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알프레드 알바레즈 <자살의 이해>에 관한 동영상을 짧게 찍다가 역자를 새삼 확인했다. 검색을 해보니 마침 (오래된) 새 책 산문집이 나왔기에 냉큼 주문하고, 4부(최근 글)를 먼저 읽었다. 좋았다. 참 좋았다. 그래서 시집을 뒤지니, 정확히 그녀의 시집을 찾아 집을 뒤지니 두 권 밖에 없어, 옛날 시집도 (아마 다시?) 주문했다.

 

 

 

 

 

 

 

 

 

 

 

 

 

 

 

 

 

 

 

 

 

 

 

 

 

 

 

 

 

 

 

80년대(90년대) 인기 (여성)시인이었다고 하는데, 내 머릿속에는 어째 비슷한 연배의 김혜순 시인과 항상 나란히 놓인다. 김혜순은 말하자면 다 가진(!) 시인이다. 시도 잘 쓰고(인정 받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고 예쁘고 건강하고 -- 반면, 최승자는 (언젠가 진은영 시인이 어디에 쓴 대로) 그 반대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는커녕 가족도 없는 것 같고('외숙'이 그나마 유일하신 듯 - 이제는 가셨을 수도) 심지어 아프기까지. 이런 여러 정황까지 얽혀서 그녀의 시 세계가 완성되는 것 같다. 내가 아는, 알았던 최승자는 시인이지만 그와 동시에 니체 <차라투스트라> 번역자이다.

 

 

 

 

 

 

 

 

 

 

 

 

 

 

이번에 산문집을 펼쳐 들고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띠지였다, 헉. 띠지에 새겨진 날짜. 그리고 작가의 말, 그 날짜. 쓰지 않고(못하고) 전화기 너머 말로 해서 그렇게 받아 적은 글이라. 그대로 긁어와 본다.

 

*

 

오래 묵혀두었던 산문집을 출판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
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그만 쓰자
끝.

2021년 11월 11일

  

*

 

아시겠지만, 11월 11일은 도스토옙스키의 생일이고, 개인적으론, 남동생의 생일이다. 2021년은 남동생의 마흔 한 번째 생일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늘까지 - 이제는 저 위의 글을 베껴 써보자. 맨 첫 줄 빼고 둘째 줄 부터 -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 

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그만 쓰자

끝.

 

2021년 11월 11일

 

 

*

 

(장은수 홈페이지에서 가져옴)

 

 

흡연 욕구 제대로 자극하는 사진.  

 

 *

 

어째 장미도 창백한 느낌이 좋아 - 연갈색 카푸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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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1-12-04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혜순 시인이 그런 이미지였군요. 최근 에세이들을 읽고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어요. 어떤 힘든 일을 통과하고 계신 것 같아서요. 최승자님과 기형도님 시집 함께 지금 꽂아두었는데...산문집도 궁금합니다.

푸른괭이 2021-12-04 21:02   좋아요 0 | URL
김혜순 선생님은 모임에서 얼핏 본 적도 있어요, 되게 멋있으시고^^; 서울예전(지금은 예대라고 하죠) 교수고^^; 그런 느낌들이 있었죠.

곰곰생각하는발 2021-12-12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제가 최승자 시집을 모두 가지고 있었네요...
작가의 말이 뭉클하네요. 그만 쓰자 끝. 저도 냉큼 산문집 사서 봐야겠습니다..

푸른괭이 2021-12-12 15:00   좋아요 0 | URL
끝 - 워낙에 투병 중이신지라... ㅠ
글을 더 쓰려고 했는데 이번주에 너무 바빠서요 ㅠ
 

 

 

 

 

 

 

 

 

 

 

 

 

 

 

 

 

알라딘 화면에 뜨기에 알았다. 신간도 아니고 무려 5월에 나왔네. 시집 제목도 예쁘고, 무엇보다도 시인-작가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여기 있음의 아름다움을 힘껏 사랑한다."

 

여기. 있음. 아름다움. 힘껏. 사랑한다.

다 좋은 말이다. 심지어 '힘껏'도, 요즘 힘이 너무 없어, 없다고 느껴져, 새롭게 느껴진다. 뭔가를 힘껏 하기 힘들다. 깜냥껏?

 

*

 

지난번 '그' 채송화는 죽고 새로 핀 채송화

 

 

동물(저 시집 뒤쪽에서는 '개')만 말하나

식물-꽃도 말한다

 

"인간, 여기 내가 있어."

 

사진을 복사할 때 비로소 알았다, 꽃 너머 사람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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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최수철을 읽었다. 아주 정독은 하지 못했지만 어지간히 훑었고 그 중 '모래 시계' (김시준) 얘기가 참 재미있었다. 그 전의 책으론 <갓길에서의 짧은 잠>이 좋았다. 반면, 의자(<게으름은...>나 '침대'나 <포로의 춤>(?) 등은 많이 지루해서 거의 읽지 못한 것 같다. 검색하다가 기억 났는데 <페스트>도 재미있었다. 그는 나에게 여전히, '읽힘성'(??) 있는 작가다.

 

 

 

 

 

 

 

 

 

 

 

 

 

 

문제는 뭐냐면, 최수철이 계속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수철 소설에는 최수철이 있다.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물론, 비평의 수사인지라, 공이 많이 드는데, 아무튼 독자로서 58년생인 이 작가가 자신의 흐름을 유지하면서 계속 쓰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기만의 어떤 문학적인 핵심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고맙다. 한편, 후배-제자 작가로서도 선배-스승의 이런 태도는 굉장히 고무적인 것이다. 심지어 그는 교수이기까지 한데, 그렇기에 더더욱 그의 도저한 성실성에 감탄하게 된다. 엊그제 하나 찍었다.

 

최수철1 - YouTube

최수철2 - YouTube

 

앞으로 '죽음'의 알레고리, '예술'의 알레고리를 쓸 계획이라니, 무엇보다도, 건강, 건필하시길 바란다.

 

 

*

 

김경욱도 신간을 냈다. 책으론 <장국영...> 이후로 꼼꼼하게 읽지 못한 것 같은데, 이번 책은 좀 구미가 당긴다. 아마 잘 안 팔리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혹은, 홍보 동영상에 찍힌 그의 모습과... "옛날에는 소설 기계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지금은..."(?)과 같은 말 때문에?^^;; 영문과 90 김경욱은 정말이지 '소설 기계'였다. 이제는 오십대가 된 그가 어떤 소설을 쓰고 있을지 궁금하다. 리뷰와 차례를 봐서는, 아, 그는 여전히 학구파^^; ㅠㅠ 사람 참 안 변한다.

 

 

 

 

 

 

 

 

 

 

 

 

 

 

*

 

이런 소설도 있나, 싶어서 구입한 책. 시집보다 저 책이 더 좋아서 지금 계속 읽는다. 소설로는 잘 읽히지 않고, 정말이지 꿈의 속기랄까, 그 생생함이 너무 좋다. 꿈이라면, 잠을 많이 자는 나도 많이 꾸는데, 앗, 나도 한 번 속기해볼걸, 한 박자 늦었다.

 

 

 

 

 

 

 

 

 

 

 

 

 

 

 

신해욱해몽전파사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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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장욱에 새롭게 눈떠서, 혹시 놓친 게 있나 싶어^^ 옛날 시집을 (다 들여다볼 수는 없고) 뒤적여본다. 옛날이라기에는 너무 최근 것.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아, 이렇게 어려웠나. '난해'라는 말이 딱 맞는다. 그 중 그나마 '해'되는 것을 옮겨 본다. 키워드는 '영원' 같고^^ 제일 마음에 드는 시-글은 <시인의 말>, 특히 마지막 문장이다. "나는 의욕을 가질 것이다."

 

 

<비밀>

 

이봐, 비밀을 말해줄까? 나는 사실 남색이야 외계인이고 그리스도고 내장이 없지 솔직히 말해서

태어난 적도 없다.

(...)

 

신이 우리를 다 사랑해버리 건 아닌가?

무언가 우리를 지불해버리지 않았는가?

비밀이 스르르 사라지는 밤, 달빛이

 

나는 발견하였다. 나는 사실 남자가 아니고 한국인이 아니고 종암동 성모병원에서 태어났지.

나는 침묵을 했는데 그것은 침묵이 아니고 비밀이 아니고 사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제 바닥에 긴 몸을 붙이고 잠을 자려는 욕망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개에 대하여>

 

그런 개에 대하여 (....)

 

 

<영원에 가까운 삶>

 

영원을 떠나보내기 위해 기차역에 갔다. 목적지가 없는 기차를 영원은 타고 갔다.

 

영원에게는 언제나 먼 곳이 있는 것 같았다. 그곳이 영원에게 이미 지나온 곳 같았다.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고 열심히 텔레비전을 보고 열심히 잠을 자는 것은 나

영원이 아니라 나

영원은 여기저기에서 나를 잊었다.

마치 나를 다 살아낸 듯이

(....)

 

 

<시인의 말>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하다

고 중얼거렸다.

그것이 차라리 영원의 말이었다.

 

물끄러미

자정의 문장을 썼다.

 

나는 의욕을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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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죽기 전에 기도는 하지 않겠다. 너무 아름다운 사람들이 나는 두렵다. 아름다움이 무엇을 숨기고 있기 때문일까? (...)

불타는 망각의 외투를 껴입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황혼에 취한 늙은 아이처럼

 

 

 

<산책자>

 

오늘 아침에 네가 사라졌다. 네가 나의 발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제 산책을 무의미하다.

 

오전에 차를 마셨다. 녹색 찻물을 우려 천천히 마셨다.

어제의 환멸이 미지근한 햇빛처럼 창문으로 들어와 발의 언저리에 머물렀다. 이젠, 발이 없구나.

 

오래된 시집을 펼친다. 잿빛 머리카락 같은 게 부스스 떨어진다.

유리컵에는 물이 화병에는 마른 꽃이 현관에는 검은 구두가 늙은 시인처럼 입 벌린 채 완강하게 잠들어 있다.

 

실내에 가득한 공기가 천천히 굳고 있다.

 

아침에 사라진 너는 밤에도 사라진 너이고, 나는 사라진 발을 어루만지면서 산책에 대한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

 

막간에 지난 번에 얻어온 시집들을 뒤적이다가 확 꽂히는 시(집)가 있어 옮겨둔다. 시인이 남자인 줄 알았는데 여자다. 내가 시를 잃지 않는 동안 이렇게 많은 이들이 시를 쓰고 있었다니! 한편, 지난 학기 아이들이 추천?^^해준 시들, 그 덕분에 알게 된 시들을 뒤적이는데, 확실히 사람의 취향이라는 것도 확고한 모양이다. 음,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많은 시들이 세일즈포인트가 낮다...^^;; 세대 감각도 있는 것 같다. 젊은 시들이 어렵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미 중년, 하. 오늘의 (반찬가게에서 주문한^^;) 김치찌개는 너무 맛이었고 그 덕분에 읽고 쓸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특히 이 '쓰다'가 중요한데, 이삼일째 손가락(오른손 중지)이 너무 아파(심지어 부어) 어제 병원을 다녀오는 과정에서 정말이지 손가락 하나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소위 삼점 잡기가 안 되는 아이의 고통도...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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