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첫 구입이다. 월이 나뉘어져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일년이 365일로 쭈욱 연결만 되어 있다면 6월엔 그만 사고 7월에 사야지, 이런 얘길 못할 게 아닌가. 그러면 뭔가를 끊는 지점없이 계속 하는 느낌이 들테고. 이러나 저러나 조삼모사이기는 하지만, 월별로 뭔가를 하는 기분은 나에게 새로운 시작을 매번 하게 하는 것 같아, 마음에 든다. 암튼 그래서 지난 세월은 다 잊고 7월 들어 '첫' 구입했다.. 라고 강조하고 싶어서 주절주절 댄 거다.

 

 

 

워낙 코로나가 극성이니까.. 오늘 드디어 총리가 교회 예배 이외에는 행사 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해외여행도 자제해달라고 했으니.. 우리의 세상은 정말 2020년 전과 후로 나뉠 모양이다. 그래서 슬라보예 지젝이 썼다는 이 책이 나왔길래 냉큼 구매. 지젝은 이 현상을 뭐라고 했을까, 궁금해서. 포스트코로나 뉴노멀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 판이니.

 

바이러스 감염병은 이렇게 한 순간에 예외적 비상사태를 정상 상태로 바꾸어버렸다. 얼마 동안 지속되다가 일상으로 돌아가리라는 전망은 시들고 바이러스와 동거하는 새로운 일상, 이른바 ‘뉴노멀’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 지젝은 그 뉴노멀을 새로운 공산주의라고 지칭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산주의는 물론 구닥다리 공산주의나 막연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정치 원리다. 개인을 버리고 공동체의 집단성을 내세우는 권위주의의 논리가 아니다. 오히려 이미 진행되고 있고 많은 사람이 필수적이라고 느끼는 조치, 더러는 이미 시행되기도 한 조치들을 지칭하는 명칭으로서의 공산주의다. 마스크, 진단키트, 산소호흡기 같은 의료장비부터 곡물 생산과 실업 등, 생명과 생존에 관련된 물품의 생산과 공급을 시장 메커니즘에 의탁하지 않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조절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알라딘 소개글 中)

 

 

 

소설이 빠질 수 없지.

 

<레이디 맥베스>는 내가 좋아하는 류의 소설이다. 일단 제목부터가 마음에 들고... 작가의 초기작이라니 흥미진진이다. 사랑을 위해 세 차례에 걸쳐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강렬한 작품이라.. (알라딘 소개글 中) 그 배경이 무엇일지 심리 묘사는 어떻게 하고 있을 지 기대된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은 워낙 페이퍼로도 많이 올라온 책이라 한번 봐야지 하고 있었다. 1, 2권으로 나뉜 게 부담스러워서 일단 1권만 구입했고. 재미있으면 2권까지 사봐야지.

 

부모님의 죽음 이후 할머니와 이모의 손에 맡겨진 캐머런은 빠르게 어른이 되어간다. 영원히 함께할 것 같던 아이린이 떠난 뒤 열여섯 살이 된 캐머런 앞에 모든 걸 바꾼 단 한 사람, 콜리가 나타난다. 그러나 콜리와 캐머런의 아슬아슬한 관계가 탄로 나자, 캐머런의 이모는 동성애 전환치료를 하는 기독교 시설 ‘하나님의 약속’에 캐머런을 보내고 만다.  캐머런은 시설에서 입소생들의 다양한 상처와 욕망을 목격하고 관찰한다. 어떨 때는 주류사회의 일반적인 삶에 편입되고 싶고, 어떨 때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어 방황하기도 하는, 열여섯 살 캐머런의 여름은 끝내 어디로 가게 될까? (알라딘 소개글 中)

 

 

 

마침 주문했는데 다락방님의 페이퍼가 올라와 더욱 흥미가 유발된 책이다. 생각보다 진지하게 읽어나가야 할 책인 것 같은데.. 지금 읽고 있는 소설책 덮으면 바로 이 책으로 옮겨 탈 생각이다. 물론 그 동안에 <캘리번과 마녀>도 읽고 <스트레이트 마인드>도 읽어야지. 흠냐.

 

『마스 룸』의 주인공은 이십대 싱글맘 로미다. 스트립클럽 마스 룸에서 댄서로 일하며 홀로 어린 아들을 키우다, 몇 달 동안 자신을 스토킹해온 오십대 남자의 머리를 공구로 내려쳐 사망에 이르게 한 죄로 두 번의 종신형에 추가 육 년 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남자는 로미를 미행하고 지켜보고, 그녀의 쓰레기를 뒤져 알아낸 번호로 서른 통씩 전화를 걸고, 곳곳에서 불쑥 나타나 괴롭혔지만 법정에선 그 무엇도 다뤄지지 않았다. 이는 스토킹·강간·여성혐오 범죄에 대해 성인지감수성이 현저히 낮은 태도로 일관하는 사법부를 향해 성토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알라딘 소개글 中)

 

안 그래도 요즘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가 땅에 쳐박힌 상태라 이 구절을 읽는데 갑자기 얼굴까지 열이 치솟아 올랐다. 진정..

 

 

 

상당히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 작가가 50대 후반에 낸 책이다. 모든 걸 남들보다 늦게 했지만, 하면 다 잘해내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북스피어 사장님이 적극 추천한 책이라 (물론 이 책 펴낸 출판사 대표니까 그랬겠지만서도.. 그래도 신뢰 담뿍) 별로 고민하지 않고 구입했다.

 

무엇보다 7월이 되면,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나로서는 적절한 책이 아닐 수 없다. 7월에는 좋은 날들도 많지만, 떠나지 말았으면 했던 사람들이 떠난 날들이 들어있어 사실, 조금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보내게 된다. 가끔 몸도 안 좋아지는 것 같고, 이 시기가 되면.

 

 

 

 

 

 

 

 

페미니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으로.. 이제까지 역사적, 과학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모든 방면에서 전방위적으로 여성이 간과되었다는 것을 절렬히 느낀다. 우리가 접하는 사상가들이나 전면에 나서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들이고 그래서 일반화시켜 말한 좋은 사상 속에서도 여성의 경험과 지위와 처우는 잊혀져 있는 경우가 허다함을 다시금 알게 된다.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기술과 노동, 의료, 도시계획, 경제, 정치, 재난 상황 등 16가지 영역에 걸쳐 데이터 공백이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차별의 단면을 면밀하게 보여준다. 그간 은폐되고 누락되었던 여성의 관점과 지식을 복원하는 것이 남녀 모두, 나아가 세상에 어떤 이득이 되는지 시사한다. 방대한 통계 자료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젠더를 둘러싼 끊임없는 논쟁과 잘못된 편견을 불식시키는 동시에, 보다 합리적이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무기를 제공할 것이다. (알라딘 소개글 中)

 

저자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누락된 여성. 은폐된 여성의 관점. 애써 지워진 여성의 업적... 재미있는 책이 될 것 같다.

 

 

이외에도 며칠 전에 두 권을 오프라인으로 구매헀다. 내가 아는 친구가 서점을 해서 가끔 오프라인으로 이 곳에서 구입하곤 하는데, 소중한 책들을 친구의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어서 괜히 기뻤다.  

 

 

 

 

 

 

 

 

 

 

 

 

 

 

 

 

 

 

읽을 책이 많으니 잠을 줄여야 하나, 술을 줄여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오후다. 아. 배고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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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7-08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도 술도 잠도 포기할 수 없는데... 회사를 포기할까요? ( ˝)

비연 2020-07-08 13:16   좋아요 0 | URL
막 동의하고 싶은데... 그냥 동의하기에는 넘 무거운 생활의 현실이 있어서.. ㅜㅜ
그러나, 전 다락방님을 응원합니다! (응??)

다락방 2020-07-08 13:21   좋아요 2 | URL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회사를 포기하면 책을 살 수 없겠지요?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단발머리 2020-07-08 14:36   좋아요 1 | URL
두 분의 책과 술과 안주와 잠과 회사를 응원합니다! 제일 많이 응원하는거는... 책구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20-07-08 15:18   좋아요 0 | URL
이것이 인생의 비애라고나 할까...
회사를 포기하자니 책도 술도 포기해야 하고 책도 술도 하자니 회사를 포기해야 하고..
... 다 갖추며 살 순 없는 거겠죠. 철푸닥.

비연 2020-07-08 15:18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회사는 ‘포기‘를 응원해주세요 ㅎㅎㅎㅎㅎㅎㅎㅎ

단발머리 2020-07-08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비연님께 도착한 책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어서... 페이퍼를 급하게 읽어야하는 관계로... 비연님은 어여 읽으시고 어여 페이퍼를!!!
전 내일부터 <사라진 후작> 읽을거에요. 비연님 서재에서 이전부터 찜해두었는데, 비연님 읽고 계시네요? 그럼 우리는 겹치는 책이 두 권이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07-08 14:41   좋아요 0 | URL
비연님... 좋아요 해주신 <보이지 않는 여자들> 피드 삭제했어요ㅠㅠ 읽었어요 아니고 읽고 싶어요 인데...ㅠㅠ

다락방 2020-07-08 15:03   좋아요 0 | URL
저 안그래도 ‘단발님은 대체 이걸 언제 읽으신거지?!‘ 했는데 잘못된 표기였군요. ㅎㅎ

단발머리 2020-07-08 15:08   좋아요 0 | URL
저 진짜 이 분들이 좋은데... 가끔 깜짝 놀라요! 이 분들은 제가 요즘에 뭐 읽는지 다 알고 있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아, 매의 눈! 독서목록 CCTV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20-07-08 15:20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을 벌써? 하는 놀라운 마음에 댓글을 냉큼 남겼는데 말이죠..ㅎㅎ;;;;
<사라진 후작>은 가볍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읽고 재밌으면..나머지 다섯 권도 사야 하나?
막 괴로와지려고 하는 시점이긴 합니다만... 단발머리님과 책이 두 권 겹치다니! 캬캬.
다만, 나머지 하나(?)는 진도가 영 안 나갑니다.. 를 고백. ㅜ

잠자냥 2020-07-08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 달에 <펜데믹 패닉>은 사보려고요. 다른 코로나 관련 책은 걍 스킵했는데, 지젝이 뭐라고 했는지는 궁금하더라고요.
<레이디 맥베스>랑 <사라지지 않는 여름> 사셨군요! 재미나게 읽으세요~

단발머리 2020-07-08 15:06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이 스킵 안 하고 읽기로 하셨으면... 나도 읽어야 하는거 아닌가...
잠시 숙연한 고민의 시간 .....

잠자냥 2020-07-08 15:13   좋아요 1 | URL
제가 곧 읽고 리뷰든 100자평이든 올리겠습니다. (응? 아직 사지도 않았으면서? 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07-08 15:16   좋아요 1 | URL
아... 잠자냥님 댓글 보는 순간... 나도 왠지 <팬데믹 패닉> 읽게 될거라는 그런 어떤 묘한 예감이 드네요. 즐독하세요!

비연 2020-07-08 15:20   좋아요 0 | URL
이거이거, 사기는 제가 먼저 샀는데, 잠자냥님이 먼저 리뷰를 올릴 것 같은 예감이!
단발머리님도 얼른 합류하세요 ㅎㅎㅎㅎ

레삭매냐 2020-07-08 1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신청한 <마스 룸> 대기 중입니다.

요상하게도 구간은 희망도서로 안 받아준
다고 하네요 그것 참.

잠자냥 2020-07-08 15:14   좋아요 1 | URL
저희 도서관도 출간 5년 지난 책은 신청 안 받더라고요.

단발머리 2020-07-08 15:17   좋아요 1 | URL
저희도요. 도서관 정책이 그런가봐요.

비연 2020-07-08 15:21   좋아요 0 | URL
아. 전 도서관을 이용해본 적이 없어서 이걸 몰랐네요.
그러니까 나온 지 얼마 안 된 책들만 받아주는군요.
... 그러나저러나 집 앞 도서관은 생겼으면 좋겠어요. 빈 공터를 바라보면 한숨만.. 푸욱....

비연 2020-07-08 15:23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 <마스 룸> 읽고 리뷰 남겨 주세요~
저도 얼른 읽고 글 남기려고 하는 중... 바쁘다 바빠..ㅎ
 

 

 

 

 

 

 

 

 

 

 

 

 

 

 

좌우간에 공공부조의 도입은 노동자 및 자본이 국가와 맺는 관계의 전환점이었고 국가기능의 정의를 바꾼 계기였다. 그것은 전적으로 굶주림과 공포라는 수단에 의존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존속할 수 없다는 점을 최초로 인정한 것이었다. 그것은 계급관계의 보증인이자 노동인구 재생산과 훈육의 제1감독기구로서의 국가를 재건하는 첫 발걸음이기도 했다. (p136)

 

봉건제는 페스트와 전쟁으로 인한 노동력 상실과 실질임금 상승으로 인해 그 기반이 무너져 내렸고 그렇게 노동계급이 나타나 지역적으로 단결하여 저항하게 되자 국가가 나서게 되었다. 자본주의로의 이행 과정에서 국가가 조치를 취하는 순간이 오게 된 것이다. 그 맥락에서 공공부조라는 것이 생겨났다.

 

 

이 새로운 "사회과학"이 출범하면서 오늘날의 복지논쟁을 예견하는 국제적인 공공부조 관련 논쟁이 전개되었다. 소위 "자격 있는 극빈자"인 노동무능력자만 공공부조의 혜택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신체 건강한" 노동자도 혜택을 받아야 할 것인가" 그리고 혜택을 얼마나 많이 또는 적게 줘야 구직의욕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인가? 공공부조의 주된 목적이 노동자를 일터에 묶어두는 것이었던 만큼, 위 사항은 사회규율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들에 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p137)

 

공공부조는 시혜가 아니라, 노동력 규제의 수단이었다. 남아도는 인력이 없게끔, 국가가 한 곳에 수용해서 그들에게 노동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끔 하는 제도였다.

 

 

16세기 잉글랜드에서는 아이건 어른이건 "구빈원(work-houses)"에 갇히는 조건 하에서만 부조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거기서 그들은 각종 노동계획표의 실험대상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인클로저와 가격혁명에서 비롯된 노동자에 대한 공격은 한 세기가 지나면서 노동계급의 범죄자화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 신축 구빈원이나 교정원(correction-houses)에 감금되어 노동하거나, 아니면 항상 채찍과 교수대의 올가미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법 외부에서 생존을 모색하고 국가를 공공연하게 적대시하는 대규모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형성되었다. (p138)

 

 

이 부분을 읽는데 문득 최근에 본 영드가 생각났다. <콜 더 미드와이프(Call the Midwife)>.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 세계대전 이후의 영국 이스트엔드의 수녀원에서 조산사로 일했던 Jennifer Worth의 실제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든 영드인데, 시즌 1 에피소드 1의 지루함만 극복하면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인 드라마이다. 이제는 나이든 Worth의 목소리가 바탕으로 깔리면서 그 시대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즌 1의 에피소드 5화에 구빈원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나이든 남매가 있다. 그들은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구빈원에 가 살아야 했다. 7살이었던 오빠는 어린 여동생의 보호자가 되었고 그 속에서 갖은 고초를 겪는 중에도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여동생은 구빈원에서 청소업무를 맡았고 온종일 닦고 쓸고 하는 일만 하느라 인간다운 생활을 못한다. 오빠는 그 곳을 뛰쳐나와 여동생을 그 곳에서 빼내기 위해 온갖 일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여동생을 구출(!)해나와 둘이 오손도손 살아가게 된다. 여동생은 수녀원에서 청소를 하는데 예전 구빈원에서의 습관을 못 버린 채 깨끗하게 하는 데 엄청 집착하고 오빠는 그런 여동생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구빈원은 그런 곳이었던 거다. 가두어 두고 노동을 착취하던 곳. 약간의 물질을 제공하면서 사람을 사육하던 곳. 그 곳은 편안히 안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탈출해야 하는 장소였던 거다.

 

그 에피소드에서 사실 그 남매는 부부와 같은 사이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조산사들이 모여서 근친상간 아니냐며 수근거리자 그 얘기를 옆에서 듣던 나이든 수녀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구빈원이 어떤 데인 줄 알아요? 알면 그렇게 말 못합니다."

 

어쩌면 종교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그 상황에서도, 오히려 수녀님들은 이해했다. 세상 천지에 의지할 사람이 서로일 수 밖에 없었던 남매에게, 그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고. 오빠가 암에 걸려 죽고 여동생은 그 오빠 곁에서 모르핀을 먹고 죽는 길을 택한다. 발견한 수녀님은 이렇게 얘기한다. 이제 진정 편안하게 잘 수 있을 거라고.

 

<캘리번과 마녀>에 나온 구빈원에 대한 내용을 읽고, 그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면서 <콜 더 미드와이프>의 이 에피소드를 떠올리니, 이런 짓이 참 할 짓이 못되는 일이었음을,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을 이해하려면 그냥 그 현상만이 아니라 흐름을 보고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수녀님들처럼. 종교에 얽매여 제도에 얽매여 손가락질할 게 아니라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음을, 개인이 뿌리치지 못했던 불행한 국가적 속박이었음을 먼저 이해해야 하는 거구나...

 

 

 

 

 

 

 

 

 

 

 

 

 

 

 

 

 

 

책도 있고 Audio CD도 있어서 한번 사볼까 한다... 결국 또 지름신 안착. 하지만 <캘리번과 마녀>와 <Call the Midwife>와의 접점을 발견한 것은, 내게 때아닌 기쁨을 안겨준다. 이런 것 때문에 책을 읽는 게 아닐까. 그러니 사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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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7-07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니 사도 된다, 라는 문장에 오늘 페이퍼는 설득력이 가득가득합니다. 사셔도 됩니다, 비연님.

비연 2020-07-07 12:19   좋아요 0 | URL
그쵸? ㅎㅎㅎㅎㅎ 그래서 지금 보관함에 푱 넣고 장바구니로 옮기기 직전입니다 ㅋㅋㅋ
 

 

1.  엄마와

 

오늘은 엄마와 아침에 나들이를 나갔다. 작은 가구 하나 살 게 있어서 집 근처 몇 개 매장을 기웃거리며 다니다가 결국 마음에 드는 가구는 없어서 액자 몇 개만 달랑 사들고 나왔다. 점심 시간이 다가와 어디를 갈까, 칼국수를 먹을까, 뭘 먹을까 하다가 너무 더워서 그냥 근처 파스타집에 들어갔다. 그 곳에는 세 번째인가. 처음에 문 열었을 때 갔었고 아빠가 친구분들과 여행 가셨을 때 둘이 슬슬 산책 나와 갔었다. 엄마와 둘이 그 얘길 하는데, 왠지 마음이 몰랑몰랑해지는 것 같았다.

 

엄마는 크림 소스 파스타를 드시고 나는 약간 매운 토마토 소스 파스타를 먹었다. 매주 본가에 가고 같이 서너 번 식사는 꼭 하는 편인데도 엄마와 나의 수다는 끝도 없다. 아빠가 어느 날은 문득, "둘이 도대체 맨날 무슨 얘기해?" 하며 스윽 지나쳐서 엄마랑 박장대소한 적도 있었다. 나와 엄마는 늘 친구같은 사이였기에 주변 사람에 대해서도 다 공유하고 내 생활도 다 공유하고 엄마 생각도 다 공유하고... 이제 연세가 드셔서 깜빡깜빡 하시는 바람에 자꾸 같은 걸 물어봐서 어떨 때는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그렇게 끝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면 내 마음이 막... 안스럽고 미안하고 해서 다시 또 부드러운 모드로 돌아가긴 하지만.. 자식이란 암튼 늘 부모에겐 웬쑤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씁쓸해지기도 한다.

 

이제 짐 챙겨 가야지 하니까 바리바리 반찬을 싸주신다. 나물 몇 가지 종류와 오징어 무친 것과... 이러지 말라고 매번 얘기해도 엄마는 항상 이렇게 반찬을 챙기신다. 사먹으면 된다고, 힘들다고 아무리 만류해도 소용이 없어서 이제는 "잘 먹겠습니다.." 하고 돌아온다. 엄마가 해주는 반찬은, 본가에 살 때는 잘 못 느꼈었는데, 나와 살다보니 정말 보약이다 싶다. 사먹는 것과 어떻게 비교가 되겠는가 마는.. 연세 드셔서 이렇게 딸 반찬 챙기시느라 동분서주하실 엄마가 너무 힘들 것 같아 늘 마음이 쓰인다. 집에 와서 엄마랑 산 액자에 가족사진을 넣은 후 사진을 찍어 보내드렸더니 "예쁘다. 잘 샀어, 그치?" 라고 답을 보내신다. 나도, "그러게, 넘 잘 샀지 뭐야.. ㅋㅋㅋ" 라고 답을 보낸다. 이렇게 엄마와 나들이 하고 밥을 먹고 메세지를 주고받는 일상이, 참 소중하다.

 

 

2. 책과

 

어제는 미야베 미유키의 <세상의 봄>을 내쳐 읽어버렸다. 역시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소설은, 늘상 비슷한 얘기 같은데도 이상하게 재미가 있고 따뜻해진다. 이 책은 다른 에도 소설보다 좀더 잔인하달까, 받아들이기 힘들달까.. 라는 느낌을 주긴 하지만, 어쨌든 누군가는 이 세상에서 제대로 버티며 살아가는 것은 외로운 일이고, 주변 사람들의 지지가 큰 도움이 된다.. 라는 메세지는 변함이 없다.

 

 

미미여사의 책에서는 '여성'이 강인하게 나오는 것도 마음에 든다. 물론 그 시대의 정서상 (우리나라 옛날도 마찬가지겠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많은 것들을 감내해야 한다는 부분은 있지만, 그럼에도 밝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주도하고 그 속에서 선함과 굳건함을 지키며 주위 사람들의 버팀목이 되는 사람은 늘 '여성' 캐릭터이다. 작가가 여성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여성의 역할이 정말 그렇게 컸던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아도, 환란 중에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남편과 아이를 보다듬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이끌어 내어 하나씩 둘씩 나아지는 세상을 만들어내었던 사람들도, 대부분 여성이 아니었나 싶다. 신분제와 역사를 기술하는 사람들이 남자라는 것 등에 묻혀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일본도 매한가지였는가.. 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었다.

 

 

3. 다시 책과

 

 

이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직 몇 장 못 읽어서 뭐라 말할 것은 없지만.. 누군가는 어렵다고 하고 누군가는 내 스타일이야 하고.. 나도 읽어봐야 알겠으나 얇다고 대충 읽을 내용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한 듯 하다. <캘리번과 마녀>에 빠져 이 책에 신경을 못 쓰고 있었는데, 소설 읽느라 며칠 보냈으니 이제 이걸 읽어보자 라는 마음이다.

 

 

 

 

 

 

 

 

 

 

 

4. 나와

 

예전과는 다르게, 일요일을 이렇게 가족과 책과 보낸 후 저녁에 나를 바라보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게 어느새 너무나 편안해졌다. 누구를 만나고 시끌벅적하게 지내는 것도 살면서 필요하겠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차분하게 주말을 보내는 편이 나를 정돈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맥주 한 캔 마시면서 못다한 일도 하고 책도 좀더 들여다보다가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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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봄 - 상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7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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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으로 따지면 슴슴한 맛에 속하는 미미여사의 에도시대 소설은, 그럼에도 잡으면 밤을 새워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 시대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그려져서이기도 하고, 세상에 악인은 없는 듯 참 올곧은 사람들이 많이 등장해서인 것 같기도 하다. 얼른 하권으로 휘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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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기도 전에 이 책이 내게 맞을 것 같아,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근데 이 책은 그랬다. 계속 보관함에 두고 급기야 사면서, 이 책은 나한테 맞을 거야 라는 절렬한 느낌이 쫘악 끼쳤었다. 그리고 요즘, 드디어 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서 그 느낌을 확인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실비아 페데리치라는 근사한 사람과의 만남에 가슴이 두근거릴 지경이다.

 

임금노동과 "자유로운" 노동자의 출현을 자본주의와 동일시하는 맑즈주의적 시각은 재생산의 영역을 은폐하고 자연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또 <대캘리번>은 미셸 푸코의 신체 이론에도 비판적이다. 신체를 복종시키는 권력기술과 훈육에 대한 분석은 재생산과정을 무시하고, 여성사와 남성사를 무차별적인 단일체로 융합시키며, 여성의 "훈육"에 너무나 무관심하여 근대 들어 신체에 가해진 가장 소름끼치는 공격 중 하나인 마녀사냥을 일체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22)

 

마르크스와 푸코는 훌륭한 학자이고 시대의 흐름과 사상을 바꿀 만한 저작을 내놓은 사람들이다. 그들 이론 전부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으나, 여성주의 책들에서 특히 최근의 책들에서 계속해서 비판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어쩌면 어쩔 수 없는) 남성주의적 시각이다. 역사와 사상의 맥락에서 여성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음으로 인한 맹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실비아 페데리치의 이 언급에서도 나타났듯이 말이다. 이런 대목을 읽을 때마다 왠지 통쾌하다. 남들은 못 찾는 그 틈새를 찾아낸 그들도 멋지지만, 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완전히 동감할 수 있다는 점도 멋지게 느껴진다.

 

<캘리번과 마녀>가 제기하는 더욱 심오한 질문은 자본주의 발달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신체에 대한 여성주의적 분석과 푸코식의 접근을 대비하는 데서 나타난다. 여성운동 초기부터 여성주의 활동가 및 이론가들은 남성지배의 근원과 여성의 사회적 정체성의 구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핵심은 "신체"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주의자들은 여러가지 상이한 이데올로기들을 넘나드는 과정에서 인간의 능력에 위계적인 등급을 매기고 여성을 육체적 현실이라는 비속한 개념과 동일시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가부장적 권력의 공고화와 여성 노동력에 대한 남성의 착취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35~36)

 

사실상 우리가 <캘리번과 마녀>에서 배울 수 있는 정치적인 교훈은 사회, 경제적 체제로서의 자본주의가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에 항상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그 사회적 관계 속에 짜여진 모순(자유에 대한 약속과 억압의 만연이라는 현실, 번영에 대한 약속과 빈곤의 만연이라는 현실)을 착취대상(여성, 식민지 신민, 아프리카 노예의 후손들, 지구화로 인해 갈 곳 잃은 이민자들)의 "본성"을 폄하함으로써 정당화하거나 애매하게 흐려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 따라서 사본주의를 해방과 연결 짓는다거나 자본주의 체제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능력 때문에 오래도록 지속되리라고 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재생산할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신체에 새겨 넣은 불평등의 그 물망 때문이며, 착취를 지구화할 수 있는 역량 때문이다. 이 과정은 지난 5백 년간 그랬듯 아직오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오늘날에는 투쟁 또한 전 지구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p41)

 

 

이 내용들은 서론에 불과하다. 본문으로 들어가 역사적 맥락을 통해 어떻게 여성이 마녀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박해받게 되었는가를 짚어나가는 과정은 논리정연하고 사실적이며 재미있다. 사실, 그 내용 자체는 재미있다고 말하면 안되는 비참하고도 슬픈 역사이지만, 읽는 사람에게 이런 재미를 주면서 심도깊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책도 드물다. 본래가 역사를 좋아하고 그 속에서 뭔가를 끄집어내는 걸 좋아하는 나같은 독자에게는 정말 최적의 책이 아닐 수 없다. 지금 1장까지 읽었는데, 앞으로도 여러 번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캘리번과 마녀>와 세트같은 책이라 하여, 아직 다 읽지도 않은 주제에 주문부터 덜컥 했다. 뭐 늘상 있는 일이라 이젠 놀랍지도 않지만 (그러나 그 속도에는 나조차도 놀랐다. 섬광같이 질렀다ㅜ) 이 책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올라가고 있다. 읽어야 할 책은 많고 점점 쌓여만 가고 있지만, 이런 책들, <캘리번과 마녀>라든가 하는 책들을 접하게 되면 막 도전의식이 생긴다. 더 열심히 읽자, 이런 결심 아닌 결심도 하게 되고. 

 

 

 

 

 

 

 

 

 

덕분에 7월의 책인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는 꺼내 놓은 것은 6월말이었으나 살짝 뒷전으로 밀려있다. <캘리번과 마녀> 다 읽고 봐야지 라는 마음도 있고 얇으니 금방 읽겠지 라는 마음도 있는데, 먼저 읽어나가는 분들의 페이퍼를 보니, 이게 얇아도 만만치 않아요, 라는 평이 지배적이라, 엥? 얼른 읽기 시작해야 하는 건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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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7-03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페미니즘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캘리번과 마녀>는 열 손가락, 아니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애정도서거든요.
비연님과 느낌 공유네요.🤗

비연 2020-07-04 10:10   좋아요 0 | URL
어멋. 단발머리님이 많이 안 읽으셨다니...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페미니즘 책 상위랭킹에 들겠다 기분이 들어요. 다들 이 책 좋다 하셔서 더욱 힘내어 읽고 있는데 (심지어 7월 책은 뒷전..) 아 재밌네요.
이런 책 너무 좋아요!

syo 2020-07-04 1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섬광같이 ㅋㅋㅋㅋㅋㅋ

비연 2020-07-04 12:24   좋아요 0 | URL
ㅋㅋㅋ 심지어 이미 받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