄이야.. 40년전의 미국은 마치 남북전쟁시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인종차별이 심했었다. 1959년의 미국은 흑과 백 두 인종끼리의 불편한 심리전이자 까놓고 차별하기까지 했던 그러나 대부분의 백인들은 드러내놓고 하지는 않았던 인종차별의 질풍노도같은 시기였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는 순간부터 느끼게 되었다.

 

백인인 존 하워드 그리핀은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깨달은 바가 있어서 흑인으로 분해서 흑인들의 세계로 들어가서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여러 사람과 만나서 대화를, 인터뷰를 (물론 상대방은 인터뷰인 줄은 전혀 몰랐겠지만)글을 써보고자 했다. 특수한 자외선을 쪼고 특수피부염색약을 바르고 머리카락을 밀고 나자 중년의 대머리 흑인아저씨가 되었다. 누가 봐도 흑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 흑인중에서는 갈색이 왠지 모르게 고급스런 대우를 받는데 바로 그런 모습의 흑인이 된 것이다. 흑인치고는 깔끔한 차림새에 지식인 분위기가 풍기는 흑인으로 흑인들의 세계에서는 환대를 받는다. 그러나 완벽한 흑인이 되고 나자 흑인 '존'은 끊임없이 걸어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오줌이 마려워도 목이 말라도 그 즉시 해결할 수 있는 곳은 미국남부에서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흑인카페'라고 정해놓은 흑인들만 가는 카페에서만 잠시 쉴 수 있었던 것이다. 도로에서 지친 몸을 쉬기 위해 잠시 앉아 있기만 해도 경찰들의 심문이 이어졌다. 무슨 일이냐고.. 마치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사람 취급을 했던 것이다. 흑인은 언제라도 음흉한 일들을 꾸밀 사람들이라는 듯이.. 그래도 대부분의 남부에서 길을 물어보았을때 정중하게 길을 가르쳐 주는 백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 뿐.. 그 이상 친절을 베푸는 사람도 목마른 흑인에게 물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소변이 마려운 흑인에게 쓰지도 않는 간이화장실을 이용하게 하는 것에는 모두 단호히 'NO!' 라고 말했다. 그것이 현실인 것이다. 같은 미국의 시민이었던 존 하워드 마저도 이 정도의 차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흑인이 된 바로 그 순간부터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배려도 휴식도 가질 수 없게 된다.

 

1960년대 미국에서의 흑인..그것도 여성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끔직하다. 존을 태워줬던 백인들은 대부분 친절을 가장한 변태들이였던 것이다. 흑인들은 세지 않냐는 둥.. 부인도 백인과 놀아나지 않았냐는 둥..자신의 집이나 사무실에 취직하려는 대부분의 흑인 여성들은 자신과 잠자리를 해야만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는 둥.. 너무나 참담했던 과거의 미국은...지금이라고 별 다를까? 겉으로는 흑인과 친구로 지내고 성공한 흑인들의 사례도 많으며 (윌 스미스 같은 특급배우들..) 성공한 변호사등 상류층 인사들도 많아졌고 흑인대통령까지 뽑혔지만 아직도 갈 길이 먼 것으로 느껴진다. 불과 40년전의 망령들이 그렇게 쉽게 없어질 수 있을까...

 

지금도 미국드라마등을 보면 흑인을 비롯해서 유색인종들이 일으키는 갱단의 이야기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백인을 위협하고 인질로 잡는 범인 중에는 흑인들이 월등히 많다. 그리고 할렘에서 사는 수많은 흑인들은 성공한 흑인이 되고 싶어하지만 현실속에서는 마약쟁이와 갱단으로서의 삶 말고는 딱힌 할 것이 없다.

백인은 말한다. 너희들은 왜 그렇게 사냐고. 왜 그렇게 변변치 못하냐고..그러나 그들이 모든 것을 영위한 세계에서는 흑인들이 발 붙일 곳이 없다. 우리도 노숙자들에게 그러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밖에 못 사냐고.. 출발부터 달랐던 그들의 인생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달라지지 않았던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을까..그들이라고 왜 벗어나고 싶지 않았을 것인가..사회약자에 대한 사회 전반의 시선과 제도가 달라져야 할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왜 몰랐을까..

 

 '블랙 라이크 미' 는 40년전의 미국에서의 인종편견, 인종차별을 말하는 책이지만 나에게 정말 많은 깨달음을 준 책이다. 그 수많은 일화들..가슴을 치게 만든다. 이 책을 모르고 넘어갔다면...차라리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달리 말하면 '공평하지 않은 사람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는 플라톤의 인용문이 지금도 메아리친다. 여러분도 '블랙 라이크 미' 를 알기 전과 안 후의 삶은 아마도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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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기술 - 심리학자 가브리엘 뤼뱅의 미움과 용서의 올바른 사용법
가브리엘 뤼뱅 지음, 권지현 옮김 / 알마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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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기술을 받아 읽어 보니 이런.. 내가 생각한 책과는 방향이 다른 책이었다. 매일 지긋지긋하게 겪는 층간소음을 정당하게 미워하고 건강하게 증오하는 법(?) 을 알려주고 그런 나의 감정이 괜찮다는 것을 느끼고 안심하게 하는 책인 줄 알았다. 어? 이건 다른 책이네? 하고 읽고 있었는데.. 
그런데 맞았다. 결국은 증오을 할 대상에게 증오의 감정이 생겨야 오히려 건강한 것이고 그것을 부인하고 내 잘못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이 마음속에 생기니 말이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사례별로 자세히 나오고 있으며 그 사례들은 층간소음 같은 것보다 훨씬 근원적이고 가슴 아픈 사례들이라는 것을 봤을 때 층간소음의 고통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리라는 희망이 생겼다.


고통받는 피해자와 무관심한 가해자: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정말 공감이 갔다. 물론 근친상간이나 갑자기 부모가 떠나는 것 등 엄청난 충격과 고통에 비할바 아니지만 대부분 가해자들은 지금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피해자만 매일 떠오르는 생각에 고통스러워하고 매일 가해자에 대한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는 것이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비슷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가해자들에게 내가 이런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을 할 수 있을까. 근친상간의 피해자들이 오히려 가해자였던 가족을 아직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일에 대해서 꺼내놓고 역사적인 대면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직접 올라가 말하는 것을 피하고만 있다. 말해봤자 그 뒤로도 계속된다면 그리고 그 앞에서 인간적인 모욕을 당한다면 그 뒷감당은 더욱 생각하기조차 싫기 때문이다. 일종의 겁쟁이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는 계속 사례를 풀어놓으며 당당해 보이던 피해자들이 어릴적에 겪었던 심리적 트라우마를 꺼낼 때마다 부인하거나 피하려고 했던 사실을 보여주면서 모두가 그 사실을 인정하길 꺼리고 피하고만 있다는 점을 봤을때 공감이 갔던 것이다. 물론 이것과 저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어보이지만 인간의 심리적인 측면을 봤을땐 비슷하지 않을까 감정의 데미지를 겪지 않으려는 점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충격적인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어릴적의 피해자들이 겪었던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의 피해등을 가장 큰 피해자 분류로 두고 있다. 어릴적의 상처는 그만큼 크고 치료받기 어렵다는 점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세계적인 심리학자인 저자도 가장 치료가 힘든 사람들이 바로 어릴적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을 보호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가해자인 동시에 보호자가 되어 어린아이들의 삶을 통째로 흔들어 놓는다. 그렇게 성장한 어린이들은 어른이 되서도 올바르게 자신이 판단을 내릴 수가 없으며 정신적인 혼란에 빠지는 일이 많고 신경질적이고 우울하고 어린아이같은 외모를 꾸미거나 성인의 면모를 갖추기 어려워 지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직업에 성공한 듯이 보이는 조지안 (그녀는 열살이 되던 해 갑자기 친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으며 그 치욕스런 일들이 자신의 여동생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까지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치료 자체가 너무나 힘든 환자였다.) 조차도 직장에서 툭하면 화를 내고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2부에서는 이기적인 가해자들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들과 그들의 언행을 소개하면서 정말 이기적인 가해자인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3부에서는 무고한 가해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부모가 지은 죄 (전범같은..)로 인해 자녀들이 가지게 되는 죄책감 말이다. 그런 부당한 죄책감에서는 무고한 가해자들이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4부에서는 지나친 선량함도 병이 된다는 마조히즘적 피해자의 사례를 다루고 있다. 5부에서는 역사적인 사실..피해자가 죄를 뒤집어쓰게 되는 모스크바 재판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이런 사례들과 세계적인 심리학자의 견해를 소개하면서 맺음말로는 당신의 증오는 정당하다라는 것을 설파하고 있다.

 

사람들마다 증오의 감정은 소모적이고 좋지 않다라는 인식으로 인해 2차적인 죄책감에 시달릴 수 있는데 이 책은 증오의 감정도 중요하다고 알려주고 있다.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을 스스로라도 인식할때 노이로제이든 성폭행의 피해자이든 마음의 평안을 찾을 것이다. 어떤 지옥같은 일이 있었더라도 그 뒤에 생기는 2차적인 트라우마만 멈출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거의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가해자에게서 진정한 사과를 받아낼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증오의 감정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당신은 건강해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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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강한 아이로 키워라 - 자녀를 글로벌 인재로 기르려면
이정숙 지음 / 파프리카(교문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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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강한 아이로 키워라'.. 글로벌 사회에서 부모들이 자녀에게 바라는 것 중 하나가 외국어를 능수능란하게 하는 것..그것도 남들 다 하는 영어뿐 아니라 다른 언어도 하나쯤 더 유창하게 한다면 바랄 게 없다는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사교육이라고는 피아노학원 하나 다니게 하는 것 뿐이지만.. 아, 학습지도 있다. 집에서 영어듣기와 읽기를 매일 같이 잊어버리지 않도록 독려(?) 아닌 독려를 하고 있기 때문에 숨길 수 없는 희망이리라.


책을 받아 들고 읽으니 어...어딘가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바로 지은이 때문인데 KBS 공채 아나운서 출신으로 자녀를 양육하면서 얻은 노하우나 그동안 공부했던 바를 가지고 언어에 대한 강연으로 유명한 이정숙씨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에는 이미 '리더로 키우려면 말부터 가르쳐라' 라는 책까지 있었기에 더 익숙했던 것이다. 그때의 어린 자녀들이 이젠 장성해서 7개국어를 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랐고 (둘째의 경우) 첫째 역시 미국으로 건너가 수석졸업을 하는 등 영어에 굉장히 빠른 소질을 보였던 것이 바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언어에 강한 아이로 키우는 법인 것이다. 어려운 방법을 설파하는 것이 아닌 어릴때 부터의 특수한 환경을 기술하면서 남의 가정에서 일어난 소소한 얘기들까지 엿볼 수 있으며 저학년때 온가족이 다녀왔다는 유럽여행기는 참 유익했다.


어릴때의 특수한 환경이란..둘째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어려워했고 집에만 있기를 좋아했다는데 엄마는 맞벌이였고 주부로서의 역할까지 하느라 너무나 힘들어서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었지만 책만큼은 양질의 도서로 채워주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철학전집을 책을 유난히 사랑했던 외할아버지가 놀이삼아 손자들에게 들려주었고 책으로 퀴즈도 내고 했던 독특한 영아기의 경험 때문에 특히 어려서 접했던 둘째의 언어감각이 뛰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리다고 해서 그랬쪄~ 어땠쪄~ 라는 투의 언어는 그래서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바른 언어를 가르치고 부모가 솔선해서 어려운 개념이 실린 책일지라도 차근차근 읽게 한다면 그 어릴적의 경험은 커서는 가질 수 없는 엄청난 지식의 확대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것..그리고 아이의 좋은 언어 모델이 되는 노력을 부모가 게을리 하지 말라는 것..질문으로 어휘를 확장시키라는 것이라든지 이미 검증된 문학과 역사책을 보여주는 것이 언어에 강한 아이가 되리라는 것..일기쓰기를 지겨워하지 않도록 독려하는 것등..

 
여기에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언어가 조금 어눌하다거나 어휘력이 부족하여 답답해 하는 부모들이라면 갑갑해 하지만 말고 솔선해서 모범을 보이고 책을 읽어주고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고민을 가진 분이나 자녀를 키우는데 있어서 필요한 책인 것 같다. 중간고사 성적이 어쩌고 하는 고민보다는 이런 언어적인 고민을 해주는 것이 더 장기적으로는 필요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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