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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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159쪽   
 

우리가 아름다운 것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우리 인생이 여러 가지 문제로 가장 심각할 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낙담한 순간들은 건축과 예술로 통하는 입구를 활짝 열어준다. 그러한 때에 그 이상적인 특질에 대한 굶주림이 최고조에 이르기 때문이다. 정신이 잘 정돈되어 너저분한 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콘크리트와 나무로 이루어진 하고 텅 빈 공간에 햇빛이 환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 아름다운 것을 구매하려는 것은 사실 그것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갈망을 처리하는 가장 무미건조한 방식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과 자려고 하는 것이 사랑의 감정에 대한 가장 무딘 반응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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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탄생 -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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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음악, 미술, 과학, 수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조성을 빛낸 천재적인 인물들의 발상법을 주제로 삼고 있다. 나 자신이 너무 늦지 않았다면 이 부분을 발현하며 살고 싶은 생각이 크다. 아울러 나이 아이들도 창조적인 부분들을 발현하며 살았으면 싶어서. 

 종교학자 조지프 캠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스스로의 천복을 따르십시오.”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부모와 문화의 명령에 복종하며 지내는 동안 자신이 지닌 사장 좋은 부분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켐벨은 잘 이해하고 있었다. 천복은 스스로의 열정을 말한다. 이는 소명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움직이는 동력이며, 선택이라기보다는 우리에게 주어진 소환장 같은 것이다. 진실로 무언가 창조해본 사람은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 고통은 피할 수 없으나 마침내 이뤄냈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우리에게 혹은 자신에 주어진 천복 혹은 열정의 실체를 잘 알고 싶다. 그리고 늦지 않았다면 개발하고 싶다.

 

 

 

도입에서

 

 

역사 속에서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은 실재와 환상을 결합하기 위해 13가지 생각의 도구들을 이용했다고 <생각의 탄생>에서 읽었다. 이 도구들은 추상화, 패턴인식,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그리고 통합이라고 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회상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철학자로서 작가로서 패배의식을 안고 있는 사람이었단다. 아버지 사후에 울프는 그가 지니고 있었던 불일치, 비평능력과 창작능력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아버지는 분석정신의 경탄할 만한 전범이었지만, 실생활 측면에서는 매우 조야하고 고리타분한 사람이어서 아버지의 내면에는 뛰어난 초상화가와 색분필을 가지고 낙서나 하고 있는 어린애가 동시에 들어 있는 것 같다고 적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받은 교육이 음악, 미술, 연극, 여행 같은 여가활동에 대한 심각한 결핍증을 불러 왔고 그 결과 지적 편중과 좁은 시야를 갖게 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의 딸은 달랐다. 울프는 집에서 종합적인 방법으로 학습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아버지가 읽어주는 월터스콧의 소설이나 셰익스피어의 고전들, 사우스 켄싱턴 박물관의 기계전시실이나 자연사박물관의 곤충실 같은 데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등 그녀의 학습 경험은 몸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실제로 그것을 '어떻게' 응용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추상화

새무얼 존슨, ˝문학이 하는 일은 개체가 아닌 종(種)을 들여다보는 것이며, 전체를 포괄하는 속성과 주된 형상에 주목하는 것이다.˝

스젠트 기요르기,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모두 다 씁니다. 그런 다음 쓴 종이를 치우죠. 그러다가 한달 후에 처음 쓴 것은 보지 않고 다시 씁니다. 두번째 쓴 글이 첫번째 쓴 글과 다르면 처음부터 다시 씁니다. 그렇게 해서 열여섯번쯤 쓰게 되는데, 글이 더 이상 달라지지 않을 때까지 쓰게 되는 셈이죠.˝ 스젠트 기요르기의 경우 글을 거듭 써갈수록 말하고자 하는 것에서 불필요한 것들은 사라지고 본질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언어적인 묘사는 점차 간결해지고 일종의 시 형태로 응집되면서 각각의 단어는 보다 큰 외연과 중요성을 갖게 된다. 문학적 글쓰기를 하건, 과학적 글쓰기를 하건, 과학적 연구결과를 기록하는 글을 쓰건, 이것이 글쓰기의 진실이다. 많은 과학자들도 기술적인 단어와 개념 역시 시어의 엄격성과 간결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티스는 학생들에게 자주 말하곤 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3층짜리 스튜디오를 갖는 것이다. 1층에서는 모델을 두어 그림 수업을 하고, 2층으로 올라가면 아주 가끔 1층에 내려와 모델을 보고 가고, 3층에선 아예 모델을 보지 않고 그림수업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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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 인생의 중간항로에서 만나는 융 심리학
제임스 홀리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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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반납하러 가는 길에 동행한 지인 언니한테 꼭 읽어보라고 강추를 했더니, "마흔 지난 지가 언젠대?"라며 해당 사항 없다는 듯이 그래서 '아니 이책은 마흔 중반 이후에게 설파하는 책이다' 라고 말해 놓고, 속으로 고쳐 생각하기를 스물이든, 서른이든, 나이로 따지는 인생의 한복판에서부터 읽어도 좋지 않을까? 했다. 

 

인생을 전후반기로 나누어서 설명하자면 이렇단다. 인생 전반기에는 대부분 페르소나를 만들고 유지하느라 내면의 현실에 쉽게 소홀해진다. 그러고 나서 등장하는 것이 그림자로, 이는 인식하지 못하거나 억압된 모든 것을 가리킨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한 모든 것, 그러니까 분노와 성뿐만 아니라 즐거움, 자발성, 미개척 상태의 창조적 열정 등이 포함된다. 프로이트가 간명하게 설명한 내용을 빌리면, 문명의 대가가 바로 신경증이라고 한다.

 

인생 전반기가 지나고 중간 항로 즉 마흔에 들어서면, 결국은 자신의 내면아이가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 질문해야만 한다는 것이 이 책에서 계속 강조하는 내용이다. 중간 항로에 들어선 많은 여성에게 지금은 자신과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 할 때임을 강조한다. 오래전부터 초대는 받았지만 정작 가보지 못한 그 약속 말이다. 키워준 부모가 만들어준 외피가 떨어져 내리고 나면 여성은 자신이 누구인지,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인생이 지루하고 우울하게 느껴진다면 외면했던 재능을 꺼내 사용하면서 자신을 치유해야! 유희가 있어야 사는 데 힘도 생긴다.

 

 

우리 안에는 상처받고 두려워하며 상호의존하거나 보상 속에 웅크리고 숨어 있을 단 한명의 아이가 존재하는 게 아니다. 한 무리의 아이들로 이루어진 유치원과 같다. 한 교실 안에 익살꾼, 예술가, 반항아 등이 모두 함께 있으며, 이 아이들은 세계와 상호작용함으로써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거의 모두가 무시당하거나 억압받았다. 따라서 자신 내면에 있는 아이들의 존재를 회복하면 종종 심리치료의 효과가 증폭된다. 그리고 이는 천국에 들어가려면 아이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설파한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방법 중 하나다. 마흔이 되어 우리를 가장 좀먹는 경험 중 하나는 덧없다는 느낌, 사는 게 재미없다는 느낌이다. 이웃들의 눈에는 정신나간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삶의 여정이 장애물을 만날 때면 결국 내면이 나를 구해줄 것임은 융이 잘 알고 있다. "_____ 스스로의 열정을 좇으며 살자!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부모가 자신의 상처 때문에 양육과 힘을 얻길 원하는 우리의 원형적 욕구를 제대로 충족해 주지 못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중간항로 중에는 이런 개인사를 세밀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심리 치료라 해봤자 현재의 고통을 전부 부모 탓으로 돌리는 것밖에 없지 않느냐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사실은 그 반대다.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이해할수록 부모가 우리에게 준 상처를 용서할 가능성이 커진다. ”

 

마흔이 된 이들에게는 경제적 현실을 굳이 일깨워주지 않아도 된다. 이때쯤이면 빈곤한 은퇴생활을 걱정하면서도 돈으로는 행복을 살 수 없다는 뻔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경제적 과제와 경제적 상처가 있다. 프로이트는 건강하려면 일이 필수 요소라고 했는데 과연 어떤 종류의 일을 말하는 것일까? 가리키는 대상은 같지만 직업소명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직업은 돈을 벌어 경제적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소명은 삶의 에너지를 실현하도록 요청받는 것이다. 소명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소명이 우리를 선택한다. 우리는 거기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천대받거나 거부당하는 소명이라도 기꺼이 하겠다고 답함으로써 자신을 지킬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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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 한 호흡 한 호흡 내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일상 회복 에세이
이아림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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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다. 지겹다는 생각조차도 지겹다고 여겨지는 날. 워라벨이고, 번아웃이고, 균형 감각이고 나발이고...

 

심지어는 이렇게 작가가 직접 그려넣었다는  단백하고 예쁜 그림도 들어있는 이 에세이도, 버거워지려던 찰나. 이러니저러니 해두 이럴 때는 이게 또 다른 거 보다는 낫다.

 

"아빠의 직업은 목수다. 최종 학력은 초종. 초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상경해 목수 일을 배웠다. 우리 형제는 4남매다. 매일 죽어라 울어대는 아이들을  어느 집주인이고 달가워할 리 없었다. 결국 아빠는 우리가 살 집을 직접 짓기로 했고 내 방엔 형광별이 반짝이는 벽지를 발라주었다. 그곳에서 23년을 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농사지어 보낸 순창 쌀로 살을 찌웠다. (...) 타고난 건강은 엄마와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의 노동으로 채워졌다. 이것은 두고두고 흔들리지 않는 내 자긍심의 뿌리이다.

아빠의 몸은 어마어마하게 단단하다. 어깨는 까맣게 그을렸고 다리는 상처투성이다. 그 모습은 내게 슬픔을 주지만 동시에 서늘한 경각심도 준다. 아빠는 맨몸으로 헤쳐오신 것이다.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치 않은 정직성이다. 아빠는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패한 인생이란 무엇인가. (...) 오늘도 맨몸으로 요가를 한다. 마주한 세상의 부조리와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거'라는 체념과 싸우며 숨을 고르고 자신과 대면한다. "정말 이대로 좋은 거야? (...) 정말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변명만 늘어놓는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대수롭지 않은 여행을 하니 떠나는 일도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기념할 것도 해결한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여행. 그런 가벼움이 좋아서 떠나는 게 아닐까."

 

"타이르듯 말하는 선생님의 요지는 이랬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들은 일종의 화보로, 찍히기 위해 포즈를 취하는 것이 많다. 실제 수련과는 거리가 있다. 사람의 체형은 모두 다르니 잣니에게 맞춰 하면 된다. 올바른 방법으로 동작을 취하고 자극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요가와 글쓰기. 둘의 공통점은?

 

1. 더디다.

2. 고독하다.

3. 평등하다.(누구나 가능하다.)

4.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5. 용기가 필요하다.

6. 자기수련이다.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7.아프다.

8.자학과 자족 어디쯤에 있다.

9. 구원이다.

10. 힘을 빼야 한다.(힘을 뺄수록 좋다.)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읽었다. '읽을 수 없는 책을 읽는 것에 대해 쓰여 있었다. 읽어도 모르겠고 난해하고 지루하고 바보가 된 것 같고 어쩐지 싫은 느낌.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묘미라 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다는 건 무섭고 위함한 일이기에 그렇게 자기방어를 하는 것이다. 혁명으로의 읽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러므로 오로지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읽고 읽고 또 읽고 고독하게 더듬으며 읽어가야 한다. 완전히 새로워지기 위해. 읽기 전으론 돌아가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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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8-11-12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왠지 이 페이퍼가 좋아요. <잘라라, > 읽고 싶어졌어요.
특히, 첫 문장은 참, ... 제가 그런 기분입니다요 요즘. =.=;;

icaru 2018-11-15 15:14   좋아요 0 | URL
으아! 북극곰 님이 공감해 주시니까~ 어쩐지 으쓱으쓱해집니당! ㅋ--
저 또한 요즘 첫 문장 같은 기분의 연장에서 헤어나기 어렵네요~
의욕에 차올라~ 불타오르네 하는 순간도 간혹 있어야지 이거 ㅠㅠ;;; ㅋ
 
마흔통 - 상처입은 중년의 마음 회복기
마크 라이스-옥슬리 지음, 박명준.안병률 옮김 / 북인더갭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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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위기라는 것이 나만 곱게 지나갈 리가 없다. 곱게? 그래, 고운 삶을 사는 이는 누구이며, 도대체 몇이나 될까? 있겠지만 많이 궁금하지 않다. 이젠 부럽지도 않다. 나는 나일뿐이며, 삶은 삶일 뿐이다. 우리가 자신을 잘 대하기 위해 애를 쓰건 말건, 삶은 그저 거기에 있을 뿐이다.

 

마흔 지나고 겪게 되는 권태 혹은 무력감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꽤나 공감이 되었다. 물론 나는 항우울제나 수면제를 복용해야 할 만큼 힘들다거나 하지 않지만, 인생에 있어 중압감으로 오는 피로함과 비루함, 불안함으로 비슷한 심리에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인간극장에서 아이가 많은 집 이야기 편은 놓치지 않고 보는 것처럼, 우울감 유사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는 데서 위로를 받는 것과 다르지 않지, 아마 그런 맥락일 것이다.

 

이 책의 이 분투기가 나에게, 단순히 한편의 상처 입은 중년의 마음 회복기에 지나지 않은 것이 아닌 이유.

 

앞으로 나는 이 책을 또 몇 번인가 반복해 읽으면서 위로를 구하는 사이클이 생길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나도 나지만, 나의 배우자도 직장에서, 집에서, 분투중이라 마음관리가 필요한 사람인데 라는 데에도 생각에도 미쳤다.

 

정말 나에겐 예사롭지 않은 책이고, 나머지 인생을 살며 몇 번은 이 책 재독삼독하겠지 싶으다.

 

 

독일 작가들은 우울증의 대가들이다. 대학에서 읽은 수많은 독일 책의 주인공들은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좌절에 빠지거나 우울증에 시달렸다. 파우스트는 그중에서도 할아버지 격으로 중년의 삶에서 아무것도 건진 것 없이 근원적인 우울증에 빠진 인물이며 삶을 기억할만한 것으로 남기기 위해 기꺼이 악마와 계약을 체결한 인물이다. 요즘 존재론 절망에 관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나는 곳곳에서 그런 사람을 목격한다. ... 책은 많은 도움이 된다. 당신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

 

“<네덜란드>에서 조지프 오닐은 부모로서 겪는 피로감을 잘 그려냈다.

 

우리 삶에서 이런 증상이 지속된다면 그것은 권태다. 일터에서 우리는 지칠 줄 모른다. 그런데 집에서는 아주 작은 원기마저도 찾아보기 힘들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해로운 권태감에 빠져든다. 밤에 제이크가 침대에 가자마자 우리는 조용히 물냉이와 반투명 국수를 먹는데 아무도 그걸 치울 기운이 없다. 교대로 욕실에 들어가 씻고서는 티비 쇼가 끝나기 전에 잠에 빠지고 만다.

 

우울증과 부모됨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처음이 아니다. 둘 다 인생에서의 급격한 사건이며 아주 긴 고투이기에 편안해지기까지는 어려운 시절을 겪어야 한다.

 

우울증으로부터 배운 교훈이 있다면

책의 마지막 장이자 최고의 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는 자기연민, 분노, 비난을 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일 뿐이며, 삶은 삶일 뿐이다. 우리가 자신을 잘 대하기 위해 애를 쓰건 말건, 삶은 그저 거기에 있을 뿐이다.”

 

나는 다시 아이를 키우는 일에 뛰어든다.

 

삶이 통제가 안 될 정도로 빙빙 도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고. 몇 시간씩이나 물끄러미 소파에 앉아서 내 머릿속의 시간을 되돌리고 예전으로 돌아가 상황을 개선시켜보려고 했지.”

 

나는 우울증을 보이지 않는 모욕이라고 불러. 아무도 그 병을 볼 수 없지.

 

다른 사람도 이걸 겪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이해할 수 있게.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왜 그렇게 약하고 멍한지, 예전의 나의 반도 못 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나는 행복하게 자랐고, 충분하지만 너무 과하지 않은 관심과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즐겁고 폭넓은 자유를 누렸다. 나는 왜 내가 인정과 칭찬과 위신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네 명의 아이가 자라는 가정이라면 재빨리 그 반대를, 즉 관심이 나에게 머무는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내가 다시 시작한 또다른 것은 체스다. 그리고 나는 지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정말로 그러지 않는다. ... 나는 질 때마다 그 불쾌함의 도가니 속에 앉아서 호기심을 갖고 그것을 분석하고, 그것이 정말 세상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몇 달 전의 나에게 그것은 거의 세상의 끝이었다. 이것은 단지 무작위적인 순간이며, 성공과 실패는 다루기 힘든 개념이다. 우리가 하는 것들을 다른 용어의 틀에 집어넣는 것이 최선이다.

 

그 다음에는 이것이 있다. 이 책. 내가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 책은 꼬리를 무는 생각 때문에 혼란스럽고, 공포감에 정신이 나가고, 밤에 머리카락을 쥐어 뜯고 거울을 들여다보고 두 눈에 끔찍한 질문을 던지는 당신을, 우울증 초기에 있는 나의 가련한 동료 환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결말에 가까워지면서, 이것이 모두 계략이라는 것을, 핑계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실 나는 이 책을 나를 위해 쓰고 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이기고 지는 게임이고, 나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쓸 수 있는 또 하나의 도구였다. 그러나 누구에게, 그리고 왜 나의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걸까?

 

경쟁의 반대는 연민이다.

 

나는 정확히 당신이 묘사한 것처럼 느꼈어요. 다른 사람이고 싶은 갈망, 세상에 존재하는 것조차 원하지 않고 내가 없으면 다른 모든 사람들이 더 잘 살 거라고 생각하고 싶은 갈망 말이에요.”

 

나는 뇌의 질환이 편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신병은 라이프스타일이나 스스로의 선택, 나약한 성격과는 관계가 없다.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기이한 일에 대처하지. 그건 대개 여러 달이 걸리는 것 같아. 대처라는 게 단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건 인생을 바꾸는 과정이고, 오랜 동안 겪게 되지. 그러고 나면 좀더 많은 주름과 회색 머리칼, 그리고 뱃살처럼 두둑해진 경험과 함께 다른 세상을 맞게 되는 거야.

 

자주 인용되는 사례는 노예 에픽테토스의 경우다. 그는 주인에 의해 쇠사슬이 채워졌지만 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는 피부를 금속 잠금장치에 비벼대며 벗어나려고 해봐야 오히려 자신을 다치게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받아들여라. 비가 퍼붓는데 피신처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다면, 물에 젖는 것이 얼마나 나쁠지 또는 해가 반짝이면 얼마나 좋을지에 관해 고민하지 마라. 그냥 물에 젖어 그게 정말 어떤 기분인지 겪어봐라. 그것이 이 병에 관한 근본적인 진리, 내가 이제 겨우 이해하게 된 역설이다.

 

레몬나무는 죽었다. 그것을 몇 달 동안 불행했다. 물론 겨울 동안 안으로 들어와야 했고, 어둠이 발언하기 시작한 지난 연말까지는 거의 늘 생기넘쳐 보였다. 나는 화분에 심고, 영양분을 주고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그저 레몬나무를 나쁘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열매는 녹색이었고 딱딱했다. 잎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개씩 떨어지더니 나중에는 한꺼번에 수없이 떨어졌다. 결국 겨우 아홉 개 정도만 남았다. 불길한 비늘 같은 것이 나뭇가지를 휘감고 오르기 시작하며 녹색을 옅은 갈색으로 바꾸어놓았다. 아마 그것은 우울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소설이었다면 그 나무를 모방하여 자연주의적인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개화하는 나무를 나의 쇠약과 연결하고, 나의 회복을 나무의 죽음과 연결하고, 하지만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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