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모른다. 

그 시절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일들이 아주 천천히 스며들어 앞으로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그 모든 일들을 아직 해석할 능력이 없던 나날들. 이미 벌어지고 있는 데도 현실감이 없었던 남의 기억같은 기억들. 아팠는 데 이게 아픈게 맞는지 누구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었던.

*

또렷한 기억은 없는데, 몸에는 그 시절의 감정들이 안 빠진채로 남아 있었나보다.
이 섬세한 영화가 가져다주는 어떤 분위기로 인해, 깊은 수영장에 멋도 모르게 빠져 텀벙대며 코로 귀로 물을 먹는 사람처럼 엄청 다양한 감정들이 마구마구 밀려들어 힘들었다.

시간이 흘러 이론이, 경험이, 언어가, 관계가, 그러니까 이게 무슨일인지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꽤나 쌓였는 데도 여전히 나는 삶에 당한다. 나는 이렇게나 자랐는 데도, 세상 똑똑한 척은 다하는 데도,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현실은 불가해하다. 이해하려 하면 할 수록 이해할 수 없음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어떤 일은 청맹과니처럼 멍하게 지나가게 두다가 잠깐 울 것 같은 순간이 오면 아, 왜 이러지? 돌아보고 겨우 수습하거나 어쩔 수 없이 해석해 보거나. 이것도 살려고 노력하다보니 어찌어찌 생겨난 삶의 기술일 뿐, 대체적으로는 해석이 되지도 않거니와 이해해낸 것 같다 하더라도 후련한 건 아니다. 

그래도 사건에 말과 글을 입히고 나면, 그 순간 만큼은 견딜만해진다.

*

은희를 보면서 20년 전, 소녀시절의 무력감이 많이 생각났다. 
함께 영화를 본 동생은 그때 너무 힘들었다고 지금이 더 낫긴 한 것 같다고, 그런데 지금은 지금 대로 또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고 했다. 나 역시, 실감한다. 내가 커진 만큼 세상도 무거워졌다는 걸. 

20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를 기억할 때도 오늘 처럼 슬퍼서 눈물이 나면 어떡하지? 
아 인생은 원래 이렇게 슬픈건가요, 
아니면 내가 우울증인가요...쿨쩍😿왤케 만날 눈물이...



매일 관계가 무너지고, 어느 날은 다리가 무너지고, 이게 대체 무슨일이야 그럼에도 계속 견디고 사랑하려는 은희를 꼭 안아주고 싶었고, 영지샘 손도 꼭 잡아주고 싶었다. 적고보니 내가 나한테 해주고 싶은 거란걸 알겠다. 무기력한 소녀였던 나를 안아 일으켜주고 싶고, 잃어가면서도 남은게 많아 방향몰라하는 지금 나의 무력한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싶다. 위로와 안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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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0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19-10-10 21:06   좋아요 0 | URL
좋아용❤️ 가대기대
 
프란시스 하
노아 바움백 감독, 미키 섬너 외 출연 / 그린나래미디어 / 201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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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는다. 고작 이 만큼을 살아내려고 그토록을 살아보았던 것에 대해서. 지난 날들의 달리기가 없었더라면, 남루한 오늘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지 여전히 몰랐을 것이다. 


이상을 접는다고 해서 행복과 멀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접는 것은 정말 접는 것이라서 조금 구겨지거나 형태가 달라져도 언제든지 수시로 펼칠 수 있다는 걸, 결국 도달하지 못한 모습으로 우리는 살아갈 거지만 그 모습도 괜찮아, 영화가 말해주었다. 왈칵 눈물을 쏟고 글을 쓴다.
겨우 이 만큼을 살기 위해 얼마나 단단해져왔는 지를 생각하면, 아직 고작 이 만큼인 것이 너무 다행스럽다. 다행스러운 단단함으로 환상없는 남은 삶을 뿌셔뿌셔!하려면 집을 사자! 역시 집을 사야한다!!!! 마지막으로 그레타거윅 사랑해 ❤️ 언니 영원히 내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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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10-02 2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저도 정말 재밌게 그러면서고 가슴 찡하게 봤네요.
프로필에 걸린 매기스 필랜도 느므 재밌게 봤구요. ^^
두 영화 때문에 그레타 거윅을 눈여겨 보게 되었죠. 저도 그녀를 알랴뷰하게 되었다는...ㅋㅋ
요런 영화 혹시 더 알고 있으면 살짝 귀뜸해주셔요~

공쟝쟝 2019-10-02 23:07   좋아요 1 | URL
저는 애껴볼려고 미루다 오늘 봤어요! ‘프란시스 하’ 프리퀄 같은 느낌의 ㅋㅋ 그레타 거윅이 무려 감독인 레이디버드! 랑요, 시골에서 상경해 유학(?)하는 누구라도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브루클린 넘 좋아해요~ ㅠㅠ 그레타거윅 너무 좋아요 ㅠㅠㅠㅠㅠ 흑흑 ㅠㅠㅜㅜㅜㅜㅜㅠㅠㅠ 포장마차에서 꼼장어에 쇠주한잔 찌끌어드리고 싶은 뉴욕 언니..

2019-10-02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19-10-02 23:33   좋아요 0 | URL
넹넹 ㅠ 뭔가 ㅠㅠㅠㅠㅠ마지막에 자막 올라가는 데 폭풍 오열 ㅠㅠㅠ

소피아 2019-10-02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원하고 언니 아이러브유

공쟝쟝 2019-10-02 23:34   좋아요 0 | URL
뉘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집을 사도록 그리고 우리 프란시스가 집을 사도록 하하하하하!!! 응원 감사 합니다!

소피아 2019-10-02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방에선 내집 마련 ok ,서울 내집 마련 maybe . 힘내자구요
 

택배온날 ㅋㅋㅋ! 친구가 문화상품권 줘서 참지 못하고 장바구니 털었다. 

9월치 #내가산책 이라고 쓰고 알라딘 호구인증 이라고 되뇌인다.

#사랑의기술은 20대 후반에 가장 감명적으로 읽은 책인데 중고책으로 갖고 있다가 리커버된 표지가 맘에 들어서 소장욕구 뿜뿜와서 결제, #나,시몬베유는 9월의 페미니즘 책 함께 읽기 선정 책. 이민경씨가 역자여서 넘나 좋아서 겟! 15%정도 읽었다. 하지만 오늘은 26일이다...... 응?

그리고 오늘 구매했는데 오후에 배송된...... (놀랐음.. 빠르다..) 너무 읽고 싶었던 #탈코르셋과 10월의 페미니즘책 보부아르의 #제2의성 무려 상하 두권.... (미래의 내가 읽겠지. 음, 이것은 내가 읽는다기 보다는 내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미션이 읽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지만.. 구래도 꾸역꾸역 읽는 나님 장해!)

실은 요즘 기동성 때문에 종이책은 거의 못보고 크레마 사운드로 전자책을 엄청 읽고 있다. 
그리고 적응이 되어버렸다!!!

차피 집이 좁아 책둘 곳도 없고, 읽는 게 목적이니 월정액이 더 합리적이라 생각해서.... 
이러다 책 안사는 거 아냐? 라고 돈굳었다🌝 내심 웃었는 데.... 내가 나를 몰랐네.... 문화상품권 받자마자 알라딘 보관함 누르고 싶어 손 근질근질하고, 택배문자 받자마자 퇴근하고 싶어 몸서리 치는 나를 보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씨.. 아직은 종이책이 더 좋아🥀🥀 갈대여뭐여... 아무튼 그렇다.. 
아........ 읽을 것들은 또 이렇게 쌓여가는구나... 그리고 독서의 계절 가을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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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19-09-26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제2의 성을 벌써!!
저도 받을땐 기분좋다가도 제 방 책장에 꾹꾹눌러담은(?) 종이책더미를 보면 어언제 다 읽냐.. 라고 생각이 드는... 것과는 별개로
다시 알라딘 서핑 중인 제자신을 발견합니다. ^^:;;

공쟝쟝 2019-09-26 22:3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북플 읽고 싶은 책보관함에 현재 288권 등록되어 있네요. 바로 여기가 영원한 허영 지옥이구나. ㅋㅋㅋ 알라딘 내인생을 망치러온 나의 구원잨ㅋㅋㅋㅋ

2019-09-26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19-09-27 14:31   좋아요 0 | URL
그렇죠? ㅋㅋ 무려 오만원권이라 신나게 즐겼습니다 ^.^ㅋㅋㅋ 커피쿠폰도 좋아욥 ㅋㅋ!!

제이크 2019-10-05 14: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자는 인질이다 사셨군요 ㅠㅠ 정말 인상깊게 잘 읽은 책이었어요

공쟝쟝 2019-10-07 19:27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정말.. 남아있던 이성애에 대한 환상, 낭만적 연애에 대한 미련 뿌셔뿌셔하게 된 그런 책이 네요 ㅋㅋㅋ!!
 


#여자는인질이다 읽고 있는데 #마지피어시 소설이 나오는 데 너무 보고 싶은 거라... #시간의경계에선여자 빌려오고.. #자기만의방 다읽고 영화 디아워스 봤는 데, 원작도 읽고 싶고 그거 재밌게 읽으려면 #댈러웨이부인 도 안 볼수 없어서 빌려오고... 그렇게 또 도서관털이를... #혼자서본영화 너무 재밌게 읽었는 데, 정희진 머모님이 정성일 평론가 언급하셔서, 아 안볼 수 없자나... #언젠가세상은영화가될것이다 는 중고구매.... 그러니까 읽고 있는 것이 좋을 수록 읽고 싶은 것이 늘어나며 읽는 중인데도 읽을 것들이 줄어들지않는 ... 아, 제가 도착한 이곳은 #독서연옥 뭐 그런 곳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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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와 게으름뱅이에겐 가장 어울리는 여가활동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취미 잘못 선택한 거 같다...ㅋㅋㅋ 일 안해서 더 가난해지고 뭔가 더 게을러지고 있엌ㅋㅋ 실컷 책 읽고 싶은 데 실컷 읽어도 실컷이 아니야...이상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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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읽은 단편소설 집 속 엄마는 세상이 가하는 거대한 고통에 당해 그것을 술로 풀고 아들에게 폭력으로 푼다. 고통은 전염된다. 어린 소년은 자기 자신을 학대한다. 뒤틀린다. 망가진다. 어쩌면 너무 단순한 고통의 순환. 폭력의 연결. 소설의 이야기에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정도가 달라 희미하게 느껴질 뿐.

기실 우린 모두 그렇지 않은가. 나의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폭력을 짜증과 화로 신경질로 - 가깝거나 약한 이에게 행사하면서, 이해해줘 오늘 내가 바깥에서 이런 저런 일이 있었어.


사랑스런 나의 매기는 타인에게 자신의 고통을 튕겨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저 고통에 ‘당’하지도 않는다. 그 고통의 절대량이 적어서는 결코 아닐 거다. (객관적으로 재혼한 남편의 전아이들 까지 케어하며 그를 먹여살리고 자기 아이도 키우며 일까지 하는 인생이 어떻게 사연없고 괴로움 없다고 할 수 있겠나..😱)

자책과 원망은 적당히. 휘적휘적 씩씩한 걸음걸이로. 자신이 선택한 것들에 딸려 오는 것들까지 책임지기. 그가 설령 남편의 전 부인이라도 공정하게 바라보고 존경할 부분은 존경하기. 고통을 고통으로 인식하지 않고 삶이 자아내는 문제로 대하며 가능한 선에서 더 망가지지 않기위해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

쉬운 방식으로 누군가를 탓하며 감정을 해소해 버리거나 (일시적으로 해소해 버리면 문제를 근본적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힘들어도 어린 아이들에게 (자기의 화를 근거로) 분풀이 하지 않는 것도 그녀의 특징.

*

나는 고통과 힘든 것들이 보였는 데, 그녀는 삶을 보는 것 같았다. 고통을 튕겨내거나 고통에 당하는게 아니라 삶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담담히 받아들인 삶에서의 고통이란 조심조심 풀어볼 수 있는 문제로도 대할 수 있구나. (계획대로 풀리지는 않겠지만)

그러던 그녀가 “내가 나로 사는 게 지긋지긋해요”라며 흘리듯 슬쩍 자기를 이야기했을 때, 너무 알 것 같고 너무 이해가 되서 서글펐다. 그럼에도 지긋지긋해 할 정도로 자신을 살아보려 애쓰는 매기에게 반하고 말았다.

‘자기 중심을 지닌 오지라퍼’라는 인종은 아직 지구에 존재하는 가? (당하기만 하는 오지라퍼와 통제욕구를 감춘 오지라퍼만 있는 줄 알았는 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영화에는 존재한다. 이런 영화는 살아가는 데 힘을 준다. 고통에 잡아 먹힌 소설 속 개인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자기 개발서 속의 나도, 도식화되고 분류된 교양서 속의 그들 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고 때때로 춤을 추는 매기를 만나서 다행이다. 고통들을 마구마구 반사해 주고 싶은 어떤 날, 나는 그녀를 떠올리며 척척 걷고 춤 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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죤보통 2019-05-25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기스플랜 최애

공쟝쟝 2019-05-25 12:41   좋아요 0 | URL
나도 넘나 최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