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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찬 예찬 시리즈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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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미셸 투르니에다. 그의 산문을 읽는 건..또 하나의 색다른 즐거움이요 신선한 만남이었다. 소설과 달리 그의 생각, 관점 등을 좀더 투명한 창 너머로 바라보는 듯한 기분으로 이 책을 읽었다. 자연과 사람과 몸과 이미지, 장소 등에 대해 그가 느끼는 것들을 노골적이지 않은 표현으로 써내려가는 솜씨가 일품이다. 내가 프랑스 사람들의 산문을 좋아하는 건 이런 이유에 있다. 쟝 그르니에나 알베르 까뮈나 기타 등등의 유명한 프랑스 작가들은 어떤 글을 쓸 때 액면 그대로 쓰지 않는다. 그것을 바라보며 비유를 하고 그것을 느끼는 자신의 감정을 또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덧붙여지는 많은 기억들, 일화들. 그 속에서 정말 나도 그들과 같은 심정 같은 정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됨을 느낀다.

이 책은 초반부에는 좀 지루할 수 있다. 어라? 이게 뭐야? 그럴 수 있다. 그리고 내던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인내하며 읽다 보면 그 속에 슬며시 동화되어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난 마치 다른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은 착각 속에서 한동안을 지내야 했다. 후반부에 있는 역자가 직접 저자와 만난 사실에 대한 후기도 인상적이다. 김화영 교수가 이 작가를 국내에 소개했고 그는 끊임없이 그와 교류하며 교감을 나누고자 애쓴다. 그래서 그의 번역은 살아있다.

예찬이라는 제목을 포함한 글을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걷기 예찬, 일상에의 예찬 등등등. 어쩌면 나는 이 단어를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속한 세상에 대한 애정과 그에 대한 기억들을 담은 글들을 접하다 보면 나의 고질적인 부정적 시각와 냉정함이 조금은 덜어지고 좀더 정감어린 시선을 가지게 되는 듯 하기도 하고...글 잘쓰는 그리고 생각많은 작가들의 세상보기에 따라 나 또한 보다 깊이있는 마음을 지니게 되는 듯 하기도 해서겠지...이제 장마도 시작된다 하니..이 주룩주룩 내리는 빗 속에서 자연과 사람과 공간을 벗삼아 지내기에는 이 책이 참 적격이다.

“예찬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어떤 아름다운 음악가, 한 마리 우아한 말, 어떤 장엄한 풍경, 심지어 지옥처럼 웅장한 공포 앞에서 완전히 손들어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예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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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4-06-19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찬이란 말을 참 좋아합니다. 이 책도 읽어봐야겠네요.
프랑스어의 유려함을 제 아는 교수님도 참 만나면 칭찬합니다. 그 분은 나이가 상당히 지긋하신데도 프랑스어 배우시고 계시답니다. 저도 프랑스어를 배워볼까 합니다.
우리 신문이 축구 기사도 '격침, 승전보...'이렇게 전투적인 용어를 쓸 때, 그 사람들은 아주 유쾌한 문구들을 쓴대요. 다 잊었지만...
좋은 주말 되세요. *^-^*

비연 2004-06-20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고등학교 때 독일어를 제 2외국어로 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프랑스어를 조금이나마 해둘걸..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 책 꼭 읽어보시구요..리뷰도 써주세요...좋아하는 것이 비슷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항상 큰 행복으로 다가옵니다.
 
화형법정 동서 미스터리 북스 19
존 딕슨 카 지음, 오정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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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딕슨 카의 작품은...'황제의 코담뱃갑' 을 읽은 적이 있었다...그 때도 신통치 않다고 생각했는데...이건 어떨까 싶어 손에 들었다. '화형법정'...소개글을 보니 약간 등이 오싹한 내용일 것 같아 호기심도 동했고. 결론은....글쎄다. 뭐..좀 오컬트적인 내용을 좋아한다면 읽을만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추리소설이라 하면 뭔가 원인적 연관성을 보이고 거기에 개입된 사람들에 대한 심리적 묘사도 있어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취향에 딱 맞는다 할 수 없었다. 추리소설도 쟝르가 여러가지고 그래서 저마다 좋아하는 작가도 틀리고 주로 읽는 책도 다양하게 분포하니 나만의 취향을 누군가에게 강요하기는 그렇지만.

첨엔 뭔가 있어 보였다. 전반적인 상황이 그랬고 범인이 누굴까 하는 것에 대한 생각에 몰입할 수 있었다. 약간은 음침한 분위기와 등장인물들의 실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들이 내 몸을 감싸고 이게 뭔가...하는 생각에 바짝 긴장하여 읽었는데...좀 실망이었다. 작가는 아마 독자에게 이중의 트릭을 던짐으로써 이 글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책을 덮으며 'so what?" 이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더랬다.

있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닌 것 같아서가 아니라 사건의 전개가 앞뒤가 안 맞고 지목된 범인이 몰아세워지는 과정이 논리적으로 빈약하여 그냥 한편의 2류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존 딕슨 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나의 평에 엄청 반발하겠지만 말이다...(^^;;) 추리소설 중에서도 심리묘사와 치밀한 상황전개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별로 유익하지 않겠다. 심령적인 내용을 좋아한다면 전혀 무방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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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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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생각을 뒤집는다기 보다는 인습적인 사고를 벗어나도록 만든다는 게 더 맞는 얘기인 것 같다. 내가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받은 충격이 아직까지 생생할 정도로 난 이 책을 통해 내가 인지하는 방법이 과연 '내'가 인지하는 것일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더랬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접했던 로빈슨 크루소의 얘기는 어떠했는가. 로빈슨 크루소는 배가 난파되어 우연히 어느 무인도에 살게 되었고 거기서 꿋꿋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방법들을 터득해 갔고 살고자 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프라이데이라는 노예를 가지게 되었고 그 인간성마저 없어보이는 상대를 통해 외로움을 해소하였다...끊임없이 탈출하고자 했던 불굴의 의지는 마침내 지나가던 배를 발견하게끔 하였고 로빈슨 크루소는 드디어 극적으로 무인도에서 벗어나 문명의 세계로 돌아오게 되었다. 훗날 나이가 들어 다시 들른 무인도를 회한에 차 바라보는 로빈슨 크루소. 그는 영웅인 것이다. 백인 영웅.

그러나, 이 책은 그와는 완전히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방드르디(프라이데이를 프랑스어로 바꾼 것)의 관점으로 로빈슨 크루소를 바라볼 때 얼마나 많은 부분들이 달라지던가 말이다. 방드르디는 비겁하고 째째하고 권위적인 백인 남자 로빈슨의 지배 아닌 지배를 당하면서 자신의 자의식을 키워나가고 그 환경에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에 반해 로빈슨은 어느새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고 왕인양 군림하는 그 처지에 점점 매몰되어 사회성은 망각되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무인도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선뜻 잡은 사람은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라 방드르디였다. 로빈슨 크루소는 미약한 자신의 처지와 두려움과 버릴 수 없는 제왕적 지위를 놓고 저울질하다가 무인도에 남는 것을 선택했고 그의 몸종이었던 방드르디는 새로운 세계에 과감히 발을 들여 놓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결말인가 말이다. 같은 책을 두고 이렇게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왔고 관점을 달리했을 때 같은 상황, 같은 인물이라도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지는가를 뼈아프게 알 수 있게 한 소설이었다. 난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놀라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미셀 투르니에는 이 작품이 처녀작이고 40살이 넘어 썼다. 그의 자유분방한 사고와 약간의 삐딱한 시선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이, 내가 만든 것 같아도 수십년간 지탱해온 사회적 환경의 지대한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래서...난 이 작가를 매우 좋아하게 되었고 그의 글들을 즐겨 읽는다.

꼭 한번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두 사람의 인간관계 속에서도 세상에서 숱하게 벌어지는 권력관계가 적나라하게 벌어지고 세세한 심리 묘사가 독특하게 매력적으로 다가와 한번 들면 놓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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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유골 캐드펠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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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피터스라는 추리소설 작가(?)의 작품이다. 오랜만에 공항에서 사든 추리소설을 품에 안고(^^) 비행기를 탔을 때의 짜릿함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이 작품이 내게 좋은 느낌을 준 이유 중에는  정말 좋아하는 추리소설을 너무나 오랜만에 보게 된 기쁨도 있을 것이다. 아뭏든...후배가 괜챦다고 추천을 했고...내가 알지 못하는 작가의 글이기에 선듯 고를 수 있었다. (호기심 많은 나..^^)

일단...배경은 '장미의 이름'과 비슷한 수도원이다. 하지만 다른 점은 주인공은 십자군 전쟁 참여 등 숱한 일들을 겪어낸 50대의 일개 수도사이고 지적인 배경이 뛰어나다거나 뭔가 카리스마적인 특성을 지녔다기 보다는 평범하지 않았던 인생 속에서 지혜를 깨달은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 와 더 비슷할 수도 있겠다. 수도원이라는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사람과 사람의 갈등, 그 속의 죄악들이 섬세한 묘사로 그려지고 있었다. 좋았던 점은...거창한 주제를 어렵게 덤비려기 보다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심리적 측면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작가의 방식이었다.

수도원을 대외적으로 빛나 보이게 하면서 자신의 야심을 채우려는,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원 장과  신에 대한 경외와 자신의 야심을 혼동하는 수도사들, 맞지 않는 길을 과감히 떨치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 그 속에 스치듯 존재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행태가 독특하게 구사된 책이었다. 항상 그렇지만 대의명분을 지향하는 속에서 간과되기 쉬운 인간적인 측면들은 느껴질 때마다 가슴에 저릿함을 안겨주고...그것이 추리소설이라는 틀 속에서 참 빛이 나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추리작가들과 구태여 비교하려 들지 않겠다. 나름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한 이 작가에게 관심이 동하게 된 책이라는 건 확실했고. 또한 결말이 여느 추리소설처럼 "너 범인이지?" 하는 식이 아니라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것으로 매김한 것도 맘에 드는 부분이었다. 시리즈로 나와 있던데 심심할 때마다 한권씩 사들고 읽으면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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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5-27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좋아집니다. 개인적으로 캐드펠 시리즈에서 이 작품이 20위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비연 2004-05-27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더 읽어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더 강렬해지네요. 멋진 추리소설 작가를 만난다는 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저로선, 생활의 색다른 기쁨 중의 하나입니다. 물만두님도 그러시죠? ^^* 당장 두번째 책부터 주문해야겠네요...

물만두 2004-05-27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추리 소설도 그렇고 추리 소설 좋아하는 분을 만나는 것도 기쁨입니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 반양장본
마크 해던 지음, 유은영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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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구성의 소설이다. 한 자폐증(소설에서 굳이 이렇게 명칭을 거론하고 있지는 않으나 내용상 아마도 이게 맞을 듯) 소년이 이웃의 개가 죽어 있는 것을 보고 범인을 찾기로 불현듯 결심한다. 소년은 그 얘기들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기술해나가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 와중에 몰라도 될 아빠의 비밀들을 알게 되고, 이에 충격을 받은 소년이 가출을 하면서 세상에 한걸음 다가가는 과정들을 담담하게 쓰고 있다. 몸에 누가 닿기만 해도 소리를 지르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갑갑증을 못 이겨 난동을 부리는, 자기만의 공간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자폐아이지만, 이 사건을 통해서 낯선 사람과 소통을 하고 낯선 길을 찾아 가는 방법을 알게 되고 용서하는 맘을 배우게 된다.

작가는 아마도, 수학과 물리를 매우 좋아하는 주인공을 통해서 세상은 규칙으로만 풀려고 하면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고 어찌 보면 규칙이 없는 것이 규칙일 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던지고 싶었던 것 같다. 주인공 소년은 책의 제목을 모두 솟수(2,3,5,7,...)로 매기는데 그 솟수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을 보면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솟수는 모든 규칙들을 지우고 났을 때 남는 수다. 나는 솟수가 인생과 같다고 생각한다. 솟수들은 매우 논리적이지만, 당신은 한평생 생각하더라도 솟수가 만들어지는 규칙은 결코 알아낼 수 없다.'

이 책은 단순한 문장과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된, 동화같은 내용이지만 결코 아이들만을 위한 내용이 아니었다. 주인공 소년의 눈을 빌어 어른들의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사람들의 통념을 뒤집는 얘기들을 중간중간 삽입함으로써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책이었다. 또한, 구성 자체가 독특하고 문장들이 재미있어서 손에서 놓을 수 없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쉬우면서도 나름의 인생관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매우 적절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아울러, 어찌 보면 통속적이고 불쾌한 어른들의 세상 속에서도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와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그 부모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식의 관계 속에서 가족의 의미도 되새겨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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