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2)

 

 

 

1.

 

 

전깃불도 없는 산골짝, 장맛비가 쏟아진다. 날카롭고 들쑥날쑥한 산들의 틈새를 비집고 작은 집 한 채가 서 있다. 일곱 살 아이는 묵직한 부엌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시커먼 웅덩이가 괴물처럼 아가리를 벌린다. 아이는 조심조심 한 발을 내딛는다. 걸쭉한 흙탕물이 정강이를 휘감으며 곧 무릎을 집어삼킬 태세이다. 맨 살에 와 닿는 질척질척하고도 미끈미끈한 느낌에 소름이 돋는다. 아이는 잠시 고민한다. 들어갈까, 말까? 음습한 부엌을 살피던 시선이 어둠침침한 구석에 꽂힌다. 있다. 분명히 있음에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뭔가. 침처럼 질질 흘리는 기분 나쁜 웃음이 있다. 풀어헤친 검은 머리카락의 느낌이 있다. 귀신! 아이는 흙탕물에서 한쪽 발을 얼른 빼내 후다닥 밖으로 나온다.

 

아이는 부엌 쪽은 다시 볼 엄두도 못 내고 얼른 섬돌을 딛고 툇마루로 올라간다. 방안, 호롱불의 일렁이는 춤에 맞추어 신문지를 발라놓은 흙벽에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린다. 잠이 든 아이의 꿈속에 부엌 귀신이 보인다. 아니, 기괴한 웃음과 풀어헤친 머리카락의 느낌만 보인다. 먹먹한 침묵의 소리만 들린다. 아무런 형체도, 고로 아무런 이야기도 없는 소름 돋는 악몽이다.

 

 

2.

 

 

‘레피노’ 행 전차. 길쭉하고 좁다란 객실 바닥이 몹시 더럽고 러시아인 특유의 고약한 암내가 자욱하다. 어중이떠중이 행려병자 같은 자들이 필터도 없는 독한 싸구려 담배를 스스럼없이 피워대고 역시나 독한 싸구려 보드카를 마셔댄다. 니코틴과 알코올 냄새에 공기도 어질어질, 현기증이 인다. 등받이 커버도 없는 딱딱한 철제 의자에 오래 앉아 있자니 꼬리뼈의 통증이 척추로 올라간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열차 벽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본다. 높이도 색깔도 똑같은 자작나무의 단조로운 연속이다. 수시로 덜커덩대는 전차의 진동이 없다면 창밖에 풍경화 하나가 걸려 있다고 여겼을 법하다. 과연. 산이 없으니 차이가 없고, 고로 전망도, 원근법도 없다.

 

자작나무 숲의 맞은편, 철제 의자에 앉아 있는 노파가 눈에 들어온다. 허물어져가는 뼈대와 헐렁한 몸뚱어리가 퀴퀴하고 꿉꿉한 장마철의 빨래를 연상시킨다. 몸통은 얇은 블라우스에 가려졌지만 앙상한 뼈다귀와 빈한한 살가죽은 무자비하게 드러나 있다. 팔과 목덜미는 백색인종 특유의 색소 빠진 듯 희멀건 색깔이고 그 때문에 우중충한 갈색의 저승꽃이 더 도드라진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흔적, 사람의 기억이다. 할머니도, 늙은 여자도 아닌 노파. 무릎 위에는 노파만큼이나 낡은 바구니가 덩그러니 얹혀 있고 그 안에는 거무스름한 보랏빛의 열매가 가득하다. 노파가 그를 향해 눈을 찡긋한다. 굵은 바늘로 엉성하게 꿰매놓은 것 같은 두 입술이 달싹이자 얼굴에 파문이 인다. 그도 어설픈 미소를 만들어낸 다음 시선을 자작나무 숲으로 옮긴다. 몇 분 전의 자작나무 숲이 고스란히 반복된다. 다시 노파. 이번에는 미소에 덧붙여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노파의 성긴 은발이 날카로운 비늘처럼 이마를 가로질러 두 눈을 찌를 것 같다. 이 눈이 문제다. 신기하게도 흰자위가 전혀 혼탁하지 않고, 새카만 동공과 옅은 회청색의 홍채가 영롱한 빛을 발한다. 청신한 연둣빛 이파리를 가득 입은 하얀 자작나무 숲 위로 펼쳐지는 북국의 하늘빛. 노파의 아름다운 두 눈이 참을 수 없는 우수를 불러일으킨다.

 

갑자기 노파가 그의 허벅지를 톡톡 치더니 바구니에서 열매를 한 움큼 집어 건넨다. 손바닥은 물론 손등까지도 거무스름한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다. 그는 두 손을 모아 열매를 받는다. 노파는 예의 그 쭈글쭈글하고 걸쭉한 미소를 질질 흘리며 주문이라도 외듯 뭐라고 연신 중얼거리다 환히 웃는다. 골이 깊은 주름으로 뒤덮인 희멀건 얼굴 위로 시커멓고 음습한 동굴이 아가리를 벌리자 몇 안 되는 금니가 황금빛 광채를 뿜어낸다. 노파는 열매 한 움큼을 자기 입안에 넣고 열심히 씹는다. 먹어도 괜찮아, 맛있어. 이런 뜻으로 짐작된다. 마지못해 그는 열매 두 어 개를 입안에 넣고 미처 맛을 느낄 틈도 없이 꿀꺽 삼킨다. 시큼함 같은 것이 한참 뒤에야 감지된다. 혓바닥이 거무스름한 보랏빛으로 물들었을 것 같아 섬뜩하다. 흐뭇한 웃음을 흘리는 노파의 모습이 흉물스럽다. 이런 느낌 자체가 너무 죄스러워 꼭 천벌을 받을 것 같다.

 

 

3.

 

 

김재현은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툭 치는 것을 느꼈다.

“야, 다 왔다.”

권태웅이었다. 아는 얼굴이라 반갑고 젊은 얼굴이라 반갑고 또 모국어라서 반가웠다. 김재현은 손에 열매를 그대로 든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기차에서 내렸다.

“재현아, 그거 크리죠브닉 아니야?”

“아! 이게 그 나무딸기냐?”

권태웅은 열매를 몽땅 자기 입안에 털어 넣었다.

“정말 시다! 그래도 맛있는걸. 색깔도 잘 익은 오디처럼 탐스럽고.”

 

권태웅은 오만상을 다 쓰면서도 입맛을 쩝쩝 다셨다. 주접을 떨듯 이어지는 권태웅의 말에 김재현은 뭔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서 해방되는 것 같았다. 아니면 바깥의 빛이 내면의 어둠을 걷어간 것일까. 화창한 여름, 강렬한 태양과 짙은 녹음이 어우러졌다.

 

레핀의 삭막한 화폭과 달리 조붓한 숲 속 오두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늑한 실내, 가이드가 통역해주는 관장의 말이 음악처럼 흘렀다.

“…그만 자기 손으로 아들을 죽인 건데요… 이반 뇌제는 피투성이 아들을 엉거주춤 부여안고 망연자실하고…. 기다리지 않았다, 라는 제목의 그림은… 천신만고 끝에 녹초가 되어 귀향한 한 남자가… 반면 집안은 안락 그 자체인데 다들 얼마나 당혹스러운지….”

 

오두막 밖을 나온 다음 권태웅이 약간 불만조로 말했다.

“고골 그림은 왜 빼먹었대?”

 

그가 말하는 그림은 말년의 고골을 그린 것이었다. 고골은 󰡔죽은 혼󰡕 2권을 썼으나 고된 노동의 결실이 자신의 이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 원고를 불사르기에 이른다. 자기 소설의 첫 독자로서 냉혹한 심판, 동시에 작가로서 깊은 절망, 평생 문학밖에 몰랐던 한 남자의 괴상한 무채색 삶…. 작가의 두 눈이 하늘에 뚫린 천공처럼 허허롭고 암담하다. 훨훨 타오르는 원고 앞에서 절규하는 그의 얼굴에, 그러나 놀랍게도, 웃으면 천벌을 받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치미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킥킥거리는 것 같은 희극적인 표정이 어리어 있다.

 

“아참, 재현아, 빅토르 아저씨 성이 고골이다?”

“어, 정말? 어쩐지!”

 

빅토르 아저씨는 기숙사의 전기공으로 배가 불룩 나온 짜리몽땅한 중년 남자였고, 기숙사의 배관공인 카프카스 지역 출신의 요염하고 까무잡잡한 아가씨 방에 얹혀살았다. 그는 사생들에게 걸핏하면 “러시아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는데 원하는 답을 얻기 전에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코의 모양이 좀 독특했지.” “그로테스크해.” “말년에는 종교에 빠졌는데.” 마침내 ‘고골’이 나오면 고골처럼 유달리 긴 코를 만지작거리며 그의 소설 얘기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태웅아, 고골은 결혼도 안 했잖아? 사생아가 있다는 기록도 없고?”

“글쎄, 속사정을 누가 아냐.”

권태웅은 눈을 찡긋하는가 싶더니 때 아닌 한숨을 푹 내쉬었다.

 

 

4.

 

 

‘레피노’를 떠나는 전차.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잠이 쏟아진다. 기숙사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는다. 뭔가가 계속 그의 숨통을 틀어막으며 그를 짓누른다. 온 몸이 저릿저릿하고 묵직한 것이 서서히 마비되는 느낌이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어떻게 용케 감지되는 거대한 진자가 사신(死神)처럼 무뚝뚝한 왕복 운동을 반복하고, 그의 몸은 암흑의 나락으로 하강한다. 어느덧 나락이 시커먼 흙탕물로 바뀌고 부엌 귀퉁이에서 뭔가가 자신도 자신의 존재가 두려운 듯 조심스레,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대체 어떤 형상일까? 꿈속의 그는 너무 궁금해서 눈을 커다랗게 부릅뜬다. 그러나 정작 그것이 모습을 드러낼 찰나에는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반면 꿈밖의 그는 남은 열매를 다 먹어치운 권태웅을 보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한 발을 떼어놓는 순간 선 자세 그대로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쓰러진다. 거무스름한 보랏빛이 그의 몸 위로 번져간다. 의식이 명멸하기 직전에도 그는 이것이 자신이 끝까지 보기를 거부한 악몽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5.

 

 

싸늘한 주검이 된 김재현을 발견한 것은 전기공과 배관공이었다. 고골은 그로테스크한 탄식을 연발하며 호들갑을 떨었고 그의 미녀 애인은 진중하게 알라신을 읊조린 다음 경찰서에 연락했다.

사흘 뒤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유족의 요구에 따라 검시를 했으나 상세불명의 심장마비라는 결론뿐이었다. 그의 시신은 목재 유골함에 담겨 귀국, 유년의 음습한 부엌 뒤쪽, 커다란 감나무 옆에 묻혔다.

 

권태웅은 김재현의 죽음과 장례를 지켜보며 계속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어떤 이상한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에도 그러했다.

 

 

 

(- 서울대동창회보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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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아내는 한 해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아이를 가졌고 역시 한 해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아이를 지웠다. 그러던 어느 해, 그 해도 아내는 어김없이 아이를 가졌다. 열한 번째였다. 역시나 아이를 지우려고 했으나 여느 해와는 달리 날짜가 얼마 경과하지도 않았는데도 태아가 너무 커져 있어서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만은 연중행사를 치르지 않기로 했다.

 

아내의 몸은 괴물이 되어 갔다. 모든 것이 임신부의 정상적인 증상이었으나 그 정도가 하나 같이 다 너무 심했다. 아이가 밖으로 나올 조짐을 보였다. 아이의 머리통은 뜻밖에도 몹시 작아서 쉽게 나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몸뚱이가 너무 비대해서 쉽게 나오질 않았다. 의사는 적잖이 당황하는 척했으며 아내는 전대미문의 섬뜩한 비명을 지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열흘 동안 그렇게 신음한 끝에 의사는 제왕절개를 해야겠다고 결정, 이미 나와 버린 아이의 머리를 다시 아내의 자궁 속으로 집어넣은 뒤, 실상 기절을 하여 마취 상태나 다름없는 아내의 몸을 마취하고 배를 갈라 아이를 꺼냈다. 이렇게 제 어미의 자궁을 찢고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내는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하지만 아이는 젖을 빠는 게 아니라, 어미의 젖꼭지를 깨물다 못해 잘근잘근 씹어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나도록 만들었다. 분유를 먹여 봤으나 고무젖꼭지가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았다. 먹는 것이 거의 없는데도 아이는 쇠약해지기는커녕 나날이 비대해져 갔다. 아이의 불가사의한 성장에 충격을 받은 아내는 어미로서의 슬픔도 영 없진 않고 해서 몸져눕고 말았다. 아내가 잠깐 의식을 잃은 동안 아이는 몸을 뒤로 엎었다가 바로 눕고 하는 기초적인 운동을 되풀이하다가 마침 나타난 바퀴벌레를 한 손으로 잡아 입안으로 가져가더니 잘근잘근 씹은 뒤 삼켜버렸다.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한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아이의 수수께끼가 풀렸으니 말이다. 나는 아비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아이를 위해서 살아 있음의 상태에 최대한 가까운 신선한 살을 준비했다. 정육점에서 사온 각종 고기, 횟집이나 열대어 가게에서 바로 사온 살아 있는 물고기 등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보통 아이들보다 성장 속도가 빨라 생후 12개월이 지났을 땐 이미 살 정도는 되는 아이 만큼 자라나 있었고, 살이 많이 찐 개나 토끼나 고양이 같은 것을 즐겨 먹었다.

 

그 무렵 아내는 열두 번째 아이를 가졌고 그 아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냥 죽어버렸다. 우리는 이를 응당 있는 연중행사로 받아들였으며 제가 알아서 지워져버린 미지의 아이에게 무언의 감사를 표했다. 그 동안에도 열한 번째 아니, 첫 번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1년 뒤 아내는 열세 번째 아이를 가졌지만 다시 실패했다. 이후 아내는 이런 식으로 열 번의 자연 유산을 했다. 그 동안 첫 아이는 아내의 몸속에 뿌리를 내렸다가 사라진, 형체를 알 수 없는 스무 명의 아이들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거대할 정도로 자라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이를 위해 먹을 것을 찾아주는 신성한 의무에서 해방되었다. 아이가 알아서 제 먹이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에겐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아이가 너무 거대해진 것이다. 아이는 결국, 기지개를 켜느라 제 몸을 한 번 뻗침으로써 집을 무너뜨리고 우리 곁을 떠났다. 그 해에도 주기에 맞추어 아내는 아이를 가졌고, 응당 있어야 할 일이 있었다.

 

*

 

65백 만년 뒤 어떤 존재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화석 속에 묻힌 유전자를 조작해 부활시킨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우리는 부모의 본능으로 그것이 우리의 아이임을, 불행히도, 알 수 있었다. 아이는 태초에 제 놈이 찢어 놓은 제 어미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더니 급기야 어미의 몸 전체를 찢어 놓고 말았다. 그것도 모자라 발기발기 찢어진 어미의 몸을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먹어치웠다. 그러고는 커다랗게 트림을 했다. 잠시 후, 나를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너무도 흔해빠진 시나리오를 재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었다.

 

(2000년 봄에 쓴 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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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 환시를 보다

 

 

 

 

1. 부활에 관하여: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노작가가 130년 만에 음습한 지하 골방에서 나왔다. 싸늘한 공기에 오한이 일고 한낮의 햇살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는 갓 세상에 나온 아이처럼 간신히 눈을 떴다. 정신이 멍했다. 아니, 나는 분명히 죽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눈이 뜨일 수 있지? 이어 그는 자리에 앉은 채로 손발을 살피며 움직여보았다. 볼도 꼬집어보았다. 몸뚱어리는 물론 통증마저 버젓이 존재했다! 그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 살아생전 그의 믿음대로 완전한 소멸이란 없었다. 거봐, 죽고 나면 부활한다니까, 헤헤. 그는 히죽거렸다. 아무래도 매장을 한 건 잘 한 일이었어. 태워버렸으면 부활도 못하고 큰일 날 뻔했잖아.

노작가는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오랫동안 안간힘을 쓴 뒤에야 간신히 두 발로 설 수 있었다. 하지만 걸음을 떼기는커녕 몸을 지탱하기도 힘들었다. 그는 판판한 묘석 위에 드러눕듯 걸터앉았다. 이런, 부활한다 함은 가장 젊고 아름다운 모양새로 생명을 다시 얻는 것이 아니었나? 하지만 그의 모습은 죽기 직전 그대로였다. 수염과 머리카락은 성글고 푸석푸석했으며 허연 손등에는 거뭇거뭇한 반점과 쭈글쭈글한 주름이 번져 있었다. 입술 주변에는 간질발작을 할 때마다 물었던 게거품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어라, 폐동맥이 파열돼서 죽었는데, 이건 또 뭐람? 노작가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마냥 투덜대고 있을 여유도 없었다. 부활한 작가들의 모임에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행색이 마음에 안 든다고 빠질 수도 없었다. 세상에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칼바람이 너무 거세 걸음을 떼기도 힘들었다. 2월초, 페테르부르크, 혹한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그나마 죽은 것도 이맘때여서 옷가지는 두터웠다. 한데 서너 발짝도 채 옮기기 전에 노작가는 갑자기 요의를 느꼈다. 오랫동안 망각했던 이 욕구가 한편으론 생경하고 또 한편으론 신통방통했다. 그는 슬그머니 주위를 둘러본 다음 자신의 동상을 둘러싸고 있는 쇠창살을 조심스레 붙잡고 바지춤을 끌렀다. 샛노란 오줌이 콸콸 쏟아지면서 삼십 센티는 족히 쌓인 눈 더미를 거침없이 뚫었다. 그 동안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처지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오줌이 몸속에 고여 있을 수 있을까. 노작가는 정말 놀라웠다. 부활이라는 것이 이토록 철저하게 유물론에 지배된다니! 이제 갈증과 허기가 동시에 찾아왔다. 점입가경이었다.

역시 육체를 갖는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야. 만족시켜줘야 되는 욕망이 한 두 개라야 말이지, 젠장.”

노작가는 혼잣말을 중얼대며 혀를 끌끌 찼다. 한데 자기 무덤 앞에는 꽁꽁 언 카네이션과 장미 몇 송이만 초라하게 얹혀 있는데 저쪽 차이코프스키의 무덤 앞에는 음식이 놓여 있었다. 그는 예의 그 욱하는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질투심에 이를 갈았다. 뱃속에서는 간만에 소생한 위액들이 밥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고픈 배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 거의 기다시피 해서 가보니 빵은 물론 연어알과 소시지, , 치즈도 살짝 얼어 있었다. 설마 상한 건 아닐 테지? 하긴 얼었으니 그럴 리는 없겠군. 아뿔싸, 이러나저러나 나는 이미 죽은 몸, 더 이상 무엇을 두려워하랴! 노작가는 하이에나 같은 추잡스러움과 게걸스러움을 뽐내며 남의 무덤 위에 차려진 음식을 다 먹어치웠다. 종이컵에서 반쯤 얼어버린 보드카도 그 맛이 기가 막혔다. 깊고 굵은 트림이 올라왔다. 이 길고 둔중한 울림 속에 인간과 세계의 비밀이 오롯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역시 진리는 술 속에 있는 거야, . 노작가는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간혹 노작가의 축 처진 주름덩어리 살들이 출렁거렸다.

 

 

 

 

 

 

 

 

 

 

 

 

 

 

 

 

 

 

2. 타자는 지옥: “도무지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어!”

 

 

네프스키 거리, 레스토랑 수정궁’, 저녁 6시 경.

러시아문학사에 안치된 대가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위대한 망자들의 향연이 시작됐다.

죽어도 젊어서 죽을 일이야. 늙어 죽었더니 이런 잔치에 한 번 나오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구먼.”

이렇게 엄살을 떨며 잔치판으로 들어선 자는 노백작 톨스토이였다. 그는 아스타포보 역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던 때의 복장 그대로 허름한 농민 복장에 보따리를 두르고 있었다. 지팡이도 짚고 있었지만 그냥 멋이었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그의 허리는 여전히 꼿꼿했으며 눈에는 정염의 불꽃이 이글거리고 뺨에는 홍조가 어리어 있었다. 세월도 타고나길 무쇠 같았던 그의 체력을 별로 망가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젊어서 죽은 놈이 더 골치야. 생각 좀 해보게, 이 도덕군자 양반, 오죽하면 젊어서 죽었겠나? 필경 죽을병에 걸렸을 테니 그 몰골이 얼마나 추하겠나.”

서른일곱 살의 비평가 벨린스키의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낭만주의 소설 속의 병약한 주인공의 몰골을 한 채 연신 캑캑거리며 각혈을 해댔다. 하얀 손수건이 금방 붉게 물들었다.

그때 문단의 원로인 고골리와 푸쉬킨이 나타났다. 82 비율로 정교하게 옆 가르마를 탄, 뾰족하고 커다란 코의 얼굴과 곱슬곱슬하고 윤이 반들반들 나는 원숭이 수염을 가진 얼굴은 아무래도 영원히 한 쌍인 것 같았다. 말년에 정신이 나가 기괴한 단식 끝에 굶어죽은 고골리는 힘이 없어 비실댔고, 푸쉬킨은 결투에서 총상을 입은 지라 비틀거렸다.

곧이어 투르게네프의 등장! 그는 오랜 유럽 생활로 다져진 세련된 자태와 빛나는 미모를 뽐내며 잔치판으로 들어섰다. 진즉에 환갑을 넘겼건만 젊었을 때의 습관 그대로 화려한 프릴 장식이 달린 최신 유행의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오늘 모임을 위해 네일 아트, 헤어, 메이크업 등에도 유달리 신경을 쓴 것이 보였다. 화장은 거의 분장 수준에 가까워, 암을 앓았던 흔적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투르게네프를 보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갖추었다. 때문에, 별로 크지 않은 키에 어깨만 보기 싫을 만큼 떡 벌어진 도스토예프스키가 쭈뼛쭈뼛 들어오는 것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투르게네프 선생은 나이를 거꾸로 드시나 봅니다. 미중년, 꽃중년이 따로 없군요!”

한 시간쯤 전에 도착하여 자리를 지키고 있던 노시인 네크라소프가 운을 뗐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이 아니라 아예 안 먹고 있습니다. 죽고 나니 이 점 하나는 좋군요, 허허.”

투르게네프는 미소를 지으며 점잖은 어투로 응수했다. 한편 도스토예프스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구석에 앉아 인상을 팍 쓰고 있었다. 영락없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에 이제 막 상경한 촌뜨기 시골 쥐, 그것도 열패감에 사로잡힌 시골 쥐의 행태였다. 이런 비사교적인 태도가 귀족 작가들 눈에는 제법 거슬릴 법했다.

그나저나 체호프 선생은 안 오신답니까?”

투르게네프가 좌중을 향해 물었다.

, 젊은 양반이 꽤나 잘 쓰는 것 같던데.”

다들 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나 도스토예프스키만 계속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체호프에게 불만이 있을 리는 물론 없었다. 그저 이런 유의 사교 모임을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당최 왜 왔느냔 말이다! 전 인류를 내 가슴에 껴안고 총체적인 화해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아니, 솔직히 말해, 지하의 고독과 소외를 견디지 못해 돌파구를 찾기 위해? 그의 머릿속에서는 오래 전에 자기가 휘갈겨 쓴 말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분명히 무덤 속에 있을 때는 이 자들이 그리웠는데, 정작 이렇게 만나니 왜 이리 싫은 걸까. 투르게네프의 저 화장품 냄새, 머리가 깨질 것 같다. 톨스토이 백작은 또 어떻고. 그냥 한 자리에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하고 괜히 약이 오른다. 살아생전에 한 번도 안 만난 것이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소문대로 정말 추남이군. 하지만 그러는 나는? 영락없이 소크라테스의 골상(骨相)인걸. 에잇, 할 수 없다, 지하로 돌아갈 수밖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샴페인 잔을 조용히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홀의 뒷문으로 나온 탓에 그가 증발한 줄은 아무도 몰랐다. 또 관심도 없었다.

 

 

3. 지하의 수기: “지하 만세!”

 

 

 

 

 

 

 

 

 

 

 

 

 

 

 

 

 

레스토랑 수정궁을 빠져나온 노작가는 센나야 광장의 지하 술집을 찾아갔다. 그는 제일 구석진 곳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보드카가 나왔다. 그는 혼자 홀짝홀짝 술잔을 기울이며 오이피클을 아작아작 씹었다. 금방 취기가 돌았다. 삼삼오오 떼를 짝을 지은 군중들이 하나 같이 처량해 보였다. 구원! 또 이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숨을 놓기 직전까지 열심히 구상했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2부가 그의 뇌수를 간질였다.

그 순간 그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술집에 앉아 있는 라스콜니코프를 닮지 않았나 싶었다. 스물넷의 청춘, 몹시 여위었음에도 젊음과 힘이 넘쳐나는 팔다리, 파리하면서도 앳된 얼굴, 삶이 열기로 번득이는 두 눈, 자기만의 몽상에 몰입할 수 있는 힘. 하지만 실제 그의 몰골은 며칠째 노숙 생활을 한 다음 딸내미가 몸을 팔아 번 돈으로 술을 퍼마시고 있는 마르멜라도프에 더 가까웠다. 슬라브족 특유의 하얗고 푸석푸석한 얼굴은 바늘로 찌르면 피를 뿜어낼 것 같은 위태로운 분홍색으로 바뀌었고, 흐리멍덩한 두 눈은 취기로 인해 시뻘겋게 충혈 됐다. 몸에도 점점 힘이 빠져갔다. 결국 그는 탁자 앞에 엎어지듯, 빈 부대 자루처럼 찌그러져 버렸다. 그 모습이 너무 초라했기 때문에 말을 걸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그러나 내 사정도 제법 구차했다. 나에게도 나만의 지하가 있었던 탓이다.

페테르부르크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지 어언 7. 나는 계속 비정규직 대학 교원, 즉 시간 강사의 삶을 살았다. 좀 과장하면, 좌절의 연속이었다. 그 설움이 엉뚱하게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유감으로 나타났다. 그 사이에 여러 편의 단편소설과 한 편의 장편 소설을 썼다. 단편은 청탁이 들어오지 않았고, 장편은 출간해주겠다는 출판사가 없었다. 역시나 좀 과장하자면, 열패감에 사로잡힌 지하인 신세였다. 그 소설이 하필이면 <죄와 벌>을 패러디한 것이라, 도스토예프스키를 향한 애증은 한층 더 커졌다.

그러던 어느 날, 통장 계좌에 어마어마한 숫자가 찍혔다. 내가 번역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세 권의 인세가 한꺼번에 입금된 것이었다. 이 인간이 병 주고 약 주는구나! 솔직히, 눈이 빙글빙글 돌았다. 황홀경에 사로잡힌 나는 어느 일본영화 속의 주인공 흉내를 내보았다. 우선 세계지도 한 장을 샀다. 그리고 눈을 감고서 손가락을 놀려가며 한 장소를 골랐다. 내가 은근히 바란 곳은 그린란드나 빈란드처럼 왠지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내 손가락은, 정말 안타깝게도, 페테르부르크에 찍혀 있었다.

한겨울의 페테르부르크라니! 추억 속에서나 거룩하지, 실제 현실 속에서는 혹한과 눈보라와 늪 같은 눈밭을 견뎌내야 하는 최악의 시공간이었다. 그렇다고 유학 시절처럼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을 수는 없어서, 거의 군장이나 다름없을 만큼 철저히 중무장을 하고서 센나야 광장으로 나갔다. 얼마나 걷지도 않아 코끝을 면도날로 박박 긁는 것 같은 통증이 찾아왔다. 나는 라스콜니코프와 마르멜라도프가 술을 마셨을 것으로 짐작되는 지하 술집으로 들어갔다.

사흘을 연거푸 출몰한 탓에 주인장은 심드렁했다. 그 심드렁함이 예나 지금이나 참 좋았다. 나는 구석 자리에 앉아, 독한 맥주 한 잔에 각종 빵과 파이를 잔뜩 주문했다. 버섯과 고기가 들어간 파이를 우걱우걱 씹고 있을 때였다. 이 음습한 지하로 가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과연 일까?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는 이미 시체마저도 썩어문드러졌을 옛날 작가가 아닌가. 혹시 를 숭배하여 를 모방한, 심지어 러시아식으로 참칭하려 드는 미치광이는 아닐까? 이러나저러나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별달리 할 일도 없잖은가.

 

4. 소멸과 불멸에 관하여: “우리 두 존재는 무한 속에서 만났습니다

 

 

 

 

 

 

 

 

 

 

 

 

 

 

 

 

저어기, 도스토예프스키 선생 맞으시죠?”

그는 푹 수그렸던 고개를 들어 올렸을 뿐, 가타부타 대꾸는 전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용기를 내어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역시나 묵묵부답에 무반응이었다.

혹시 방해가 된 건 아니겠지요?”

묻는 사람 민망하게 이번에도 침묵뿐이었다. 취기와 피로에 전 게슴츠레한 눈빛 때문인지 그 침묵이 제법 시적으로 느껴졌다. , 그렇다. 어딘가 애처롭고 우스꽝스러운, 그렇기에 더 절절한, 침묵하는 그리스도! 평생 그리스도의 소설적 형상을 만들려고 애쓰더니 절로 그리스도의 모상이 됐나. 이쯤 되면 인신 공양 끝에 탄생한 등신불이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힘든 걸음을 다 하셨습니까? 하긴 저도 제법 멀리서 왔지만 이반 카라마조프의 악마처럼 무한의 시공간을 넘어온 선생만 하겠습니까! 그래, 무슨 일로 여길 다시 오셨습니까? 그냥 세상을 한 번 둘러보시려고요? 하긴 선생이 소설로써 구원하고자 했던(당최 이런 꿈은 소설가가 꾸기엔 너무 가당치 않지만) 세상이 1881년 이후에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셨겠지요. , 그래, 이렇게 와 보시니 어떻습니까? 사실 페테르부르크는 19세기 이래로 별로 발전한 것이 없어요. 선생이 살아 있을 때만 해도 근대의 명암이, 온갖 미덕과 악덕이 공존하던 이곳이 이제는 살아 있는 박물관처럼 됐거든요. 그러니 라스콜니코프의 니힐리즘이나 그런 유의 범죄는 찾아볼 수가 없지요. 아니, 대체로 뭔가 그럴 듯한 사건 자체를 찾기가 힘들답니다. 지금 태어났으면 아무리 선생이라도 별 수 없었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 이런, 계속 아무 말씀도 안 하실 겁니까? , 거참, 괜히 과묵한 척 하시네.”

정녕 혼자 애가 달아 설치는 꼴이었다. 나는 그가 제발 무슨 말이든 해주길 바랐다. , 과연 무슨 말이 나올까나? 대심문관에 묘사된 것처럼 그리스도의 기나긴 침묵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은 촌철살인의 키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달리, 술 취한 그리스도는 졸지에 수다스러운 대심문관이 됐다.

과묵이고 뭐고 시끄러워! 다들 인생이란 것이 뭔가 대단한 것인 양 떠들어대지만 참 별 것 없어. 오죽하면 부활을 해봐도 똑같을까. 겉모양새야 좀 변했을지 몰라도 본질적으론 살아생전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걸. 무덤 뒤의 세상이 무덤 전의 세상과 똑같다면, 무덤 뒤에는 차라리 어둠만 있는 것이 낫겠어. 다들 어쩔 수 없이 죽어야 되는 것이 서럽고 억울하니까 이것저것 상상해보지만, 아무래도 스비드리가일로프의 말이 명언이야. 내세란 옹색하고 지저분한 시골 목욕탕 같아, 거미줄이 덕지덕지 쳐진. , 이런 걸 다 생각해 내다니, 나는 가히 천재야! 아니, 천재는 무슨! 먹고 살려고 평생 죽도록 쓰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지. 아무리 그래도 내 소설이 이렇게까지 읽힐 줄이야. , 잘 쓰긴 잘 썼지. 내가 봐도 놀랍다니까. 아니, 잘 썼다기보다는 독특하다고 할까. 하긴 어찌나 독특했는지 톨스토이 백작은 아주 대놓고 내 소설을 씹어댔지, 소설 같잖다고.”

꼬인 혀를 타고 말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졌다. 표도르 카라마조프가 코냑을 홀짝홀짝 마시며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눅눅하고 음탕한 넋두리를 연상시키는 횡설수설이었다. 바로 이 노인이 슬라브족 특유의 매력을 뽐내는 마성적인 광기에 사로잡힌 이지적인 청년들의 아비이다. 문득 가슴이 뭉클해온다.

페로프가 그린 초상화 속의 그는 소설가 이상의 소설가, 거의 예언자처럼 보인다. 악의 심연을 들여다본 자, 동시에 신의 배꼽을 간질여본 자랄까. 여하튼 그것은 무한한 거리감을 안겨주는 얼굴이다. 반면 지금 내 앞에 구겨지듯, 널브러지듯 앉아 멍한 시선을 어딘가 애매한 곳에 던져 놓은 이 얼굴은 인간적임과 동시에 참 소설가답다. 후줄근하고 익살스러운, 돈키호테 같은 노인네, 꽤나 마음에 든다. 그는 말에 걸신들린 자답게 계속 웅얼대고, 나는 그의 말보다는 그 말이 흘러나오는 분위기를 만끽한다. 어차피 말이라면 그의 소설 속에 충분히 들어 있으니까.

 

 

* 소제목 인용 문구 출처:

1. <죄와 벌>: 소냐가 라스콜니코프에게 읽어주는, 복음서의 나사로의 부활 부분.

2.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 카라마조프가 알료샤에게 하는 말.

3. <지하로부터의 수기>: 주인공-화자의 말.

4. <악령>: 샤토프가 스타브로긴에게 하는 말.

 

(<대산문화>. 2011년 봄호. <가상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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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음-분신과 아이(2)

 

    

 

아니면 [두 인간이] 두 방울의 피처럼 서로 닮는다는 것 자체가 실제로 이미 범죄인 걸까?”(나보코프, <절망>) 그 자체로 고유하고 유일한 존재인 인간을 명백히 가치론적인 위계질서를 전제로 하는 원상-분신의 틀에 맞추려는 것은 죄악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닮음의 공동체나 계보를 향한 인간의 집착이 흥미롭다(김연경, 닮음-분신과 아이, <대산문화> 2013 여름호). 나를 닮은 존재(분신), 원전-고전을 닮은 문학(패러디)처럼, 불편함 이상의 불편함을 야기한다. 외부의 도플갱어가 아니라 그것을 만들려는 내 안의 욕망이 문제인 까닭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아이의 비유를 즐겼고 아마 그들 대부분이 남성이었던 탓에 십중팔구는 추상적이었는데, 루소만은 예외가 아니었나 싶다. 계몽과 이성의 대명사이자 교육학 분야에서도 고전(<에밀>)을 남긴 그가 사실혼 관계에 있던 여성(테레즈)에게서 다섯 아이를 낳았고 그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낸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이다. ‘고백을 통해 자신의 죄악(나아가 인간의 본성을) 환히 밝히려는(enlightenment, 계몽!) 그의 문체가 웬만한 소설을 능가할 만큼 혁신적이고 유머러스하다. “내가 인간의 의무에 관해서 철학적 고찰을 하고 있는 동안, 한 사건이 일어나, 내 자신의 의무에 관하여 좀 더 깊이 생각하게 했다. 테레즈가 세 번째로 임신한 것이다.”(루소, <고백>) 자식들을 직접 키울 힘이 없었던 까닭에, 아이들을 공적교육(公的敎育)”에 맡김으로써 방랑자나 투기사가 아닌 노동자나 농부로 만드는 것이 공민(公民)으로서 애비로서의 할 일을 하는 것이라는 논리이다. 이것이 무척 좋고 분별 있으며 아주 정당하게 생각되었다.

 

이 대목은 통상 루소의 도덕적 결함과 이중성을 질타하는 근거로 활용되지만, 그가 18세기의 남성로서 출산과 육아의 문제에 관여, 적어도 그것을 자신의 고민의 영역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특하고 갸륵해 보인다. 결국 그는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당당히, 떳떳이 방기하고 그 대신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사유하고 기록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아이와 마주한 순간, 이른바 루소의 선택이 영원한 딜레마처럼 되살아난다. 역시 이론과 실제는 서로 어긋나야 제 맛인가.

 

 

 

 

 

 

 

 

 

 

 

 

 

 

 

 

*

 

해질 무렵, 곱슬곱슬 파머 머리를 한 짜리몽땅한 아줌마가 각각 일곱 살, 다섯 살짜리 두 딸을 걸리고 돌도 지나지 않은 아들을 등에 업은 채 어느 산동네의 비탈길을 오르고 있다. 그 무렵 그녀는 셋방에 딸린 홀에서 라면을 끓여 팔았고 행여 주인한테 밉보여 길바닥에 나앉을까봐 수시로 그 집 빨래를 해주기도 했다. 서른다섯을 넘겼을 즈음, 그녀는 시장에 노점을 하나 얻어 보리차와 옥수수차, 소금을 팔았다. 이른 새벽에 출근하여 하루 종일 장사하고 저녁에는 집안일을 했다. 가뜩이나 거무스름한 얼굴에는 칙칙한 기미가 안화(眼花)처럼, 비문(飛蚊)처럼 드리워졌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항상 바빴고 때문에 항상 신경질적이었다. 도무지 국어책 삽화 속의 다소곳한 앞치마를 두르고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우아한 엄마, 즉 이론은 실제 속에서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모들의 회상 속에 등장하는 엄마는 생판 딴 모습이다. 한글도 제대로 못 읽는 열여덟의 시골 처녀가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떠난다. 일 년쯤 뒤, 70년대의 유행을 십분 반영한 짧은 미니스커트에 치렁치렁 긴 생머리, 굽이 높고 코가 뾰족한 하이힐, 화려하고 짙은 화장을 뽐내며 고향 땅을 밟는다. “너거 엄마가 왕년에는 진짜 멋쟁이였는데.” 금의환향의 포즈는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한다. 그녀는 이내 완전히 귀향, 군복무 시절을 빼면 평생 거창 바깥을 나간 적이 없는, 그러나 신문도 읽을 줄 아는 스물일곱의 노총각에게 시집간다. 이모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 대목에서 그녀의 팔자가 완전히 망가진다. 시부모 모시고 시동생들 뒷바라지하고 사시사철, 밤낮 지옥 같은 노동에 시달리고 한 아이의 젖을 떼기가 무섭게 또 배가 불러 오고 등등 전형적인 농부(農婦)의 삶이 시작된다. 몇 년 뒤, 죽어도 고향은 못 떠난다는 남편을 구슬려, 기필코 아들을 가져보겠다고 낳은 셋째를 담요에 둘둘 말다시피 하여 부산으로 나와, 전포동 기찻길 윗동네에 조그만 방을 얻는다. 여기부터가 대략 내 기억 속의 억척스럽고 그악스러운 엄마이다.

 

*

 

죽어도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이런 말을 많은 딸들처럼 나도 수없이 되뇌었고 얼마간은 실제로도 그리 되는 성 싶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포의 얘기일 뿐, ‘애프터’, 즉 내가 엄마의 자리에 앉게 되자 역사가 고스란히 반복되는 것 같은 느낌에 놀라울 따름이다. 놀라는 일 자체가 오히려 놀랄 일이라는 듯, 정확히 그럴 줄 알았음에도 애써 감고 있던 눈을 뜨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기어코 찾아온 듯, 민망하고 멋쩍기도 하다. 돌이켜 보니, 엄마의 멋이 미니스커트와 하이힐이었다면, 나에게 그것은 엄마의 얼굴을 기미투성이로 만들어버린 삶의 속됨으로부터의 해방, 그 추구였지 싶다. 상당 부분 의도적이었을 법한 퇴폐적인 삶, 시도 때도 없이 연거푸 피워댄 담배, 단식과 폭식을 오가는 방만한 식생활, TV공각기동대나 <몽테크리스토 백작> 따위로 채워진 밤, 그 무익함과 한심함 때문에 더 즐겼던 웹서핑.

 

까막눈 엄마는 서울살이를 얼마 견디지 못해 귀향했지만, 너무 긴 가방끈 때문에 섣불리 귀향도 못한 나는 마냥 엄살만은 아니었던, 위악과 냉소, 권태와 우울과 환멸을 양념처럼 섞어 넣은 고독하고 굶주린 서울살이를 이어나갔다. 마흔을 앞둔 현재, 금연은 물론이거니와 삼시 세끼 저염 웰빙 식단을 꾸리고 매일매일 방바닥을 물걸레로 닦고, 무엇보다도, 진짜 비문 때문에 시야가 어질어질한 가운데, ‘나인 투 식스의 삶, 그것도 마땅한 직장은커녕 어디 작업실도 없어 집 앞 커피숍으로 출퇴근하는 삶을 살고 있다. 생계를 이유로 아이를 남의 손에 맡겨놓는 것이 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정말로 죄스러운 엄마가 되는 것인 까닭에 죄스러운 마음 자체를 갖지 않으려고 애쓰고, 그럼에도 당장 밥벌이와 무관한 책을 보거나 그런 글을 쓸 때면(지금처럼!) 쾌감과 더불어 어김없이 죄스러운 마음이 동반되고, 때문에 생계도 생계거니와 일종의 자기 응징(!) 차원에서 최소한 두서너 쪽의 번역은 꼭 하려고 애쓴다.

 

엄마의 과거를 약간 변주하되 궁극엔 그녀와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궁상과 청승과 극성의 짬뽕으로 요약될 작금의 내 모습이 유머러스하다. 걸어도 걸어도, 아니, 걸어서 걸어서 제 자리이다. 이럴 거면 뭐 하러 이 먼 길을 왔던가. 이런 말도, 애당초 인생에서 를 상정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어딘가 유머러스하다. 차원과 수준이 너무 달라 비교할 건 아니나, 힘겹게 성() 앞에 도달한 K의 허허로운 무채색 탄식이 요즘 곧잘 상기된다. “성을 시찰하기 위한 것뿐이라면, K는 일부러 먼 길을 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 정도라면 이미 오랫동안 못 가 본 고향을 다시 한 번 찾아보는 편이 훨씬 현명한 행동이었을 것이다.”(카프카, <성>)

 

 

 

 

 

 

 

 

 

 

 

 

 

 

*

 

한동안 내 속에서 유유자적 잘 놀다가 버럭 세상에 나온 분신의 얼굴에서 오래 전에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흑백의 돌 사진에 박힌 내 얼굴이 활동사진처럼 되살아난다. 그때마다 내 모습에서 과거 엄마(아빠)의 모습을 볼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강렬한 절망을 맛본다. 과연, 악몽과 역사는 반복되고,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오직 이 반복을 완성하기 위해서일뿐인가!

 

언제가 아이는 나의 비포, 심지어 애프터마저도 제 나름의 변주를 곁들여 반복할 것이다. 반복이 불가피한 만큼이나 이 변주가 소중하다. 그리고 공시적 닮음이든 통시적 닮음이든 완전한 닮음(같음)이 불가능한 만큼이나 닮음의 비율, , 다름(차이)이 중요하다. 강조하건대 모든 얼굴은 유일무이”(나보코프, <절망>)하다. 아이가 순전히 그 자신의 것으로서 갖게 될 고유하고 유일한 얼굴, 또 그렇게 일궈갈 삶을 축복한다. 더불어 요 삼년사이에 갑자기 많아진 조카들, 세상 모든 아이들의 얼굴과 삶을. “불아불아! 해님 같은 우리 아가, 밝은 빛이 되어라.() / 질라아비 훨훨! 우리 아가 예쁜 아가, 건강하게 자라라.(최숙희, <곤지곤지 잼잼>.)

 

 

 

 

 

 

 

 

 

 

 

 

 

 

(소설가 이인성 홈페이지(www.leeinseong.pe.kr )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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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08-15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괭이님의 글을 읽어보니 루소가 몽테뉴로부터 얼마나 깊은 영향을 받았는지를 새삼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몽테뉴 역시 어린아이들의 양육을 '무작정' 그들의 부모에게 맡기는 일의 어리석음을 강하게 질타하는 글을 최근에 읽은 적이 있거든요.

* * *

플루타르크는 모든 점으로 보아 감탄할 만하지만, 특히 그가 인간의 행동을 판단할 때에는 더욱 그렇다. 그가 리쿠르고스와 누마의 비교에서 어린아이들을 국가에 맡기고 부친들의 책임하에 기른다는 것이, 우리들에게 엄청나게 어리석은 일이라는 문제에 대해 말하는 훌륭한 글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바와 같이, 우리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퀴클롭스(눈 하나를 가진 반신(半반神신))가 하는 식으로,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어리석고 철부지 같은 생각이 하는 대로 각자에게 맡겨 두고 있다. 그리고 라케데모니아 인들과 크레테 인들만이 어린아이의 훈련을 법률에 맡겨 두었던 것이다. 한 국가에서는 모든 일이 국가의 훈육과 부양에 달려 있는 것을 누가 보지 않는가? 그러나 부모들이 아무리 어리석고 패악해도,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어린아이들을 맡겨 둔다.

다른 일 중에도, 나는 거리를 지나다가 어떤 아비나 어미가 광분하며 열이 치밀어올라 어린아이들 피부가 벗겨지고 상처가 나도록 마구 두들겨패는 것을 보고, 얼마나 여러 번 그 아이의 원수를 갚아 주고픈 술책을 꾸며 볼 생각이 났던가! 그들의 눈에서 독살에 찬 불덩어리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라.

(히포크라테스에 의하면 가장 위험한 질병은 얼굴을 변형시키는 질병이라고 한다) 게다가 그들은 칼로 찢는 듯한 목소리를 가지고 유모의 품에서 겨우 떨어진 어린아이를 마구 야단치는 일조차 있다. 어린아이들은 몽둥이 찜질에 얼이 빠지고 다리불구자가 된다. 그런에 우리의 법률은 이런 신체 불구자들은 우리 국민의 일원이 아닌 것처럼 이런 일은 고려해 보지도 않는다.

그대가 그를 나라에 바칠 수 있고 밭갈이에 쓸모 있고,
전쟁의 복역과 아울러
평화로울 때 힘든 일에 쓸모 있게 만들어 준다면,
그대는 조국과 국민에게 한 시민을 제공한 것으로
감사받을 만하다. (주베날리스)
 

 

예정보다 길어진 <고슴도치> 연재를 마친다.

 

성장소설(가족소설)을 쓰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 2007년 여름 오랜만에 고향에 다녀왔고, 우리 가족이 살았던 부산의 여러 동네를 아버지와 함께 순례했다. 나름 절치부심 끝에 두툼한 소설을 썼지만 참혹할 만큼 형편없는 놈이 나왔다. 그 다음에 썼던 소설에는, 딱히 성장소설이 아니었음에도, ‘성장소설의 매혹이라는 이름을 붙여보기도 했다. 언젠가 살릴 수 있길 바라며 통째로 버린 그 원고들 대신 <고슴도치>를 완성했다. 동화의 문법을 빌렸는데, 아니, 동화를 쓴다고 생각하고 썼는데, 쓰고 보니 동화가 아니었다. 뿐더러 성장소설에 필수적인 성장이 없는 소설이 나왔다. 말하자면, 걸어도 걸어도, 걸어서 걸어서 제 자리임을 보여주는 소설. 그런 느낌을 안개 속의 고슴도치(노르슈테인)를 처음 봤을 때 받기도 했다.

 

2008년 초, 여동생이 거제도 **리에 있는 초등학교로 발령받았다. 어릴 때처럼 단 둘이 손을 꼭 잡고 에 갔다. 섬마을 선생님이라니. 동생의 학교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1학기를 다닌 거창 **리의 학교와 너무 비슷했다. 학교 뒤쪽으로 넓고 푸른 논밭 대신 넓고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는 것이 달랐을 뿐. ‘구덩이 오막살이를 이어받는 얘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은 유학생활 이후 내 거처가 된 원룸()에서 나왔다. 이듬해에는 추석을 맞아 외갓집이 있는 영도에 갔다. 얼치기 일문학도에서 초등특수교사로 옮아가기 전 동생이 일 년간 근무했던 재활원도 거기 있었다. 덕분에 이야기를 얼추 마감할 수 있었다. 그러고도 미덥지 않아 계속 들었다 놓았다 했는데, 일기장이 기억하는 최종 탈고일은 2011330일이다.

그 사이 영도다리 밑, 점집 한 군데를 찾아간 적이 있다. 내 이름의 한자도 제대로 받아 적지 못하는 점쟁이 할아버지의 점괘가 참, 교과서였다. “마흔이 되면 인생이 전연 달라질 거요.” 전연 달라진다면 그건 인생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자기기만이 없으면 좀처럼 넘기 힘든 것이 인생의 고비()인 것도 맞다.

 

지금보다 조금은 더 많은 선택지를 갖고 있었을 열여덟 살의 나를 잡아다가 족쳐볼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왜 그토록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느냐. 워낙 오래 된 꿈이니까 더 어린 나를 소환하여 추궁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소설 쓰는 나는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원한에 사로잡혀 턱없는 오만함과 궁상맞은 열패감 사이를 오가는 인간, 균형 잡힌 자존감이란 전혀 없는 인간이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아끼는 나는 소설 쓰는 나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 답인즉, 인생이 걸어서 걸어서 제 자리인 만큼이나, 대놓고 동어반복이다. 나는 소설가니까.

 

철저히 고독만 먹고살며 소설을 쓰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들어줬으면 하는 것이 의 본성, 나아가 이야기(소설)의 본성임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공리적 관점에서는 소설과 같이 올린 세계문학 관련 글들이 오히려 좋은 일을 한 것 같은데, 그렇기에 더더욱 <고슴도치>를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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