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다른 사람' 이 필요한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또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고 싶은 것과 주고 싶은 것 역시도 다를 것이고.

내 경우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크다.  자랑할 만한 일이 생겼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상대에게 나 역시 자랑스러울 때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 이것이것 잘했지, 라고 묻는다면 잘했다고 한껏 칭찬해주고 싶고 격려해주고 싶다. 


슬론 은 카터와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 이미 약혼자가 있고 또 그 약혼자가 슬론의 가장 친한 친구인데, 그래서 안그러려고 했는데 그렇게 됐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는 말은,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있다는 뜻이다. 슬론은 아무리 자기 변명을 해봤자, 친구의 약혼자와 사랑에 빠지고 섹스한 사람인 것이다. 자신들의 사랑에 흠뻑 빠져있다가, 서점 데이트에서 우연히 만난 칼럼니스트로부터 모욕적인 대우를 당한 뒤 슬론은 깨닫는다. 맞네, 그 사람이 한 말이 다 사실이야. 카터, 어차피 너는 다른 여자랑 결혼할거고 나는 고작해야 너랑 섹스한 너의 정부일 뿐이지, 당장 이 집에서 나가줘, 해가지고 둘은 헤어지게 된다. 카터는 너를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이대로 우리가 헤어지면 안되는거라고 하지만, 그러는 순간에도 카터가 슬론의 베프와 결혼할 시간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카터를 보낸 후 슬픈 날을 지내고 있던 슬론은 베프의 연락을 받는다. 베프는 당장 좀 와달라고, 나 너무 너무 얘기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운다. 지금 당장 그 베프를 볼 수 없었던 슬론은 거절하지만 친구가 '네 비행기표 내가 사줄테니 제발 와줘' 하는 통에 얘가 너무나 절박하구나 싶어, 알겠어 갈게, 한다. 그런데 베프는 카터의 집에 오라는 거다. 카터는 너의 호텔을 떠난 후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뉴욕에서 출판사 직원 만난다고 한다, 언제 올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 그 집을 봐주고 있다 여기로 와다오, 하는 거다. 하는수없이 슬론은 그렇게 카터의 집으로 가고 거기서 베프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카터가 집을 떠나 글 쓰겠다고 슬론의 호텔에 와있는 시간동안 자기는 파티에서 만난 특별한 누군가를 만나 섹스를 하고 사랑에 빠졌다는 거다. 읭? ㅋㅋㅋ 당장 결혼은 다가오고, 나는 카터가 아닌 특별한 그 남자를 원하고 이제 나는 어떡하지? 하고 고민을 털어놓는 것. 슬론은 슬론대로 내적 갈등 휩싸인다. 너가 사랑하는 게 그 특별한 남자라면 그 남자랑 결혼해야지, 하고 싶지만 솔직하게 그것이 슬론 자신에게도 좋기 때문에 그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게 아닌가 하는 것. 그래서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어쨌든 카터의 집에 와잇으니 카터의 집을 둘러보게 된다. 카터의 책, 카터의 레코드 콜렉션들..



Seeing the things he surrounded himself with, Sloan felt as if she were touching his soul. -p.186


그를 둘러싼 것들을 보고 마치 그의 영혼에 닿는 것처럼 느꼈다는 슬론을 보니, 나는 내 책장속의 책들을 떠올렸다. 만약 누군가가 와서 내 책장을 둘러본다면, 그 사람도 내 영혼을 느끼게 될까? 그렇다면 어떻게 느낄까?



꼴페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책장 하나가 다 페미니즘 책들로 넘쳐나는데, 이젠 정리도 안되어서 가로로도 쌓이고 있으니 어쩌면,



지저분한 꼴페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한편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집에 가게 됐을 때 거기서 무엇을 보게 됐든 나 역시 그를 어느 정도 그를 둘러싼 물건들로 짐작하게 될텐데, 그것들이 내게 실망을 주는 것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음.. 그만두자. 생각하기 싫구나.



자, 슬론은 다시 자기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예전 생활로 돌아가고자 최선을 다한다. 호텔 운영도 정상적으로 되고 있고 슬론은 잘 살아남았다. 아 오늘은 카터와 베프의 결혼식이지. 나는 괜찮아 잘 이겨낼 것이다. 하는데 그 날 밤에 카터가 찾아온 부분. 아니, 왓더헬, 너 여기서 뭐하는거야? 하니까 카터는 결혼을 안했다고 한다. 내가 결혼을 한다면 그건 슬론 너여야만 해, 해서 찾아온 것. 그러나 그 결혼의 '아닐 가능성'을 얘기한 건 슬론의 베프였다.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어... 수지가 부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 


그래서 다시 이제 사랑의 해피엔딩을 향해 가면서 슬론은 카터에게 묻는다. 내가 자랑스럽니? 라고. 슬론에게 이 대답은 중요한 것이었고 카터는 그걸 알고 있기에 나는 너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얘기해준다. 밑줄을 안그어놔서 찾지를 못하겠는데, 이 책 읽다가 찾은 단어중에 endorse 가 있다. 어느 시점에 나왔는지 누가 한 말인지도 생각이 안나는데 endorse 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지지하다' 였다. 어쩐일인지 이 단어가 기억에 남는다.



자, 이제 카터와 슬론은 함께 살기로 한다. 샌프란시스코에 자신의 집을 작은 호텔 삼아 살고 있는 슬론은, 우리가 결혼하고 함께 살아도 나는 이 페어차일드 하우스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한다. 카터는 그녀에게 너는 이 일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런데 조금 변화를 줄 필요는 있다고 말한다. 요리하고 청소할 사람을 고용해서 가끔은 너를 좀 쉬게 해줘라, 왜냐하면 나는 너랑 사랑을 나누고 싶기도 하고 여행을 가고 싶기도 하니까, 라고 말한다. 카터는 페어차일드 하우스에서 글을 쓰면서 보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집 beach house 는 슬론 네 마음에 드냐고 묻는다. 그렇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카터는 해변가 집을 가지고 있다. ㅋㅋㅋ 슬론은 마음에 든다 매우 아름다운 집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슬론은 슬론 집 그대로 갖고 있고 카터는 카터 집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왔다리 갔다리 다른 지역을 오가면서 고풍스러운 페어차일드 하우스에서 묵고 해변가 집에서도 묵고 난리가 났네 난리가 났어 좋겠다..


사실 평범한 대한민국의 서민들은 결혼해도 집 한 칸 마련하기가 힘들고 전세 올라가면 보증금 빼서 어디로 가야 되나 더 외곽으로 가야되나 평수를 줄여야 되나 이러고 있는데, 슬론과 카터는 나도 좋은 집 있고 너도 좋은 집 있으니까 우리 둘 다 갖고 왔다리갔다리 하는 삶을 살자, 이러는 거 너무나 부러운 부분. 아니 너무 이상적이지 않냐. 나는 이왕이면 내가 한국에 집 마련할테니 외국에 집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비행기 타고 왔다리갔다리 하는 삶. 나는 한강뷰 집을 갖고 있고(아직 아님) 너는 로테르담의 고층 아파트 갖고 있고, 우리 둘이 같이 살면서 여기저기 왔다리갔다리 좋은 거 다 누리고 살자, 하면 내가 참 좋을 것 같다. 


로맨스 소설의 몹쓸영향. 퐌타지 품게 하는 것. 한강뷰 집 가진 나, 로테르담 통유리창 고층 아파트 가진 너, 우리 둘이 합체 뽝! 이런거...



아무튼 모르는 단어 오만삼천개 나오는 이 소설 다 읽었다. 만세! 산드라 브라운 님, 그런데 모르는 단어 너무 많이 쓰셔가지고 제가 너무 거시기 했네요. 그래도 산드라 브라운 님 소설 그동안 번역본 열심히 읽어온 동에 페이지를 넘겼지, 아니었으면 진작에 포기햇을 겁니다. 


잘 살아라 슬론 그리고 카터. 집 두 채 니까 잘 살겠지, 뭐.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질투와 시기가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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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8-27 13: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꼴페미 ㅋㅋㅋㅋ
지저분한 꼴페미! 자랑스럽다!
한강뷰에서 뽝!의 그날을 위해!!!

다락방 2023-08-28 08:31   좋아요 0 | URL
집이 넓어야 됩니다. 한강뷰의 집이 넓어야 책들을 다 가지런히 정리할 수 있을텐데. 공간 부족으로 정리가 잘 안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공간 더 줘도 사실 제가 정리 잘 할 거라는 생각은 안하지만요. 흠흠.

단발머리 2023-08-27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읽고 이제야 짬나서 댓글 답니다.
저도 심히 이 책 읽고 싶은데 단어 이야기 하시니 엄두가 안 나요. 사이즈 확인 마쳤는데 여태 고민중이라고 합니다.

카터와 베프의 결혼식이 있었던 그 오후에.... 슬론의 마음을 읽고 싶어요. 집이 한 채여도 감사할 일인데 두 채라니 어화둥둥 댄스파티라도 벌여야 할 듯 해요. 슬론은 좋겠다. 카터도 좋겠다....

다락방 2023-08-28 08:32   좋아요 0 | URL
아니 그게 말입니다, 단발머리 님. 제가 영어책 열 권 정도 읽어보니까, 어려운 단어 쓰고 어려운 문장은 초반에 잔뜩 나와도 뒤로 갈수록 좀 괜찮아 지잖아요? 근데 산드라 브라운은 끝까지 모르는 단어 너무 많이 사용했어요. 제가 너무 어휘력 부족이라 이렇게 힘든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번역본을 읽은 경험이 없다면 이 책을 진작에 덮었을 것 같아요. 물론, 단발머리 님도 그럴거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문장이 어렵거나 길거나 하진 않거든요. 다만 단어, 단어들이 아주 그냥 나 모르지롱? 하고 춤을 춥니다. 어휴.

저는 단발머리 님이 ‘그 오후의 슬론의 마음‘을 궁금해하는 사람이라서 참 좋습니다. 참 좋아요.

미미 2023-08-27 1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해변에 집 있는 사람 정말 부럽습니다. 그런집 공유할 수 있으면 엉망이어도 웃으며 치워줄 수 있는데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8-28 08:34   좋아요 2 | URL
너무 좋겠지요? 그리고 이들이 지금 너무 뜨겁게 사랑해서 이 방에서 섹스하고 저 방에서 섹스하고 그래도 나중엔 너는 저 집 나는 이 집 있다가 보고싶으면 만날까? 뭐 이렇게 살아도 될 것 같고요. 그런데 이 집에서 만나면 고풍스럽고 저 집에서 만나면 해변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살다보니 해변에 집 있는 남자랑 연애하는 경험도 누군가에겐 있네요? 껄껄. 전 아님요. -.-

독서괭 2023-08-28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읽고 웃었는데 댓글을 못 달았네요.
지저분한 꼴페미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예전에 오피스텔 보러 갔다가 크게 감동받은 적 있어요. 남자 혼자 산다는데, 책장으로 방을 구획하고 책장에는 뺴곡히 책이.. 책 종류는 잘 기억이 안 납니다만. 엄청 깔끔했어요. 와오.
집 두채면 잘 살 수밖에 없겠는데요? ㅋㅋㅋㅋ

다락방 2023-08-29 12:09   좋아요 1 | URL
우왓 그 집 저도 구경하고 싶네요. 저는 깔끔을 원하지만 저라는 사람이 깔끔하진 않은건 왜일까요? ㅋㅋ 지금도 사무실 책상 완전 난장판이에요. ㅋㅋ 아놔 왜 이러는지 원. 그리고 제가 아무리 마음 먹고 싹 다 정리해도 원래 깔끔한 사람을 따라가질 못합니다. 인생.. orz

아무튼 정리정돈 못하는 지저분한 꼴페미 다락방은 살던대로 사는 걸로 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
 

아직도 다 못읽은 산드라 브라운의 영어책을 읽는 지금.


교토마블 식빵은 원래 버터버터 한데 거기에 또 버터를 .. 하하하하하

아, 아침 식사 아닙니다. 아침은 장칼국수 끓여 먹었음. 어제 술 마시고 자는 바람에 해장으로..

설거지하고 샤워하고 간식 차려두고 이제 독서를 슝-

이라지만, 먹으면서 독서는 사실 잘 못하고 다 먹고나서 해야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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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8-27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토마블에 버터 무슨 일이야…..
응 다부장 아저씨배 나오는 일.

다락방 2023-08-27 10:24   좋아요 1 | URL
저 결국 반쪽 먹고 반쪽은 남기고 있습니다. 배터지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저씨배 어쩌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배 아주 많이 나온 나라도 괜찮아요? (그렁그렁)

은오 2023-08-27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음주 다음날 일요일에도 다락방님은 역시 부지런하시군요. 아직 10시 20분인데 아침식사 설거지 샤워 다 마치시고 간식이랑 독서! ㅋㅋㅋㅋ 아아아아 버터리한 식빵에 버터 ㅠㅠㅠㅠ 커피 ㅠㅠㅠ 전 얼죽아라 아아메와함께 백래시 마지막 분량 읽으러 갑니다 ㅋㅋㅋㅋ

다락방 2023-08-27 10:25   좋아요 1 | URL
저는 어느 순간 나이들고 나서는 여름에도 차가운 음료를 잘 못마시겠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저도 일단 이 책 다 읽고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갈 예정입니다. 대체 왜 빌리는지 모르겟지만... 사둔 책이나 읽어랏!
은오 님, 백래시 마저 읽기 화이팅이요!! 빠샤!!

잠자냥 2023-08-27 10:32   좋아요 1 | URL
다부장 이 시렵구나….. 나도 좀전에 아아 마셨는데 쯧쯧….

다락방 2023-08-27 10:38   좋아요 1 | URL
배 나온 아저씨는 이가 시리다기 보다는 찬 거 먹으면 기침을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이 저의 노화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자존심 상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8-27 19:06   좋아요 0 | URL
은오님 : 아아메
잠자냥님 : 아아
다락방님 : 핫(아메리카노)
단발머리 : 바닐라아이스라떼

다락방 2023-08-28 08:34   좋아요 1 | URL
저 책상에 일회용 타먹는 바닐라라떼 있는데 아메리카노 다 마시면 이것 좀 타서 마셔야겠어요. ㅋ

건수하 2023-08-29 08:50   좋아요 1 | URL
은오님 : 아아메
잠자냥님 : 아아
다락방님 : 핫(아메리카노)
단발머리 : 바닐라아이스라떼
수하: 핫드립 (하루에 1잔 한계) / 핫아메리카노

단발머리님의 수고를 덜어드리고자..

독서괭 2023-08-28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지금 무척이나 배고픈 이 순간, 오우 마이..

다락방 2023-08-29 09:00   좋아요 0 | URL
교토마블 맛있어요. 저처럼 버터를 추가하진 마세요. 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8-29 0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토마블 안그래도 달고 느끼한데 거기에 버터..... 커피 필수입니다. ㅋㅋ

다락방 2023-08-29 09:00   좋아요 1 | URL
다시는 교토마블에 버터를 올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된 도전이었습니다.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8-29 09:00   좋아요 0 | URL
저걸 장칼국수 먹고 나서 먹은 다부장. 장하다!

다락방 2023-08-29 09:01   좋아요 0 | URL
장칼국수는 시뻘거니까요 ㅋㅋㅋㅋㅋ
 

이번 일주일이 지옥같이 흐르고 있다. 

많이 바쁘다.

계속 보고할 자료 만드느라 정신이 없고 그 와중에 원래 내가 하던 일도 해야 한다.

지금은 버티는 게 답이라고, 나도 생각하지만 내 주변도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특별히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전문직도 아닌 중년의 화이트칼라 여성이 이대로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그 뒤에 일어날 일은 아마 다들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내가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 점심을 먹기 위해서든 혹은 퇴근을 하기 위해서든 걸으면, 길에서 마주치는 젊은 직원들이 고개 숙이며 인사해준다. 내 직함을 부르며 반갑게 달려오기도 한다. 나는 이들에게 상사이기에 이들은 길에서 마주치는 내게 예의바르고 반갑게 대하지만, 만약 내가 여기에 속해있지 않다면, 아무런 직함도 달고 있지 않은 나는 그저 지나가는 중년여성1 일 것이다. 나는 가끔 직장 생활로부터 만족을 얻기도 한다. 물론 통장에 매달 어김없이 찍히는 월급으로부터도 만족을 얻지만, 드물게는 내가 해놓은 일의 결과물을 보고 좋아할 때도 있다. ㅋ ㅑ ~ 나니까 이걸 이렇게 했다, 라는 내 뽕이 차오른달까.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든 마주친다는 것이 내게는 좋다. 그러니까 좋은 사람도 있고 싫은 사람도 있고 잘 맞는 사람도 있고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고 억지로 웃어줘야 할 때도 있고 화를 낼 때도 있고 분노를 표출할 때도 있지만, 내가 여기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다양한 성격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는 거다.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 놓이는 일은 스트레스지만, 그러나 그런 상황에 놓여보았기 때문에 사회생활이라는 건 내가 원하는 것만 취할 순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지금의 회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너무 커지고 있고, 그런데 커지면서 생겨나는 일들이 내 몫이 되었고, 그걸 해내면서 나는 매일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 인생의 이 시점을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낮에는 정신없이 일하는 삶, 그 외에는 늙고 병든 아빠와 외할머니를 마주하는 삶, 그리고 직접적으로 돌봄노동하는 엄마를 들여다보는 삶. 


얼마전 투비에 여행기를 올리는데 여행기를 읽은 친구가 엄마 모시고 여행 다녀오느라 고생 많았다고, 잘 다녀와 다행이라고 포인트 만원을 쏴줬다.(포인트 만 원 처음 받아봐요 ㅠㅠ 포인트 만원이란게 있군요 ㅠㅠㅠ)

한 친구는 내 알라딘 글을 읽고 엄마를 모시고 여행하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내가 네덜란드에 있는데 세상에, 십만원을 송금해줬다. 엄마 이모, 내 친구가 십만원이나 보내줬어 맛있는 것 먹으래.

엄마랑 이모는 내 말에 "그거 잊지 말고 꼭 그 친구에게 좋은 일 생겼을 때 보답해." 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나보다 나이 많은 친구도 있고 나보다 나이 적은 친구도 있고 성별이 다른 친구들도 있고, 그렇게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들과 당연히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르기 때문에 내가 경험하고 얻어가는 것도 많다고 생각하고. 그런데 확실히 내 또래가 줄 수 있는 고유의 위로라는게 있는 것 같다. 


아빠의 계속 거듭되는 수술과 재활 그리고 엄마의 돌봄노동까지, 내 또래의 친구들은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걱정해주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나는 감사하다. 사실 요즘에 웃을 일이 별로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라서, 내 성격이 이래서, 어디서든 뭐가 됐든 행복을 찾는 사람이라서 행복을 찾는다. 오늘 아침에도 며칠 전 조카의 눈을 바라보았던 일, 우리가 손뼉을 마주치며 하이파이브 하며 소리를 질렀던 일등을 떠올리며 웃음이 났다. 


어제도 좀 야근을 했다. 그런데 와인을 너무 마시고 싶었다. 집에는 간단히 해먹을 수 있는 스파게티를 사둔 게 있었다. 나는 와인을 마시고 스파게티를 먹고 그러다 이것저것 다 꺼내먹고 <다시 갈 지도> 보면서 스페인에 가야지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술을 마시고 마시고 계속 마셨다. 그런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책을 샀다.


책을 사고 나는 장렬히 전사한 것이다!!



오늘 출근한 뒤에 '아 맞다 어제 책 샀지, 뭐 샀지?' 하고 들여다보니, 내 주문 내역은 이렇게 되어 있었다.




아니, 왜 아무에게도 땡투를 안한거죠? 왜죠? 저 깨끗함 뭐죠? 빨간 하트 있어야 되는데?

나는 얼른 주문 취소하고 재주문을 하려고 하였으나 이미 상품출고중이라 취소가 안된다. 《생물학적 풍요》같은 거, 땡투 적립금 3백원이나 될텐데. 아까버 ….


그리고 나는 다른 계정에 들어가서도 책을 샀고 예스에서도 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술 마시는 것 말려라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사로 책 사는 여자 어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근데 생물학적 풍요 표지 너무 시르다 …. (왜 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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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8-25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트레스를 책 사는 걸로 풉니다..
이제 먹는 건 귀찮고 술 마시는 것도 귀찮고...

어후 생물학적 풍요 엄청 두껍네요.... ㄷㄷ

다락방 2023-08-25 09:35   좋아요 1 | URL
저 생물학적 풍요 왜 샀을까요? 왜 두꺼운 책을 겁도 없이 사버렸을까요.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술 취해 책 사는 거 너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도 뭐 다른 주사보다 낫지 않나 싶네요. 껄껄.

건수하 2023-08-25 10:02   좋아요 0 | URL
책을 산다는게 다 좋은데... 사면 투자해야 하는 (읽어야 하는) 시간이 생긴다는 게 저를 옭아매는 것 같습니다 ㅠㅠ

다락방 2023-08-25 10:13   좋아요 1 | URL
저는 이제 읽어야한다는 생각을 포기한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냥 사제끼는듯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하수 2023-08-25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아침부터 두꺼운 책에다... 가격보고 깜놀했어요
전 절대 사지 못했을 거 같아요~~~ㅎ

술 잘 마시는 분 젤 부럽네요
전 한 잔 마시면 얼굴 빨개지고 두 잔 마시면 가렵기 시작하고...
다락방님 술 드시는 거 젤 부러워요
이번 생에선 극복이 안되겠죠?!!

다락방 2023-08-25 09:44   좋아요 1 | URL
저도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하고요 그런데 술 마시는 걸 너무 좋아해요. 모든 음식을 안주로 생각합니다. ㅋㅋ
앞으로도 계속 술을 즐기며 살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라면 건강해야겠죠. 건강관리에 힘써서 술 마시며 사는 삶을 오래 누려야겠어요. 빠샤!! ㅎㅎ

그나저나 저 책 그냥 쌓아둘려고 샀나봅니다. ㅠㅠ

독서괭 2023-08-25 0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사로 책을 … 3만원 넘는 책을 턱 ㅋㅋㅋㅋㅋ
회사가 커지느라 더 바빠지셨군요. 회사가 애쓴 덕을 알아야할텐데… 일할 때 뽕 차오르는 거 ㅋㅋㅋㅋ 그거 좋죠. 일하는 싱글 여성이 가장 행복하다고 하니, 건강은 잘 챙겨가며 버티시길요!!

다락방 2023-08-25 09:45   좋아요 2 | URL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합니다. 주사로 고가의 책 사는 저같은 사람은.. 하하하하하.
저는 큰 회사에서 일할 생각 같은 거 없었는데 갑자기 큰 회사 근무하는 사람이 되어버려가지고 인생의 이 시점에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는 일은 무엇인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다 까닭이 있겠지, 하고요. 하하하하하하하.
아무튼 열심히 돈 벌어서 다음에 술 마셔도 책을 똭!!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8-25 09:47   좋아요 1 | URL
저 얼마전에 꿈에서 다락방님이랑 수하님을 만났는데.. 내용은 기억 안 나지만.. 반가웠어요 ㅋㅋ 가끔 다락방님 만나는 상상을 하곤 한답니다!

다락방 2023-08-25 10:03   좋아요 2 | URL
꺅 >.<
배나온 아저씨 다락방 상상하시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8-25 10:03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일이 많아졌으니 사람을 더 뽑자! 회사가 커지면 원래 그런 거다!!! 내 비서를 뽑아달라!!! 하십시오.

독서괭님/ 오오... 독서괭님도 서재분들 꿈을 ㅎㅎㅎ 전 요즘 한동안은 안 꿨어요 여름에 잠을 깊이 못자서 그런듯 ㅎㅎㅎ 전 거기서 어떤 모습이었을까... @_@

다락방 2023-08-25 10:12   좋아요 4 | URL
사람을 더 뽑았고요, 그 사람이 참 좋은 사람이라서 너무 좋습니다. ㅋㅋㅋ 이 사람이 들어와 다행이다 싶어요. 매일 저랑 점심도 같이, 많이 먹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좋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8-25 10:16   좋아요 1 | URL
오오, 그 와중에 다행입니다! 그 분도 메뉴 두 개씩 드시나요? 그 분과 오래오래 행복하시기를 (응?)!

다락방 2023-08-25 10:41   좋아요 4 | URL
저랑 공기밥 하나 더 시켜서 나눠 먹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8-25 16:42   좋아요 0 | URL
ㅋㅋㅋ 두분 모습은 구체적으로 안 나왔나 기억이 없네요~
잘 먹는 동료 들어와서 좋으시겠습니다 다락방님. 저도 웬만큼 잘 먹습니다😘

은오 2023-08-25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좋은 분이니 직원들도 다락방님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고 친구분들도 다락방님께 애정이 넘치시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인생은 다락방님처럼...
주사가 책 사기인 여자 섹시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8-25 10:02   좋아요 0 | URL
저는 어쩜 이렇게 주사도 멋질까요? 좀 짱인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8-25 10: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술 마시면 구남친 찾는 게 아니고 책 사는 다락방 장하다!
주사를 책으로 부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근데 이렇게 계속 주사 부리면 집 터져...

다락방 2023-08-25 10:02   좋아요 1 | URL
집을 사야겠어요. 제 주사를 멈출 순 없으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8-25 10:05   좋아요 2 | URL
어느날 주사로 40평대 아파트 샀다는 걸 페이퍼로 쓰는 날이 오길!

다락방 2023-08-25 10:10   좋아요 0 | URL
크- 이 세상에 태어나서 40평대 아파트에 한 번 살아봐야 하는건데 말입니다. 크 -

거리의화가 2023-08-25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에 저도 종종 술마시고 책을 지르곤 했는데 후회할 때가 있어서 요즘엔 술마시고는 그냥 자는게 낫더라구요ㅎㅎ 근데 다른 계정에서는 조카나 남동생 고를 책을 사시는 건가요?^^

요즘 같은 불경기에 회사 규모가 더 커지고 맡은 일이 더 많아지신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건강을 잘 챙기셔야 하겠죠^^

다락방 2023-08-25 10:11   좋아요 0 | URL
아뇨, 저 지금 들어가봤더니 땡투 잘 누르고 소설책 샀네요.ㅋㅋ 소설책하고 커피콩 샀어요. 요즘 핸드 드립 넘나 귀찮아서 안산지 꽤 됐는데 스탬프를 모아놓은 바람에 그거 사용해서 원두 사고 소설 사고 ㅋㅋㅋ 그랬네요? 후훗. 예스에서는 어제 수하님이 올려주신 잡지 샀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얼른 퇴직금 받아서 몰타로 어학연수 가고 싶습니다!! ㅎㅎ

초란공 2023-08-25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물학적 풍요>는 아직 안봤지만, 표지가 화식조 같아요. 무려 ‘일처다부제’를 유지하는 바람둥이 새이면서^^ 수컷보다 암컷이 더 무섭다는 새!! 이 ‘화이팅‘한 이미지가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다락방 2023-08-25 13:46   좋아요 2 | URL
점심 먹으면서 책 소개를 보니 동물 섹슈얼리티를 연구한 책인가 봅니다. 인간 섹슈얼리티도 제대로 모르면서 저는 왜 이 책을 샀을까요. 게다가 천 페이지가 넘는다는 사실을 지금 알게 됐습니다. 하아-

햇살과함께 2023-08-25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56페이지요???
이 정도 책 쓰신 분이면 지금 읽고 있는 <암컷들>에도 언급되어 있을 것 같네요.
이미 읽은 부분에 나왔을 수도... 기억 못함..
<암컷들> 읽으면서 참고도서로 읽으면 좋겠네요.....ㅋㅋㅋ
주사가 그 주사가 아니었군요. 주사 맞는다의 주사인줄요..
그 주사이면서 이 주사네요 ㅎㅎ

다락방 2023-08-26 09:19   좋아요 1 | URL
제가 페이지를 안보고 샀네요. 뒤늦게 페이지 확인하고 지금 당황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장식용으로 책장에 꽂아두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하하하하.

단발머리 2023-08-25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우리 알라딘 친구 분들 중에 오늘 <The Bronte Sisters> 중고책 구매하신 분 있을까요? 제가 알림 받고 잠깐 이리저리 정신 판 30분 사이에 다른 분이 구매하셨는데, 그 분이 누구신지 좀 찾아야 해서요. 찾아서.... 제가 많이 부러워한다고 전하려고요.
여기가 알라딘 서재 공식 게시판 아닌거는 알지만 다들 여기 계시기에 여쭤보아요. 그 책 사 가신분..... 제가 부러워합니다. 많이....

다락방님 이런 주사 적극 찬성합니다. 다음으로는 책장, 그 다음으로는 40평 아파트! 갑시다, 고고고!!

다락방 2023-08-26 09:2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우리 알라딘 친구 분들 중에 누가 브론테 자매를 가져가셨나요? 단발머리 님이 부러워하신답니다. ㅎㅎ

다음 주사편도 기대해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즈무라 미나에'의 《어머니의 유산》을 읽고 있다.


여러가지로 지금의 나와 상황이 겹쳐서 답답하고 공감하다가 안타까워하다가 한다.


주인공 미쓰키의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 유산을 언니 나쓰키와 나눠 가진 걸로 소설은 시작한다. 갑자기 갖게 된 큰 돈을 가지고 어떻게 쓸까, 하는 대화를 자매가 하는 거다. 계산해보니 우리 돈으로 4억쯤 되는 돈을 자매가 각각 갖게 된 것 같다. 미쓰키야 딱히 여유롭게 살고 있진 않았지만 나쓰키는 부유한 집으로 시집가 여유롭게 살고 있었는데 그래도 자신 소유의 돈이 생기니 흥분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엄마의 젊은 시절과 그리고 자매들을 키우면서의 이야기들이 보여지는 거다. 미쓰키의 엄마는 헌신적이거나 희생적인 엄마라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엄마였고, 그런 점에서 다소 엄마에게 불만을 품기도 했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감사하기도 했고 또 자매에게 애착을 갖기도 한-때로는 질투하기도 한- 그런 엄마였다. 아마 딸들이 대부분 엄마에게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 같다.



나의 외할머니가 지난주 응급실에 실려가시기 전 걸음을 걷지 못하셔서 요양보호사 님이 기저귀팬티를 채워주셨더랬다. 그런데 할머니는 한사코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시겠다는 거다. 걷다가 넘어지면 큰일난다고, 기저귀 했으니 그냥 소변 보시라고 엄마와 내가 큰 소리로 몇 번이나 얘기해도 할머니는 기어코 화장실에 가고 싶어하셨다. 하는수없이 엄마와 부축해 변기 위에 옷을 벗기고 앉혀드렸는데 볼일을 다 보신 할머니는 평소처럼, 그 힘이 없는데도, 뒷처리까지 깔끔하게 하셨다. 


아무리 몸의 기력이 떨어져도 뒷처리까지 깔끔하게 하는 할머니에게 '그냥 기저귀에 하시라'는 말은 얼마나 비참했을까. 아마 도무지 용납이 안되는 말이 아니었을까. 119에 실려가시기 직전에도 다시 한 번 화장실을 요청하셨고 그렇게 화장실을 모시고 다녀오면서, 엄마, 그 몸에도 뒷처리까지 깔끔하시네, 라고 말씀드렸다. 정신이 말짱한데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의 마음이란 것은 어떤 걸까.



미쓰키의 엄마도 자전거 사고가 나고 몸도 약해지면서 몸을 가눌 수 없게 되고 결국 요양병원과 실버타운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다리를 쓰지 못해 이동식 변기를 집 안에 두어야 했다. 그런것들을 감당하는 일을 내 정신이 멀쩡한데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은 도대체 어떤 걸까. 이건 소설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 내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일텐데. 소변이 마렵다는 나의 본능과 그런데 나는 내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끌고갈 수 없다는 앎은 소변을 기저귀에 보게 하는 결과로 나와야 할텐데, 그걸 받아들이는 과정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나중에는 영양분 주입을 코에 관을 꽂거나 위에 꽂거나 해서 연명해야 한다는데, 그렇게까지 해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나 영생, 영생을 주장해 왔는데 최근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걸 받아들여야 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생각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 어쩌면 내 몸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인지하는 시점에 죽는게 더 나은 거 아닐까, 하는. 몸이 내 마음대로 안되는 삶을 이어나가는 것, 그런 영생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그것은 말 그대로 고통이 아닌가. '윌'이 이것이 내 삶이 아님을, 이 삶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루이자를 사랑하지만 그것만으로 이어가기엔 부족함을 말하는 것이, 지금은 더 잘 이해된다. 나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다. 삶이란 무엇일까.



그런 엄마를 매일 들여다보고 돌보아야 하는 건 미쓰키의 몫이다. 어릴 적 장녀인 나쓰키에게 엄마는 기대를 걸었지만 엄마와 어느 틈에 소원해져 지금 엄마는 전적으로 미쓰키에게 의존한다. 더 연약해진 후에 장녀 나쓰키도 함께 돌봄 노동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간신히 생명줄을 붙잡고 있는 것보다는 그냥 돌아가시는 게 더 나을거란 생각을 자매들도 하고 있다. 그렇게 쨍쨍하게 자기 삶을 이어나가고 자기 자신을 사랑했던 엄마의 누워있기만 하는 힘없는 육체를 보는 일은, 자매에게도 복잡한 마음을 가져다 준 것이다. 그런데,



늙고 병든 엄마를 돌보는 일 만으로도 인생이 뭔가 싶고 육체가 피로한데, 그런 오십대의 미쓰키에게는 이 즈음에 다른 고민도 있었으니, 그것은 남편 데쓰오의 바람이었다. 우연히 남편 데쓰오가 삼십대 후반의 여자와 바람을 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거다. 어머니 간호 때문에 베트남 장기출장에 따라가지 않는걸 선택하면서 미쓰키는 남편에게 여자가 있음을, 그 여자가 베트남에서 남편을 만날 것임을, 그리고 그 둘은 결혼할 것임을 다 알게 되면서, 또 자신의 사진까지 그 여성에게 보여준 것도 알게 되면서 미쓰키는 절망한다. 아직 남편에게 내가 너의 바람을 안다, 는 것을 말하지 않고 엄마의 안부를 주고 받고 있기는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시고나자 미쓰키는 베트남에 있는 데쓰오에게도 그리고 데쓰오의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엄마로부터 받은 유산을 가지고 자신을 위로할 겸 생각할 겸 그리고 휴식할 겸, 일전에 엄마와 간 적 있던 호텔로 향한다. 그곳에서 미쓰키는 조용히 남편을 생각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은 사실 남편으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남편이 자신을 사랑했다고 생각한 순간은, 둘다 공부하다 만난 파리의 다락방에서 청혼하고 청혼받던 그 순간에만 존재했다. 남편과 미쓰키 사이에는 점차 위화감이 조성되고 그 사이에 남편은 바람을 피고 또 피고 그러다 또 피고 … 나는 사랑받지 못했어, 라는 걸 최종 확인하는 일은 괴롭지만, 그러나 미쓰키는 깨닫는 거다. 



"나는 내가 바랐던 것처럼 사랑받지는 못했다." -p.330



처음 남편의 불륜이 들키고 싸우고 울면서 화해하고 했던 시간들까지 돌이켜보다, 미쓰키는 그 날의 냄새도 떠올리게 된다.



"끝내자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침대에 누운 미쓰키의 마음이 진정되자 데쓰오의 변명이 시작되었다. 미쓰키가 감기에 들지 않도록 깃이불을 덮어주고 자신은 옆에서 머리 위로 손깍지를 낀 채 이불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머리 위로 손깍지를 끼고 있으니 겨드랑이에서 냄새가 올라온다. 미쓰키가 파리에서 좋아하게 된 어딘가 야성적인 데가 있는, 코를 찌르는 달콤한 냄새였다. -p.353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내가 진짜 오늘 아침 지하철 안에서 이 부분 읽다가 넘나 대충격 받아버림. 아니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 사람은 모두 다 각자의 취향이란 것이 있다. 유독 냄새에 민감한 사람이 있고 유독 시각적인 것에 약할 수도 있고, 그렇게 유독 민감하고 예민한 부분이 있는 것처럼, 또 사람마다 저마다의 흠뻑 반하게 되는 지점, 남들은 아니라지만 나는 반하는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다. 그게 페티쉬로 나올 수도 있고, 내 경우엔 누누이 말해왔지만, 전완근과 등근육에 뒤로 자빠져버리는데, 누군가는 식스팩에 맛이 갈 수도 있고, 뭐 여자들 다리나 발목에 뻑가는 남자들도 많지 않나. 오래전 본 드라마에서는 여자가 남자의 코에 반했다고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사람마다 반하는 지점이 다를 거라는 것을 나도 안다. 전완근과 등근육에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은 몹시 흔들흔들. 누가 푸쉬업 한다는 말만 들어도 아찔해지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겨드랑이를, 그리고 겨드랑이의 냄새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건 그 사람의 취향이라는 것을 안다. 아는데, 그래도 너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어떻게 겨내가 '야성적인 데가 있는', 아니, 그래, 야성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몸에서 나는 그대로의 체취 아닌가. 아직 씻지 않았으니, 그래 그걸 야성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 오케이. '코를 찌르는' 그래, 그것도 알겠다. 맞지. 코를 찌르지. 내가 이 더운 여름에 왜 마스크를 계속 하고 다니는데? 퇴근 길 지하철 냄새가 너무 싫어서 나는 마스크를 하고 다닌다. 더워 죽겠는데 내게는 더위보다 이 냄새가 더 환장하는 지점인거다. 사람들 본연의 체취는 나에게 너무나 지독하다. 코를 찌르는 겨내 … 나는 그걸 맡고 싶지 않다. 여름의 퇴근길 지하철에 타보셨나요. 곶통 … 


그런데 이렇게 '야성적' 이고 '코를 찌르는' 겨내를, 아니 '달콤한 냄새' 라고 하다니, 나는 돌아버리겠는 거다. 아, 누군가는 그걸 '달콤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고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 거구나!



아니, 내가 아무리 한 사람을 사랑해도 그 사람의 똥은 더럽지 않나요?

아니, 내가 아무리 한 사람을 사랑해도 그 사람의 똥냄새는 싫지 않나요?


뭐 똥냄새랑 겨냄새는 좀 다르긴 하지만 …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 여자친구중 한 사람은 퇴근후 애인 만났더니 '네 정수리 냄새도 좋다'고 말했었다는 걸 들려준 적이 있다. 퇴근 후에 정수리 냄새가 날까봐 걱정했는데, 애인은 그런 나의 친구에게 '너가 오늘 하루종일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잖아, 난 좋은데?' 했다는 것. 어쩌면 당신의 겨드랑이 냄새를 달콤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당신의 정수리 냄새를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냄새에 담긴 사연을 읽을 수 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더우니까, 열심히 일했으니까, 땀흘렸으니까, 당신에게서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이 바로 그 흔적이지, 아 달콤해 …


라지만, 나는 안되겠어요. 겨드랑이 닦고 나를 만나도록 하세요. 겨드랑이도 닦고 손도 닦고 발도 닦고 양치도 하고 머리도 감고 똥꼬도 박박 닦고 귀 뒤도 닦고 다 닦고 나를 만나자. 나는 겨드랑이의 달콤한 냄새 같은 거에 반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나는 그보다는 향수 뿌린 사람에게 더 반하는 쪽이다. 길을 걷다가도 지나가는 여자사람이나 남자사람으로부터 향수 냄새나면 음 좋아~ 하는 사람이 나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당신의 겨드랑이 냄새 달콤해' 한 적 없고, 앞으로도 내가 그런 사람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사랑 안하고 말지, 겨드랑이 냄새 달콤해하면서 옆에 누워 자기는 싫다. 그런데 상대가 만약 내 겨내를 달콤하게 생각한다면 … 아 모르겠다. 용납이 잘 안될라고 해. 겨내를 좋아한 건 아니지만 겨드랑이를 좋아했던 남자는 있었는데 … 나는 당신의 전완근을 좋아했어. 당신이 사진을 찍어 전송해주면 일단 전완근 먼저 봤지. 손하고. 


눈 코 입 날 만지던 네 손길 작은 손톱까지 다 여전히 널 느낄 수 잇지만




그러고보니 미쓰키가 과거를 떠올리면서 남편으로부터 위화감을 느꼈던 것중에 하나로 자신이 노래부르던 중에 저 멀리로 가버린, 노래 부르는 걸 한 번도 들어준 적 없었던 것도 떠올리는데, 음 … 나는 늘 노래부르는 사람인데 … 그래서 사람들이 '뭐가 그렇게 좋아?'를 늘 묻곤 하는데, 난 뭐가 좋아서 부른 건 아니고 그냥 부른다. 남동생도 그런다. 일어나면 일단 노래부터 부르고 화장실 가도 부르고 나도 아무때나 맨날 흥얼거려서 ㅋㅋㅋ 회사에서도 그래가지고 ㅋㅋㅋㅋ 어느날 올케가 주변에 노래 부르는 사람이 딱 두 명있는데 그게 자기 신랑하고 나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 뭐 왜 ㅋ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너무 웃긴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우리 아가 조카, 즉 내 남동생의 딸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 말도 하기 전부터 노래를 부르고 다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울집 와서 화분에 분무기로 물주면서 흥얼거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귀여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음… 이야기가 왜 여기로 …



미쓰키가 사랑받지 못했다는 걸 자각할 때 나는 반대로 사랑받았음을 자각했다. 내가 사랑 받고 '아 나 사랑받고 있어' 를 깨달았던 순간들이 눈앞에 스쳐지나갔다. 조카들 생각이 제일 많이 났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어서 내가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준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이 아이들이 나에게 주는 사랑이 나를 아주 크게 어루만져준다고 깨달았던 순간들이 있었던 거다. 그렇게 내가 사랑받았던, 내가 기대하지도 않았던 어떤 사랑을 내가 받았다고 확실히 느꼈던 순간들이 눈앞에 떠오르면서 마음이 따뜻해진거다. 난 받았어, 사랑. 난 받았었지. 사랑은 모든 일의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러나 사랑받은 경험과 기억은 인생에 아주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 경험은 확실히, 있는 게 낫다. 원헌드레드펄센트 장담한다.



자, 다시 미쓰키 얘기로 돌아가자.



"끝내자고 말할 때마다 마구 울어서 끊을 수가 없었어."

미쓰키는 코를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도 있을 것이다. 데쓰오는 자상해서 헤어지기 힘들었을 것이다-전화할 때의 유쾌한 목소리가 귓가에 남이 있는데도 미쓰키는 데쓰오의 변명에 자진해서 납득했다. -p.353



네? 자상해서 … 헤어지기 힘들었을 거라고요? 불륜인데요? 바람핀건데요? 헤어지지 않고 양쪽 다 만나면 둘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일인데, '자상해서' 라고요? 미쓰키도 인지하다시피 이건 데쓰오의 변명을 대신해주고 납득하는 것이다. 왜? 그렇지 않고 사실 그대로 직시하면 자신이 상처받을 테니까. 사실은, 데쓰오는 자상한 게 아니라 겁쟁이에 게으른거다. 헤어지자고 말함으로써 겪게 될 그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거다. 그렇게 이 여자 만나고 저 여자 만나면서 자신은 자신대로 만족하고 그런 한편 힘들고 괴로운 일로부터는 도망치고, 그렇게 도망치면 상대가 더 괴로워하는데도 그걸 선택한 거다. 순전히 자기 자신만 생각한거다. 자상해서 라니. 자상하다면 바람을 피우지 않았을 것이다. 자상하다면 아내 외에 다가오는 여자를 밀어냈을 것이다. 혹여 그 여자가 내 인생 여자라는 생각을 했다면, 아내보다 늦게 만난게 한스러웠다면, 그렇다면 아내에게 그만을 말했을테고. 이도저도 아니고 여기저기 다 만나는 것, 저 여자 만나면서 아내 옆에 잠드는 것은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자상한건가? 게으르고 비겁한 놈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게으르고 비겁한 놈'하고 같이 사는 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 미쓰키는 남편을 '자상하다'고 포장한다. 미쓰키는 게으르고 비겁한 놈과 사는게 사실인데, 자상한 놈과 같이 사는 걸로 포장한다. 게으르고 비겁한 놈과 함께 사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도 싫으니까.  누구나 내 남자가 좋은 남자이길 바라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보이길 바라니까. 그래서 괴로움을 참고 사는 걸 선택해버리는 거다. 



나는 그런 괴로움으로부터 자신을 떼어놓으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나를 괴롭게 하는 상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인데, 그런데 사람들이 다 나같지 않다는 것을 안다. 거기엔 자기만의 고유한 사정과 상황이 있을 것이다. 그동안 살아온 환경과 이력과 역사가 비참해도 사랑을 붙들고 있게 하려는, 사랑이 아님에도 사랑이라고 끈덕지게 가장하려는 습성을 갖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다른 모든 일들과 마찬가지로 그런 것들도 '그러지마' 라고 해서 그러지 않는 건 아니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결정하지 않는한, 다 잔소리로 들릴 뿐이다. 


아프지만 미쓰키는 이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나는 남편으로부터 내가 원하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 는 것을. 그 바람을 피고도 남편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를 대신히 그녀가 변명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직도 읽는 중이니 그 후에 아마도 미쓰키가 홀로 서는 걸 나는 읽게 되지 않을까. 오십대의 미쓰키가 홀로 서는 일, 그것을 기대하며 이 책을 계속 읽어볼 것이다. 




아니, 그런데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는데.

엊그제 왓츠앱을 통해 전화가 걸려왔는데 +91 로 표기가 되어 있는 숫자가 뜨는 거다. 

나는 91로 시작하는 나라에 아는 사람이 없는데? 그래서 일단 받지 않고 국가번호 검색해보니 인도라는 거다.

인도? 나는 인도에 가본 적도 없고 인도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 설마, 내가 아는 누군가가 인도에 가서 전화했나? 

궁금해서 왓츠앱으로 검색해보니 그 번호를 가진 사람의 사진이 뜨는데 … 인도 남자 … 인 것 같다.


나한테 전화 왜했어요? 나한테 하려면 국제전화였을텐데, 이 번호를 어떻게 알고 했어요?

제기랄. 호텔이며 택시며 예약한 것들이 내 번호를 이제 전 세계에 퍼뜨린건가? 한국으로도 부족해서 전 세계에 퍼져버린거야?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위 아 더 월드. 

피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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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8-24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8-24 09:10   좋아요 1 | URL
오늘도 웃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8-24 11:17   좋아요 0 | URL
여기서는 오늘 저를 웃긴 기념으로 만원 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8-24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지하게 읽다가 겨내와 인도남으로 마무리…. 근데 냄새의 사연 알고 싶지 않음!!

다락방 2023-08-24 09:10   좋아요 2 | URL
한 사람이 좋다고 그 사람의 겨내까지 좋아할 순 없어요, 저는. 저는 차가운 도시여자인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8-24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드랑이 냄새... -_-....

저도 얼마 전 <이중 작가 초롱>을 읽으면서 이런 관점에서 너무 불편한 부분을 만났어요. 냄새는 아니고... 다른 감각이긴 했는데. 여튼...

정수리 냄새가 ‘좋아‘ 라는 건 진짜 좋다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는 거지. 근데 저 인물은 겨드랑이 냄새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고...

음. 근데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남자애는.. 신기하게 땀냄새도 좋긴 했어요. 샤워젤 냄새가 남아있어서 그랬던거 아닌가 싶지만, (앞자리라) 고개 숙이는 척하면서 킁킁하곤 했는데... 하지만 겨드랑이 냄새는 별로였을 거라 장담합니다...

다락방 2023-08-24 09:40   좋아요 2 | URL
아 저는 정수리 냄새도 겨드랑이 냄새처럼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아니지만 ㅋㅋ 겨내도 좋다는데 정수리 냄새라고 안좋을게 뭐냐~ ㅋㅋㅋ 어떤 사람들에게 정수리 냄새는 치명적 매력을 발산하는 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ㅋㅋㅋ 그리고 저는 제 친구의 대화에서 ‘너가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았다‘는 건 좀 핑계로 느껴졌어요. 그러니까 실제로 정수리 냄새를 좋아하는 성향인데 그것에 대해서 ‘너가 열심히 살아서‘라는 변명을 한 것처럼 느껴졌달까요. 정수리 냄새 좋아하는 취향을 포장한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ㅋㅋㅋㅋㅋㅋ

저는 담배냄새가 좋았던 남자가 있거든요? 이십오세에 벌어진 일인데, 그 남자도 이십오세였는데, 다른 남자들은 아시겠지만, 담배+맥심커피 냄새 합쳐져서 진짜 세상 똥내 나잖아요? 근데 그 남자는 담배 피고 오면 그 남자가 늘상 뿌리던 향수 냄새랑 섞여서 되게 섹시한 거예요. 그 남자가 담배 피고 와서 물마신다고 정수기 앞에 서있는데 제가 바로 그 뒤에 섰다가 담배+향수의 섹시함에 무릎에서 힘이 빠져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그 남자를 좀 좋아했습니다. 나중에, 몇 년 지난 후에 누군가 제게 전해주더군요. 그 남자가 절 좋아했다고. 아오멍충이 그럼 말이나 좀 해보지 아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랬으면 내가 지금 대학생 딸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갑자기 댓글의 망상화)

건수하 2023-08-24 09:49   좋아요 4 | URL
아.. 저는... 고등학교 때 이후론 그런 냄새들이 좋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ㅠㅠ 정수리 냄새가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은 아닐거야 그냥 그렇게 생각하려는 걸꺼야 였는데 여기서 다락방님과 제가 갈리는군요 ㅋㅋ

맞아요 담배 냄새 이상하게 안 나는 혹은 나도 안 이상한 사람이 있더라구요. 그런 사람은 딱 한 명 봤는데 유부남 선배였고 이상한 감정은 전혀 생기지 않았습니다 ㅋㅋㅋ 그 분은 집에선 담배를 끊은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퇴근하기 전 이닦기 + 손씻기 + 향수뿌리기 를 시전하고 가셨어요.

대학생 딸... 뭐... 여기 다 그렇지 않습니까 일찍 사고를 쳤으면 저도 대학생... 근데 아들 아니고 딸인 줄은 어떻게 아시는 거죠? ㅋㅋㅋ

잠자냥 2023-08-24 11:19   좋아요 2 | URL
건조수하가 땀냄새 좋아했다는 거 약간 충격입니다...........

근데 정수리냄새도 맡고 그래요?? 난 이것도 좀 충격.. 사귀는 사람 정수리 냄새 따위 맡아본 적이 없어서..
오늘 집에 가서 집사2 정수리 좀 맡아볼까? 아니다. 안 되겠다.......-_-

건수하 2023-08-24 11:26   좋아요 1 | URL
정확하게 말하자면 ‘땀냄새가 좋았던‘ 게 아니라 땀이 많이 난 상태인데도 ‘냄새가‘ 좋았다.. 인데
여튼 저도 누군가의 (깨끗하지 않은 상태의) 냄새를 맡으며 좋다고 생각했던 적은 거의 없어서 그때 맡으면서도 좀 충격이었습니다 (...)

정수리 냄새 일부러 맡은 적은 없는데요, 베개에서 추정 가능.. 하고
애가 안기면 납니다... 크면서 냄새가 점점 나빠지고 있어요.

다락방 2023-08-24 17:41   좋아요 2 | URL
수하 님/ 저는 낳을거라면 딸을 낳고 싶기 땜시롱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딸이라고 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딸에게 좋은 아빠를 주고 싶은 마음 같은게 있는데 좋은 아빠를 못만나서 딸이 없습니다. (아무말)

잠자냥 님/ 정수리 냄새를 일부러 맡는 건 아니고요, 맡아질 때가 있지요. 이를테면 남자 연인의 경우 저보다 키가 크잖아요? 그래서 어느 날 만나서 안기거나 옆에 서거나 이케 하다보면 냄새가 훅- 네, 뭐 이런 …(경험담 맞습니다)

수하 님/ 땀냄새도 아가일 때는 전혀 나쁘지 않은데 나이들수록 나빠진다고 하더라고요. 몸 안에 노폐물이 쌓이고 그게 나오는 거라서, 아이들은 노폐물이 아직 쌓이기 전이라 냄새가 안나고 어른들은 … 저는 땀냄새 지독한 사람이고, 그건 아마도 제가 지나친 육식을 하기 때문이 아닌가, 혼자 추측합니다. 흠흠. (냄새나는 자 올림)

단발머리 2023-08-24 21:29   좋아요 1 | URL
위에서 겨냄새와 인도 남자 때문에 투 스트라이크 펀치 맞고 어질어질한데.... 아, 수하님!
고개 숙이는 척 킁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아무런 설명해도 이해가 되질 않네요.
더우면 귀찮으신 분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부터 킁킁 수하님으로 지정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8-24 21:32   좋아요 1 | URL
어릴 때입니다, 어릴 때…..

아직 안 귀찮을 때….

거리의화가 2023-08-24 1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글 읽고 너무 웃겨서 하마터면 ‘으흐흐 풉!‘ 육성으로 소리가 나올 뻔 했지 뭡니까ㅠㅠ
저는 본래는 결코 좋지 않을 냄새가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그 사람이 그렇게 좋은 것이다라고 포장하는 것이라고 봐요. 그마저도 그 콩깍지 기간이 지나가고 나면 현실이죠뭐! 결코 좋을리가 없습니다!ㅋㅋㅋ

불과 이틀 전에 남편과 했던 이야기였는데 ˝일을 그만두고 싶다.˝ 그러길래 ˝그럼 뭐 먹고 살건데? 80살까지는 벌어야 할걸!˝ 했거든요. 80살은 좀 오버일 수도 있지만 요즘 수명이 워낙 늘어났으니까 ˝거동을 못하기 전에 죽어야지.˝ 그러는 거에요. ˝아니 그게 자기 맘대로 되는 일이야?˝ 자기 몸을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이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겠죠. 무슨 건물주나 재벌이 아니고서야 늙어 죽을 때까지 돈 걱정 없이 아픔 걱정 없이 살려면 참 쉽지 않겠다 여러 모로 생각하게 됩니다.
기저귀를 하고 싶지 않았다는 건 결국 자신의 뒤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죠. 휴...

건수하 2023-08-24 11:27   좋아요 1 | URL
화가님 저와 같은 생각 반가워요 ㅋㅋ

‘본래는 결코 좋지 않을 냄새가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그 사람이 그렇게 좋은 것이다라고 포장하는 것‘

다락방 2023-08-24 17:44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거리의화가 님. 본래 좋지 않을 냄새를 좋았다고 얘기하는 경우는, 그 사람이 좋으니 포장하는 경우가 사실 대부분이죠. 거의 그렇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정말 그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좋아서가 아니라, 정말 그런 냄새를 …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요. 정말 그렇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확신하는지 우리, 그건 자세하게 묻지 않기로 해요. 그러면 더러운 19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저는 청결하고 아름답고 순수하고 지적인 이미지를 지금처럼 쭉 유지하고 싶습니다. 흠흠.

맞아요. 죽는 것도 제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제 마음과 의지대로 하기 위해서 자살을 선택할 수 있겠지만, 극단적인 어떤 방법을 동원하지 않는다면, 그저 내 몸 아프다고 ‘죽고싶다 죽어야지‘ 한다고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제가 최근에 깨달은건데, 평소에 정말 죽어야겠다 죽고 싶다 생각을 했다 하더라도, 막상 죽을 위기가 닥쳐오면 말과 몸이 살기 위해 움직이더라고요. 본능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거동 못하기 전에 죽는다는 건, 바람이지만 결코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ㅠㅠ

미미 2023-08-24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제목도 좋지만 ‘사랑 안하고 말지‘도 좋았을 것 같아요ㅋㅋㅋㅋ
저는 냄새는 그냥 다 싫고요. 남자들 운전할 때 핸들 휙휙 돌리다가 (팔 근육 중요함)
스틱 조절 하면서 바삐 움직이는 (오토보다 수동이 그런면에서 더 섹시..ㅋ)게 참
가슴 두근두근 하더군요. 향수는 불가리 뿌르 옴므 익스트림에 살짝 미치는 편...

허리 디스크 터졌을 때 마지노선이 화장실을 갈 수 있느냐 못가느냐거든요.
화장실 못가면 보통 디스크 수술을 해야해요. 저 심하게 왔을때 화장실 겨우 갔었는데
‘아 살았다!‘했어요. 수술도 무서웠지만 이것만은 지켜야된다는 절실함...생각납니다.

잠자냥 2023-08-24 11:22   좋아요 2 | URL
수술할 때 소변줄 매우 많이 수치스럽......-_-;;;;

건수하 2023-08-24 11:27   좋아요 1 | URL
(끼울 때) 수치스럽기도 하고... 매우 아프기도 했... ㅠㅠ

잠자냥 2023-08-24 11:29   좋아요 2 | URL
자매품 ‘관장‘도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8-24 11:30   좋아요 1 | URL
아악… 출산한 여성들은 다 경험이 있습니다…

미미 2023-08-24 12:00   좋아요 1 | URL
아 그렇겠네요!ㅋㅋㅋㅋㅋ 소변줄까진 생각 못하고 내 뒤를 누가 처리해야만 하는 걸 저는 견딜 수가 없었어요.

다락방 2023-08-24 17:48   좋아요 1 | URL
역시 미미 님도 팔근육에 끌리셨군요. 후훗.
저는 특정 취향의 향수로 딱 정해져 있진 않고요, 좀 음, 남성틱한 냄새를 좋아해요. 그냥 맡았을 때 ‘앗 남자다‘ 느껴지는 그런 향수요. 저는 향기에 정말 예민하고 잘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구린 냄새에도 넘나 예민해져버려요. ㅠㅠ 고통스럽습니다. ㅠㅠ 그런데 향기에 미치는 거 좀 좋지 않나요? 난 왜 그런거 좋지? ㅋㅋ

저도 배변의 과정 중 어디라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면 아 정말 ㅠㅠ
인생 뭐고 인간은 뭘까요? ㅠㅠ

미미 2023-08-24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올 초 러시아에서 전화왔었습니다.ㅋㅋㅋㅋ

잠자냥 2023-08-24 11:23   좋아요 3 | URL
푸틴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 이분들 국제적으로 인기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미 2023-08-24 11:57   좋아요 0 | URL
아 기회였을까요? 그럴줄 알았음 러시아 욕좀 배워두는건데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8-24 17:54   좋아요 1 | URL
제가 항상 외국인 친구 하나 없는 제 자신이 안타까웠거든요. 요즘 젊은이들은 다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해서 외국인 친구들 갖고 있는데 나만 없어 … 했더니 신께서 인도 남자 한 번 만나보련? 하고 이어주신걸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만 그런줄 알았는데 미미 님 러시아에서 전화오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세계는 하나!!

하루 2023-08-24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너무 부모님과의 관계부분에서는 감정이입이 되면서도
주인공과 어머니의 성장과정을 다룬 후반부에서는 도무지 이입할 수 없어서
나라는 사람은 여기까지는 공감하지만, 여기서부터는 도저히 공감도 이해도 못하는구나 생각했던게 기억나네요! ㅜㅡ

다락방 2023-08-25 08:51   좋아요 0 | URL
책이 좀 늘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작가의 작품 [본격소설]도 읽었었는데, 너무 길게 쓰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제 뒷부분 조금 남겨놓고 있습니다. 남편하고 얼른 빨리 결론내는 거 보고 싶네요.

blanca 2023-08-24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너무 공감 가고 다락방님 할머니 모습도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 아프고...우리 부모님, 내 미래도 생각하면 무섭고...그러다 마지막 인도 남자에 바로 뿜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이 소설 읽어볼게요.

다락방 2023-08-25 08:52   좋아요 0 | URL
네, 블랑카 님. 저란 인간은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인간이고 그래서 좀 늦된 경향이 있습니다. 영생 영생 외치다가 지금 너무 충격을 받았달까요. 영화나 책이나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늙고 병든 이의 모습을 보고나니 앞으로 저의 노년의 생활과 죽음에 대해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과 마음이 휘몰아칩니다. 작년부터 아빠와 할머니가 자꾸 입원하고 수술하시고 119를 부르는 일도 잦아집니다. 나중에 제 모습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두렵고 걱정이 됩니다.

이 책은 블랑카 님이 읽으신다면 아주 멋진 감상을 적어내실 거라 생각됩니다!!

달자 2023-08-24 18: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기 잠시만요.. 글 읽다 겨드랑이 부분에서 읽는 것을 멈추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선댓글을 남깁니다...
‘(...)겨드랑이에서 냄새가 올라온다. 미쓰키가 파리에서 좋아하게 된 어딘가 야성적인 데가 있는, 코를 찌르는 달콤한 냄새였다‘-p.353
겨드랑이 냄새가 파리에서 나는 냄새는 맞는데요, 근데 그걸 코를 찌르는 달콤한 냄새라고요??????????????
더운 여름날 에어컨 없는 백년된 낡은 지하철 출퇴근길에 프랑스인들 사이에 끼어 있으면요.. 땀에 쩔은 겨드랑이 냄새에 질식하다 보면... 그냥 제가 하나의 젖은 겨털이 되어버린 기분이 들거든요.. 몇 시간 전에도 그걸 당하고 출근한 1인으로서 당사장성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저 비유에 반대합니다 결사반대...
(혼자 급발진)
자 그럼 다락방님 글 마저 읽고 오겠습니다...

다락방 2023-08-25 08:55   좋아요 0 | URL
아, 달자 님, 프랑스에서 유머감각 교육 받으 셨나요? 내가 하나의 겨털이 되어버린 기분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빵터졌네요. 겨털.. 이거 저도 써먹어야겠어요. ˝나 지금 겨털이 된 기분이야.˝ 라고요. ㅋㅋㅋㅋㅋ 아 나 왜 이런 농담 좋아하지?
저 1박 2일 파리 갔던 적 있는데요 파리 걸으면서 그 암모니아 냄새에 너무 놀랐었어요. 여기 이렇게 크고 웅장한 도시, 완전 선진국으로 보이는 이 도시에 이 냄새 무엇??

그 왜 누구죠, 그 섹스신에 오줌 싸는 거 넣는 작가 있잖아요, 바타유! 조르주 바타유! 그런 작가가 있는 걸 보면 겨드랑이 냄새를 달콤한 냄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흠흠.

단발머리 2023-08-25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부터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그걸 아시는 여러분들) 요즘은 그 과정, 죽음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지 자주 생각해요.
친구들의 부모님들, 조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니까요. 정말 다종다양한 사연이 있고 ㅠㅠㅠ 무엇보다 사연이 일단 90세부터 시작합니다.
우리는 오래 삽니다. 우리는 그 분들보다 더 오래 살게 될거에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할까요? ..............

다락방 2023-08-25 09:00   좋아요 1 | URL
경험이 하나씩 축적될수록 우리는 타인이 그때 했던 말과 행동을 이해하게 되는 일도 비로소 가능해지고 내 자신에 대한 이해도 역시 더 넓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됩니다.
저는 아시겠지만, 작년부터 아빠의 수술과 반복 후유증으로 늙고 병든 몸을 직시하게 됐는데요, 아빠는 이제 재활중이신데 할머니가 더 늙고 더 병든 몸으로 제 앞에 또 우뚝 서 계십니다. 아니, 누워 계시죠.
나는 삶을 사랑하고 그래서 이 삶을 지속하고 싶고, 그래서 내가 바라는 건 영생이다 라고 늘 생각해왔는데, 최근에 ‘내 몸을 내 의지대로 가누지 못해‘서 화장실조차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걸 보니, 이렇게 살아가는 일은 산다기 보다 견뎌내는 일이 아닌가 싶고 복잡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최근엔 우리가 함께 읽었던 책, [미 비포 유]의 ‘윌‘ 생각이 더 났어요. 그 당시에도 저는 윌의 선택을 이해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무리 루이자를 사랑하고 또 루이자로부터 사랑 받아도 ‘그걸로는 부족했‘던 윌의 선택이요. 그런데 최근에는 그 선택이 더 이해가 돼요. 부족하다, 그걸로는 부족하다. 타인과의 사랑을 주고받는 일만으로는 내 삶을 지속하기에 부족하다, 내 의지대로 내 몸을 다룰 수 없다면, 타인의 사랑으로 다 채워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작년보다 최근에 더 윌을 이해하게 되었고, 또 병든 몸과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도 더 길어졌어요. 그런 한편, 비혼 싱글 여성인 저는, 앞으로 누군가로부터 도움 받을 수 없는 처지이니 더 열심히 돈을 벌어 돈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지도 다져보고, 그런데 그만큼의 돈은 내가 벌 수 없는 돈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저는 자꾸 묻게 됩니다.
어차피 늙고 병들어 죽을텐데, 우리는 왜 태어나서 살고 있는 걸까요?

Forgettable. 2023-08-25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왓츠앱 스캠 많아요!! 종종 문자도 오니 모두 답변하지 마세요!

다락방 2023-08-25 09:20   좋아요 0 | URL
요즘 문자 폭발적으로 오더라고요. 미쳤나봐 진짜. 오는대로 차단합니다 ㅠㅠ

독서괭 2023-08-25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글은 무슨 종합선물세트인가요? 진지와 웃김의 끝에서 끝까지 왔다갔다 한다.. ㅋㅋㅋㅋㅋ 겨냄새에 대한 진지한 댓글 토론도 너무 웃겨요 ㅋㅋㅋㅋㅋㅋ 원헌드레드펄센트도 웃기고 ㅋㅋㅋ
그와중에 아가 조카 너무 귀여움♥️♥️♥️ 말도 아직 못 하는 아가가 노래를 흥얼거리다니 아오~~ 😍😍😍😍😍

다락방 2023-08-25 10:08   좋아요 1 | URL
원헌드레드펄센트 웃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부러 넣은 웃음 포인트였습니다. 엣헴- ㅋㅋㅋㅋㅋ
아 저 아가 조카 너무 귀여워서 미치겠어요. 가까이서 눈 마주치고 있노라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신이 저를 사랑하셔서 아가 조카를 주신 것 같습니다. 흑흑 ㅠㅠ 너무 예뻐요. ㅠㅠ
 

'여기서 못찾은 자아가 인도 간다고 찾아지냐'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나 역시 여기서 찾지 못한 걸 다른 곳에서 찾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게 진실이나 진리 혹은 참이라기 보다는 내 생각 역시 그러했다는 거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자아 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여기서 못찾은 걸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의 생각이 바뀌게 된 건, 내가 스스로 그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여행다녀온 후의 내가 여행 전의 나와 다를까? 나는 당연히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여행의 시간에서만큼 이곳에 머물면서 흘렀다면 마찬가지로 나는 그 시간만큼의 차이가 나는 사람이 되어 있겠지만, 그러나 공간이 달라졌을 때 내가 만나게 되는 사람과 만나게 되는 일상은 다르고, 그로 인해 나는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가기도 하는 거다.


어떤 극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달라지길 기대하고 여행을 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전에 알지 못했던 걸 지금은 아는 사람이 된거다. 거창한 변화를 말하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변화이지만, 나는 이 변화가 즐겁다. 그러니까,


영어에 대해 말해보자.


나는 알파벳도 모르는채로, 대문자와 소문자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채로 중학교에 진학했다. 한글은 누구보다 빨리 떼고 초등학교에 진학해서 60명 이상되는 아이들 중에서 독보적인 아이었지만, 그러나 영어는 A, B, C, D 도 모르고 갔던 거다. 언젠가 이곳에서 글을 쓴 적도 있지만, 나는 I am Insu. 라는 문장을 앞에 놓고 눈물을 뚝뚝 흘렸었다. 아이 엠 인수가 나는 왜 인수라는 건지를 도대체 모르겠는거다.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봐도 아이 엠 인수가 '나는 인수다' 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나에게 영어는 공포였다. 무서움이었다. 영어는 주요과목이라 수업 시간도 많은데, 영어 때문에 학교가 지옥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영어 선생님은 어찌나 무서운지, 수업 시작하자마자 아무나 불러세워 나는 너의 친구다, 같은거 영작해보라고 시키는 거다. 다 교과서에 나오는건데 나는 friend 를 왜 프렌드라고 읽는지에 대한 기초가 완전히 전무했던 사람이라서 이 모든 순간들이 무섭고 긴장됐다.


국민학교 때도 전과 없이 숙제를 했고 모르는 건 다 엄마가 알려줬더랬다. 그러나 6학년이었던가 5학년이었던가, 어느 순간 엄마는 내가 묻는 것에 답해줄 수 없게 되었고, 그제야 나를 헌책방에 데려가 전과를 사주셨더랬다. 중학교 1학년때도 헌책방에 가 영어 참고서를 사주셨는데, 표지도 없는 헌참고서를 앞에 두고 나는 울었다. 영어 수업은 계속 돌아오고 아이 엠 인수는 왜 나는 인수라는 건지 모르겠고. 그리고 내겐 이 물음에 답을 줄 사람이 없었다. 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 반에 영어 선생님이 묻는 모든 질문에 앞서 대답하는 똑똑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에게 철자 수업이나 발음 수업은 어려움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수업 시간을 무서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어느 쉬는 시간에 그 아이에게 가서 '너 어쩜 그렇게 영어를 잘해?' 물어보았더니, 그 아이는 과외를 한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 나는 그 길로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나도 영어 과외 하면 안되겠냐, 학원 다니면 안되겠냐 물어보았는데, 엄마는 혼자 해보면 안되겠냐고 했다. 그렇게 나는 영어를 모르고, 못하는 중학교 생활을 시작한거다.


엄마는 나름 어디서 팁을 듣고 오셔서 '팝송을 많이 들으면 영어를 잘한대' 같은 말을 전달해 주셨지만, 영어를 모르는 내게 팝송이 즐거울 리도 없고 듣고자 하는 의욕이 있을 리도 없었다. 나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friend 를 프렌드로 발음해주면, 그걸 잽싸게 교과서에 프 렌 드 라고 받아 적기 바빴다. 안그러면 읽을 수 없었으니까. 나는 숫제 '발음기호'라는 말 자체를 이해를 못했더랬다. 그런데 그 무서운 영어 선생님이 전근을 가셨다.


1학기를 채 마치지 못했는데 선생님은 의사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간다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선생님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갓 부임한 아주 젊은 여자선생님이었다. 당시 기억하기로 25세 였던 것 같다. ㅋ ㅑ 꼬꼬마네. 이 선생님은 처음인만큼 전혀 무섭지 않았고 대답하지 못한다고 혼내지도 않았고 그렇게 내 영어점수는 더 바닥을 친다. 선생님 무섭고 혼나기 싫어서-나는 선생님한테 혼나본 적이 없어서 혼난다는 걸 견딜 수 없었다- 교과서 달달 외워 영어 수업을 준비했던 터라, 무섭지 않은 선생님앞에서 긴장이 풀어진거다. 선생님은 대답 못하는 아이들에게 딱히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당시 유행하던 '장국영' 의 <to you>가사를 칠판 가득 적으셨고, 그걸 들려주시며 우리에게 따라 부르게 시키셨다. 수업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따라했지만, 어느 순간 어느 부분이라도 따라 할 수 있는 내가 좀 좋더라. 신났다. 그리고 1학년 겨울방학. 방학이면 으레 외할머니 댁에 갔고 거기엔 외삼촌과 이모가 있었다. 어느 밤, 발음기호를 모른다는 나에게 충격받은 외삼촌이 나를 앉혀놓고 새벽 두시까지 발음기호에 대해 알려주었다. 나는 그 날밤, 발음기호를 모두 외웠다. 삼촌은 사전의 아무데나 펼쳐놓고 읽어봐, 읽어봐 했고. 그때마다 번번이 나는 발음기호를 보며 다 읽었더니 삼촌이 폭풍칭찬을 해주었다. 다음날 삼촌은 우리 락방이는 보통 천재가 아니라고, 하루만에 발음기호를 마스터했다고 모두 앞에서 얘기했다. 그러자 이모는 '그건 그냥 다 외우는 거 아녀?' 했고 …


그때부터 나의 팝송 라이프가 시작됐다. 엄마에게 부탁하면 엄마는 리어카에서 파는 싸구려 카셋트 테입을 사다주셨고 나는 열심히 들었다. 친구 오빠의 팝송 테이프도 복사해서 열심히 들었다. 가사가 있는 건 가사를 외우고 해석하면서 즐거웠다. 영어 듣기평가 만점의 시대가 열렸고 어휘력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영어선생님으로부터 '너 영어 선생님 해라 '라는 말까지 듣게 된 것이다. 할렐루야!!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 문법책을 본 적이 없었다. 성문 기초영어? 맨투맨 기초영어? 공부 못하는 애들도 한 번씩 다 본다는 그 문법책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볼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거 보는 애들보다 내가 영어를 더 잘했다고 나는 당시에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 아이들이 어학 연수를 다녀온다는 걸 알게 되면서, 시간이 흘러 어떤 아이들은 외국인 친구들을 만들기도 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나는 급격히 위축되고 어느 순간 나는 다시 영어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잘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졌으나 포기해버린, 영어 못하는 나.



그런 내가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water 가 물인 거 알고 danger 가 위험인것도 알고. 여행을 못할게 뭐람. 나는 내가 아는 단어들을 동원해서 여행을 다녔다. 버스 정류장이 어디인지 묻는 것쯤은 할 수 있으니까,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 노 프라블럼. 그렇게 뉴욕을, 홍콩을, 싱가포르를, 중국을, 마카오를, 베트남을, 괌을, 체코를, 영국을, 포르투갈을, 네덜란드를, 벨기에를, 러시아를, 룩셈부르크를, 말레이시아를 갔다. 영어를 잘해서 간 게 아니라 영어를 못하지만 갔고, 영어를 못하지만 갔더니, 어떤 영어들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호텔 조식의 오믈렛은 내가 좋아하는 메뉴인데, 야채들과 햄과 치즈들이 놓여있고, 셰프는 뭘 넣어줄까? 묻는다. 나는 다 넣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all"


이라고 말하자 셰프가 고쳐주었다.


"everything?"



나는 그 때 알았다. 아, 이럴 때는 에브리씽이라고 하는구나.



레스토랑에 식사하러 갔을 때 주문을 마쳤다 싶으면 직원이 물었다.



"That's all?"



나는 그렇다고 말하며 그 다음부터 레스토랑에 가 주문을 마치면 댓츠 올, 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유럽의 어느 나라들에서는 댓스 올 이라고 말하면 내게 'That's it?" 하고 되물었다. 아, 어느 곳에서는 댓츠 잇이라고 하는구나. 작년 네덜란드 에서는 댓츠 잇을 많이들 하길래 이번 네덜란드에서 댓츠 잇을 써야지, 하고 잘 써오다가 어느 레스토랑에서 나도 모르게 댓츠 올을 했는데 직원이 댓츠 올? 하고 내 주문을 받고 가더라. 아, 댓츠 올도 통하는구나. 그렇게 하나 또 쌓였다.



식사를 마치면 피니쉬 라고 말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 비단 레스토랑 뿐만 아니라 여러 상황에서 사람들은 에브리씽 이즈 오케이?를 묻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처음 뉴욕에 가 지하철 티켓을 사면서 "two people" 이라고 말했는데 직원은 내게 "two persons?" 라고 되물어주었다. 아, 이럴 때 쓰는 건 피플이 아니라 퍼슨스 구나. 나는 외출 후 객실 청소를 부탁할 때 make up room 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이런것들을 알게 된 게 너무나 좋다. 정말 사소한, 모르고 살아도 삶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을 것들이지만, 그런데 이런걸 모르는 것보다 아는 내가 되어 있는게 좋다. 나는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여행을 한 게 아니었는데, 여행을 했더니 영어 공부가 되어 있었다. 내겐 독서도 그랬다. 공부하기 위해 독서를 한 게 아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읽었는데, 왜냐하면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나에게 공부가 되어있었던 거다. 정말 재미있어서 책을 읽었는데, 책을 읽는 행위자체가 나에게 모르던 걸 알려주는 게 아닌가. 책속의 많은 것들을 내가 다 기억하지 못해도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책을 읽은 후의 나는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던 거다. 여행이 내게 책읽기처럼 그걸 해준거다.



오래전 친구들을 만나 얘기하면서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했었다. 그 때 친구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무슨 소리야, 너 여행 좋아해!' 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아니야, 나는 호텔에 가는게 좋고, 호텔 조식이 좋고, 낯선 데 가는게 좋은거야 했더니 그때 친구들이 말했다.



"그게 여행이잖아!!"



아? 나는 대체 여행을 뭐라고 생각했던 걸까? 여행을 뭐라고 생각했기에 늘 여행을 다니면서도 내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걸까? 나는 친구들과의 대화 후에 이제는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나 여행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항상 여행을 갈 때면 혼자든 친구랑 함께든 '유명하다는 어딜 가보자' 보다는 '그곳의 거리를 무작정 걸어보자' 쪽인데, 내가 원하는 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사람들이 걷고 먹고 마시고 생활하는 걸 보는 거였고, 그곳에 나를 두는 거였다. 얼마전에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에서 가이드가 '관광객이 되지 말고 여행자가 돼라'는 말을 했더랬다.


'관광객은 삶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여행자는 삶을 경험하길 원하죠.'


확실히 나는 관광객 보다는 여행자였고, 그래서 내게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가서 레스토랑엘 가고 거리를 걷고 서점에 가고 마트에 가고 우체국에 가는게 기쁨이었다. 새롭고 낯선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만 가득한 곳에서, 혹시라도 내가 뭘 몰라서 실수하진 않을지, 제대로 못하진 않을지 번번이 긴장하고 쫄긴 하지만, 그래봤자 사람 사는곳인데 어떻게든 물어서 해낼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번 여행을 함께한 이모도 '너는 그냥 어디에 데려다놔도 잘 살겠네'라고 내게 말했다. 정말 사소하고 누가 들으면 '그게 뭐야' 라고 야유할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전히 낯선 나라에서 버스를 타보았다는 게, 지하철을 타보았다는 게, 기차를 타보고 트램을 타보았다는 게 좋다. 지도를 보고 길을 찾고 그러다 막히면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어떻게든 목적지에 닿았다는 게, 목적지에 닿기까지 멈춰서며 주변을 둘러보고 그러다 흥미로우면 들어가보곤 했던 것이 좋다.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게 다 기억속에서 희미해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그런것들을 해본 사람이라는 것이 내게 남는다.



나는 확실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니 완전히 변해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게 아니다.


낯선 곳에 다녀오기 전의 나와 다녀온 후의 내가 아주 조금은 달라졌다는 거다.


그 달라짐은 아주 작고 사소하고 미미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눈에는 결코 띄지 않으며 다른 사람은 알아챌 수도 없을테지만, 그러나 내가 안다. 나에게 낯선 곳으로 잠시나마 다녀온 경험은 순간의 긴장과 두려움을 당연히 감당하고서라도 최종적으로 기쁨과 행복으로, 그리고 그전보다 뭔가를 더 아는 경험과 습득으로 남아 있다. 내가 뭘 얻기 위해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떠난 건 아니었지만, 다녀오고 나면 무언가 더 가진 기분이 된다. 나는 내가 낯선 곳에 다녀오고 싶어했으며, 그래서 다녀왔다는 것이, 다녀온 후에 내가 그전보다 알게된 아주 작은 것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자지러지게 좋다. 세상에, 이번에 이런 것들을 알고 경험하고 왔는데, 다음에 다른 곳에 가면 나는 또 무엇을 경험하고 알게 될까? 너무 기대가 되어서 얼른 또 떠나고 싶어진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여행으로부터 뭔가 듬뿍 담아오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오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게 결국 달라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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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8-23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수야~ 너는 천재 락방이잖아~ ㅋㅋㅋ
즐기는 자를 누구도이길 수 없다고 하더구나~ 락방이는 뭐든지 참 잘 즐겨...ㅋㅋㅋ
그나저나 인수야 나는 끝까지 사진이 없어서 급당황했다....


다락방 2023-08-23 11:04   좋아요 2 | URL
앗 ㅋㅋ 너무 썰렁해서 방금 사진 두 장 넣었고요, 책을 링크하고 싶은데 뭘 할까 생각중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8-23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사진 보자마자 😍😍😍 온 세상에 오케이라고 말하고 싶은 비주얼… 저도… 저도 사람들이 유명하다는 장소보다는 거리를 걷는 여행을 좋아해요. 하지만 저에게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전 유명 스팟 여행을, 패키지 여행을 선택할 거 같아요. 그니까 제가 그런 여헹을 덜 좋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곳을 헤메이고 묻고 돌아가는 그 수고와 경험을 저는 더 두려워하고 더 귀찮아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여행 만랩 락방님이 많이 부럽습니다.
그러나 락방님만큼 걸을 자신은 없당!!!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8-23 13:49   좋아요 1 | URL
저는 여행을 혼자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하면서 알게된건데요, 제 여행 타입대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혼자가 제일 맞춤하다는 것입니다. 저도 유명 스팟을 안가는 건 아니고요, 도착한 후에 와 이래서 사람들이 여길 와보라고 하는구나 감탄하기도 해요. 다 좋은데, 저는 그곳에 도착한 것 보다는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더 즐겨하는 것 같아요. 아무튼 그걸 하다보니 제 속도와 제 체력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저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좋자고 제 식대로 여행하면 저랑 함께 하는 파트너에게 민폐를 끼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더라고요. 특히 땡볕에 걸을 때는 나나 좋지, 다른 이들은 힘들어하는 것을 … ㅠㅠ

단발머리 님, 건강하게 지냅시다. 건강하게 지내면서 하고 싶은 여행을 하십시다. 가고 싶은데 가고 먹고 싶은거 먹으면서 살도록 해요!!

독서괭 2023-08-23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오 다락방님, 이 글 너무 좋네요! 다락방님의 영어 분투기.. 중학 때 하룻밤만에 발음기호 마스터?! 고등학생 때는 영어선생님 하란 말을 듣고??!! 역시 다락방님 천재였다... 지금도 다시 원서 읽고 여행 다니며 직접 영어로 말해보고, 배우고 깨닫고 기억하고.. 그 모든 과정이 참 멋져요.
여행에 대해서 저는 여행 간다고 꼭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여행 안 간다고 안 달라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어떤 여행을 하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는지에 따라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여행 안 다니는 사람에게 세상을 모른다고 하거나, 여행 많이 다니는 사람에게 그래봤자 얻는 거 없다고 하는 거 모두 오만한 단정인 것 같고요. 다락방님은 여행을 가면 가는대로, 안 가면 안 가는대로 계속 배우고 깨닫는 분인 것 같습니다. 아, 그래도 영어는 역시 가서 써보는 것이 최고겠죠!!^^

다락방 2023-08-24 08:56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독서괭 님. 저도 독서괭님처럼 생각합니다. 여행간다고 모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안간다고 견문이 좁은 것도 아니죠. 누군가는 움직이지 않고도 많은 것들을 배우고 습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여행을 가는 사람의 본래 태도에 달린 거겠죠. 여행가서 뭔가 배울 사람들은 여기서도 배울 사람들이라고 저 역시도 생각합니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고요. 책 읽고 무언가 깨닫는 사람들이 있고 아무리 수천권의 책을 읽어도 전혀 성장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죠. 그 사람의 태도가 그 사람의 변화와 성장을 만드는 거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여행이 이렇다 독서가 저렇다 하는 단정은 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저에게 영어는 참 너무나 각인된 무엇입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뭘 못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다가 못할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은 게 영어였어요. 저는 제가 잘난줄 알았다가 못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게 영어였어요. 그게 처음이었고, 그 뒤로 저는 저의 못남과 못함을 여러가지로 수시로 깨닫게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망고 2023-08-23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영어 공부하신 과정에서 저랑 공통점 발견^^저도 노래로 공부한 케이스인데요ㅋㅋㅋ영어권 가수를 좋아하는 바람에 인터뷰 읽고 가사 외우고 또 그 가수가 글을 좀 써서 그거 읽느라 영어 사전 들이파고 그랬었죠 저도 문법책을 끝까지 봐본적 없었고요ㅋㅋㅋㅋㅋ뭐든 좋아해서 하는게 제일 효과적인거 같습니다😍

다락방 2023-08-24 08:58   좋아요 0 | URL
저는 인터뷰까진 읽진 않았는데, 제가 인터뷰를 안읽어서 영어가 아직 이모양인가 봅니다. 더 열심히 해야겟어요. 망고님 댓글 읽고나니 갑자기 영어 공부에 대한 욕망이 피어오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저에게 맞기도 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영어공부하기에 팝송만큼 좋은게 없는 것 같아요. 최고입니다. 일단 소설처럼 긴 것도 아니고 짧은 문장들 안에 스토리가 담겨 있잖아요? 크-

you call it love

너는 그것을 사랑이라 불렀지.

아니, 이런거 너무 좋지 않습니까?

everything i do i do it for you

내가 하는 모든 건 다 너를 위해서야.

아니 너무 최고되지 않나요? 팝송은 영어공부의 최고 수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빠샤!!

망고 2023-08-24 10:56   좋아요 0 | URL
아니 다락방님ㅋㅋㅋㅋ적어 놓으신 가사가 너무 옛날...아 아니 추억의팝송ㅋㅋㅋㅋㅋㅋ근데 읽으면서 부르고 있는 제가 더 싫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8-24 13:58   좋아요 0 | URL
전 추억의 팝송 세대인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Tell me how am I suppose to live without you~~

달자 2023-08-23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너무 좋아요 다락방님 !! 아무래도 낯선 장소에서 지내는 짧은 순간 일상과는 다르게 듣고 행동하고 말해야 하다보니 감각이 예민해지게 되니까 사소한 내 변화도 더 잘 감지하게 되는 것 같아요. 비슷한 상황에서 조금씩 다르게 반응하는 달라진 내 자신을 알게 되는 것도 여행의 묘미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근데 뜬금없는 얘기긴 한데 다락방님은 여행지에서 호텔과 식당 선정을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해졌어요 진짜 완전 상관 없는 얘기지만...

다락방 2023-08-24 09:0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달자 님.
제가 어느날 제주의 호텔에 친구랑 갔는데요, 너무 편안하고 편하더라고요. 좋은 호텔에 왔는데, 뭔가 묻고 싶으면 그걸 한국말로 물어도 된다는게 너무 좋은 거예요. 친구랑 연신 아 너무 편하다, 역시 한국 호텔이 편해 ㅠㅠ 이러면서 막 감동했어요. 외국에 나가면 아무리 기쁘고 즐겁고 행복해도 긴장한 채로 있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이번 여행에서는 영어를 듣고 말하기가 모두 저 혼자만의 몫이어서 더 긴장을 많이 했어요. 휴. 그래서 혼자가 될 때면 그렇게나 행복했는가 봅니다.


아, 저는 일단 호텔 선정은요, 뚜벅이 여행자이기 때문에 시내에 있는 곳에서 객실 사진 같은 거 보고 결정해요. 딱히 어떤 특별한 기준 같은 건 없고요. 혼자가 아니라 둘 이상이 가는 여행이라면 일단 최대한 넓은 곳으로 찾아보려고 합니다. 호텔은 다 너무 좁잖아요. 이게 혼자면 좁아도 괜찮은데(물론 넓은게 좋죠), 둘이상이면 좁은 게 너무 답답하게 느껴져서요. 아고다 들어가서 도시 검색하고 가격과 호텔 사진 보다가 괜찮다 싶으면 지도로 위치 확인해보고(여기서 거기까지 걸으면 얼마나 걸리나), 그렇게 결정해요. 특별한 건 없습니다.

식당도 여기서부터 정하고 갈 때는, 뭔가 특별히 먹고 싶은게 있을 때에요. 이를테면 영국 갈 때는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먹고 싶었는데, 그게 티비에서 보고 먹고 싶었던 거거든요. 그럴 경우에는 그 식당을 찾아서 정해놓고요, 태국 갈 때도 백종원이 길에서 아침 뷔페 먹는 거 보고 찜해두고 갔었습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낯선 땅에 도착한 뒤에 스테이크 먹을까? 하고 구글에 스테이크 넣어보고, 아까 올 때 피자 보이던데 피자나 먹을까? 하고 봐뒀던 식당 가거나 합니다. 이번 룩셈부르크는 아무 정보도 없었기 때문에 룩셈부르크로 가는 기차 안에서 ‘룩셈부르크 맛집‘ 검색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