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김은주 지음 / 봄알람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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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타자와 괴물을 몰아낸 기반에 뿌리 내린 철학에서, 여성은 타자다. 타자로서의 여성은 자신의 입말이 아니라, 자기를 탄압하고 옥죄는 언어로 사유와 철학을 시작한다. 여성을 타자로 규정한 철학 안에서 철학적 사유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얼어붙고 어두운 시기에,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불안정한 공간에서 온 힘을 다해 힘겹게 머무는 일이다.”

“(12) 이 책에서 소개하는 한나 아렌트, 가야트리 스피박, 주디스 버틀러, 도나J헤러웨이, 시몬 베유, 쥘리아 크리스테바 여섯 명의 여성 사상가이자 철학자는 주로 20세기에 활동하면서 근대 주체를 비판하고 근대 이후를 모색했다. 이들은 타자와 소수자의 문제를 철학적 문제로 성찰하고, 타자를 동일성의 범주로 판단해버리지 않고, ‘즉시 이해가능하지 않은’ 겸손한 지평에서 타자와 맞닿았다. 말을 길어 올려 새로운 사유를 끌어낸 그들로부터 알게 된 것은, 동일자로 호명되어온 인간이 실은 이방인이며, 타자라는 사실이다.
이 책은 여성철학자들을 단일한 혈통의 계보로 묶기보다는, 이들이 각각의 위치에서 벌인 치열한 사유와 아직 쓰이지 않은 삶에 대한 전망을 축으로 엮었다. 확실히, 사유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살기 위한, 삶을 계속하기 위한, 함께 존재하기 위한 깊은 열정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오랫동안 홀로 생각해온 여자들과 이제는 같이, 문턱 너머 저편으로 건너가고 싶은 갈망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존재하려는 열정이 그녀의 몸에 아로새겨져 있다. 우리가 서로를 발견할 때까진,우리는 혼자일 수밖에 없다(에이드리언 리치).’”


까지 책정리를 했는 데, 혼술에 취해서 뭔가 더 이상 책을 정리할 수가 없다.


괴물과 잠을 자기에는 너무 쫄보고(생각하기가 싫어요), 그러나 그게 궁금하긴 하니까 괴물이랑 잔다는 소문을 듣고 영화 쉐이프 오브 워터를 보고 실망한....(응?) 나로서는, 제목부터 넘나리 매력적인 책이었지만, 여기에 나오는 그녀들을 다 모르는 거라... 그래서 내가 읽는 책 중에서 나오면 한편 씩 독파해야지! 마음먹고 읽기를 어언 2년(참 길었다)... 2018년 4월부터 읽던 책을 이제야 다 읽었다. 쥘리아 크리스테바와 도나J해러웨이를 도통 어느 텍스트에서도 만나기 힘들었는 데... 다행스럽게도 페미니즘-교차하는 관점들 에서 다들 등장해주셨다.

연휴의 막날이라 안취하기 싫은 데, 한 줄이라도 써야할 것 같아서. 
흩어져가는 정신을 붙잡으며 한줄 쓴다.

나는 언제나 처럼 아마 내일도 후려쳐질거다. 절반은 노동자이기 때문이겠지만 절반은 ‘나이들어가는 여성’ 노동자이기 때문이기도 할거다. 네가 여길 벗어나서, 가봤자 얼마나 좋은 곳이겠어?를 묵음처리한 말들이 펼쳐질 것이고, 때때로 호의를 가장하지만 그래서 더욱 비참해지게 하는 염려의 말들을 들으며, 속에서는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방긋 웃겠지. 씩씩한 척도 할거다, 아마. 매일매일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런 말들을 들으면서, 표정관리와 멘탈관리와 근태관리까지 하면서. 아무리 의식적으로 싹싹 그러모아도 원체 빈약한 내 자존감은 손가락 사이로 줄줄 새어나갈거다.

술을 (적당히)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쓰거나, 대화를 하거나, 운동장 트랙을 달리거나.... . 깎여나가는 것 만큼의 자기애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지친채로 악착같이, 애써하다가, 눈에 실핏줄이 터지고, 위장에 구멍이나고(여기까진 슬픈 실화), 쌍코피가 줄줄 흐를 수도 있다.

*

여성이 자아를 축소하고 겸손해지길 독려하는 사회에서 기실 내가 배워왔고 익숙한 것은- [겉으로] 일은 완벽하고 빈틈없이 쨍쨍 잘하면서도, 공은 티나게 티내지 않고 그래도 은근히 드러내면서도, 와중에 겸손해야 하고 또 그게 너무 내숭떠는 것처럼 보여선 안되는. [속으로] 사심없는 헌신인 양 애쓰면서도 은근히 나를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응큼하고 모순적인 것들. 분열적이고 때로는 징그럽기도 한.

생각해보면 이미 이렇게 만들어진 세계에서 미치지 않고 적응하려면(변혁하는 방법도 있지만 진즉 투항했다), 역시 자기혐오나 자기연민에 빠지는 게 더 수월하고, 적당한 수준에서 자기비하와 자조좀 섞어 투덜거리는 게 그나마 건강하다는 생각이다. 또 그런 모습이 - 적어도 자기애가 막 만땅에 차있는 것보다는 덜 이질적일 수도 있겠다 싶다. 

잘 정제된 자기혐오나 잘 포장된 자기연민을 난 좋아한다. 타인을 미워하는 것보다 나를 미워하는 게 난 익숙한 데, 그거 마저 이쁘게 포장하는 정성스러움이 느껴지면, 기분이 좋크든요. 유머러스한 고오급 자기혐오.

*

오늘 모순에 대한 지적을 희열로 받아들였다는 어느 페미니즘 철학자를 읽으면서. 한발짝 더 내딛기로 했다. 나를 망치지 않겠다(는 소극적 자세)에서 한 걸음 더. 개소리 하지마, 나는 더 건강해질 거고, 아주 아주 잘살아버릴거다. 그리고 이미 충분히, 당신 보다 잘 살고 있다.!!! 감히 너따위가 걱정해줄 나님이 아니시란 말이다!! (아니... 이걸 인제 깨닫다니 ㅠㅠㅠㅠㅠㅠㅠ 오 나여, 가스라이팅에 취약한 쪼렙이여..) 으하하하하! 언젠가 곰곰히 생각해서 적어볼 기회가 있다면 써보고 싶다. 

나는 나를 긍정하고 나를 사랑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신보다 잘 살아버리겠다고 마음먹는 것이 
어째서
자기혐오나 자기연민보다 더 어려웠는 지.

*


자야겠다. 내일은 여섯시에 일어날거다.
생각하는 (한국) 여자는 고양이와 함께 잠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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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는 블레이드 러너를 1983년~2017년 것 까지 쭉 (중간중간 프리퀄 단편들까지 전부다)정주행했다. 미래를 다루는 영화를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비주얼적으로 보는 즐거움이 있는 데다, 내용적으로도 생각할 것들이 많으니까. 대부분 영화들은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그래야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넘치긴 하지. 리들리 스콧의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83년판 블레이드 러너도 좋았지만(기억에 진하게 남는 것은 역쉬 룻거 하우어의 연기였다), 드니 빌뇌브가 감독한 2049가 던지는 질문들이 더 흥미로웠다. 영화에 대해서 쉼 없이 수다 떨고 싶지만, 오늘 쓰고 싶은 글은 그게 아니고...















1983년에 그리는 2019년의 모습, 2017년에 그리는 2049년의 모습. 어떤 것은 바뀌고 어떤 것은 그대로이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흥미로운 소재는 레플리칸트(안드로이드 인간)인데, 두 영화 모두 남성형 레플리칸트는 전쟁용, 노동용으로 쓰이고 여성형 레플리칸트는 전투용으로도 개발되지만 대부분 성판매용으로 생산되는 모양새다. 그러니까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존재하고 우주의 식민지가 개척되는 된다하여도, 계급이 그대로고 차별(인간-레플리칸트)도 그대로인 미래의 인류는..... 당연히(!) 기어코(!) 성판매용 복제인간을 만들버린 것이다! 미래에서도 돈이 없는 인간들은 복제 인간을 살 여력이 없으므로, 대신 AI와 사랑을(아, 그것이 사랑인가요? 그래 사랑이라고 넘어갑시다)나눈다....... 여기에 대해서도 할말이 엄청 많지만, 지금은 또 그걸 더 생각할 시간이 없다... 

하여튼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중요한 소재 중 하나는 레플리칸트 안에서의 ‘재생산(출산)’문제였으니... 아, 재생산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미래의 인류가 또 다른 인류인 레플리칸트를 박해하고 혐오하고 차별할 수 있는 근거이며, 레플리칸드들이 바라마지 않는 기적인 것이며, 현실에서는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엄청나게 논쟁한 그것이었고, 오늘날 저출생이라는 전사회적 문제인 것일 지니....


 “(92-96)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여성들이 교육적·법적·정치적 평등을 얼마나 획득하든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공적 산업에 투입되든지 간에 자연 재생산이 규칙으로 남아있고 인공적인 또는 보조적인 재생산이 예외로 남는 한, 여성들에게 근본적인 것은 결코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출산의 기쁨은 가부장적인 신화다... 더군다나 자연 재생산은 더 많은 악의 근원이고, 특히 인간들 사이에 적개심과 질투의 감정들을 야기하는 소유욕이라는 악덕의 근원이라고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말했다... 그녀는 소유욕이라는 악덕, 즉 한 아이가 자신의 자궁 혹은 정자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 아이를 다른 아이들보다 선호하는 것은 만일 우리가 구분적 위계질서를 종식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극복해야할 것이라고 추론했다. 

마지 피어시는 그녀의 공상과학소설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에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마지막 주장을 발전시켜 나갔다. 마지 피어시는 급진주의 문화 페미니스트였지만, 여성이 통제하는 방식으로 행해진다면 인공 재생산이 여성과 사회에 꽤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여성들이 출산의 힘에 대한 독점을 포기한 결과로 본래의 힘과 관계에 대한 패러다임이 파괴되었고, 마타포이셋 주민은 모두 자신들이 선악, 고저, 강약, 그리고 특히 지배-종속의 위계질서적 개념들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재구성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 피어시의 유토피아가 마르크스주의적 유토피아보다 더 급진적인 이유는, 경제적 단위로서의 가정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단위로서의 가정도 제거되기 때문이다. 개인은 사유 재산도 사적인 자녀도 소유하지 않는다.


그렇다. 난 파이어스톤이 명쾌해서 좋다.
재생산이여, 소유욕이라는 악덕이여. 


2049에서 레플리칸트인 주인공 K(는 남성형이다)에게 돌봄과 보살핌, 애정을 제공하는 것은 홀로그램 AI인데, 이 인공지능 홀로그램은 대량생산 되고 판매되고 있다. 상품의 이름은 JOY인데, 고객님의 취향에 맞추어서 옷을 갈아입긴 하지만 광고는 헐벗은 채인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한다. K는 진심으로 조이를 좋아한다. 케이에게 접근하는 성판매 레플리칸트인 마리에트(꺅!! 이 역할은 우리의 맥켄지 데이비스다)도 당연 여성형이다. 그러타... 페미니즘이 없는 미래의 SF영화의 설정은 이러하였다. (복제인간과 AI마저도 여성의 성은 착취 당한다..) 

우리가 그리는 미래는 우리가 행하고 있는 현재의 반영일 수 밖에 없으니, 이렇게 그릴 수 밖에 없으리란 걸 안다. (난 그래서 터미네이터 다크페이트가 너무 좋다... 흑흑...!!!)

그렇다면 페미니즘이 있는 미래는 어떨까.

페미니스트들이 쓴 미래(혹은 과거)와 관련된 소설들을 몇 편 읽긴 했었다. 시녀이야기, 허랜드, 읽다 말긴 했지만 이갈리아의 딸들 등등. 그와 궤가 조금 달랐던 페미니즘 소설에 책에 언급된 ‘시간의 경계에선 여자’가 있었다. 유토피아인데 조금 더 페미니즘적으로 구체화되었다고나 할까. 

1970년대 가난한 이혼녀인 코니는 정신병동안 갇혀서 2137년에서 신호를 보내는 루시엔테(미래의 인류)와 접속한다. 코니가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도 흥미롭지만, 미래인인 루시엔테가 되묻는 현재에 대한 질문들도 되게 재밌다. 이를테면

“(1권 95) 루시엔테는 극도로 당황한 표정이었다. ... ‘음 당신들이 고기를 엄청나게 많이 먹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사람을 팔아서 먹고 사는 게 일반적이었나요? 아니면 혹시 그게 노예제도예요? 당신 시대쯤엔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루시엔테는 성매매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게 노예제냐고 물어본다...
흑....

“(95) 아. 섹스와 관련된 것이군요. 성매매? 책에서도 봤고 가족을 먹여살리려고 몸을 파는 사람에 대한 드라마도 본 적 있어요!”

아, 성매매를 역사 책으로 배운 미래인이여...
미래인들의 사랑에 소유욕은 없다. 그 까닭은.

“(164) 그건 여성들이 오랫동안 추진해 온 개혁의 결과였어요. 오랜 계급제도를 전부무너뜨릴 때였죠. 우리가 누렸던 유일한 권력이지만 마침내 역시나 포기해야 할 게 남아 있었어요. 그 대신 누구에게도 더 큰 권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죠. 그건 바로 생산의 원천인 출산의 권력이었어요. 생물학적으로 속박되어 있는 한 우리는 절대로 동등해 질 수 없어요. 그리고 남성들도 결코 다정하게 사랑을 베푸는 인간으로 교화될 리 없고요. 그래서 우린 누구나 어머니가 될 수 있게 하기로 했어요. 아이들은 전부 어머니가 셋이예요. 지나치게 긴밀한 유대감을 깨뜨리기 위해서죠.”

미래의 여성들은 출산의 권력을 포기했다. 그리고 ‘소유하지 않는 모성’을 정립했다.(참고로 미래세계에서 이 모성은 생물학적 남성들도 가지고 있다. 성의 구별 자체가 무의미한 것 같기도 하지만... )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코니는 묻는다. 아이에게 젖을 물려본 적 없고 출산의 고통을 겪지 않고, 모성을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미래인들이 역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코니는 자신이 때렸던 딸을 생각한다. 

“(165) 앤젤리나, 나같은 어머니가 셋이었다면, ... 너는 이미 죽었겠지.”

울컥!!
......
여러모로 할 말이 없어지는 장면이어서..
밑줄을 그어놨었다...


또 미래인들은 아래와 같이 지낸다.

“(2권 35) 우리는 자기방어 훈련을 받아요. 서로를 존중하는 훈련도 받고요. 기록을 읽은 적은 있지만 나는 실제 강간 사건에 대해 들어본 적은 없어요. 그건.... 우리가 보기에 특히나 끔찍한 일이에요. 역겨워요. 식인 습성처럼. 현재도 일어나고 과거에도 일어났다는 건 알지만 믿기지 않아요.”

“(107) 우리의 존엄성은 일에서 나오죠. 누구든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거 눈치 못챘어요? 로맨스, 섹스, 출산, 아이, 당신을 구속하는 것들이죠. 하지만 그건 이제 더 이상 여자들의 일이 아니에요. 모든 사람들의 몫이죠.”


성역할이 해체되고, 빈부의 격차도 해소되고, 육아와 출산을 모든 공동체가 함께하며, 가장 사적인 문제가 가장 정치적인 문제가 되는 곳. 아름답기만 할 것 같은 미래의 세상이지만, 이 세상에도 반전은 있고(반전은 누군가 이 소설을 읽을 것 같아서 언급하지 않기로), 무엇보다 미래인들은 이미 우리가 망쳐놓은 지구의 환경을 복원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더란다. 헐.. 너무 그럴듯한 설정이다..... 미래의 인류여, 미안해.. ㅜㅜ 우리가 만들 유토피아는 아무리 그게 유토피아라도 방사능이 있는 유토피아 일거라고 뭔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102) ‘더 갖고 싶다고 바란 적은 없어요?’ ‘전 세계적으로 우리가 좀 더 생산성이 좋아져서 과거의 피해를 복구하는 데 에너지를 덜 쏟아붓게 되면, 꼭 필요하진 않지만 즐겁고 기쁨을 주는 물건들을 생산하는 데 에너지를 더 투입할 거예요. 꼭 그렇게 될 거예요.’”

여기까지는 마지 피어시의 소설이 그리고 있는 페미니즘 유토피아이고, (미래인들이 그리는 재생산에 관한 이야기도 재밌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예술, 사랑, 연애, 노동과 죽음에 대한 태도도 즐겁게 읽었다. 절판된 책이긴 하지만, 구해서 읽어보면 좋을 듯.) 책을 읽는 나는 오오- 하면서 신났더랬다. 아, 그렇구나. 페미니즘이 그리는 미래는 이러하구나! 그 미래 왔으면 참 좋겠다!! 하고.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급진주의 문화페미니스들은 이 아름다운 유토피아가
“(96)오늘날의 여성들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적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남성들이 여성에게 의존하는 유일한 자원을 여성이 포기한다면 여성의 억압이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지자 알 히브리는... 인공재생산은 남성들이 번식하기 위해 여성에게 ‘굴욕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게’ 한다. 즉 재생산 기술은 여성을 해방하기는커녕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력을 더욱 공고하게 한다. 재생산 기술은 남성들에게 여성의 참여 없이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이부분 읽는 데........ 급 소름 돋았다.    
아, 그러네? 성적억압이 사라지지 않은 사회에서 재생산마저 여성의 일이 아니라면, 정말 여성은 대상화된 섹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 같다.... 아, 그것 마저도 성노동에 최적화된 레플리칸트가 대신할테니까.... 여성 쓸모가 없고, 그냥 사라지겠구나... 안녕, 여성이여. 우리는 이렇게 멸종할 종족이었구나, ... 굿빠이.... .... 
.......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감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지금에 빗대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면 역시나 디스토피아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뭐 주절 주절 썼는데, 여성들의 성과 재생산에 관해 아직 말해지지 않은 담론들 너무나 많고, 미래를 다 꿰뚫고 있는 것 같은 SF대작 영화들도 페미니즘을 흡수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요즘 계속 나오는 것 같긴 한데, 부족해!! 그리고 납작해!!!!) 

그래서!!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미 치열하게 논쟁하셨던 페미니스트들의 교차하는 관점들을 읽고 있자니.
너무... 굉장해!! 대단해!!!

요지는,
읽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많아서 어떡한담.
행복한 데.......
글쓰는 동안 월요일이 돼서 안행복해졌다.. 금새...


오지않은 미래는 다음에 걱정하고, 일단은 월요일의 노동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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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1 0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21 0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21 0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0-09-21 07:56   좋아요 1 | URL
리들리 스콧, 니가 임신에 대해 뭘알아!! 빼액!! 마지피어시의 소설은 도서관에서 교차대출로 겨우 구해 읽었어요. 소설속 미래인들이 상당히 목가적이고 평온해섴ㅋㅋㅋㅋ 좋았는 데, 그걸 현실 문법에 옮겨 놓으니 살벌한 주장이 되더라고요 ㅋㅋ (출산을 기계로 대체하자) 그것이 선택 가능하려면 ... 먼저 콘돔부터 잘쓰라고 교육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너무 멀리갈 필요 없다, 예, 뭐 그거죠. ㅋㅋ

2020-09-21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0-09-21 0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상 너머의 세계를 우리가 살고 있네요. 맙소사, 2020년이라니... 우리가 기억하는 옛날이나 현재나 미래가, 내가 보기엔 서로 너무 비슷한거 같아요. 어차피 여자는 주인공이 아니고... ㅠㅠ
블레이드 러너부터 마지 피어시 소설까지 새롭게 읽고 갑니다. 읽는 맛의 대가 공쟝쟝님 출근 잘해요!!!!

공쟝쟝 2020-09-21 07:44   좋아요 0 | URL
83년의 인류는 2019년의 인류가 마스크쓰고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며 sns를 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던 듯해요 ㅋㅋㅋㅋㅋ 소유에 기반한 사랑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 더 많은 텍스트가 필요해졌어요. 단발님 추천해주세요~~~ 안토니아스라인 부터 봐야하나요??ㅋㅋㅋ

수이 2020-09-21 0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_ 읽어야지 했는데 쟝쟝님은 주말 쓩쓩 읽고 계셨군요. 오늘은 월요일, 그대는 이미 출근을 하고 있을지도...... 일교차 심한데 따뜻하게 잘 껴입고 나갔을까?! 감기 조심! 읽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다 하면 되는데!! 걱정하지 말자요!

공쟝쟝 2020-09-21 08:00   좋아요 0 | URL
책은 작년 여름에 읽었는 데... 페교관에서 언급되길래.. 주말의 나는...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중국무협영화 두편을 보고ㅋㅋㅋ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열심히 읽다가 ㅋㅋㅋ 장강명 신간 에세이를 읽다가 ㅋㅋㅋ 급 비숲을 보고 밀린 문명특급을 보고ㅋㅋㅋㅋ 아침에 출근하려고 거울보니 눈알에 핏줄이 터져있었다..? ㅠㅠ (tmi 대방출ㅋㅋㅋ) 아 오늘부터 추석까지... 손꼽아..기다립니다...

비연 2020-09-21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조용히 열심히 읽고 계시는군요. 오늘 출근도 홧팅..

공쟝쟝 2020-09-21 10:51   좋아요 0 | URL
출근해서 댓글 달기 시전중. 오늘부터 진짜 열심히 읽을거예욘.

다락방 2020-09-21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레이드 러너가 저런 거였어요? 뱀파이어 나오는 거 아니었어요? @.@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는 우리가 함께 읽은 책 [여자는 인질이다]에도 언급되잖아요. 저는 sf 잘 못읽어서 읽어야지, 생각하면서도 미뤄뒀는데, 오늘 쟝님 페이퍼 읽으니 역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쟝님이 말한것처럼 정말 읽을 책이 많아요!! 언제 다 읽죠?

아무튼 남은 부분도 열심히 읽고 써요, 쟝님. 화이팅!

공쟝쟝 2020-09-21 10:58   좋아요 0 | URL
블레이드 러너..... 그러고 보니 이름만 봐서는 ㅋㅋㅋ 그런느낌이댜ㅋ 저는 공각기동대 이런거 좋아해서, 블레이드러너도 재밌었어요. 사실 2049를 제대로 보고 싶어 앞시리즈 부득불 보긴 했지만,,,, 의외로 재미써서 책도 읽어볼까 싶음...

맞아요, 시간의~는 여자는 인질이다 보면서 함께 읽었었어요. (아, 옛날이여. 왤케 까마득하게 느껴지죠?) 책을 읽다보면 점점 더 읽고 싶어져서 큰일이예요... ㅜㅜ 근데 또 너무 행복하고. 저 어제 깔깔거리면서(아는 부분 나올때마다 너무좋아서) 교차하는 페미니즘 읽다가.. 밤되서 놀랐잖아여..... 독서 행복해..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캐슬린 배리 지음, 정금나.김은정 옮김 / 삼인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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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앞부분에 연필로 밑줄을 너무 많이 그어서, 더 강조되는 부분은 형광펜으로 그어야지, 하며 두가지 펜으로 책을 읽다 101페이지에서는 형광펜도 모자라 별표치고 ‘아니다 그냥 형광색 물에 통째로 페이지를 담그는게 좋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캐슬린 배리의 관점에 따르면 한국은 ‘섹슈얼리티의 매춘화’가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거진 완성된 나라이지 않는가 하고.

베이글녀, 꿀벅지. 미디어에서 연예인의 특정 신체부위만을 따로떼어 이름 붙이는 것이 진심으로 칭찬이던 대략 10여년 전,(말라야하는 데 특정부분은 통통해야한다니, 무슨 소리없는 아우성도 아니고. 살을 빼라는 거여 말라는 거여 하나만 했어도 문제지만 그 두개를 다 하고 쳐자빠져있던 여혐의 시대...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화나가나서 말잇못....) 나는 20대였다.

당시 한국의 젊은 여성에게 꼬리뼈 처럼 따라다니는 말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된장녀’. 하필 그시기에 20대였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했던가. 머리가 비어보여서도 안되지만 남자를 이겨먹을 정도로 똑똑해서는 안되었고, 명품백은 커녕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것도 눈치가 보였으며, 혹시라도 남자한테 얻어먹으면 큰일이 났다고 한다... 더치안하면 된장녀....되기 십상..(응?) “난 너한테 얻어먹지도 않고, 데이트 했어, 그러니까 난 개념녀지^^??” 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때 남자들에게 마냥 얻어먹는 것이 불편했던(밥을 사주겠다고 하면, 커피라도 꼭 사야 속이편했던...)맥락에 뒤에는 혹시 된장녀처럼 보일까봐라는 자기검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웩......) 여하튼 이 환장할 멸칭에 대해 곰곰히 곱씹을 수록 화가난다.

‘모든 여성은 (사고팔 수 있는) 섹스’라는 관념이 기저에 깔리지 않고선 공감대를 사거나 유포가 될리가 없는 말아닌가.. 된장녀가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돈이 많이 드는)쓸데 없이 비싼 여성이라면, 적정한 가격의(소위 가성비가 좋은) 여성이 ‘개념녀’였던 거다. 환장하겠는 게, 개념녀가 된장녀보다 좋은 게 아닌데도 나는 된장녀이고 싶지 않아서 개념녀인 척 했던 거..... 팔 생각이 없었는 데, 이미 가격표 붙여서 팔리고 있었던 거.. 온 세계가 가부장제의 매트릭스였어......

싸고 비싼 것- 값을 매기는 건-은 누구의 기준으로 정해지는가? 남자다. 성을 사는 것은 누구인가? 역시 남자다. 된장녀라는 말은 대체 누가 만든 걸까. 당연 남자일테다. 처음에 맞아맞아 하며 공감하며 이 용어를 사용했을 사람들? 다 남자였겠지. 그 때 그 남들은 여자를 대체 뭘로 보고 있었던 걸까.
뭐 어렵지는 않다. “여자란? 답: 섹스해주는 기구(p.39)” 였겠지.

그런데 그때 우리는 왜 그 말에 그렇게 무력하게 당했던 걸까.
도리어 자신을 검열하며 때로는 먼저 나서서 나는 된장녀가 아님을 항변했던 걸까.

...

미러링이 없었다면, 메갈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p. 101)
“다른 방식은 있을 수가 없다. ... 매춘을 마치 성착취가 아닌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곧 성적 비인간화가 본래의 인간 조건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
매춘은 일탈로 여겨져왔지만 섹슈얼리티의 매춘화를 통해 그 일탈적 성격을 잃어가고 있는데, 왜냐하면 매춘이 점점 더 정상적인 섹스 경험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춘 여성이 자신의 행위를 노동이라고 변호하고 장려할 때 그것은 단순히 자신에게 부과된 일탈의 딱지를 중화시키겠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돈을 위한 섹스의 교환을 그저 단지 섹스로만 취급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섹스’라는 명명하에 포괄되는 모든 형태의 대상화와 비인간화가 동일하게 받아들여지게 됨으로써 섹슈얼리티의 매춘화가 완성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매매춘의 섹스가 정상화되는 방식이다.
포르노그라피의 정상화와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속에서, 섹스의 경험은 성적 고양이 있었는지 아니면 성적 비하가 있었는지를 결정하는 것과 전혀 관련이 없어진다. 매매춘의 정상화는 자유 의지 또는 동의만이 강조되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산물이다.
많은 비매춘 여성들이 매매춘 옹호를 지지하는 이유를 섹슈얼리티의 매춘화에서 찾을 수 있다. 비매춘 여성들의 매매춘 옹호에는 매매춘의 낙인을 없애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비매춘 여성들이 매매춘을 옹호하는 것은 스스로와 매춘 여성 사이의 구분을 더욱 강조할 필요성에서 오는데, 특히 섹슈얼리티의 매춘화로 인해 성행위 자체에서는 두 집단을 구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매매춘이라는 것이 ‘정상적인’ 섹슈얼리티가 단지 매매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라면, 비매춘 여성들이 자신이 창녀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특정 여성들을 매춘부라고 부르건 ‘성 노동자’라고 부르건 간에 어쨌든 그들을 분리된 범주로 묶어두는 것이다. 비매춘 여성들의 매매춘 옹호를 통해서, 비매춘 여성들과 매춘 여성들 사이의 분리가 유지된다. ‘성인들간에 동의한 섹스’(의 매매ㅡ옮긴이)를 하는 여성들이 ‘성 노동자’라고 불린다는 것을 앎으로써, 일반 여성들은 자신들이 결혼, 데이트, 익명적 관계, 무불 성관계에서 똑같은 섹스를 하더라도 창녀로 보이지 않을 수 있도록 보호되는 것을 안다.”


성매매는 많은 여성문제 중에, 나와 가까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지난 날을 반성한다.
그것은 정말로 내 문제이며 본질에 가까운 문제였다.

˝나는 된장녀가 아니야 = 나는 창녀가 아니야˝
매춘과 매춘이 아닌 것의 분리를 통해 여성은 자유로워지는 가?
아니다. 아니었다.
성매매 합법화/불법화/양성화? 매춘은 동의에 의한 섹스라고?
틀렸다. 전제가 틀린 질문이다.
질문을 돌려주자.
성을 구매하는 자는 누구인가.
성은 구매될 수 있는 것인가?

이 책은 아주 중요한 통찰을 준다.
매매춘 자체가 비인간화 된 섹슈얼리티의 결과물이라는 것!! 그것은 동시에 모든 성착취(‘성착취란, 여성을 섹스로 환원시킴으로써 그들을 대상화하는 것이다’- p.17)의 토대이자 조건이 된다는 것. 그것이 많든 적든, 보이든 보이지 않든, 매매춘이 존재하는 한 여성의 억압(혹은 가부장제)은 존속하리라는 것. 슬프게도 한국사회는 끝없이 섹슈얼리티를 매춘화하고 있다는 것.
매춘(혹은 성상품화)이 정상인 상태로 보일만큼.

성매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라 치면 근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문제라고들 한다. 가져다 대는 이유는 각양각색이지만, 의지의 문제겠지. 얼마전까지 나에게 있어 실현 불가능한 것 처럼 여겨졌던 것은 온국민이 다 함께 마스크를 차는 것이었다. + 그걸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나 역시 매우 불편했고 불편하지만, 뭐 바이러스가 그만큼 퍼지기 쉽고 유해하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너무 신기하게도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조심하는 오늘들을 보며 따지고보면 불가능한 것도 없지 싶기도 하다.

사실 매매춘이야 말로 바이러스 못지 않게 해로운 폭력의 온상 같은 데, 법으로 딱 정리해버리면 안되나요? 이 책에 나오는 스웨덴 모델로다가. 현!실!적으로 온 국민이 모두 매일 마스크 쓰는 것 보다는 쉬운 것 같은 데... 아, 성구매자는 그게 안되나? 설마 마스크 쓰는 것보다 힘들라고? 모든 남성이 성매매를 하는 건 아닐 테니, 일부! 만 불편해도 참으면 되는 거잖여. 뭐? 그런데 진짜 경제가 마비될 수가 있다고? 설마? 코로나 보다 더?
에이, 그거 참 한남같은 소리다, 그쵸?


"(p.46) 사회의 성적 탐닉 상태는 남성지배의 정치적인 성과이다. 성차별주의와 함께 지배는 성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 여성의 몸에 전달된다. 섹스가 대상화되고 인간이 단지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매개물로 환원될 때 성적지배는 몸 안으로 들어가고 그 안에서 뿌리를 내린다. 이것이 매매춘의 기본 토대이고 섹슈얼리티의 매춘화를 통해 매매춘이 정상화되는 과정이다." - P46

"(p.93) 성 착취를 촉진시키는 사람들이 매춘과 포르노에 참여하는 여성의 선택을 강조하는 한편, 다른 한편에서는 성폭력에 대항하는 캠페인이 여성의 동의를 중요한 이슈로 다루고 있다. 이 두 접근은 모두 남성의 성적 권력을 가부장적 억압의 체계, 즉 계급으로서의 남성들이 여성을 섹스 계급으로 환원하여 종속시키고 있는 체계로부터 분리시킨다." - P93

"(p.120)성 착취는 억압이다. 이 말은 성 착취가 피억압자 집단 안에서 수용되고 심지어 장려될 것임을 뜻한다. 억압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형태의 억압이 유지되는 방식이다. ...... 그리하여 나는 동의의 문제나 강제의 개념은 법적 차원에서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 매매춘을 강간으로부터 잘못 분리시킨다고 본다. ... 여성들이 증명해야만 하는 것은 그들이 침해당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이 창녀가 아니라는 사실, 즉 그들은 섹스를 위한 몸뚱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성폭력에 반대하는 운동들이 점점 더 "싫다는 말은 싫다는 것"(No means No)이라는 캠페인 수준으로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는데, 이들은 강간이 섹스가 아니라 폭력이라고 함으로써 마치 이 두가지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 처럼 취급하고 있다. 해방 투쟁은 이러한 얕은 수준의 요구에서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성적 권력에 전면적으로 대결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여성들이 우리의 온전한 해방을 쟁취하겠다는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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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8-24 06: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이 책과 멸칭에 대해 쓸까 생각하다 말았는데 쟝님이 써주셨네요. 김치녀, 된장녀가 과거의 여성멸칭이었다면 현재는 terf 가 여성멸칭이죠. 트랜스 젠더에게 위협을 가하는 성별은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남성’ 을 칭하는 단어는 없으며 누구도 사용하지 않지요. 세상은 여자를 욕하기 위한 단어를 참 잘도 만들어내요. 그 많은 남자 성착취자나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요. 김치녀를 만들어서 김치녀가 아닌 나, 를 증명하는 세상속으로 풍덩 빠졌는데 이제는 터프가 아닌 이렇게 피씨한 나, 를 증명하기 위해 또 세상은 여자들을 자연스럽게 혐오하고 분류합니다. 멸칭에 속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건 멸칭에 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여성주의 공부하면서 깨달은 건, 무엇을 욕으로 쓰느냐가 그 사람을 말해준다는 겁니다.

쟝님이 이렇게 완독하고 여유롭게 리뷰까지 써주니 저는 가슴이 뿌듯함으로 가득 차옯니다. 보통 폰으로 댓글 안다는데 기쁜 마음에 달아요. 저는 출근길입니다. 글 고맙고 우리는 9월 도서로 만나요!

2020-08-24 0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24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24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0-08-25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번 읽어도 좋은 글.....
메갈이 아니었다면, 미러링이 없었다면.... 정희진샘과 똑같은 질문, 똑같은 답에 다시 한 번 박수를...
회사를 계속 다닐 수 밖에 없고, 다녀야 한다면, 우리 쟝쟝님 글 쓸 시간을 어떻게 보존할것인지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와 고민 필요함

공쟝쟝 2020-08-25 19:59   좋아요 1 | URL
저의 읽기와 쓰기는 일상의 고통에서 나옵니다. 흐아아. 고통스러버...
 


몇년 전 아팠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내게 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전까지 몸은 옷처럼 입는 것, 혹은 걸치는 것이라 여겼다. 반대였다. 원래 먼저 내 몸이 있고, 마치 거기에 기생하듯 그냥 딱 달라붙어있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그게 사실은 진짜 ‘나’였던 거다. 쉽게 나을 것 같지 않던 아픈 몸은 내가 얼마나 내 존재를 잊고 지냈는 지의 반증 같았다. 몸에게 미안했었다.

*

이별 후에 느꼈던 해방감은 역설적으로 사랑이라는 관계에서 내가 얼마나 습관적으로 자아를 축소시키곤 했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앞으로는 조금도 손해보지 않겠어, 단단히 맘먹었다. 그러나 이리저리 요목조목 다 따지려고 들어도 결국에는 뭐든 퍼주고 있을 나라는 인간의 생겨먹은 기본값을 알아서. 전략을 바꿨다. 방파제를 세우자. 뚝딱뚝딱. 더 쓸려가면 안된다. 이젠 쓸려갈 것도 없다....

*

가까이 있는 자매들이 비명지르지 않았더라면, 버럭버럭 화내지 않았더라면, 나는 돌아보지 않았을 거다. 방긋방긋 사람 좋은 척, 좋은게 좋은 척, 이해심 넓고 배려하는 척 하며- 평판관리 힘썼겠지. 다행인건 내가 당하는 것이 폭력인지는 몰라도, 남이 아프다고 하면 그건 못참아 하는 사람이 또 나인거라. 나를 잡아챘던 울음들, 비명들, 날선 분노들. 어떻게 해줘야 하나 꿀먹은 벙어리처럼 굴다가, 할 수 있는 건 듣는 것 밖에 없어 듣다가, 들어주고 토닥여주다가 결국 나도 아픈 상태라는 걸, 누구보다 비명지르고 싶어했다는 걸, 알았다. 당연히, 이건 페미니즘 이야기다.


*

결국,
어쨌든.
균열.
정상(이라고 믿었던)의 상태에서 어떤 식으로든 벗어났을 때.
부숴질 때. 금이 갈때. 자잘이 갈라지는 틈 사이로, 침잠해 있던 무언가가 드러날 때. 그때 다시 알게 된 것들. 사실은 잘은 모르고 있었던 것들.
관계든, 건강이든, 사랑이든, 삶이든, 세계든.

다시 인식하기 시작하면, 다른 앎이 시작되면, 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변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도 변한다. 물론 긍정적으로만 변했던 것은 아니다. (이 시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는 별로 없는 것 같기도.....허허...더 살아봐야 알듯.)

그런데, 어떤 균열 없이- 갈라진 틈 없이- 매끈한 상태로 아는 것을 과연 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모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안다고도 할 수 없는 거 아닌가.

대체로 균열 속에서 발견되는 치명적인 앎들은 사는 걸 참 버석거리게 한다. 버석버석 하면서, 쭈뼛쭈뼛 대면서, 당장은 변하지도 변화시키지도 못하면서. 어렵기만 하게.

매끈매끈, 꿀떡꿀떡, 호로록호록, 앎을 삼켜가며 살던 어릴 때가 그립다. 그때는 아프지도 않고 이별도 적어서였던지, 굳이 부숴지는 경험없이도, 내가 알고자 한다면 알아지는 거라 생각했다. 아는 게 안무섭고 배불렀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무엇을 알아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무엇들을 해치거나 착취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걸. 꼭 마리아 미즈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경험적으로 저질러왔단걸...씁쓸...또륵.)

*

알게 되면 싸워야 한다니, 아니 싸우기 시작해야 제대로 알게 된다니...
그게 무려 에코 페미니즘 연구의 방법론이라니..
아, 정말 페미니즘은 너무. 너무. 너무. 치명적이다.
그러나 깨달은 뒤에는 자유를 얻을지니.
그 자유는 또 외롭기도 한 것이라서...
...
읽어.. 말어...? (이러고있다)




여성의 진정한 의식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주는 바가 없다. ‘정상적인‘생활이 파괴되었을 때, 즉 이혼이나 결별 등의 위기가 닥쳤을 때에만 여성이 자신의 진정한 상황에 대해 의식할 기회가 생긴다. 위기에서 실제를 아는 것이다. ... 정상상태가 유지되는 한, 그들은 스스로에게 조차 그 관계가 억압적이거라거나 착취적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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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수다를 떨지 않을 수 없는 주제. 세상에, 나에게 이 절판된 책을 

글쎄나 제본까지 떠서 읽어보라 권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이기에 
글로 남겨 놔야지. 

그런데 서문부터 너무 찰싹 피부에 붙어와서 으음 할말넘많.. 
그래서 결국 아무말도 하지 못하게 될 나를 알지만, 읽어야지.
읽고 느끼고 또 다시 읽는 수 밖에 없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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