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만나거든 - 현실과 씨름하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야고보의 지혜
박대영 지음 / 두란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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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는 '이미 받은 구원'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원' 사이에 엄연한 긴장이 있는 자리이며, 씨를 심을 수도 열매를 맺을 수도 없는 불임의 자리이다. 놀라운 사랑과 능력으로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얼마든지 의심하거나 마음이 요동할 수 있는 조건이며, 순쉬운 풍요와 쾌락의 제안에 손을 내밀 수 있는 조건이다. 이미 죽음의 자리일 뿐 아니라 믿음을 잃고 영원한 죽음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이 엄연한 자리이다. 동시에 광야는 가장 적나라하게 나 자신과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은혜의 자리이다"(17).

밑줄을 열심히 그으면서 읽다가 밑줄 긋기를 포기한 책입니다. 인상적인 구절, 새로운 가르침을 주는 구절, 뜨거운 도전을 주는 구절, 깊은 통찰이 무지를 깨우는 구절 등을 만날 때마다 밑줄을 긋다가는 책 전체에 밑줄을 그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한 번 정독한 책은 두 번 읽는 읽는 일이 별로 없는데 박대영 목사님의 야고보서 강해집인 <시험을 만나거든>은 야고보서를 공부하며 여러 번 읽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야고보서>라고 하면, 신약의 지혜서이며,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강조하는 서신서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시험을 만나거든>은 우리의 그러한 앎이 얼마나 피상적인 정보인지를 통렬하게 일깨웁니다. <시험을 만나거든>은 <야고보서>가 신약의 지혜서이기는 지혜서인데 그 지혜는 광야를 지나는 순례자들에게 필요한 지혜임을 읽어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 실존의 자리가 곧 광야라는 것, 광야의 길에서 만나는 시험은 우리로 진정한 생명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 그래서 광야를 지나는 순례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지혜'라는 것, 그리고 이 지혜가 곧 '믿음'이라는 것을 깊은 통찰력으로 풀어냅니다.

<야고보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견인해 가는 모티브는 '시험'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과 상관 없이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잘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에게 고통과 불편과 역경을 가져다주는 광야를 '악'으로 보고, 광야를 빨리 통과하기만을 바랍니다. 그러나 이 책은 광야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믿음 안에서 교정되어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이 광야야말로 철저히 나밖에 모르는 사람을 철저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가시는,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형제 야고보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는 말로 흩어져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한 이유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하나 더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가난, 질병, 곤고와 같은 빈곤과 실패가 곧 광야(시험)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의 신앙을 뒤흔드는 시험은 번영과 성공의 형태일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부한 것, 평탄한 것, 건강한 것이 더 큰 시험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이 시험들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이것이 우리에게 독이 될 수도 있고, 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지혜와 믿음은 바로 그 시험을 다루는 방식을 말합니다.



야고보가 먼저 제시하는 시험이 물리적인 고난이 아니라 돈과 말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말과 돈, 이 두 가지는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을 대체하려는 인간이 하나님 대신 선택해 온 '힘'의 도구이다(60-61).

<시험을 만나거든>은 <야고보서>에서 시험의 두 예로 제시되는 돈(부)과 혀(말)가 어떻게 지혜를 구하는 기도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이것이 왜 '길이 참는 것'과 '원망하지 않는 것'으로 연결되는지, 그리고 '맹세하지 않는 것'과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줍니다. 성경이 담고 있는 진리와 통찰이 얼마나 깊고 깊은 것인지를 깨달을수록 놀라고 또 놀랄 뿐입니다.

<시험을 만나거든>을 읽으며, 가장 크게 도전을 받은 부분은 '의인의 기도'입니다. "비 오기를 구하기는 쉬워도 비가 오지 않기를 구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악한 세대, 죄가 관영한 시대가 하나님을 깨닫고 돌아오기 위해서라면 가뭄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의인의 기도이고 믿음의 기도이다"(379).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기도가 이 의인의 기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 내 욕심, 내 욕구, 내 유익만 챙기려할 뿐, 하나님과 소통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빚어져갈 갈망도 없고, 하나님을 떠난 세상의 깨어짐과 차별과 혼돈에 대한 탄식도 없다면, 그것은 엄밀히 말해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이 일을 이루시려고 하나님은 아주 놀라운 일을 작정하셨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예수님의 겸손한 행위를 통해 우리의 교만을 탕감해 주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인간힘을 다할 때 하나님은 인간이 되기로 하셨다. 우리가 위로 올라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아래로 내려오기로 하셨다. 우리가 모든 한계를 대적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가장 중한 한계를 택하셨다. 우리가 자아실현을 위해 싸울 때 하나님은 자기의생을 택하셨다. 우리가 목숨을 건지려고 달아날 때 하나님은 죽음을 택하셨다(306).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 사이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상황을 만나든 하나님의 선하심과 통치하심을 믿고 '오늘'을 신실하게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자들임을 다시 기억해봅니다. 광야를 걷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소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나뉨 없는 정결한 마음으로 새로운 가치를 천명하는 일이며, 타협하지 않고 맞서는 것이며,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는 것이며, 절망하지 않고 소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웁니다.

<시험을 만나거든>은 그리스도인들을 불편하게 하는 책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아니라, 값싼 구원 안에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자들에게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게 만들어주는 책입니다. 여전히 땅의 지혜, 귀신의 지혜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사람인지, 아니면 위로 난 지혜, 하늘의 지혜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사람인지, 그 소속을 분명히 밝혀주는 책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일깨우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진리에, 자신의 전 존재를 건 실존적인 모험을 하도록 도전을 주는 책입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결신의 순간이 구원의 결승선이 아니라 출발선이며, 구원은 과정이며, 경주이며, 전투라는 것을 새롭게 일꺠워줍니다. 그리고 광야 같은 우리의 실존 속에 교회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도 뜨겁게 깨닫게 해줍니다. 이 세상이 주는 것보다, 하늘의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들이 더 값지고, 더 귀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모든 교회가 <야고보서>를 다시 읽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시험을 만나거든>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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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영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게리 토마스의 일상영성 1
게리 토마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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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행복보다 큰 것이 딱 하나 있으니 바로 거룩함이다"(474).

이 책은 기적은 원하지만, '거룩'에는 실패하고 있는 교회들을 깨우는 책입니다. 우리는 '거룩'이라고 하면, 저 높은 곳에 위치하여 우리가 감히 닿을 수 없는 초월적인 무엇이라고 생각하거나, 현대의 사회적 환경에서는 온전한 실천이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생각하여 아예 포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경건훈련이나 영성훈련이라고 하면, 오락과 미디어를 멀리하는 '금기'나 기도 몇 시간, 성경 읽기 몇 시간과 같이 '자기계발식'의 훈련을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영성생활의 본질은 아니라는 점을 쉽게 간과해버리고 맙니다.

이 책이 말하는 일상의 영성, 뿌리 깊은 영성의 초점은 거룩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아가는 생활에 있습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경건의 경지에 이른 '나'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부터 영성 생활이 시작됨을 놓치지 말아야겠습니다. 게리 토마스는 이것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기독교 영성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다. … 성취하는 사람은 자신을 주목하게 하지만, 받는 사람은 남들로 하여금 주시는 그분을 인정하게 한다"(27).

게리 토마스는 이러한 영성 훈련의 지혜를 기독교 고전에서 찾습니다. 먼저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 것 중에 하나가 영성 훈련의 기초는 주권적 체험이 아니라, 객관적 진리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많은 성도가 자기의 영적 상태는 '기분'으로 판단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뜨겁거나 기쁨이 넘치면 영적으로 깨어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이 메마르거나 흥분(?)이 사라지면 신앙이 떨어지고 있다고 느끼기 쉬운데, 게리 토마스는 "세상에 개인의 영적 체험만큼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것은 없을 것이다"(28)라고 경고합니다.

<뿌리 깊은 영성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가짜 거룩함을 경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기독교 영성은 내 유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라는 것, 참된 거룩함은 겸손으로 나타나는 것, 영적 성숙의 열매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뿐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맺혀진다는 사실을 강하게 일깨워줍니다.

"우리가 죄를 그치는 것은 훈련 때문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121).

가장 마음에 깊이 새겨진 가르침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우리의 욕구가 달라지면 거기서 거룩함이 싹튼다는 영적 원리입니다. 게리 토마스는 성경과 고전이 말하는 거룩함이란, 열정의 대상이 바뀜으로써 순전한 덕이 싹트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한마디로, 영성 훈련이란 영적 입맛을 바꾸는 훈련이라는 것입니다.

"은혜의 반대는 공로이지 노력이 아니다"(451).

<뿌리 깊은 영성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거룩한 삶을 갈망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유익을 주는 지혜로운 생활 지침들을 일러주기도 합니다. 고전에서 건져올린 지혜이지만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해 보이는 몇 가지 생활 원리를 정리하면 이런 것들입니다. 유혹이 가장 거센 시간에 자고 영적 기능이 가장 민감한 시간에 일어나는 게 가장 좋다는 것, 지루함을 질색하는 문화적 배경에서 우상 숭배가 무르익는다는 것, 고요한 생활에 힘쓰지 않고 삶을 과도한 소음과 분주함으로 가득 채우면 하나님의 음성이 뚫고 들어올 수 없다는 것, 하나님은 우리가 일개 병사가 아니라 전체 군대로서 죄와 싸우기를 원하신다는 것(우리는 군대로 부름받았음을 기억) 등이 그것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교회 안에 탁월한 사람은 많은데, 거룩한 사람은 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어느 새 거룩한 삶을 살려는 갈망을 잃어버린 세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이 책은 참된 기독교는 참된 변화를 낳는다는 사실을 매섭게 일깨웁니다. [바울은 은혜에 털끝만큼이라도 무엇을 더하는 사람을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은혜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마다 이런 내용의 말을 덧붙이지 않은 적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더는 전과 같이 살지 않는다."](96).

이 책은 '경건한 나'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는 책입니다. 책을 덮을 때, "참으로 담대한 마음으로 내게 가까이 올 자가 누구냐"(렘 30:21)라는 말씀이 주는 뜨거운 도전이 영혼에 새겨지는 듯 했습니다. 진부해보이는 주제이지만,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가르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무엇보다 사소해 보이는 모든 '일상'을 기독교 영성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책의 가르침대로 서서히, 꾸준히, 그리고 겸손히 자라가기를 기도하며, 지금은 회개해야 할 때임을 긴박하게 느끼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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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 사랑의 여러 빛깔, 개정판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바실리 악쇼노프 외 지음, 이문열 엮음, 장경렬 외 옮김 / 무블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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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여러 빛깔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여러 형태로 우리 삶에 기능한다. 높게는 우리 영혼을 천상과 초월로 인도하고 낮게는 타락과 파멸로 이끈다. 삶에 눈뜨게 하고, 열정과 야망을 불 지피며, 분노와 질투로 미치게 하고 때로는 자기부정에까지 이르게 한다. 다른 가치에 패배하기도 하고 하지만 또한 다른 가치를 짓밟기도 하고, 더러는 자기희생으로 결합하여 더욱 높은 단계로 승화하기도 한다"(451).

<사랑의 여러 빛깔>은 주제별로 세계 각국의 단편들을 정리한 <이문열 세계문학산책> 중 '사랑'을 주제로 한 단편 선집입니다.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속에 다양하면서도 잘 정리된 전범(典範)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 아래 기획되었고, 1996년 초판되었다가 2020년 개정판이 다시 나왔습니다. 그중 <사랑의 여러 빛깔>에 수록된 11편의 작품들은 "문학의 프리즘을 통해 드러나는 사랑의 여러 빛깔"(22)을 보여주는데, 젊은 시절의 이문열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던 세계 각국의 거장들의 작품들이라는 점에서도 저에게는 흥미를 가질 만한 단편 선집이었습니다.

알퐁스 도데의 <별>을 제외하면 처음 접해보는 작품들이었는데, <사랑의 여러 빛깔>을 읽으며 사랑은 하나의 감정,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될 수 없음을 다시 깨닫습니다. <사랑의 여러 빛깔>을 통해 사랑이라는 것은 본디 하나의 얼굴이 아니라는 것, 하나의 빛깔로 보여지는 사랑도 사실은 그 안에 전혀 상반되는 속성을 품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순수의 절정 같은 어떤 사랑은 너무나 순수하다고 할 수 있는 그 무엇 때문에 도리어 어리석어 보이고(달로 가는 도중에), 애달프고 처철한 어떤 사랑은 상대방이 가학적일수록 그 빛깔이 더 숭고해보이고(슌킨 이야기), "가벼운 살갗의 스침조차 없는" 어떤 사랑은 관념성으로 금기를 초월해 거룩함에 이르며(르네), 이루지 못한 사랑이지만 그 고독한 낙인으로 세상의 한 살이를 견디었기에 그 사랑이 형벌이었는지 축복이었는지 알 수 없으며(임멘 호수),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재진행형인 사랑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었기에 한 사랑이 끝났을 때 끊임없이 사랑의 대상을 바꾸었던 사랑스러운 여인의 삶은 기구하다 할 수 없었으며(사랑스러운 여인), 쉽고 가벼운 천박한 사랑에 맞서는 한 여인의 지조는 너무 견고해서 전율과 소름 사이를 오가고(에밀리를 위한 장미), 사랑에 눈 뜰 때 우리의 눈은 멀며(환상을 좇는 여인), 사랑을 꿈꾸지만 깨어나야 하며(별), 사랑은 달콤할수록 잔인하며(라이젠보그 남작의 운명), 나를 구원한 그 사랑만이 나를 배신할 수 있으며(바니나 바니니), 영원한 맹세는 잊히기 쉽니다(잊힌 결혼식).

우리가 그처럼 사랑에 속기 쉬운 것은 사랑의 이중성, 사랑의 양면성 때문인 듯합니다. 순수는 어리석음과 함께하고, 가학이 있어야 숭고함이 존재하고, 금기는 거룩과 붙어 다니고, 사랑은 형벌이면서 동시에 축복이고, 이별이 있어야 만남이 있으며, 황홀한 전율은 언제든 소름(공포)으로 바뀔 수 있으며, 사랑에 눈을 뜰 때 사랑은 우리 눈을 멀게 하고, 사랑은 꿈과 현실, 달콤함과 잔인함, 구원과 배신, 영원한 맹세와 잊혀짐 속에 동시에 존재합니다. 사랑은 이렇듯 기만적이니 조심해야겠습니다.

누군가는 사랑에 풍덩 빠져 들었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서서히 물들어갔다고도 했으며, 어떤 이는 교통사고를 당한듯 쿵-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고 했습니다. 사실 사랑을 귀로 전해 듣기만 했지 빠져 들어보지도, 물들어 보지도, 쿵-하고 사고를 당해보지도 않은 저에게는 여전히 이상 속의 그 무엇이면서 동시에 환멸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평생 이렇게 사랑을 책으로만 배우고 있는 건, 현실에서 경험되는 사랑의 빛깔이 너무 천박한 탓이라고 변명을 해보고 싶습니다. 사랑이 이처럼 다채로운 빛깔인 것은, 타락으로 사랑의 원형을 잃어버린 우리의 계속되는 시행착오가 아닐까요. 사랑에 속아 더 너덜너덜해지기 전에, 사랑의 여러 빛깔을 간접 경험해보며 나의 사랑도 여기에 대입해보면서 시행착오를 줄여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그렇게 많은 경험을 축적하고도 여전히 배우지 못하는 한 가지는 사랑뿐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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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안토니오 G. 이투르베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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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에디타 아들러예요.

우리 도서관에는 종이 책이 여덟 권 있고

살아 있는 책도 여섯 명이 있어요"(394).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8권의 낡고 헤어진 여덟 권의 책을 목숨 걸고 지켜낸 열네 살 소녀 디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제31블록에 독일 출신 유대인 수감자가 운영하는 작은 비밀 학교가 있었고, 그곳에는 다리달린 도서관, 살아 있는 도서관도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도서관이라고 해봤자 너덜너덜해진 8권의 책과 어떤 책을 특별히 잘 아는 교사들이 자기가 기억하는 대로 아이들에게 책 내용을 들려주는 여섯 명의 '인간 책'이 전부였지만,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이 도서관의 사서를 맡은 열네 살 소녀 디타는 나치로부터 그 8권의 책을 들키지 않고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거는 위험을 감수했으며, 매일 검열의 공포를 견뎌내야 했습니다.

"어차피 이 수용소를 살아서 나갈 가능성도 희박한데

굳이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킬 이유가 있을까?

시체를 태운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굴뚝의 그림자 밑에서

과연 아이들에게 북극곰 이야기를 하고 구구단을 외우게 하는 게 의미가 있나"(29).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역사상 가장 커다란 죽음의 공장이라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 끌려온 수용자들의 목표는 단 하나, '생존'입니다. 철조망과 화장장 사이에 갇혀 총 알 하나가 사람 한 명이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그 야만적인 현장에서 생존이 단 하나의 목표라면 당연히 "책을 버리고 목숨을 지키는 쪽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것"입니다. 학교라고 해봤자 누군가 멈춰서서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은 듣는 것이 고작이었는데도, 그들은 왜 그토록 위험한 작은 도서관, 비밀 학교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집요한 독일 나치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책이다.

그것도 낡고 제대로 철도 안 된, 중간에 몇 페이지씩 찢어지고 없어진 그런 책.

나치는 책을 금지하고 샅샅이 색출해낸다"(18).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의 이야기가 실화라는 것을 알았을 때, 디타라는 그 어린 사서가 목숨을 걸고 지킨 그 여덟 권의 책은 무엇이었을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그 여덟 권의 도서 목록을 알고자 이 책을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그 여덟 권의 책이 무엇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책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들이 갇혀 있는 전쟁의 악몽 말고 진짜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학교는 순수한 교육이라는 목적 이상의 미션이 있죠. 아이들에게 어떤 정상성을 보여주고, 감정을 잃지 않도록 하고, 또 삶이 지속된다는 걸 보여주는 것 말이에요"(147).

"역사상 모든 독재자며 폭군이며 압제자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

그들은 모두 책을 가혹하게 핍박했다.

책은 아주 위험하다. 책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든다"(18).

집이며, 재산이며, 옷이며,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가족이며, 어린시절이며, 미래까지, 그리고 결국 목숨까지 빼앗기고 있는 그들이 가진 것은 상상력뿐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책은 신발보다 더 먼 곳으로 그들을 데려다 주었습니다. 책이라는 타임머신은 그들을 이집트 피라미드의 지하 통로로, 아시리아의 전장으로 안전하게 안내했으며, 그들은 지도책 한 권으로 지겹도록 세계 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책은 비밀의 다락방으로 통하는 작은 문 같아서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세계를 마주할 수 있었고, 때로는 구급상자가 되어 웃음을 영원히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웃음을 되찾아주기도 했습니다. 왜 역사상 모든 독재자며 폭군이며 압제자들이 책을 그토록 두려워하고, 위험하게 생각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 31블럭의 비밀 학교가 운영되는 동안 521명 중 단 한 명의 어린이도 죽지 않았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존엄성을 강탈당하고 있었지만, 전쟁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고, 그러니 평화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그들은 비록 총알 하나보다 못한 목숨 취급을 받았지만, 그 여덟 권의 책을 통해 품위를 유지하며 그 고난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책을 전부 한데 모으자 아주 작은 부대가 된다.

보잘것없는 백전노장들이다.

그러나 지난 몇 달간 이 책들은 아이들 수백 명과 함께 세계 곳곳을 거닐었고

아이들에게 역사와 수학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소설이란 섬세한 세계로 이끌며 아이들의 삶을 몇 배는 더욱 크게 만들어주었다"(420).

이 비밀 학교, 그리고 그곳에서 운영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비밀 도서관이 수용소에 끌려온 아이들에게 해준 것은 하나였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린아이 다울 수 있다는 것! 언젠가 성경 <다니엘서>를 공부할 때, 짐승 같은 세상(권세)가 우리를 위협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저항은 일상으로 맞서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위협과 불안과 혼란 속에서도 자기 일상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 힘이라고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은 그럴 때 책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서 잔혹함은 더 잔혹하게, 처절함은 더 처절하게 와닿습니다. 역사가 스포라 큰 결말은 미리 예상할 수 있다 해도, 이 비밀 도서관의 사서와 함께하는 순간 어떤 페이지도 공포의 긴장을 놓을 수 있는 페이지가 없습니다. 번역도 잘 되어 있고, 문장도 통찰력이 있어 밑줄도 많이 긋게 되는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입니다. "진실은 전쟁의 최초 희생자이다"(324), "작은 것에 짜증이 날 때 일상은 되돌아온다"(482).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가장 도서관의 사서를 맡은 디타가 삶을 하찮게 그리는 책보다, 삶을 더 위대하게 생각하게 끔 해주는 책이 좋다고 독백처럼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디타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이 책이 바로 디타가 좋아하는 책, 삶을 더 위데하게 생각하게 끔 해주는 책이라고 한줄 평을 하고 싶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야만의 시대를 통과하면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은 경이로운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를 간직한 이 책 또한 인류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을 것입니다. 읽을 거리가 너무 많아서, 책이 하도 흔해서, 오히려 짜증이 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오히려 얼마나 나약하고 배부르고 게으른 투정을 하고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토록 경멸하고 지루해 했던 나의 오늘이 얼마나 감사한 것이었나를 아리도록 깊이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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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이좋아 2020-11-03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어요. <아우슈비츠의 문신가> 를 읽었을 때도 한동안 빠져나오기 힘들었었는데, 더 처절하게 그려진것 같고, 그래도 읽고는 싶고 ~~어허~~
 
설교 듣는 법 - 분별과 은혜
김형익 지음 / 두란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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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인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귀가 열려 있다는 의미입니다(167).

설교학이나 설교를 잘 하는 법에 대한 책들은 많이 봤는데, <설교 듣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은 저에게 이것이 첫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설교에 있어서는 '전하는 자의 책임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설교 듣는 법>은 '듣는 자의 책임'도 그것만큼이나 엄중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인 재앙과 언택트 사회라는 새로운 환경은 교회의 예배에도 너무나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교회는 모든 예배를 온라인 예배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고, 예배자들은 설교를 듣기 위해 온라인 세계에 접속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말씀의 홍수라고 말하여지는 시대였는데, 온라인에는 각종 예배 콘텐츠가 더욱 넘치기 시작하고, 알고리즘은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자들을 종말과 관련된 영상으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전 지구적인 재앙이라는 불안과 겹쳐 많은 성도들이 혼란을 느끼는 것을 보았습니다.

<설교 듣는 법>에서 김형익 목사님은 "이단보다 무서운 것은 멀쩡한 교단에 속해 그 교단의 간판을 걸었지만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지 않는 교회들"(10)이라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데, 온라인상에 검증되지 않은 각종 메시지가 넘치는 것을 보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분별력 있게 말씀을 듣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설교를 듣는 일 자체가 엄청난 영적 전쟁이 되고 있습니다. 말씀을 분별력 있게 듣기 위해서는 각자가 깨어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바르게 듣는 것이 내 영혼이 죽고 사는 것과 직결되는 중대사라는 것을 기억하며 말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눅 8:18). 그런 의미에서 <설교 듣는 법>은 시대가 요청하는 책이며, 이 책 자체가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귀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영광스러운 소명을 말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로서의 부르심입니다(61).

설교자로서 설교에 대한 부담을 느낄 때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뿐이며, 열매는 '밭'의 상태가 결정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합니다. <설교 듣는 법>도 이 사실을 일깨웁니다. 말씀을 듣고 열매 맺기 위해서는 '좋은 밭'이 되어야 하는데, 말씀을 듣는 태도가 그 '밭'의 정체, 다시 말해 그 사람의 정체를 드러낸다고 강조합니다.

<설교 듣는 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로서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그 놀랍고 은혜로운 부르심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분별과 은혜입니다. "설교를 잘 듣는다는 것은 설교를 분별해 들으면서 그 말씀을 통해 깊은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11).

여기서 '분별'은 비판적으로 듣는 것과 구별됩니다. 분별하라는 것은 설교나 설교자를 평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이 사도들이 전한 그 복음의 메시지인지, 성경이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원리를 견지하는 메시지인지 설교를 들으며 부지런히 살피라는 요청입니다. 설교를 듣는 사람에게도 의무가 있음을 기억하며, 이제 더 이상 설교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 채, 예배자의 자리에 게으르게 앉아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한 말씀을 듣고 깊은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들은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키는 일이 필요합니다(84). 설교를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들려지는 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작업이 아닌 것입니다. 들은 말씀이 나의 믿음과 섞여야 역사가 일어나는데, 들은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키는 씨름은 듣는 자의 몫이라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특별히 가슴을 쳤던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말씀을 들으면서도 순종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128). "가장 근원적인 원인인 물론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지만, 이 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권위 인정의 결핍과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의 결핍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권위 인정의 결핍은 "하나님이 말씀하시지만 나는 내 인생을 살겠습니다"라고 하는 자아 우상의 태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의 결핍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말씀을 많이 듣습니다. 설교 듣기, 혹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는 듣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되고 그것이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의 삶 속에서 그 말씀을 계속 묵상하면서 자기를 부인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 들은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들은 말씀에 믿음을 결부하시는 일, 또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것은 곧 들은 하나님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입니다"(157).

<설교 듣는 법>은 "들음과 순종함 사이에는 기도가 자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은 온전히 말씀을 듣는 자의 책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찾고, 그렇게 찾은 약속을 붙잡고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 예배자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책에서 강조되고 있는 또 한 가지 교훈은 바로 '지금'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획을 긋는 사건이 될 만한 일이 오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 일어날 수 있음을 기대하십시오. 오늘! 오늘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것!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이보다 더 중요한 순간은 없습니다"(88-89).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 음성을 듣는 자는 살리라고 약속하십니다(요 5:25). <설교 듣는 법>은 하나님의 말씀이 듣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일깨우며, 그 은혜가 여전히 주어지고 있는 '오늘', '지금'을 절대 놓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오늘 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설교 듣는 법>이 무섭게 일깨우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실패하면 모든 것에서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나의 신앙을 위해 좋은 설교자를 찾아 헤매며, 나의 신앙 상태에 대한 책임을 설교자에게 모두 전가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이제 그런 핑계를 대지 못하게 합니다. (감사하게도,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만큼은) 말씀은 이미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더 분별력 있게 들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뜨겁게 반응하는 깨어 있는 성도가 되기를 기도하며, 특별히 종말론적인 메시지에 혼란을 느끼며 바른 교회, 바른 설교를 분별하기 원하는 예배자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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