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합본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당히 유쾌한 영국식 유머를 구사하는 더글라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는 과학적 지식이 난무하는 하드 SF소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문 사회과학적 내용과 내우주를 지향하는 소프트 SF소설도 아닌 코믹 SF소설이다.코믹 SF소설을 표방하는 작품은 아마도 고려원에서 나온 코믹 SF 단편집을 제외하면 과문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 책이 아마 유일하지 않나 싶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시리즈는 아마 국내에선 90년대 중반에 지금은 사리진 새와 물고기(몇 달전인가 새와 물고기 대표가 출판사가 망한뒤 호주로 이민갔다가 다시 귀국하여 SF소설을 출간하고 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에 4권으로 나왔다가 절판된바 있다.절판이후 애덤스의 이 코믹 SF소설을 입소문을 타고 언제나 그렇듯 새로 SF소설계에 입문한 독자들은 이 책을 구하기 위해 여기 저기 헌책방을 전전할 수 밖에 없었고 그도 안되면 개인적으로 고가에 구입할 수빆에 없었다.다행이 2천년대 들어와서 책세상에서 재간하였고 이후 6권으로 완결되게 된다.
골수 SF팬들이라면 국내에는 SF소설 자체가 부족하기에(ㅎㅎ SF책을 전부모아도 책장 한두개를 다 챌울수 없는 실정이다),출판사별로 혹은 판본 별로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도 아는 바로만 약 5개의 판형이 존재한다.
-새와 물고기본 검은색 표지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이건 1권만 있다.
-새와 물고기본 검은색 표지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이건 4권까지..
-책세상본 초기 푸른색 표지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이건 5권까지..
-책세상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합본-이건 1~5권까지 합권이다
-책세상본 반짝이가 있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총 6권 완료

앞서말한대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합본은 앞서 출판한 문고본 5권-1부 안내서에 의한 안내/ 2부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3부 삶,우주 그리고 모든 것/ 4부 안녕히,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 /5부 대체로 무해함-을 합본했기에 상당히 책이 두껍고 무겁다.
워낙 긴 내용이라 알라딘의 책소개 내용을 소개하면 어느 평범한 목요일, 영국에 사는 아서 덴트는 자신의 집이 우회로 건설 때문에 하루아침에 철거될 위기에 처한 것을 깨닫고 불도저 앞에 누워 시위하는데 그를 오래된 친구 포드 프리텍트(사실 포드는 베텔게우스 행성 출신 외계인으로 이다)가 술집으로 데려간다.포드는 '지구' 역시 은하계 초공간 고속도로의 건설 때문에 파괴되기 직전이어서 보고인의 우주선에 히치하이킹했고 지구는 2분만에 완벽하게 파괴당하고 이후 그들은 머리가 둘 달린 은하계의 허수아비 대통령 자포드 비블브락스, 우울증에 걸린 로봇 마빈, 지구 여인 트릴리안과 함께 하는 야단법석하고 시끌벅적한 여행을 한다는 내용이다.

이 책을 처음 읽으면 그 명성에 비해 좀 따분하다는 생각을 열혈 SF소설 팬이나 일반 독자나 아마 동시에 생각할 것이다. 우리와는 맞지 않은 코드탓인지 마치 미스터 빈의 영국식 코메디를 보듯이 처음에는 솔직히 그닥 재미가 없다.
과학적 지식이 난무하는 정교한 하드 SF소설들 예를 들면 아서 클라크나 그렉 이건의 책들을 좋하는 독자라면 얼른 이 책을 손에 넣은 것이 건강상 좋을 것이다.비록 초반부에 외계인의 지구 폭발 대용이 나오긴 하지마 근본적으로 코믹 SF소설이기에 하드 SF소설 열혈 독자라면 그 진지하지 못한 유머에 혹 분노를 터트릴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혹 이 책이 코믹 SF소설이란 타이틀에 혹해서 SF소설은 좀 자신 없지만 웃긴다고 하니 읽어볼까 하고 생각하는 일반 독자들이 계시다면 역시 얼른 이 책을 손에 넣은 것이 건강상 좋을 것이다.코믹 SF소설이라고 하지만 그 웃음 코드는 한국의 웃음코드 예를 들면 개콘?? 과는 전혀 다른 영국식 유머이기 때문이다.웃음 코드가 한박자 늦는데다가 읽는데 큰 지장은 없어도 약간의 인문 사회과학,자연과학,철학,예술 상식이 있어야지만이 웃을수 있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자는 커트 보네거트의 블랙 유머를 사랑하거나 딱히 할일이 없어서 시간적 여유가 널널하게 많은,혹은 다른 SF소설들을 다 읽고 정 읽을 책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처음의 지루함을 꾹 참고-뭐 정히 지루하다면 굳이 눈을 부릎뜨고 정독할 필요가 없다.설렁 설렁 페이지를 넘겨도 책 내용을 이해하는데 하등의 지장이 없다- 읽다보면 어느새 저자인 더글라스 애덤스의 영국식 유머에 푹 빠져 낄낄거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는 앞서 말한대로 더글라스 애덤스란 작가 쓴 책으로 살아 생전에 총 5권을 집필하였다.하지만 그의 사후 열화와 같은 독자들의 요청으로 그의 유족들은 이오인 콜퍼를 시리즈 후속을 집필할 작가로 선정했다.물론 여기에는 독자들의 요청도 있었겠지만 유족들 짭짤한 저작권 수입을 생각해서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 아무튼 독자들 입장에선 후속작이 나오니 즐겁기 그지없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합본의 단점은 애덤스의 5권의 작품만 합본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물론 합본 이후에 이오인 콜퍼의 작품이 번역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합본을 구입한다면 문고본 형식의 6권과 함께 서가에 놓으면 상당히 모양새가 이상해 진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게다가 이 책은 800페이지가 넘는지라 책을 읽기도 상당히 불편하다.
그래서 제일 좋은 방법은 합본은 서가에 장식용으로 비치에 두고 문고본 6권을 구매하여 틈틈히 여유있는 시간에 편한 자세로 읽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참고로 책 읽기가 귀찮은 분들이라면 소설 1권을 영화화한 동명의 영화를 보기 권장한다.좀 지루한듯 싶지만 역시 시간 때우기는 상당히 좋은 영화인 것 같다.

by caspi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글의 경우 추천이 많이 달리는 경우는 있어도 댓글이 많이 달리는 경우는 드뭅니다.아무래도 정보위주나 재미위주의 글이 다수다보니 알라디너의 공감대를 이끌수 없어서란 생각이 들더군요.그런 와중에도 댓글이 가장 많이 달린글이 있더군요.
카라 VS 소녀시대 VS 투애니원 숙소 비교 

위글은 올 1월달에 쓴 글인데 오늘까지도 댓글이 달리는군요.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알라디너분들의 댓글이 아니라 외부 손님들의 댓글이 많네요.참 어떻게 알고 찾아오시는지 무척 궁금해 지네요.
아무튼 역시 블로그글에서 인기가 많은 것은 연예관련 글이란 것을 새삼 깨닫게 되네요^^

by caspi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노이에자이트 2011-11-27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산다라박은 곧 30살이 가까와 오네요.강지영도 내년에 고교 졸업하고...

카스피 2011-11-27 23:33   좋아요 0 | URL
그러보면 노이에자이트님은 연예계에 관심이 많은듯 싶어용^^
 
자전거여행 2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한때 비록 돈은 없지만 참 가고 싶은곳이 많던 때가 있었는데 남들처럼 럭셔리한 해외 여행은 가
지 못하더라도 배낭 여행이라고 가고 싶었고,해외가 아니라면 국내 여행이라고 맘껏 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당장 어디로 여행은 가지 못하더라도 미리 가고싶은곳에 대한 지식을 쌓자는 생각에서 각종 여행 관련 책들과 여행 에세이들을 사 모았는데 마치 가정일에 지친 주부들이 그 쌓인 스트레스를 각종 홈쇼핑을 보면서 쇼핑하듯,여행 하고 싶은 욕구를 각종 여행기와 에세이를 보면서 풀었던 것 같다.

그렇게 사모았던 여행관련 책들중의 하나가 칼의 노래,현의 노래등으로 유명한 작가 김훈이 지은 자전거 여행2이다.저자 김훈은 웬만한 그의 팬들이라면 다아는 자전거 매니어라고 한다.아마 그런 자전거 매니어이기에 이런 여행기도 썼지 않나 싶다.
어디 인터뷰에서 본 글인데 작가 김훈은 스스로 풍륜이라고 불리우는 자신의 고가 자전거를 할부로 구입하면서 부인에게 이걸로 돈을 벌 테니 걱정말라고 큰소리를 쳤다고 하는데 그의 장담대로 자전거를 타면서 여행한 곳에 대해 쓴 여행 에세이 자전거 여행 1,2는 상당한 판매 부수를 올린 스터디셀러가 되어서 작가의 장담처럼 부인한테 상당한 액수의 생활비를 주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자전거 여행2이라는 제목에서도 알수 있듯이 자전거 여행이란 여행 에세이가 있는데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남해안 일대를 다닌후 쓴 글이라고 한다.자전거 여행이 나온후 4년뒤에 자전거 여행2가 나오는데 이때는 기력이 좀 딸리시는지 강화를 시작해 가평,안성,수원 등 경기도 일대를 다닌후 쓴 글인 것 같다.
자전거 여행2에서 저자는 기존의 여행기들이 주로 차나 기차등으로 이동하거나 도보로 여행하면서 쓴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데 아무래도 저자가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냐에 따라 여행의 성격이나 보고 느끼는 풍경이 완연히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차등을 이용한 여행기의 경우 그 이동 속도로 인해 이동시 풍경을 잘 묘사하지 못하고 도로로 이용시 느린 발걸움으로 주변 풍광을 디테일하게 묘사할수 있지만 속도감이 없는데 자전거 여행은 그 단점을 잘 커버하고 있는 것 같다.자전거는 자동차와는 달리 빠르게 멀리 달리지는 못하지만 차가 다니지 못하는 좁은 오솔길도 다소 험한 비포장길도 다닐수 있어 비교적 길의 구애를 받지않고 어디든지 갈수있어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을 열정만 있다면 어디든지 색다른 여행을 떠날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위적인 교통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홀홀단신 자전거 한대로 여행하면서 그가 지나쳐 가는 곳의 아름다움과 그가 만난 사람들-농부와 어부,염전을 가꾸는 사람등- 작가 특유의 아름다운 문체로 묘사하고 있다.특히 책 속에는 작가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따라 사진작기 이강빈이 찍은 사진들이 들어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작가가 여행한 곳을 함께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데 사실 경기도는 서울과 멀지 않은 곳이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쉬이 갈수 있는 곳이라 일반인들의 흥미를 자아내지 못하고 있지만 흔한다고 생각되는 풍경을 이처럼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을 보면 작가 김훈의 탁월한 문학능력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책속에는 경기도의 일상이라고 하지만 인근 서울 시민들이 알지 못하는 내용들이 한 가득이다.예를 들면 한강 최하류 포구인 김포 전류리 포구에는 웅어라는 귀한 물고기가 잡히지만 도시인들이 그 맛을 몰라 20마리 한 두름에 2만원이라든가, 임진강 태풍 전망대에는 1984년 9월 홍수때 떠내려온 북한 여성의 브래지어 2개가 전시되어 있다는등 소소한 이야기가 깨알 같은 재미를 주고 있다.

자전거 여행2는 얼핏보면 가벼운 일상의 여행 에세이같지만 김훈 작가의 글이다보니 한편으론 묵직한 내용의 글들도 다수 보인다.
갯벌의 먹이사슬은 약육강식의 고통이라기보다는 순환하는 먹이의 조화와 질서를 느끼게 한다. 새가 벌레를 쪼아 먹는 사태 앞에서 부처가 느낀 절망은 그 개별적 존재들의 고통을 사유하고 있다. 그때 부처는 미성년이었다. 갯벌은 미성년의 슬픔을 훨씬 넘어선 공간으로 펼쳐져 있다. (p.116)

남한산성의 서문은 처연하다. 산성 내의 수많은 문루와 옹성과 전각들 중에서 서문은 가장 비통하고 무참하다. 남한산성 서문의 치욕과 고통을 성찰하는 일은,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세상에서 그러나 죽을 수 없는 삶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마도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과 치욕이란 없는 모양이다………….삶으로부터 치욕을 제거할 수는 없다. 삶과 죽음이 서로를 겨누며 목통을 조일 때 삶이 치욕이고 죽음이 광휘인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아니다.이 세상에는 말하여질 수 있는 것보다도 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더 많은 모양이다. (p.193)

유배시절에 그의 마음속에서 1801년의 일들은 어떠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을까? 신앙인으로서 순교의 길을 끝까지 걸어간 약종 형님과 매부 이승훈의 죽음은 그의 마음 속에서 어떠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일까? ……….200년 후에 태어나 단지 책을 읽을 뿐인 후인이 그 침묵의 부당성을 공박할 수 있을까………. 삶 속에서 벌어진 일들 중에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다산의 치욕은 침묵 속에 잠겨 있다.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치욕이 아니라 그가 한평생 간직했던 침묵이다. 치욕은 생애의 중요한 부분이고, 침묵은 역사의 일부다. (p.236)


김훈의 자전거 여행2를 읽으면 독자들도 김훈이 페달을 밟았던 자전거 여행 코스를 따라 가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나역시 김훈 작가처럼 페달을 밟으면서 나만의 사진을 찍고 나만의 여행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일어난다.가볍기만 한 여행 에세이에 지친 독자라면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권해본다.
근데 이 책은 아쉽게도 현재 절판이다.출판사인 생각의 나무가 부도가 나서 그런 것 같은데 이 책을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할 수없이 헌책방에서 이 책을 찾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by caspi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닥 책을 자주 읽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읽는 책은 보통 소설이나 인문과학 서적정도이고 시는 당최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잘 읽지도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책이 한가득 들어 있는 박스를 뒤져보면 그래도 시집 몇권은 나온다.

몇권 안되는 시집중의 한권이 바로 기형도 시인의 잎속에 검은 잎이다.맨날 친구들과 술만 먹고 돌아다니던 시절에 그래도 문학도라고 우리에 맨날 술만 처 먹지 말고 책도 읽으라면서 술에 취하면 시를 읊조리는 주사가 있었는데 그 덕분에 사내 자식이 무슨 시냐고 맨날 구박받던 친구가 있었다.
가끔씩 술에 취해 읊조리던 시는 상당히 우울하면서도 무언가 마음을 후벼파는 느낌을 주었는데 어느날 니가 외우는 시는 누구 작품이냐고 물었더니 기형도 시인의 작품이라고 했다.당시에는 뭐 그런 시인이 있나 보다 하고 아무 생각없이 지나갔었는데 언젠가 헌책방에서 책들을 뒤적이다보니 기형도 시인의 잎속에 검은 잎이란 책이 있어 그 친구 생각이 나서 구입했었다.

<위험한 가계>
1.
그 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지셨다. 여름 내내 그는 죽만 먹었다. 올해엔 김장을 조금 덜 해도 되겠구나. 어머니는 남폿불 아래에서 수건을 쓰시면서 말했다. 이젠 그 얘긴 그만하세요 어머니. 쌓아둔 이불에 등을 기대 채 큰 누이가 소리질렀다. 그런데 올해에는 무들마다 웬 바람이 이렇게 많이 들었을까. 나는 공책을 덮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잠바 하나 사주세요. 스펀지마다 숭숭 구멍이 났어요. 그래도 올 겨울은 넘길 수 있을 게다.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실 거구. 풍병에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잖아요. 마늘을 까던 작은누이가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지만 어머니는 잠자코 이미 위로 흘러내리는 수건을 가만히 고쳐매셨다.
2.
아버지, 그건 우리 닭도 아닌데 왜 그렇게 정성껏 돌보세요. 나는 사료를 한 줌 집어던지면서 가지를 먹어 시퍼래진 입술로 투정을 부렸다. 농장의 목책을 훌쩍 뛰어넘으며 아버지는 말했다. 네게 모이를 주기 위해서야. 양계장 너머 뜬, 달걀 노른자처럼 노랗게 곪은 달이 아버지의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이리저리 흔들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팔목에 매달려 휘 휘 휘파람을 날렸다. 내일은 펌프 가에 꽃 모종을 하자. 올 봄엔 벌써 열 살이다. 어머니가 양푼 가득 칼국수를 퍼담으시며 말했다. 알아요 나도 이젠 병아리가 아니에요. 어머니, 그런데 웬 칼국수엔 이렇게 많이 고춧가루를 치셨을까.
………..<이하 중략>

<엄마 생각>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억할 만한 지나침>
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춥고 큰 방에서 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형도의 시들은 대체로 위의 시들처럼 어둠, 외로움, 침묵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런 어둠을 형상화한 시어들인 몇가지 단어들 예를 들면 빗방울,안개 것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런 기형도의 작품 세계를 그의 문학적 동료였던 평론가 김현은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 일컬었다.
그의 시들은 현실의 세계를 평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자주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둡고 고독과 죽음과 연결된 이미지들이 쓰이다보니 일반인들에게는 낯설고 우울한 느낌을 주고 있다.
마치 영화 신씨티의 한장면 처럼 흑백의 대비에 따른 강렬한 느낌을 주는 기형도의 시들은 아마 시인의 내면이 그의 시처럼 어두워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은데 중앙일보 신문사 기자이며 시인(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안개〉가 당선)이었던 기형도는 1989년 시집 출간을 준비하던 중 뇌졸중으로 만 스물 아홉의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기형도 시인은 어려서부터 매우 가난했다고 알려졌는데 그의 연작 시 <위험한 가계>를 읽어보면 그의 유면 시절이 얼마나 가난했는지를 잘 알수 있는데 60년에 태어난 기형도 시인의 처철한 유년 시절의 가난에 대해 그 가난조차 뛰어난 시로 승화시킨 <위험한 가계>를 읽으면서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감탄할 수 있을 지언정 지금처러 풍요로움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그 시속에 담겨있는 작가의 심정을 쉽게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시는 매우 함축적인 문학이기에 한이 깊을수록 마치 와인이 오랜기간 숙성되야 좋은 술이 되는 것처럼 좋은 시가 나온다.그러기에 기형도 시인의 작품들은 작가의 29년간의 처철한 삶속에소 응축되고 숙성된 사고를 통해서 지금도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시로 태어나게 되었단 생각이 든다.
기형도 시인의 시들은 그가 살던 시대의 가난과 시대적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면 시 속에 숨겨진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할것이다.하지만 깊은 뜻을 알지못해도 그의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무언가 마음속에 아련함을 준다.시 속의 참뜻을 모른다고 해도 읽으면 읽을수록 무언가 마음속에 울림을 주는 시가 기형도의 시가 아닌가 싶다.

비록 29살에 요절한 천재 시인 기형도이지만 이 시집외에도 소설, 편지, 단상 등이 수록된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과 본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후 발견된 미발표 시 16편과 그 주변 사람들의 글을 담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가 출간되었으니 기형도를 더 알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by caspi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어 한자의 달인이 되는 법 - 최신개정판 3rd edition
황인영 지음 / 사람in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앞에 일본어 무작정 따라하기 리뷰에서도 잠깐 언급하긴 했지만 국내에서 번역안된 영미의 추리 소설 황금기의 30~40년대 이전의 작품을 읽어버려는 욕심에서 일본어를 독학으로 시도하려다가 천성적인 게으름으로 결국 포기했다고 글을 쓴 바 있는데 사실 우리와 어순이 같아 누구나 노력하면 쉽게 배울수 있다는 일본어의 경우에도 글자수가 중국어의 한자와 달리 50개에 불과하지만 하라가나 카타가나 2종류가 있는데다가 일본식 한자까지 있어 한 문장안에 하라가나 카타가나 한자까지 뒤섞여 있으면 읽기가 쉬운 편은 절대 아니다.
일본어를 공부하다 포기하는 사람들의 일부분은 한자에 걸려서 포기한다고 하는데 일본에서 쓰이는 한자는 중국어 간자와는 완전 다르고 우리네 한문과 다소 비슷하지만 한국과는 달리 음독 훈훈독이란 것 있어 매우 헷깔리는 편이다.게다가 한국 한자와 일본 한자는 비슷하면서도 부분적으로 다른 점이 많아서 우리 한자를 잘 안다가고 일본 한자를 잘 아는 것이 아니어서 쉽게 접근했다간 큰 코 닥칠수가 있다.

그래선지 일본어를 배우려면 일본어 사전외에도 일본어 한자를 배우는 학습서가 꼭 필요하다고 해서 구매한 것이 일본어 한자의 달인이 되는법이란 책이다.

<일본어 한자의 달인이 되는법 표지>

이 책은 2010년도에 3번째 개정판이 나왔으나 이전 판과는 달리 2010년 11월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신 상용한자 지정안’을 반영하여 기존의 상용한자 1945자 가운데 5자를 삭제하고 196자를 새롭게 추가 구성했다. 또한 일본 상용한자 2136자를 ‘교육한자(1006자)’, ‘주요 상용한자(917자)’, ‘추가 사용한자(196자)’, ‘잘 사용되지 않는 상용한자(17자)’로 나누고 별도로 ‘표외자(53자)’를 배치하여 학습자가 수준별.단계별로 학습할 수 있도록 했다고 알라딘 책 소개에는 소개되어 있지만 구판을 사용해도 학습하는데는 크게 무리가 없으므로 헌책방등에서 구할 수 있으면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서 공부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구입한 책도 아마 구판일 거란 생각이 든다)

책 머리말에도 일본 한자를 모르면 일본어의 달인이 될수 없다고 못박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일본어 구성 요소의 47%가 한자어로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표지에 일본어 학습에 필요한 한자를 총 망라했다고 하니 이 책 한권을 마스터하며 아마 일본어 한자에 통달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일본어 상용한자 2136자를 ‘교육한자(1006자)’, ‘주요 상용한자(917자)’, ‘추가 사용한자(196자)’, ‘잘 사용되지 않는 상용한자(17자)’로 나누고 별도로 ‘표외자(53자)’를 배치하여 학습자가 수준별로 단계별로 학습할 수 있도록 편집해 놓았는데 초등학교 1~2학년 한자를 넘어가게 되면 의외로 높아져서 한자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좀 어렵지 않나 생각된다.1~2학년 한자는 쉬어서 일본 한자 별거 아닌군 하고 단계가 높아지면 어이쿠 하게된다는 뜻인데 상용 한자 2천자라면 별거 아니군하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천자문을 다 외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며 매우 방대한 양임을 금방 알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단기간에 마스터하겠다면 그 방대한 양에 지쳐 곡 포기할 수 있으므로 하루에 한페이지정도로 차근 차근 공부하겠다는 마음자세로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일본어 한자의 달인이 되는 법은 책 앞에 이 책의 구성,학습 요령,학습 목표,일본어 한자의 개요가 나오는데 비록 몇 페이지 안되지만 말 그대로 일본어 한자에 대한 기본과 이 책을 공부하는 요령을 가르키므로 자세히 정독할 필요가 있다.



<일본어 초보자를 위해 책 머리에 자세한 설명이 첨부되어 있다>


이 책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교육한자와 교육한자를 제외한 자주쓰는 상용한자등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있어 자기 실력에 맞추어 학습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의 하단부에는 어휘와 관련된 일본 문화에 대한 설명도 있어 지루하지 않은 감을 주면서 일본문화에대한 지식도 함께 얻게 하고 있다.

<1학년용 한자.이정도면 ㅎㅎ 상당히 자신이 있어 보이지만 가면 갈수록 어렵다 ㅜ.ㅜ>


<페이지밑에 일본 문화에 대해서 짤막하게 소개되어 있어 지루함을 방지해 준다>

단점이라면 일본에서 자주 쓰이는 한자를 모두 망라하다 보니 실제로 그 한자를 활용하는 예문이 뜻밖에 적다는 점이다.특히 일본 한자의 경우는 훈독과 음독이 있는 관계로 한 한자에도 여러가지 뜻이 있는데 아쉽게도 이 책은 그 중 대표적인 뜻만을 보여기에 좀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선 일본어 사전을 가지고 좀더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일본어를 마스터할 분들이라면 이 책으로 공부해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 같기에 강추한다.

by caspi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