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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로렌 허프 지음, 정해영 옮김 / ㅁ(미음) / 2021년 12월
평점 :
"나는 집도 가족도 경력도 경제적 안정도 꿈꾸지 않는다. 나는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을 꿈꾼다. 그리고 비록 불완전할지 모르지만, 내 내면의 목소리는 여전히 행복과 평화, 소속감과 사랑이 모두 다음 길모퉁이, 다음 도시, 다음 나라에 있다고 속삭인다. 그저 계속 움직이며 다음 장소는 더 나은 곳이기를 희망하라고 말이다. 반드시 더 나은 곳이어야 한다. 다음번 굽이만 돌면, 모든 것이 아름다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450)
마지막 문장은 없는 것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것은 그저 소망일 뿐 현실은 저 마지막 문장이 진실임을 느끼게 하며 절대 빼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공감을 형성해보려 하지만 내 상상의 범위를 너무나 넘어선 로렌 허프의 글은 솔직히 좀 쉽지 않았다. 소설이나 아니, 소설보다는 오히려 뉴스에서 더 많이 봤던 것 같은 내용이 담겨있는데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로렌 허프가 실제로 살아왔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에세이인 것이라는 사실이 책을 읽다가도 순간순간 흠칫하게 된다.
처음 글을 읽으며 별일 아닌 것처럼 툭툭 던지듯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이어나가고 있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나의 부족한 상상력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전혀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창밖의 거리 풍경처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에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린 시절, 세상의 전부일수밖에 없는 부모님의 종교관에 따라 종교집단에서 공동육아처럼 키워졌고 그 안에서 성교육도 없이 성추행을 당하면서 자랐고 공군에 입대한 후에는 동성애자라는 것으로 인해 협박을 당하다가 결국 타의로 제대를 하게 되고 노숙자가 될뻔했던 그 비참하고 막막한 순간의 이야기까지 다시 떠올려 볼 때 어떻게 그리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지...
그에 더하여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은 본인이 가난을 겪어 본 사람뿐"(136)이라는 등의 삶의 모습에 대한 통찰도 담겨있는 에세이를 읽다보면, 이야기에만 빠져있다가 잠시 삶을 돌아보고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있다.
그래서 저 마지막 문장이 더 마음에 닿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내 마음과는 달리 로렌 허프는 스스로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느낌이다. 그저 자신 스스로 지금 현재가 최선이며 항상 최선이고 좋을 것임을, 다음 굽이를 돌면 모든 것이 아름다울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로렌 허프는 아름다운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강인하고 굳센 마음을 갖고 올곧게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게 된다.
로렌 허프가 살아왔었고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 의미에서 나의 세상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다름이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