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공식 한국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부피에 비해 무척 가볍고, 종이질은 투박하여 편안한 느낌을 준다. 재생 종이인 모양이다. 이 책의 메시지를 반영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오래된 미래'에는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나는 과연 뭘 배우게 되는 것일까. 글쎄, 특별히 뭘 배웠다기보다는 솔직히 이런 저런 씁쓸한 생각들이 들었다. 앞부분을 읽을 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라다크가 관광이다 뭐다 해서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가기 이전, 제 1부 '전통' 읽을 때는 마음 속에 따뜻한 느낌이 차올랐다.

저자는 라다크인들의 얼굴엔 항상 미소를 띠고 있었고, 그토록 험악한 환경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안락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라다크 사람에게 웃음이 많고, 분노나 스트레스가 없는 것은 그들의 가치관과 종교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물론 그러한 것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저자는 점차로 그 사회를 형성하는 외부 구조, 규모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한 구조는 개인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고, 또 그 개인의 신념과 가치관을 강화하며, 가족과 이웃에서부터 다른 마을 사람들과 낯선 사람에 이르기까지 라다크 사람들은 남을 돕는 것이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여기까지가 행복이다. 그 다음은?

그런 라다크가 개발과 관광 개방 따위의 정책에 노출되면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라다크 사람들은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문화를 열등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세대가 그렇다. 또한 교육의 패턴이 바뀌었다. 라다크의 교육은 아이들을 서구화된 도시 환경 속에서 좁은 전문가가 되도록 훈련시키고 있었다. 결국 라다크인들은 점차로 그들의 문화와 자연으로부터 갈라지게 되었다. 현대 교육은 아이들이 자기들의 주위 상황을 거의 보지 못하도록 하는 눈가리개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자원을 사용할 줄 모르고 그들 자신의 세계에서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학교를 마친다. 그들이 받는 교육은 뉴욕 사람들이 받아야 할 교육의 빈약한 변형이다. 젊은이들은 농사를 짓는 부모 세대를 부끄럽게 여기고, 농사가 아닌 도시에 나가 생활을 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불안정한 현금 수입을 위해 자신의 문화와 독립성을 버리게 된다. 이는 곧 삶의 질의 심각한 저하를 의미한다.

지구촌에서 떠받치는 이상적인 이미지에 도달하기 위한다는 것은 자신의 문화와 뿌리를 거부하는 것이며,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거기에 따른 소외는 분노와 원한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오늘날 세계의 많은 폭력이 잔재하고 있음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 모습의 뒤에는 바로 소외가 있다.

라다크보다는 조금 더 산업화된 사회에 사는 우리 또한 상투화된 대중 매체가 주는 이미지의 피해자가 되어 있지만, 현실과 서구적 이상과의 간격이 훨씬 더 넓은 제 3세계에서는 절망적인 느낌이 그만큼 더 강한 것이다.

물론 개발 도상 국가의 사람들 또한 이런 현대화가 종족 간의 적대 관계를 악화시킨다던지 하는 악재로도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진보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이 부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17년 동안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공동체와 땅과의 긴밀한 간계가 물질적인 부나 고급 기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음을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로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은 자연에 기초를 둔 전통적인 사회가 여러 가지 결함과 한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선진 사회보다 더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지속가능한 것이라는 점이다.

고도의 기술 문명을 통해 물질적 풍요를 이루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가? 정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문화적인 생명력과 그것의 다양성이며,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잘 알며, 서로 잘 어울려 사는 것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트린 M의 성생활 - 개정판
카트린 밀레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인터넷으로 카트린 M의 사진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책에는 사진이 나와 있지 않아서 말이다. 자신의 성생활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추호의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하고 세밀하게 이야기하며, 짐짓 담담하기까지한 이 여자의 엄청난 내공을 느끼며, 그 외모가 자뭇 궁금했기 때문이다.

현재 오십대의 이 필자는 전위적인 미술 잡지 <아트 프레스>의 편집장이자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으며, 우리 나라에도 그의 저서가 두 권씩이나 번역되어 나오기도 한, 프랑스의 미술 평론가이다.

이 책에서 느껴지는 담담함이란 그런 것이다. 성을 이야기하지만 하나도 야하지 않은 점 말이다. 이 여자는 수많은 남자들(씻지 않아 지저분한 사람들이나 몸의 어딘가 불편한 사람 등 대상을 가리지 않았고, 상대방이 요구하면 거절하지 않고 다 받아들였다. 무엇보다도 대상을 가리지 않는 것은 이 여자의 성생활에 있어서 원칙 같은 것이었다. 모든 남자들을 아주 공정한 방식으로 대상화 한 것이다.)과 다양한 공간에서 성적 체험을 하였으며 젊은 시절엔 파피루즈(세 사람 이상이 함께하는 성행위)에도 수차례 가담하였다.

그러나 이 글은 읽는 독자로 불안함이나 자극 같은 걸 일으키지 않는다. 이 책은 네 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 공간, 내밀한 공간, 세부 묘사 등이 그것이다. 자신의 성 경험을 이런 형이상학적 카테고리와 묶어 철학적으로 피력하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이 책이 엄청난 성경험을 이야기하는 단순한 외설서로의 전락을 막는 길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처음 출판된 필자의 자국인 프랑스에서도 이 책이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자유주의 정신과 타인에 대한 관용이 허용되는 프랑스에서도조차
도 말이다. 그래도 우리 나라처럼 비디오 사건에 휘말린 연예인들이나, 자신의 성경험을 토로한 모 탤런트처럼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책의 출판에도 불구하고 카트린은 여전히 프랑스에서 미술계의 중책을 맡고 있는 실력 있는 인물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프랑스라는 나라가 멋있는 나라임에는 확실한 것 같다. 자신의 사생활에 그것도 성생활에 철학과 ~주의 부여할 수 있으며, 남의 사생활에 히히덕덕 왈구왈구 하지 않는 관용 정신. 조금은 부러울 따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곳이 멀지 않다
나희덕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못 위의 잠

                                                                              - 나희덕 -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 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나희덕은 대학 시절 혹은 사회 초년 시절 좋아했던 시인이다. 시인이 나이를 먹는건가, 내가 나이를 먹는 건가, 요즘엔 위의 <못 위의 잠>과 같은 후기에 나온 시들이 좋다. 모성 혹은 부성애 적인 시선... 그렇지만, <그곳이 멀지 않다>는 초기 시집으로, 독자 또한 스무살 즈음의 청춘이라면, 울림이 크다.

 

안치환의 노래 중에 <귀뚜라미>라는 노래가 있다.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아직 내 울음소리는 노래가 아니요,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토하는 울음,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소.'라는.

대학 2학년 때 이 노래를 첨 듣고, 이 노래는 나를 위한 송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노래를 달리 옮기면 쥐구멍에도 볕들날 있으니. 조용히 때를 기다려라 라고 옮겨야 할까나. 밟히고 짖눌려 버리기 쉬운 사소한 존재에게 견고하고 단단한 의지를 불어넣는 마력을 나희덕은 갖고 있다.

4년 남짓한 사회 생활은 나에게 여운을 두지 말고, 복종하지도 말며, 곁을 터 주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그 단단한 틈을 밀고 들어오는 시심(詩心)이 있다. 그건 바로 나희덕의 시이다. 그의 이 시집 중, <속리산에서>라는 시는 이 시집 전체의 경향을 드러내 보여 주고 있는 듯하다.

'가파른 비탈만이 /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 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산다는 일은 /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평평한 길은 가도가도 제자리 같았다./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이 남아 있는 나에게 /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 산을 오르고 있지만 / 네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 산 속에 갇힌 시간일거라고,'

삶은 그런 것이다.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고,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천장호에서-
던지는 돌멩이에도 제 속을 보이지 않는 얼어붙은 호수처럼 열정을 갖고 대들기를 반복해 보지만, 얼음장처럼 닫힌 마음이 그러하듯 돌을 아무리 던져도 호수는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시인이 아니, 내(우리)가 삶을 지속시키는 방식은 그렇게 열정과 냉정의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희덕은 시에서 노래한다. 냉정을 열정으로 무화시키는 힘을, 과거의 썩은 물웅덩이처럼 남아 있는 상처는 정리되어 이제 현재의 삶을 파헤쳐 놓지는 않는 것이다. 과거를 단정하게 정리하는 기억, 이것은 바로 열정 속에서도 냉정을 찾는 것이며, 냉정 속에서 열정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또 말한다.
'사는 건 쐐기풀로 열두 벌의 수의를 짜는 일이라고, 그때까지는 침묵해야 한다고, 마술에 걸린 듯 수의를 위해 실을 짜깁는다.-고통에게1-' 이렇게 조용히 시인은 나에게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처럼, 복종함으로 반항에 이르는 길을 풀어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인구달 - 침팬지와 함께한 나의 인생
제인 구달 지음, 박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천성이 악할 리 없다.

 

2001년 작성

 

 

나는 본래 동물을 무서워한다. 날카로운 이빨로 물리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있어서 일까.. 한달 전 동생이 오래도록 집을 비우게 될 사정이 생긴 자기 친구 집의 요크셔테리어를 데려왔다. 등어리는 까만털을 갖고 있고... 얼굴과 다리는 황금색 털을 갖고 있는 요크셔테리어.. 개를 무서워하는 내가 만난지 24시간 만에, 이 강아지의 등어리를 쓰다듬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나의 유심히 내려다보는 눈길을 느끼면 얼른 배를 하늘로 향하게 발다랑 드러누워서, 자기 배를 쓰다듬어 주기를 기다리는 이 녀석.

이 강아지 때문에 애완견에 대한 정보를 찾아 인터넷 싸이트도 뒤져보게 되고, 개샴푸를 사러 길건너 멀리까지 나가 보질 않나, 나의 일상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내 곁을 스치는 강아지들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동물들까지 유심히 보게 되었다. '저 강아지는 나이가 몇 살일까?'에서부터 뭘 좋아하고, 싫어할까?' 하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이 책의 성격을 굳이 구분하여 딱 잘라 말하자면, 청소년을 위한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어떤 연유로 침팬지를 연구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어릴 적에 어떤 소망을 간절히 갖고 있었고,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해 왔던 것들에 대한 얘기들이 쉽고 간결하게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침팬지와 함께 지내는 동안에 제인 구달이라는 한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결혼, 출산, 이혼, 재혼에 대한 인생 역정이 정말 담담한 필치의 술술 읽히는 문체로 그려져 있다.

어릴 적에 그녀가 이웃집의 개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관찰하고 돌보았던 것, 그리고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는 두리틀 박사의 이야기책을 옆에 끼고 살았던 것 등이 그녀가 어른이 되어 침팬지를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며 동물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마음을 갖는 데에 발로를 마련한 것 같다.

제인 구달이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거창한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공포나 불안, 통증, 그리고 행복과 만족을 느낄 줄 안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이 불안에 떨고 통증을 느끼며 죽어가게 되는 걸 원하는가?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제인 구달은 동물과 인간이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을 간절히 바랬던 것이다. 그리고 제인 구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루츠와 슈츠라는 단체를 만들어 환경 운동의 실천을 몸소 보여 주기에 이른다.

제인 구달의 침팬지 연구 방식은 기존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기존에 방식대로 라면, 동물들을 일단 실험실의 철창에 가두고, 단번에 결과를 보기 위해, 급기야 동물에게 약물 투여 혹은 절단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제인 구달은 야생의 상태로 들어가 동물들의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며, 인내심과 사랑을 갖고 그저 관찰하고 동물들에게 도움을 준다. 이런 방식은 연구 업적에 있어서 단번에 어떤 결과물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생태계의 흐름을 파괴하지도 않고, 동물들을 불안에 떨게 하거나 가혹하게 죽이지 않으며, 환경을 오염시키지도 않는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부탁의 말을 남긴다. 환경의 오염을 막고,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거창하거나 힘든 일이 아니라고, 작은 것 하나부터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동물들과 인간들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백과 사전에서.. 6주 된 인간의 태포에 갇힌 태아와 4주 된 태포 안의 여우원숭이 그리고 3주 조금 지난 태포 안의 닭의 모습이 아주 영락없이 구분을 못할 만큼이나 흡사하단 걸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발생 단계에선 비슷하게 생겼던 것들이 별개의 차원에서 자기의 생을 꾸려간다. 그런 인간은 단지 자신이 발생 단계에서 사람의 배에 인간의 모습을 하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지구상의 생물체들에게 너무나 오만하게 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무자비하게 대량으로 산림을 채벌하여 야생 동물들이 오갈 곳 없이 만들어버리거나, 생체 실험으로 동물을 대용하고, 인간들의 호사스런 취미에 부흥하도록, 한낱 사냥감으로 전락시키고 말았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쓰레기가 되는 삶들 - 모더니티와 그 추방자들 What's Up 4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정일준 옮김 / 새물결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6쪽

 

X세대(1970년의 언저리 그러니까 플러스 마이너스 5~6년 출생자들쯤 이지 않을까? )는 바로 직전 세대보다 훨씬 더 극심하게 양극화되었는데, ... 당혹스러울 정도로 쉽게 변하는 사회적 위치, 어두운 전망, 지속적으로 또는 적어도 좀더 오래 자리 잡을 만한 확실한 기회도 없이 근근이 꾸려가는 생활, 살아남기 위해 배우고 익혀야 하는 모호한 규칙들-- 이러한 것들이 모든 이 세대를 무차별로 괴롭히면서 불안감을 조장하고 이 세대의 또는 거의 모든 성원의 자기 확신과 자좀심을 박탈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진입 장벽- 과거만 해도 지금보다는 낮았다-은 점점 더 높아져 대다수가 넘어설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제 품위 있는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 불확실한 기회나마 잡기 위해서는 최소한 고등 교육 학위가 필요하다.(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학위가 순조로운 인생 여정을 보장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학위가 소수의 특권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세상은 또 한 번 도약을 했고ㅡ 그러한 속도를 견디지 못한 승객들은 점점 속도를 높여가는 차량에서 점점 더 많이 떨어져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한편 아직 탑승하지 못한 사람들 중 재빨리 달려가서 따라잡아 올라타는 데 실패하는 사람들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