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제1336호 : 2020.11.09
한겨레21 편집부 지음 / 한겨레신문사(잡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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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폭력 활동가 마녀' 님 글을 읽기 위해 응원하는 마음으로 샀다. 이번 주제는 '보복성 고소'에 관한 것이었는데 읽다가 밑줄을 그었고 아직 반성폭력 활동가 마녀 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알려주었다. 지금은 트윗에서 'D'님으로 활동중이신데,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재판에 연대자로 함께 해주시며 또한 트윗 내에서도 발언을 늘 해주신다. 그 분이 가장 많이 하는 발언은, '어떻게든 살아만 있으라'는 것. 어떻게든 살아만 있으면 돕겠다고 연대하겠다고 해주시는 거다.


최근에는 자살 협박을 이용해 여성들을 유인, 성폭행 했던 시인이 마녀님께 대드는 걸 보면서 세상 뻔뻔하기 이를데 없다고 생각했는데,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던 미성년자 성폭행 전과자부터 시작해서 왜이렇게 이 남자들은 뻔뻔함으로 무장되어 있을까 생각했다. 후...


마녀님의 말씀대로 늘 주장하시는 바대로,

여자들아 어떻게든 살아 있자. 그러면 다른 여자들의 연대로 그 다음을 살 수 있다. 그리고,

자살협박하는 자들에게 달려가지 말자. 누군가 자살로 유인을 한다면 경찰에 신고하자. 그 사람의 자살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다.

너가 지금 오지 않으면 나는 죽을 것 같아, 한다면 무조건 경찰에 신고하자.

그리고 당신이 가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죽었다해도, 다시 말하지만 당신 탓이 아니다. 정말 아니다.

많은 경우 경찰들은 여자 피해자의 말들을 들어주지 않고 가볍게 취급하지만,

남자가 자살한다고 한다면 달려갈 것이다.

누군가 자살할 것 같다고 와달라고 하면 거기에 달려가는 대신 경찰에 신고하자.

그리고 살자, 여자들아. 살아남자.

살아남아서, 그 다음 세대의 여자들이 더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자.

우리 그렇게 하자.

뻔뻔한 남자들을 가볍게 즈려밟고 그렇게 살자.





보복성 고소란 ‘역고소‘ ‘맞고소‘ 등으로 불리는 성폭력 가해자들의 대응 전략이다. 성범죄 전문 법인에서 가해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이 방식은, 피해자 입을 틀어 막고 지지와 연대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통상 피해자가 고소·신고하면 무고, 명예훼손, 모욕, 업무방해, 공갈, 협박 등의 조명으로, 피해자가 폭로만 했을 때는 무고를 뺀 나머지 죄명으로 고소한다. 게시물과 기사, 방송 내용에 대한 가처분 신청과 민사소송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는 피해를 입었음이도 피고소인 신분으로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아야 한다. 자시느이 피해 사실 입증에 집중하기 어려워지며, 가해자 쪽 고소 취하·합의 종용에 끌려가게 된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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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1-16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해자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그 지점을 자세히 들여다 볼수록 인간에 대한 기대를 자꾸 저버리게 되네요.
우리 그래도 살아봐요. 우리 여자들아, 어떻게든 살아남자!

다락방 2020-11-16 09:15   좋아요 0 | URL
살아남아야 합니다. 살아 남아야 해요. 우리 어떻게든 살아남아요, 단발머리님!!

수이 2020-11-16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전에 어디 기사인지 깜박했는데 오마이뉴스 였던 거 같기도;; 데이트 폭력으로 아니 데이트 살인이라고 해야할까 그 통계를 보았는데 모조리 살릴 수 있었어요, 그 무고한 죽음들이 전남편이나 남편이나 애인들에의해서 행해졌고_ 법 자체를 바꾸지 않고서야.... 살 수 있는 여자들을 일부러 죽음으로 몰아가는 거 아닌가 현 법망은. 열불나서 또 씩씩거리는 아침

다락방 2020-11-16 10:31   좋아요 1 | URL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여자들은 남성들에 의해 죽음의 공포를 겪죠. 이에 대해 바깥으로 얘기하면 다들 과한 생각이라고 여자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결국 남성에 의한 여성 살인은 반복되죠. 이에 대해 리베카 솔닛도 얘기한 적이 있어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에 이런 구절이 나오거든요.

<신뢰성은 생존의 기본 도구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페미니즘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알아가기 시작하던 시절에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핵물리학자 삼촌이 있었다. 어느 크리스마스에 그 삼촌은 우리에게 핵폭탄 연구자들이 사는 교외의 자기 동네에서 한 이웃집 부인이 한밤중에 알몸으로 집을 뛰쳐나와서는 남편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비명을 질러댔다는 이야기를-마치 가볍고 재미난 대화 소재인 것처럼-들려주었다. 나는 물었다. 남편이 진짜로 아내를 죽이려 한 게 아니란 걸 어떻게 아셨어요? 그는 내게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 그 사람들은 점잖은 중산층 가정이었다고, 따라서 남편이 아내를 죽이려 했다는 말은 여자가 남편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외치면서 집을 뛰쳐나온 데 대한 설명으로서 믿을 만하지 않다고, 오히려 여자가 정신 나간 거라고 ‥‥‥(p.18)>


매일매일 화나는 아침과 낮, 밤입니다.


수이 2020-11-16 11:28   좋아요 0 | URL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읽을 게 넘 많아..... 그래서 더 좋고
 
하리오 드립필터 - 3~4인용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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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마시는 똑같은 커피를 집에서 내려마시면 묘하게 불쾌한 향이 났다. 강한 향은 아니었고 커피향도 여전했지만, 뭔지 모르게 계속 거슬리는 향이었다. 회사에서 마시는 것과 같은 종류지만 로스팅 날짜가 달라서 그런걸까 싶어 며칠전에는 회사의 커피를 그대로 들고 가 내려마셨는데도 그 거슬리는 향은 여전했다. 이상하다, 커피는 똑같은데...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 하다가 여과지를 의심하게 됐다. 그렇게 여과지만 꺼내어 냄새를 맡아보니 여과지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흐음, 아닌데, 하고 다시 내렸는데도 역시나 불쾌한 향이 났다.


나는 고민끝에 알라딘에서 이 여과지를 주문했다. 1-2인용을 사무실에서 쓰고 있는데 3-4인용을 집에서 쓰기 위해 새로 주문한 것. 토요일 오전, 여과지를 배송받기 전에 집에서 내려마시면서 아, 역시나 거슬리는 향이 난다.. 했는데, 오후에 이 여과지를 받고 다시 커피를 내려 마시는데, 그 거슬리는 향이 전혀, 전혀 나지 않았다. 아, 역시나 여과지 문제였구나. 아니, 그런데 여과지 자체만 맡으면 아무 냄새도 안나는데, 왜 내려서 마실 때는 뭔가 거슬리는게 섞인 것 같은걸까? 알 수 없지만, 몇 장 남지 않은 그 여과지는 버렸다. 그 향을 또 견디기가 싫었다. 새로운 여과지로 상큼하게 커피를 내려마시면 되는데, 왜 그것을 견디는가.


알라딘의 이 하리오 드립필터는 커피를, 커피맛을 그리고 커피향을 제대로 즐기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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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 프랑스 책벌레
이주영 지음 / 나비클럽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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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책의 제목에 확 끌리지 않을까. 제목부터 너무 재미있지 않나.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니. 책벌레로부터 쏟아져나오는 에피소드는 또 얼마나 공감이 될까. 그런데, 와, 책벌레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없다니, 당황했다. 중간쯤 읽고 책장을 덮은 뒤에 다 읽을까 말까를 오지게 고민했는데, 너무 재미도 없고 스트레스를 내가 너무 받기 때문이었다. 책벌레는 작가 남편인 프랑스 남자의 가장 큰 특징이겠지만, 그러니 제목으로 정했을 것이겠지만, 책벌레라서 재미있는게 아니라 민폐되는 상황들이 너무 나오는거다. 수시로 물건을 잃어버리는 게 다반사라 일주일만에 핸드폰을 새로 사는것도 그렇고 돈도 막 떨어뜨리고 다니고, 여행 갈 때는 책 때문에 짐이 엄청 많아지고, 벽에 못 박아달라는 것도 미루고 미루면서 책을 읽고, 집안 어지르는 것과 치우는 것도 아내와 개념이 다르고... 이런걸 읽는데 나는 진짜 너무 스트레스 ㅠㅠ 싫어 ㅠㅠ 재미있는 지점이 나는 정말이지 하나도 없는거다.


둘이어서 좋겠구나, 아내도 열심히 책 읽는 사람이니 책으로 대화를 할 수 있어 좋겠구나 싶지만, 역시 가장 편하려면 혼자 사는 삶이 최고구먼... 했다. 방금 이 책의 리뷰를 검색했는데 다들 너무 재미있다고 별다섯 준 거 보고 또 아아... 나는 무엇인가...충격....


이 책 보다는 네이버웹툰 <모죠의 일지>가 훨씬 재미있다. 집에 있는 게 제일 좋다고 하는 모죠의 삶이, 엄마와 개그로 콤비를 이루고 사는 모죠의 삶이 건강해보이고 재미도 있어. 모죠의 일지 응원합니다.



그리고 책벌레 싫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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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10-15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뉘신가....했습니다. 프로필 사진이 달라져서 ㅎㅎㅎ

다락방 2020-10-15 09:17   좋아요 0 | URL
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새 프로필을 달고 이제 프로이트 글을 쓰러 갑니다. 그럼 이만 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10-15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없어 당황되는 이 책의 리뷰도.... 다락방님이 쓰면 재미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10-15 11:37   좋아요 0 | URL
아이고 별말씀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이 책 제목만 보고 재미 백프로 보장일 줄 알았다가 정말 당황했습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본컬렉터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1 링컨 라임 시리즈 1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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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디버'의 《본컬렉터》를 어제 다 읽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퇴근길 지하철에서도 열심히 읽었지만 내려서 집까지 걸어가는 중에도 걸어가면서 읽었다. 일전에 '혹시 저 알츠하이머 초기 아닐까요?' 라고 상담받으러 갔을 적에 닥터가 내게 걸으면서 책 보지 말라고 했었는데, 나는 의사의 말을 금세 어기고 걸으면서 또 책을 보았고..집 앞 횡단보도에 이르러서야 책장을 덮었다. 날이 너무 어두워져 글씨를 보기가 힘들었어..

그렇게 집에 가서는 자기 전에 침대 위에서 책을 펼쳤다. 뒤에 얼마 안남았기 때문에 마저 다 읽고 자고 싶어서. 그런데 뒤로 넘길수록 반전에 또 깜짝 놀랄 반전이... 우와. 이 사람도 이야기를 참 잘 만들어내는구나! 검색해보니 이 시리즈가 국내에 10권 이상 번역되어 있던데, 이 이야기들을 어떻게 다 써냈을까? 어쩌면 작가란 타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고로 몸을 쓸 수 없고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하는 '링컨 라임'은 뉴욕형사들의 부탁으로 연쇄살인범을 함께 찾아주기로 한다. 증인은 잘못 볼 수도 있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만 증거는 언제나 사실만을 말한다고 생각한 그는, 사고를 당하기 전에 언제나 뉴욕 시내를 걸어다니고 책을 읽으면서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것을 머리에 넣어두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현장의 증거들로 그는 상황을 그리고 범죄자의 심리를 짐작할 수 있고 이건 사건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가 건강해서 직접 현장에 가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하는 처지라, 그는 이번 살인사건 현장을 가장 먼저 발견한 순찰 경관 '아멜리아 색스'를 불러 현장 요원이 되어달라 부탁한다. 아멜리아 색스는 그렇게 링컨 라임의 눈과 발이 되어 처음으로 현장을 관찰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일을 하게 된다.


라임은 순찰경관이면서 사건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색스의 처음 담대한 결정에 그를 현장 요원으로 부른건데, 단순히 조용하게 순찰경관으로 살고 싶었던 색스는 갑자기 현장요원으로 불려간 게 너무 부담이 되고 싫다. 그러면서 폭력과 살인에 노출된 피해자를 보는 것도 너무 끔찍하고. 라임과 색스는 그래서 처음엔 불화한다. 그러나 사건을 해결해 가는 시간동안 그들은 점점 서로의 생각을 읽게 되고 친밀해진다. 라임도 언급하는데, 어쩌면 뛰어난 미모의 색스가 자신이 남자로서 그녀에게 위협이 될 수 없을걸 인지하기 때문에 그녀 역시 자신을 편하게 생각한거라고 추측하게 된다.


색스가 현장 증거 수집에 더 능숙해지는 것 그러니까 실력이 향상되는 걸 보는건 즐겁다. 두렵지만 자꾸 앞으로 가려고 하는 것도 짜릿하게 좋고. 이미 능숙한 중년의 남자와 이제 시작인 젊은 여자를 배치한 건 너무나 뻔한 설정이고 또 그녀가 누가 봐도 다시 돌아볼만한 미인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남자작가의 한계인가 싶지만, 색스는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 주장을 펼치고 사과해야 할 때는 사과를 하며 반항해야 할 때는 반항을 한다. 고집스런 여성인 것이다. 점점 더 실력이 향상되어가고 성장하는 여주인공 색스인 것은 너무나 좋지만, 다시 남자 작가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은, 그런 그녀 조차도 다른 사람을 욕하기 위해 그리고 흉보기 위해 '계집애같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물론 여자도 여자를 비하하고 혐오할 수 있지만, 이렇게나 주체적이고 피해자의 입장에 서는 그녀가 툭하면 '계집애같이'라며 다른 남자 형사들에 대해 생각할 때면, '색스, 당신에게 계집애는 어떤 사람인데요?' 묻고 싶었다. 계집애는 대체 뭔데 비하와 멸시의 용어가 되는것일까? 계집애는 어떤데요, 제프리 디버? 계집애가 뭐가 어쨌길래요?



무엇보다 좋은 건 색스가 끝까지 피해자의 편이라는 것이다. 연쇄적인 살인에 결국 FBI 가 수사권을 가져가게 됐을때, FBI 요원은 범인을 찾기 위해 모든 기술을 총동원하고 에너지를 쏟지만, 그러나 지금 어딘가에서 피해를 당하고 있을 피해자에 대한 색스의 언급에는 '범인을 잡으면 구할 수 있다'고 하는 거다. FBI 요원에게는 범인을 잡는게 가장 우선이었고, 그것은 당연하지만 그러나 색스는 이미 어딘가에서 죽어가고 있을 피해자를 살리는 게 급선무다. 결국 그녀는 모든 증거를 가지고 다시 라임에게로 몰래 도망와서는 피해자를 찾아보자고 그래서 구하자고 한다. 그녀가 피해자를 결국 구해내는 장면장면들은 그녀의 의지였다. 피해자를 구해야한다, 라는 그녀의 생각이 이 책에서 가장 좋은 부분이었다. 자신을 지휘하는 사람에게도 "피해자는요?" 라고 물을 수 있는 그 지점이 너무 좋다.


또한 연쇄살인범이 등장하지만 모든 피해자가 계속 죽어나가는 게 아니다. 그 점도 너무 좋다. 일전에 그 뭣이냐..그 일본 소설..머리에 비듬 가득한 탐정 나오는 소설에서는 죽고 또 죽고 죽어도 해결을 못하는 이야기라 너무 싫었는데, 제프리 디버는 그의 소설 속에서 수사하고 추리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죽는 것을 피한다. 윽 죽지마, 그렇게 죽이지말란 말이야, 라는 간절한 바람이 작가에게 들린것 같았달까.


여담이지만, 어딘가에서 본 제프리 디버의 인터뷰에서 그는, 아이와 동물을 해치지 않고 성폭행을 다루지 않는다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다고 했다. 살인이나 고문장면은 실제로 묘사하지 않는다고. 그러면서도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범죄소설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은 그의 능력이다. 그래, 아이와 동물을 해치지 않고 성폭행을 다루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하다!



제프리 디버는 이 연속된 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만으로 이야기꾼이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여기선 이제 어떡하지' 하는 지점에서도 그 다음 장면들을 착착 펼쳐낸다. 이를테면,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하는, 목 위를 제외한 몸이 마비된 자가 위험에 처한다면 그 때는 어떻게 될것인가, 아니, 이제 이 사람이 어떡하나, 할 때 조차도 그 다음장면들을 그려낸다.



색스가 굳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미인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고 읽기 전에는 이 둘이 결국 로맨스로 끝난다는 누군가의 리뷰에 뜨악했었다. 굳이 이 둘에게 로맨스를 줘야했나 싶은거다. 그런데 읽고나니 이 둘에게 있는 것은 우정 쪽에 가까운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상처를 갖고 있고,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을 알아보며 가까워지게 되는 경우가 있지 않니. 이 둘에게는 그런 식의 친밀함이나 우정이 찾아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거기에 이성적인 감정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다. 이미 라임의 머릿속에는 색스를 보면서 미인, 미인의 권력 이란 단어 같은 것들이 떠올랐으니까. 앞으로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이 둘 사이에 로맨스가 찾아온다면 그건 또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감당할 밖에..



나는 이 책의 다음 시리즈를 주문했고 지금 내게로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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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응, 자고 갈게.
    from 마지막 키스 2020-10-07 10:11 
    이 책을 다 읽으면 옮긴이가 그런 얘길 한다. 영화로 보면 그 영화속 등장인물들의 이미지가 각인되어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된다고. 정확한 워딩은 그게 아닌데 내가 책이 지금 없어가지고 아무튼 그런 뉘앙스의 글이었는데, 그러면서 옮긴이는 덧붙인다. 링컨 라임 역의 덴젤 워싱턴이야 그렇지 않지만, 색스 역의 안젤리나 졸리를 이미 본 이상 시리즈를 읽어가며 색스 역을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는 게 불가했다고. 나 역시도 그렇다. 링컨 라임이 사건을 해결하는 '머리
 
 
moonnight 2020-10-07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서 졸리씨와 워싱턴씨 커플이 자동연상 되어요 호호^^ 참 잘 어울렸는데♡

다락방 2020-10-07 10:47   좋아요 0 | URL
저 2,3권 주문했어요. 으하하하하.
영화 너무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안나더라고요. 다시 봐야겠어요. 아 책 재미있어요. 저 링컨 라임 시리즈 다 읽을거에요!!

바람돌이 2020-10-07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12권에서 링컨 라임 너무 멋있거든요. 전 남녀관계에서 저렇게 교과서적으로 쿨하고 멋진 남자 처음 봤어요. ㅎㅎ 그니까 꼭 12권까지 보세용... ㅎㅎ

다락방 2020-10-08 09:33   좋아요 0 | URL
저 이제 2,3권 샀는데 12권까지 언제보죠?
그런데 4권이 품절이에요 ㅠㅠ 중고 사면 되니까 뭐 ㅠㅠ 그런데 깨끗한거 사고 싶다 ㅠㅠ 아무튼 12권까지 달려보겠습니다. 그 길에 함께해주세요!! >.<
 
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 - 우리가 ‘여신’ 칭송을 멈춰야 하는 이유
이충열 지음 / 한뼘책방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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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뉴욕여행 갔을때 미술관 몇 군데를 혼자 다녔었다. 미술관마다 내가 혼자 거기에 이르렀던 사연들이 있어 모두 특별하고 좋았지만, 그림 자체만으로 내게 감동을 준 곳은 가장 규모가 작았던 <노이에 갤러리>였다. 애초에 건물 자체가 작았는데 3층은 리모델링인지 그림 교체라고 했는지 아예 전시가 없었고 2층에 그림들이 꽉 차있었는데, 아마도 내가 클림트의 그림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곳이 바로 그곳이었던 것 같다.


클림트라고 하면 워낙 몇가지 그림이 유명하기도 해서 반가웠지만 내 눈앞에 그가 그려낸 그림들의 화려한 색채가 펼쳐지는데 너무 놀랐다. 그림들을 보면서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한참이나 그의 그림들 앞에 서있었다. 너무나 유명한 <키스>그림도 그랬지만, 그중 내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건, <The Dancer>라는 그림이었다. 그 분홍빛의 화려한 색채가 눈이 부셨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고, 어떻게 색을 이렇게 썼을까를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런 한편, 그런데 왜 젖가슴은 드러났을까. 춤을 추는데 옷이 벗겨질 리도 없는데, 설사 옷이 벗겨지는 일이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 해도, 왜 대부분 옷을 입고 추는 댄스에서 하필이면 가슴을 드러냈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나는 애써 그 생각을 머리에서 몰아내고 그 화려함만을 간직했다. 그 그림이 너무 좋아서 갤러리에서 나오기전 기프트샵에 들어가 그림의 책갈피를 샀고,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선물로 보냈다. 나 한 개, 너 한 개. 나 이그림 너무 좋아! 미국에 사는 친구는 내 추천에 노이에 갤러리를 방문했고 나와 마찬가지로 클림트의 그림을 본것만으로도 그 작은 미술관은 소임을 다했다고 했다. 그리고는 내가 감탄한 그림의 포스터를 사서 내게 보내주었다. 그 일은 내게 큰 기쁨이고 소중한 해프닝이며 평생 기억할만한 일이 되었다.


포스터를 꼭 내 방에 걸어두어야지, 생각했는데 그냥 포스터만 붙이긴 아쉬워 액자를 하나 구입하려 했는데, 액자가 너무 비싼게 아닌가. 지금은 부모님 집에 살고 있으니 그냥 벽에 붙여두고, 나 독립하는 날 액자 사서 근사하게 거실에 혹은 꾸미게 될 서재에 걸어두어야지, 하고 일단 지금은 내 침실 벽에 포스터를 붙였다. 방이 환해지는 것 같았는데, 그런데도 나는 자꾸 이 여성의 가슴이 신경쓰였다. 이 그림이 너무 좋고, 클림트 대 화가이고, 이 그림은 명작이겠지만, 그런데 저 가슴이 저렇게 드러난 건 불필요해보였다. 어떻게 가릴까 싶었지만 내가 무슨 수로 그걸 가려? 하는수없이 그냥 그대로 벽에 딱 붙여두었는데, 내가 붙이는 걸 본 엄마가 보시더니, 보자마자 이러시는 거였다.


"젖통이 다 나왔네."


나는 깔깔 웃으며 엄마, 젖통이 뭐야 젖통이..가슴이라고 해야지! 라고 대꾸했는데 엄마는 다음에 이렇게 물으셨다.


"꼭 그렇게 젖통을 내놓고 그려야했대니?"


나는 그 말에 아무말도 대꾸할 수가 없었다. 내가 클림트가 아니니 대답할 수 없기도 했지만, 꼭 젖통이 나와야 하느냐는 물음에 대체 뭐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장면에서는 반드시 가슴 노출이 필요하다고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그림은 이 그림이다.





나는 이 질문이야말로 본질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꼭 그렇게 가슴을 내놔야만 했다니? 라는 물음. 


이충열의 이 책, [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는 우리엄마의 이 물음을 좀 더 고상하게 표현한 것이다. 왜 남성 화가들은 그림에서 여성들을 기울이고 눕히고 멍하게 그려두었을까. 세계적 명화라는 것들 속의 여자들은 왜 하릴없이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가. 그 가슴은 결국 누구에게 보여지는가, 그 벗겨진 가슴을 보는 주체는 누구인가!


이충열은 명화들을 보면서 그 안에 등장한 여자들의 포즈를 따라해본다고 한다. 이 동작 자체가 자연스러운 동작인지. 남성화가들이 그린 그림속 여성들의 포즈는 실제 여성들이 현실속에서 자주 취하는 포즈도 아니었을 뿐더러, 애시당초 따라하기 어려운 포즈들도 많았다. 특히나 나도 보면서 이해 안되는 그림이 있었는데,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샘>이 그것이다.



이충열은 묻는다. 항아리에 든 물을 버릴때 저런 포즈로 버리는 것이 자연스러우냐고.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저 여성은 항아리에 든 물을 다 벗고서 저런 포즈로 버리는 것인가. 왜? 저거 누가 저렇게 하라 그래도 못하겠는데 굳이 들어올려 한쪽 어깨에 얹어서 저렇게 따라 버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렇게 할 필.요.가 없었는데, 굳이 저렇게 그려야 했다면, 왜, 누구를 위해 그러해야 했는가.


왜 그림속 여성들은 저런 포즈들을 취해야 했는가. 


적장의 목을 벤 '유디트'를 다룬 그림들조차도 유디트는 벗고 있고 표정은 단호함과 거리가 멀다. 남성화가들이 그린 유디트는 적장을 죽인 용맹한 여성이 아니라, 팜므파탈적 요소를 가진 여성이었다. 이런 여성에게 잘못 걸리면 죽는다는 메세지. 



지은이의 이름이 '이충열'이라서 나는 남성작가가 뻘소리한 책이라 짐작하고 이 책에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이 작가는 안그래도 이름 때문에 남성으로 오해를 받는 여성작가라고 한다. 작가소개를 보면 미술을 포기했다가 문과와 이과를 거쳐 결국 현대미술을 전공하게 되었다고. 그러는 동안 그림들속의 여성혐오를 발견하고 자기 안에 여성혐오도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는데,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이충열이 그림을 제시하고 끊임없이 묻는 것은, 그간 그림을 보고 내가 느꼈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게 했고, 현재에 이르러 시각적으로 남성들이 여성을 성적대상화 시키는것까지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이충열은 '벡델테스트'처럼 '충열테스트'를 만들어 독자들에게 묻기를 제시한다. 앞으로 그림을 보게될 때 이렇게 세가지를 물으라는 것.


1. 필연적인 노출인가?

2. 표정과 동작의 의도가 명확한가?

3. 직업, 나이, 성격등 개인적 특성을 알 수 있는가?



이중 두 가자 이상의 질문에 '아니오'란 답이 나온다면 그 그림은 단순 누드라는 거다. 그렇게 다시 그림들을 보면서 그 질문들에 답을 해보자니, '필연적인 노출인가'라는 1번 질문부터 '그렇다'는 답을 할 수 있는 그림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클림트의 댄서 라는 그림에 있어서도 그랬다. 필연적인 노출인가? 물으면 결코 그렇다는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또한 엄마의 질문도 생각났다. 젖통을 굳이 드러내야 했다니? 이것은 이충열의 제1질문과 똑같은게 아닌가. 그 노출이 반드시 필요했는가?


놀랍게도 대부분의 여성노출 그림에 '응 필요했어!'라고 답할 수 있는 그림이 없더라. 그렇다면, 그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왜 그토록이나 열심히 그려댄 것인가. 그걸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커버칠 생각이었는가. 그 그림을 보는 이는 누구이며, 그 그림을 보면서 현실 여성에 대한 관점과 시선이 달라지는 것은 또 누구를 위해 이익인가. 

물론 이충열은 '남성'화가들만 그런 그림을 그린 건 아니라는 사실을 얘기해준다. 남성 주체의 시각에 길들여진 여성 화가들도 여성을 수동적으로 그리기도 했다고. 그래야 남성 소비자들에게 팔리니 그런 시선에 길들여지는 게 어떤 이들에게는 자연스런 일이었을 거라는 거다.

그 숱한 여성혐오적 그림을 그리는 가운데, 아버지의 강압과 아버지 친구의 강간, 그 모든 싸움을 해내면서 주체적으로 여성주체적 그림을 그려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라는 화가를 알게된 건 큰 수확이었다. 


짧은 책인게 아쉬울만큼 좋은 질문으로 가득한 책이었다. 좀 더 많은 그림을 보여주고 좀 더 많이 질문하도록 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나 이만큼으로 충분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나는 앞으로도 미술관을 종종 찾을 생각인데, 그 때마다 노출된 그림들 앞에서 스스로 질문할 것이다. 필연적인 노출인가? 짐작하건대 아마도 그렇다는 답을 할 수 있는 그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 너무 좋다. 이런 책을 읽게 되어서. 그림을 볼 때 질문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라서. 무엇보다 미술하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글로 써줬다는 게 너무 짜릿하다. 세상 곳곳에서 모든 현상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계속 책을 내주었으면 좋겠다. 아직 질문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덕분에 질문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저는 ‘누드‘를 이렇게 정의하고자 합니다.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를 기준으로 한 남성만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성적 욕망의 소유자라는 입장에서, 남성을 시선의 주체로 놓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이미지‘라고 말입니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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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0-04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젠틸레스키의 유디트가 감동적이죠. 전 피렌체에서 저 유디트를 봤을 때의 감동을 잊을수가 없어요. 같은 미술관에 있는 카라바조의 유디트와는 정말 다른..... 아 이게 진짜 그림이구나 하는 느낌. ^^

다락방 2020-10-04 15:59   좋아요 0 | URL
네! 젠틸레스키의 유디트 그림은 숱한 남자화가들의 유디트와는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주체적이면서 여성연대적이었어요!! 저도 언젠가 제 눈앞에서 그 그림을 직접 보고싶네요. 이런 코로나 상황에서 그런 날이 언제올지 알 수 없지만... ㅠㅠ

syo 2020-10-04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가 클림트는 아니지만, 제 생각에 클림트한테 저 가슴을 드러내는 게 꼭 필요했니? 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에 관련된 미학적 이유를 댔겠죠.

클림트가 그렇게 대답할 거라고 가정하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면,
저 가슴 노출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다락방님의 견해고 관점인 것 같아요.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클림트의 견해고 관점이듯이요. 그러니까 우리가 해야할 질문은 어느 한쪽의 관점을 기정사실로 전제한 ˝왜 필요하지 않은 것을 그렸는가?˝ 가 아니라, ˝여성노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왜, 무엇을 위해 그렇게 생각했는가?˝가 아닐까요? 물론 두 질문은 결국 같은 과녁을 겨냥하겠지만요.

다락방 2020-10-04 18:59   좋아요 1 | URL
클림트의 저 그림은 제가 제 방에 걸어둘 것이지만,
클림트가 아닌데 클림트에게 이 가슴 노출은 필요했을 것이다, 라고 가정하는 것이야말로 이시점에 불필요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데 자기 입장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저것이 필요하다고 답할 것이다, 라고 한다면 뭐 클림트만 그렇겠습니까. 누구든 어떤 상황에서든 나는 그래야 했어, 라고 답하겠지요. 그렇다면 반복되는 문화와 반복되는 세상이 이어질 것이고요. 저는 굳이 클림트에게 필요했을 것이다, 라고 가정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진 않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여성을 수동적으로 그리고 그렇게 그리는 주체, 그리고 감상하는 주체가 남자였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뿐이지요. 그래서 저는 저것이 꼭 필요했는가, 라는 물음은, 쇼님이 같은 과녁을 향한다고 했을때도 어쨌든 본질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쇼님이 바꿔서 질문하고자 한 그런 질문이 나오기 위해서라도 질문했어야 하는 것이고요. 가슴 노출이 꼭 필요했는가,라는 질문이야말로 본질적이죠. 자연스레 따라나오니까요, ‘누구에게‘, ‘왜‘ 가요.



˝창조주가 세상 만물을 만든 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한 것처럼, 자신이 ‘보기에 좋은‘ 여성을 ‘창조‘해내고자 하는 남성 화가의 욕망과, 아름다운 여성 그림을 주문하고 소유함으로써 여성 신체를 소유하고자 했던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들의 욕망이 잘 맞아떨어진 것이 바로 누드화였습니다.˝ (p.107)


syo 2020-10-04 19:32   좋아요 0 | URL
저는 ‘클림트에게 저 노출이 필요했을 것이다‘라고 가정한 게 아니라, ‘클림트는 스스로 저 노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라고 가정한 거구요. 그거 두 개는 같은 말이 아니에요.

클림트가 저렇게 그렸잖아요. 그럼, 스스로 이렇게 그릴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그려야지- 하고 그렸다기보다 자기는 자기만의 이유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렸다고 보는 게 납득이 가지요. 그래서 그 생각을 비판하자는 거구요. 작가가 자기가 필요해서 그렸다고 자기 입장을 이야기하면 그걸 듣고 나서는 비판하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하실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음, 화가가 자기 입장상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렸다고 하더라도 비판할 부분은 비판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핑계없는 무덤 없다는 말 있듯이 자기 입장 없는 사람 누가 있느냐, 그렇게 봐주면 안된다˝라는 말씀은 정확한 반론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저자에게 입장이 있건 없건 별로 안 봐주는 스타일입니다. 오죽하면 다자이 오사무 <사양> 비판할 때도 시대 상황 고려하라는 이야기를 들었겠어요. 제 말대로 클림트가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건 그렇지 않건, 아니면 심지어 다락방님 표현대로 클림트에게 그게 필요하다고 가정하건 그렇지 않건, 비판의 여지가 있으면 비판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결국 우리는 비판해야 한다는 같은 견해입니다.

가슴 노출이 꼭 필요했는가- 라는 질문은 전혀 본질적인 질문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술은 때로 필요하지 않은 것도 하니까요. 만약 클림트가 스스로 가슴 노출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저걸 그렸다면, 가슴노출이 필요한가 하는 질문의 답은 클림트가 저 그림을 그리는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니까요. 저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클림트가 가슴 노출이 필요하다고 인식해서 저걸 그렸고, 그래서 그 인식을 격파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게 본질적 질문은, ˝왜 남성 화가들은 여성의 그림을 그릴 때 가슴 노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입니다.

다락방 2020-10-04 20:19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 쇼님의 댓글을 읽고 클림트에게도 그만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거라고 받아들였어요. 저는 그 이유까지 제가 유념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고요. 그렇지만 지금도 ‘필요했을 것이다‘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가 다른가? 라고 하면 그렇게 다른 말 같지도 않아요. 필요는 생각에서 오는게 아닌가요? 어떤 이유가 있으니 그렸을 것이고 그것은 그 이유를 생각한 것이며, 필요인 것이겠지요.

요약하자면 어쨌든 비판해야 한다는 견해는 같은데 본질적 질문에 대한 차이가 있는 것이군요. 저는 궁극적으로 쇼님이 질문한 것에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질문에서 더하고 덧붙이면 결국 그 질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본질적이란 단어에 대해서 어쩌면 개념을 다르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본질적 질문이라고 한 건, 그 그림을 보자마자 나오게되는 즉각적 반응에 대한 것이었어요. 저 그림을 딱 보았을 때, ‘저 가슴은 왜그렸지?‘ 가 되고 저희 엄마는 ‘그 가슴을 꼭 그려야했대니?‘ 라고 물었다 했잖아요. 제게 본질적 질문이란 그런 뜻이었어요. 즉각적으로 튀어나오는 질문이요. 결국은 ‘왜 남성화가들은 여성의 가슴을 노출하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에 이르긴 하겠지만, 그리고 결국 이렇게 이르는 질문을 쇼님은 본질적이라고 했지만, 저는 ‘뭐야 왜 저렇게 그렸어‘가 먼저 튀어나오거든요. 이충열은 왜 여자들 다 눕혀놨을까? 라고 질문한것처럼요. 저는 그런 질문을 본질적 질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나오고 나서야 답을 하고 또 하는 과정에서 찾아간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이렇게 쓰다보니까 좀 말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