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들 창비세계문학 2
리처드 라이트 지음, 김영희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는 자기가 왜 죽였는지 결코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할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 이유를 말하려면 자신의 삶 전부를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메리와 베시를 죽인 행위 자체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게 무엇인지 결코 누구도 이해시킬 수 없다는 바로 그 생각과 느낌이었다. 그의 범죄는 밝혀졌지만, 그것을 저지르기 전에 그가 느꼈던 느낌은 결코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죄를 인정함으로써, 그의 삶이었던 그 깊고 숨막히는 증오를, 원치 않아도 품을 수밖에 없던 증오의 느낌을 전달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죄를 인정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전달할 수 있을까? (pp.431-432)

 

 

 

 

내가 만약 이 한 권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뉴스에서 범죄자를 다룰때 그 범죄자에 대한 분노를 가졌을 것이다. 잔인한 범죄에는 그에 맞는 형벌을 가해야한다고 당연히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을 읽음으로써 비로소, 한 사람의 범죄자가 저지른 범죄가 사회적 문제때문일수도 있다고 말했던 사람들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어떤 '죄'를 저지르기까지는 그 사람의 삶이 형성된 과정과 시간이 있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축적된 경험과 쌓였던 분노.

 

 

이 책 속의 흑인 청년 비거는 마음 속 깊이 분노를품고 있었다. 그 분노가 언제고 폭발할 것 같아서 자신이 두려웠다. 자신 안에 분노가 있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런 분노로 인해 백인 여자를 죽이려고 계획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방 하나에서 네 가족이 함께 살았고 하루하루 먹고 사는것도 힘겨웠다. 그가 그 자체로서의 자신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동네 친구들과 모여서 거리를 방황해야했다. 물론 그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비행기를 몰아 보고도 싶었고 군인이 되고도 싶었다. 사업을 하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흑인에겐 이 모두가 허락되지 않았다. 백인들은 그들에게 교육을 받으라고 했으며 자유롭게 살라고 했다. 단, 그들-백인들-이 정해놓은 구역 안에서만.

 

 

 

물론 그들에게도 자비를 베풀어주는 백인들이 있었다. 비거에게 일자리를 주려고 했던 돌턴 씨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흑인들의 청년 회관에 탁구대를 기증하고 거액의 기부금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가진 경계선 바깥의 땅에서만 흑인을 거주하게하고, 그들로부터 높은 임대료를 받는다. 그것이 관습이었으니까. 그것이 그의 이득이었으니까. 임차인과 집주인으로서 흑인은 더 가난해지고 돌턴씨는 더 부자가 됐다. 그런 그가 일자리를 주고 기부금을 냈다고해서 흑인의 삶을 이해했다고 보여질 수 있을까? 그를 마냥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비거의 변호를 맡은 맥스 변호사는 돌턴을 향해 '점잖은 돌턴 씨는 돈을 기부함으로써 자신의 기분은 달래보려 했다(p.552)' 고 말한다. 나는 돌턴을 보면서 작년 연말에 보았던 뉴스를 떠올렸다. 뉴스에서는 삼성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얼마냈는지 말하고 있었다. 감히 내가 만져볼 수 없는 큰 금액이었고 그 금액은 재작년보다 더 늘어난 금액이라고 했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는 것, 힘이 센 쪽이 약한 쪽을 억압하는 것, 차별을 하고 언론을 장악하는 것. 이 모두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일이었다. 나는 내가 만약 오래전의 미국에서 태어난 백인이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를 생각해보았다. 나는 당연한 듯 흑인을 노예로 삼지 않았을까. 나는 그 때 세상이 내게 보여주던 신문 기사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았을까. 그 때 신문의 이런 기사가 실렸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을까.

 

 

이곳 남부에서 우리는 흑인이 분수를 지키게끔 단호히 조치하며, 좋은 뜻으로건 나쁜 뜻으로건 백인 여자 몸에 손이라도 닿을 시엔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만든다.

흑인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상상하고 불만을 품을때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은 시민들이 직접 법을 대신해 말썽을 부리는 검둥이 한명을 본보기로 삼는 것이다. (p.393)

 

 

지금 보면 이렇게 무섭다고 느껴지는데, 내가 그 당시에 이 기사를 봤더라도 이것이 선동적이고 편견을 조장하는 무서운 기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내가 만약 그 시대에 태어난 흑인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매일매일의 고된 일상을 당연하다 여기며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가기로 마음 먹었을까? 나는 비거처럼 분노를 간직한 채 그것을 터뜨리는 것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을 원망하기는 했을 것 같다. 지금의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그랬던것처럼.

 

 

"신문에서 매일 사람들에게 증오를 불어넣는 판국에 도대체 어떻게 사람들 마음을 바꾸겠다는 겁니까?" 잰이 물었다.

"하느님께선 바꾸어놓으실 수 있지요!" 목사가 열을내며 말했다. (p.405)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펜을 들었다. 그리고 밑줄을 긋고 그 밑에 이렇게 낙서했다. '그렇다면 그동안엔 왜?' 이 세상을, 흑인이 처한 가혹한 현실을 하느님이 바꾸어놓을 수 있다면 대체 왜 그동안엔 바꾸지 않았던 것일까? 어떻게 하느님을 원망하기 보다 믿을 수 있을까? 백인도 믿는 하느님을, 백인과 흑인을 만들어 둔 하느님을, 죽으면 우리 모두가 같은 곳에 갈 거라는 하느님을 어떻게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왜 죽어서는 같은 곳에 갈 수 있는데 살아서는 같은 곳에서 살면 안되는걸까? 하느님말고는 전혀 의지할 곳이 없었기 때문에 감히 하느님을 원망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걸까?

 

 

 

책은 처음부터 조마조마하게 읽힌다. 그러다 결국 이글이글 분노가 타오른다. 흥분하고 수치심을 느끼고. 특히나 흑인들도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 비거에게 다가가고 악수를 하고 같이 밥을 먹자고 청하는 메리와 잰을 볼때는 그들의 그런 서투른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미 삶 전체를 억압 받으며 살아온 사람에게 갑자기 손을 내밀어 우리는 달라, 너도 같다고 생각해, 라고 말하며 그런 행동을 부담스러워하는 비거로 하여금 자신들과 동석하게 만들다니. 그들의 의도가 선했다한들, 그 순간의 비거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은게 아닌가. 그들이 생각한 건 그들 자신의 기분이나 만족감이 아니었던가,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해서. 비거는 훗날 그때의 자신이 '비굴한 개가 된 기분(p.489)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마지막 맥스 변호사의 변호에 대해서는 할 말도 많고 의욕도 충만해져서 오히려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것 같아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다. 나는 그가 최선을 다해 싸웠다는 것을 안다.

 

 

 

 

책에 실린 작가연보를 보면

1926년 멤피스 도서관은 흑인에게 책을 대출해주지 않아 백인 동료의 이름을 빌려 책을 봄. (p.658)

 

 

라고 되어있다. 작가인 리처드 라이트는 실제로 그 삶을 살았다. 그리고 책을 읽었고, 어쩌면 그래서 이 소설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이 나왔을 당시에 백인에게 또 흑인에게 어떻게 다가갔을지 상상만 해볼 뿐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소설이 왜 쓰여져야 하는지를 알수 있었다. 어린 시절 내가 처음 소설이란 걸 읽게 됐을 때, 그 때 소설은 내게 그저 재미를 주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게 소설은 다르다. 재미와 이야기를 주고 감동을 준다. 세상에 일어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 말해준다.

 

무엇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음으로써 '하나의 눈에 보이는 사건 뒤로 길고 긴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하나의 범죄는 한 인간이 저지르는게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가 저지른 것일 수 있다는 것도.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reamout 2013-01-13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 읽기 시작한 소설이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인데, 그 소설 속 현재가 1928년이고 멤피스와 멀지 않은 남부예요. 흑인에 대한 일상적 차별, 유대인에 대한 미움, 공산주의자에 대한 무조건적 증오, 가난한 자들에 대한 부자들의 조소. 20세기 소설의 4분의 3은 여기에서 나온 듯 해서.. 마음이 쓸쓸하네요.

다락방 2013-01-14 09:50   좋아요 0 | URL
오, 드림아웃님, 이 책도 그래요. 흑인에 대한 일상적 차별과 유대인에 대한 미움, 그리고 공산주의자에 대한 증오까지 이 책에 다 나와요. 언론에서는 전 국민이 공산당을 미워해야 한다고 선정적인 기사를 내보내죠. 물론 흑인에 대해서도 그렇구요. 어휴, 읽으면서 어찌나 답답하고 무섭던지요. 그 시대를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견디며 살아온걸까요..

다락방 2013-01-14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꺅 >.<

오늘 100, 총 285596 방문

다락방 2013-01-17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글에 추천이 (이것밖에)없다니 이상하군.

moonnight 2013-01-16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네번째 추천은 저예요. ㅠ_ㅠ

얼마전에 영화 '헬프'를 봤어요.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내가 저 시대에 살았더라면 대다수의 백인들과 다르게 흑인들을 동등하게 대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다들 그러니까,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 자체가 마비된 사람들을 보니, 영화라도 너무 무섭게 느껴졌어요. 이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맞아요. 정말 좋은 리뷰입니다. ^^

다락방 2013-01-18 12:18   좋아요 0 | URL
저 역시도 마찬가지에요, 문나잇님. 제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들을 대할수 있었을까, 를 생각해보면 도무지 자신이 없더라구요. 그러면서 그 시대에 그 사람들이 정의롭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지요.

문나잇님, 이 책이 좋은 책입니다. 읽어보세요. 우리는 하나의 사건뒤로 숨겨져있는 길고 긴 사연이 존재함을 알 수 있어요. 제게는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수확이었어요.

이진 2013-01-17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글에 추천이 없다니 이상하군요.

차별은, 그 자체로 폭력적이고 잔인한 것이죠. 아픈 것이기도 하구요. 굳이 흑인뿐만이 아니라도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찮게 보이는 것이 차별아니겠습니까. ㅠㅠ 저는 조선시대만 생각하면 울컥해요. 핍박받은 여성들을 떠올리면 더욱요. <채홍>을 읽어서 그런 걸까요.

다락방 2013-01-18 12:2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사실 저는 추천이 별로 없다니 이상하군, 하고 제가 댓글 단 게 나름 유머였는데 아무도 웃어주지 않아서 뭔가 자뻑에 빠진 여자사람이 된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네, 차별은 흑인에게만 가해진건 아니죠. 여자에게도 성소수자에게도 유대인에게도 가해졌었죠. 그것이 폭력적이란 것을 가하는 당시에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것이 주는 폭력성에 다들 취하는 것 같아요. 한참 시간이 지난후에야 알 수 있으려나요. 당시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흐음.
 
마음이 아플까봐 꿈공작소 5
올리버 제퍼스 글.그림, 이승숙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에게는 29개월을 살고 있는 조카가 있다. 아직 소녀라고 부르기엔 어린 나이. 집 밖을 벗어나면 그곳이 어디든 소리지르며 뛰어다닐 만큼 순수하다. 말을 할 수 있게 되고부터는 이 아이는 아주 궁금한 게 많다. 수시로 묻는다. 이모 왜? 할머니 왜? 엄마 왜? 작년 가을, 온 가족이 기차를 타고 부산을 가고 있는중에 자기 아버지의 무릎 위를 밟고 서서 뒤를 돌아 나에게 쫑알쫑알 대는데, 지나던 승무원이 위험하니 자리에 앉으라고 얘기했다. 아이 아버지는 앉으라고 아이를 달래는데, 아이는 승무원을 향해 또 묻는다.


"왜?"


자주 우리 집에 놀러오는 조카는 퇴근후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내가 내 방에 들어가기 무섭게 쪼르르 나를 따라온다. 그리고는 내게 이모 뭐해? 하고 묻는다. 나는 옷갈아 입어, 라고 대답한다. 내 책장에서 책을 꺼내고는 이모 책읽자, 라고 한다. 그렇게 침대위에 책을 꺼내두고는 곧 안아달라고 한다. 저기 위에, 자신의 팔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는 책을 꺼내려고. 내가 번쩍 조카를 안아주면 조카는 책장 맨 위의 책을 어김없이 꺼내고서는 또 보자고 한다. 아직 글자를 익히지도 못한 아이인데. 키우는 열대어 어항 앞에 가서는 물고기 밥 줬냐고 묻고 삼촌 방에 들어가서는 이것저것 다 만져가며 이건 뭐냐고 묻는다. 내가 하품이라도 할라치면 이모 졸려? 라고 묻고 할아버지가 등산복을 꺼내 입으면 할아버지 어디가? 라고 묻는다. 불분명한 발음으로 조카가 물어댈때마다 우리는 즐겁게 웃으며 대답해준다.


이 책의 호기심 많은 소녀를 만날 때, 딱 나의 조카를 보는 것 같았다. 너는 누구 조카야? 라고 물으면 이모 조카야, 라고 대답하는 나의 조카.







조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할머니다. 참 이상도하지, 할머니가 키워준 것도 아닌데, 가끔 우리집에 놀러올 때 보는게 전부인데, 그런데 왜그렇게 할머니를 좋아할까. 조카가 보고싶은 마음에 영상전화를 하면 이모, 하고 부르고서는 이내 할머니 보여줘, 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투덜대면서 할머니를 바꿔줘야 한다. 내가 걸었는데!!!!! 부산 여행중에는 차 안에서 조카가 낮잠이 든 터라 아이 엄마와 잠든 조카를 두고 다른 식구들끼리 잠깐 나갔다 왔다. 자갈치 시장에 갔다 다시 차로 돌아갔는데, 고새 일어난 조카는 할머니와 이모를 찾으며 울었단다. 차 문을 열고 우리가 타기 무섭게 조카는 자기 할머니에게 얼굴을 들이밀고는


할머니 보고싶었어


라고 말한다. 아, 이 어린 아이가 보고싶다는 말을 아는구나, 그게 뭔지 아는구나.




소녀에게는 할아버지가 그런 존재였다. 소녀가 세상의 모든걸 궁금해하고 호기심 가득한 채 신나게 지낼 수 있었던 건 언제나 자신의 옆에 할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호기심에 답을 해주고 또 그 모든 말들을 들어주었던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가 어느날 자리를 비운다. 소녀는 텅 빈 의자를 발견하게 된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나는 그림책을 읽다가 울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소녀가 이 텅 빈 의자를 발견하는 순간, 텅 빈 의자 앞에 놓여있는 소녀를 마주하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이 아이에게 처음 닥쳐온 이별, 이 소녀는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할까. 소녀는 이 아픈 마음을 어쩔줄몰라 자신의 마음을 꺼내어 병에 넣고 목에 건다. 마음을 꺼내고 나니 더이상 마음이 아프지 않다.






아이에게 죽음을 가르쳐줘야 하는 시점은 언제일까. 얼마전 영화 『아무르』를 보면서도 나는 어른이라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만약 나였더라도, 그러니까 이만큼이나 자란 나이지만, 소녀와는 거리가 멀지만, 나 역시도 그런 상황에서 마음을 꺼내어둘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고 싶어할 것 같다. 네, 내 마음을 꺼내어 병에 넣어둘게요, 그럴게요. 그런데 아이가 이걸 어떻게 감당할까. 이 소녀가 어떻게 감당할까. 네가 울고 소리지르고 슬퍼하고 힘들어해도 그 의자에 다시 할아버지가 와서 앉는 일은 없어, 이 잔인하고 모진 말을 어떻게 해주어야 할까.



소녀는 이제 더이상 마음이 아프지 않은대신, 세상에 무엇도 재미있는게 없다고 느낀다.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고 아무것도 신나지 않아.






그리고 소녀는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 어릴적의 자신과 닮은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 소녀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 나도 저런 적이 있었지.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들어가있는 병을 깨뜨리고 싶어한다. 그러나 던지고 때려봐도 그 병은 깨지지 않고 그 안의 마음은 자신에게 돌아오질 않는다. 그 때, 자신의 어린시절과 닮은 소녀가 그 병을 건네받는다. 그리고 그 병안에 있는 마음을 꺼내준다.







마음을 꺼낸 후에 그 마음은 제자리를 찾는다.





빈 의자를 발견 했을 때도, 그리고 마침내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도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고인다. 양철나무꾼님의 리뷰를 보았을 때만해도 나는 이 책을 조카에게 선물할 생각이었다. 언제고 이 어린 아이도 누군가를 잃는 아픔을 경험하게 될텐데 그때 이 책을 보았던 것이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런데 조카를 주기 전에 내가 펼쳐보고 내가 눈물을 흘렸다. 내가 봐도 이런데 이걸 아이들이 어떻게 읽는담, 나는 도무지 이걸 보여줄 자신이 없다. 이걸 읽게 할 자신이 없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 그걸 내가 할 자신이 없으니 나는 그것을 아이의 엄마에게 맡겨야겠다. 이 책을 보여주렴, 그러나 언제 보여주는게 좋을지는 너에게 맡길게, 라고. 이 책을 아이에게 보여주기 전에 읽어보게 될 내 여동생도 코끝이 찡해지겠지. 여동생도 아마 한동안은 보여주지 않고 책장에 꽂아두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소녀가 어른이 되었는데도 그 마음을 꺼내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소녀는 어떤 삶을 살게됐을까. 소녀일때도 혹은 어른일때도 누구나 마음 다치는 것이 싫어 마음을 닫아두려고 할 때가 있다. 사람이 혼자 살지 않고 여럿이 더불어 사는 까닭은, 그러니까 내가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고 친구를 만나고 애인을 만나면서 사는 까닭은, 내가 빈 병에 마음을 넣어뒀을 때를 위해서인걸까. 그럴때 내 마음을 꺼내어 제자리에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서, 반드시 누군가가 필요한 일이라서. 




내가 본 그림책들 중 가장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은 내 책장에 꽂아두고 조카를 위해서는 한 권을 다시 사야겠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3-01-10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책은 제게 힐링의 수단이 된답니다. 이 책도 봐야겠어요.

다락방 2013-01-11 18:43   좋아요 0 | URL
나인님, 저는 그림책을 본 경험이 거의 없어서 잘 볼 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분명 이 책은 좋았어요. 참 좋았습니다. 힐링의 수단이라면 이 책은 제 몫을 다 할거에요.

M의서재 2013-01-10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정말 좋네요~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는 이유는 빈 병에 마음을 넣어뒀을 때를 위해서였네요. 찡한 마음 안고 추천 누릅니다

다락방 2013-01-11 18:44   좋아요 0 | URL
네, 불량주부님. 꺼내고 싶다고 해도 스스로는 꺼내는 방법을 알지 못하더라구요. 그러나 다른 사람이 옆에서 도와준다면 정말 쉽게 꺼낼 수 있었어요. 좋은 책입니다, 불량주부님. 헤헷.
:)

2013-01-10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1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3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4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3-01-11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ㅠ_ㅠ

다락방 2013-01-11 18:45   좋아요 0 | URL
좋다 레와님, 좋아.

미녀 2013-01-1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엉엉 ㅠㅠ

다락방 2013-01-11 18:46   좋아요 0 | URL
우앙 미녀다!! 꺅 >.<

moonnight 2013-01-11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아해요. 마음은 아프지만요. ㅠ_ㅠ 조카랑 침대에 누워 읽다가 찔끔찔끔 울었어요. ;

다락방 2013-01-11 18:4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아마 제가 가진 그림책중 이 책을 가장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자꾸만 코끝이 시큰- 빈 의자를 보는 장면은 가슴이 휑해요.

꽃핑키 2013-01-11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조카에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글이네요 ㅠㅠ 내 조카도 아닌데 너무 귀엽고 예뻐서 마음까지 짠해지는 느낌들어요ㅋㅋ 그런데 저는 왜 ?? 저의 진짜 조카는 하나도 예쁜줄 모르겠는지;;ㅋㅋㅋㅋㅋㅋㅋ
친오빠네랑 멀리 떨어져 살아서 볼기회도 잘 없지만, 카톡으로 보내주는 사진도 덤덤할뿐이고;;
우리 조카도 저렇게 쫑알쫑알 이야기 할 때 되면 좀 귀여우려나(?)싶네요 ㅋㅋㅋㅋ
저 동화책 나중에 조카한테 사줘야겠어요 ㅋㅋ

다락방 2013-01-14 09:43   좋아요 0 | URL
저는 조카가 태어날 당시만 해도 제가 조카를 이뻐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순간 정신 차려보니 전 이미 조카의 노예. 조카에 대한 사랑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한 번도 누군가를 이렇게 보고싶어한적도 없는 것 같아요. 조카가 오면 저는 칼퇴를 하고 집으로 달려가고 조카랑 놀 때 다른 사람들이 연락해오면 막 짜증나고 귀찮고. ㅋㅋㅋㅋㅋ 게다가 요즘엔 이모, 이모 하는 통에 정신줄 놓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아하하핫.

핑키님, 저 책은 핑키님의 조카보다는 핑키님이 본다면 더 좋을 책이에요. 어른을 위한 그림책 같아요.
:)

마노아 2013-01-11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만큼이나 다락방님의 리뷰도 아름다와요. 힐링 북이에요.^^

다락방 2013-01-14 09:43   좋아요 0 | URL
어휴, 코끝이 찡해지잖아요 글쎄. 눈물이 핑- 돌고. 아름다운 책이에요, 마노아님.

저기요.. 2013-01-14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돈까스 이후로 세계명시가 중단됐다고 문단이 술렁이고 있어요 얼릉 쓰시세요 -_-으르렁 해줄게요 으르렁////

다락방 2013-01-15 13:1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죄송합니다. 요즘엔 영감이 떠오르질 않아서..쿨럭. 조만간 스테이크라도 한 번 먹으면 제 안에 숨겨진 모든 창작력을 동원하여 시를 짓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리시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ㅎㅎㅎㅎㅎ
 
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황순원'의 「소나기」때분에 보조개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됐다면 죽음에 대한 낭만도 갖게 됐다. 그당시 나는 국어선생님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내가 시한부 인생이라면 국어 선생님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거다. 뿐만 아니다. 영화 『있잖아요, 비밀이에요』를 보고서는 펑펑 울었었다. 그 영화의 여자주인공처럼(아마 하희라였을거다), 죽기 전날 반 아이들 모두에게 편지를 써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싶었다. 그러면 아무도 나를 잊지 못하겠지. 영화 『라스트 콘서트』는 그중 압권이었다. 죽어가는 여자를 관객석 앞에 앉혀놓고 남자는 마지막 연주를 들려준다. 그녀는 그 연주를 들으면서 숨을 거둔다. 당시 그 영화의 여주인공은 백혈병 환자였는데, 그 때부터 백혈명은 뭔가 낭만적인걸로 느껴진거다. 참 철없던 때의 얘기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나랑 매일 하교를 같이 하던 친구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아마 그말은 고등학교 3학년이라면 누구나 가끔은 내뱉었던 말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친구에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된다고. 너, 죽으면 니 영혼이 스르르 빠져나와서 니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주변에 머무를 것 같지? 절대 아냐, 끝이야, 끝. 너는 그냥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고. 너라는 존재가 무(無)가 돼. 죽음에 대한 환상따위 갖지 말고 살어. 죽음에 대해서 결코 낭만을 갖지마, 라고 말했다. 대체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 나는 왜이렇게 변한것일까.


나는 여전히 귀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에게 귀신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이 '죽었을' 때 그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와 천국으로 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육체가 죽는 순간 몸의 모든 기능이 정지하듯 정신적인 기능도 정지하고 그상태로 끝. 암흑. 그 뒤는 더이상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다. 영화 『사랑과 영혼』처럼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가서 그 사람을 지켜보는 일 같은건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고 확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죽음이 두려웠다. 죽고나서 모든것이 끝나는 상황이 두려웠다. 더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게, 아무것도 경험할 수도 없다는 게, 누구의 옆에도 있을 수도 만날 수도 없다는 게 두려웠다. 이 두려움을 24시간 365일 가지고 사는건 아니지만 간혹 후려칠 때가 있다. 누군가 이 불안을 좀 해소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면서 죽음을 원할때도 있었다. 끝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내가 고통스러울 때 그랬다. 불안하거나 두렵거나 슬픔이 극에 달해있을 때면, 내가 죽어 없어진다면 이런 생각을 혹은 이런 고통을 멈출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내게 대체적으로 무서웠지만 그보다는 드물게 해결책이 되는 듯도 보였다.



그래서 이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표지를 보고 읽고 싶어지면서 동시에 망설였다. 이 책이 나의 두려움을 해소해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만나고 싶다가도 그 순간은 내가 가장 두려울 때로 미뤄둬야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했다. 무엇보다 표지에 쓰인 말이 잊혀지질 않았다.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문장이 거기 쓰여있었다. 나는 반드시 죽을 거라는 말. 알면서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말. 그런데 정말 이 책을 읽으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을까? 내가 가진 두려움은 위로로 탈바꿈하게 될까? 나는 평안하게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될까?



그러나 책의 절반까지 셸리 케이건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해 얘기한다. 실제적으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철학적으로 주장하고 또는 반박한다.무엇보다 셀리 케이건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셸리 케이건은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죽으면 모든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하는 얘기를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죽음에 대한 정의가 나와 같은데, 이 사람이 하고자 하는 얘기는 대체 무엇일까.



내가 죽고 나서 내 몸이 부활하거나 내 인격이 이식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죽음이 나의 진정한 종말이라 생각한다. 죽음은 나의 끝이자 내 인격의 끝이다. 이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이다. 죽음은 그야말로 모든 것의 끝이다. (p.245)



물론 과학적 시선으로 더 많은 세부적인 사항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철학자의 시선으로 볼 때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봤던 죽음이라는 개념에 더 이상 신비로운 것은 없다. 인간의 육체는 살아서 움직이다가 파괴된다. 결국 이것이 죽음에 관한 전부다. (p.266)



내가 죽음을 두려워할때, 그것을 입밖으로 내어 말할 때 나는 당연한 듯 영생에 대해 생각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면, 그게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바라왔다. 그러나 셸리 케이건은 영생이 지루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조금 더 길게 사는게 아니라 죽지 않고 살아간다면 모든것들이 지겨워질 거라는 거다. 하고 싶어서 선택한 공부도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는것도 계속해서 할 수는 없고, 수학이 지겨워져서 과학을 해도 다른 음악을 찾아듣고 다른 그림을 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거다. 나는 영생이 반복되는 일상들로 인해 지루해질 수도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럴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수긍하며 다소 놀랐다. 아, 그래, 나는 막연하게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삶이 어떻게 유지될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구나. 그러면서 반발심이 들었다. 그러나 영원히 사는게 가능하다면 이미 존재하는 학문외의 다른것을, 이미 존재하는 예술외에 다른 것을 우리 인간들은 만들어내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루하거나 지겹지 않을수도 있지 않나? 물론 영생은 이제 내게 다른 식으로 부조리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결국 아무도 죽지 않고 모두가 영원히 산다면, 그렇게 계속해서 자손을 번식한다면, 그때 대체 우리는 어디에서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늘까지 닿는 집을 짓는다 해도 거기엔 분명 한계가 존재하지 않을까.



유한한 삶이기 때문에 셀리 케이건은 우리가 세운 삶의 목표와 가치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고작해야 백년 정도를 살 수 있을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하고 싶고 즐기고 싶은 것에 대해서 할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지는 거라고 말한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랬다. 내가 세운 몇 가지 삶의 목표-대단할 건 없는 목표라지만- 나는 그걸  마흔이 되기전에 하겠어, 쉰이 되기 전에 하겠어, 라고 결심하진 않았지만 죽기 전에는 이것들은 해보고 싶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이건 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되 가장 스트레스 받지 않는 방법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기를 바랐다. 이 인용문을 그래서 몇 번이나 읽어봤다. 에키푸로스가 쓴 글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가장 끔찍한 불행인 죽음은 사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한 죽음은 우리와 아무 상관없다. 하지만 죽음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우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있든 이미 죽었든 간에 죽음은 우리와 무관하다. 살아있을 때는 죽음이 없고 죽었을 때는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p.306)



셸리 케이건은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되는 까닭을 철학적으로 근거를 대며 얘기해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두려움이 없어진 건 아니다. 결국 셀리 케이건은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죽음을 대면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내가 이 긴 책을 한 권 읽었다고 해서 '그래, 죽음과 대면하자' 하고 내 생각이 바뀌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하는 말들이 가끔은 퉁 치고 넘어가려는 것도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알겠지만,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반드시 같지 않다. 이 책은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아이비리그의 명강의라고 하는데, 책으로 JUSTICE 와 DEATH를 둘 다 만난 나로서는 정의 쪽이 더 재미있었다. 잠깐 고개를 갸웃하며 그것은 죽음보다 살아가는 일이 더 재미있기 때문일까, 라고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반드시 그래서만은 아닌듯하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때문에 나는 별 넷을 줄 수 있었는데, 그건 누군가가 내가 두려워했던 바를 공개적으로 말해줬다는 데 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라니. 나는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이 책을 반드시 읽고야 말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게다가 그가 조목조목 '자신만의' 철학으로 죽음에 대해 얘기해주는 글들을 읽으니 이 세상에 나만 홀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건 아니라는 생각에 약간은 위안이 된다. 어쩌면 나는 이 세상의 보편적인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죽음과 대면할수는 없을것 같다. 책장을 덮고서도 여전히 두렵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셸리 케이건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생각들에 관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나는 그것만으로 만족스럽다' (에필로그中)고 했다. 그렇다면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나는 만족스런 독자가 되긴했다.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걸까.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3-01-08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살아있을 때는 죽음이 없고 죽었을 때는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죽음도 관념으로밖에 인식할 수 없는 우리.
이 책 담아갈게요. 보관함에 있지만 진짜로 장바구니로.ㅎㅎ
새해부터 저는 '죽음'에 붙들려있어요, 다락방님.
아니 지난 12월부터요.

다락방 2013-01-09 15:06   좋아요 0 | URL
이상해요, 프레이야님. 영하 [아무르] 탓일까요. 최근에 죽음에 대해 사람들이 꽤 자주 말하는 것 같아요. 현재 화제의 서재글에 올라있는 자노아님의 글도 죽음에 대해 얘기한 페이퍼구요. 지금은 다들 그런 생각을 하는 때인걸까요.

프레이야님, 제가 소설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예일대 교수의 명강의를 책으로 읽는 것보다는 죽음에 대하여 잘 쓰여진 소설을 읽는 쪽이 적어도 제게는 더 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셸리 케이건이 강의를 한다면 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요.

Mephistopheles 2013-01-08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걸까 - 이건 절대 답이 없어요.-

다락방 2013-01-09 15:0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예일대 명강의 교수의 책을 읽는다고 해도 제가 어떻게 살아야할지는 잘 모르겟어요, 메피스토님.

2013-01-09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9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9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9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9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0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0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1 1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3-01-1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철없던 시절에 자주 죽음을 생각했어요.
내가 지금 죽어버리면 누군가는 분명히 마음 아파하겠지.
죽음을 누군가에게 복수의 수단으로 사용하려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도 있었구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제 생각에는 그냥 순간순간에 충실하면서 살아야하지 않을까요?
그건 어떤 대의나 가치에 충실하게 사는 것일수도 있고,
욕망이나 욕구에 충실한 삶일 수도 있겠지요.
그 선택이 각 개인의 일생을 좌우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 말해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에 대한 대답은 정말 어렵지요!
좋은 책 소개 잘 읽었습니다! ^^

다락방 2013-01-14 09:21   좋아요 0 | URL
맞아요, 감은빛님, 복수의 수단. 어쩌면 그랬던것도 같아요.
물론 저는 복수의 수단보다는 낭만적인 수단이었지만 말이죠.

죽음에 대한 책을 읽었다고 해서 기본적으로 제가 가지고 있던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진 않는것 같아요. 전 언제나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일단은 지금 살고 있는 현재에 충실하자고 생각했거든요. 아마도 그대로 계속 살게될 것 같아요. 감은빛님 말씀처럼 순간순간 충실하게 사는거, 그게 답인것 같아요. 적어도 지금은 말이죠. 앞으로 더 나이들면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요.

장분도 2013-05-22 0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이책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매일 고민하고 연구하고 도구들을 계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살아가기 위해 두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바로 identity와 Destiny 인 것 같습니다. (저의 소견으로는요.)

모든 사람들 안에 talent 가 있고,
그 talent를 발견하면 vision이 되고,
비전은 꿈이되고,
꿈은 목표가 되고,
목표는 방향을 같게 하고,
그 방향으로 포기하지 않고 걸으면, 우리 삶에 passion이 생기게 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Passion은 영향력이 있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리더십이 있다고 부르고,
이 리더십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우리는 리더라고 부르며,
그 사람은 결국 자기의 identity와 destiny를 define하고 passion을 가지고 리더의 자리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아이러니하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결국 죽음이라는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듭니다. ^^

저는 지금 뉴욕 LGA공항 라운지에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지금도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죽음을 생각할수록, 더 열심히 살아보고 싶어집니다.
10년 후 혹시라도 제가 이 글을 다시 우연히 보게 될 날이 온다면,
그 때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것에 얼마나 의미가 있고,
사람들이 어떻게 identity와 destiny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지, 전하는 행복 전도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장분도 2013-05-22 0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이책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매일 고민하고 연구하고 도구들을 계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살아가기 위해 두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바로 identity와 Destiny 인 것 같습니다. (저의 소견으로는요.)

모든 사람들 안에 talent 가 있고,
그 talent를 발견하면 vision이 되고,
비전은 꿈이되고,
꿈은 목표가 되고,
목표는 방향을 같게 하고,
그 방향으로 포기하지 않고 걸으면, 우리 삶에 passion이 생기게 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Passion은 영향력이 있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리더십이 있다고 부르고,
이 리더십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우리는 리더라고 부르며,
그 사람은 결국 자기의 identity와 destiny를 define하고 passion을 가지고 리더의 자리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아이러니하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결국 죽음이라는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듭니다. ^^

저는 지금 뉴욕 LGA공항 라운지에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지금도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죽음을 생각할수록, 더 열심히 살아보고 싶어집니다.
10년 후 혹시라도 제가 이 글을 다시 우연히 보게 될 날이 온다면,
그 때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것에 얼마나 의미가 있고,
사람들이 어떻게 identity와 destiny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지, 전하는 행복 전도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민음사 모던 클래식 60
모신 하미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에리카는 나한테 주말에 센트럴파크로 점심 소풍을 가자고 했어요. 나는 우리가 이번에는 다른 사람 없이 간다는 걸 깨달았어요.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맹렬한 바람이 나무들을 흔들고 구름이 하늘에서 쏜살같이 달음질을 치는 뉴욕의 7월 하순, 어느 아름다운 오후였어요. 어떤 날씨를 말하는지 안다고요?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서늘하고 소금기 묻은 공기가 도시에 불어오면, 습기는 순식간에 사라지죠. 에리카는 밀짚모자를 쓰고 바구니를 들고 있었어요. 바구니에는 와인과 막 구운 빵, 얇게 자른 고기, 다양한 치즈, 포도 등이 들어 있었어요. 맛도 좋고 세련된 것들로 구색이 갖춰져 있었죠. (p.55)



그녀는 눈을 감고 팔꿈치를 대고 뒤로 기댄 채, 의심할 줄 모르는 소녀처럼 졸린 듯한 미소를 지었어요. 나는 소변이 마려워 방광이 터질 것 같았어요. 나는 곧 돌아오겠다면서 화장실로 다려갔어요. 그런데 내가 돌아오자 그녀는 곤히 잠들어 있었어요. "에리카?" 불러도 대답이 없었어요.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래서 망설이다가 결국 불을 껐어요. 블라인드가 올려져 있어서 맨해튼 불빛이 안으로 들어왔어요. (p.76)




이 책의 책장을 한장씩 넘기다가 나는 꼭, 반드시, 오랜 시간을 미국에서 머무르리라, 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곳은 뉴욕이어야 한다고. 어릴때부터 나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센트럴파크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센트럴 파크는 내가 읽는 소설속에도 등장하고 내가 듣는 노래속에도 등장했다. 나는 엠파이어 꼭대기에서 반드시 키스를 해야했고, 그곳에서 뉴욕의 야경을 바라보아야 했다. 나는 센트럴 파크의 벤치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미소로 인사하고 햄과 치즈가 푸짐하게 들어있는 샌드위치를 먹어야 했다. 가끔은 커피도 마셔야 했고 가끔은 책도 읽어야 했다, 거기에서. 이 책을 읽노라니 밤마다 내가 머무르는 곳에서 맨해튼의 불빛을 느끼고 싶어졌다. 7월 하순의 오후를 센트럴 파크에서 피크닉을 하며 보내고 싶어졌다. 뉴욕의 일상을 작가는 평범하게 그러나 지독하게도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 빽빽한 도시에서 찾아내는 이 아름다움이라니, 이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 책의 주인공은 파키스탄 사람이다. 그는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을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미국의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뛰어난 업무성취도를 보이며 미국 여자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런 미국에 대해 이렇듯 아름다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 거창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일상속에 파고드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나는 넋을 잃고 무작정 기대하고 상상한다. 내가 마침내 도달해야 할 곳은 바로 그 곳이라는 듯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놓고, 아니 그가 이런 일상을 보내놓고, 911 테러로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무너지는 걸 목격한 그는, 이런 감정을 느낀다.



다음날 저녁은 우리가 마닐라에서 보내는 마지막이어야 했어요. 나는 방에서 짐을 싸고 있었어요. 텔레비전을 켰을 때 처음에는 영화가 나오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계속 보니까, 영화가 아니고 뉴스더라고요.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 건물이 하나둘 무너지더군요. 그대, 나는 미소를 지었어요. 그래요, 혐오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의 첫 반응은 놀랍게도 즐거움이었어요.

(중략)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 공격의 희생자들을 생각한 게 아니에요. 텔레비전에서는 어떤 허구 인물이 죽으면 마음이 많이 움직이죠. 여러 일화를 통해 내게 친숙해진 인물이 죽으니까 그런 거죠. 그런데그 순간은 그게 아니었어요. 나는 그 모든 것의 상징성에 빠져들었던 거죠. 누군가가 그렇게 가시적으로 미국의 무릎을 꿇렸다는 사실에 그랬던 거죠. (pp.66-67)




그 일이 있고난 후, 그는 공항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심하게 검색을 받는다. 그가 파키스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상황을 외면하고 싶었고, 자신과는 관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잠시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전쟁에 대비하는 가족들을 맞닥뜨린다. 그에게 미국은 그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가족과 고향을 공격할 수 있는 대상이다. 아름답고 환상의 나라였던 바로 그곳이, 그에게 엄청나게 거대하고 잔인한 상징으로 닥쳐온다. 그는 그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었는데, 결국 그는 내내 머릿속에서 자기 자신과 가족과 고향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며 일상에 방해를 받고 만다.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걸 보는 순간 제일 처음 느낀게 고통이 아니라니, 즐거움이라니, 아니 즐거움이라고 내뱉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소설인가. 더 놀라운 건 내가 그를 이해한다는 거다. '누군가가 그렇게 가시적으로 미국의 무릎을 꿇렸다는 사실'에 즐거움을 느꼈다는 그를 이해한다는 거다. 그 순간까지는 자신이 미국을 사랑한다고만 느꼈는데, 그 거대한 나라가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에 즐거움을 느꼈다는 그 파키스탄 사람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겠다는거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라니, 이건 무슨 인문서의 제목인가 싶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책에 이 제목 말고 무슨 제목을 붙일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고 미국 회사를 다녔고 미국 여자를 사랑했지만, 미국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대신'도 될 수 없었다. 미국이 원한것도 그리고 자신이 사랑한 여자가 원한것도 '그'는 아니었다, 그는 될 수 없었다.



"크리스가 보고싶어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나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걸 보았어요. "그렇다면 내가 그라고 생각해 봐요." 나는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몰랐어요.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죠. 갑자기 그것이 가능한 하나의 방법 같았어요. "뭐라고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지만, 눈을 뜨지는 않았어요. 내가 다시 말했어요. "내가 그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천천히, 어둠 속에서 말없이, 우리는 했어요. (p.95)



잠시동안 눈을 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김없이 눈을 뜨는 시간은 찾아온다. 눈을 뜨면, 거기엔 되고 싶은 내가 있는게 아니라 본연의 내가 있다.



댓글(20) 먼댓글(2)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You give people their space.
    from 마지막 키스 2013-01-06 00:18 
    영화 『더티 댄싱』에서 댄서인 '쟈니'는 부잣집에서 넘치는 교양으로 무장한 '프란시스' 에게 춤을 가르쳐주면서 공간의 중요성을 말한다.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기는 내 공간, 여기는 니 공간. 그때 흐르는 노래는 「Hungry eyes」다. 당시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는 제목의 한글번역까지 되어 있었는데, hungry eyes 의 제목은 '갈망하는 눈동자'였다. 그 번역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만약 나였다면 결코 갈망하는 눈동자로 번역하
  2. 떠나려는 그대를
    from 마지막 키스 2016-11-11 17:58 
    '모신 하미드'는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에서, 내가 되고 싶은 나와 본연의 나는 다르다고 말해서 사람 가슴을 찢어놓더니, 이 작품에서도 결국은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아니, 그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내가 그렇게만, 그것만 받아들인 것 같다. 처음엔 묵직한 작품이 아니잖아? 하고 설렁설렁 읽다가, 결국 또 가슴이 뜯겨져나가 버렸다 ㅠㅠ 페이퍼로 길게 막 쓰다가, 너무 구질구질해져서... 간단하게, 내 가슴 찢어졌다고만 말하련다 ㅠㅠ다 읽고나니,
 
 
Mephistopheles 2013-01-04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갸르릉거리는 머슬카를 타고 넓다란 평야에 이차선 도로만 나와있는
서부사막을 땀 뻘뻘 흘리면서 드라이브하고 싶습니다. (쓰고 보니 슈퍼네추럴..)

다락방 2013-01-04 14:08   좋아요 0 | URL
ㅎㅎ 점심은 드셨습니까, 메피스토님.
2013년 제 목표는 금발머리 파랑눈의 남자와 연애하기 입니다, 메피스토님. ㅋㅋㅋㅋㅋ

Mephistopheles 2013-01-04 14:28   좋아요 0 | URL
금발머리 염색에 파란 써클렌즈를 낀 남자는 아니겠죠?

다락방 2013-01-06 00:30   좋아요 0 | URL
가짜는 곤란합니다, 메피스토님.

어제 조셉고든래빗의 노래 부르는 동영상을 보았는데요, 꼭 금발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뭐, 재이슨 스태덤은 민머리..니까요;;

Jeanne_Hebuterne 2013-01-04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센트럴 파크가 내려다 보이는 호텔에서 낮에 매그놀리아에서 사온 레드 벨벳과 바나나 크림 컵케잌을 먹던 순간, 다락방님을 떠올렸어요.
아, 여기는 다락방님이 무척 좋아하는 곳이었지, 하고.
올해 그곳에 가거든 엽서 보내주셔요!

다락방 2013-01-06 00:30   좋아요 0 | URL
쟌님, 제가 어떻게 올해 그곳에 가겠습니까. 그러나 언제고 가고 말거라는 생각은 있으니, 그게 언제든 가게 되면 엽서 보낼게요. 그 순간이 빨리 오면 좋겠어요!!

poptrash 2013-01-04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읽기 시작합니다!

다락방 2013-01-06 00:29   좋아요 0 | URL
지금쯤 다 읽기 시작하셨을테니, 서평을 내놓으시오!!

moonnight 2013-01-04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음사 모던 클래식에서 헉 소리 나게 좋았던 작품들이 몇 있었어요. 이 책도 꼭 읽어보고 싶어요. >.<

다락방 2013-01-06 00:29   좋아요 0 | URL
좋은 문장이 많아서 자꾸 뒤적여보고 친구들에게도 적어 주고 그랬어요, 문나잇님. 얇은 책이니 문나잇님도 꼭 읽어보세요.

2013-01-04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3-01-06 00:28   좋아요 0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dreamout 2013-01-04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만 넣어두고 있었는데, 그럼 장바구니로 옮겨도 되겠네요. ㅋ

다락방 2013-01-06 00:28   좋아요 0 | URL
드림아웃님 좋아하실거에요! 오늘은 무슨 책을 읽으셨을까, 엄청 궁금해요. ㅎㅎ 이 댓글 읽으시면 말씀 좀 해주세요!

2013-01-07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8 0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9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9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3-01-05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그렇듯이 님의 서평은 참 좋습니다. 다양한 사유를 할 수 있어서요. 즐거움을 느꼈다,는 구절을 제가 이해하려면 노력을 좀 해야 했답니다. 그리고 제가 주목한 구절은, 인종이 달라도 프린스턴을 나오면 좋은 자리에 취업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제가 미국에 대해 편견을 가졌나봐요....

다락방 2013-01-06 00:27   좋아요 0 | URL
제가 인용문을 저기서 끊어서 아마 이해가 좀 힘들었을 것 같아요, 마태우스님. 저 뒤의 부분은 이렇게 된답니다.

[아, 내가 당신을 더 불쾌하게 하는 모양이군요. 물론 이해합니다. 자기 나라의 불행에 다른 사람이 흡족해하는 걸 보는 건 가증스러운 일이지요. 하지만 당신도 그런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거예요. 당신은 미국 무기가 적의 건축물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최근에 상당히 유행하는 비디오클립을 보면 즐겁지 않나요?]


위의 문장이 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을텐데요. 제가 이해하기 위해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그가 말하는 '상징성'으로서의 '미국의 거대함' 이였어요. 그가 말한것처럼 '공격의 희생양'이 아니라 말이죠.


프린스턴은요 마태우스님, 저는 말이죠, 프린스턴을, 예일을, 하버드대를 나오고 싶어요. 뭐, 공부를 못해서 이건 농담이 될 수 밖에 없지만, 제가 '저 하버드 졸업했어요' 라고 말하는 순간 얼마나 스스로가 멋져보일까, 하는 생각을 한답니다. 하버드라뇨. 흑흑. ㅠㅠ
 
그는 왜 전화하지 않았을까
레이첼 그린월드 지음, 추미란 옮김 / 민음인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물론 진정한 당신의 모습을 바꿀 필요는 없다. 그러나 처음 한두 번의 데이트에서 말과 행동을 약간 달리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당신이 얼마나 멋진지 알지 못하는 남자들이 당신을 고백녀라고 생각해 당신을 더 잘 알게 될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p.160-161)

 

 

만약 내가 자주 보면서 이미 좋은 감정을 가진 남자가 상냥한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라고 한다면, 나는 그럴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다른 식으로 조율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이며 그에 대해 끊임없이 그와 의논해 볼 의향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가 첫 만남에서 저런 식의 바람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나는 그와는 다시는 만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차피 그런 여자가 되어줄 수 없으니 괜히 서로 시간낭비 할 필요 없겠지, 라는 생각도 들고 그런식의 바람을 가진 남자는 내 이상형이 아니야, 라고 뒤돌아설 수도 있을 것이다. 첫 만남에서의 저런식의 바람을 이야기한 남자는, 단순히 그것이 바람이기는 하지만 물론 그건 이상향일뿐 실제로는 다른식으로 의견조율을 할 수도 있을것이며 시간이 흘러 저 생각을 바꿀 수도 있을테지만, 자신이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식으로 의견 조율이 가능한지까지 보여주기 위해서 첫 만남이 주는 시간은 그리 길지도 또 충분하지도 않다. 그러니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나 자신을 바꿀필요는 없지만 첫만남에서 말과 행동을 약간 달리해서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지 않는 것은 꽤 필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자기계발서류와 이런 데이트 코치에 관련된 책들에서 그다지 얻을게 없다고, 그러니까 그런걸 읽어도 굳이 내 삶에 변화를 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하는 나처럼 고집센 여자사람에게도 꽤 적절하게 들리니 이 책은 충분히 가치 있을 수 있었다.

 

게다가 처음 만나는 남자 앞에서 자신의 전남편이나 전애인에 대한 언급은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니 가급적 하지 않는게 좋다는 것은 수긍이 갈만한 팁이다. 그래, 이 책에는 꽤 유용한 팁들이 있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처럼 자꾸만 빵빵 터지는 재미를 이 책에서 얻기를 바랐지만 그정도의 재미가 없었던 것은 좀 서운하지만, 그래, 나름 끝까지 읽으려고 생각할만큼 괜찮게 읽어왔단 말이다. 그런데,

 

 

224페이지를 읽고 225페이지로 넘어갈 때, 어? 이건 아까 읽은 문장인데? 싶어졌다. 그래서 확인해보니 정말로 똑같았다. 어라? 하고 넘겨보니 224 다음에 193페이가 그대로 적혀있고 페이지는 225로 적혀있다. 게다가 그 뒤로 넘기는 페이지들은 닷히 194페이지부터 시작이다. 얼라리여. 그렇게 209까지 쭈욱 다시 한번 연결된다. 그러더니 209 다음은 242페이지. 그러니까 이 책은 225페이지부터 241페이지가 붕-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 사이로 193부터 209가 중복된 것. 후아-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책을 덮었다. 이 책은 대체 어째야 할까. 이런걸 뻔히 알면서 중고샵에 팔수도 없는 노릇이고. 알라딘에 반품 요청할 수 있나 알아봐야겠다. 끙. 왜 하필이면 이런 책으로 내게 온걸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reamout 2012-12-25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품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분명한 불량인데. 내용은 무시하고, 상품으로 봐서요.
저자의 전략은 약간.. 넛지. 와 비슷해 보이는데요. ㅋ

다락방 2012-12-26 09:20   좋아요 0 | URL
1:1 고객문의에 반품신청 넣어놨어요. 아놔. 읽다가 리듬 깨져서 확 기분이 나빠져 버렸어요. -_-

moonnight 2012-12-26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품처리 해 주실 거 같아요. 그럴 땐 진짜 확 깨죠. ^^;

다락방 2012-12-26 17:53   좋아요 0 | URL
네 반품 처리 해준답니다. 어휴. 다행이지 뭐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