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를 이끈 아름다운 여인들
해리스 로젠블라트 지음, 최진성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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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브(하와), 사라, 리브가, 레아와 라헬, 유다의 며느리 다말, 드릴라, 미갈, 아비가일, 밧세바, 압살롬의 누이 다말, 시바의 여왕, 이세벨, 룻과 에스더, 그리고 아가서의 술람미.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성경속의 여인들입니다. 물론 이외에도 라합이나 드보라 등의 성경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여인들도 있습니다. 저자가 이런 여인들의 삶을, 성경에 쓰여진 대로의 경건한 신앙과 정숙한(?) 여인상에 갇힌 모습에서 탈피하여, 한 가정의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성정을 가진 한 여인으로서의 모습을 그리려고 노력한 결과가 아마도 이 책의 내용이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지혜롭게 자신들의 뜻을 펼치고 관철시켰던 여인의 모습, 그리고 자신의 어려운 환경에 그대로 낙망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환경을 바꾸어 가는 여인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들여다 볼려는 저자의 노력이 여기저기 많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뭇 남성들의 이야기에 부수적으로 등장하는 조역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진 여인으로서의 그들의 모습을 그리고 이해하려고 한 저자의 노력이 이 책의 중요한 장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성경속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여인들의 모습은 대부분 능동적인 존재로 이해되기 보다는 수동적이고 나약한 존재로서 이해되곤 합니다. 그리고 당시 사회가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인 사회였기에 당연히 성경속의 이야기와 사건들이 남성중심적으로 이해되고 기록된 면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요. 예외적으로 라합이나 드보라와 같이 자신의 결정과 계획과 추진력으로 일을 처리하고, 리더십을 발휘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의 삶이란 것이 남성들에 의해 가려진 삶의 모습들인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신앙적인 의미에서 중요한 것은 모두의 삶속에 하나님의 인도함이 있었다는 것과 또한 그들의 사회에 주어진 하나님의 계명이 엄연히 존재하였다는 사실이겠고, 그러한 사회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와같은 남자와 여자사이의 질서도 필요하였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성경속 여인들의 그러한 생략된 삶을 심리학과 여러가지 상상과 추론들로 채우며, 그 여인들의 삶을 색다르게 해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내가 기존의 성경을 읽으며 생각했던 여인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저자가 부여하기도 하고, 현대의 기준으로는 용납하기 어려운 도덕적인(?) 부분에서의 문제들도 가볍게 이해하는 어투로 넘어가는 부분을 보면 조금은 당혹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악과를 따먹은 이브이 행동을 영원한 생명보다는 자신의 호기심과 자아를 찾는 과정으로 해석한 부분이나 아브라함과 함께 험난한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여정을 같이 했던 사라의 존재를 독립적인 강인한 여성의 모습으로 이해한 것, 룻이나 에스더의 결혼을 위한 노력을 미약하기만 했던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해석한 것, 가족을 떠나 이삭의 집으로 온 리브가의 결단과 야곱에게 축복을 가로채도록 공모한 것을 신앙의 조상으로서의 유산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현명한 선택으로 이해한 것, 다말이 자신의 시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구석에 몰린 사회적 약자가 가족과 종족의 번영을 위해 진취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한 것, 라헬과 레아의 아이 낳기 경쟁을 통해서 그들의 깊숙한 여인으로서의 심리적인 측면들까지 읽어내기 위해서 노력한 것 등 많은 부분에서 신선한 시각을 제공하고 적극적으로 그녀들의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관점을 제공한 것에 대해서는 분명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부분이라 해야겠지요.

 성경에 기록된 모든 인간의 삶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는 측면에서 먼저 이해가 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이 다루는 많은 부분, 특히 성경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여인들의 심리적인 상태나 생각, 의도 등을 표현한 많은 부분들은 저자의 삶과 배움에 기초를 둔 소설적인 요소가 강한 내용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신앙 안에서 역사적인 사실의 기록인 성경과 저자가 거기에 버무려 넣은 소설적인 요소들이 섞이면서 신앙의 울타리가 무시당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도 신앙적인 가치가 우선시 되기보다는 한 사람의 여인으로서의 그들의 삶에 촛점이 맞추어진 연고일겁니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고통을 당하면서도 성경속의 여인들이 그러한 고통과 위험들을 때로는 강인한 정신으로, 때로는 지혜로, 그리고 때로는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통해서 극복해가는 긍정적인 모습을 깨닫게 된 것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성경을 되짚어보면서 가지게 될 가치있는 유산이 될거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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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미술관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1
파올라 라펠리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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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의 화가. 인상파와 일본 우키요에의 영향으로 강렬한 색채와 격렬한 필치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작풍을 확립하였다. 작품에 《빈센트의 방》《별이 빛나는 밤》《밤의 카페》등이 있다.
국적 네덜란드
활동분야 예술
출생지 네덜란드 프로트 준데르트
주요작품 《감자 먹는 사람들》(1885) 《아를의 도개교》《해바라기》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인물검색에서 소개된 내용과 <해바라기> 그림입니다. 

 태양의 화가, 영혼의 화가로 불리는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듯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위의 <해바라기>나 그의 귀를 자른 후의 <자화상>, 이 책의 표지에 있는 회색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또는 <별이 빛나는 밤> 등의 작품으로 그를 기억하기도 할 것이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은 자신의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그러면서도 그림에 대한 정열을 일생에 걸쳐 쏟아부었던 기인으로서의 그를 생각하기도 할 것입니다. 나의 고흐에 대한 지식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듯 합니다. 옛날 미술시간에 처음 대했던 이글거리는 해바라기 그림을 통해서 기억되었던 화가, 자신의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을 전전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총으로 자살을 해버린 화가.......그리고 이러한 평탄하지 않은 그의 삶의 이력이 다른 많은 이들에게 그런 것처럼, 그림에서 뿐만아니라 인간적으로도 항상 내 마음의 한 구석을 붙들어 놓는 힘을 발휘하는 듯 합니다. 

 이 책은 <반 고흐 미술관>에 대한 소개서 또는 안내서 쯤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을 통해서 그의 평생에 걸친 그림에 대한 열정과 삶의 변화, 사람들과의 관계,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단편적인 전기라고 할 수도 있겠고,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면 미술관의 소장작품들을 그의 삶과 연관시켜 소개한 친절한 안내서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현재의 <반 고흐 미술관>이 설립되기까지의 간단한 소개도 있고,미술관 안내라는 페이지도 있지만 내용의 대부분은 미술관에 소장된 고흐의 작품들에 대한 소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881년 초의 <씨 뿌리는 사람(밀레 모작)>에서 시작하여 1990년 7월 그가 자살하기 직전에 완성했을 <까마귀가 나는 밀밭>까지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의 훌륭한 작품들을 보며 또한 그의 정열적이었던 삶을 들여다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타오르는 듯한 이미지의 해바라기나 나무들,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이는 듯한 선들로 표현되는 다양한 풍경이나 사물, 인물들. 그림에 대해서 문외한이지만 그의 그림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강렬한 인상들은 이러한 표현방식에 의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표현 방식은 단지 그림을 그리는 기교가 아니라 고흐라는 화가의 삶자체가 배어있고, 평생에 걸친 땀방울과 희노애락이 담긴, 그만의 세상을 표현하고 사물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음을 새삼스럽게 이 책에 소개된 그의 작품들과 삶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내가 간단히 바라보는 작품하나가 그에게는 삶의 의미였고 절망의 표현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또한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던 그의 삶과 작품들을 통해서 막연하게 그의 삶에 대한 관심만을 가졌던 내게, 그에 대한 좀더 깊은 이해와 그의 작품을 보는 눈을 조금이나마 향상시킬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소개된 것들이 어떠한 작품들인지 가늠하는 눈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내게는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이제는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에서 빠져 있는 그의 대표작이 실린 책들과 그의 정열적이었던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글들을 찾아나서는 즐거운(?)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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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고대왕조실록 - 고대사, 감춰진 역사의 놀라운 풍경들
황근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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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고대의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기술한 것이 아니라 유머러스하게 재구성했다. 때문에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가벼운 책으로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고대 역사의 진실을 생생하게 복원하고자 노력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베일에 싸인 고대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다면 글 쓴 사람으로서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가벼운 책', 저자는 나같은 사람을 염두에 두고 저자후기에 위의 글처럼 썼을 것입니다. 처음 읽기를 시작하면서 먼저 생각한 것이 바로 '역사를 너무 가볍게 다룬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었으니까요. 물론 저자가 생각한 것보다 더 엽기적인 상황과 장면들 속에서 탄생한 역사적 사실들도 분명 있으리라는 생각을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 상황을 너무 희화화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다고 내가 우리역사에 대한 특별한 식견이나 지식을 갖춘것은 아닙니다. 내가 배웠던 교과서적인 역사나 웅장하고 기백이 넘치기를 바라는, 내가 바라는 우리 역사의 모습과는 완연히 다른 접근방식에 대한 뜻모를 거부감 비슷한 것이었다고 하는 것이 바른 고백일 듯 합니다. 하지만 읽어가면서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마냥 가볍고 웃기게만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 자신의 확고한 역사관이 바탕이 된 것 위에, 역사라는 이미지가 주는 딱딱함을 피하기 위해 과도한 상상력이 가미된 유머를 사용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는 역사를 대하는 저자의 자세가 진지함을 넘어서 비장하다고까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신라의 외교를 두고 무조건 굴욕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실은 사실대로 볼 필요가 있다. 당시 통일신라의 위치가 중국의 한 군현과 같은 입장으로 전락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때부터 무려 1300년 동안 한반도의 여러 나라는 한 번도 중국과 대등한 관계에 있어본 적이 없다. 중국과 대등한 위치에 있던 고구려가 신라와 백제를 통일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우리나라의 국경선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중국과 우리의 외교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하지만 삼국을 통일한 것은 신라고, 한번 흘러간 강물에는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 -p136- 

 저자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기타 중국의 자료를 통해서 겨우 접할 수 있는 삼국시대를 비롯한 우리 고대국가의 형성과 왕권 확립, 고대국가간의 관계, 사회문화와 풍습, 기술과 제도 등에 대한 내용들 중에 추려낸 이야기들에 정말로 기발한 작가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서 현대적인 이야기의 살을 입혀 내놓습니다. 고대 역사책 속의 기록이 아닌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 속의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들처럼, 유행에 뒤떨어진 흙냄새나 곰팡이 냄새 나는 고리타분함을 벗어버린 살아있는 이야기로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그래서 우선은 재미있고, 그 다음은 역사와 현실이 조금 헷갈리는데, 그 상상력 가득한 입담이 실린 이야기 뒤에 붙은 작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리와 해석을 통해 기록된 역사의 실체와 의미를 이해하게 인도해 줍니다. 아마도 각 이야기 뒤에 붙인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지한 기록과 해석은 저자도 역사적 사실들이 한낱 웃음으로 허공에 흩어지지 않고, 웃음으로 친근해진 역사가 읽는 이들의 머릿속에 역사적인 사실과 의미로 남기를 바래서라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읽으면서 그리 정리된 내용들이 저자가 제시한 역사의 사실들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니까요.

 열심히 연대를 외우고, 왕의 업적을 외우고, 사회 문화적 특징을 외우던 딱딱하고 하품 나오던 국사시간, 그리고 두툼하고 깨알같은 글씨가 가득했던 대학시절의 한국사 책, 한국사에 대한 것을 생각할 때면 제일 먼저 떠 오르곤 하는 기억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역사를 박제된 역사라고, 죽어 넘어진 역사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이 말하는 역사는 너무도 생생하게 곁에 튀어나와서 희희덕거리고 있어서 생동감은 있지만 역사라는 의식을 흐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역사적인 사실들을 이리도 흥미롭고 재미있게 접근하고 이해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찬사를 받을만 합니다.  하지만 그런 찬사속에 묻혀 이리 가볍고 친근함만으로 끝나는 우리역사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리 시작된 재미있는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친근한 접근이 조금은 딱딱하고 두툼한 한국사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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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하나님 데이비드 웰스 4부작 시리즈
데이비드 웰스 지음, 윤석인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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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겠다고 하는 말에 감동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시험을 받을 때 우리가 하는 행동에 감동을 받으십니다. '말'이 앞서던 생활에서 돌이켜 이제 '행동'하십시오.

 하나님께로 돌이킴이라는 커다란 주제하에 씌여진 저자의 글들은 짧지만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읽는 이를 권면하는 편지글(?) 형식으로 씌여진 내용 -저자가 직접 편지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각 글의 첫머리에 그려진 봉투 그림으로 인해 추측한 것입니다 -을 따라가다보면 하나님께로 돌이킨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하나씩 배울 수가 있습니다. 저자가 들려주는 하나님께로 돌이킨다는 것의 의미는 우선 마음을 정하여 결단하고, 그분의 길을 인내하며 경주하기를 마다하지 아니하고, 그분이 주실 것들을 기대하며 나는 멈추지 않겠습니다 라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항상 선하시고 우리의 반석되시며 변함이 없으신 분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나는 믿음을 지키겠습니다 라는 결심과 함께 그 길을 계속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의 바탕위에서 생활할 때 겪게 되는 시험속에서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시험과 거부로 인한 상처들을 용서하고 오히려 신앙의 걸림이 되는 이들조차도 사랑으로 감싸겠다는, 나는 모든 어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하겠습니다 라고 결심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로 돌이킨다는 의미는 외로울 때도, 좌절할 때도, 낙담할 때도, 오해를 받을 때도, 광야에서도 꿋꿋하게 그분의 때를 기다리며 순종하고 섬기며, 하나님께로 마음을 정하고 전심을 다하는 것이고, 모든 일에 절제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의 계획을 치우고 균형을 유지하는 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하고, 내 안에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있음을 신뢰하고 좁고 험한 길이라도 기꺼이 나아가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하는 원대한 비젼과 비범한 목적을 가지고 담대히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리 다양하게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하나님께로 돌이킨다는 것의 의미는 결국은 내 삶속에서 그분의 능력을 인정한다는 것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많은 권면의 글 속에 담긴 내용은 하나님은 나의 편이고 나를 위해서 일하시므로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의 근거가 되는 것이고, 위협하는 자보다 더 크시고, 나의 연약함을 대신하실 강함을 지니셨고, 부끄러운 죄를 눈과 같이 희게 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며, 매번 실족하여 넘어지더라도 다시 돌이키는 자의 손을 잡아주시는 변함없으신 분이라는 믿음은, 하나님이 천지의 창조주임을 인정하고 범사에 그분의 능력을 기꺼이 인정하는 자세가  바탕에 깔려 있음을 저자는 자신의 글들을 통해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수많은 크고 작은 일탈과 돌아옴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신실함이 어느샌가 교만함의 다른 표현이 되고, 일탈이 또 어느샌가 영혼의 몸부림이 되어 신실함으로 돌이키는 채찍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앙의 궤적이 쌓여가는 것이 신앙의 성숙으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더디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이 열매를 맺을 수 있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결국 마음의 첫자리를 하나님의 자리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자세의 문제로 귀결될 듯 합니다. 아무리 선하게 살더라도 이런 자세가 없다면 다른 모든 것은 허수아비처럼 신앙에서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할테니까요. 그래서 하나님께로 돌이킨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내려보는 결론은 내 삶의 첫자리에 하나님을 모시겠습니다는 고백이 앞서고 그 후에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며 사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진정으로 하나님께로 돌이킨 이의 모습일 겝니다.... '매일 크고 작은 실패를 겪지만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러한 삶을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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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함께 가는 부자청년 - 21세기 크리스천 자기계발시리즈 1
조성의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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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로되,  '네가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의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근심하여 가니라 (막10:21-22)

 근심하여 가는 청년의 뒷모습을 보며 예수님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마가복음의 바로 뒷단락에는 '약대가 바늘 귀로 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하시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하며 놀라는 제자들에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대답하시고, 다시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리나.'고 말씀하십니다.

 '돈과 믿음', 물질과 신앙과의 문제는 크리스챤이라고 한다면 한번쯤은 고민하고 또한 깊은 갈등을 겪기도 했을 문제입니다. 그런 갈등과 고민의 반영이 청빈론과 청부론에 대한 여러 주장들로 격렬하게 진행되었고, 또한 현재 진행중이기도 하구요. 앞에서 이야기된 성경의 본문은 아마도 청빈론의 근거로 더 많이 사용될 듯 합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이 더 쉽다'는 부분만 떡하니 떼어 내어서 되뇌인다면 다른 어떤 청부론적인 주장들이라도 공허하게 들릴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여러 성경의 본문을 이리 단편적으로 떼어낸다면 청부론의 근거로 사용할 수 있는 말씀들이 또한 무수히 많습니다. 아마도 이 두 주장들 사이에 존재하는 논쟁과 혼란은 "부"라는 부분에 촛점을 맞추고 진행된데서 오는 듯 합니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돈'이란 그 자체만으로는 선도 악도 아니고, 그것을 다루는 사람이 어떤 자세로  대하고,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관점이 성경적일 듯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청빈이나 청부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경의 말씀을 삶속에서 소유하고 사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결핍의 사고와 풍요의 사고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합니다. 즉 자신을 의지하느냐,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믿고 의지하느냐의 순종과 믿음의 관점에서의 접근법입니다.

 '내 창고나 내 품안에 쌓아 놓지 않고, 내손에서 사라지면 없어져 버린다.'는 지극히 당연하게 보이는 사고 방식을 저자는 결핍의 사고라고 부르고, 이는 크리스챤이라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신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신의 힘으로 세상에서의 삶을 빗어내려는 불신앙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하나님의 풍요로움을 누리는 삶을 살도록 권유하는데 그 근저에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의 자녀된 이들이라는 상속자로서의 크리스챤의 신분에 대한 자각이 있습니다. 저자는 그러한 풍요로운 삶의 방법이란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 한 줌의 씨를 뿌려 열매를 얻듯 움켜진 손을 펴서 베푸는 삶을 사는 것, 하나님께 받을 것을 기대하며 살며, 씨를 뿌리되 많이 뿌리는 것 등 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말씀에 대한 순종, 신뢰와 믿음 등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는 청빈이나 부가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듯이 소유의 많고 적음 자체가 기독적인가의 판단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그보다는 자신의 소유가 얼마나 깨끗한가, 그리고 자신의 소유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끊임없이 자각하고 그 뜻을 행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기독교적인 삶이라는 태도와 일맥상통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것들로 파고 들어가면 저자가 말한대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삶이, 죄를 사함받고 천지를 창조하신 부요하신 하나님의 상속자된 자로서의 크리스챤의 위상을 자각하는 삶이 진정으로 부자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한 자각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위해서 내 것을 포기할 줄 알고, 하나님의 몫을 하나님께 감사히 드릴 줄도 알고, 그가 주실 것을 묵묵히 기대하며 살아가는 그러한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논쟁의 대부분이 결국은 마음의 첫자리를 누가 또는 무엇이 차지하고 있느냐는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 대한 것으로 귀결되는 듯 합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로서는 할 수 있다는 바늘귀를 통과하는 부자도 그 마음의 첫자리에 하나님이 항상 계셔 인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믿음의 조상들, 즉 아브라함이 그랬고, 이삭과 야곱이 그랬고, 요셉이 그랬고, 욥이 그랬고, 다윗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먼저 배웠고, 묵묵히 기다릴 줄 알았고 감사할 줄 알았던 하나님을 마음에 소유한 진정한 부자의 삶을 살았고, 그러한 가운데 풍요로운 하나님의 물질이 주어진 삶을 누렸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생각하고, 하나님 안에서 노력하고, 하나님 안에서 땀 흘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내 인생의 전부였다'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고백할 수 있었던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의 모습이 바로 바늘귀를 통과한 낙타가 아닐까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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