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그동안 여러번 읽었던 책인데
어제 문득 하은이가 이렇게 묻는다.

"엄마~ 두루미가 어떻게 생겼어?"

여지껏 이 책을 읽었으면서도 한번도 두루미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이유인즉 앞장과 맨뒷장에 사진은 아니지만 아카바 수에키치의 훌륭한 삽화가 있으니 그것으로 되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어떤 연유인지 하은이는 느닷없이 '두루미'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 그럼 두루미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찾아볼까?"

집에 있는 책이란 책을 모두 뒤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두루미에 대해서 실어놓은 책 발견,
보리에서 나온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동물도감에
두루미에 관한 사진과 내용이 짧게나마 실려있다.

두루미는 일반적으로 '학'이라고도 하며 머리부분은 빨갛고
날개깃은 까매서 날개를 접으면 까만꽁지처럼 보인다고 그런다.
그리고 겨울동안에는 우리나라에 머무르다가 따뜻한 봄이 오면 러시아로 날아가는 겨울철새임을 알려준다.

여기까지 읽고서야 하은이는 "두루미가 이렇게 생겼구나~" 그런다.

하은이와 이렇게 짧게나마 두루미를 관찰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니 그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부분들이 새롭게 들어찬다.

요헤이를 찾은 아가씨의 머리를 묶은 수건이 빨간빛을 띠는 것도 두루미의 형상이 그대로 포개지는 효과를 주고
이야기의 배경이 눈내리는 겨울인 점도 두루미의 생태를 감안한 설정이라는 것,
그리고 두루미가 철새인 점에 착안한다면 이 아가씨가 요헤이 곁에서 영원히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는 복선까지도 받을수 있다.

일본의 여러 전래그림책을 접해 보건대 우리네 그것과 별반 다를바 없음을 느낀다.
전래그림책이 띠는 성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나 할까..
이 '두루미 아내'에서도 그 전래의 정형은 그대로 보여지고 있는데
같은 패턴의 이야기가 세번 반복되어져 나오는 점(아내가 세번에 걸쳐 베를 짜는 이야기)이나
깨뜨려서는 안될 금기사항이 제시된다는 점(베를 짜는 동안 절대로 들여다 보아서는 안되는 점),
그리고 결국은 그 금기사항을 깨뜨리는 바람에 일이 틀어지는 내용이 그렇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있는 가난한 총각인 요헤이,
눈쌓인 길에서 화살을 맞아 버둥거리고 있는 두루미를 간호해준 덕분에 아리따운 아내를 맞이하게 되고
그 아내가 짜주는 베를 팔아 행복하게 살게 되는데
조금씩 금전의 유혹으로 생긴 욕심과 호기심때문에 금기사항을 어기게 되고 아내를 잃게 된다는 이야기는
사람의 욕심이나 호기심이 얼마나 원초적인 것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성경에 나오는 태초의 인간을 보건대 그들 또한 신과 같이 되고자 하는 욕심과 금단의 열매를 따먹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호기심으로 결국은 낙원에서 쫓겨나는 신세로 전락하지 않았던가.
모든것이 주어진 낙원에 살면서도 자족할 줄을 몰랐던 태초의 사람..요헤이도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을 감사히 여기기 보다 주어지지 않은 것들에의 욕망으로 인해 결국은 불행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자행하고 말았다.
멀리 날아가고 있는 두루미를 뒤쫓아 쳐다보는 요헤이의 망연자실한 표정이 흐릿하게 그려진 얼굴위로 너무도 또렷이 망막에 그려진다.

긴 목과 다리, 새하얀 털..그 고고한 자태만큼이나 깊은 뜻을 지녔던 두루미의 희생이 애닮다.

책을 읽은 후 하은이에게 물어본다.
왜 두루미가 떠난것 같으냐고..
당연히 들여다 보지 마랬는데 들여다 봐서 떠났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라면 안들여다 봤을텐데..그런다.
글쎄?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않았더라면 없었을 온갖 불행의 씨앗도 인간의 호기심 때문이었고
금단의 열매사건도 인간의 욕심 때문이었는데 과연 그럴수 있을까?
나라면? 나라면 역시나 요헤이와 무엇이 달랐으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0만 번 산 고양이 - 비룡소 그림동화 83 

                                     사노 요코 (지은이), 김난주 (옮긴이)

 

                                         

                                            원제 : 100万回生きたねこ

 

100만 번이나 산 고양이...

이 책은 일회성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풀어내는 방식에 따라 여러 이야기가 나올법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어린이 대상의 그림책이라고 하기엔 다루고 있는 주제가 너무 심오하다.


언제나 누군가의 고양이었지만 백만번이나 죽어야 했던 얼룩고양이.

자신의 죽음 앞에 너무도 슬프게 울던 주인의 아픔 따위엔 아랑곳 하지 않고

그렇게 또다른 주인의 소유로 태어나 의미없이 살다가 또다시 죽고를 반복하는 고양이.

주인들이 하나같이 그 멋진 얼룩고양이를 사랑했음에도

고양이는 임금님도, 뱃사람도, 서커스의 요술쟁이도, 도둑도, 혼자사는 할머니도, 어린 여자아이도...어느 누구의 고양이도 아니면서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그들의 눈물에 동정을 보내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잠깐동안 고양이를 소유했던 사람들은 무척 자기의 고양이를 사랑하는 듯 보이고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엔 참 많이도 울었는데 말이다.

사람들의 편에서 일방적인 눈길로 고양이를 바라본다면 이 고양이는 정말 배은망덕하고

인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사랑받을 자격조차도 없는 그런 고양이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의해서 이야기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고양이가 왜 그랬는지를 다시금 이해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상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단지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있는 주인들에게 있다.

자신의 방식을 상대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생각지 않은채,

자기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양,

어떨적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상대를 이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주인들은 착각을 한다.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해 줄 주인을 만나기 위해 고양이는 그렇게 백만 번이나 죽음과 삶을 반복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얼룩고양이는 이제 어느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자기 자신의 고양이로 태어난다.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닌 혼자만의 세상살이 이지만 고양이는 차라리 그런 자기 자신이 너무너무 좋다고 한다.

게다가 이렇게 혼자사는 고양이와 짝이 되고 싶어하는 온갖 암고양이가 있었으니

이 얼룩고양이는 더더욱 자신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이전의 주인들로부터 그렇게 사랑받고자 했다는 사실을 망각한채

얼룩고양이는 서서히 자신의 소유자였던 백만 명의 주인처럼 되어 간다.

"난 100만 번이나 죽었었다구. 이제 와서 뭐 새삼스럽게 그래. 세상에 나 원 참!"

이렇듯 자신의 사랑을 기다리는 다른 고양이들 앞에서 상대의 관심을 무시한채 자신의 나르시시즘에 도취되어 버린다.

 


그렇게 기고만장하던 얼룩고양이 앞에 이 고양이를 변화시키는 한 고양이가 등장한다.

이 고양이는 얼룩고양이가 옆에서 아무리 "난 100만 번이나 죽었었다구!" 하면서 외쳐대도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런 흰털고양이에게 어느날 얼룩고양이는 "네 옆에 있어도 돼?"하고 묻는다.

 

창닫기


늘 ‘사랑’에 대한 갈망을 마음 한켠에 간직하고 살아왔던 얼룩고양이에게 이제 그 ‘사랑’을 표현할 대상이 생긴거다.

그리고 더 이상 "난 100만 번이나"하면서 목청을 높이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얼룩고양이는 차츰 흰털고양이와 많은 아기고양이를 자기 자신보다 더 좋아하게 되고 그 고양이와 언제까지나 살아있고 싶다고 생각한다.

흰털고양이를 만나기전 자기 자신의 고양이인게 너무너무 좋았던 고양이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가 없다.

더군다나 백만 번이나 죽고 삶을 반복하는 동안 ‘죽음’이란건 얼룩고양이에게 아무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했는데 이제 얼룩고양이는 죽지 않고 언제까지나 살고 싶은 욕망까지 생겨 난다.

 

창닫기


난 이 대목에서 이전 얼룩고양이의 주인이었던 여러 사람들의 ‘사랑’과 ‘참된 사랑’을 하기 위해 백만 번의 죽음을 불사했던 얼룩고양이의 사랑의 방식에 대해 또다시 비교를 하게 된다.

진정한 사랑이란 혼자만의 일방적인 통행이 아니며 자신을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고 소유도 아니다.

이전의 이기적인 모습일랑 사랑앞에서 철저히 깨어지고 낮아지고 겸손해 지는 것...그것이 아닐런지...


그러나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된 얼룩고양이는 자신의 바램과는 달리 그렇게도 사랑했던 흰털고양이를 떠나보내게 된다(사랑은 그렇게 고통도 수반된다).

이 날, 얼룩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죽고 살면서 한번도 울지 않았던 울음을 운다.

자신의 백만 번의 죽음으로 백만 번의 이별을 해야했던 여러 주인과의 이별에서도

한번도 울지 않았던 울음을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했던 흰털고양이의 죽음앞에서 토하고야 만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했던 바램대로 얼룩고양이는 흰털고양이의 주검과 함께 다시는 살아나지 않을 죽음을 맞이한다.

"영원히,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고양이가 죽고 자신도 죽었지만 얼룩고양이는 참 행복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난 100만 번이나 죽었었다구!"

늘 이렇게 말했지만 그말은 외로움을 가장한 객기로만 들렸는데 이제 고양이는 더이상 자신을 포장하지 않아도, 또 백만번을 역설하지 않아도 될것 같다.


백만 번을 죽고도 슬픔도, 눈물도 몰랐던 얼룩고양이는 단 한번의 죽음을 통해 백만 번 죽음의 슬픔을 맛보았고 눈물을 쏟았으며 또 ‘죽음’에 대해 겸허해 질 수 있었다.

수백번을, 수천번을, 아니 얼룩고양이처럼 백만 번을 살아도 참된 사랑을 알지 못하고 사는 것은 공허한 삶일뿐 진정한 삶이 될 수 없음을 얼룩고양이는 들려주는 듯 하다.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좋았던 고양이, 그러나 사랑은 자기 자신보다 상대를 더 좋아하도록 만들어 버리고 죽음 앞에 겸손케하고 죽어도 행복할 수 있음을 깨우쳐 준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니 흰털고양이와 나란히 한곳을 응시하며 앉아있는 얼룩고양이가 보인다.

하늘나라도 간 얼룩고양이는 분명 환한 미소로 흰털고양이가 보고 있는 것을 함께 보고

함께 느끼고 행복해 하고 있을 것임을 확신한다.

끝으로 생명을, 죽음을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이 한권의 책을 통해 여러분도 가져볼 수 있기를 바란다.

 

+++++++++++++++++++++++++++++++++++++++++++++++++++++++++++++++++++++++++++++++++++++++++

 

카우보이비밥中.
 
이런 얘기 알아요?.
고양이가 있었어요.
그 고양이는 좋아하지도 않는 여러 주인들을 거치면서
백만번을 죽고, 다시 백만번을 살아났죠.
고양이는 죽는게 두렵지 않았어요.
녀석은 한때 자유로운 들고양이였죠.
어느날 하얀 암코양이를 만나 둘은 함께 행복하게 보냈어요.
그러다 세월이 흘러 하얀 고양인 늙어죽고 말았죠.
고양이는 100만번을 울고 그리고 죽었어요.
두번 다시 살아나지 않았죠.

좋은 얘기야.

난 이 얘기가 싫어요.
고양이가 싫거든요.

그럴 줄 알았어

스파이크.
한가지만 물어도 될까?.

뭐죠?.
여자를 위해선가?.

죽은 여자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05-09-10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참 귀엽군요. 아주 오랜만에 찾아뵙네요.

bluetree88 2005-09-11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어제 서재에 다시 글을 오랫만에 올리고 바로 하늘바람님의 댓글을 받았습니다. 살짝 올려놓으니 누가 다녀갈까 했는데 말예요..잠깐 님서재에 들렀는데 한동안 바람님도 서재활동이 뜸하신것 같아요..바쁘신가요?^^
 

꽃과 새, 선비의 마음 - 보림한국미술관 02, 화조화

고연희(지은이)

 

 

작가가 이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꽃과 새, 선비의 마음]은
옛사람들이 꽃과 새를 어떻게 보고 느끼며 글 혹은 그림으로 그렸는가를 전하고자 한다.
비록 책에 수록된 작품을 그린 화가들의 시대로 되돌아 갈 수는 없지만
책에 실린 유명한 작품들을 하나하나 감상하면서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꽃을 그리고
새를 표현했는가를 지은이의 섬세한 설명글을 읽으며 짐작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관조적 입장의 감상객이 아니라
그림에 써넣은 한시의 멋드러진 한구절에 감탄을 자아내고 있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때론 섬세하게, 때론 과감하게 붓놀림을 했을 그들의 표현법에 갈채를 보내게 될 것이다.

사실 ‘화조화’라는 장르는 현대미술에 익숙해져 있는 나나 아이들, 모든 현대인들에게
무척 생소하면서도 낯설기 때문에 호기심으로 들여다보게 되는 장르가 아닌가 싶다.
풍경을 그린 것 같기도 하고 정물을 그린 것 같기도 한데 여러 소재를 망라하는 이들 분야와는 달리,
꽃과 새에 국한해 그들의 어울림을 한폭의 그림으로 담아 놓았다.
그리고 여타 분야와는 달리 그 그림 하나하나에 화가의 마음을 반추해 놓았고 각 그림들은 제각각 희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많은 지식과 상식을 접하게 되는데
옛사람들은 그들이 벗하며 사는 주변의 자연물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를 즐겼고
그 상징을 바로 그림에 끌어들여 그들의 속내를 그림으로 멋드러지게 표현해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선비라 함은 여러 학식을 갖추고 임금에게는 충의와 지조를 지키며
사회적으로는 인격을 수양하여 도덕적 귀감이 되는 사람들로서 책에 수록된 그림들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하나같이 선비로서 추구했을 덕목과 수양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러기에 그들은 굳이 많은 말이 필요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는지를 단지 한폭 그림만으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차가운 날씨에도 깔끔한 모습으로 지저귀는 까치에게서는 기쁜 소식을 예감했고,
갈대밭에 내려앉는 기러기는 갈대와 믿음을 쌓은 친구로 여겨 사랑했습니다.
또한 새벽을 깨는 수탉의 울음을 세상을 깨우는 한마디로 존중했고,
해를 따라 고개를 돌리는 규화는 충직한 마음으로 여겨 아꼈습니다.
인간보다 오래 산다는 학은 삼천년 장수의 상징으로 보았고,
연못 한가운데서 맑게 피어나는 연꽃은 고고한 군자의 덕으로 칭송했습니다-

이 상징들을 보기만 해도 우리 선조들이 꽃과 새를 경히 여기지 않고 얼마나 애정을 쏟았는지..그들의 멋스러움이 시대를 초월해 다가옴을 느낀다.
또한 눈을 떠 고개를 돌리기만 해도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을 온갖 종류의 황홀한 자연의 세계가 부럽다. 그 자연의 풍요가 바로 선조들의 마음을 이렇듯 넉넉하게 만들었으리라.

이럴진대 지금의 우리는 현대화, 도시화라는 명목으로 너무 무분별한 발전을 가속화 시켜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 가속화 속에 우리는 선조들이 지녔을 풍류도 여유도 너무 많이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이 책의 지은이는 책의 독서대상을 어른뿐 만이 아니라 초등 고학년 정도의 수준이면
흥미있게 그림을 보며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그림설명을 해주고 있다.

선명하고 눈에 띄는 그림들에 익숙해져 있을 우리 아이들,
정지화면을 지루해하며 모든 것이 수동적이 되어버린 아이들에게
선조들의 자연을 대했던 깊은 마음가짐과 자연과 어울려 살아갔던 지혜를 한 폭의 그림을 통해 배울수 있기를 바래어 본다.

김홍도가 그린 ‘매화와 까치’를 보며 봄을 부르는 까치의 지저귐에 한번 귀를 기울여도 보고
장승업의 ‘닭’을 보며 수탉의 멋스러움도 느껴보기를..
변상벽의 ‘암탉과 병아리’는 새끼를 돌보는 어미의 정성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양기훈의 ‘백로’에서는 옛선비의 올곧은 기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렇듯 의미가 듬뿍 담긴 작품들을 고정된 시선으로 한참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아이들은 그들만의 감각으로 한 폭의 그림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이고
이런 감각이 쌓여 어느날 문득 작가가 담아둔 의미를 눈치채게 될 것이다.

자연을, 환경을 보호하라고 낮은 소리로 엄히 꾸짖지 않아도
이런 그림들에 젖어 자연의 소리를 경청하는 아이들은 저절로 꽃을, 새를 사랑하지 않을수 없으리라.

책의 서문에 지은이의 글이 있는데 이 책은 그 서문에서 언급했던 여러 가지 약속에 아주 충실했던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과 문체에 신경을 쓴 점,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를 쉽게 설명해 준 점,
화조화를 그린 화가들을 세기별로 잘 묶어 놓은 점,
쉽게 찾지 못하는 그림의 부분을 알기 쉽도록 표기해 둔 점...
여러모로 독자층과 호흡을 맞추고자한 지은이의 배려가 돋보인다.

첫장을 들추면서 ‘화조화’의 느낌을 좀체로 잡을수가 없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을때엔 그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시선을 붙잡는 소박하고 단아한 그림들의 매력에 흠뻑 취할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계속해서 발간될 보림의 [보림 한국 미술관]시리즈에 자못 기대가 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래자장가 자미 잠이 - 보림어린이 음반 
                                                                  보림 편집부 (엮은이)

                                                        


최근 우리것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아이들 대상의 그림책에도 우리문화나 우리전통, 우리음악 등을 대상으로 한 우리것 찾기 운동이 붐을 이루고 있는듯 하다.

그리고 그런 책들은 예의 아니게 우리 고유의 것을 어떻게 아이에게 전해 줄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부모들의 관심대상이 되고 그런 부모들의 고민을 어느정도는 해소해 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토속적인 분야로 생각되는 ‘전래자장가’는 어떠한가를 짚어본다면
그동안 여타 분야에 비해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2002년 어린이 전문 음반일을 하는 백창우씨가 [아기 어르고 달래고 재우는 자장노래]라는 제목으로 전통악기와 서양악기를 사용해 22곡의 모음 음반을 펴냈었는데 이에 비하면 보림에서 나온 [자미잠이]는 시기적으로 좀 늦은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에라도 엄마의 사랑이 잔뜩 담긴 전통적 운율의 자장가를 온갖 정성으로 빚어내 놓아 정말 다행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 아기 코~ 잘까? 엄마가 자장 자장 해줄께~”
라는 엄마의 목소리로 시작되는 전래자장가 [자미잠이]는 많은 곡의 자장가를 담는것에 치중하기보다
적은 곡이지만 우리에게 가장 낯익고 사랑스러운 노랫말을 담은 곡위주로,
그리고 아기들에게는 엄마가 들려주는듯한 느낌의 속삭임으로 아이의 단잠을 재워주는 곡들로
질적인 부분에 있어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았음을 면밀히 알게 해주는 음반인 듯 하다.


같은 자장가이지만 부르는 가수의 음색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점을 간과할수 없어
두가수의 각기 다른 느낌의 곡을 모두 실어두었다는 점이나
가수들에게 반주없이 노래를 먼저 부르게 한 후 곡을 덧입혔다는 점은 이 음반의 편곡자가 얼마나 [자미잠이]의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는지를 알게하는 대목이다.


사실 이 음반을 배송받은 후 나는 함께 딸려온 해설서를 전혀 읽지 않은채 시간나는 대로 하은이와 함께 계속해서 CD듣기만을 했었다.
하은이는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 음반을 들을때마다 왠지 반주보다 가수가 부르는 가사의 전달이나 가수의 엄마같은 음량과 음색이 더많이 돋보인다는 사실을 조금씩 인지하게 되었다.
여러 종류의 우리악기가 많이 사용되었고 간혹 자연소리를 곁들인 효과음도 있지만
그런 부속적인 사양들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그저 배경음 정도로만 낮추어 놓은채
될 수 있는한 가수의 노래가 부각되도록 해놓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래..자장가니까 반주보다 엄마같은 가수의 목소리가 더 중요하겠지..
자장가는 연주곡도 아니고 게다가 감상곡은 더더욱 아니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한참을 지난후 해설서를 읽으니 바로 내가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떡~하니 기술되어 있는 것이다.
나의 그런 느낌은 편곡자가 순전히 의도한 바이고
또 그의 그런 의도는 아이를 키워봤던 엄마인 내가 충분히 공감하는 이유였다.


---일반적인 음반 녹음 과정의 역순서로 녹음을 했더니 자장가의 느낌이 훨씬 맛있게 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를 들어 반주가 있으면 아무래도 가수는 반주의 느낌을 따라갑니다. 또 리듬과 가락의 흐름에 얽매여 자연스러운 자장가의 느낌을 드러내는데 방해를 받게 됩니다. 실제로 집에서 자장가를 부르는 엄마들은 마음속으로 하나.둘.셋.둘.둘.셋...이렇게 박자나 장단을 타기는 하지만 박자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더욱이 주요 청취자가 등을 바닥에 대고 살아가는 어린 아이들인데 그 아이들 앞에서 멋진 연주회를 보여주려는 것도 아니고요. 아이들의 귓가에 가깝게 들려지는 엄마의 목소리 같은 노래, 아이의 호흡과 아주 긴밀하게 일체감을 주는 노래이기 위하여 다소 힘겹지만 반주 없이 노래를 완성한 것입니다.---


굳이 비교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앞에 언급했던 [아기 어르고 달래고 재우는 자장노래]의 음반을 들어보면 이 음반은 잠자리의 아기에게 CD를 틀어주고 자장자장~ 잠들도록 기획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동네마다 옛부터 전해오는 노래들을 골라서 다듬거나 새로 노래를 붙여 이런 전래자장가가 있다고,
엄마들이 익혀 아기들에게 불러주면 좋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진 음반같다고나 할까..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음색으로 보아 아기를 낳은 엄마의 목소리는 아니고
반주하는 악기들의 소리도 노래의 강약못지 않게 전면에 부각되어 있는 점이 다소 거북스러웠다.
게다가 때로 몇 곡은 자장가임에도 듣다가 신이 날 정도의 빠르기곡이기도 하고.


이에 반해 [자미잠이]의 가장 큰 장점은 CD를 틀면 바로 엄마같은 목소리의 가수가 풍성한 음량으로
아기가 단잠에 빠지도록 자장가를 불러준다는 점이다.
(하기야 직접 불러주는 엄마의 목소리 같겠냐마는..)
될 수 있는한 조용히, 느리게 아이가 새록새록 잠이 들수 있도록 그야말로 말그대로의 자장가인 셈이다.


[자미잠이] 해설서의 서두에서도 지은이가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말이지만
전래자장가의 글말은 어찌 이리 고울까 싶은 가사가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맛이 살아있다.

머리끝에 오는 잠 살금살금 내려와
눈썹밑에 모여들어 깜빡깜빡 스르르를
귀밑으로 오는 잠 살금살금 내려와
눈썹밑에 모여들어 깜빡깜빡 스르르르

우리아기 잠드네 쌔근쌔근 잠드네
워리자장 워리자장 우리아기 잠드네

<머리끝에 오는 잠. 영양군 전래자장가>



이리 고운 노랫말이 빛을 못본채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그러니 이런 음반이 있어 두고두고 듣고 익히고 불러줄 수 있음이 새삼 다행스럽고 고맙다.


이제 [자미잠이]의 음반 해설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음반을 구입하면 200페이지 분량의 소책자가 딸려있는데 이 책에는
아기들에게 왜 자장가를 들여줘야 하는지를,
엄마가 들려주는 전래자장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전래자장가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글들을,
그리고 음반을 만드는 과정과 수록곡들에 대한 설명글들이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 소책자의 반정도의 분량이 왜 자장가여야 하는가에 대해 할애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지은이는 전래자장가에 대한 중요성을 무척이나 강조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나 동일한 주제의 계속되는 반복은 책을 읽는데 좀 지루한 감이 없잖아 든다.
이미 전래자장가 음반을 구입한 사람들은 이만큼의 역설을 재차 하지 않아도 그 중요성을 공감하고 있을터인데 말이다.


그리고 전래자장가에 사용되는 음계에 대한 설명은 음계에 대한 상식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나와 같은 음악의 문외한이 듣기로는 그리 도움이 못되는 듯 하다.
특히 선법에 대한 설명은...


또한 음반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처럼 언급해 놓았는데
참여인들의 수고를 여러차례에 걸쳐 언급하는 것은 오히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부담감을 주는 것 같다.
굳이 그 수고를 되풀이해서 언급하지 않아도 독자들은 그만큼의 수고가 있었겠음을 설명만 듣고도 알수 있을테니..


마지막으로 노래 소개에 대한 글은 각 노래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처음 책을 읽지 않고 CD를 들었을때 듣고 있는 곡이 어느 지방에서 불렀던 곡인지,
그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가수가 어떤 사람인지,
그 자장가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가 무척 궁금했는데 이 대목을 읽어보니 궁금정이 많이 해소되었다.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가사에 섞여있는 어려운 낱말들이 더러 있었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라도 부가되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를 들면, 우리 애기 잘도 잔다에 나오는 앞노적이나 뒷노적이 무슨 말인지 궁금하다.


끝으로 [자미잠이]에 대한 서평을 마치면서 전래자장가에 대한 음반에 정말 아쉬운 점을 말하고 싶다.

왜 아빠가 들려주는 전래자장가 곡은 없는지를..
물론 주고받는 노래가 아닌 전곡을 아빠가 들려주는 노래로 말이다.
필자가 간혹 함께 노래를 불렀다고는 하지만 그 참여도가 그다지 아빠들에게 큰 어필이 되지는 못할것 같다.

‘자장가’라고 하면 언뜻 엄마가 잠드는 아기에게 들려주는 노래로 생각되어 지는데
아빠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자장가도 엄마못지 않게 잠드는 아기에게는 무척 풍요로운 선물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두 달여 이 음반을 듣던 하은이, 인형을 아기처럼 재우면서 부른다.

“자장~ 자~장~ 우리아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e Polar Express      

                                              
                                                     Chris Van Allsburg

 

The Polar Express...

제목에서만도 참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책입니다.


크리스마스 전날밤 산타할아버지가 끄는 썰매의 방울소리를 기다리는 한소년이 있습니다.

그 소년은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을뿐만 아니라 특이하게도 썰매의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요.

그런 소년의 집 앞에 눈내리는 밤의 적막함과도 같은 기차가 도착하고 그 기차가 가는 곳은

북극이라고 합니다.

 


소년이 탄 기차안에는 시중드는 아저씨들만 있을뿐 온통 잠옷 차림의 아이들 세상이지요.


기차의 최종목적지인 북극..

아이들을 태운 기차는 절벽과 언덕을 구르기도 하고

빙산을 가로지르기도 하면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만드는 공장으로 가득차 있는 종착지에 도착합니다.

수없이 많은 요정들이 모인 곳에서 소년은 그렇게도 기다렸던 산타 할아버지를 만날뿐만 아니라 첫번째 크리스마스 선물의 주인공이 되어 그토록 갖고 싶었던 은방울을 선물받게 되지요..

 

 

산타할아버지의 썰매가 사라진후 기차안으로 돌아온 소년은 그만 주머니에 뚫린 구멍 때문에 은방울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이미 기차는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라 슬픔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아침, 크리스마스 트리 뒤에서 동생이 찾아온 조그만 상자속에는 이브때 잃어버렸던 바로 그 은방울이 산타할아버지가 남긴 메모와 함께 소년에게 되돌아 옵니다.


나는 은방울을 흔들어 보았지요.

그 방울 소리는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말씀하셨어요.

“어머머, 저런! 아까워라.”

“방울 소리가 나지 않는걸 보니 고장났나 보구나!”

아빠도 안타까워하셨어요.

참 이상하죠?

조금 전 내가 방울을 흔들었을 때,

아빠 엄마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셨나 봅니다.


옛날엔 내 친구들 거의 모두가 그 방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그 친구들에게도 어느덧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어 버렸어요.

내 동생 사라도 언제부터인지 그 아름다운 방울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지요.

나는 어른이 되고 이제 늙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방울 소리는 지금도 여전히 내 귀에 아름답게 울린답니다.

산타 할아버지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다 들리듯이......




북극을 꿈꾸는 사람들은 기차를 탈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 이성만을 믿는 사람들에게 북극은 이미 존재하지 않지요..

마찬가지로 기차도 정차해 주지 않습니다.


누구나 북극을 갖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무엇 때문인가 차츰 북극을 잃어버린 듯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귀에는 신비롭게 들리는 방울 소리 마저도 말입니다.

기차가 지나가는 길을 보십시오..하나같이 을씬년스럽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미 너무나도 멀리 북극을 떠나보냈는지도 모르겠군요..


1986년 Caldecott Medal을 수상한 Chris Van Allsburg의 대표작중 한권입니다.

북극으로 향하는 기차가 내뿜는 희뿌연 연기의 묘사나 기차에서 느껴지는 중량감이 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간이페이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오버되지 않은 담담함으로 표현되어져 있네요..

무엇보다 이 책의 압권은 실외장면에서 뿌려지고 있는 눈발과 빽빽이 들어찬 요정들을 위에서 내려다 본 장면이 아닌가 합니다.


세상사에 찌들어 살던 어른들에게..

누구나 순수한 동심을 지녔던 그 시절을 잠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참..이 책이 조만간에 3D Animation으로 나온다는군요..

Hero Boy의 목소리를 Josh Hutcherson과 Tom Hanks가 맡는다니 기대가 되는군요..


 

                                                   Polar Express, The

                                       포스터

 

저작권땜에 퍼오지는 못하겠고 이곳으로 가셔서 한번 맛보기 해보시길...

http://polarexpressmovie.warnerbros.com/

 

* 다음을 클릭하시면 아름다운 배경음악과 효과음이 멋진 조화를 이루면서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주인공이었던 영화배우 리암 니슨(본명 : William John Neeson)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녹음된 전체 스토리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The Polar Express 듣기)

 

2004.04.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