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의 이혼 믿음의 글들 202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홍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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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출간된 루이스의 이 책은 판타지적 형식을 빌어 천국과 지옥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비유적 묘사에 대한 서술적 설명은 1940년 나온 [고통의 문제]에서 더 자세하고 정확하다. 포괄성이나 이해하기 쉬운 것에야 [고통의 문제]가 훨씬 낫겠지만, 판타지는 가슴에 부딪히게 강력한 설득력으로 읽는이에게 영적 충격과 깨달음을 주는데에 그 역할이 있는 것 같다. 그는 신학자라기 보다 영성가로 불리어야 한다. 그에게 관심은 얼마나 논리적으로 한 종교를 설명해 내느냐에 있지않고 어떻게 하면 더 깊이 하나님을 이해하고 그 절대적 진리의 힘을 독자가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느냐에 더 집중하고 있다.
 
루이스에게 천국은 내세적 의미인 동시에 현재에 살아가는 선택이기도하다. 스코틀랜드의 영성가 조지 맥도날드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에서 맥도날드는 루이스의 베르길리우스가 되어 천국과 지옥에 대한 배타적 견해 즉 인간의 자기 중심성이 결정짓는 무시간적 선택으로서의 천국과 지옥을 보여준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여 사는 삶, 구원과 하나님에 대한 피상적 접촉이라는 건널 수 없는 자아의 골짜기를 두고 천국과 지옥은 갈라져 있는 셈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결정을 통해 시간을 초월하는 세계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혹은 멀리간다. 때로 우리의 당하는 고통과 시험이 의로우며 영원에서 우리에게 유익한 결정일수 있는 것은 도리어 이런 어려움이 천국이 여기에서 선택되어지도록 돕기 때문임을 안다.
 
이 짧막한 판타지는 나로 자연스런 죄인인 나의 모습을 감추고 그 분앞에 서려는 것을 드러낸다. 무엇인가 내세울거리를 마련코자 함. 정작 구원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지기 보다는 장식품들에 더 연연하는 태도. 루이스는 적나라한 비유를 통해 이런 하나님과 분리된 종교인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거울을 보듯 비춰준다. 어떻게 살 것인가? 고삐를 놓고 산다. 도움을 구하며 산다. 껍질을 벗고 산다. 돌이켜 이 책을 지금 읽게 하신 이유를 생각해보면, 나의 자기합리화의 길로 더 이상 내려 앉지 않게 하심이다. 정직히 나 자신과 만나게 하시고자 하심이며 엉뚱한 일로 빼앗긴 내 관심을 돌리기 위하심이다. 두렵고 떨리는 고통이 아닌 먼저 부드러운 말로 설득하고자 하심이다. 그래서, 지금의 삶을 하나님과 동행케 하고자 하심이다. 그분이 주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맛보게 하고자 하심이다. 잊지 말고 하나님께 정직히 자신에게 정직히 서야한다. 그리고 영혼과 그 가치 이외의 것에 대해 올바른 자세를 새롭게 해야한다. 지금 귓가에 쩌렁거리게 말씀하실 때, 이 목소리를 결코 무시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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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안창호 / 지성문화사 / 198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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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그 감동이 죽은 후에도 남아 그 정신을 간직하고 본받고 싶도록 만든다면 그 인격의 힘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삶의 태도가 바뀌고 눈물을 억제키 힘듦을 느낀다. 도산께서는 이 민족의 서로 세워줌을 모르는 질시와 의견차이로 상대를 적대시 하는 태도들을 모두 뻐저리게 겪고도 여전히 대한을 사랑하고 대한인을 바꾸기를 원하시고 그것을 위해 목숨을 던지셨다.

목숨을 던져 힘쓰겠다 말하시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바쳐 일하시고 당장의 성공과 만족감이 아닌 민족의 심성이 바뀌고 생활습관이 바뀌고 공기가 바뀌도록 노력하시었다. 애국이라 말을 하지만 정말 사람을 사랑하는 애국이 무엇인지 뚜렷이 보여주신 분이시다.

도산은 이 땅의 젊은이가 보고 따를만한 스승이 없어 방황하므로 스스로 규제하고 서로 가르쳐 인격을 함양하라 하셨지만 이제 우리는 정말 뚜렷한 보고 배울 민족의 모델을 가지고 있다. 항상 깨끗하시고 사람을 받아들이려 했으며, 화내지 않으시고 미워하지 않으셨던 선생의 모습과 뜻을 보며 나의 삶의 태도가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

선생께서는 힘을 기르고 서로 화합하고 외교에 힘쓰며 지도자를 세워주고 의견이 다름을 숨기지말고 허심탄회하며 거짓말하지 말고 합의하였으면 충심으로 따르라고 하셨다. 여전히 우리에게 부족한 것들이다. 결코 이 민족성은 나아지지 않을거라고 다들 말할때 우리민족은 심성이 곱고 또한 똑똑한 민족이어서 매일 한걸음씩 전진하면 세계만민의 본이 되고 평화를 끼칠 백성이 될거라 믿으셨다.

자식이 못난 구석이 있어도 잘되거라 본성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는 정말 우리민족을 사랑하신 지도자이시고 평생을 본받아 좇아도 이르지 못할 커다란 산이시다. 대한 사람으로 이런 스승을 가진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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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문제 (보급판 문고본) C. S. 루이스 보급판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 홍성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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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의 이 책은 그의 나이 42세인 1940년 쓰여졌다. 이 책에서 그는 흔히 신적 존재에 대한 부정의 근거로 거론되는 고통의 문제를 들어 그리스도교 전체의 윤곽과 그 참됨을 설명하고 있다.
 
루이스는 철학적으로 인간의 자유라는 전제가 내포할 수 밖에 없는 고통의 가능성과 인간 자신의  약함에서 비롯된 악과 이로 인한 고통의 가중,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의 전제가 그렇듯 이것을 바꾸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선함이 고통의 문제에 관계되어 있음을 겸손히 보여준다.
 
뜨거운 불에 가까이 가면 통증을 일으켜 피하게 하듯이 고통은 우리의 원래 모습이 아닌 악을 발견케 한다. 인간의 원래 상태는 현재의 동물적 상태가 아닌 하나님과 닮아가는 존재인데, 인간은 하나님을 따르길 원치 않는다.  인간의 고통은 자기의 반역의지가 노출되는 것이며, 자기악에 대한 인지이기도 하다.  인간은 악을 자신이 당하여 고통이 될때까지 그것이 악인지 알지 못하는 존재인 것이다. 내가 남에게 끼칠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행동이나 말도 그것을 비로소 본인이 당할때는 지독한 큰 해악임을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고통은 우리가 아무일 없다고 만족하는 삶을 깨우고 하나님을 의지케 한다.  불쾌함을 느끼지 않는 한 행할 마음을 먹지 않는 옳은 행위는 바로 자기 양도인데  때로 두려움과 연민만이 이런 순종과 자비를 가능케 한다. 고통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을 건강하고 성숙하게 한다.  고난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자의적 고행은 때로 철저한 반역의 의지적 표징이기도 하다. 우리의 할일은 고통을 없애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고통을 없애려 한다고 해도 고통은 우리 힘으로 완전히 그치지 않을 것임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의 이 지독한 고통스런 갈망은 궁극적 결핍에서 온다. 채움은 자기를 비워 양도함으로 하나님이 들어오심으로 가능하다.  결국 우리가 비워지고 또 우리의 모양으로 채워지면 각 개인은 각자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다른 모든 영혼에게 내어주는 일을 할 것이다. 고통이 우리를 이끄는 곳은  인간의 영혼과 하나님의 연합, 끊임없는 자기를 드림이며 더욱 드림이다.  지옥은 그래서 동물을 벗어나지 못한 [전에 인간의 영혼이었던] 상태이며   어쩌면 지옥은 영혼이 선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 자기포기를 원치 않는 자들이 최후까지 반역에 성공한 곳인지 모른다. 지옥의 문은 안쪽에서 잠겨있다는 말처럼...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것은 모두 비워 그 분이 채우실때 채우신 것을 또 나누길 원할때이다. 진정한 하나님과의 맞닿음, 어우러짐의  완성이 된다. 이것은 그 자체로 선이며 사랑이다. 그 때야 비로소 파생된 우리는 우주의 심연이신 그 분 앞에 질문을 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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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1 02: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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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애와 사상 에버그린북스 13
알베르트 슈바이처 지음, 천병희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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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유명한 의사이며 많은 사람에게 봉사의 정신을 일깨워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슈바이처의 이런 행동의 뿌리가 된 사상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슈바이처 나이 56세이었던 1931년 쓰여진 이 책은 그의 삶에 대한 회고이면서 동시에 그의 사상에 대한 개괄서이기도 하다.
 
그의 사상의 요체는 [생명경외사상]이다.  1차대전을 통해 드러난 서양사상의 자멸적 몰락은 슈바이처로 하여금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재건하기 위한 철학적 기초를 다시 마련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주었다. 원래 신학이 전공인 그가 의사로서 살며 느낀 살아있는 삶의 근저가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나의 생명이 소중하다고 느끼는 만큼 남도 귀중한 생명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이런 [생명에 대한 외경심]만이 인간의 운명과 세계에 대해 부정적이고 파괴적 견해로 치달을 수 밖에 없는 20세기의 세계관을 인간 긍정적, 세계 긍정적 세계관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의 신학은 철저히 19세기말의 자유주의적 신학 이해에 기초한다. 비록 교회전승적 예수가 아닌 역사적 예수를 찾고자한 당시의 독일신학, 스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학위를 마치고 교수에 이른 그이지만 슈바이처는 역사적 예수 이해가 놓치고 있는 후기 유대적 메시야 사상과 초기 기독교의 재림 대망에 기초한 윤리관을 접목한다. 메시야로서의 예수의 자기인식과 이에 기초한 초대교회의 도래할 하나님나라의 주이신 예수 사상, 그리고 이 기다림 속의 윤리관으로서의 바울 신학을 발견한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이런 신학적 이해가 당시 사회에 구원이 되기 위하여 예수의 메시야 인식에 기초한 윤리가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내지길 원했다. 
 
그는 그의 생각을 따라 실행에 옮긴 삶을  살았다. 그에게 인간적 결함이나 천재적 재능과는 별개로 참다운 진실과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을 바치는 한 인간을 본다. 그는 음악이든 철학이든 신학이든 의료이든 동료인간과 생명을 존중하기를 원했다. 나는 과연 무얼하고 있나? 주어진 모든 혜택은 베풀기 위함인데 더 많이 누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연히 그는 19세기의 신학적 방자함과 철학적 교만과, 경제논리적 파이프오르간과 폐쇄적 국가관과 계급에 갇힌 의사를 넘어섰다.
 
무엇이 그에게 이런 힘을 주었는가? 사랑이라고 그는 말한다. 지성으로 연결되는 신앙만이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사랑으로 채워진 진리만이 인류를 해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랑은 그의 이성적 도출인가? 그는 그의 안에 있던 신앙을 설명하려 하고 그 힘은 그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 왔음을 내비친다. 그는 신학의 이단자로 비치지만, 남의 영역으로 넘어들어온자가 아니라 진정 그의 관심이 신학에 있었던 사람이다. 메시야 인식과 바울의 그리스도 이해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속마음을 이 시대에 윤리적으로 도출하는 것이 세계에 대한 열매있는 봉사라고 여겼다. 그에게서 그리스도의 다른 모습을 본다. 균형과 내적 힘은 믿음의 신앙이 훨씬 강하지만 지성의 신앙인 그에게서는 일관성과 세상에 대한 설득의 의지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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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리지 - 한국 풍수지리학의 원전
이중환 지음, 이익성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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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환은 이익의 재종손으로, 경종때  무고사건인 임인옥사를 일으킨 혐의로 탄핵을 받고 당시 이 사건으로 목숨을 잃을뻔 했던 연잉군이 영조로 등극하자 유배와 귀양으로 여생을 보내었다. 노론과 소론, 소론의 강경파와 온건파, 남인의 세력다툼 속에서 어느 한 곳 발붙일 곳 없었던 그는 팔도를 떠돌며 비교적 정치적 성향과 무관한 성격의 지리 서적인 이 책 [택리지]를 내놓는다.
 
이 책은 분명 우리나라의 각 지방의 특성과 장단점을 드러내는데 그 목적이 있다. 처음 사민총론에서는 신분체계를 개괄하고, 팔도총론에서는 각 지방의 특징을 상세히 서술하며, 복거총론에서는 이런 각 지방을 판단하는 기준인 지리, 生利,인심,산수에 대한 관점을 일목하여 제시한다. 얼핏 이것은 이 책이 오로지 좋은 땅자리 찾아 가문을 일으키는데 소용이 되도록 쓴 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발문에서 언듯 그의 속내를 비친다. [이것은 살만한 곳을 가리려 하지만 살 만한 곳이 없음을 한탄한 것이다. 이 글을 넓게 보는 사람은 문자 밖에서 참뜻을 구하는 것이 옳다. 아, 실제 일이라면 관석을 고르게 하는 것이거니와 실제가 아닌 것이라면 작은 겨자씨도 큰 수미산도 될 수 있는 것이니 후일 반드시 분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수수께끼 같은 이 마지막 말은 이 책을 통해 그가 이야기 하고픈 다른 탄식이 있었음을 보인다.
  
"이 글을 적음은 팔도의 살 곳을 구별코자 함이 아니다. 살지 못할 곳이 어디있으랴. 다만 당파니 뭐니하며 인심이 비속하여 쓸데없이 서로를 백안시하니, 눌러앉고자하여도 마음이 편한 곳이 없을 따름이다. 아무것도 아닌 이런 어리석은 다툼을 그치지 못하면, 첫째로는 살 땅을 정함이 불가능해져 살 곳이 없어지고, 둘째로는 결국 마음이 아닌 몸만 붙여 산다면 어찌 아름다운 풍속이 생길 수가 있겠는가? 결국 다스리는 자들이 마음을 합치지 못함으로, 풍속도 무너지고 인심도 각박하고 살만한 인간세상이 아닌 무법천지, 동물세상이 됨인데, 어찌 다스리는 이들은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서로 옳다고만 하는가? 살 땅의 첫째는 결국 사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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