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하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1
단테 지음, 최현 옮김 / 범우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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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의 하편인 [천국편]은 상편의 [지옥편]의 원한과 [연옥편]의 반성에 이어, 이 우주적 조감도를 마무리해내며 동시에 얼마남지 않은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단테의 겸허한 마음이 내비친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억울함과 복수에 목소리 높이지 않고 단지 보편적 교회의 철학관에 의탁한다. 그는 이 글을 쓸 즈음인 말년 베로나와 라벤나에서 스칼라家나 노벨로의 보호를 받으며 살았던 처지였다남에게 의지하고 살아야하는 나이듦, 인간조건인 죽음 앞에 선 원래의 모습...차례대로 펼쳐지는 천국의 아홉 하늘을 단테는 의로운 황제, 신학자들, 가난의 성인들,수도사들에 대한 흠모로 바친다. 그가 즐겨 읽었다는 [철학의 위안]중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여신과의 대화를 연상시키는 스콜라 철학적 대화편이 등장하는 것도 그의 이러한 얼마남지 않은 삶을 느끼는 마음낮아짐이 있다성 베르나르에 의한 그의 삶의 완성은 이와 같은 온전한 [귀의歸依]이고 혈기의 잠잠함이며 복수의 칼날을 신에게 내어놓음이다 . 

괴테는 [신곡] [지옥편은 처참하고, 연옥편은 애매하며,천국편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고 폄하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삶은 한편으론 어찌 그리 닮았을까하는 느낌을 준다. 피렌체의 위대한 시인에서, 시의원을 거쳐 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단테. 그는 배신과 모함으로 인해 유랑으로 삶을 마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럽에 명성을 떨친 괴테 역시 정치의 길에 들어서게 되고 그의 삶을 고사시키는 추밀관 자리를 박차고 이탈리아로 도주한다단테의 유랑은 [신곡]괴테의 도피는 [파우스트]를 낳았다그들에게 예술의 길은 구원의 상징인 베아트리체와  그레첸처럼  다른 모든 걸 버리고 얻을만한 그들 삶의 이유였고 결국 올바른 길이었다.

괴테가 단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했을까이성의 힘과 무한한 발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18세기말의 그에게단테는 구시대적 [유럽의식]의 잔재에 불과한 인물이었을까? 괴테가 땅을 개간하고 거기에 후손들이 살게 될 때를 그리며 살았다면 단테는 이 땅의 삶이 고스란히 보존되어질 또 다른 사후의 세계를 그리며 살았다. 똑같은 고통과 시대의 옳음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전혀 다른 두 결론이다. 그래서 이들 고전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이 두가지 목소리로, 삶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끝없이 되묻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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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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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빅터 플랭클의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을 담은 1부 [죽음의 수용소에서 실존주의로]와 2부 [로고테라피의 기본개념], 3부 [무의식적 신]을 묶었다.

빅터 플랭클은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첫날, 고참죄수에게 그가 품에 갖고 온 정신치료 논문을 소각치 않도록 부탁한다. 이 원고는 그에게 가장 소중한 인생의 의미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그의 논문과 인간적 대우 모두를 그 순간부터 빼앗기고 벌거벗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아남기 위한 3년을 보낸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가 깨달은 것은 인간의 모든 것이 박탈된 순간 찾아온 [참다운 인간됨]이었다.  살아야 하는 이유, 상대를 존재로 사랑하는 것, 우정, 예술, 웃음... 이 모든 것이, 어느 순간 삶의 끈을 놓으면 죽어야 하는 그곳에서 생생하게 살아난 것이다.  재산, 명예, 학문적, 예술적 성취, 자손... 사람들은 이런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 믿고 살다가 이것을 잃으면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아니면 죽을때 잘못 살았다 깨닫기도 한다. 플랭클은 진정 이런 것들이 다 사라진 후에 그 너머에 진정한 인간성의 모습이 존재함을 수용소의 뼈만 남은 모습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인간의 이런 [현상]에 놀라와하고, 살아남게 되자 이를 통해 실존적 인간이해와 그 개념을 정신치료에 적용코자 했다. 인간이 자신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이 개인적인 것이 될 수 있을때,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포함한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자기 발견은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자기것으로 여기게 한다. 자기거부와 무의미성에 대한 허탈감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적 정신병리에서 이는 치료의 단초가 된다. 도피와 연관된 신경증들과 자기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기력한 우울은 [고통이 의미가 있는 인생]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유와 아울러 책임을 포함하는 인간의 실존의 회복이다. 또한 실존주의 철학과 정신병리학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우연에 따라 결정되는 생존과,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도리어 신의 존재를 발견케 된다. 이것을 그는 3부에서  영적 무의식spiritual unconsciousness에 새겨진 신의 존재, 혹은 무의식적 신이라 부른다.그리고 이런 신의 존재를 인정함을 통해서야만 진정 자기 삶의 책임과 의미를 발견하는 무의식으로의 여행이 자기 파괴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정신분석적psychoanalytic 무의식의 탐구가 인간을 어린 시절 성적경험으로 [결정지워진 존재]로 보는 대신, 이러한 이드id의 무의식이 아닌, 인간 안에 존재하는 초월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영혼의 무의식은, 인간을 [선한 의미를 따르고자하는, 책임감이 가능한 존재]임을 알게 한다는 것이다. 무신론으로 억압된 무의식을 풀어낼때 인간의 영혼의 의미들과 각 개인들의 상황에 부여된 의미들이 드러나게 된다.  이때 다시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게 빛나는 것, 가치있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죽음의 앞을 스쳐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본 것은 인생의 진실한 모습이다. 죽으면 끝이구나, 언제든 죽을 수 있구나, 이렇게 살게 아니구나...죽음이 알려주는 가르침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이론적 논변보다 더 심오하다. 참된 심오함은 인생자체에서 나온다. 죽음을 느끼는 것은 인생이 의미없다는 주장이 얼마나 이론적인 것에 불과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플랭클은 죽음의 앞에서 인간을 찾았고, 정신병리의 해결이 인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신을 가지고 있으며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향해 대답하는데 있으며, 여기에 또한 인생의 목적이 있음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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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유 2006-04-12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갑하기 그지없는 이 지적 세계에서) 숨통이 트이는 리뷰, 매번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카를 2006-04-13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후님의 리뷰도요...
 
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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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의 자서전적 내용을 담은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의 예술관과 이런 예술을 추구하게 된 성장배경 및 그 자신의 타고난 소질을 찾아감에 그 초점을 맞춘다. 아일랜드의 영국에 대한 정치,문화,언어적 피지배 상황과 가톨릭에 바탕을 둔 로마에 대한 종교적,교육적,문화적 종속, 그리고 이런 모든 지배상황의 살아있는 실물인 아버지,어머니,선생님들의 영향이 그를 고스라니 만들어냈음을 그는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벗어나기 원한다. 또한 그 자신의 안에 있음을 발견하기 시작한 한 [거룩한 부름], 정적인 숭고한 예술을 추구하길 원한다.
 
하지만 이 길 또한 철저히 그의 성장배경에서 태생한 것임을 조이스는 숨기지 않는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부르심을 좇아가는 삶]이며, 성모 마리아의 죄인을 용납하시는 한계내에서의 추구임에 그러하다. 그는 결국 아일랜드와 가톨릭과 가정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런 발전을 위한 소명의 추구는 [율리시즈]에서 계속되며 반복되며 앞으로 나아가나  끝을 만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그 자신의 삶을 소재로 형상화해낸 [인간의 의미]라는 주제의 1부에 해당하는 이 책은 정확히 그의 추구의 결말이 그의 성장배경을 벗어날 수 없을 것임을 이미 암시하고 있다. 결국 아일랜드를 떠나는 그의 발은 떠났던 곳에 돌아오고 자아라는 것, 父性이라는 것의 한 실마리를 본 것에 만족할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한껏 날아오를 능력을 부여받은 위대한 장인의 소임이다.
 
언젠가 성취하게 될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 것은 살아갈 유일한 이유가 된다. 그런 것이 없다고 믿는다면 젊음은 고달프다. 늙어서 비로소 그런 것이 없다고 여긴다면 죽기가 두렵진 않을꺼다. [결국 신을 발견치 못한다면 행실과 말로 죽음을 불러내고 죽음을 친구로 여겨 그것을 열망하며 죽음과 계약을 맺으리라(지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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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6-04-11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를 님 마지막 인용구는 좋네요. 글 가져가도 돼죠?^^;

카를 2006-04-12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이죠
 
칠층산
토머스 머턴 지음, 정진석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197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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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피스트 수도원의 루이스 수사, 토마스 머턴의 자서전적 자기 삶에 대한 고백이다. 예술가의 집안에 태어나 여러나라를 옮겨 다니며 교육을 받았던 그는 부모를 모두 잃고, 미국에서의 대학생활 중 신의 살아계심과 그 부르심을 경험한다. 세례 후에도 지속된 그의 영혼에 대한 탐구는 결국 그를 수도사로서의 길로 향하게 했다.  이런 삶의 행적을 되돌아보며 그는 어릴적부터의 많은 신자들과의 만남과 영향이 그에게 이런 결정에 이르게 했음을 고백한다. 어찌보면 단순해 보이는 이 자서전은 뛰어난 글솜씨와 삶과 영적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표현들로 그 빛을 더한다.
 
이 책이 나에게 준 물음은 세가지이다. 첫째, 부르심이다. 각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과 준비시켜주신 소질을 가지고 있다. 마흔이란 나이는 혹 그 이후의 삶을 계획하지 않고 살도록하는 나태함의 나이일수도 있다. 하지만 사십에 왕자의 자리에서 쫓겨나 광야를 헤매이며, 팔십에 부르심을 받아 백이십에 이른 모세를 보면 이건 하나님의 시간과는 무관한 인간적 판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둘째, 업적을 이루는 것과 자기수도와의 갈등이다. 성공한 인생은 과연 많은 일을 이룬 실행에 집중한 삶일까? 아니면 자기 자신의 갈고 닦음에만 오로지 몰두하는 삶일까? 공자와 노자의 갈등이었고 칼빈과 프란체스코의 차이이기도 한 이 문제는 분명 그 해답이 둘 다임에 틀림없지만 수학적 중앙점처럼 단순하진 않다. 행동과 신앙으로 이분된 세계가 아님을 알기에 온전함은 분명 둘을 구분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과 전혀 다른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살아가려는 나의 눈은아직  너무 어둡다.
 
셋째, 영적인 삶의 훈련과 환경의 문제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살려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인 수도자적 삶을 백안시하는 것은 나의 문화적, 교육적 배경에서 오는 선입견은 아니었을까? 나는 주위를 온통 하나님과 담쌓고 살도록 흐트려 놓고 영적 생활이 빈곤하다고 한탄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위대한 삶이 내적 중심과 일치하는 삶, 한가지에만 뜻을 두는 삶이라고 하면서도...

벌써 25년이 지난 중학교시절의 [다니의 일기]에서 느꼈던 삶에 대한 공감을 삼십대 중반이었을 당시의 머턴에게서 다시 한번 느끼며, 남은 삶의 [사도됨discipleship]에 대한 심각한 성찰을 하게 됨을 감사케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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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훈련과 성장
리처드 포스터 지음 / 생명의말씀사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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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적 세계에 대한 두드려 깨움이 있다. 왜냐하면 철저히 세상적 삶과는 반대인 삶에서만 찾을 수 있는 진정한 기쁨에 대한 안내서이기 때문이다. 훈련으로 하나님의 빛으로 매일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삶이 있다. 그리고 그 길은 그리스도의 죄사함으로 부름받은 모든 사람에게 마땅한 길이다. 그 길은 가나안을 목적지로 하는 광야의 길이다. 하나님은 누구도 이 광야 한가운데 잠들어 짐승의 먹이가 되길 원치 않으신다. 훈련은 부름의 한부분임을 이 책은 보여준다.    
 
이 책은 좋은 안내서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것만은 아무 의미가 없다. 책은 얼마나 많이 읽었던가? 나의 알아감은 진짜 삶터와는 사실 아무 상관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만을 위해 살아가고자한다면 사실 책은 필요가 없었다. 그분을 사랑함을 잃지 않을때 비로소 지침도 되고 좋은 도움도 된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훈련은 매일 삶의 생활방식이면서 또한 달콤한 사랑의 일기이다. 그분은 매일 따라가야할 구름기둥 불기둥이다. 사랑하는 자만이 이 길을 마치도록 실족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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