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 쓰는 사람 정지우가 가득 채운 나날들
정지우 지음 / 웨일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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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는 후배님께 생일 선물로 책 한권을 보냈더니, 일일이 코멘트를 달아서 연달아 톡을 보내온다. 이렇게까지? 라고 생각했다가 흐뭇해서 미소짓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내가 알게된 텍스트를 소개해 줄 수 있을 때. 물론 받아들이는 것은 그의 몫일 테지만, 그래도 어떤 문장을 함께 읽고 공명했다는 것은 기쁘다.

학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앎에 대한 내 기준은 일관되게 삶이었다. 삶에 필요한 만큼만 읽자. 앎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자. 자기의 앎을 기준삼아 자신을 갉아먹고 타인을 해치는 사람들이 싫었다. 정확히는 그렇게 될까봐 무서웠다. 알고도 눈감는 게. 아는 것을 권력으로 휘두르는 게.

요즘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어쩐지 살아갈 수록 점점 더 많은 앎이 필요하다 느낀다. 알아서 무엇을 너무 잘 알아서 이용하고 해치기보다, 몰라서 정말로 몰랐기 때문에 저지르는 폭력이 훨씬 많다는 걸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있으니까.

아 그 때, 이걸 알았더라면.
아 그는 이걸 정말 모르는 구나.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다는 느낌과 비례해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때때로 그 고생스러운 공부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부러워질 정도.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출퇴근 시간을 이용한 책읽기 정도가 다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는(출퇴근은 멈출 수 없다ㅋㅋ) 읽기를 통해 코딱지 만큼 알아낸 것이나마 지인들과 이야기 나눠볼 수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부족하다 느끼는 내 독서가 가져다주는 의외의 소소한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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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타고 내리는 것 조차 불가능한 매일의 만원 지하철 안에서 욕이 아닌 단어와 문장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다. 그래도 가끔은 좋아하는 나만의 글쓰기 어플을 켠다. (PEN이라는 앱이다) 정갈한 명조체 글씨로 그즈음에 읽는 책들에 대한 단상이나, 복잡한 생활 속에서 떠오르는 어떤 기억과 마음들을 적을 때, 조금은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직은 언젠가 써봐야지!하는 글감 목록만 빼곡하지만, 어쨌든 나는 글을 쓴다. 이유는 없고. 그냥 쓴다. 대부분은 출퇴근 길에 쓰고, 주말에는 노트에 쓴다. 이 영화 주인공 패터슨 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어젯밤 영화를 보는 내내 난 내가 글쓰는 사람인게 정말 좋아졌다. “저기요! 저도요!” 손이라도 들고 나도 글쓰는 사람이라고 주인공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시는 아니지만, 저도 글을 써요! 가슴에 꼭 끌어안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책과 작가도 있고요, 저만 아는 비밀 노트와 앱도 있답니다. 
당신처럼... 저녁도 있으면 좋겠는 데... 저녁이 없네요(시무룩). 그런데 우리집 고양이는 산책을 안시켜도 되니 그건 내가 당신보다 좋군요!



주인공 패터슨은 도시의 버스운전기사다. 그는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시를 쓴다. 그렇지만 시인은 아니다. 나 역시 그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생활인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두번 틈틈히 글을 쓴다. 그러나 작가는 아니다.

글감을 고르고 단어를 떠올리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순간들. 조금씩 글이 되어가면서, 점점 더 명료해지는 쓰기 전까지는 몰랐던 내 마음 속의 이야기들.(이 영화는 그 과정을 보여준다..)
글을 쓰는 과정이 주는 회복의 시간을 알기에 휴식을 취하듯 쓸 뿐이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만약 내가 쓴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면 무척이나 서운하겠지만, 서운함 그게 다 일 것 같다.
그러고 또 쓰겠지, 뭐.

영화가 끝나고 엔딩자막이 올라가는 데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아 좋다. 정말 좋다. 아무럴 것 없는 이야기. 그게 다인 이야기. 그것 밖에는 없는 이야기. 
그래서 꽉 찬 이야기. 나도 그처럼 아무럴 것 없는 일상을 더 본격적으로 살고 싶다. (저녁, 저녁이 필요해..)


오늘 아침의 지하철은 책은 커녕 손도 꺼낼 수 없을 지경이라서 패터슨을 흉내내며 머릿속으로 이 글을 써보았더란다. 그리고 언제나 처럼 늦은 퇴근길. 아침에 머리로 썼던 글을 폰으로 적어보고 있다. 분명 아까 썼던 건 좀 더 근사했던 것 같은데...
여하튼 집에 다 와버렸네. 이 영화 너무 추천해! 두 번 봐야지! 세 번 봐야지! 네 번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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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5-20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감을 고르고 단어를 떠올리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순간들. 조금씩 글이 되어가면서, 점점 더 명료해지는 쓰기 전까지는 몰랐던 내 마음 속의 이야기들.

이런 식으로 글감을 단어를 문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우리 세계에서는, 작가라고 부르더라구요.
쟝쟝님 작가 맞아요. 작가입니다. 쟝쟝님 작가님~~~

공쟝쟝 2020-05-21 08:10   좋아요 1 | URL
누가봐도 시인인데 시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이 영화속 주인공에게 이입한 이유 중 하나 였어요. 뭔가 작가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순간 글쓰기가 즐거움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 같다는 이상한 마음??? 고맙습니다 단발님! 헤헤

감은빛 2020-05-21 0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매일 아침과 저녁 무료한 출퇴근 시간을 버티는 건 바로 글쓰는 상상이죠. 비록 신춘문예 응모했다가 떨어졌고, 현실에선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일지라도 상상 속에서 내 글은 너무나도 멋진 글이더러구요. 비록 얼마 못 가서 그 현실을 깨닫게 될지라도.

공쟝쟝 2020-05-21 08:14   좋아요 1 | URL
세상에서 제일 좋은 글은 바로 상상속의 내가 쓴 글...!! 공감하셨군요 ㅋㅋ
그래도 글쓰는 (혹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우리는 조금 근사하지 않나요? ㅎㅎㅎ
 

서울에 온 엄마는 오늘 낮 오전 경에 산책을 하시던 중, 깻잎만한 크기의 네잎클로버를 발견, 

딱 다섯개 (아빠꺼는 굳이 안찾았다고 합니다)만 찾아서 뜯어왔다고 한다. 
실물이 보고 싶어서 집에 오자마자 어디에 있냐고 했더니... 니 책 #가부장제의창조 에 꼽아놨대.. 
응? 엄마?? (잠시 주춤) 하고 많은 책 중에 왜 하필??ㅋㅋㅋㅋ ㅋㅋㅋㅋ

아무튼, 서재 친구 여러분 행운의 네잎클로바 보고 행운 가져가세요~! 
무려 가부장제 파헤친 책에 낀 클로버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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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0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0-04-20 20:48   좋아요 0 | URL
행운 듬뿍 받으시라요 ㅎㅎ

다락방 2020-04-20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 어머님 너무 센스 만점이세요! 🤗

공쟝쟝 2020-04-21 07:16   좋아요 0 | URL
🥰 요리센스는 백만점! 엄마밥 너무 좋아요 ㅠ

단발머리 2020-04-20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큰 행운을....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가부장제의 창조>에 끼워주시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했으니 이제 깻잎 한 장 행운은 제 꺼임)

공쟝쟝 2020-04-21 07:18   좋아요 0 | URL
가부장제의 창조에 깊숙히 들어간 깻잎(?)이 기꺼이 단발님께로 가 행운이 되겠다고 합미다 ㅋㅋ

북깨비 2020-04-21 0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깻잎만한 네잎클로버가 세상에 어딨어 하면서 내려가는데 진짜 깻잎 🍀 틀림없네요. ㅋㅋㅋㅋㅋㅋ 🤣

공쟝쟝 2020-04-21 07:19   좋아요 1 | URL
그쵸ㅋㅋㅋ 놀랍지 않습니까 ㅋㅋㅋㅋㅋ 클로버 크기만으로도 신기한데 ㅋㅋㅋ 네잎을 다섯개씩이나!!!
 


아유, 깜짝아! 공항동(김포공항 국내선타고 오는 엄마를 기다리며)에서 읽는 중인데 공항동 나와서 깜(짝)놀(람)😅
_

몇년째 나도 강서구와 양천구를 번갈아가며(3번 이사) 살고 있는 데, 익숙한 지명들이 눈에 띄어 반갑다. (그렇지만 별개로 소설 속 사연들은 너무 슬퍼서....) 이 동네는 비행기가 정말 낮게 난다(비행기의 배를 본 적도 몇번 있다). 거대한 소리를 내면서, 곧 땅에 내려 꽂힐 듯, 밤은 밤대로 낮은 낮대로, 무섭고, 시끄럽고, 아무튼 굉장하다. 그리고 의외로 난 이 거대한 비행기의 모습을 보는 게 좋다.

_

황정은 작가님을 좋아한다.
언젠가 그녀가 진행한 팟캐스트에서 (작가님의 차분한 목소리는 나의 워너비) 강서구민임을 언급했을 때, 어쩌면 혹시(!) 생각보다 근처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동네 주민일수도 있어!! 하면서 얼마나 설렜는지. 그 날 이후로 가끔 자주 들르는 곳에 나타나는(?) 작가님을 상상한다. 내가 종종 장을 보곤 하는 시장에서 골똘히 오렌지나 사과 등등을 고심하며 고르는 모습이라던지- 내가 밥먹듯 이용하는 도서관의 성실 이용자일 것 같다(왠지)는 강한 추측과- 산책하신다던데, 지나가다 만나면 어떡하지??? 난 알아볼 수 있을까?? (정작 희미하게 나온 사진 정도로만 얼굴을 알고 있어서 못알아볼 확률 99%) 망상하면서 괜히 뿌듯했던 적도.

_

그러고 보니 오늘 투표하셨을라나, 혹시 저처럼 강서가 아니라 양천으로 옮기셨다면 같은 후보를 찍었을 수도 있겠네요.
하면서.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혼자만 아는) 지연이라는 게...ㅋㅋㅋㅋㅋ

_

그나 저나 소설은.. 흐어..
뭔가 작가님....많이...쎄지신 듯해요.
그래서... 좋아요...ㅠㅠㅠㅠ...
좆나(황정은표 소설욕) 좋아요!
작가님! 작가님 우리 같이 늙어가요!
황정은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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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4-15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수경은 제 고등학교 때 친구 이름인데,,,,너무 오랜만에 보는 이름!!ㅎㅎㅎ
하지만 제 친구였던 (지금은 어찌 지내나도 모르니;;) 서수경은 무척 정적인 아이라 달리는 모습이 상상이 안 가는.ㅎㅎ

공쟝쟝 2020-04-16 00:17   좋아요 0 | URL
이렇게 소설에 현실 소환(대입)하기! 근래에 한국 소설을 읽는 맛인 듯 해요!! 그나저나 현실 서수경씨, 잘, 지내시나요? (아는 사람인양)

라로 2020-04-16 08:46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그나저나 서수경~~~ 우연이라도 소식을 듣고 싶구나!! 잘 지내~~~(왜 공쟝쟝 님 서재에 와서 친구에게 안부를~.ㅎㅎㅎㅎㅎㅎㅎㅎ)

공쟝쟝 2020-04-18 20:0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수경아..ㅋㅋㅋ 저도 같은 이름의 성이 다른 제 친구에게 연락했어요 ㅋㅋㅋ 수경아.... 이 서재에서 세상의 모든 수경들을 불러봅시다!!! ...

감은빛 2020-04-16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도림에서도 비행기 배를 자주 봤어요. 아마 비행기 항로가 신도림을 지나 김포공항을 가도록 정해져있나봐요.

가끔 무료한 주말에는 아이들과 옥상에 올라가 10분 동안 비행기가 몇 대나 지나가는지 세어보기도 했지요.

공쟝쟝 2020-04-18 20:07   좋아요 0 | URL
아이들과 비행기가 사라질때까지 막연히 올려다 보는 고즈넉한 주말의 옥상에서의 시간이 떠올라 미소지어져요. ^^

무식쟁이 2020-04-18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목2동 505번지 B02호..
맵에 찍어서 로드뷰로 주위를 서성였다는.. ^^;;
여기가 어딘지 아실까요? 갑분퀴즈타임 ㅋ
(황작가님 좋아하신다니 반가워서여!! ^____^)

공쟝쟝 2020-04-19 12:38   좋아요 0 | URL
으악! 그런 방법이!!! 저듀 방금해봣어요!! (비록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저두 ^__________________ ^

무식쟁이 2020-04-19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d와 dd가 잠시나마ㅣ행복하게 살았던 반지하 주소예요. 로드뷰를 보면서 저기에서 남은 d가 그렇게 아팠겠구나 하며 감정이입을... ㅎㅎ;;;

공쟝쟝 2020-04-19 16:18   좋아요 0 | URL
아 네네 ㅋㅋㅋ 알쥬알쥬 ㅋㅋㅋ당연히 ㅋㅋㅋ 현실 주소 검색해볼 생각을 못했고, 막상 찍어보니 제가 아는 동네는 아니었다는 ㅋㅋㅋㅋㅋ d ... 전 dd 갑자기 죽어서 그 뒤로 너무 괴로워서 못읽다가 다시...
 

ㅠㅠㅠ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두근거리는 단호한 문장. 페미니즘과 세계가 입체적으로 이해된다.. 마리아 미즈언니 최고시댜.



여성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생산수단’은 자신의 몸이다. 전 세계적 차원에서 증가하고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은 기본적으로 이 ‘영역’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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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4-01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해요 쟝쟝님... ♡

공쟝쟝 2020-04-01 21:50   좋아요 0 | URL
뭔가가 쓰고 싶어서 근질근질 간질간질한데 그게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으니 책장을 넘기겠사와요!

비연 2020-04-01 0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의 후반부로 얼렁 가서 함께 두근거리고 싶은 비연.. 마리아 미즈.. 대단한 사람인 듯.

공쟝쟝 2020-04-01 21:49   좋아요 0 | URL
서둘러요 4월 1일 ㅋㅋㅋ !! (전 두장 여전히 남아있어요.. 속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