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론과 인과론

 

 

 

1.

 

삼촌의 귀향에 대한 얘기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집을 아주 예술적으로 지어놨더라.”

이런 말로 아빠는 운을 뗐다. 그 예술적인 집을 짓느라 6천만 원의 거금이 들어갔단다. 아이러니는커녕 동경이 십분 배어나오는 어조였다.

사는 것도, 뭐라 카꼬, 억수로 예술적이더만.”

삼촌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책상 앞에 앉는다. 최근에는 희랍어를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전에는 텃밭을 가꾸고 오후가 되면 차를 몰고 읍내로 나간다. 늦은 저녁, 텃밭에서 거둬들인 것을 다듬고 다시 책상으로 간다. 어둠이 내리면 기다렸다는 듯 잠자리에 든다.

용태가 돈도 어북(어지간히) 벌었놨는 갑더라. 딸들도 다 컸겄다, 차도 있겄다, 냉장고도 있겄다, 에어컨도 있겄다. 옛날에 우리 살 때랑 같나.”

그 옛날, 그 자리에는 우리 집이 있었다. 부산의 달동네로 올라가기 위해 정든 고향집을 버린 아빠의 눈에 삼촌은 해탈한 지식인, 진정한 영웅이었다.

엄마 얘기 속의 삼촌은 영 딴판이었다.

마누라도 없이 그래 혼자 불쌍하게 살더라.”

예술적인 집은 졸지에 귀신이라도 나올 법한 폐가로 탈바꿈했다. 먹을거리가 풍성한 초여름도 시련의 도가니가 됐다.

혼자 저카고 있으니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 안 카나. 보리밥이나 콩밥에 오이나 고추 같은 거 그냥 생 걸로 먹고. 나보고 반찬이라도 해다 주라 카지만

이어지는 엄마의 말은 시동생의 뒤를 봐줄 수 없는 형수의 가식적인 변명이었다. 시부모 봉양은 물론 중고교생 시동생들의 뒤치다꺼리까지 도맡았던 젊은 맏며느리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 끝에 일반론도 하나 도출되었다.

인생 다 살아봐야 안다 카더니, 용태가 저리 될 줄 우찌 알았겠노?”

첩첩산중에 혼자 방치된 괴상한 중년 기러기. 청승과 궁상도 저 정도로 떨면 나름 예술이려나.

 

삼촌의 운명에 우연론을 적용할까, 인과론을 적용할까. 옛 남자 친구의 소식을 들었을 때도 던져본 질문이다. 경영학과를 졸업하고서 결혼과 동시에 유럽으로 유학을 갔다가 학교를 다니는 대신 적도 한가운데로 떠난 남자. 우간다를 다녀온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그는 위도 25도 안팎, 커피벨트의 몇몇 나라를 오가며 커피콩을 사왔다. 공정무역이 그의 방랑벽에 명분을 제공해 준 것 같았다.

 

2.

 

금요일 오후, 걸레질 하느라 바쁜 손에 메시지가 훼방을 놓는다.

전주 출장. 내일 일어나자마자 출발한다!^^”

둘째 출산을 전후하여 착실하게 곪아온 고름이 뭉툭한 손톱만 닿아도 터져버릴 것 같다. 말이 주오일 근무지, 영업사원에게는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어김없이 일이 있다. 상무 아들 결혼, 거래처 사장 딸 결혼, 생산팀 부장 부친 사망. 인도네시아 검수단 도착, 일본 바이어 도착, 호주 바이어 긴급 방한. 합천 파이프 사고, 나주 파이프 사고, 홍성 파이프 사고. 왜 모든 파이프는 주말을 앞두고 터질까. 수사적 표현이지만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인생의 절반을 고속도로 위에서 보내는 남편이 딱한 것도 사실이다.

욕실 문을 닫고서 게슈타포에게 들킬 새라 조용조용, 조심조심 걸레를 빤다. 짧은 울음소리가 들린다. 후다닥 달려가 아직도 정신이 멍한 아이를 안아 올린다. 거의 동시에 핸드폰이 윙윙댄다.

새댁, 잘 지냈어?”

주인 할머니의 용건인즉,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것이다.

이번에 우리 딸이 애들 교육 때문에 호주로 갔거든.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대. 추석 때 나오니까 그때 얼굴도 한 번 보고 계약서도 다시 쓰고 하면 좋겠는데.”

남편과 상의해보고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다. 그 참에 수압계 문제도 다시 꺼낸다. 세입자의 요구에 할머니는 예의 그 비굴할 정도로 불쌍한 저자세를 취한다.

그러게 내가 가서 한 번 봐야 하는데, 돈 들어갈 일이 좀 많아야 말이지. 자식 많으면 바람 잘 날 없다고 우리 작은아들도 지금.”

이어 할머니의 사정이 쭉 이어진다. 전부 딱하기 그지없는 것들이다.

원래 우리 아파트의 주인은 중국에 살았다. ‘우연이라는 인상적인 이름에 복사된 주민등록증의 흐릿한 사진으로도 두드러지는 미모였다. 69년생 우연이가 캥거루와 코알라의 나라로 갔단다. 겸사겸사 커피콩을 사러 다니는 옛 남자친구가 69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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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을 끝낸 다음날, 그는 회사에 나가지 않았어. 감기에 걸렸거든. 하지만 감기가 나은 다음에도 회사에는 가지 않았어. 하루 종일 자기 방에 누워 있었던 거지. 두 눈을 뜬 채 천장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 꽤 마음에 들었던 거야. 몸을 옆으로 돌리면 벽이 보였지. 그의 방 벽지는 무늬가 하나도 없는, 그냥 상아색 벽지였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떠올리고 무슨 그림을 그려보기에 딱 좋았어. 하지만 말이야, 사실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 그림도 떠올리지 않았어. 그래도, 아니 그래서 더 좋았던 거야. 누워 있다 지치면 몸을 엎드렸어. 코가 살짝 방바닥에 닿았겠지? 이건 좀 불편해서 고개를 옆으로 돌려 눈을 내리깔았지. 그러곤 나뭇결과 비슷한 모양의 장판 무늬를 살펴보았지. 저절로 눈이 스르르 감겨 왔어. 그러면 그냥 그대로 자는 거야. 다시 눈을 뜨면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이런 상황이 그는 제법 마음에 들었던 거야.”

 

에이, 그럼 밥도 먹지 않아?”

 

지금껏 얘기에 열중했던 정은이가 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거짓말이야! 밥 안 먹고 어떻게 살아?”

 

. 실은 바로 그게 문제야. 문지기는 하루 종일 밖에도 나가지 않고 방만 지켰어. 첫날은 하루 종일 잠만 잤어.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야. 잠을 잤으니까. 다음날은 방에서 뒹굴며 만화책을 읽었어. 그러니까 이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지? 만화책을 읽었잖아? 다음날은 그간 굶주린 배에 음식물을 가득 집어넣었어. 너무 오랜만에 과식을 하는 바람에 소화제까지 먹어야 했어. 어쨌거나 그날도 밥을 먹었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 그 다음날은 밖으로 나가 반나절 동안 섬을 돌아다녔어. 구석구석 다 돌아봤어.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왔던 길을 또 오락가락했지. 집에 들어온 뒤에는 퍼즐조각을 흩어놓고 맞추기 시작했어. 한데 그는 퍼즐은 정말 젬병이었거든. 한참을 붙들고 있었지만 절반도 맞추지 못했어. 이게 그는 참 마음에 들었어. 빨리 끝나 버리면 새로 할 걸 찾아야 되잖아? 그러니까 바로 이게 문제야. 어쨌거나 그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결국, 그는 깨달았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잠깐이라도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을 멈추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떡붕어 아저씨는 마른 빨래를 개기 시작했다. 지금껏 졸고 있던 가람이가 깨어났다. 대신 정은이가 졸기 시작했다. 희주는 벽에 등을 대고 앉아, 옆에 누운 빛나의 다리를 긁고 있었다.

 

마녀는?”

 

잠결에 정은이는 이렇게 내뱉고는 또 스르르 잠이 들었다.

 

마녀는 문지기와는 달리 너무 많은 것을 하고 싶어 했어. 그래서 늘 바빴지. 하지만 왠지 마녀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살았던 것 같아. 마녀는 매일 아침 학교에 가서 선생님 놀이를 했어. 모래 장난을 좋아하는 은학이와 세상이 전부 미웠던 태형이와 몹시 시끄러운 아름이를 데리고 말이야. 마녀는 선생님 놀이를 할 때도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어. 그냥 아이들과 놀았을 뿐이야. 동화를 들려주고, 종이를 접고, 숫자를 세보고 그렇게. 집에 오면 마녀는 주부 놀이를 즐겼어.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하고 심지어 농사도 지었지. 하지만 뭔가 이상했어. 문지기와는 부부 사이였지만, 그래서 같은 성에 살았지만, 그들은 어딘가 부부 같지 않았거든. 아참, 마녀는 또 동화 작가이기도 했어. 하지만 단 한 번도 동화를 종이에다 직접 쓴 적은 없었으니, 이것도 얄궂지 뭐야. 어떤 한 아이를 위해 꾸준히 동화를 쓰는 것도 같았는데, 어쨌거나 마녀는 분명히 아이가 생기길 바랐어. 하지만 있던 아이는 사라졌고, 없던 아이는 생겨나지 않았어. 마녀는 제법 슬펐을 거야. 그래도, 아니, 그래서 마녀는 동화를 썼지. 동화는 절대 써지는 법이 없었어. 그저 항상 동화를 생각하고 또 말하고. 그걸로 끝이었어. 그러다가 마녀는 죽을 때가 됐어. 자기가 언제 어떻게 죽는지 마녀는 알고 있었어. 하지만 그때도 마녀는 마법을 쓰지 않았어. 마법만 쓰면 죽지 않을 수 있었는데도 한사코 마법을 쓰지 않으려 했어. 무엇을 위해서 마법을 아껴뒀던 것일까? 혹시 마법을 한 번이나 두 번 밖에 쓸 수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마법을 한 번 쓰면 그 대신 눈이나 손이나 뭐 그런 걸 내줘야 됐던 걸까? 설마 마법을 쓸 줄 몰랐던 건데 계속 거짓말을 했던 걸까?”

 

소영이의 말에 대꾸를 해주는 아이는 없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한 자리에 붙박인 듯 앉아 있었다. 그때 벨소리가 들렸다. 떡붕어 아저씨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달려갔다. 저녁식사였다. 소영이도 일어나 음식을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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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붕어 아저씨는 소영이 주위에 널려 있는, 가위질이 된 마분지를 집었다. 정은이는 탐탁지 않았지만 다정한 눈길에 이끌려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천천히 종이상자가 만들어졌다. 그 사이에 아침에 배달된 빵이 하나씩 둘씩 바닥났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면서 찬 기운이 확 들어왔다. 재활원 원장이었다. 그는 꼭 이맘때쯤 나타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빵을 한 두 개씩 들고 갔다. 원장은 빵 안에 뭔가 내용물이 들어있는 것을, 가령 단팥빵, 슈크림 빵, 땅콩 크림 빵 같은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가 다녀간 날에는 소보로 빵과 달맞이 빵만 잔뜩 남았다. 어쩌다 일이 좀 한가할 때는 훔쳐간 빵 값을 내는 셈 치고 방청소를 하거나 빨래를 해주기도 했다.

원장님, 소보로 밖에 안 남았어. 팥은 내가 먹고 슈크림은 희주가 먹고, , 진영이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 빵 먹으면 설사할지도 몰라.”

소영이의 말에도 불구하고 원장은 열심히 방 상자를 뒤적였다. 정말로 소보로 밖에 없었다. 그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소영이는 열심히 종이상자의 모서리를 맞추고 있었다. 얼마 뒤 또 문이 열리며 찬바람이 확 들어왔다.

에이, 소보로 밖에 없다니까!”

소영이가 소리를 꽥 질렀다. 추워서였다.

이리로 앉으세요.”

떡붕어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인기척도 없이 방한가운데로 들어온 건 원장의 어머니였다.

, 할머니였구나. 소보로 먹을래?”

소영이는 마침 다 끝낸 종이상자를 내려놓고 노파에게 소보로 빵을 건넸다. 노파는 아무 말도 없이 빵을 손에 쥐고 조금 베먹었다. 하지만 곧 자기 손에 뭔가가 들려 있다는 것도 잊은 양 동작이 멎었다. 아이들은 노파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 노파는 투명인간 같았다. 하지만 투명인간의 손에 들린 소보로만은 또렷이 보였다. 진영이가 달려들었다.

에비, 에비! 진영이는 빵 먹으면 안 돼! 아저씨, 이거 좀 선반 위에 올려줘. 할머니, 이거 우리가 만든 거다!”

소영이는 일곱 개의 상자를 차곡차곡 쌓았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더니 우르르 달려들어 상자를 허물었다. 소영이는 이제 상자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다시 마분지가 된 상자들을 떡붕어 아저씨가 선반 위에 갖다 올렸다. 그 동안에도 노파는 쥐죽은 듯 조용히 앉아있었다.

할머니, 내가 아이들한테 재미있는 얘기 해주는 거 들을래? 얘들아, 옛날 얘기 해줄까? 옛날 옛적에 마법의 성이 하나 있었거든. 거기에는 이상한 문지기랑 이상한 마녀가 살았어. 문지기는 문지기였지만 문을 지키지 않았고, 마녀는 마녀였지만 마법을 쓰지 않았어. 문지기가 문을 지키지 않은 이유는 간단해. 문지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꿈꾸었거든. 그게 뭐냐고? 원래 문지기는 회사에 다녔어. 파이프를 만드는 회사였지. 거기서 문지기는 파이프를 관리했어. 한 번은, 몹시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파이프 개수를 세야 했어. 건물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파이프가 엄청나게 쌓여 있는 거야. 파이프는 구멍의 크기에 따라 나뉘어져 있었어. 문지기는 그것을 하나하나 다 세야 했어. 그는 이미 개수를 센 파이프 위에 화이트를 콕콕 찍었어. 헷갈리면 안 되니까. 그런데 파이프 구멍을 계속 보고 있자니 머리가 핑핑 도는 거야. 구멍이 작은 파이프는 너무 작아서 자꾸 보다보니 속이 메스꺼워졌어. 구멍이 큰 파이프는 그 사이로 찬바람이 쌩쌩 불어 들어와,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었어. 그래도 용케 그는 일을 끝냈지. 그가 센 파이프는 종류별로 몇 개였더라.”

정은이는 눈알을 굴리고 귀를 쫑긋 세웠다. 가람이는 철봉에 묶인 채 꾸벅꾸벅 졸았다. 진영이가 큰일을 보는 바람에 잠깐 이야기가 중단되기도 했다. 떡붕어 아저씨를 시킬 수가 없어 소영이가 직접 진영이를 욕실로 데려갔다. 기저귀에 묻은 똥이 질지 않아 안심이 됐다. 또다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 동안 떡붕어 아저씨는 방을 닦고 세탁기를 돌렸다. 소영이의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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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줌마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지만 빛나의 팔을 붙잡은 손만은 여전히 놓지 않았다. 아줌마가 오는 날이면 일감이 절반 이상 줄었다. 하지만 정은이는 아무도 자기를 예뻐해 주지 않는다며 혼자 훌쩍댔고, 진영이는 배탈이 나서 아침을 굶어야 했다. 가람이는 또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저씨, 가람이 좀 찾아봐. 날이 추우니까 분명히 건물 안에 있을 거야.”

떡붕어 아저씨를 내보낸 다음 소영이는 아줌마한테 또 한 소리했다.

아줌마가 빛나랑만 놀면 다른 아이들이 얼마나 슬프겠어?”

슬프긴, 뭐가 슬퍼. 내가 뭘 어쩐다고.”

아줌마는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며 빛나의 뒤틀린 두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빛나는 입을 벌린 채 웃고 있었다. 침이 질질 흘러내렸다. 아줌마는 손수건으로 빛나의 침을 닦아주고 얼굴을 두 손으로 쓰다듬었다. 사람 말을 거의 못 알아듣는 빛나였지만 아줌마의 손길과 눈짓에는 늘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저렇게 꼭 붙어서 서로 배시시 웃고 있는 아줌마와 빛나는 누가 봐도 닮은꼴이었다. 빛나의 눈 사이가 조금만 더 가까웠다면, 또 입이 돌아가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붕어빵이었다. 몸집도 그랬다. 둘 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골반 뼈가 두툼하고 큼직했고 덩치도 남산만 했다. 당직을 하는 날이면 아줌마는 빛나를 꼭 안고 잤다. 아줌마가 빛나를 편애하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원장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불가피한 이유에서 그냥 덮어둘 수밖에 없었다.

 

떡붕어 아저씨는 가람이를 관리실 옆쪽에 세워둔 봉고차의 뒷좌석에서 발견했다. 가람이를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설 때 마침 퇴근하는 아줌마와 마주쳤다.

추운데 조심해서 가세요.”

아줌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대방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걸음을 뗐다.

 

방안이 훈훈했다. 소영이 주위로 아이들이 살아서 꿈틀대는 조각상처럼 모여 있었다. 소영이는 아이들 앞에서 종이상자를 접고 있었다. 정은이는 소영이 옆에 바싹 붙어 소영이의 볼과 손, 팔에 계속 뽀뽀를 해댔다.

언니, 뽀뽀! 언니, 그 오빠는 언제 또 와?”

그 오빠는 이제 오지 않아. 이 아저씨랑 놀아.”

정은이는 떡붕어 아저씨를 쳐다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못 생겼어. 시커멓고 뚱뚱해.”

그래도 종이상자는 접을 수 있는데, 가르쳐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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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글라스 아줌마가 부산을 떨어댄 것은 제사 때문이었다. 선글라스 아저씨는 딸만 줄줄이 다섯 있는 집에 막내이자 유일한 아들이었다. 아줌마는 조기를 갈고리에 꿰어 마당으로 가져갔다. 담장 옆으로 빨랫줄이 쳐져 있었다. 거기에 조기를 너는 일은 키가 큰 소영이가 했다. 그동안 아줌마는 튀김옷을 준비하고 동그랑땡과 부침개 반죽을 했다. 두 사람은 하루 종일 튀김 냄비와 프라이팬 앞에서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두부도 반듯하게 썰어 다 구웠다. 간단히 요기를 한 뒤에 아줌마는 돼지고기 덩어리를 삶았다. 국물이 끓자 거품을 한 번 걷어내고 불을 낮추었다. 핏물을 머금은 고깃덩어리가 수육으로 바뀌는 동안에는 나물을 볶았다. 고춧가루는 물론 마늘도 없이 국간장과 소금, 참기름으로만 맛을 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탕국도 끓였다. 선글라스 아줌마의 탕국에는 많은 것이 들어갔다. 우선 국거리용 쇠고기, 북어, 대합, 말린 보리새우를 넣어 국물을 우려냈다. 그다음에는 잘 손질해서 썰어둔 표고버섯, 구운두부, 우뭇가사리를 넣고 팔팔 끓였다. 그 사이에 문어도 한 마리 데쳤다. 계란도 삶아 톱니 모양을 넣어 반으로 갈랐다.

 

그런 다음 선글라스 아줌마는 소영이는 함께 마당으로 나갔다. 순간, 그들은 흉측한 장면을 목격했다. 담장 바로 옆, 빨래 줄에 일렬로 매달려 있던 조기를 길 고양이들이 신나게 뜯어먹고 있었던 것이다.

이 망할 놈의 괭이 새끼들이!”

아줌마의 호통에 고양이들은 담장에서 마당 쪽으로 곤두박질쳤다. 그 바람에 조기 두어 마리가 땅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아줌마는 성질을 내며 고양이들에게로 덤벼들었다. 하지만 날렵한 도둑고양이들을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 순식간에 누리가 뛰어나왔다. 누리는 고양이를 물어다 자기 집에 넣고, 선글라스 아줌마는 잡힌 고양이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그 앞을 지켰다. 소영이는 조기들을 주우며 이 장면을 구경했다. 상황이 종료되고 보니 총 세 마리의 고양이가 잡혔고, 간만에 목돈을 써서 마련한 조기 중 고작 다섯 마리만 멀쩡했다. 선글라스 아줌마는 분을 삭이지 못해 누리 주위를 맴돌았다. 주인의 분함이 누리에게도 전이되어 누리는 으르렁거리며 세 마리의 고양이를 고문했다. 아줌마는 이 집의 가장 큰 보물 중 하나인 디지털 카메라를 갖고 와 누리와 고양이를 찍기 시작했다.

이모, 사진 찍는 거야?”

아니, 동영상.”

그게 뭐야?”

영화 같은 거 있어.”

어라, 그래서 어쩌려고?”

어쩌긴, 인터넷에 올려 만천하에 고발해야지!”

그 동안에도 누리의 응징은 계속됐다. 그 무시시한 이빨을 드러내놓고 고양이들을 위협했다. 하지만 상대가 현저히 힘이 약한 것을 본능적으로 고려하여 이빨로 깨물지는 않고 그냥 앞발로 몸을 툭툭 치기만 했다. 고양이는 누웠다 엎어졌다 뒤집어졌다를 반복하며 죽는 소리를 내더니, 다람쥐 통에 들어가 수십 바퀴를 돈 어린아이처럼 아주 기절해버렸다.

 

그때 떡붕어 아저씨와 선글라스 아저씨가 나타났다. 그 뒤로 고만고만하게 늙은 남녀들이 들어왔다. 선글라스 아줌마는 그제야 생각이 난 듯 조기를 프라이팬 위에 얹었다. 등이 굽은 할머니 하나가 목을 확 꺾어 올리며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지금까지 그것도 안 해놓고 뭘 한 거냐!”

괄괄한 선글라스 아줌마였지만 자기보다 절반은 족히 더 작은 성 싶은 손위시누이 앞에서는 누리 앞의 도둑고양이 같은 모양새가 됐다.

다음날 아침, 문 앞에는 제수 음식이 담긴 커다란 양푼이 놓여 있었다. 소영이는 그것을 힐끔 쳐다보곤 출근길을 재촉했다. 떡붕어 아저씨와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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