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허물 하나

터진 껍질처럼 나무에 붙어 있다.

여름 신록 싱그런 혀들 사방에서 날아와

몸 못 견디게 간질일 때

누군들 터지고 싶지 않았을까?

허물 벗는 꿈 꾸지 않았을까?

허물 벗기 직전 매미의 몸

어떤 혀, 어떤 살아있다는 간절한 느낌이

못 견디게 간질였을까?

이윽고 몸 안과 밖 가르던 막 찢어지고

드디어 허공 속으로 탈각

간지럼 제대로 탔는가는

집이나 직장 혹은 주점 옷걸이 어디엔가

걸려 있는 제 허물 있는가 살펴보면 알 수 있으리.

한 차례 온몸으로

대허하고 소통했다는 감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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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08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허물말고 보이지 않는 허물이나 벗고 싶네요. 퍼가요.

달팽이 2006-03-08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허하고 싶군요.
 

아 이 빈자리!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누구'가

의자 하나 달랑 남기고 사라지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그 '누구'와 무척 가깝지 않았어요? 물을 때

느낌만 철렁 남는 자리.

목구멍에 잠시나마 머물게 할 무엇이 나타나지 않는....

나름대로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공터만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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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3-07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얘길쎄...

달팽이 2006-03-07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으~
철렁거리는 느낌, 느껴져요..
 

  학교로 올라오는 길

나는 앞에서 천천히 가며 길을 막아서는 택트 한 대를 발견한다.

그러면서 속도를 천천히 줄인다.

시선을 고정시키며 자세히 쳐다본다.

우리학교 학생 하나가 아버지의 허리춤을 꼭 붙잡고서 등교하는 중이다.

아버지는 아이의 등교길이 가팔라서 힘들까봐 손수 택트를 몰고 아이를 등교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 넓지 않은 길에 보도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가파른 길을 등교시키는 아버지의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일까?

문득 저 작고 왜소한 아버지의 등짝이 따뜻해보인다.

허리춤을 꽉 잡고 커브를 돌아 가파른 교문을 향해 숨가쁘게 굉음을 내며 오르는 50cc짜리 택트,

그 위에 올라앉은 두 부자의 다정한 모습이 눈에 가득 찬다.

저 아이는 참 행복한 하루를 맞겠군...

아니 적어도 바라보는 나는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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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고 지는 바람따라 청매꽃잎이

눈처럼 내리다 말다 했다.

바람이 바뀌면

돌들이 드러나 생각에 잠겨 있는

흙담으로 쏠리기도 했다.

'꽃 지는 소리가 왜 이리 고요하지?'

꽃잎을 어깨로 맞고 있던 불타의 말에 예수가 답했다.

'고요도 소리의 집합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는가?

꽃이 울며 지기를 바라시는가,

왁자지껄 웃으며 지길 바라시는가?'

'노래하며 질 수도....'

'그렇지 않아도 막 노래하고 있는 참인데.'

말없이 귀 기울이던 불타가 중얼거렸다.

'음, 후렴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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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03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요~

달팽이 2006-03-03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

파란여우 2006-03-04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도 가니까 동백꽃이 툭툭 집디다.
가슴속의 눈물도 따라서 툭툭 떨어지던데...
여기서는 왜 소리가 안난다하는지...
삶은 심오하고
꽃도 심오하구려...

달팽이 2006-03-04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의 마음에 툭툭 지는 눈물이 있어
동백꽃이 툭툭 졌나봅니다.
혹시 세상도 툭툭 흩어지고 떨어지지는 않는지..
 
 전출처 : 파란여우 > 유배지의 수선화



 

 

 

 

 



一點冬心朶朶圓 일점동심타타원
品於幽澹冷儁邊 품어유담냉준변

梅高猶未離庭砌 매고유미이정체
淸水眞看解脫仙 청수진간해탈선

한 점의 겨울마음 송이송이 둥글다

성품은 그윽하고 담박하여 차갑고 우뚝 솟았네

매화가 높다지만 뜨락을 못 떠났는데

맑은 물 해탈한 신선을 진실로 보노라

 

남제주군 대정읍 안성리 1661-1번지에 추사 적거지가 있다. 제주시 95번 도로를 타고 마라도 방면으로 가다가 멀리 산방산이 덩어리째 보이면 오른쪽 안내표지를 따라 작은 마을 입구에 추사의 수선화가 피어있다. 금석학자, 서예가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조선 헌종 6년(1840년)에 윤상도의 옥사와 관련하여 제주도에 유배되어 헌종 14년(1848년)에 풀려나기까지 9년간 거주했던 곳이다.


추사적거지에 도착하니 비바람이 더욱 거칠어졌다. 그 악명 높은 제주도의 바람 속에 유배지의 수선화를 보러 달려 온 길. 집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먼 거리다. 비바람 속에 수선화는 피었을까. 유배지의 수선화.

 



 

 

 

 

 

 

 

 

 

 

 

 

 

 

 

 



수선화는 현무암 돌담아래 일렬로 피었다. 흰꽃 잎 사이에 노란 꽃술이 도톰하게 돋을새김모양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그 한점을 일컬어 <겨울마음>이라 표현한 추사의 마음은 겨울을 이겨내야 한다는 <세한도>의 뜻과 맞닿아 있다. 전날 롯데호텔 정원의 잘 다듬어진 매화나무 군락지에서 이제 막 꽃잎을 열기 시작하는 그것을 보고 적잖은 실망을 했다. 매화가 꽃의 으뜸이라면 그 나머지는 꽃도 아니라는 매화사상을 품고 있던 나에게 특급호텔의 반듯한 구획지처럼 사람의 손으로 줄 맞추어 피어나는 매화꽃을 보자니 자꾸만 플라스틱 인조꽃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무엇이든지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물질이 지닌 본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인가. 타의에 의해 꽃잎을 피우는 매화가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만 거기에는 매화의 고품(高品)은 온데간데 없고 껍데기만 남긴 절체곤충의 조각난 박피같은 뻣뻣한 인위만 남아 있었다.


이제 수선화는 소박한 것으로부터 고품을 보여주고 있다. 유담(幽澹)이란 요란하고 화려한 것을 멀리하고 은은하고 그윽한 성품을 말한다. 나로부터 외면당한 롯데호텔 정원의 매화꽃은 덧없고 교언영색으로 치장한 무식한 정원 구석에서 졸렬한 자태를 쓸쓸히 보여 줄뿐이다. 꽃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마음은 꽃으로 치유한다. 수선화를 보러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먼 거리를 찾아온 마음이란 무엇인가? 추사는 말한다. 그것은 ‘해탈선(解脫仙)’이라고.

 

해탈한 신선이라.... 추사의 굽힐 줄 모르는 콧대높은 자존심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자신의 학문과 총명함을 부정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추사의 자신감은 그를 오만방자함으로 이끌었다. 지나친 자신감의 이면에 있는 당당함의 경계를 넘는 교만이다. 그에게 겸양의 미덕을 요구하는 일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완고하고 거만했던 추사에게 9년간의 유배는 ‘인간으로서 나아가는 길’을 가르쳐준다. 학문적 성취를 지적 능력으로만 삼았던 그에게 수선화는 말한다.


品於幽澹冷儁邊 품어유담냉준변.


홀연히 추위를 견디며 그윽한 성품을 잃지 않는 수선화. 유배지의 수선화가 추사에게 가르쳐 준 것은 홀연히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었을까. 여행객은 자꾸만 수선화 여린 꽃망울을 손으로 만져본다. 손가락에 묻어나는 수선화 향기는 있을 듯 없을 듯하다.


천재의 안테나에 주파수가 잡힌 수선화는 그에게 <세한도>의 진리를 깨우쳐주는 길로 안내했다. 날이 추워도 잣나무, 소나무처럼 푸르리라. 사실, 세한도처럼 사는 삶은 고단하다. 누군들 안락한 호텔방의 달콤한 꿈을 원하지 않던가. 하지만 인생이란 얄궂어서 종종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춥다. 으스스한 몸을 추스르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세상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툰드라기후대가 넓게 분포되어 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고, 어제까지 사랑을 나누었던 연인과 오늘 헤어진다. 삶이란 매양 변덕꾸러기다.

 
그러니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먹지 않으면 누가 나를 지켜줄 것인가.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사랑'이다. 험난하고 궂은 세상. 누가 나만큼 나를 사랑해주겠는가. 나는 스스로 일어나야하고 스스로 꽃을 피워야 한다. 100% 자의에 올인한 삶. 타자적인 것으로부터 자아로 돌아오는 것. 유배지의 수선화는 그러므로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한다.

 

<세한도>의 쓸쓸함은 거기에 사람의 자취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상처를 입었으니 사람을 배제한 것일까. 유배지에서 의문은 비안개처럼 계속 일어선다. 그래서 그 후 추사는 대정읍의 신선이 되었을까. 수선화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한 시대를 뛰어넘어 한 획을 긋고 사라져간 사람들. 그들의 숨결을 비바람 속에 수선화는 담고 있는지 자꾸만 바람결에 몸을 눕히지 않으려 서로 기댄다. 

 

유배지의 수선화를 보러 먼 길을 달려갔다.

제주도를 찾아간 이유가 순전히 추사의 수선화를 보러가기 위함이었다면 추사 선생은 후대의 철없는 여행객을 귀여워해주실까. 우산을 쓰고 쪼그려 앉아 수선화를 만지며 주책맞게 눈물이 흐른다. 애꿎은 바람 탓이라고 돌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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