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탄생 -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1916)

 

 

 

옛날에, 아주 살기 좋던 시절, 음매 하고 우는 암소 한 마리가 길을 걸어오고 있었단다. 길을 걸어오던 이 음매 암소는 턱쿠 아기라는 이름을 가진 예쁜 사내아이를 만났단다.”(11)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한 소년이 예술가로서의 소임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이자 교양 소설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용서를 빌지 않으면 독수리들이 와서 눈알을 빼버릴 거라는 단티(아줌마)의 말이 오랫동안 아이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친다. 학창 시절 스티븐이 겪는 일도 비교적 전형적이다. 가령 아놀 신부의 라틴어 시간, 학감인 돌란 신부가 나타나 게으른 학생플래밍을 체벌한 다음 스티븐을 주목한다. 왜 쓰기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안경을 깼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지만 게으름뱅이에 속임수나 쓰는 아이로 매도당한다. 자초지종을 설명할 기회도 없이 그의 손바닥에 수치와 고통과 공포의 회초리가 갈겨진다. 정말로 안경을 깼고 새 안경을 보내달라고 집에 편지를 썼고 그것이 도착할 때까지 쓰기를 면제 받았는데 회초리질이라니, 얼마나 부당하고도 잔인한가! 스티븐은 교장실을 찾아가 목이 막히고 눈물이 그렁그렁하는 가운데 조곤조곤, 또박또박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이 대범하고 영웅적인 행위로 스티븐의 성장의 한 고리가 마무리된다.

 

 

 

 

 

 

 

 

 

 

 

 

 

 

전학한 스티븐은 한 친구의 말마따나 전형적인 모범 청년”, “담배도 안 피우고, 바자에도 안 가고, 계집애들과 시시덕거리지도 않고, 제기랄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119)는 학생이다. 다른 학우들과는 달리 테니슨보다는 반항과 환멸의 상징인 바이런을 위대한 시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영어 선생은 그의 에세이에서 이단적인 생각”(123)을 엿본다. 열여섯의 반항은 사창가로 이어지고 사악한 자기방기(自己放棄)의 부르짖음”(156)과 함께 순수의 시대가 종말을 고한다. 통렬한 죄책감과 진정어린 참회로 성장의 새로운 고리가 열린다. 이런 그에게 교장은 성직자가 되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스티븐도 예수회 소속 신부 스티븐 디덜러스”(249)의 모습을 그려보지만 더블린 만(), 바다를 바라보며 자신의 진짜 소임은 종교가 아니라 예술, 즉 문학임을 깨닫는다. “그의 영혼은 소년 시절의 무덤에서 일어나 그 시절의 수의를 떨쳐버렸다. () 이제는 영혼의 자유와 힘을 밑천으로 하나의 살아 있는 것, 아름답고 신비한 불멸의 새 비상체(飛翔體)를 오만하게 창조해 보리라.”(262)

 

 

 

 

 

 

 

 

 

 

 

 

 

 

 

 

더쿠 아기가 예술가로 태어나는 이 순간은 신의 존재와 그 뜻이 구체화되는 종교적 황홀경을, 거룩한 현현(epiphany)을 방불케 한다. 대학생이 된 스티븐이 한 친구 앞에서 하는 말은 젊은 예술가의 테제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를 말해 주마. 내가 믿지 않게 된 것은, 그것이 나의 가정이든 나의 조국이든 나의 교회든, 결코 섬기지 않겠어. 그리고 나는 어떤 삶이나 예술 양식을 빌려 내 자신을 가능한 한 자유로이, 가능한 한 완전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는 무기인 침묵, 유배(流配) 및 간계를 이용하도록 하겠어.”(379)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스티븐의 일기 역시 그 옛날의 아버지여, 그 옛날의 장인(匠人)이여, 지금 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나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소서.”라는 기도로 끝난다. 물론 그가 부르는 저 신은 디덜러스라는 이름 속에 포함된 다이달로스이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3인칭 시점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대체로 고독이나 소외도, 추방이나 망명도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한 주인공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다. 성장은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른다기보다는 가파른 계단처럼 비약적으로 이루어지고, 성장의 각 단계를 반영하는 문체는 후반부로 갈수록 현란한 기교를 뽐내며 지적이고 난해한 담론을 선보인다. 여러 모로 모더니즘과 의식의 흐름의 시작을 알리는 소설답다. 조이스가 그 무렵 비교적 전통적인세태 소설(<더블린 사람들>)을 같이 쓰고 있었음을 상기한다면, 이 자전 소설의 혁신성이 더 도드라진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정확히, 그 전신인 <스티븐 히어로>)과 유사한 유일한작품으로 조이스는 러시아의 낭만주의 시인 레르몬토프가 쓴 자전소설(<우리 시대의 영웅>)을 꼽았다. 작품의 길이와 주인공의 성향에는 차이가 있으나 목적과 제목”, “신랄한 논술은 비슷하다는(리처드 엘먼, <제임스 조이스>) 것이다. 과연 개별적 시공간을 떠나 영웅-주인공을 꿈꾸는 젊은 예술가의 오만한 반항에는 보편적인 유사성이 있다.

 

 

(조이스 관련 책이면 어디나 나오는 사진. 노라와 함께 혼인신고 하러 가는 길...^^;;)

 

 

조이스는 이십대 때 조국 아일랜드를 떠났고 이후 두 번의 방문을 빼면 평생 유럽을 떠돌며 살았다. “더블린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다면 세계 모든 도시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리처드 엘먼) 조국을 향한 그의 감정은 복잡다단했지 싶다. 유럽의 변방, 척박한 섬나라 출신의 작가가 비단 영국문학사가 아니라 세계문학사에 이름을 올리기까지 부당하고 잔인한 회초리질이 얼마나 많았을까. 어린 스티븐이 지리책의 여백에 써놓았듯, 아일랜드는 그의 삶과 문학의 중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으리라. “스티븐 디덜러스 / 기초반 / () / 아일랜드 / 유럽 / 세계 / 우주”(25)

 

-- 책앤

 

-- 머릿속에 재미없는 악몽(ㅠ.ㅠ)처럼 남아 있는 조이스! <율리시스>는 여전히 엄두를 못 내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다시 읽어봤는데, 그대는 여전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그와 <율리시스>에 대한 미련은 깔끔히 접는 걸로... ㅋ 어릴 때 영산문 강독(?) 시간에 원문 강독한 <더블린 사람들>은 그나마 읽을 만하다고 쳐도, 조이스의 이른바 '에피파니'가 나에게는 별다른 에피파니를 주지 않더라고요...-_-;; 흠, 그럼에도 그가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건 어째 뇌리에 남는군요.(그리고 안질환으로 고통 받았다는 사실도.) 

 

역시나 아일랜드 출신인 이 양반이 조이스 밑에서 비서 노릇을 했지요? 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셋은 Y다리를 건너갔다. Y섬 어귀에 약국 영감이 말한 식당이 있었다. 오직 영계백숙만 파는 곳이었다.

할아버지 왜 이런 데서 이러고 살아? 여기도 곧 허물어질 텐데, 그치 아저씨?”

배가 어느 정도 차자 소영이가 물었다.

이렇게 보시하고 사는 인생도 나쁘진 않소.”

보시? 그건 뭐야?”

베풀고 산다는 뜻이오.”

에이, 베풀긴 뭘 베풀어? 딱 보니까 이렇게 노는 걸. 아저씨, 남은 닭고기는 제사 지내자. 성탑 할머니도, 문지기도, 마녀 아줌마도 다 올 거야, 닭고기 먹으러.”

여기서 잠깐 뜸을 들이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정말 올까, 귀신들이?”

그러곤 떡붕어 아저씨를 바라봤다. 이제 더 이상 올려다보지 않아도 됐다.

이제 어떡해? 어디로 가, ?”

떡붕어 아저씨는 물끄러미 서 있기만 했다. 약국 영감은 아직도 입맛을 다시며 황홀한 점심식사의 여운을 음미했다. 그러고는 둘의 앞날을 축복해주며 천천히 자기 집으로 되돌아갔다. 남은 둘은 그냥 그 자리에 눌러앉았다. 물론, 식당이 아니라 그 식당이 있는 Y섬에 말이다.

 

*

 

Y.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일 만큼 지대가 높고 비탈진 곳에 2층짜리 주택이 하나 있었다. 낡았지만 단정한 건물이었다. 뒤쪽에는 널찍한 공터가 있었다. 전에 살던 사람들이 그곳을 밭으로 일구었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와 P시의 공장에서 일했다. 밭은 주로 그 집 할머니가 가꾸었다. 늦은 봄이나 한여름이면 손녀를 등에 업고 나와 도라지 싹이 돋도록 김을 매고 상추나 깻잎을 뜯곤 했다. 그렇게 거둔 채소는 저녁녘에 동네 어귀로 나가 근처 주부들에게 팔았다. 그 돈으로 손녀에게 과자나 머리핀을 사주는 것이 할머니의 낙이었다. 손녀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도 할머니는 밭농사에 열심이었다. 조그만 닭장을 만들어 토종닭을 키우기도 했다.

 

손녀가 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들 내외는 Y섬을 떠나 P시의 내부로 들어갔다. 대출을 끼긴 했지만, 또 평수가 적긴 했지만 전세 아파트도 하나 얻었다. 할머니는 Y섬에 그대로 남았다. 그래도 죽을 때는 아들 내외의 집에서 죽었다. 병치레를 한 건 두세 달 밖에 안 됐다. 매일 공장에 나가는 부모를 대신하여, 어느덧 중학생이 된 손녀가 할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었다. 그녀는 자는 잠에 조용히 갔는데, 손녀는 이것을 무척 슬퍼했다. 할머니의 마지막 얼굴을 보지 못하고 마지막 말을 듣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한처럼 남았다.

 

장례식 직후 그들은 방치해둔 Y섬의 집을 내놓았다. 집값은 별로 비싸지 않았지만 초로로 접어든 개 한 마리를 키워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 개는 아파트로 이사 갈 때 손녀가 울며불며 이별한 강아지 누리였다. 할머니가 죽은 뒤에도 누리는 여전히 이 집의 일부인 양 버젓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집은 누리의 집이 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폭력과 관습을 넘어, 자연과 호흡하는 자유의 삶을 찾아

-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미시시피 강을 따라 펼쳐지는 십대 소년의 모험담을 그린 동화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만한 실례도 없을 것 같다. 실상 남북전쟁 직전의 미국 사회, 특히 남부의 생활상과 세태, 모럴과 관습을 이 정도로 밀도 있게 조망한 소설도 드물다. 헉은 더글라스 과부댁의 양자이고 짐은 그녀의 여동생인 왓츤 아줌마의 노예이다. 둘은 나이, 그보다는 피부색의 차이 때문에 좀처럼 어울리기 힘든 사이지만 도망이라는 정황 때문에 문자 그대로 한 배를 탄다. 헉은 알코올 중독자이자 부랑자인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짐은 올리언스 지방으로 팔려갈 위기를 피해 도망친 것인데, 가정과 국가-사회의 폭력(노예제도)이 묘한 유비를 이룬다. 어쩌면 이 때문에 검둥이’(nigger)와 소외된 백인 하층 소년 사이에 유대 관계가 돈독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허클베리…>에서 흑백의 대립과 인종 문제는 단순한 휴머니즘과 훈훈한 온정주의로만 환원되지는 않는다.

 

 

 

 

 

 

 

 

 

 

 

 

 

 

 

가령 희대의 사기꾼인 공작이 짐을 펠프스 농장에 팔아버린다. 헉은 법률과 관습에 따라 검둥이를 내줄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어기면서까지 검둥이를 구할 것인지 고민한다. 왓츤 아줌마에게 짐의 행방을 알리는 편지를 쓰기도 하지만 결단을 내리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린다.

 

좋아, 난 지옥으로 가겠어.- 그러고는 편지를 북북 찢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끔찍스러운 생각이었고 무서운 말이었지만 벌써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뱉은 말을 취소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었지요. (중략) 다시 나쁜 짓을 하기로 하자고 했습니다. 나란 놈은 자라나기를 그런 식으로 자라났으니 나쁜 짓이 내 천성에 맞고, 착한 일은 그렇지 않다고 말입니다. 맨 첫 번째 일로 나는 짐을 다시 한 번 노예 상태에서 훔쳐내자, 아니 그보다 더 나쁜 일을 생각해 낼 수 있다면 그것도 하겠다고 다짐했지요. 나쁜 짓을 하기로 한 이상, 더구나 끝까지 하기로 한 이상, 철저하게 해내는 것이 좋을 테니까요.”(451-452)

 

절친한 친구를 구하는 일이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지옥과 동일시되는 정황은 시대적인 맥락을 고려해야만 이해될 수 있겠다.

 

 

 

 

 

 

 

 

 

 

 

 

 

 

헉의 눈에 비친 짐은 어리석고 미신적이며 따라서 어딘가 야만스럽지만 인정이 많고 생활의 지혜를 보여주는 일도 잦다. 그럼에도 이런 긍정적인 자질들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다. “짐이 하는 말은 대체로 늘 옳았습니다. 짐은 검둥이치고 비상한 머리를 갖고 있었지요.”(166) 한편 짐은 자유주에 도착하면 열심히 돈을 모아, 다른 농장으로 팔려가는 바람에 뿔뿔이 흩어진 처자식을 되사겠다는, 만약 주인이 팔지 않으면 노예 폐지론자에게 부탁하여 애들을 훔쳐오겠다는 생각을 하고 가족이 그리워 수시로 눈물을 흘린다. 이에 대해 헉의 반응이 참 아이러니하다. “자기 가족을 생각하는 심정은 흑인이나 백인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340) 간단히, 검둥이는 인간에 근접한 그 무엇이지, 온전한 의미의 인간은 아닌 것이다. 노예제도의 위력이 실감남과 동시에 이 소설의 리얼리즘이 도드라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결국 헉은 얼떨결에 펠프스 집안의 조카 톰 역할을 떠맡은 다음 그 특유의 거짓말과 연기 능력을 발휘하여, 또 느닷없이 등장한 톰 소여의 도움을 받아 짐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짐이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는 것은, 다소 황당하게도, 왓츤 아줌마의 갑작스러운 개심덕분이다. 짐은 이렇게 수동적으로 자유를 얻는 반면, 헉은 그 스스로 그것을 찾아 떠난다. 그가 글을 쓰는 일에 회의를 표하고 무엇보다도 교양으로써 자신을 길들이려는 은혜로운자들을 피하는 것은 문명에 대한 저항이자 자연-자유를 향한 추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교양 있는’, 그리하여 자신이 읽은 책에 따라 삶을 그야말로 모험-유희로 즐기고 어딘가 주일학교냄새를 풍기는 톰 소여와 확연히 구분되는 헉의 특징이기도 하다.

 

, 이제 더 이상 쓸 이야기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기쁩니다. 그 까닭은 만일 책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 귀찮은 일인지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아마 이 일에 덤벼들지 않았을 것이고,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을 하려고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나머지 사람들보다 앞서 인디언 부락으로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샐리 아줌마가 나를 양자로 삼아 <교양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 하고 있고, 나는 그 일이 도저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 일이라면 전에도 한번 해본 적이 있으니 말입니다.(596)

 

여기다 무슨 얘기를 더 보태는 것 자체가 작가의 의도를 배반하는 행위일 것 같다. 이 소설이야말로 흐르는 강물처럼쓰인, 또한 그렇게 읽는 것이 더 옳지 않겠는가. 이 책의 맨 처음에 다음과 같은 경고문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동기를 찾으려고 하는 자()는 기소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추방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플롯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총살할 것이다.

- 지은이의 명령에 따라

군사령관 G. G.

 

 

-- <네이버캐스트>

 

-- 미국 문학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 대해서는 전에도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마크 트웨인이 이렇게 비중있는 작가라는 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동화로만, 티브이 만화로만 알았던 <허클베리...> <톰 소여...>, 어릴 때 동화로만 읽은 <왕자와 거지> 등의 작가인 그가 실은 러시아문학으로 치면 고골쯤 된다는군요...-_-;;  실제로 정신차리고(?!) 읽어보니, 어려운(=지루한 ㅠ.ㅠ) 책이더라고요... ㅋㅋㅋ

마크 트웨인 하면 떠오르는 건, 자기는 담배를 끊을 때마다 성공했다는(^^;) 식의 말뿐인데 대단한 애연가였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많이 크지만 이런 사진을... 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우연히 기회가 되어 제법 공들여(^^;) 번역한 톨스토이 동화인데, 나름 물 같고 산소 같은(^^;) 톨스토이 할아버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꼬마 필립

(실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필립이었습니다.

한 날은 아이들이 전부 학교에 갔습니다. 필립은 모자를 집어 들었습니다. 학교에 가고 싶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어머니가 이렇게 말하네요.

어딜 가려고 그러니, 필립?”

학교요.”

너는 아직 어려서 학교에는 못 간단다.”

어머니는 필립을 집에 남겨두고 나갔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버렸고요. 아버지는 아침 일찍 숲에 가버렸답니다. 어머니는 오늘 하루 일을 하러 간 것이고요. 그래서 오두막 안에는 필립 밖에 없었습니다. 아참, 그리고 할머니가 페치카 위에 누워 있네요. 필립은 혼자 있자니 심심했습니다. 마침 할머니가 잠이 들었습니다. 필립은 모자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모자가 보이지를 않는군요. 그래서 필립은 낡은 아버지 모자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학교로 향했습니다. 

 

 

 

 

학교는 마을 뒤쪽 교회 옆에 있었습니다. 필립이 자기 동네를 지나갈 때는 개들이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다들 그가 누구인지 알았거든요. 하지만 남의 동네로 나가자 쥬치카가 튀어나와 컹컹 짖기 시작했습니다. 쥬치카에 이어 커다란 개 볼촉이 튀어나오는군요. 필립은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개들이 필립의 뒤를 마구 쫓아왔습니다. 필립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런, 발을 헛디뎌 그만 넘어졌네요.

그때 한 농부 아저씨가 나와 개들을 쫓아주었습니다. 그러고는 말했지요.

어딜 그렇게 혼자서 달려가는 거니, 이 장난꾸러기야?”

필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옷깃만 매만졌습니다. 그러고 나선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필립은 학교 근처까지 다 왔습니다. 학교 앞 현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학교 안에서는 아이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필립은 갑자기 무서워졌어요.

선생님이 나를 쫓아내면 어떡하지?’

필립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되돌아가면 또다시 개한테 물릴 지도 몰라. 학교 안으로 들어가자니선생님이 무서워!’

그때 학교 옆으로 양동이를 든 아줌마가 지나가며 말했습니다.

다들 공부하는데 너는 왜 여기 서 있니?”

이 말에 필립은 학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현관에서 모자를 벗고 문을 열었지요. 교실은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다들 제각기 뭐라고 외쳐댔고, 빨간 목도리를 두른 선생님이 한가운데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 무슨 일이냐?”

선생님이 필립을 보자 소리쳤습니다. 필립은 모자를 꼭 붙든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너는 대체 누구야?”

필립은 또 침묵했습니다.

혹시 벙어리냐?”

하지만 필립은 너무 겁을 집어먹어서 아무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말하기 싫으면 그냥 집에 가려무나.”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다면 필립은 정말 기뻤을 거예요. 하지만 너무 무서워서 목구멍이 바싹 말라버렸지 뭐예요. 그래서 선생님을 쳐다보며 그만 울음을 터뜨렸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필립이 가엾어졌어요. 그는 필립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에게 이 소년이 누구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필립이에요, 코스튜쉬카의 동생! 저 애는 오래 전부터 학교에 가겠다고 떼를 썼지만 어머니가 보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몰래 학교에 온 거예요.”

그럼, 형 옆 자리에 앉아라. 내가 어머니에게 너를 학교에 보내달라고 부탁하마.”

 

선생님은 필립에게 글자를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필립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답니다. 약간은 읽을 줄도 알았지요.

자 그럼, 이름을 한 번 써보렴.”

그러자 필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다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훌륭하구나. 누가 너에게 글 읽는 법을 가르쳐주었지?”

필립은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코스튜쉬카 형이요! 나는 정말 영리해서 뭐든지 당장 이해했어요. 머리가 얼마나 잘 돌아가는지 몰라요!”

그러자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럼 기도문은 알고 있니?”

필립이 말했습니다.

그럼요!”

그러고는 성모송을 읊조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단어가 죄다 틀렸지 뭐예요. 선생님은 그만 하라고 한 뒤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 자랑은 좀 있다가 하고, 일단은 공부를 하자꾸나.”

 

그때부터 필립은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답니다.

 

---

 

 

작가는 얼굴이 많을 수록 좋지만, 톨..은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 중 아마 그가 사랑하고 흠모한 얼굴은 말년의 이 얼굴이었던 듯. 어릴 때부터 자기가 못 생겼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실제로 그런 면도 좀 있죠??), 나이 들면 대략 평준화(?)되기도 합니다. 젊은 날의 톨...은 좀 독한(?), 그리고 못된(?) 느낌이 강한 듯..^^;; 이러나저러나, 자신의 원래 모습과 이상을 젊은 지주 귀족(니콜라이 로스토프 / 네흘류도프), 젊은 장교(안드레이 볼콘스키), 촌스럽고 괴팍한 젊은 구도자(피에르 베주호프 / 콘스탄틴 레빈) 등등 여러 남성 주인공들에게 골고루 투사했습니다. 다들 조금씩 틀리지만, 공통점은 그 나름으로 다 미남이라는... ㅋㅋ 저는 저들 중 볼콘스키를 제일 좋아합니다.(더 정확히, 히스테리 대마왕인, 그 볼콘스키의 아버지인 노공작 볼콘스키... 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떡붕어 아저씨와 소영이는 섬을 나와 P항 일대를 돌아다녔다. 수산물 시장을 지나자 약재상들이 즐비한 거리가 나왔다. 바싹 말린 지네 더미 옆에서 Y다리가 시작됐다. 그들은 다리 아래 계단으로 내려갔다. 앞으로 갈 길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지도를 방바닥에 깔아놓고 눈을 꼭 감은 뒤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짚은 다음, 눈을 떴을 때 무작정 거기로 떠나는 심정과 유사했다. 어쩌면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에다 새카맣게 말라버린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심정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들어간 점집은 인근 집들 중에서 제일 깔끔했다. 주인은 늙은 노인이었지만 혈색이 좋았다. 눈이 탁하지도 않았다. 입을 열자 색깔이 싯누렇기는 해도 상당히 바르고 촘촘한 치열이 드러났다.

어째 아침부터 삼계탕이 눈앞에 어른거리더니.”

떡붕어 아저씨와 소영이는 당혹스러워하며 서로 눈짓만 주고받았다. 바닷바람이 불어와도 후텁지근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떡붕어 아저씨는 티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등판은 벌써 땀에 절어 있었다.

찹쌀과 은행과 대추와 인삼은 당연하고 닭똥집이 들어가도 좋지. 날이 이렇게 푹푹 찌니 몸보신을 좀 해야겠는데. 어떻소, 보시겠소?”

 

떡붕어 아저씨는 자신의 생년월일과 시간을 넣었다. 약국 영감은 돋보기안경을 끼더니 책을 뒤져가며 빠른 속도로 그의 사주팔자를 풀었다. 몇 행, 몇 열의 한자를 공책에 나열한 뒤 암호문을 풀 듯 우리말로도 꼼꼼히 썼다. 말을 하기 전에 이렇게 기록하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다. 남의 사주팔자를 풀어놓은 공책이 수십 권은 족히 됐다. 떡붕어 아저씨는 꽤 오래 기다렸다. 여로를 결정하기 전, 아무 양감도 없는 종이 지도를 손가락으로 더듬는 심정이었다.

불덩어리군요.”

드디어 약국 영감이 입을 열었다.

, . 제가 원래 몸에 열이 좀 많습니다.”

그 얘기가 아니라 사주에 불이 많다는 소리요.”

약국 영감의 기나긴 설명이 이어졌다. 제문을 낭독하듯 또박또박하고 무엇보다도 느렸다. 떡붕어 아저씨의 40여년의 인생사가 은유와 환유와 제유와 직유의 형식으로 읊어졌다. 말을 다 끝냈을 때 약국 영감의 얼굴과 목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심지어 숨까지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가 안쓰러웠지만 떡붕어 아저씨는 난감한 심사를 감출 수 없었다.

저어기,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어허! 내가 무슨 점쟁이요? 나라고 앞날을 어찌 알겠소?”

, 그럼, 아까 형제가 다섯이라는 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 좋은 얘기요. 선생 복으로 형제 다섯은 거뜬히 먹여 살릴 거요. , 거참, 당장 직장도 없어 보이는 양반이 이렇게 배가 부르고 등이 따시다니, . 놀고먹을 팔자구먼. 이 처자는?”

 

또 다시 고문의 시간이 흘렀다. 만년필을 쥔 앙상하지만 힘 있는 손이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갔다. 집도 허름하고 옷가지도 별로 없는데도 만년필만은 최고급이었다. 펜촉이 종잇장을 긁는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그 동안에 소영이는 구덩이 오막살이의 양지바른 곳에 바싹 말라죽은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매일 계곡에서 물을 퍼다 주었다. 계곡은 제법 멀었다. 양쪽 어깨에 물통 두 개가 달린 막대를 메고 나르다 보면 어깨가 뻐근하고 날갯죽지가 시큰해왔다. 그래도 내일 또 나무에 물을 주기 위해 그 긴 여정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나무는 여전히 싹을 틔우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가 왜 물을 주는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 사이 소영이는 훌쩍 자랐다. 물통 두 개가 이제는 별로 무겁지 않았다. 물을 흘리는 일도 없었다. 저 멀리서 나무 위에 뭔가 새파란 것이 돋아난 것을 멀리서 보았다. 그것이 정말 새싹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물통을 내팽개치고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약국 영감이 입을 열어 소영이의 묵념을 방해했다.

 

허어, 여자 사주에 경금이 이리 많다니.”

그는 땀을 닦으며 혀를 찼다. 여전히 압도되고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어라, 이렇게 뜸을 들이더니 고작 그거야? 다슬기 할매가 매일 해준 얘기인 걸.”

소영이가 소리쳤다. 약국 영감이 이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가장 충격적인 말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 지나 얘기해줘. 아이, 배고파 죽겠네!”

소영이의 앙칼진 목소리에 약국 영감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니까 처자는 (약국 영감은 돋보기를 들어 올려 가며 자신의 공책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베풀어야 하오. 무조건 베풀어야 명줄도 길고 명예도 얻고 재물도 얻고 아들도 얻고,”

세상을 다 얻으면 뭐해? 배고프다니까!”

약국 영감은 너무 놀라서 기가 팍 죽어버렸다.

할아버지, 그 삼계탕 집이 어디야? 아저씨는 또 뭐해? 빨리 좀 일어나! 할아버지, 여기는 변소 없어? 아씨, 오줌보 터질 것 같은데, 정말!”

이제야 약국 영감은 이 말[]만 한 처자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확신했다. 그는 동정과 연민의 눈빛으로 소영이를, 또 떡붕어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