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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0:24-33 나도 그를 시인하리라.


세계에서 기독교를 가장 탄압하는 국가는 북한이라고 합니다. 국제 선교단체인 오픈 도어즈가 5월 7일 인터넷을 통해 ‘2008 세계 기독교 박해지수’를 발표했는데 북한은 85.0점으로 기독교 탄압국가 50개국 가운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습니다. 북한은 ‘혹독한 박해’를 하는 국가로 나타났습니다. 2위는 사우디아라비아로 66.5점, 3위는 이란으로 65. 5점으로 ‘혹독한 억압’을 하는 국가로 드러났습니다. 오픈 도어즈는 보고서에서 "전 세계에서 북한만큼 기독교인이 처참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고통 받으며, 전적인 종교의 자유가 박탈되는 나라는 없다"며 "그 상황은 2007년에 더욱 악화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는 "2006년보다 2007년에 더 많은 기독교인이 체포되었으며, 중국으로 피신했다가 북한으로 돌려보내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수감되고, 고문을 당하며, 심지어 처형당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우리나라는 정부에서 기독교를 탄압하지는 않습니다만 진보적인 언론매체가 기독교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보수집단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죠. 지상파 방송은 기독교가 사회를 위해 공헌할 때는 당연하다는 듯이 넘어가면서 일부 교회의 비리가 발견될 때는 전부가 부패집단인 양 부풀려서 방송하고, 여기에 편승해 사실 확인을 하지도 않은 누리꾼들이 기독교를 ‘개독교’라 비아냥거리고, 목사를 ‘먹사’로 낮잡아 부르며 기독교를 매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기독교의 박해를 예견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4절-25절을 통해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문화에서 제자는 선생과 같이 지냈고, 이방문화에서 종은 주인 곁에서 싸웠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자와 선생은 그리고 종과 주인은 똑같이 취급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2장 22절 이하를 통해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자 바리새인들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선생인 예수님이 비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제자들이 비난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눅6:40,요13:16,15:20) 완전하신 예수님이 비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불완전한 우리가 비난받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왜 두려워하지 말라하셨을까요? 예수님은 26절 하반 절을 통해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진리는 드러나고 알려질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아무리 인터넷에서 기독교를 공격하더라도 성경은 완전한 진리임이 드러날 겁니다./ 28절을 통해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둘째, 예수님은 박해자들이 몸은 죽일 수 있지만 영혼은 죽일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셨습니다. 박해자들은 몸만 죽일 수 있지만 예수님은 몸과 영혼을 죽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박해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거부하고 박해를 일삼는다면 결국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29절-31절을 통해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예수님 당시에 참새는 새 중에서 가장 값이 쌌고, 앗사리온은 화폐 중에서 가장 작은 단위였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값싼 참새에게도 관심을 가지시는데 하물며 머리털까지 세신 제자들에게는 얼마나 관심을 가지시겠느냐 물으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세심하게 살피고 계시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속속들이 알고 계시니 우리는 주눅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2절-33절을 통해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예수님은 우리가 박해를 받더라도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면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공개적으로 제자임을 밝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8:38,딤후2:12) 예수님은 우리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신실하게 신앙생활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교회의 경우 북한 지하교회처럼 국가로부터 탄압을 받지도 않고, 우리나라 대형교회처럼 언론의 표적은 아닙니다만 안타깝게도 교인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이렇게 비유하기 뭣합니다만 대형교회는 이마트 같고 개척교회는 구멍가게 같습니다. 이마트에 가면 서비스가 좋아요. 그렇듯이 대형교회는 프로그램이 다양합니다. 그러나 개척교회는 거의 없잖아요. 이마트는 물건 값이 저렴합니다. 그렇듯이 대형교회는 정신적으로 부담이 없습니다. 그러나 개척교회는 앉아있기가 불안하다네요. 이마트는 고객이 많잖아요. 그렇듯이 대형교회는 전도하지 않아도 교인들이 몰려옵니다. 그러나 개척교회는 전도해도 오지 않잖아요. 식당도 손님이 많아야 음식 맛이 좋게 보이고, 축구장도 관중이 많아야 경기가 재미있듯이, 교회도 좌석이 가득차야 예배가 은혜롭더라고요. 이것을 심리학 용어로 ‘사회적 촉진’이라 하더군요. 타인의 존재가 동기를 유발한 다네요. 사실 저도 이마트에 가게 되지 구멍가게는 안 가게 되더라고요. 교인들이 대형교회를 선호하는 게 이해가 되네요. 하지만 하나님은 작은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작아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작더라도 열심히 신앙 생활하면 칭찬하십니다. 하나님은 요한계시록 3장 7절 이하를 통해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교인도 적었고 재정도 열악했지만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고 하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도 작은 교회입니다. 내세울 것이 없는 교회죠. 변변한 프로그램도 없고, 담임목사의 이력과 경력도 미천하고, 자랑거리가 거의 없습니다. 더군다나 세상은 교회를 비난하고 있고,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환경이죠. 그렇더라도 우리가 신실하게 신앙 생활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 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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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0:1-15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멘토링 전문가인 팀 엘모어 박사는 [위대한 멘토들]에서 그리스식 모델과 히브리식 모델이라는 두 가지 학습 방법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식 모델은 선생님이 가르치고 학생들이 듣는 교실형 모델로서 정보를 전달하는데 효과적입니다./ 히브리식 모델은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주고 학생들이 따라해 보는 코치형 모델로서 현장 훈련을 중요시합니다. 선생님은 지식을 전달하는 그리스식 모델이 가르치는데 수월하겠지만 학생들은 수동적인 그리스식 모델보다 경험적인 히브리식 모델을 통해 더 많이 배운다고 합니다.(13쪽) 

오늘 본문을 보면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주고 학생들이 따라해 보는 히브리식 모델의 전형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 23절과 9장 35절을 통해 회당에서 가르치시며(Teaching),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Preaching),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Healing).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에게 시범을 보여주시고 열두 제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고 병을 고쳐보라고 내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전도할 장소를 지정해주셨습니다. 5절 하반 절과 6절을 통해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예수님은 지금 갈릴리에서 전도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의 북쪽에 있는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갈릴리의 남쪽에 있는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지금 예수님과 함께 있는 갈릴리에서 전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방인에게는 전도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멀리 있는 ‘이방인’ 지역까지 가지 말고 가까이에 있는 ‘유대인’ 지역에서 전도훈련을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전도는 멀리 있는 사람에게 하기보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해야 합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은 불신하게 되지만 아는 사람이 하는 말은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전도할 말씀을 알려주셨습니다. 7절을 통해 “천국이 가까이 왔다.”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도 그리고 예수님도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4:17)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우리도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천국은 예수님의 사역과 함께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already not yet)

예수님은 전도할 능력을 주셨습니다. 8절을 통해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 1절을 통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2가지 권능을 주셨습니다. 8절을 통해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4가지 능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지셨던 것과 똑같은 권능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기적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전도할 때 주의사항을 당부하셨습니다. 8절 하반 절을 통해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거저 받았으니 아무 대가없이 복음을 전하고 능력을 행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9절과 10절을 통해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예수님은 전대에 돈을 넣어가지 말고, 배낭에 물건을 담아가지 말고, 밤에 입을 두꺼운 옷을 챙기지 말고, 거친 길을 걷기 위해 신발을 가져가지 말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 지팡이(막대기)를 가져가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전도여행이 일시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다급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물품을 가져가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전도자를 돌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1절을 통해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빈손으로 떠났다고 걱정하지 말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집에 머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일용할 양식을 책임지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전도자가 축복하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2절과 13절을 통해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축복하면 복이 주어질 수도 있고 철회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집을 방문하여 복을 빌고 그 집에서 복음을 받아들이면 그 집에 복이 머물지만 복음을 거부하면 제자들에게 복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심판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4절과 15절을 통해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샌들을 신다보니 먼지가 많이 묻었습니다. 먼지는 사람의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죄와 비슷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샌들에 뭍은 먼지를 떨어버리는 것은 다시는 상종하지 않겠다는 상징행동이었습니다. 상종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과 그 지역에 대한 모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면 이방인처럼 취급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복음을 거부한 사람과 지역은 죄악으로 멸망 받은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비참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습니다. 만나를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았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알맞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날라다 주셨습니다. 그릿 시냇가가 마르자 사르밧 과부에게 보내 공궤 받게 하셨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통의 가루는 떨어지지 않았고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우리도 아무염려 없이 복음을 전하는데 전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물을 퍼내도 새로 솟아나듯이 우리가 쓰더라도 통장의 잔고를 채워주실 겁니다. 우리의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복음을 전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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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9:9-13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일제 강점기에 일본 헌병을 도와 우리나라 사람들을 탄압하는 헌병보조원이 있었습니다. 일제는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헌병보조원을 선발해 우리나라 독립 운동가를 색출하고 고문하게 만들었습니다. 동족이 동족을 핍박하는 악랄한 제도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헌병보조원을 매국노라고 증오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로마제국으로부터 세금을 징수하는 권한을 받은 세리가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은 유대인 중에서 세리를 선발해 유대인에게 통행세와 주민세를 거두게 하였습니다. 동족이 동족을 착취하는 무서운 제도였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세리를 율법을 지키지 않는 죄인이라고 혐오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세리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마태입니다. 마가복음 2장 14절과 누가복음 5장 27절에는 레위라고 나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은 유대식 이름과 로마식 이름이 있었습니다. 레위는 유대식 이름이고, 마태는 로마식 이름입니다. 마태는 가버나움 세관의 세리였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서북쪽 연안에 있는 번화한 도시였습니다. 가버나움에는 아름다운 유대교 회당이 있었고, 로마 군대가 주둔했습니다.(막8:5-8, 눅7:1-10) 마태는 가버나움 북동쪽의 다메섹과 서쪽의 지중해 사이를 왕래하는 상인들에게 통행세를 받았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주민세를 거뒀습니다. 가버나움 세관은 알짜배기 세관이었습니다. 마태는 유대인에게 세금을 거둬들여 로마인에게 바치고 나머지는 자신이 챙겼습니다. 이익이 많이 남는 장사였습니다. 마태는 비록 유대인들에게 죄인이라고 배척을 받았지만 재산을 불리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마태에게는 돈이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그런 마태의 인생에 예수님이 등장하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인 나사렛을 떠나 번화한 도시인 가버나움에서 주로 활동하셨습니다.(마4:13) 예수님은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셨고(막1:21, 눅1:31), 가버나움에서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셨고(막1:21~28, 눅4:31~37), 열병으로 앓아누운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셨고 다른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셨고(막1:29~34, 마8:14~17, 눅 4:38~41), 문둥병자를 고쳐주셨고(막1:40~45, 눅5:12~16, 마8:1~4), 네 사람에게 메워온 중풍병자를 고쳐주셨고(막2:1~12, 눅5:17~26, 마9:1~8), 오른손 마른 자를 고쳐주셨고(눅6:6~11, 마12:9~14, 막3:1~6), 열두 해를 혈루 증으로 고생한 여인을 고쳐주셨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셨고(막5:21~43, 눅8:40~56, 마9:18~26), 로마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셨고(마 8:5~13, 눅 7:1~10),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후 무리들에게 생명의 떡과 영생에 관해서 말씀하셨습니다(요 6:24~71).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많이 가르치시고, 많은 권능을 일으키시다 보니 ‘본 동네(자기 동네)’라고 불렸습니다.(마9;1)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드나들면서 세관공무원인 마태를 유심히 지켜보셨고, 마태도 세관에 앉아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사이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존경을 받아 사람들을 몰고 다녔지만 마태는 율법을 범하는 죄인으로 낙인을 찍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태는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버림을 받았고 심지어 유대교 회당에서도 추방을 당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일으키는 기적을 눈으로 보고 싶었지만 유대인들의 손가락질이 싫어서 근처를 얼씬도 하지 못하고 대신 금고를 열고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돈다발을 세어 보고 값비싼 포도주를 마시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혈루 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은 사람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 예수님의 겉옷 가를 만지고 병을 고쳤지만 마태는 주변의 눈총이 싫어서 세관에 틀어박혔습니다. 마태가 예수님을 찾아가지 않자 예수님이 마태를 찾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에게는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습니다.(마9:6) 마태는 장부정리를 하다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를 보시고 단 두 마디를 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마9:9) 예수님은 마태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초청하시지 않고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마태는 갑작스런 명령에 당황하였지만 누군가 자신을 불러주기를 바라기나한 듯이 즉시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마태는 갑작스런 명령에 즉각적인 순종으로 화답했습니다. 마태의 순종은 다른 제자들의 순종과 달랐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단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마4:20) 재산상의 손해가 적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따랐습니다.(마4:22) 유산을 포기한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힘들게 고기를 잡지 않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언제든지 바닷가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마태가 세관을 떠난다면 다시 복직하기 어려웠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하늘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찾아오셨기 때문에 우리도 신앙의 걸림돌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마태를 제자로 받아주시자 마태는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선생님을 집으로 초청하여 음식을 대접하고 말씀을 듣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만 초청한 게 아니라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버림을 받은 다른 죄인들도 초청하였습니다. 마태의 널따란 집에는 세리와 죄인들로 가득 찼습니다. 복음서(특히 누가복음)를 보면 예수님이 식탁에서 교제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음식을 함께 먹던지 잠을 함께 자던지 하면 친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며 교제하셨습니다. 그러자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아니 율법을 해석한 ‘규칙들’을 율법만큼이나 엄격하게 지키는 바리새인들이 발끈했습니다.(마9:11)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바리새인들은 죄인들과 어울리면 죄가 전염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죄가 전염되었을까봐 손을 씻고 음식을 먹었고, 죄인들과 접촉했을까봐 시장에 다녀와서 목욕을 하고 음식을 먹었고, 죄로 오염됐을까봐 잔과 주발과 놋그릇과 침상 등을 씻었습니다.(막7;3-4) 바리새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율법을 해석한 규칙들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속담을 인용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건강한 사람들은 병원을 찾지 않고 병든 사람들이 찾듯이, 자신을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지만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회개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병원을 찾아간 사람들이 병을 고치듯이, 회개한 사람들이 용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사람보다,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가슴을 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기계적으로 드리는 예배보다 부단히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미국 침례교의 목사이자 사회학자인 토니 캠폴로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목사님이 지은 책 중에 [하나님 나라는 파티입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캠폴로 목사님이 하와이에 강의가 있어 갔다가 시차 때문에 새벽 3시에 깨어났습니다. 자기 집에서는 그 시간이 식사할 시간이었지만 하와이 시간으로는 새벽이었습니다. 캠폴로 목사님은 식당을 찾다가 허름한 식당을 발견하였습니다. 음식을 시켜먹는데 여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왔습니다. 거리의 여자들이었습니다. 여자들은 큰 소리로 떠들어댔습니다. 그 여자 중에 한 여자가 내일이 자신의 39번째 생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여자는 자신들 처지에 생일이 가당키나 하냐고 면막을 주었습니다. 여자들은 서로 싸우다가 나갔습니다. 캠폴로 목사님은 주인에게 저 사람들이 매일 오냐고 물었고 주인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캠폴로 목사님은 저 사람을 위해 생일파티를 열어주자고 제안했고 주인은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다음 날 캠폴로 목사님은 생일카드를 쓰고 식당을 장식하고 호놀룰루의 창녀들을 초대했습니다. 3시 30분이 되자 아그네스와 친구들이 들어왔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캠폴로 목사님과 다른 사람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자 아그네스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인이 케이크를 자르라고 권하자 아그네스는 케이크를 당분간 보관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아그네스는 케이크를 마치 성물인양 가져갔고 주위가 조용해지자 캠폴로 목사님이 기도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캠폴로 목사님은 아그네스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주인은 어느 교파의 목사냐고 삐딱하게 물었습니다. 캠폴로 목사님은 “저는 새벽 3시 30분에 창녀들을 위해 생일 파티를 열어 줄 수 있는 교파에 속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주인은 코웃음을 치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그런 교회는 없소. 만약 그런 교회가 있다면 내가 진작 그런 교회를 다녔을 거요. 정말 그런 교회가 있다면 나는 그런 교회에 다니고 싶단 말이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들은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배기량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교인 수와 교회 재정에 따라 사람을 차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죄인들과 식사를 하셨듯이 천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어울려 식사를 나눌 겁니다. 하나님 나라는 의인이나 죄인이나 차별하지 않습니다. 손님이나 거지나 똑같이 대우합니다. 우리는 바리새인처럼 죄인을 정죄하지 않고 예수님처럼 죄인을 품어줘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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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7:21-29 내 말을 듣고 행하라.

5월 12일 오후 2시 28분 중국 쓰촨성 청두 원촨현에서 리히터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이 지진으로 건물 20만 여 채가 붕괴되었고,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이 7만 4천여 명으로 집계됐는데, 이 중 학교 7,000여 채가 붕괴되면서 수많은 학생들이 희생됐습니다. 중국 당국은 학교가 유난히 많이 붕괴된 것은 부실공사 때문으로 보고 합동수사반을 꾸려 책임자를 색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건물을 부실하게 공사하면 지진이 발생할 때 맥없이 무너지듯이 신앙도 부실하게 생활하면 시험이 닥쳐올 때 힘없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부실한 신앙은 어떤 신앙일까요?

말뿐인 신앙은 부실한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21절 상반 절을 통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라는 단어는 ‘랍비’나 ‘선생’으로도 번역될 수 있지만 예수님은 메시야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말뿐인 신앙으로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씀이죠.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물에 빠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연대별로 설명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1970년대는 입이 가벼워서 입만 뜬다. 1980년대는 물고기와 얘기하느라 엉덩이만 뜬다. 1990년대는 물고기가 지쳐서 물고기만 뜬다. 2000년대는 채팅이나 문자메시지를 하느라 손만 뜬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이 많아서 입이 뜨고 엉덩이가 뜨고 물고기가 뜨는데 교인들은 더 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기 마련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고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말이 많은 것을 경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잠언 10장 19절을 통해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입술을 다스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능력뿐인 신앙도 부실한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22절-23절을 통해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려면 선지자 노릇으로도 충분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못하다고 말씀이죠. 다시 말해 목사라고 교사라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도 기적을 일으켜도 충분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능력을 행해도 충분하지 못하다고 말씀이죠. 다시 말해 부흥강사라고 기도원 원장이라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신앙 생활하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신앙인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신앙을 이스라엘의 기후에 비유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사막이라 일 년 내내 비가 내리지 않다가 우기가 되면 폭우가 쏟아져서 물이 범람하여 기초가 빈약한 집들을 쓸어가 버립니다. 우리나라도 국지성 집중호우가 쏟아져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잖습니까? 비가 내리고 창수(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무너져 내리듯이 말뿐인 신앙과 능력뿐인 신앙은 인생의 폭풍이 몰아치면 신앙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예수님은 7장 20절을 통해 그 사람의 성품은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25절-27절을 통해 그 사람의 믿음은 폭풍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견실한 신앙은 어떤 신앙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21절 하반 절을 통해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24절을 통해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이죠.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은 반석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석위에 집을 지으면 국지성 집중호우가 쏟아지더라도 끄떡없듯이 말씀을 듣고 실행하면 인생의 폭풍이 몰아치더라도 끄떡없게 됩니다. 중국 전국시대 순자(荀子)는 ‘듣지 않는 것은 듣는 것보다 못하며, 듣는 것은 보는 것보다 못하다. 보는 것은 아는 것보다 못하며, 아는 것은 이를 행동하는 것보다 못하다.’고 말했습니다. 순자도 행동하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했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학교발명협회 발명의 길잡이 365일을 보면 사람이 귀로 들어 얻은 지식은 30%를, 눈으로 보고 얻은 지식은 50%를, 손으로 만져보고 얻는 지식은 80%를 기억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야고보서 1장 22-25절을 통해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고(22절),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25절)

기상청은 어제(23일) '2008년 여름철 예보 및 가을철 기후전망'에 대한 브리핑을 갖고 6월은 기온이 평년보다 다소 높고 하순부터 장마전선의 영향을 받겠으며 강수량은 예년과 비슷하고, 7월은 기온의 변동 폭이 크고 강수량은 지역차가 크고, 8월은 대기불안정으로 국지성 집중호우가 내릴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기초가 약한 집이 무너지듯이 시험이 닥치면 신앙이 약한 교인은 낙심하게 됩니다. 제가 신앙 생활하다보니 말이 많은 교인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능력을 받은 교인은 변질되기 쉽더라고요. 그러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변함없더라고요. 우리는 말씀을 듣고 믿음이 자라서 말씀을 실천하여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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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8:16-20 제자로 삼아라.

사랑의 교회 원로목사인 옥한흠 목사님은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을 주제삼아 40년 동안 제자훈련을 시켜 오늘날의 교회를 일구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로 삼아라는 말씀을 11제자에게만 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옥한흠 목사님에게만 주신 것도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국군통수권을 가지고 있듯이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통치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유혹했지만(마4:8)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단호하게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을 거절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과 땅을 다스릴 권세를 받으셨습니다. 하늘과 땅을 다스릴 권세는 사탄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시편 2편 7절에서 9절까지를 통해 메시야에게 통치권을 주시겠다고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는 열두 제자를 파송하시며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당부하셨습니다.(마10:5-7) 예수님은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나서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같은 문화권에 사는 유대인에게도 전도도 하고 다른 문화권에 사는 이방인에게도 선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도행전 1장 8절을 통해 구체적인 선교 방법까지 제시해 주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예수님은 강에 돌을 던지면 떨어진 자리부터 파장이 번져나가듯이 지금 있는 자리서부터 시작하여 지구촌 전체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로 삼기 위해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만히 있어서는 제자를 삼을 수 없습니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제자를 삼기 위해 기도로 구하고, 대상자를 찾아보고, 예수님을 믿으리라고 두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로 삼기 위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름들이라는 복수형을 사용하지 않고 이름이라는 단수형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지만 한 분으로 연합해 계십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십니다. 예수님 당시 이방인이 유대인이 되려면 세례를 받아야 하듯이 오늘날도 세상 사람이 교인이 되려면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를 받아야 정식 교인이 되고 정식 교인이 돼야 직분도 받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세례는 예수님과의 연합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세례자가 물속으로 들어가듯이 죄의 권세아래 살던 과거는 죽고 물 밖으로 나오듯이 이제부터 예수님과 연합하여 새롭게 살라고 말씀했습니다.(롬6:3-5)

예수님을 제자로 삼기 위해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고향에는 논산훈련소가 있고 이곳 포항에는 해병대 1사단이 있습니다. 청년이 훈련소에 입소한다고 다 군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고된 훈련을 이겨내야 씩씩한 군인이 되듯이 교회에 나와 세례를 받는다고 다 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말씀을 배우고 지켜야 신실한 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으니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여 온전한 신앙인으로 자라가야 하겠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고 당부하시고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동안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부모님도 항상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니 얼마나 든든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말씀은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은 마태복음의 주제입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증거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을 통해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제자로 삼는 동안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다시 한 번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믿고 모든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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