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곰 어린이중앙 그림마을 11
몰리 그룸즈 글, 루시아 구아르노타 그림, 최윤정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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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다 본 후에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의 느낌은 마치 ‘곰의 생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한 편 감상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세상을 처음보는 아기곰이 엄마곰을 따라 동굴을 나서서 하루를 빡빡하게(?) 보내는 가운데 드러나는 곰의 생태에 관한 이야기를 곰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나레이션 하면서 정지화면으로 보여주는 듯 느껴집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딱딱한 느낌인 반면에 이 책 <우리는 곰>은 세상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찬 아기곰들의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엄마곰의 친절한 답변식의 대화가 있어서 우리 아이들은 사진을 방불케하는 생생한 곰그림과 함께 곰의 ‘어떠함’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익힐수 있을 듯 합니다.

위험을 피해 “기어오를 줄 알고”
무엇을 먹기위해 “찾을 줄 알고”
때론 “헤엄을 칠 줄 알고”
새로운 먹을 것을 찾기위해 “땅을 팔 줄 알고”
엄마로서 아기곰들을 “이끌어 줄 줄 알고”
하루의 피곤을 씻기위해 “잠자는 걸 좋아한다”
그런 “우리는 곰이다”

곰의 행동에 관한 요약이지만 책의 내용은 일련의 이야기를 지니며 전개되어지고 그때그때마다 곰은 주어지는 환경에 따른 특징적인 행동을 보이게 됩니다. 이 이야기식 구성은 아이들에게 있어 곰의 특징을 이해시키기에 굉장히 효과적으로 작용하는데 하은이의 경우 엄마곰이 숲쪽을 쳐다보며 뒷발만 땅에 댄채 일어서서는 으르렁 거릴 때 자기도 마치 아기곰인양 함께 긴장하고 벌통을 건드려 쫓길 땐 어찌해야 되는지 표정이 난감해 집니다.

하지만 이런 위기의 순간을 엄마곰의 지시에 따라 하나하나 극복해 가는 아기곰을 따라가다 보면 안도하게 되고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엔 저절로 아기곰의 생태에 대해 알게 되더군요. 아기곰이 위기를 극복했던 방식이 바로 그들의 습성이자 생태이니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곰’을 일컬을때 둔하고 미련한 사람을 비유해서 말하곤 하는데(곰에 대해서 몰라서인지) 맨 뒷장에 큰글로 새겨진 “우리는 곰이다.”의 문구에 함축된 의미를 생각건대, 그리고 이 책에서 보았듯이 곰은 결코 둔하지도 미련하지도 않는 동물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엄마곰이 위험을 알렸을때 그렇게나 빠른 동작으로 나무에 올라가는 아기곰, 뒤따라 오는 벌떼를 따돌리는 방법, 그리고 감각으로 독버섯을 피하는 장면에서도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엄마곰은 새끼곰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까지 하지요. 사랑을 담아..

그러니 앞으로는 ‘곰’을 두고 악평을 하는 일은 그만두어야 할 듯 합니다. 적어도 아기곰들은 이러이러해서 그네들이 ‘곰’임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며 살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엄마곰은 그렇게도 자연스레 세상살아가는 법을 터득해가는 아기곰들이 마냥 자랑스럽고 귀여우니 말입니다. 딸아이는 이 책을 읽고는 곰에 대해서 박사라도 된양 엄마를 가르칩니다.

“엄마~ 곰은 위험할 때 나무에 올라가~”
“엄마~ 나도 꿀 좋아하는데 곰도 꿀을 좋아한대.. 꿀이 달아서 맛있나봐~”그러면서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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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빠빠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4
아네트 티종 지음, 이용분 옮김 / 시공주니어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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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이들 책을 잘 몰랐을 때에도 이 서명을 자주 듣곤 했었는데(조카가 있는 관계로) '도대체 바바빠빠가 뭐란 말이지?' 하고 생각했더랬지요.「바바빠빠」를 구입하기 전 이 책에 관한 소개와 서평을 여러 편 읽었었는데 몸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킨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유령'이나 '괴물' 같은 존재인가 보다고 생각했었답니다. 그런데 정작 책이 집에 도착하고 타이틀 페이지를 보는데 표지에 두눈이 동그랗고 속눈썹까지 치켜올려서는 입꼬리로 웃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바바빠빠'를 보고는 '유령이 아니네~'하고 말했네요.

그렇게 무섭지도 흉측하지도 않은 모습으로 대면한「바바빠빠」는 책을 모두 읽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아이들에게는 재미를 주겠지만 어른들에게는 경종을 울리는 이면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태생이 불확실한 존재로 한 아이가 살고 있는 꽃밭에서 태어났지만 어른들에게 환영받지 못한 채 동물원의 우리에 갇혀야만 하는 바바빠빠. 하지만 프랑수아와 바바빠빠는 첫눈에 좋은 친구가 되리라는걸 벌써 알아차렸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친구로부터 떼어놓는 게 있는데 어른들의 일방적인 편견이 개입되죠. '바바빠빠는 너무 커~~~' 하지만 이게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건 마지막 장을 보면 알 수가 있지요. 집을 지어주면 되는데 말예요. 동물원에 갇혀서 불행한 날을 보내는 바바빠빠는 그리 행복하지 못했던 동물원에서조차 쫓겨나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 거리조차도 바바빠빠를 받아주지 않죠. 극장에서도 호텔에서도.

감정이 없을 것만 같던 바바빠빠의 두눈에서 수돗물처럼 눈물이 쏟아집니다. 거리로 쫓겨난 후 밤이 되어 버리고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는데 어디에 몸을 뉘여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심지어는 술주정꾼의 술주정 상대 신세가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요. 호텔에서 난 불과 동물원에서 도망쳐 나온 사나운 표범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준 이후 바바빠빠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영웅의 대접을 받게 되지요. 하지만 우리의 순진한 친구는 이런 대우에 교만하지 않고 손가방을 들고는 옛친구인 프랑수와에게고 돌아옵니다. 영웅이 되어 돌아온 바바빠빠를 프랑수아의 엄마, 아빠도 그제사 반겨주네요.

책 전체에 있어 사건의 전개에 따라 변신하는 바바빠빠의 모습에 아이들은 재미를 느끼나 봅니다. 동물의 형상이 되기도 하고,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계단이 되기도 하는... 이렇듯 변하는 몸을 지닌 바바빠빠가 자신들이 되고 싶은 것을 대신해서 변신해주니 아이들은 바바빠빠를 통해서 어쩌면 대리만족이란 걸 느끼는지도 모릅니다.

프랑스의 평범한 건축설계사였던 아네트 티종이 미국인 교사인 탈루스 테일러를 만나서 카페에서 장난으로 메모를 주고 받으면서 태어난 그림책이「바바빠빠」라는군요. 이 책을 읽는 동안 책에 나오는 집이나 상가들이 대체로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네트 티종이 건축설계사였군요. 직업은 못 속이나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맨마지막 장의 구도가 참 마음에 남더군요. 바바빠빠가 하늘을 보면서 자기를 만나고 싶으면 바바빠빠가 사는 집으로 오라고 손짓하는 모습이... 아이들 마음에 바바빠빠가 정말 세상 어딘가에 꼭 살고 있을것만 같은 희망을 심어주는 듯 해서요.

책을 다 읽고 표지를 보면서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인데 바바빠빠 앞에 나란히 늘어서 있는 어른들과 아이들은 바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더군요. 저는 대단한 발견을 한 듯 한 사람 한 사람을 책에서 다시금 찾아보았는데 제가 뒷북인가요? 어쨌든 아이들에게는 다양한 상상을, 어른들에게는 일방적인 편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주는 책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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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아버지가 꼭 나만했을 때 노래 그림책
주경호 인형제작 / 보림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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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아버지는 과연 예전에 어떤 모습으로 지내셨을까? 이 책을 서점에서 처음 보았을때 가졌던 생각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 어렸을적 지냈던 기억도 아이키우면서 가물가물 거리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사셨던 옛적의 모습을 생각하려니 머리가 하얗게 되더군요. 그런 저에게 이 책은 무리없이(?) 그 시대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갈수 있는 책이 되었더랬습니다.

예쁜 점토인형들이 정감있게 다가오는 표지를 넘기면 이 책에 나오는 할아버지에 대한 재미있는 소개가 나옵니다. 땅꼬마 할아버지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데 이런 할아버지를 ‘중중 까까중 대패로 밀어중.“이라고 놀렸다는 이야기.

할아버지의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옛적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셨던 시대에는 놀림이라는 행위도 이렇듯 흥겨운 가락을 섞은 노래조로 놀렸었나 싶은게 우리 선조들은 그래서 해학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구나 싶더군요..

스물 네편의 이야기를 실어놓은 책에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가끔 들어왔던 '두껍아 두껍아', '참나무하고 뽕나무하고', '어디까지 왔니', '개똥벌레 똥똥', '꼬부랑 할머니' 등의 대체로 귀에 익은 동요가 많이 수록되어 있어서인지 낯선 분야인 전래 동요임에도 불구하고 생경하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특히 '독사려'는 제가 하은이만 했을 무렵 아버지께서 많이 해주셨던 놀이노래인지라 옛 기억에 가슴이 뭉클해지더군요.

독 사려 독 사려/ 독 사세요
잘생긴 독 사세요/ 아주머니 독 사세요/
얼마예요/ 백원이오/
아이고 예뻐,/ 주세요

그러면 친정어머니는 독을 사는 아주머니가 되곤 하셨죠. 이 놀이는 요즘도 하은이에게 가끔 해주는데 그러면 어찌나 좋아하는지 “또..또요~“라는 반응이 금방 온답니다.

노랫말에 이야기를 꾸미고 시를 쓰고 화를 풀고 유머도 즐겼던 할아버지의 노래들. 그 속에 우리의 정서가 가득하니 들어있어서인지 분명 그 시대의 놀이를 알지 못할터인데도 아이는 전혀 낯설어하지 않습니다. 노랫말이 길지 않은데다가 서양의 라임처럼 반복되는 어구들, 재미있는 노랫말, 그리고 자연의 이야기.. 이런 점들이 노래에 가득히 배어있어 아이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요소로 작용하는가 봅니다. 게다가 인형작가로 알려진 주경호님의 정성들인 점토인형의 삽화들은 이쁘기도 하지만 노랫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꽤 고심하신 듯한 느낌이 역력합니다.

이렇듯 단순한 놀이 하나에도 곡을 붙이고 흥겨워 하던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 비록 그 세대는 지날지라도 그분들의 놀이와 노래는 후세대인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대물림 하면서 읊조리게 되겠지요.. 「우리 할아버지가 꼭 나만했을 때」이 한권의 동요그림책을 통해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던 옛날로 거슬러 가는 여행을 떠나보시는건 어떨지요..

* 참고: 이 책에 나오는 전래동요는「백창우 아저씨네 노래창고」에 많이 수록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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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아저씨 -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4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4
레이먼드 브릭스 그림 / 마루벌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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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아이 책꽂이에서 「눈사람 아저씨」를 꺼내어 봅니다. 크레용으로 그려진 파스텔톤의 그림을 영상물을 보는 느낌으로 한컷 한컷 시선을 옮기며 따라가 봅니다.

아이의 이름을 딸아이 이름을 붙여 불러주고 싶지만 남자 아이라 그냥 원본을 따라 제임스라고 부릅니다. 아침에 눈을 뜬 제임스는 창문밖에 눈이 내리고 있음을 알고는 급히 밖으로 나갑니다. 그리고는 눈을 굴려서 자기 키보다도 더 큰 눈사람 아저씨를 만들어 놓지요. 목도리도 둘러주고 머리에 맞는 모자도 씌워줍니다.

한나절을 그렇게 보내고 자기방으로 들어와 잘 채비를 하는 제임스는 내내 바깥에 세워둔 눈사람이 궁금합니다. 그런데 그런 제임스의 눈에 정말 믿기지 않을 일이 벌어지지요. 눈사람 아저씨가 제임스에게 인사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뚜벅뚜벅 걸어와 악수를 하고는 집안으로 들어옵니다.

저의 아이는 글없는 그림책을 그다지 즐겨보는 편은 아닙니다. 기껏해야 공룡이라는 신비함에 이끌려서 꺼내오는 책인 「신비한 자연사 박물관」이 고작이니까요. 글없는 그림책은 붙여진 지문에 의해 내용이 한정되는 것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부모가 읽어주는 형식의 책에 익숙해진 딸아이에게는 읽힘없이 본다는 게 좀 답답한가 봅니다.

그랬던 아이가 요즘은 책의 내용을 마음대로 구상해서 읽습니다. 내용은 그때 그때의 기분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이러한 현상은 아직 한글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 책날개를 달아주자」에서 저자는 아이에게 되도록이면 한글떼기를 늦게 하라고 충고하고 있더군요. 아이가 글을 일찍 깨치게 되면 그림책에서 얻는 더 풍부한 상상의 세계를 빼앗게 된다고요. 그때는 이 말뜻을 어렴풋이 알았는데 지금의 아이행동을 보니 왜 그렇게 말했는지를 뚜렷하게 알 수가 있겠네요.

딸아이의 책을 읽는 행위는 글을 읽는 게 아니라 바로 그림을 읽어내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 읽혔던 내용을 토대로 그림속에서 어느 부분을 인상적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오늘은 내용이 이랬다가 내일은 저랬다가 하거든요. 책은 한 권이지만 아이가 읽는 내용은 여러 권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사정이 이럴진대 딸아이에게 있어 글없는 그림책의 분야는 더 이상 낯설지가 않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그림읽기를 하는 아이에게 지문이 있건 없건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하니까요..

「눈사람 아저씨」를 보면서 딸아이에게 물었습니다.
“하은아~ 하은이는 아저씨가 좋으니?”
“응..”
“왜 좋은데?”
“친구같아~”

딸아이에게 비친 눈사람 아저씨의 모습은 바로 친구의 모습이었나 봅니다. 제임스보다 덩치가 크지만 낯선 세계에서 보여준 아저씨의 행동은 마치 어린아이와도 같았으니 이제 겨우 네 살인 아이의 눈에도 어눌한 행동이 친근하게 느껴졌던 게지요.

비디오를 통해서 보았던 내용과는 좀 다른 면이 있지만, 책 또한 연속되는 박스컷을 이용해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는 섬세함을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전반부에 고요하게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하늘을 날게 되는 클라이막스, 그리고 여운을 남기는 마무리. 마지막 장에 온통 여백으로 처리된 상단에 조그맣게 그려진 박스안의 눈사람 형상을 보고는 딸아이도 무슨 심각함을 느끼는지 마지막의 그림읽기는 이렇습니다.
“친구는 슬펐어요~~”

비록 지문이 없지만 그림을 따라가며 내용에 걸맞게 완벽할 정도로 소화해 가는 모습을 옆에서 보니 신기하기만 합니다. 글없는 그림책.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 장르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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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7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좋은 그림은 글보다 더 정확하고 많은 걸 전달해 주는 것 같아요.^.^
 
돼지책 (100쇄 기념판) 웅진 세계그림책 1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허은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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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아이에게 책을 읽히는 내내 이 물음에 대해 줄곧 생각했더랬습니다. 저도 한남자의 아내이고 아이의 엄마로서 책에 등장하는 피곳부인과 비슷한 일상을 매일같이 반복하는 주부의 입장에 있습니다. 「돼지책」은 단순히 주부라는 입장에서 책을 읽는다면 이 이상 더 통쾌할 수가 없는 내용입니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며칠간의 잠적, 그 후에 오는 아빠와 아이들의 뉘우침, 그리고 역할전가... 앞부분에 참 안쓰럽게만 느껴지던 엄마의 모습이 가출 후 돌아왔을 때 어찌 그리 당당해 보이던지요.. 일종의 대리만족 같은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되더군요

그런데 만약 책의 줄거리가 단순히 엄마편 들어주기에서 끝나버렸다면 주부의 속을 시원하게는 해주었을지언정 분명 지금처럼 세간에 주목받는 책은 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 장의 그림이 만약 엄마가 침대에 누워서 잠들어 있다거나, 아니면 이전의 피곳씨처럼 소파에 드러누워 TV나 신문을 보고 있는 장면으로 끝나버렸다면 도대체 이 책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으로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무엇이란 말인가 하고서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되었겠지요.. 하지만 앤서니 브라운은 마지막 장면을 얼굴에 기름칠이 된 채 차를 고치고 있는 모습의 피곳부인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에게 진정한 가족간의 사랑과 애정에 대해서 강한 인상을 남겨줍니다.

아빠가 설거지를 하고 엄마가 차를 고치는 일은 어쩌면 그동안의 성역할이라는 고정관념에 얽매여 있던 우리들에게 무척 생소하게 보여지는 모습이지만 아빠와 엄마가 그렇게 서로의 역할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여자’이기에 앞서 ‘엄마’이기에, ‘남자’이기에 앞서 ‘남편’이고 ‘아들’이기에 누구에게 정해진 역할이 아닌 공동의 역할로 다가설 수 있는 모습이겠지요.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휴식처가 되어줄 가정이라는 보금자리가 어느 한 사람의 희생만을 강요한다면, 그리고 그 희생의 고마움을 모른다면 그건 더 이상 가정으로서의 의미를 지니지 못할 것입니다.

앤서니 브라운은 이미 가족관계에 대한 여러가지 문제를 「고릴라」와 「동물원」 그리고 「터널」에서 신랄하게 다루어 줌으로써 가정이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를 되돌아 보게끔 독자들에게 여러 번 도전을 던져 주었습니다. 이 「돼지책」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현대 사회에서 위기에 처한 가정내 문제를 재미있는 찾을 거리(돼지찾기)와 유머러스한 구성으로 무거운 주제에 비해 접근하기 쉽도록 배려하면서 하고자 하는 말을 은근히 내재시켜 놓았더군요. 집에서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는 일은 엄마의 일에 속한다고 당연히 생각하며 자라는 아이들에게 작가는 가족공동체의 중요성을 한껏 부각시키면서 가사를 비롯한 모든 일이 가족이라면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대상으로 나온 책이지만 오히려 어른들에게 더 진지하게 다가가는 책. 아이책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 「돼지책」을 통해서 우리 엄마들이 더 이상은 가사라는 노동에 치이지 않기를 바라며 아이들에게는 ‘공동체 의식’이 자리잡기를 바랍니다. 또한 아빠가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엄마가 공구로 집안 여기저기를 수리하고 다녀도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 하루빨리 정착되기를 바래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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