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우웬 : 그의 삶, 그의 꿈 - 세계영성의 거장 시리즈 01
마이클 오로린 지음, 마영례 옮김 / 가치창조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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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평화 운동에 매우 소극적인 이유중의 하나는 평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이 찾고 있는 평화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은, 세상의 성난 소란으로부터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개인적인 심오함을 지니는 것으로 이해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진정한 영성을 지닌 사람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문제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행해지는 불의의 희생자가 된 수많은 이들이 호소하는 정의를 외면하지 않는다.'

 '글을 쓰는 과정 속에서 나는 예수님을 '세속화'시키는 경향이 내게 상당 부분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본능적으로 나는 값싼 자유와 내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성공하고 싶은 내 열망을 이루기 위한 도움을 얻기 위해 그리고 적에 대한 보복과 적잖은 명성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바라본다. 예수님을 복음서가 알려주는 예수님으로서 즉 우리에게 영적인 자유를 주고, 우리가 당하는 고통에 우리와 함께하고, 우리에게 낮아지는 길을 보여주고, 우리의 원수를 사랑하라고 권면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은밀히 계시해주시는 주님으로 보기가 늘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수님을 볼 때마다 나는 새로운 내적 평안을 얻고 다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따를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자신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 충분히 욕심을 부리면서도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했다는 말을 들을만한 사람이 -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사람의 관점에서 입니다 -  신부로서의 지위상승이나 교수로서의 권위 등의 세상에서의 자랑거리를  다 내려 놓고,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 틈에 들어가 스스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서 감당한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자신의 글이 영성을 발휘하는 순간에도 세속화되는 듯한 자신의 모습을 한없이 반성하며 낮아지신 예수님을 닮기 위해 열정을 불사른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반전이나 반핵 시위도 중요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자신의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이라고 믿었던 하나님의 종, 헨리 나우웬의 삶과 꿈을 담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책을 대하기 전까지는, 헨리 나우웬이라는 이름이 매우 낯설었습니다. 여러 기독교 영성작가들의 책을 읽어 왔었지만, 헨리 나우웬의 저서는 어쩐 일인지 내 신앙도서 독서 목록에서는 완전히 빠져 있었습니다. 책 편식이 심한 탓도 있겠지만, 그가 나의 신앙과는 약간 색깔이 다른 카톨릭 신부였다는 사실이 그 이유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낯섬이 이 책을 통해 그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변하고, 적극적으로 섬기는 삶을 살며 예수님을 담기를 원했던 그의 모습이 나의 삶의 반성을 위해 비추는 거울이 되어 있습니다. 세상살이에서 교회를 나가는 것과 몇가지 금기를 지키는 것을 빼고는 비신앙인들과 다를바 없이 좀더 거창한 일을 이루고 성공과 명예를 위해 경주하는 것에 은연중 관심을 쏟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며, 헨리 나우웬이 그의 책들을 통해 이야기했던 것들과 그의 삶의 궤적, 또한 그가 마지막까지 섬겼던 라르쉬 공동체에서의 삶의 이야기는 속에 담긴 예수님이 진정 이 세상에 오셔서 본을 보이고 전하고자 하셨던 겸손하고 섬기는 자의 삶,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는 자의 삶에 대한 자각을 가지게 됩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 어린이들을 가까이 하시고 천국은 저들과 같은 이들의 것이라 하셨던 의미, 죄인들의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하셨던 시간들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묵상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리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그의 자녀로서의 삶이라는 것이, 나우웬이 자신이 섬겼던 아담이라는 장애인 청년을 통해서 아담 안에 있던 예수님의 형상을 고백하였듯이 약하고 낮은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 화려하지 않은 평범함 속에도 충만하게 담겨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깨달음의 이면에서 여전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내 삶속에 또아리를 틀고 앉은 교만과 자기만족적인 습관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양보하고, 또한 적당히 욕심을 부리는 삶을 살면서 내 나름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마도 나우웬이 자신이 삶속에서 끝없이 경계했던, 내 자신의 무감각한 내면에 자리잡은 세속화된 모습이겠지요. 

 책 속에 언급된 헨리 나우웬의 많은 글들이 신앙인으로서의 내 마음 깊은 곳에 파고 듭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 그리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글을 쓰고 어떻게 생활하는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을 가진 헨리 나우웬의 삶과 변화를 읽으며 미가서의 말씀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6:8). 세상에서의 명예와 부와 성공이라는 화려한 장식보다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라루쉬 공동체를 섬겨기를, 장애인 아담을 돌보기를 기꺼이 받아들였던 나우웬의 삶처럼 낮고 약한 곳을 찾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그러한 삶이 나의 삶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를 돌보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지 않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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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위대하지 않다] 서평단 알림
신은 위대하지 않다 (양장)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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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의 이 책에 담긴 주장과 저술 목적의 일면은 다음의 주장을 통해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신이 존재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 신의 이름으로 악행이 저질러졌다는 것, 신을 만든 것이 바로 인간일 가능성, 세상에 피해를 덜 끼치는 대안적인 믿음과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항상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람들의 예로 소크라테스에서 시작하여 스피노자, 볼테르 등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새로운 계몽-인류의 견본은 신이 아닌 인간 그 자체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 계몽-이 필요하다 주장을 덧붙이며 자신도 그러한 사람들의 맨끝에 서있는 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종교란 그리고 신이란 사람들이 원시적인 두려움과 지배욕에서 발생한 발명품에 지나지 않고, 그로 인한 수많은 악행과 폭력을 담은 광기어린 신앙에서 벗어나 이제는 인간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인본주의적인 시각에서 세상을 살아가야한다는 주장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입니다.

 저자가 책의 처음을 신앙인들을 비꼬는 그리고 그들에게 도전적인 자세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보기에는 맹목적으로 보이고, 자기와 같은 믿지않는 사람들의 삶에 무례하게 침범하여 천국과 지옥을 설파하며 신앙을 강요하는 그래서 자신을 편하게 놓아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그들의 신앙이 어떻더라도, 신자들 각자가 자신의 종교에 관심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 자체에는 불만이 없고 존중하는데, 그들에게는 자신이 베푸는 아량 -즉 참견하지 않고 그냥 자신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조차도 기대할 수 없다는 듯이 비꼬고 있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저자는 자신이 종교가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고 주장하는 것 만큼이나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이 상관하지 않는다는 종교와 신앙인들에게 더 간접적이고 교묘하게 융단폭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저자가 말하는 아량이라는 것도 결국 말장난이고 비꼬는 말에 다름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결국 글로 하는 것이지만 내 눈에는 전쟁을 하자는 말로 들립니다. 저자가 듣는다면 또 여기서 신앙인들의 잔혹성과 폭력성이 튀어나온다고 할 일이지만, 저자의 이러한 자세는 아마 신앙인들에게는 도발로 느껴지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신을 부정하기로 작정한 사람, 저자의 글을 읽으며 느끼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을 심지어 성경의 구절이나 코란이나 유대교의 가르치까지도 자신이 부정하기로 한 종교와 신을 깍아내리고, 신앙인들의 신앙을 조롱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변성기도 겪기 전에 모두 찾아냈다는 종교에 반대하는 네가지 주장에도 그의 생각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종교가 인간과 우주의 기원을 완전히 잘못 설명하고 있다는 것, 이 첫번째 잘못 때문에 최대한의 노예근성과 최대한의 유아독존을 결합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 종교가 위험스런 성적 억압의 결과이자 원인이라는 것, 종교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희망사항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 결국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본떠서 인간을 만들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형상을 기초하여 신이라는 허상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절대화시킴으로서 종교로 인해 발생하는 온갖 고통과 부조리와 만행이 자행되고 있다는 주장에까지 이르고, 그러한 종교의 불합리성과 폐해에 대한 예와 주장들이 저자가 신이 위대하지도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말하는 근거와 조롱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최근의 9.11 사태에서 시작하여 종교의 각종 이름으로 자행된 만행이나 돼지고기를 예로 들며 종교에서 말하는 음식문화에 대한 비합리성에 대한 지적, 지적설계론에 대한 비판, 구약이나 신약에 대한 조롱 등에 대한 불편함이 마음속에 가득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때로는 비판이 지나쳐 맹목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아마도 무수한 자료들과 주장들을 정리하고 다듬었을 것이기에 책을 덮으며 내놓은 나의 대답들은 어찌보면 초라할 수 밖에 없다는 느낌입니다. 이런 느낌이 물론 저자의 주장 중에 일리가 있는 것들도 있고, 종교인들이 분명 반성하고 되돌이켜야 하는 부분도 있다는 것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자의 그런 여러 주장들도 결국은 종교라는 울타리안의 신앙인들이나 사람의 눈에 보기에 부조리하게 보이는 것들에 대한 비판에 의존하고 있기에 더 근원적인 신의 부재에 대한 주장만 있을 뿐이지 그에 대한 명백한 증거는 아니지 않는냐는 것이지요. -한데 저자는 자신이 신의 부재를 증명했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암스트롱과 같은 이에게는 우주공간이 신의 축복으로 가득차게 느껴졌지만, 가가린과 같은 불신자의 눈에는 우주 어디에서도 신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신앙인들과 저자와 같은 이들의 사이에 있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바로 신의 존재를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서로가 이러이러한 것 때문에 신을 믿는다,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거꾸로 신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삶속에서 겪는 여러가지 일들에 대한 반응을 결정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물론 이 생각에는 반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적어도 저자의 자세를 보면 종교를 부정하기로 작정하고 대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싸움은 아마도 끝이 없는 줄다리기일테지요......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3:13-14-

 '스스로 있는 자', 모세에게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표현한 이 말은 신앙인의 입장에서 보면 의미있고 중요한 이름이 되지만 아마도 저자와 같은 이들의 눈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허망한 표현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저자와 신앙인들 사이에는 그 만큼의 간극이, 즉 신은 위대하다고 무릎을 꿇는 모습과 신은 위대하지 않다고 조롱하는 모습 만큼의 간극이 존재한다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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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간의 동행 - 당신의 삶을 빛나는 명작으로 만드는
토머스 킨케이드 지음, 황진아 옮김 / 비전하우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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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성이 가득한 창조적인 삶을 위한 저자와 7일간의 동행, 하지만 이 책을 손에 든 것은 책의 내용보다는 저자의 그림이 궁금해서였습니다. 솔직하게 그림에 대해서는 문외한인지라, 저자의 작품을 평가할 역량이 내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그의 그림이 궁금했던 이유는..... 그가 신실한 크리스챤이라는 사실과 영성을 담은 그림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 그래서 그의 그림을 통한 신앙의 표현을 감상하고 싶은, 아니 감상이라기 보다는 그림을 통한 신앙의 또 다른 면을 체험하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내용보다는 -저자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책 사이 사이에 프린트 되어 있는 그의 그림에 마음이 먼저 가 있었습니다.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그의 그림 속 풍경들에 그렇게 발걸음을 들여 놓았습니다. 

 저자는 자신만의 내밀한 마음의 공간을 마련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고독의 시간을 찾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열정과 사랑, 공동체와 창조하는 즐거움, 갈등을 거쳐 하나님께 경배하는 길에 이르는 7일간의 영적여행을 자신의 그림 그리는 삶과 대비하며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저자 자신이 항상 창조적이고 즐겁게 자신의 작업에 몰두하면서, 어떻게 지치지 않고 그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가에 대한 자기 고백의 일부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과 꽃과 나무, 하늘, 그리고 옛스런 아름다움을 간직한 집과 그 집이나 숲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저자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것들입니다. 다양한 풍경속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것들이지만 그의 그림을 들여다 보노라면 반복의 싫증보다는 매번 새로움을, 환희를, 그리고 마음속에 솟아나는 희망과 즐거움을 -내 언어 수준으로는 말로 표현하는 것에 한계가 있는 듯 합니다- 느끼게 되는데, 아마도 그의 그림에 그러한 생명력과 영성을 부여해 주는 것은 그림속에서 환하게 비추이는 빛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그가 빛의 화가라고 불리우는 이유겠지요.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 오솔길 사이에 비추인 햇빛, 꽃과 나무와 하늘과 물을 반짝거리게 하고, 생동감 넘치게 하는 빛을 보고 있노라면, 개인적으로는 저것이 바로 만물에 내미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아마도 저자의 그림에 대한 감상평은 저자가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중에 우연히 만났다는 청년 브래드의 '행복하고 다채로우며 기운이 나게'하는 그림이라는 표현이 참 그럴듯 하다는 생각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글을 통해서 열정과 사랑을 잃지 않는, 창조적이고 영성 가득한 삶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책은 통해서 내가 얻는 것은 그러한 글을 통한 설득보다는, 저자의 손길에서 태어난 그림을 통한 무언의 소통으로 인한 것이 훨씬 많을 듯 합니다..... 말로 하는 것만이 신앙심의 표현의 다가 아니다는 것, 말로 하지 않아도 신앙의 깊은 이야기들을 가득 넘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 - 그림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신실한 몸짓 하나, 손길 하나를 통해서라도 - 그리고 영성 가득한 삶이라는 것은 그러한 자각속에 있다는 것을 저자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내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가 그림속에 한줄기 빛만으로도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와 희망을 표현하였듯이..... 그리고 복음성가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한 구절이 수많은 이들을 위로했듯이..... 언제 어디에서라도 그의 작품들을 대하게 된다면 이제는 그의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겠지요.^^  저자의 20년전에 그려진 초기 작품 '<평화의 왕> 예수그리스도의 초상'을 통해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암을 극복할 수 있었던 잔느라는 여인처럼 말입니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그와 -또는 그의 작품과-의 만남을 기대합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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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하나님의 임재연습
로렌스 형제 지음, 황성욱 그림, 진인경 글 / 좋은씨앗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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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 모두는 저렇게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돌일 뿐이란다. 여러 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뜻이지. 조각가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아름다운 작품으로 조각하실 테고.".........."달리 보면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작품이 될 엄청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저 돌과 같기도 하지. 무엇이 되느냐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중요하고.".......... "글쎄다. 그건 하나님만이 아시지. 하나님께서 네 마음속에 멋진 꿈을 주실거란다. 그러면 그 꿈을 따라가기만 하면 돼. 하나님이 너희 모두를 아름답게 빚으실 거다."

 알렉산드로 아저씨에게서 둥글둥글한 돌을 골라서 선물로 받은 니콜라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형준이와 기찬이라는 두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왜 다른 훌륭한 알렉산드로 아저씨의 작품을 고르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둥근 돌을 고르셨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모양, 가치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하며 멋진 작품으로 빚어질거라는 무한한 가능성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우리를 세상에 존재할 이유를 주신 분도, 우리 안에 원대한 씨앗을 심으신 이도, 그리고 그 씨앗을 싹틔워 열매맺게 하실이도 결국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인데, 신앙생활속에서 수도 없이 듣고 삶에서 되뇌이기도 하는 사실이지만, 매번 이리 강조되고 거기에 비추어 또한 매번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듣고 알게 된만큼 삶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모습 때문이겠지요.

 사람이 자란다는 것은 키가 큰다는 것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져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신앙인이 자란다는 것은 신앙의 햇수가 늘어난다는 것이 아닌 영적인 성장이 동반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겁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의 영향력하에서 생활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갑습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표현한다면, 매일 내 곁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그 분과 보조를 맞추어 사는 삶의 모습을 신앙적으로 성숙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교회에 다니고, 또한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안다고 하는 어린이들, 하지만 하나님을 어렴풋이 멀리에 계시는-우주나 하늘에 계시는-, 그리고 자신의 삶과는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 계시는 전설속의 존재처럼 느끼고 생활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책, 바로 이 책이 씌여진 목적입니다.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내용이지만, 하나님의 임재안에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이야기를 통해 날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곁에 임재해 계신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모습, 기도하고 그 기도에 합당한 삶을 일궈가는 방법,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동역을 하고 교제를 나누는 어린 성도로서의 생활에 대한 것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전학 온 형준이와 이미 학년짱의 위치를 차지하고 텃세를 부리는 기찬이가 서로 티격태격 다투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황금성이라는 신기한 곳에서의 생활과 체험, 니콜라 할아버지 및 다른 여러 수사님들과의 만남,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노아라는 여자아이와의 만남, 포도주를 구하기 위한 할아버지와의 여행을 통한 체험과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전쟁에 나가 다리를 다친 니콜라 할아버지가 앙상한 나뭇가지를 가진 비틀린 나무를 보고, 그 나무에 새싹을 주고 잎사귀를 주고 열매를 키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자신안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회심한 이야기, 눈이 멀었지만 니콜라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통해 눈이 아닌 귀를 통해 소리를 볼수 있고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섬세한 감각을 깨우친 뒤로 자신의 그런 눈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고백하는 아름다운 목소리의 노아의 이야기, 포도주를 구하러 강을 건너며 듣는 세상의 사람들이 착한일을 할 때마다 한마리씩 태어난다는 아름다운 물고기 이야기, 그리고 알렉산드로 아저씨에게서 돌을 선물로 얻어 챙기며 한 니콜라 할아버지의 앞의 이야기 등은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범사에 주인으로 인정하며 생활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합니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를 통한 두 주인공 어린이의 깨달음과 행동의 변화가 더 큰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두 아이는 황금성을 나와서, 비록 그 황금성이 신기루 처럼 사라져 버렸지만, 예전과는 다른 서로에게 튼실한 친구가 되어 있었으니까요. 바로 사이좋게 협력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두아이의 변한 모습속에 생활속에 임재하셔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솔직하게 책을 읽으며 하나님의 임재라는 주제를 이 이야기들을 통해서 얼마나 아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는지, 그 깊은 의미를 얼마나 아이들이 책속의 이야기를 통하여 깨달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만큼 말하고 전달하기에, 그리고 글로만 쉽게 알아듣기에 어려운 주제라는  사실이 한 몫을 하겠지요. 하지만 저자의 간절한 믿음처럼, 아이의 입에서 걱정거리가 있을 때, '그러면 하나님께 기도하자'는 천사같은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비록 그 말 속에 담긴 의미를 다 알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결코 헛된 고백과 제안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어린 마음이 삶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알고 체험해가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삶속에서 배워가는 자세라고 믿습니다. 니콜라 할아버지처럼, 그리고 형준이나 기찬이처럼 하루 아침에 달라지는 이도 있을 것이고, 종이에 물이 스며들듯이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알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와 그런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순간 아이들은 이미 한 단계 자란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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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할 은혜 (탁상용, 스프링) - 맥스 루케이도의
맥스 루케이도 지음 / 가치창조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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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향하는 길에서 40여년동안 매일 만나를 거둬들여서 먹었던 것처럼, 크리스챤으로서의 생활에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삶은 그들처럼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공급받는 삶의 연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말씀 묵상을 위한 안내서들이나 책들이 각사람의 취향에 따라 고르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만큼 많이 소개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떠한 안내서나 책으로 일용할  양식을 삼든지, 하나님 앞에서 그러한 삶을 연습하고 하루하루 새로워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할 거구요.

 날마다 만나는 은혜의 말씀, 맥스 루케이도 묵상집은 그러한 1년 365일의 일용할 양식을 위한 목적으로 기획되어 나온 책입니다. 하루에 한페이지씩, 요절 말씀 하나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전해주는 책입니다. 아마도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과 그의 저서들을 돌이켜보면, 은혜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글 속에는 항상 우리의 삶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담겨 있고, 우리의 삶에 고인 은혜에 대한 일깨움이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는 것은 부드럽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얼마나 인격적으로 다루시고 또한  인도하고 계신지에 대한 깨달음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번 묵상집에도 그의 그런 향기가 가득히 담겨서 은은하게 풍기고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삶을 인도하시고, 나와 동행하시며, 나의 짐을 대신 지고 가시는 하나님,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를 위로하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오래참아 기다려 주시는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은혜로운 손길과 부드러운 위로의 말씀, 그리고 우리를 격려하실 때에도 여전히 세심하게 우리의 삶의 모양을 배려하고 계신다는 느낌 등이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글들로 채워진 이 묵상집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이 묵상집을 훓어보면서 앞으로 나의 1년동안의 삶이  사랑과 은혜로 풍성히 채워지리라는 기대가 넘치는 것은 아마도 그러한 연유일 겁니다. 매일의 말씀과 글을 통해서 끊임없이 나와 우리의 영혼을 찾고 귀히 여겨 사랑을 고백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여기에 담겨 있다는 느낌 말입니다. 하지만 이 시간에는, 지금까지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말씀과 글들을 통해서 '참 은혜롭고 위로가 된다'는 느낌으로 끝나버리곤 하더 모습에서 더 나아가, 그러한 은혜와 감사의 바탕위에 조금 더 담대하게 세상에 크리스챤으로서의 빛을 발하고, 성경말씀에 좀더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사는 행동으로 말하는 크리스챤의 모습이 1년간의 묵상의 시간속에서 자랄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은혜로운 묵상집을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그의 말씀에서 위로만 찾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그리고 내가 행해야 할 은사의 제목들을 찾고 또한 행할 수 있는 한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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