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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 :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ㅣ 평화 발자국 9
김수박 지음 / 보리 / 2012년 4월
평점 :
가스렌지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불을 켜두었을 때 조카가 그 근처로 가면 나는 조카에게 거기는 뜨거우니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말한다. 길을 걷다가 뒤에서 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옆에 있던 사람에게 물러서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반드시 그들을 뜨겁게 사랑해서는 아니다. 그들이 다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고, 나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이 삶을 단 한 번 밖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태안으로 내려가 오염된 바닷가를 깨끗이 만들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저 먼 아프리카로 날아가 굶주린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기도 한다. 이건 누가 시켜서 하는게 아니다. 우리가 '그냥' 아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내가 살고 있으니까. 우리는 혼자 살지 않으니까. 우리는 함께 살고 있으니까.
그런데 동네 꼬마도 알고 나도 아는 걸 멍청한 삼성은 모른다.
화장을 하면 안 된다, 뛰면 안 된다, 세 명 이상 모여 있으면 안 된다, 무스나 스프레이를 사용하면 안 된다, 손톱을 기르거나 매니큐어 바르면 안 된다.
제품을 위한 교육인 거죠.
안전 수직은 교육 받은 적이 없어요. (p.36)
멍청한 삼성은 화학물질과 오염된 공기로 가득한 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안전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직원들이 건강을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다만, 좀 더 많은 제품을 생상할 수 있는 방법만을 가르칠 뿐이다. 몰라서 그랬을 거다. 알면서도 그랬다면, 그건, 할 짓이 아니잖아.
삼성한테 화가 나는건 비단 이 때문만은 아니다. 삼성은 직원을 그리고 직원의 가족을 무시했다. 생산직에 근무해서 암에 걸린 직원이 부자이고 많이 배운 사람이었다면, 그리고 가족들도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사람이었다면 -그랬다면 그 일을 하려고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때도 사표 쓰기를 종용하고 산재가 아니라고 떼를 쓰며 바깥으로 말을 내지 말라고 했을까? 나는 알지만 너는 여기까지는 모를거야, 설마 그런걸 알겠어? 설마 그렇게까지 하진 않겠지, 하는 사람에 대한 무시가 그들에게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삼성이 실수했다. 지금은 매스컴을 장악해서 민주화운동을 빨갱이들의 데모라고 설득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니란 말이다. 이것도 모르는 건 아닐테지, 설마. 무언가 잘못된 것 같으면 그걸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걸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이제는 거기에 대해 주변으로 퍼뜨려줄 사람들이 생겼고, 그들을 도와줄 매체도 생겼다. 그러니까 삼성은 더이상 사람들을 무시하지 못한다. 그 짓은 끝장났다. 이제는, 그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를 귀 기울여야 할 때다. 처음 그것을 말하는 사람에게는 지금까지 오는 과정이 힘겨웠지만, 이제는 그들의 힘이 되어주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삼성이 망하면 나라도 망할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기업도 그렇지만 나라도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삼성이란 기업이 '망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무식한 삼성이 이제는 상식을 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윗대가리부터 교육을 받아야 한다. 백혈병 걸린 직원에게 찾아가 사표쓰기를 종용한 과장은 자의로 그랬을까? 그것이 기업의 이념이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위에서부터 상식 교육을 똑바로 받아야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삼성이 제발, 부디, '정상적인' 기업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스크루지 영감은 자신이 가진 돈을 잃는 것이 가장 무서운 줄 알았다가 꿈을 꾸고 나서야 가장 무서운 건 자신의 무덤앞에 아무도 찾아와주는 이가 없다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삼성이 가장 무서워해야 하는 건 자신들의 기업 가치가 내려가는 일이 아니고 잠재적인 고객이 불매를 선언해서 매출이 하락하는 것이 아니다. 삼성이 가장 무서워해야 하는 건,
귀사에 입사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건 그만큼 삼성이 '그들이 데리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취급했는지를 보여주는 거니까. 그만큼 생생한 증거는 없다.
삼성이 이대로 계속 멍청하게 굴면 여기서 그리고 다른 어딘가에서 사람들은 삼성이 멍청하다고 알릴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이미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 책속에서 황유미씨의 아버지는 기자들에게 얘기했고 그리고 이 책의 작가는 이렇게 책으로 얘기한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리뷰로 얘기할 것이고, 이 사실을 아는 자들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시간은 좀 오래 걸릴지도 모르지만, 삼성의 반도체 공장에는 일하려는 자들이 없어질 것이다. 암에 걸려 죽을까봐, 가 아니라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니까. 그런데 우리는 사람이니까.
삼성아.
상식을 키우자. 모르면 배우자. 예의를 기르자. 그것도 모르면 배우자. 오만을 버리자. 그리고 제발, 정상적인 기업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