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벨라 타르의 마지막(열번째) 영화(라고 하는) <토리노의 말>(2011)을 보았다. 토리노, 말. 딱 봐도 니체. 니체 얘기는 많지만, 그 다음 그 말 얘기는 없다, 라는 내레이션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소리를 켜두면 바람소리가 거의 대부분, 사람 말 소리가 거의 없고, 가끔 나오는 소리는 (헝가리어라) 거의 알아들을 수 없다. 슬라브어라 집시(쯰간), 요런 단어가 포착되긴 한다. 화면을 보면 온통 흑백, 시커멓고 어둡고,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모든 대상이 다 흔들리는 것 같고, 문제는 너무 롱테이크, 롱샷(??)이라, 10초 당겨서 봐도, 모든 것이 정지,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이건 아무래도, 여러 모로

타르콥스키의 극단 버전.

역시 소련-동구권.

미묘한 정신-영혼의 근친성은 결국 지리적 인접성, 정(치)체(제)의 유사성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토리노의 말>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나로서는, '감자'였다. 그래서 나도 감자를 삶아 보았다. 달걀도 삶았는데, 터져버렸다. 얼마나 호사스러운 식단인가.

 

 

총 (5박) 6일. 부녀는 매일 감자 하나씩을 먹는다. 우물에서 길어온 물로, 또 불러, 푹 삶은 감자. 뜨겁다. 껍질 까느라 고생. 첫 날은 아비를 비추고 둘쨋날을 딸을 비추고, 그 다음은 자세히 못 봤다.(보충 요) 문제는 웬 남자가 다녀간 다음(종말 얘기) 말이 먹기와 움직임을 멈춘다. 집시가 다녀가고 (책 한 권을 주고) 그 다음 우물이 마른다. 그다음에 먹는 감자는 당연히, 삶은 것이 아니라 그냥 불에 구운 것.(정확한지 확인이 필요하다.) 힘들어진 부녀는 짐을 싸서 떠나지만, 정말이지 너무 보기 힘든 장면인데, 나무 한그루만 휑덩그레 서 있는 언덕 너머로 갔다가 다시 온다. 카메라가 그대로 있다 ㅠㅠ (<고도>가 생각난다.) 그다음, 불이 안 붙는다 ㅠㅠㅠ

 

그리하여,

6일째 식사는 생감자. 날감자...ㅠㅠ

 

이 참혹한 비극의 원인이 뭔지 모른다. 영화에서 얘기되지 않는다./못한다.

또 하나, 6일이 되어 보니, 그토록 힘들어 보였던 1일이 제일 행복했던 것이다. 말도 움직여 주고 그래서 할 일도 많고 물도 있고 불도 있고 뜨거운 삶은 감자도 있고 등등.

또한 반대로, 불가항력적인 이유(말 부재, 물 부재, 불 부재~) 때문에 할 수 있던 일이 하나씩 없어짐으로써 삶은 더 단순해진다. 에너지-엔트로피. 그래서 결국엔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진다. 날감자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불도 없이, 물도 없이. 죽음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다. 아니, 좋든 나쁘든 언젠가는 만나게 되는 삶의 종착역이다. 쉽게, 그러나, 얘기하지는 못하겠다.

 

*  

 

네이버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덥썩 채널-지면 하나를 맡게/갖게 되었다. 덕택에, 겨울방학에 끝내야 할 번역이 자꾸 미뤄진다. 에효, 할 수 없지 -_-;;   

 

https://contents.premium.naver.com/kimyeonkyung75/knowledge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5EAMjPspEAQ&t=45s

홍보 영상^^;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 그러니까 벌써 지난 주에 파-크 <지바고> 수업을 했는데, 그의 소설에 대한 여러 유감^^;을 감출 수 없었던 중, 그럼에도 그의 시에 대한 좋은 감정(이 역시 '유감'인가^^;)을 또한 표현했다. 그다음에 이런 시집이 새로 나온 걸 알게 되었다.

 

 

 

 

 

 

 

 

 

 

 

 

 

 

 

 

 

<지바고>는 '시인' 파-크의 사실상 유일한 장편소설인데(그밖에 작은 소설, 산문이 있긴 하지만) 국내에 전공자가 있어서, 이번에 검색해 보니 연구서도 나와 있다. 아무려나, 그는 시인, 시가 좋다. 저 민음사판 시집에 '지바고의 시'도 있으니, 많이들 읽어주시면 좋겠다. (달력을 함께 받기 위해^^;; 아직 구입은 안 했다.) 내가 번역한 <지바고> 뒤에 붙은 것보다도 번역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한다. 역자는 시 전공, 특히 20세기 상징주의 시인 블로크(그를 파-크도 좋아했다) 전공자이고, 굉장히 부지런하고 깐깐한 번역자-학자(이자 그런 선배^^;)이기도 하다. 얼굴을 본 건 까마득한 옛날이지만, 그동안 이렇게 부지런히 읽고 쓰셨다.

 

 

 

 

 

 

 

 

 

 

 

 

 

 

 

나도 밥 많이 먹고 잠 많이 자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지 ㅎ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마 전에 <카라마조프> 독자이자 나의 유튜브 청취자^^;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자신을 60대로 소개하신 그 분은,,, <카라마조프> 앞부분에서, 가족 문제를 왜 수도원 장로, 신부님들한테 해결해달라고 하죠??라는 식의 나의 물음에 답을 주셨다. 그분이 어렸을 때도, 집안 문제가 생기면 절에 가서 스님들께 조언을 구하고 해결을 부탁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카라마조프 집안은 아예 집안이 통째로 암자에 (총)출동해서 조시마를 비롯한 여러 승려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한편, <믿음 깊은 아낙네들>은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그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한다. 가만히 들어보면 너무나 일상적인 것들, 그래서 시시한 것들이다! 그에 대해 조시마는 나름의 의견을 내놓고 신도들은 깊이 감화되어 떠난다. 뭐냐 이건.

 

유튜브의 농간으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있다. 아, 넘나 재미있다 ㅠㅠ 자식 입장에서 부모와의 갈등, 혹은 부모 입장에서 자식과의 갈등, 유산 문제, 부부 간의 문제, 연인 간의 문제, 올케가 꼴보기 싫은 시누이, ADHD일까 아닐까 불안한 청년, 하루 아침에 젊은 아들을 잃고(의외로 세균-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 돌연사가  많다 ㅠㅠ) 괴로워하는 중년의 엄마(그분은 올 10월에 돌아가셨더라 ㅠㅠ), 첩이랑 접고 집에 오겠다는 남편과 그걸 반대하는 아들, 은퇴하자 아침 밥을 안 차려주는 마누라 등등. 그들 개개인의 사연이 너무나 보편적인 것이라, 방청석에 있는 사람들도, 또 녹화된 것을 방안에서 빨래, 청소, 요리 하면서 듣는 나도, 너무나도 공감이 되는 것이다. 웃고 울고 화내고 욕하고 ^^;

 

- 지금 그 질문 참 잘 하셨어요, 그건 당신만의 고민이 아니라, 여기 앉아 있는 대다수가 그리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 우선은 마음을 다잡고 그렇게 말씀을 해주신 걸로, 참 큰일 하신 겁니다.

 

- 행복한 가정요? 무슨, 누구 기준에서요? 이혼한 가정을 놓고 보면 이혼할까말까 하는 당신 가정이그나마 더  행복한 거고,

 

절이든 성당이든 교회든 어디 무슬림 힌두교 사원이든, 종교의 본원은 '구원'일 텐데, 그 구원이 과연 밖에서 올 것인가. 기독교는 그렇게 보는 것 같은데(기도해서 하느님으로부터 구원을 구하는 것, 바라는 것) 불교는 그것을 내 안에서 찾고자 하는 듯하다. '기복/구복'(구원)이 아니라 그저 '기도'. 자기 수행, 자기 성찰. 이게 이론은 쉽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참 쉽지 않고, 또 타인들의 저 시시한^^; 고민들을 일일이 경청하며 그에 맞는 반응과 조언을 내놓기는 쉽지 않을 법하다. 그러게, 성직, 성직자, 라는 '업'이 있는 모양이다.

 

법륜 스님을 보니 조시마 장로가 생각났다.

더불어, 나도 이제는 장로님-스님을 찾아다닐 나이가 됐나 보다.

 

신기하게도, 사연을 보낸(아마 채택된) 사람들 대다수가 여자다. 여자 중에서도 중년 여자다. 소수가 젊은 여자다. 더 소수가 남자다. 여자의 고민은 가족 관계(시댁 포함) 고민이 많고, 남자는 연애나 진로 문제가 많다.  한편, 성직자 역시 종교 불문하고 남자가 많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시 <카라마조프>.

문득, 조시마 장로를 찾아온 아줌마들과 그녀들의 사연이,,, 19세기 러시아 독자들에겐 지금 나와 여러 시청자들이 감동하는 저 <법륜스님 즉문즉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싶다. 하, 그러게 소설의 핵심은,,, 현재성, 그리고 공감할 만안 이야기 ^_^

쉽지 않다.

 

<카라마조프>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대심문관과,,, 병약하고 볼품없이 늙어버린 조시마,,, 고행 수행 금욕 중인 페라폰트 신부의 대비. 끝으로, 비교적 젊은 혜민 스님(미국 이력까지)과 비교적 늙은 법륜 스님(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까지)이 대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21-11-05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륜스님 즉문즉설 저도 팬이네요 ㅎㅎ
님 유튜브 채널은 어떻게 들어가나요?
궁금. 독자 되고 싶어요. 공개 부탁드립니다 ^^

푸른괭이 2021-11-05 17:41   좋아요 1 | URL
종교와 무관하게, 누구라도 팬이 되겠더라고요^^; 오늘도 들었네요, 열등감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욕심이 문제다 ㅋㅋㅋ
제 채널은 유튜브 가서 ‘김연경의 문학창고‘ 치시면 됩니다
이게 원래 비대면 수업 때문에 만든 것인데, 어느덧 구독자가 8백명ㅎㅎㅎ 넘었습니다.
 

 

20세기 러시아문학, 즉 구소련의 SF는 과학픽션, 과학소설, 공상과학소설이라기보다는 나우치나야 판타스티카научная фантастика, 즉 과학(적) 환상(판타지)이라고 불린다. 먼저 두 작품을 읽었는데(그나마 한 권은 절반만 -_-;;) 아주 학을 뗐다. 여러 가지 원인(흠^^;)을 찾을 수 있겠지만, 어쩌면 유토피아 장르 자체가 그런 문제(재미없음^^;)를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적 흥미란 '문제'에서 발생하는데 유토피아란 이론적으로 '문제 없음'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디스토피아로 장르 전환하거나, <안드로메다...> 역자해설처럼 유토피아로 가는 여정에 모험담식 얘기를 배치하거나. 아, 이러나저러나 재미없어서, 앞날이, 까지는 아니고, 14주차 강의의 그날이 캄캄하게 여겨졌다. 겸사겸사, <안드로메다...>의 역자는 SF소설을 직접 쓰기도 한다. 읽어보지는 않았으나, 화이팅!^_^

 

 

 

 

 

 

 

 

 

 

 

 

 

 

 

암울한 참에, 최후의 보루처럼 열어본 책이 현대문학에서 대거 나오는(아마 또 나올) 스트루가츠 형제의 SF다. 우선은 제일 최근에 나온, 하지만 창작년도로는 비교적 일찍 쓰인 <죽은 등산가의 호텔>(1970)을 읽었다. 오, 살 것 같다! 거두절미하고, 소설로 재미있게 읽혀서, 이 정도면 다른 작품도 들춰보고 공부도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속도감 있게 읽히는 데는, 물론 원작이 잘 쓴 SF 스릴러인 덕분도 있지만, 번역의 기여도도 높지 않을까 싶다. 러시아문학 번역 수준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대목.

 

 

 

 

 

 

 

 

 

 

 

 

 

 

 

 

 

 

 

 

 

 

 

 

 

 

 

 

 

스-키 형제의 초기 유명(대표)작은 <신이 되기는 어렵다>(1964)와 번역 안 된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한다>(1965)가 있다.(그런 모양이다.) 더^^ 대표작은 타르콥스키의 영화(<스토커(잠입자)>)로 더 유명한 <노변의 피크닉>(1972), 석영중 번역의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1976). 읽으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에는 아직 두 달의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ㅎㅎㅎ

 

겸사겸사, 펠레빈의 신간(번역본)이 나왔기에 냉큼 주문했다. 이 역시 SF. 유학 시절 그의 단편을 번역할 기회가 있었는데(일부 하기도 했는데) 어째저째 흐지부지 된 것 같다. 아주 잘 되었다^_^ 정말이지 번역이란 너무나 힘든 작업이라, 어지간한 보상(사랑 혹은 돈)  없으면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 

 

자, 이렇게 쓰고 보니 갈 길이 멀구나! 이거야말로 좋은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화예술에 워낙 과문하여 발레를 접할 일이 없었다. 그나마 강의를 한 번씩 하면서 러시아발레(무용) 자료를 뒤적이게 되었는데, '작가'(일기^^;)로 먼저 알았던 니진스키의 위대함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비슷하게, 최근 유튜브로 <볼레로>(라벨)의 발레를 보게 되었다. 쥴리앙 파브로, 라는 무용수(발레리노)의 춤이 너무 경이로워서, 이것저것 보던 중 더 놀라운 무용수를 알게 되었다. 쓰기는 jorge donn, 읽기는 호르헤 돈. 스페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르헨티나 출신이란다.

 

줄리앙 파브로의 볼레로는 섹시한 맛이 분명히 있다. 무용수도 잘 생기고 몸도 아름답고. 그런데 호르헤 돈은 머리도 너무 크고, 하, 대체로 서양인의 비율이 아니다. 가슴도, 남자에게도 이런 표현 쓰는지 모르겠는데, 새가슴(?), 그런 느낌. 즉, 앞으로 돌출되고 여자의 경우라면 유방이 별로 발달되지 않은, 아무튼 예쁘지 않는 상체다. 가슴에는 털이 있는 것 같은데, 이 역시 별로 예쁘진 않다.(내 눈에는 그렇다.) 그런데, 춤을 너무 잘 춘다 ㅠㅠ 그리고 표정, 시선이 갖는 엄청난 마력. mesmerize라는 단어가 딱 맞다.

Jorge Donn, Bolero-1982. - YouTube

 

더 놀라운 것은, (뭐 하는 발레인지 잘 모름-_-;;) <Le soldat amoureux>에서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는 것. 엄청 까불거리고 약간 희화된 모습인 듯도 하고, 정말 '사랑에 빠진 듯' 표정이 익살스러운 환희, 열광으로 가득 차 있고, 몸짓도 대단히 (일부러?) 과장되어 있다. 비슷하게, <니진스키 - 신의 광대>도 연기력이 엄청나게 돋보인다.

 

Jorge Donn — Le soldat amoureux - YouTube

Nijinsky 1990 - Jorge Donn - YouTube

 

어떤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이루는) 사람의 위대함, 을 자주 생각한다. 이사도라 던컨이라는 이름 역시, 예세닌의 거의 스무살 연상의 아내(연인)로만 알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 무슨 글(아마 저 에세이?)에서 "밤새도록 자위를 하고 나서 잠들었다"(??)라는 식의 문장만 기억난다. 아마 워낙 어릴 때(사춘기??) 읽어서 그랬던 것도 같다.

 

Isadora Duncan Dancers - YouTube

 

이미 한창 때는 지난 것 같지만, '맨발의 이사도라'라는 명성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한 것 같다.

나이 들면서, 또 아픈 ㅠㅠ 아이를 키우면서 몸의 중요성, 몸의 예술성, 몸의 지능과 힘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겸사겸사, 줄리앙 파브로

Жюльен Фавро и «Балет Бежара Лозанна» в «Болеро» Равеля, ГКД, 26.09.2015 - YouTube

 

이쪽은 파워풀하고 남성적인 것이 매력인 듯. 나는 앞선 두 버전이 더 좋다.

Soirée exceptionnelle Nicolas Le Riche - Bolero de Béjart - YouTub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