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회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6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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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이도 준의 소설은 재미있다. 특히 회사에서 벌어지는 별별 일들과 그 속에 나타나는 인간군상의 다양한 모습들이 잘 녹아들어가서 흡인력이 좋다. 사실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었을 때 더 효과를 내기도 하는 부류의 작가이다. 이 책은 뭔가 끝끝내 씁쓸함이 남는 내용이긴 하지만 우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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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꾹 참다가 며칠 전에 구매한 책들이 어제 도착했다. 뭘 참았냐고? 책 사고 싶은 걸..ㅜ 책장에 쌓여가는데 읽지를 못한 게 넘 많아서 그냥 참자 참자 하다가 아 도저히 못 참겠어 이 지경에서 소중한 몇 권을 구매한 것이다.

 

 

[여성주의책함께읽기] 5월 책이다. 받아들었을 때는 흠? 그래도 이전 책들보다는 좀 얇네? (500페이지쯤?) 하고는 가볍게 생각되어 순간 기뻤으나 책장을 넘기는 순간... 문단간격과 글자간격이 촘촘빽빽한 것을 발견하고 다시 낙망.. 험난한 5월이 되겠구나 생각하고는 오늘 회사에 이 책을 들고 왔다는 이야기.

 

즉 이 책은 구전되어 온 문맹의 흑인여성의 이야기부터 현대 흑인 페미니스트 이론에 이르기까지 흑인여성의 다양하고 다층적인 텍스트에 대한 메타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콜린스는 대부분의 흑인여성이 읽어서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책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고 얘기한다. 그 결과 이 책은 미국 학부 수업에서 활발하게 교과서로 채택될 정도로 쉽게 쓰여졌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 알라딘 책소개 중

 

눼눼. 각오하고 시작하겠나이다.

 

 

 

 

실비아 페데리치의 이 책. 작년에 읽고 싶어서 찜해두었다가 못 읽고 포기. 보관함에 계속 담겨만 있던 차에 이번에 재발견하여 구매까지 이르렀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하고 역사에서 어떤 통찰력insight를 뽑아내는 책을 또 좋아하는 편이라 이 책은 꼭 읽고 싶었었다.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 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공식적인 역사서나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역사책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산파 여성들·점쟁이 여성들·식민지의 원주민 여성 노예들·여성 마술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 알라딘 책소개 중

 

마녀사냥의 역사적 해석은 너무나 다양하고 다각도적이라 늘 놀란다. 그 처참했던 역사에 배여있는 여러가지 함의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고 말이다. 조만간 이 책을 시작해야겠다.

 

 

 

북스피어의 '마포김사장' 메일을 정기적으로 받고 있는데 (이 사람, 참 재미난 사람이다) 이번에 무슨 드라마를 했고 그 원작이 이 책이었는데 출판사에서 다 끝날 때까지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발견하고는 더 찍어냈다고 토로한 책이 이 책이다. 드라마는 '365..?' 어쩌구였으나 원제는 <리피트>. 드라마도 재미있었다고 하지만 책이 더 재미있다고 강력 추천해서 사보았다.

 

리피트의 '문'을 통과할 수 있는 티켓을 얻은 10명의 남녀. 그들은 현재의 기억을 가진 채 열 달 전 자신으로 돌아간다. 서로 다른 욕망을 품고 '다시 살기'를 택한 직업도 나이도 다른 '리피터(리피트를 해서 과거로 돌아온 사람)'들은 미래를 아는 만능감에 도취한 나날을 보내지만, 어느 날부터 한 명, 또 한 명 리피터 동료가 되돌아온 세계에서 의문사를 당하기 시작하는데…  - 알라딘 책소개 중

 

'다시 살기'라. 내가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게 될라나, 이 책을 읽으면.

 

 

 

미야베 미유키의 현대물에 대한 관심이 확 쪼그라들어 그다지 안 사게 된 요즘인데, 이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는 그래도 챙기고 있다. 미미여사의 주특기인 사회현상의 부조리와 악의 근원들이 그래도 잘 드러나는 소설이면서도 아주 사람 미치게 하는 통렬함은 없는.. 그러니까 조금 부드러운 편이라고나 할까. 요즘처럼 상처받기 쉬운 상태에서는 아무리 그게 사실이라도 너무 나를 찔러대는 책은 읽고 싶지 않아서 말이다. 근데 이 책을 왜 아직 안 사고 있었지? 잠시 갸우뚱. 이거 어디서 툭 튀어나오는 거 아니야? =.=;;

 

전직 출판사 편집자로 지금은 작은 탐정 사무소를 개업해 동네 사람들의 각종 의뢰를 받고 있는 스기무라 사부로. 이번에 그를 찾아온 이는 입원한 딸과 한 달이 넘도록 연락이 안 되어 슬픔에 빠진 여성이다. 의뢰인 하코자키는 '자살 미수'로 병원에 실려간 딸과의 연락을 완전히 차단당한 채,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 장모님 탓이라는 사위의 비난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모녀 사이가 돈독했기에 어떤 일도 터놓을 수 있다고 믿었던 하코자키에겐 청천벽력같은 일이다. 감미로운 신혼의 나날을 누렸어야 할 그의 딸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것일까. 스기무라는 사건을 파헤칠수록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 알라딘 책소개 중

 

 

 

오랜만에 소소한 미스터리 스릴러물을 여러 권 구입하는 거 같다. 으흐흐. 크리스티나 올손의 마틴 베너 시리즈는 계속 눈여겨 보고 있던 시리즈이기도 해서 이번에 우선 첫번째 책만 구입.

 

마틴 베너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여자를 꼬여낼 수 있는 바람둥이 변호사. 하지만 알고 보면 가족들 모두가 책임을 회피한, 죽은 여동생의 어린 딸아이를 맡아 키우는 가슴 따뜻한 남자이기도 하다. <파묻힌 거짓말>은 변호사 마틴 베너가 피의자의 자살로 이미 종결된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자신까지 범죄 용의자로 몰리는 등 걷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빠져드는 하드보일드 드라마이다.  - 알라딘 책소개 중

 

이런 캐릭터, 좀 전형적이긴 해서 이 소설이 어떤 느낌을 줄 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시간 날 때 슬슬 읽어보면 나쁘지 않아 보인다. 북유럽 사람들은 인구도 얼마 안되는데 정말 대단히 많은 미스터리 스릴러물들을 책으로 계속 내고 심지어 그 책들이 재미있기도 하니 불가사의한 일이구나 싶다. 날씨가 추워서 밖에 잘 못 나가 그런가? 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고.

 

 

 

라로님 페이퍼 보고 냉큼 구입했다. 요즘 살이 너무 쪄서 옷도 하나도 안 맞는 데다가 급기야는 옷이 고문 도구처럼 날 조여와서 (질식사 위기다) 살을 빼야지, 그런데 건강하게 빼야지 하는 마음믄 가지고 매일 술 먹기와 많이 먹기를 실천하고 있었는데.. 이 책이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을 아주 '강렬히' 주길래 바로 샀다 이것.

 

저자는 대학원 시절 보디빌딩 대회에 도전하며 ‘실행해보고 성과를 검토하기에 적당한 기간’이라 생각해 우선 3주, 즉 21일의 운동 계획을 세워 실행했고, 3주 만에 체감될 정도의 신체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후 21일 루틴을 자신이 지도하는 회원들에게도 적용해 성과를 본 그는 특별한 운동법이나 식단이 아닌 꾸준함이 몸을 만든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자 21일 루틴을 통해 ‘운동의 미니멀리즘’을 소개한다. - 알라딘 책소개 중

 

루틴을 만든다는 말이 마음에 든다. 나도 한번 해봐야지. 근데 이 식탐은 어쩔..;;;

 

 

 

***

 

이 정도 고르기도 힘들었는데 말이다. 보관함에 가득 담겨 있는 책들을 외면하고 몇 권만 푱푱 골라 샀는데 말이다. 오늘 내게, 시험에 들게하는 책들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해미시 순경 시리즈의 새 책이 나왔다! 아니 이게 왜 지금 나온 거야! 지난 주에 나왔으면 어제 받았을텐데! 하면서 바로 보관함 푱.. 아 어쩌지. 가다가 살까. 그리고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나온다는 낸시 스프링어의 에놀라 홈즈 시리즈도 다 나왔다는 낭보.. 이자 비보. 6권이 한꺼번에 이렇게 쏟아지면 우짜란 것이냐. 정말.. 다시 주문해야 하나. 정녕, 이것이 내 운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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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5-08 15: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실비아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였는데, 그때 비연님은 함께 하지 않았었나요? 페데리치의 저 책은 [혁명의 영점]과 셋트입니다.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에서는 이 두권을 함께 선정해 읽었었지요. (뿌듯뿌듯)

그리고 미미여사의 저 책은, 비연님의 기대를 보니, 하아, 구매하신 분께 죄송하지만 ㅠㅠ 정말 .. 실망하실 거에요. 읽기 싫어한 바로 그런 잔혹함..이 책 안에 있습니다. 물론 실제 벌어지는 일들에 기인한 것이겠지만 제가 딱 싫어라 하는 내용이었어서... 아무튼 저는 꾸역꾸역 다 읽었는데, 제가 다 읽고 남동생 읽으라고 줬더니 앞에 한 편 읽고 더 못읽겠다고 저에게 반납했어요. 휴.. 그러니까 마음 각오 단단히 하시고 책 펼치셔요 ㅠㅠ

그나저나 저는 늙을수록 소화기능은 떨어지는데 식탐은 왜 샘솟는건지.. 지금도 점심을 너무 많이 먹어 배가 터질 것 같아서 앉아있는게 괴로워요 ㅠㅠ

비연 2020-05-08 15:14   좋아요 1 | URL
제가 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에서 같이 읽었어야 했는데 라고 후회하는 책이 실비아 페데리치의 책들과 <백래시>에요. 함께 했으면 훨씬 유익했을텐데 말이죠. ㅠㅠㅠ 역시 같이 할 때 꾸역꾸역이라도 따라 다녀야 해요.

미미여사 책. 이런. 이 시리즈가 그렇게 잔인하지 않았는데.. 이럴 수가. 그렇게 잔혹하단 말인가요..ㅠ 우짜죠. 아 막 망설여지네요. 우잉. 괜히 샀나 싶어요.

저도 그래요. 왜 이렇게 배가 고프고 먹고 싶은 게 많은 지. 소화기능은 떨어져서 소화제까지 먹는데 말이죠. 이 식탐을 낮추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흑흑...

다락방 2020-05-08 15:48   좋아요 1 | URL
미미여사는 ‘소소한 탐정‘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은데, 저는 제가 너무 싫어라하는 사건이라 그런지 소소한..뭘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마다 사건에 대해 느끼는 무게감이 다르긴 하지만..아무튼 저는 개인적으로 그러햇습니다. 흑 ㅠㅠ

희선 2020-05-09 0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피트 한국에서도 드라마로 만들었군요 저는 2018년에 우연히 일본에서 만든 드라마 알고 봤어요 그건 원작대로 <리피트 ~운명을 바꾸는 10개월~>이었는데, 한국은 두달 더 넣어서 한해로 했군요 열달은 좀 어중간하기는 하죠 저 드라마 얼마전에 다시 봤다고 말하려니, 끝까지 안 봤다는 게 생각났습니다 그 드라마는 한국 사람(DAY6)이 노래도 했어요 일본말로... 그때 그 노래 자주 듣기도 했네요 DAY6 잘 모르지만... 드라마가 끝날 때마다 노래가 나와서 그런 거기는 하군요 자꾸 듣다보면 귀에 익는 거죠 일본 드라마 보다가 그렇게 알게 된 노래 조금 있기도 하군요 그냥 괜찮네 하는 정도만 생각한 게 더 많네요

저도 미야베 미유키 소설 많이 보고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 다 봤어요 예전에는 다른 일하면서 탐정 같은 걸 했지만, 이젠 탐정만 하게 됐군요 이번에 나온 것도 봐야 할 텐데...


희선

비연 2020-05-09 09:46   좋아요 0 | URL
아. 드라마를 보셨군요! 책 보고 내용 괜챦으면 한국드라마를 볼까 했는데, 일본에서도 이게 드라마로 나왔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미미여사의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를 다 보셨다니 반갑 ^^ 얼마 전부터 일 그만두고 이혼하고 탐정으로 전업했죠..ㅎㅎ (이러니까 마치 살아있는 사람 같네요 ㅋ) 이번 책은 다락방님이 좀 별로라고 하셔서 읽을까 말까 고민이 되요.;;;

단발머리 2020-05-09 07: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서재에서 책구경 하다보면 미스터 스릴러물 작가들 이름을 제가 1도 모른다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ㅎㅎㅎㅎ 비연님은 좋아하는 작가들을 keep해 놓으시면서 기다리시다가 책출간되면 땅!하고 달려가시는 진짜 열혈독자셔서 모두 비연님 같다면 우리나라 출판계는 진짜 걱정 1도 없겠어요.
저는 에놀라 홈즈 시리즈에 눈이 가네요. 표지가 이뻐서 들어가 보았더니 곧 영화가 개봉한다고 하네요. 제가 좋아하는 샘 클라플린도 출연한대요.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비연 2020-05-09 09:48   좋아요 1 | URL
제가 워낙.. 어릴 때부터 미스터리 스릴러물을 좋아해서.. ㅎㅎㅎ 나오면 다 사두었다가 조금씩 읽는 게 취미라면 취미랄까. 그러니까 여성주의 책읽기 하면서 복잡해진 뇌회로를 달랠 때 조금씩 읽는 용도로는 그만인지라 ㅎㅎ

에놀라 홈즈 시리즈는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사람들 정말 기발하죠? 셜록 홈즈의 여동생이라뇨!) 영화가 개봉되는군요! 이거 이거 또... 책 읽고 바로 영화를 보러 가야 하는 건가요 ㅋㅋㅋㅋㅋ 아 이 시리즈 좀 기대됩니다~
 

 

1. 쥐 만한 벌레 출몰

 

그제인가. 빨래 넌다고 베란다 문을 확 여는데 눈 앞에서 뭔가 시커멓고 큰 게 홱 지나갔다. 순간, 가슴이 철렁 하면서 쥐? 싶었다. 그런데 그 넘이 베란다 창틀에서 가만히 안착한 것이다. 그래서 뭔가 봤더니만... 정말 거짓말 안 하고 가운데 손가락 만한 바퀴벌레가 그 곳에 살포시 있는 게 보였다. 아... 등줄기에 소름이 쫘악. 태어나서 그렇게 큰 바퀴벌레는 처음 봤다 이거다.. 잠시 충격 받은 머리를 수습하고 난 후.. 그래도 움직이지 않는 바퀴벌레를 (무거운가? ㅜ) 가만히 쳐다보다가 휴지를 대박으로 뜯어서 조심스레 다가갔다. 안 움직인다, 안 움직인다... 엄청 두껍게 뭉친 휴지를 그넘 몸에 갖다 대었는데.. 그 두꺼움을 지나쳐 느낌이 왔다..는..ㅜㅜ 어쨌든 잡아서 꾸욱. 아. 소름. 계속 소름. 휴지통에 버리기도 싫어서 바깥 휴지통까지 나가서 버리고 왔다. 그 넘의 사체(ㅜ)가 내 집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름이라. 그 이후로 계속 머릿 속에서 그 형상이 떨어지질 않아 베란다 나갈 때도 무섭고 어디 문을 열기가 겁난다. 설마 부엌에서 나오진 않겠지... 아 약을 쳐야겠다. 근데 그 유명을 달리 하신 바퀴벌레. 뭘 먹고 그렇게 커진 거니. 거의 고대 시대의 삼엽충을 연상케 하는 그 자태 말이다 ㅜㅜㅜ

 

 

2. 마이너스의 손인가

 

원래 손이 야무지질 못해서 사고를 많이 치긴 하지만 최근 들어서 그릇 파손 횟수가 늘고 있다. 며칠 전에 삼겹살 먹는다고 그릇 내다가 소스 그릇을 손으로 쳐서 날려 - 도대체 이게 상상이 되는가. 멀쩡히 잘 있는 소스 그릇을 왜 손으로 쳐서 날리느냐 이 말이다 - 두 동강을 냈다. 나름 아끼던 광주요 제품이고 두 개가 쌍이었는데 하나가 그리 휴지통 신세가 되는 바람에 나머지 하나만 짝잃은 새 마냥 오롯이 찬장 안에 놓여 있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 설겆이를 하다가 유리컵을 모퉁이에 날렸다.. 물론 세제땜에 미끄러워서라고 속으론 변명을 했지만 아니 그게 왜 날라가... 그래서 유리컵 입대는 부분이 파손. 지금 커피 찌꺼기 담는 용도로 탈바꿈하여 자리하고 있다. 휴지통으로 보내기 넘 아까운 나의 애장품이었는데. 이것도 네 개가 한 쌍이었는데 말이다. 전부 짝잃은 그릇들이 될려나 보다, 내 집에선. 아웅. 맴찢.

 

이건 좀 다른 류이긴 하지만, 어제는 야구도 개막했고 해서 마루에 삼겹살과 맥주를 대령하여 먹으면서 관람하고 있었다. 좋았는데, 두산이 선취점을 뺏기는 순간 넘 놀라서 (손도 미끄럽긴 했다) 맥주잔을 날렸다. 물론 그 안엔 맥주가 담겨져 있었고... 소파와 카페트와 내 소중한 쿠션 (거금 주고 작심 구입한 건데)에 맥주가 다 뿌려졌..;;;; 물티슈와 걸레를 가져와 닦고 또 닦고 말리고 했지만 그 맥주의 시큰한 향이 아직 남아 있다. 드라이를 맡겨야 하나. 지난 번엔 와인도 한번 날려서 카페트를 적신 일이 있어서 이제 카페트도 드라이를 줘야 하나 싶다. 와인과 맥주가 잔뜩 들어가 있는 카페트라니. 심지어 소파는 가죽인데... (패브릭이 아닌 걸 감사해야 할 지도) 물티슈로 닦아대니 이 가죽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라는 우려가 불현듯 솟구쳐 너무나 서러웠다. 주인 잘못 만나 네가 고생이 많다... ㅜㅜ

 

 

3. 검진이 싫어

 

월요일에는 종합검진을 받았다. 종합검진이니 이것저것 검사를 받았지. 체중을 잰 간호사가 말했다. "작년에 비해 4킬로그램 는 거 알고 계세요." .. 눼눼. 매일 체중 재서 잘 알고 있습니다..만, 확인사살 받으니 속이 쓰렸다... 검진의 마지막은 위내시경. 십년 전까지는 몸에 안 좋다고 해서 비수면으로 잘도 받다가 한번은 어느 레지던트인지 뭔지한테 대박 걸려서 질식사 내지는 쇼크사 할 것 같은 공포의 10분을 보낸 후 10년 넘게 수면으로 유지해오고 있었다. 프로포폴의 맛을 느끼며 잘 자다 나오곤 했는데 이년 전부터 간호사들이 수면 시에 내가 요동을 친다는 거다. 자꾸 일어나려고 하고 자꾸 빼려고 하고.. 재작년까지는 그냥 좀 주의하세요 하더니 작년에는 다음부턴 비수면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최후 통첩을 받았다. 아.. 그래서 올해는 마음 단단히 먹고 비수면으로 하겠다고 나섰고.. 병원에 가서도 계속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수면 내시경이 너무 위험할 것 같다는 판단 하에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내시경실로 그냥 들어갔다 이거다... 입에 마우스피스를 끼고 누워있는데 그 괴물같은 내시경 장비를 들고 다가오는 의사를 보는 순간부터.. 내가 왜 그랬을까 미쳤지.. 라는 생각 밖엔 안 들었다.

 

그 에어리언 처럼 생긴 시커먼 튜브가 내 목구멍의 굴곡진 부분을 넘어가는데 우웩... 아 나 죽어... 그리고는 튜브를 더 깊이 더 깊어 넣고는 살짝씩 뺐다 넣었다 뺐다 넣었다 왼쪽으로 돌렸다 오른쪽으로 돌렸다... 하는 동안 나는 켁켁 우웩우웩.. 하며 거의 죽을둥 살둥 하고 있었다 이거다. 그런 기구를 내 입을 통해 넣다니, 이건 정말이지 미친 짓이었던 거다! 뺄 때의 느낌도 매우 찝찝한.. 뭔가 스윽.. 벌레처럼 내 내장기관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 끝나고 나니 정신 말짱한 상태라 의사가 결과를 바로 알려주는 건 좋았지만... 이게 몸에 크게 부담이 되어서인지, 아니면 살이 쪄서 몸 상태가 나빠져서인지 검진 받은 날 온종일 자리보전하고 누워 있었다는 슬픈 결론. 어서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이런 거 안 집어넣고도 내장 속을 다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는 대장 내시경도 비수면으로 한다던데... 상상도 하기 싫다. 으윽.

 

 

4. 그래서...

 

뭐 그래서는 그래서겠는가. 이렇게 일상의 자질구레함에 마음 쓰는 거 보니 내가 그런 대로 잘 지내나 보다 라고 생각할 밖에. 큰 일이 없으니 소소한 일에 속상해하고 마음 쓰고 그러는 것이지. 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연휴 내내 독서를 많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그다지 많이 못한 것도 속상하네? 어제 아픈 마음으로 <이름없는 여자들>을 읽었고 (재미있다. 읽어볼 것을 추천은 한다)... 심심풀이로 다시 <일곱개의 회의>를 집어들었다. 오늘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 도착할 거라 시작할 거란 말도 덧붙여 본다. 30일 전에 완독하는 게 목표인데 보니 520페이지. 페미니즘 이론 책은 넘 두꺼워.. 그냥 기본이 500페이지야. 그래서 매일 꾸준히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어보려 한다. 몰아서 읽지 않기 위해. 아. 얼마 전 시작한 정희진 선생님의 책도 읽어야겠네.

 

세상은 넓고 시간은 없고 읽을 책은 많고 가끔 속상한 일도 있는, 그래도 그럭저럭 버틸만한 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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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5-06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해전에 친구가 좋은 와인잔 갖고 싶다는 제 말에 좋은 와인잔을 세트로 선물해주었는데 하나를 깨뜨려서 하나만 남았어요. 너무 소중해서 ㅠㅠ 그렇게 비싼 잔은 처음이고 유일한데 ㅠㅠ 또 깨먹을까봐 겁나서 백화점 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와인잔 두 개 사왔고요, 지금은 알라딘 굿즈로 받은 와인잔을 사용하고 있어요. 좋은게 있어도 쓰지를 못해. 흑흑 ㅠㅠ

저는 다음주부터 [흑인 페미니즘 사상] 시작하려고요. 일찍 시작해서 부지런히 읽어야지, 막판에 몰아 읽으려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단발머리 님, 쇼 님은 벌써 시작하셨더라고요? 이번달에는 모든 멤버가 30일 전에 다 읽는 어마어마한 쾌락의 순간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후훗.

오늘 출근하면서 아 지겨워..했는데, 또 이렇게 오전이 다 가고 있네요.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내는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비연님.

비연 2020-05-06 11:5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좋은 거 쓰는 게 이젠 겁이 나요. 제 손이 여기저기로 밀칠까봐. 파손되고 깨지고.
저도 와인잔 좋은 거 사놓고 겁나서 따로 일상생활용 와인잔을 사서 거기에 먹고 있어요. 도대체 비싼 걸 사는 게 의미가 없는 거죠. 쩝쩝.

[흑인 페미니즘 사상].. 벌써 시작하신 분들 덕분에 지금 바짝 긴장 중요 ㅎㅎ 저도 이번엔 정말 몰아서 읽지 않기로. 매번 월말에 불타올라서 힘들다는... 조금씩 차분히 읽어나가고 싶어요.

일상이 가능한 게 어쩌면 축복일 지도. 다락방님,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고 매일 즐겁게 스마일 하며 지내세요~ ;)

라로 2020-05-06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악! 내시경을 비수면으로,,,저는 상상이 안 갑니다.ㅠㅠ 제가 GI Lab에서 고작 3개월 일을 해봐서 잘 모르지만 프로포폴을 사용하다니,,이해가 좀 안 되고,,,그래서 비연 님이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지,,,너무 잘 알아요,,,그건 자질구레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고,,,고생하셨어요!!ㅠㅠ 그래도 책에서 위로를 받으시니 고무적이기까지 하네요!! 비연 님 화이팅!! ^^

비연 2020-05-07 13:44   좋아요 0 | URL
라로님.. 흑흑. 감사. 올해는 어찌어찌 비수면을 견뎠는데 내년에는 우짜나 걱정하다가 일단 내년일은 내년에 걱정하자 하고 잠시 덮어두었나이다...ㅠ 알라디너들은 뭐 ㅎㅎ 그 어떤 상황에서도 책에서 위로를 ^^

syo 2020-05-06 19: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취업전에는 내 삶이 더 재밌어보였는데 이제 비연님이 더 재밌어.... 소스그릇 손으로 쳐서 날리는 장면 너무 4D다 진짜...ㅎㅎㅎ

비연 2020-05-07 13:45   좋아요 1 | URL
재.. 재미...;;;; 쇼님의 재미를 위해서라면... 제가 한번 더 소스그릇을 공중부양시킬 의향이 ... 막 생겼..으나... 일단 몇 개 안되는 소스그릇을 당분간은 조심히 유지하기로요..ㅜㅜ;; 이넘의 인생은 한해한해 갈수록 개그콘서트가 되는 것 같슴다..으헝.

공쟝쟝 2020-05-10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저 이글 ㅋㅋ 왜 이제봤죠? 저는 며칠날 술에 취해서 갓김치 먹겟다고 냉장고 문을 열고 분명히 갓김치를 꺼냇는데 그대로 바닥으로 똬~ 락앤락 케이스 뚜껑이 뽀지직.. 그래도 취해서 그릇이 안깨진게 어디야.. 냠냠 맛잇게 먹었다.. 술이문제야...

비연 2020-05-11 01:06   좋아요 1 | URL
흠. 문제는 전 술도 안 먹었는데 왜 소스그릇을 날렸을까요? ㅜㅜㅜㅜ
락앤락 뚜껑이 뽀지직 헀으니.. 그 남은 그릇은 이제 뭘로 쓰실런지.
저도 갓김치 무진장 좋아하는데.. 오늘 저녁에도 먹은 ㅋㅋㅋ 아 새벽에 왜 배가 고프죠? ㅜ
 

 

 

 

 

 

 

 

 

 

 

 

 

 

 

<여성성의 신회>를 다 읽고, 아 두꺼운 책 다 읽었다! 만세를 외치며 이번엔 그냥 머리 식힐 책으로 골라야지 하며 고른 책이다. 이 책 소개글이 그랬다. 북유럽 코지 미스터리라고. 그래, 코지 미스터라고 분명 그럤다. 그래서, 나는 그냥 재미있는 유쾌한 친구들의 사건해결기라고만 생각하고 책을 펼친 것이다. 그런데, 내용이... 아 정말. 

 

소규모의 도시인 크리스이안순에 살고 있는 단 소메르달과 플레밍 토르프는 막역한 친구 사이이다. 단 소메르달은 잘 나가는 광고대행사 임원이고, 플레밍 토르프는 경찰이다. 단은 최고 자리까지 갔다가 번아웃으로 지금 직장도 쉬면서 허덕이고 있는데, 우연히 자신이 근무하던 광고대행사 내에서 한 여자의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을 알게 된다. 광고대행사 사람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친구를 도와주게 되었는데 점점 사건에 빠져들게 되고, 플레밍과 단은 서로 평행선을 그리며 조사를 하다가 어느 순간에 접점을 만나게 되는데... 그 동안에 죽은 여자와 같이 살던 한 여자의 처참한 시신도 발견되는 일이 있었고 죽은 여자와 함께 일하던 벤야민이라는 젊은 친구와 그 어머니가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단의 집에 머물게도 되고...

 

내용을 요약해보면, 정말 코지 미스터리에 가깝다 싶지만, 읽어나가는 도중에 발견된 것들은 참혹한 사회적 현실이라는 것. 덕분에 나는 금방 해치울 줄 알았던 이 책을 삼일이나 잡고 읽어야 했다. 중간중간 쉬어가면서 말이다.

 

 

"그래요, 그 사람이 가끔 때린 적은 있어요. 그런데 술을 마셨을 때만 그랬어요. 술이 깨고 나면 정말 잘못했다고 사과했어요."... (중략)... "자, 그러니까 단, 사실은 아주 끔찍한 이야기야. 여성과 아동 폭력에 관한 얘기인데 그게 결코 단순하지 않아. 중대한 차이점 한 가지는, 벤야민의 아버지 욘이 비정상적으로 잔인하고 그 탓으로 세 번이나 교도소에 다녀왔다는 거야. 처음에 자기 부인 학대로 3개월 형을 받았는데 여성보호센터에서 은신하고 있던 앨리스와 아이들을 공격했어." ... (중략) ... "요약하자면, 욕이 갑자기 필립을 낚아채서 자동차로 데려갔어. 앨리스가 뒤따라 뛰어갔지만 욘이 훨씬 빨랐어. 금세 필립을 조수석에 앉히고 문을 안에서 걸어 잠가버리고, 앨리스가 오기 전에 시동까지 걸고, 욘이 주차장을 나가는 걸 보고 앨리스는 지름길로 가서 욘을 못 가게 막으려고 했어. 그런데 차 앞으로 달려오는 앨리스를 보고도 그는 멈추지 않았어. 브레이크 한 번 밟지 않고 그냥 가속페달을 밟아 들이받고 가버린 거야. 앨리스는 피 흘리며 의식을 잃은 채 길바닥에 쓰러졌고." (p158-162 중 인용)

 

 

그러니까 이 정도 읽으면, 이전에 읽었던 <페미사이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술 먹고 폭력을 휘두르고 법으로 떨어뜨려봐야 수 개월에서 수 년. 다시 돌아와 찾아서 또 패고 납치하고 강간하고... 죽이고... 밟고 때리고. 이 책이 덴마크 작가가 쓴 건데 말이다. 덴마크에도 역시, 그런 복지국가에도 역시 그런 넘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 남자의 아내는 그의 소유property 라고 하는 생각이야말로 헤아릴 수 없는 악과 고통의 치명적인 뿌리다. 모든 잔인한 남자들, 그리고 삶의 다른 관계에서는 잔혹함과 거리가 먼 수많은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는 자신의 물건thing이라는 생각을 은근히 즐기고 있다. 이런 남자들은 분개하면서 "내 것을 가지고 내 맘대로 못한단 말인가?" 라고 물을 준비가 되어 있다. (p101)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 폭력은 여성들의 삶에 만연해 있는 특징이다. 이것은 남성 우위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 하에서 남성성을 구성하는 데 폭력이 핵심ㅇ르 이룬다는 걸 확실히 주장하려는 것이다. 드워킨이 주장하듯, 남자가 되는 과정에서 소년은 폭력에 적극 참여하도록 사회화된다. (p508)

 

<페미사이드>에서 이야기되었던 수많은 폭력의 사례들이 머릿 속을 맴돌았다. 큰일이다. 이렇게 소설에 만연해 있는 가정 내 폭력이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육체적 정신적 폭력의 내용을 읽을 때마다 이 책이 떠오르고 그래서 속에서 분노가 쌓이니 말이다. 

 

 

 

"나이지리아 정부가 혼외 관계를 하는 여자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 지 못 들어봤죠? 성폭행을 당했든 노예로 유럽 집창촌에 팔려왔든 개의치 않는다는 거 알아요?"

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문에 실린 기사를 봐서 알고 있어요."

"내가 어렸을 때 한 여자가 돌에 맞아 죽는 모습을 볼 적이 있어요. 맹세컨대 난 절대 안 돌아가요."

(p212-213)

 

 

덴마크에서 성매매활동을 하거나 그런 활동을 하다가 관련 정보를 제공한 여자들은, 한동안(100일?)만 머물다가 본국으로 송환된다고 한다. 피해 여성들은 본국으로 송환되는 즉시, 공항에서 다시 그 포주 내지는 주인에게 끌려가서 심하게 맞은 후 다음 비행기로 다시 덴마크에 돌려 보내지고 거기서 다른 위조 여권을 가지고 다시 성매매를 하게끔 한단다. 돌려보내지 않으면 안되나? 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법이 그러하니 그럴 수 없다는 거다. 이게 현실이라는 것. 그 여성들은 어디에서도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 그대로 살거나 그렇게 살다가 매질로 죽거나, 도망치려다가 잡혀 죽거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포주에게 얻어맞은 여성들 사진을 비롯해서 항문 성폭행으로 인해 직장이 파열된 어린 여성 사진, 온몸이 담뱃불로 지져 생긴 화상 흉터투성이인 여성들 사진도 있었어요. 그 여성들은 모두 세 가지 공통점이 있었죠. 외국 여성이라는 것, 크리스티안순에 몰래 숨어 산다는 것, 그리고 덴마크에서 추방당할까 봐 무서운 나머지 어떤 형태든 관청에 도움을 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었어요." (p295)

 

"나는 그의 집에서 4일을 지냈어요. 그는 내가 저항을 멈출 때까지 몇 번이고 나를 성폭행했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됐어요. 그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자 나를 때리는 일도 줄어들었고 내게 먹을 것도 줬어요. 그의 집에 오는 친구들도 섹스를 하고 싶어했어요. 이제 이러나저러나 나는 상관이 없었어요.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 그냥 신경을 끊어버렸죠." (p304-305)

 

 

이런 여성들을 돕는 단체가 있었고 암암리에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어디나 마찬가지로 그 속에는 순수한 의도를 가진 사람도 있었지만 자신의 이득을 철저히 취하는 사람들, 자기 살자고 그들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사회의 변방에서 학대받고 고통받던 여성들은 다시 또 다른 이유로 살해되고 사라져 갔다. 이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내내, 분위기가 음산하지는 않았지만 내용 자체는 참으로... 참기 힘들었다.

 

소설을 읽을 때 관점이 많이 바뀐 것을 요즘 절실히 느낀다. 여성주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수많은 소설에서 접했던 낭만도 폭력이 (낭만은 개뿔) 되어버렸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폭력이 말 그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로 다가와 소설 내용에서 너무나 도드라져 보인다. 가끔은 작가의 관점 (이 책은 그런 관점은 아니었다. 플레인한 기술이었고 사회 현실에 대해서 담담하게 그리고 너무 비참하지 않게 쓰고 있을 뿐이다)에서 남성성이나 가부장제의 느낌이 너무 들어 읽기 싫어질 때도 있다. 이전에는 내가 좋아했던 작가임에도. 어쪄면 소설은 소설일 뿐인지라 포장이 가능할 지 몰라도, 그 속에 투영된 현실이 가끔 너무나 암담하다. 좋은 연휴에, 이 생각 저 생각 머릿 속에서 많이도 스쳐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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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성의 신화 - 새로운 길 위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
베티 프리단 지음, 김현우 옮김, 정희진 / 갈라파고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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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 프리단이 이 책을 처음 쓸 당시는 지금부터 50년도 더 전이었다. 그 때는 세계대전이 두 차례나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시기였고 그래서 일자리가 부족했고 가난했고 불안정한 시기였다. 그래서 미국의 여성들은, 서부 개척시대에 남성과 동등하게 그 땅을 일구어나갔던 그 미국 여성들의 위상은 오히려 그 시절에 더 퇴보한 상태였다. 여자란, 여자의 의무란, 원래 여자의 역할이란, 이런 이야기들을 어릴 때부터 주입했고 그렇게 큰 여성들은 마음 속에 채워지지 못한 뭔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정한 규범, 타인의 눈초리에 따라 살 수 밖에 없는 시기였다. 베티 프리단은 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일들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가를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이고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표현 자체가 매우 과격해서 불편하기까지 했었지만, 결국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여성성에 갇혀 자신을 펴나가지 못하는 여성들을 교육을 통해 자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여성이 여성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을 옥조여 사는 삶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성은 중요한 여성적 특징을 상실하는 큰 비용을 치러야만 지성을 얻을 수 있다... 여성을 관찰한 의견들은 모두 여성이 자신의 따뜻하고 직관적인 지식이 냉철하고 비생산적인 사고에 의해 희생됨으로써 지적인 여성이 남성화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p320)

 

늘 재미나게 생각하는 것은, 언론이 지도자격의 여성을 대하는 태도이다. 어릴 때 영국의 마거릿 대처 수상에 대한 기사가 났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진 중의 하나가, 대처가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는 장면이었다.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그 사람이 난데없이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어색한 모습이라니. 그러니까 기사의 논조는 그거였다. 아무리 철의 여인이라도 집에서는 요리를 하는 '자애로운 아내이자 엄마' 라는 것이었다. 내가 아직까지 그 사진을 기억하는 건, 내용과 어울리지 않게 대처의 모습이 너무 어색했던 탓이다. 그리고 생각했었다. 아니 이 사람이 요리를 하는 것과 수상이라는 직위는 어떤 연관이 있는 거지?.. 이런 관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 현존하는 가장 일 잘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메르켈 총리에 대한 기사에도 가끔, 그녀가 장을 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옷이 한벌이야, 맨날 같은 것만 입어 이런 패션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그러니까 여성이 한 나라의 지도자를 하는데, 그 성별에 따른 역할을 '그래도'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고나 할까. 이 사람은 이래도 남자는 아니야. 그럴리가 없쟎아. 이런 관점. 남성들이 지도자를 할 때는 이런 모습을 찍지 않는다. 서점에 가는 모습,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습, 반려견과 신나게 노니는 모습, 피곤해서 소파에 누워 쉬는 모습... 지적인 여성은 남성적이라는 의도를 깔고 이야기하는 이런 관점들은 지금도 너무나 만연하다.

 

 

하지만 여성들 자신은 왜 빗발치는 비난에 가만히 있었을까? 문화가 여성을 독립적인 자아로 성장하는 것을 막고, 법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교육적으로 여성이 성숙되는 것을 차단했다면, 이런 장벽들이 무너진 후에도 여성이 집이라는 피난처를 찾기가 여전히 더 쉬웠다. 여자가 독자적으로 세상에서 살아가기보다 남편과 자식을 통해서 사는 것도 훨씬 쉬워졌다. 왜냐하면 그녀 자신도 남자아이와 마찬가지로 여자아이도 성숙하게 하지 못하는 똑같은 어머니 밑에서 자라난 그 어머니의 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유는 무서운 것이다. 마침내 어른이 되어 수동적인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자가 성숙하지 않으면 더 잘 될 것이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강요하는 문화 속에서 애써 주부나 엄마 이상의 존재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p368-369)

 

 

이게 미국만의 문제일까. 지금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딸이 시집을 잘 가면 만사 오케이라는 사고방식은 여전하다.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는 것도 시집을 잘 가기 위한 방편이 되기도 한다. 요즘 남자들은 약아서 직장 없는 여자 싫어해.. 이게 만연한 말이다. 여자들은 좋겠어, 안되면 취집하면 되쟎아. 이런 말을 농담처럼 한다. 일부의 여성들은 그런 말에 기댄다. 쉬우니까. 어쩌면 그런 노력들은 사회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버티며 일하는 것보다는 쉬운 길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좋은 화장품을 쓰고 좋은 옷을 걸치고 남자들이 좋아하는 외모로 성형을 하고 피부를 가꾸기도 한다. 시집을 잘 가는 것이 무엇인지, 남자에 기대어 살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게 어떤 상태인 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집이란 걸 잘 간 사람에 대한 부러움은 부모님에게나 동년배의 여성들에게나 다 느껴진다. 그리고 아무리 사회적으로 전문직을 가지고 성공을 해도 결혼에 실패하거나 그다지 조건이 좋지 않은 남자와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뒤에서 그런다. 역시 넘 배우면 안돼. 여자는 적당히 배워야 해. .. 베티 프리단의 글을 읽으면서, 이게 50년 전의 이야기인데 말이다, 어째서 현재진행형인 것처럼 느껴지지. 라는 생각에 좀 씁쓸했더랬다.

 

그래서 소비를 조장하고 집안일에 더 신경을 쓰게 만들고 성적인 부분에 에너지를 쏟게 하고 아이에게 자신이 못다 이룬 인생을 걸게 한다. 사회가 이런 식으로 여성을 가정에 묶어 두고 다른 생각을 못 하게 한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조금 불편했던 부분도 있었다. 

 

 

몇십 년 전, 정신적으로 저능한 사람을 연구한 보고서는 집안 일이 정신박약 소녀들의 능력에나 적합하다고 기록했다. 많은 도시에서 가사 노동자로서 정신박약 환자들을 많이 요구했는데, 그때는 지금보다 집안일이 훨씬 어려웠다.

자녀 교육, 실내 장식, 식단 짜기, 가계 예산, 오락에 관한 기본적 결정을 내리려면 물론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성성의 신화가 갖는 부조리함을 목격한 몇 안 되는 가족 및 가정 전문가들 중 한 사람에 따르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집안일은 대부분 "여덟살 난 아이라도 할 수 있다." (p449)

 

 

여성이 필요한 교육을 못 받게 되고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여 출산을 하게 됨으로써 가정에 얽매이게 된 결과 집안일을 하게 되는 과정에는 반대한다. 더 많은 능력이 있는데 그것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릇된 일이고 사실은 가증스러운 사회의 일면이다. 하지만, 집안일 자체에 대한 이런 폄하는 개인적으로 조금 받아들이기 힘든 과격한 표현이었다. 저자는 동성애에 대해서도 같은 실수(?)를 범하는데, '아이가 동성애자인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남성과 경쟁하는 해방된 여성이 아니라 여성성의 신화의 모범이다 (p481)" 이라고 하면서 아동 병리 증세나 난잡한 성교까지도 엄마의 여성성에서 기인한다고 한 부분에는 백프로 동의하기 힘들었다. 굉장히 다층적인 원인이 있을 수 있는 결과에 대해서 하나의 원인을 너무 부각시킨 것은 아닌가 싶었고 동성애에 대해서는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말하는 것은, 이렇게까지 과격한 표현을 써가며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능력이 있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집에 가두지 말라, 는 것이다. 여성들이 못 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에 휘말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그냥 그렇게 되다보니 속에 많은 것들이 쌓이는 것이지,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할 수 있는 바를 제시하면 충분히 날아오를 수 있다, 그 얘기이다.

 

 

그 함정의 열쇠는 물론 교육이다. 여성성의 신화는 여성에게 고등교육을 허락하는 것이 회의적이고 불필요하며 위험해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교육이야말로 미국 여성들을 여성성의 신화라는 끔찍한 위험에서 구했으며, 앞으로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610)

 

교육이 '여성의 역할'이라는 낡은 이미지와 타협하고 영합하는 것을 그만두는 순간, 소녀들은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 불꽃과 새로운 상을 키울 수 있다. 교육은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에게도 인간 진화의 모형이며, 원형이어야 한다. (p627)

 

 

내가 이 책을 읽고나서 사실 가장 감명을 받았던 부분은 <나오는 말>에서였다. 수많은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을 펴냈던 베티 프리단은 그냥 그렇게 안주한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페미니스트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정치운동과 사회운동을 벌였고 여성들이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지게 함으로써 평등과 인간의 존엄성을 찾도록 노력했으며, 임신중절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이 선진적인 저자는 책만 쓴 게 아니라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상황을 더 낫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점에서 나는 이 책 전체에서 조금씩 불편했던 부분들을 다 잊을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노력으로 지금 미국의 여성 인권, 나아가 세계의 여성 인권이 더 나아질 수 있었으리라는 예측, 그리고 그것이 베티 프리단을 살아있게 만든 원동력이었으리라는 예상들이 나를 기쁘게 했다. 아마 앞으로의 50년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면, 역시 실천하는 여성주의자들이 늘어나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것이 정치일 수도 있고 사회일 수도 있고 혹은 일상생활에서의 활동일 수도 있을 게다. 그리고, 그것은 여성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동등함을 추구하기 위한 남성들의 합류가 수반되어야 완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두꺼워서 읽는 내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역시나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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