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요 네스뵈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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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어!"

책을 다 읽고나서 이렇게 외쳤다고 하면, 반쯤은 과장일꺼라고 생각할까?

책을 읽고난 후의 이 느낌을 뭐라고 정리를 해야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어쩌다 해리 홀레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고 또 어쩌다보니 그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한권씩 찾아 읽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의 독특한 분위기는 늘 똑같으면서도 새롭게 느껴지는데 이 소설에는 해리 홀레가 등장하지 않는데도 어둡고 또 어둡고 어두운 무거움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끝까지 넘기며 '이 나쁜놈!'이라고 내뱉지 못하는 나자신도 무겁다. 이걸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동생 칼 마저 집을 떠나 산장의 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 로위를 찾아 어느 날 갑자기 부인 섀넌을 데리고 칼이 고향을 찾아온다. 그리고 그들은 고향집에서의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데, 이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해 보이는 형제의 이야기는 상상 이상의 과거와 현재를 그려낸다. 아니, 어쩌면 그리 놀라운 이야기도 아니다. 수많은 신화속에서 부모가 자식을 죽음에 몰아넣고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며 아비가 자식을 범하고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살인을 서슴지않는다.

가족의 이야기이면서 폭력에 대한 이야기이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또한 미움과 증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족의 해체를 보여주면서 또한 견고한 성을 쌓은 가족의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킹덤의 의미는.

잠깐 다시 생각을 해 본다. 나는 책을 다 읽었으니 생각하고 있는 모든 걸 다 내뱉고 싶지만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어떤 느낌일 것이다라는 것을 어느 경계선까지 풀어놓으면 될까?

그래서 잠시 멈췄더니, 킹덤의 의미에 대해 굳이 언급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또 어찌보면 요 네스뵈는 굳이 이야기의 흐름에서 범죄의 흔적을 지우지 않는다. 용의자 X의 헌신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눈치게임없이 그대로 살인현장을 보여준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잘 짜여진 스릴러의 묘미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살인의 현장에서 저 놈이 범인이다! 하고 있지만 슬며시 저 마음 한구석에서 '정말일까?'라는 의구심을 끝없이 떠올리게 하는 것.

이 의구심은 단적으로 선과 악을 가를 수 있는 현실은 없다는 생각을 따라 떠올리게 한다.

"난 현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감정을 좌우한다고 봐요. 소설에서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다루지만, 현실에서는 열 명 중 아홉 명이 확실히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상대를 사랑하게 되죠. ... 죽을 때도 사랑할 때도 현실적이에요."(141)

책을 읽는동안 혹시나와 역시나의 마음이 쉴새없이 오갔지만 사실 이 소설 킹덤은 추리 게임의 범인 찾기가 아님을 기억해야한다. 책을 다 읽고 다시 프롤로그로 돌아가 다시 한 문장 한 문장 읽다보면 그 마음이 더 복잡해진다. 죄와 벌,을 논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자꾸 마음은 그쪽으로 향한다. 로위는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킨 것일까? 죄를 지은 누군가는 결국 벌을 받은 것일까?

""나한테는 형뿐이야." 나한테도 너뿐이야. 우리는 사막의 두 형제였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다. 똑같은 결정을 내리고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살인자는 만약 정확히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 된다면 또 살인을 선택할 것이다 이것은 영원한 원이다. 이것은 영원한 원이다. 예측이 가능한 행성의 궤도나 규칙적으로 바뀌는 계절과 같다.

그래, 무자비한 봄이 또 다가오고 있었다."(744)

외롭고 어둡고 쓸쓸한, 아니 피비린내의 비릿하고 씁쓸한 두 형제의 이야기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 너무 많은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들만의 견고한 왕국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자신들만의 역사를 쓰고 있을까?

부디 이 모든 것이 현실은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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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23 0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 네스뵈는 해리 홀레 시리즈 중 한군 읽고는 제 취향과는 좀 달라서 안 읽었어요. 치카님 리뷰보니까 다른 책도 좀 그런듯합니다. ㅎㅎ
 
인문학의 숲 - 세상을 바꾼 인문학 33선
송용구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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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토요일 아침, 일없이 티비 채널을 돌리다 얻어걸리게 되는 책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간혹 보게 된다. 별 생각없이 보다가 분명 내가 읽은 책인데 아주 새로운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때가 있는데 인문서만이 아니라 문학작품도 인문학으로 해설하고 심리학적 분석을 하는 것이 어려운 느낌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읽는 즐거움이 있다. 

"인문학의 숲"은 그와 비슷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세상을 바꾼 인문학 33선'이 실려있는데 모두 한번쯤은 들어봤던 고전과 문학작품들이다. 


철학과 사상, 사회와 역사, 드라마와 소설, 시 문학작품을 통해 모두 22개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각 이야기의 첫장을 펼치면 '현대인들에게 주는 편지'글이 나온다. 처음엔 그냥 무심코 읽어 넘겼다가 책 본문의 내용을 읽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어보면 그 의미가 조금 더 크게 느껴져서 전체적으로 ;자꾸만 되새기며 천천히 읽게 된다. 각 이야기의 끝에는 '인문학 명언'으로 작품 속의 인용문과 작가의 명언들을 넣어 전체의 글을 정리해준다. 

책에 부록으로 '현대인이 꼭 읽어야 할 인문학 명저'가 나온다. 말 그대로 슬쩍 참고삼아 살펴보다가 문득 몇권쯤 읽었을까 하고 헤아려보고 있는데 낯선 책은 없지만 온전히 읽은 책 역시 많지는 않아서 말로만 듣던 고전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처음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부분의 인문서에서 다루지 않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목차에서 발견해서이다. 우리에게 우리의 고전이 익숙하듯 아마 독문학을 전공한 저자에게 이 책은 필독서이기에 넣은 것일지 모르겠지만 그저 그 책에 담겨있는 의미가 좋아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는데 더 많은 이야기들을 새롭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조금 더 내 첫느낌을 솔직히 꺼내본다면 이 책의 목차를 보면서 정말 고전중의 고전,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 오래된 이야기들에서 뭔가 또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으려나 싶었다. 그런데 확실히 다른 관점과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데 어렸을 때 읽고 펼쳐보지 않았던 헤세의 작품들을 먼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 싯다르타를 비롯한 헤르만 헤세의 여러 작품에는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경계를 넘나드는 폭넓은 문화적 지식이 담겨 있다. 이는 그가 다양한 책을 섭렵했음을 의미한다. 헤세는 문화, 자연, 인간, 예술에 대한 이해력이 넓고 깊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이처럼 심원한 이해력은 폭넓은 독서의 소산이다. 독서의 편식을 거부하고 서로 다른 분야의 책과 지식을 통섭하는 헤세의 독서문화는 그를 작가의 길로 이끈 결정적 이정표가 되었다"(219) 그러니 그의 작품을 읽는 것으로 책읽기의 넓이와 깊이를 더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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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22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자의 죽음 진짜 오랫만에 듣는 제목이네요. 저책 저는 대학때 읽었으니 진짜 얼마나 오래 된거야 하면서 손가락 세고 있습니다.
오래전 좋아하던 책을 환기시켜 주는 이런 책도 좋네요.

chika 2022-01-23 00:59   좋아요 0 | URL
저는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받았어요. 정말 오래됐지요. 누렇게 변색된 책이 집에 있습니다. ^^

종이달 2022-01-22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허상의 어릿광대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7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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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 시리즈인지!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만으로 무작정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첫장을 펼치면서 유가와 교수가 등장해주시니 오래전에 봤던 일드 갈릴레오가 떠오르면서 너무 반가운 마음이다. 아니,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유가와 교수의 등장만으로도 재미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니.


얼마전 티비에서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지금 범인 검거율은 99%, 통계를 내면 지난해 잡지못한 범인을 올해 잡으면 범인 검거율이 100%를 넘기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는 범죄소설을 쓰는 것도 쉽지않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독자들이 DNA나 CCTV를 통해 왠만한 범인은 특정할 수 있고 이런 과학수사로 범인을 바로 특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범죄소설을 쓰는 것은 점점 힘들어지는 것이 아니겠냐는 말이다. 

마치 이 이야기를 들으며 소설을 쓴 듯 소설속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범죄현장을 훼손시키고 바꿔놓는다하더라도 경찰이 현장을 확인하고 과학수사를 하면 바로 범인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을 하며 이제 범인 찾기는 그리 큰 의미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탐정 갈릴레오의 존재는 범인 찾기를 넘어서 그 범죄의 인과를 밝혀주는 것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사이비 종교의 현혹에 대한 실체를 밝히는 현혹하다, 마술트릭의 과학적인 증명을 보여주는 투시하다, 연관이 없어보이는 사건의 연결고리를 통해 숨겨진 범죄를 밝혀낸 들리다, 갑작스러운 부인의 죽음이 의심에서 사랑으로 바뀌며 변화구에 담긴 물리학을 보여주는 휘다, 텔레파시 실험(!!)을 이용해 의심정황에서 범인을 찾는 단서를 잡아내는 보내다, 범인 찾기의 사실보다 우선시되는 사건의 진실에 집중하게 되는 위장하다, 아마추어의 트릭과 배우의 연기로 범죄를 숨기는데 성공한 듯 한 연기하다, 이렇게 7개의 단편이 담겨있는 허상의 어릿광대는 변함없이 탐정 갈릴레오인 유가와 교수가 멋지게 활약을 해 주시고 또 변함없이 구사나기 형사가 본인의 직무에 최선을 다해주시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실 스포일러를 피한답시고 대충 이야기의 흐름을 단적으로 표현했는데 전반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괜히 혼자 피식거리며 웃곤 했다. 병원에 가거나 모임에 참가했다가 우연히 범죄에 휘말리게 되고 특히 갑작스러운 산사태로 경찰이 오지 못하는 범죄현장에 가는 상황들이 자꾸만 명탐정 코난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더 좋았다. 반전에 반전을 드러내는 치밀하고도 놀라운 추리소설의 재미는 말할것도 없겠지만 가볍게 읽으면서도 그 이야기의 의미가 묵직하게 느껴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역시 내게는 너무 재미있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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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단단해지는 살림 - 사색하고, 비우고, 기록하는 미니멀 라이프 이야기
강효진(보통엄마jin) 지음 / 비타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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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방을 둘러보니 - 아니, 솔직히말하자면 책을 읽는 중간중간 자꾸만 내 방을 두리번거리게 되었는데, 지금 당장 읽던 책을 덮고 뭔가 하나씩 정리를 해 보고 싶은 마음과 읽고 있는 이 책을 다 읽어 하나를 마무리 하고 그 다음 내가 해야하는 일을 정리해 하나씩 지워나가자 라는 마음이 교차했다. 물론 현실의 실상은 정리도 못하고 책도 다 읽지 못하고 잠들어버렸다는 것이지만.


이 책은 '보통엄마jin'이라는 유튜브채널을 운영하는 강효진의 "미니멀 라이프에서 발견한 나다운 살림법"을 정리, 청소, 친환경, 제로웨이스트 등의 이야기를 비움을 통한 미니멀 라이프, 루틴과 습관을 통해 정리와 청소를 하는 방법, 친환경을 통한 제로웨이스트의 이야기를 적은 책이다. 


나 역시 나자신만의 습관과 방법과 실천으로 다 해내볼 수 있는 것이지만 왜 그녀는 성공을 하고 나는 늘 실패를 거듭하며 여전히 정리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다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금 당장 실천하는 것과 해야하는 것들에 대해 하나씩 정리하며 해낼 수 있는 만큼의 일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저자는 늘 막연하게 영어를 잘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곤 했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유튜브채널 번역을 위한 영어공부라는 목표를 세우고 날마다 두시간동안 영어공부를 하는 계획을 실행하는 것으로 영어공부 방식을 바꾸고 알람을 맞춰 공부를 하게 된 이후 알람을 기다렸다는 듯 바로 책을 덮어버릴때가 있고 가끔은 조금 더 공부를 하게 되기도 한다고 했다. 영어를 잘해야겠다라는 마음만 앞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공부를 하는 습관들이기가 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것을 다시한번 떠올리게 되는 이야기이다. 


비움에 있어서도 어느 순간 신나게 비워나가다가 잠시 보류해뒀던 물건들에 대해 결정을 하지 못하고 다시 쌓아두면서 미니멀 라이프와 다시 멀어져버리고 늘 반복되면서 더 많은 물건이 쌓이곤하는데 이런 정체기에 대한 글을 읽으며 다시 한번 새롭게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할 힘을 길러본다. 지금 가장 많이 쌓여있고 정리가 안되는 것이 책인데 너무 오래된 책들은 나를 포함해 누군가가 다시 읽기에 적당하지 않아 과감히 종이 재활용으로 분류를 해 놓고 내 취향이 아니거나 한번 읽고 몇년이내에 다시 읽게 되지 않을 것 같은 책은 첫번째로 정리를 하고 일단 소장하기로 분류해놓은 책들은 시간을 두고 조금씩 다시 판단을 하며 정리해야겠다는 기본 원칙을 세웠지만 자꾸만 보류해놓는 책들이 늘어나면서 자꾸만 정리하는 걸 미뤄두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나니 내 스스로 정한 대원칙을 다시 떠올리고 한꺼번에 다 정리한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하루에 한 권씩, 일주일에 한번은 반드시 정리할 책을 끄집어내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나도 이제 비우고 기록하며 정리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삶이 시작되리라는 기대감을 가지며 일단 오늘은 내 책상정리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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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공화국
안드레스 바르바 지음, 엄지영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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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판 파리대왕.

그저 이 문구 한마디만을 기억하고 책을 펼쳐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내게 파리대왕은, 어린시절 뭔가 동화가 아닌 새로운 책을 읽을만한 것이 없을까 하고 책장을 살펴보다가 무심코 집어 들어 읽었는데 그때의 내 기억은 '15소년 표류기'와 같은 소년들의 모험과 용기,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했다가 한대 얻어맞은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21세기 파리대왕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지, 더구나 평소 많이 읽어보지 못했던 스페인 현대문학이라니 예측이 안되는 묘한 설레임으로 기대를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내용은 산크리스토발 지역의 사회복지과 공무원으로 발령받은 화자인 나,의 20년 전 있었던 사건에 대한 회고를 담은 글이라 할 수 있다. 아니, 이렇게만 한문장을 쓰면 그저 20년전의 사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만 생길지 모르겠다. 

이 책은 "산크리스토발에서 목숨을 잃은 32명의 아이들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물어본 사람의 나이에 따라 다르게 대답한다"로 시작하고 "아이들이 우리를 피해 달아나면서 우리를 배신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또한 살기 위해 그들을 배신한 것이다"로 끝을 맺고 있다. 책을 다 읽고난 후 이 문장들을 다시 읽는순간 32명의 아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20년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아니, 그러한 결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


"그 아이들은 어디에서 나타난 것일까?"(25)라는 물음을 던질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이야기가 진행되어갈수록 우리의 현실 속 아이들의 모습은 어떤지 자꾸만 겹쳐지고 끝내 내몰리듯 아이들의 죽음에 이르렀을 때, 내가 글을 제대로 읽은 것인가 싶어 다시 되돌아가 읽기도 했는데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이야기속에 담겨있는 진실이 무엇이지? 라는 물음을 던지는 순간 이 책은 단순한 이야기로만 읽을 수 없게 되었다. 

처음 순간적으로 '그들의 현실과 우리의 현실은 다르다'라는 생각을 얼핏 했던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비겁한 생각인가를 깨닫고 잠시 책을 덮어두었다. 아이들을 통해 드러내는 인간성, 특히 악함에 대한 이야기는 뭔가 불편하면서도 부인할 수 없는 실존의 느낌을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 

생존자를 찾아내고 그 아이를 통해 - 그 과정 역시 인성을 상실한 폭력적인 고문으로 인해 마음이 편치않았는데 그의 생존이 두 세계를 잇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상투적인 기대를 했다는 것 역시 내 단순한 상상력의 한계임을 깨달을뿐이었다. 


"나는 요즘 산크리스토발시가 32명의 아이들에게 끝내 주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틈날 때마다 생각해보려고 한다"(244)


32명의 아이들이 어느 순간 나타났고 우리의 현실 세계를 헤집어 놓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결국 찾아낸 그들과 그들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와 닮은 듯 다른, 다른 듯 닮은꼴임을 깨닫게 되는데 우리에게 32명의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고 있다. 


"인간의 정신을 파멸의 구렁텅이 속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비극적인 운명을 이해하려면, 두려움에 사로잡혀 허우적거리는 아이를 눈여겨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어른은 어떤 것이든 자신과 상관없이 계속 존재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어린아이는 자기가 생각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듯하다."(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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