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멜론 슈거에서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최승자 옮김 / 비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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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좀 궁금해 하겠지만 나는 정해진 이름을 갖고 있지 않은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내 이름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그냥 마음에 떠오른 대로 불러달라.]


일 년 열 두 달 달콤한 냄새가 감돌고 어떤 꿈이든 실현되는 완벽한 낙원 '워터멜론 슈가에 살고 있는 나는 이름이 없다. 원래부터 이름이 없었는지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이름을 버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나’가 살고 있는 곳은 아이디아뜨(Ideath)다.

이 아이디아뜨(Ideath)는 '나’를 지칭하는 ‘I’와 ‘죽음’을 지칭하는 ‘Death’를 합쳐서 아이디아뜨(Ideath)로 즉, ‘내’가 죽은 곳에서 ‘이름 없는 나’가 모호하게 살고 있는 곳으로 그저 불리우는 대로 혹은 누군가가 기억해주는 대로의 그 모습이 바로 ‘나’이다.


'나는 아이디아뜨 근처의 통나무 오두막에 산다. 나는 창밖으로 아이디아뜨를 볼 수 있다. 내 오두막에는 침대 하나, 의자 하나, 테이블 하나, 그리고 내 물건을 간직할 수 있는 커다란 농이 하나 있다. 그리고 밤이면 워터멜론 송어 기름으로 타는 등도 하나 있다.'


아이디아뜨에 통나무 집에서 살고 있는 '나'는 창가로 가 창밖을 내다 본다.

아이디아뜨에서는 요일마다 다른 색깔의 태양이 뜬다.

그리고 요일마다 그 태양을 닮은 워터멜론이 자란다. 붉은 태양이 뜬 월요일에는 붉은 색의 워터멜론이 자라고 검은 태양이 뜬 목요일에는 검은 색의 워터멜론이 자란다.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마거릿이 찾아 오고 다음 날엔 프레드가 찾아 오고 잊힌 작품과 물건들에 관한 모호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프레드가 떠난 후 나는 워터멜론 씨앗으로 만든 잉크에 펜을 적셔 아래 지붕널 공장에서 빌이라는 친구가 만든 목판지에 글을 쓰는 작업을 시작한다.

  1. 아이디아뜨(좋은 곳)

  2. 찰리(내친구)

  3. 호랑이들

  4. 거울동상

  5. 척 영감

  6. 밤에 하는 긴 산책

  7. 워터멜론공장

  8. 프레드(내 단짝)

  9. 야구장

  10. 수로

  11. 에드워즈 박사와 학교 선생

  12. 아이디아뜨의 아름아운 송어 부화장

  13. 무덤조, 수직 통로

  14. 어떤 웨이트리스

  15. 앨, 빌, 다른 사람들

  16. 시내

  17. 태양 그리고 태양이 어떻게 변하는지

  18. 인보일(inboil/작중 등장 인물의 이름)과 그 일당 그리고 그들이 파낸 곳 즉 잊힌 작품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곳, 그들이 저지른 끔찍한 짓과 그들에게 일어난 일, 그리고 그들이 죽어버린 지금, 이 근방이 얼마나 조용해지고 괜찮아졌는지

  19. 매일 이곳에서 생기는 대화와 사건

  20. 마거릿 그리고 밤에 등불을 들고 다니는 그러나 결코 가까이 오지는 않던 여인

  21. 우리의 모든 동상, 무덤에서 나오는 빛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도록 죽은 이를 묻는 장소

  22. 워터멜론 슈거에서 살아온 내 삶

  23. 폴린(내가 특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24. 그리고 백칠십일 년에 걸쳐 스물네 번째로 쓰이는 이 책

여기 이렇게 목록을 적어 나간 '나'는 잊힌 작품을 쓰는 동안 아이디아뜨에서 누군가는 불륜을 저지르고 누군가 자살을 하고, 호랑이에게 부모가 먹히며 아름다움을 칭송 하고 슬퍼한다.

모든 것이 설탕처럼 달콤 할 것만 같은 아이디아뜨에는 날마다 모든 것이 변하고 있고 매번 다른 빛의 태양을 받은 수박들이 각기 다른 색깔로 자라는 기이한 곳이다.

아이디아뜨 도처에는 숲과 강이 흐르고 심지어 거실에도 강이 흘러 그 강에서 마음껏 헤엄치고 다니는 송어가 있다.

반면 사람을 잡아 먹던 식인 호랑이들을 전부 불태워서 멸종 시켜 버린 자리에 세운 부화장이 있다.

이런 유토피아적 세상과 정 반대로 타락한 세상인 '잊힌 작품'이라는 곳은 악당'인보일'들이 위스키를 퍼 마시며 술에 취해 꿈을 망각한 채 타락한 인간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살고 있다.

초목은 자라지 않고 짐승 한 마리도 살고 있지 않는 '잊힌 작품' 세상에 호기심으로 넘어간 마거릿은 자살을 하고 '나'는 폴린이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1967년 미국 문학계를 뒤흔들며 순식간에 200만부가 팔려나간 <미국의 송어 낚시>에 뒤이어 발표한 <워터 멜론 슈거에서>는 날마다 다른 빛깔의 태양이 뜨는 워터멜론 슈거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상반되는 잊혀진 작품이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나눠져서 자연과 문명, 삶과 죽음, 현실과 이상 그리고 현실과 신화가 단절된 세상이 마치 한편의 우화처럼 그려져 있다.

매 챕터 마다 달려 있는 소제목 아래에 간결한 문장으로 채워진 이야기는 앞선 이야기의 과거-현재-미래가 뒤죽 박죽이여서 장면이 전환 될 때 마다 시점과 시제가 뒤섞여있어서 동 시대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전개 된다.

1960년대 히피 운동의 문학적 상징이 된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기계 문명과 상업자본주의로 타락하고 퇴폐화 된 것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너머 '인간 중심주의'를 꿈꾸었다.

그가 앞서 발표한 작품< 미국의 송어낚시>의 중심에는 송어라는 상징이 자리 잡고 있듯이 <워터멜론 슈가에서>에서도 송어들이 마음껏 뛰어 노는 세상을 천국이라 지칭했다.

미국 땅에서 흐르는 강에서 가장 많이 살고 가장 많이 잡히는 물고기는 송어로 미국 문학과 철학에서 이 송어가 상징하는 의미는 목가적 이상형을 꿈꾸는 청교도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

너새니얼 호손의 작품 속에는 '박공나무의 숲'이 허먼 멜빌에게는 거대한 '바다'그리고 마크 트웨인에게는 미시시피 강이 있듯이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 속에는 '송어'가 있다.



1967년 <워터멜론 슈거에서> 작품이 발표 되었을 당시에 미국 땅에서 더 이상 송어가 뛰어노는 하천을 찾기란 점점 어려워졌고 산업자본주의의 거침없는 확장과 팽창으로 오지와 대자연은 사라져서 송어들이 헤엄치던 곳은 야영지와 리조트가 됐다.


[내가 오래전부터 알아온 송어 한 마리가 무덤을 넣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치어 였을 때 아이디아뜨의 부화장에서 자란 송어였다. 내가 그걸 아는 이유는 그의 턱에 자그마한 아이디아뜨 방울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이가 무척 많고, 몸무게도 무척 많이 나갔는데, 지혜롭게 느릿느릿 움직였다.]


워터멜론 슈거에서 살고 있고 발생하고 있는 그 무엇에 대한 실체는 모두 모호하다

도대체 아이디아뜨는 무엇이고? 마거릿은 왜 자살했고? 폴린은 어디서 불쑥 나타났는지...라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앞 뒤 페이지를 여러 번 들춰 봐도 명확한 의미도 찾지 못하고 어떤 인간관계나 인물들의 구체적인 특성조차 알지 못한다.

일곱 가지 태양이 뜨는 아이디아뜨에서 일곱 가지 워터멜론이 만들어 내는 일곱 가지 워터멜론 슈가로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지는 오직 ‘나’만의 선택이고 또 ‘나’의 몫이기 때문에 ‘나’ 또한 정해진 운명 같은 것은 없다.

<워터멜론 슈거에서>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워터멜론 슈거에서는 여러 가지 일이 다시, 또다시 행해졌다.'


1960년대 미국 비트 세대의 우상이였던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해가 갈 수록 독자 수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고 발표한 작품들의 거듭된 실패로 인해 극심한 좌절감에 고통스러워하다가 마흔아홉 살이 되던 해 1984년 창을 열면 태평양이 보이는 호텔 방에서 수렵용 44구경 매그넘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서 자살한다.


이 작품의 마지막은 이런 문장으로 끝이 난다.


[연주자들이 각자 악기를 들고 자세를 취했다. 그들은 시작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제 몇 초 남았을 뿐이다, 라고 나는 썼다.]

그가 남긴 천국은 아름답지만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는 잊힌 작품 입구입니다

조심하십시오

당신은 길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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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4-06-17 07: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디아뜨(Ideath)라는 단어를 보면서 문득 플라톤의 이데아Idea가 연상되었습니다. 플라톤은 이데아만이 완전하고 영원불멸한 실재라고 했는데 서두에 나온 ‘천국은 아름답지만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는 문장과 묘하게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 작품이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06-17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17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17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17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 패거리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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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미국 대법원관 자리에 올라간 얼 워런(1891~1974)이 이끄는 대법원은 매사 진보적인 판결을 내려서 흑백 분리주의 정책을 유지 하고 있었던 미국 사회에 큰 변화를 몰고 오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얼 워런 대법관은 흑백 인종차별을 철폐하고 나서 형사피의자와 피고인의 권리를 두텁게 보장했고 선거구 인구 불평등을 위헌으로 판시하면서 보수 정치인들의 표밭을 뒤흔들어 버린다.

일련의 진보적인 판결에도 불구하고 미국 땅에는 여전히 흑인 전용 화장실이 존재 했고 가게와 공공 장소 학교 그리고 클럽 마다 흑인 사절이라는 푯말을 내걸었다.


1960년 11월 8일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존 에프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 되면서 미국 전역에 진보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1963년 11월 22일 재선 선거를 앞두고 미국 텍사스 댈러스 파클랜드 헐스를 퍼레이드 하던 중에 리 하비 오스월드의 총에 맞아 암살 당하고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예비 선거의 후보자 로버트 F. 케네디가 팔레스타인 난민 시르한에게 친이스라엘 성향이라는 이유로 선거 유세 중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하면서 미국의 진보 정치에 검은 먹구름이 드리워 지게 된다.


8년 후 1968년 대선을 앞둔 대통령 예비 후보 리처드 닉슨은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헌법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법률가를 대법관으로 임명하겠다고 약속하고 1968년 3월 31일 존슨 대통령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워런 대법원장은 그가 후임 대법원장을 임명할 수 있도록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1968년 6월 26일, 존슨 대통령은 자신의 친구이자 예일 로스쿨을 졸업한 유대계 에이브 포터스(1910~1982)를 대법관 후임으로 지명한다.

유대계 에이브 포터스 대법관은 모든 사안에 대해 진보적인 판결을 내렸다는 사실을 크게 우려한 공화당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때마침 에이브 포스터는 고액 보수를 받고 강연을 다녔던 과거 이력이 들통나버린다.

논란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에이브 포터스는 친구이자 마지막 대통령 임기가 남은 존슨 대통령에게 지명을 철회 할 것을 요청했고 존슨은 이를 받아 들였다.


그 해 11월 공화당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 되고 워런 대법관이 이듬해 5월에 사임하면서 대법원에 두 명의 대법관 자리가 생기게 되어 닉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보수의 가치를 내건 깃발 두 개를 꽂아 버린다.


가장 먼저 닉슨 대통령은 미네소타 출신이자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법무차관보를 역임한 워런 버거(1907~1995) 컬럼비아 지구(DC) 연방항소법원장을 후임 대법원장으로 지명했다.

그 다음으로 닉슨 대통령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인 클레멘츠 헤인스워스 제4연방항소법원장을 지명했으나 과거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서 상원에서 45대 55로 인준이 부결되자 뒤이어 닉슨은 플로리다 출신인 제5연방항소법원 판사 해럴드 카스웰을 지명했지만 그 역시 인종차별 성향임이 드러나서 상원에서 45대51로 인준이 부결되어버린다.

닉슨은 남부에 보수의 깃발을 꽂으려는 시도가 연달아 실패하게 되자 버거 대법원장이 추천한 미네소타 출신의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해리 블랙먼(1908~1999을) 제4항소법원 판사를 대법관으로 지명한다.

1970년 6월 상원은 해리 블랙먼을 94대0으로 통과시키고 1년 뒤 대법관 두 명이 건강 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하자 닉슨 정부는 만세를 부르며 버지니아 출신으로 미국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루이스 파월(1907~1998)과 법무부 차관보이던 윌리엄 렌퀴스트(1924~2005)를 대법관으로 지명하면 미국 대법원을 완벽하게 보수주의자들이 장악 하게 만들어 버린다.

취임 한지 ​불과 2년 반 만에 닉슨 대통령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3명을 임명하는 기록을 세워서 대법원을 보수 4인, 중도 2인, 진보 3인으로 바꾸어 버렸다.


미국의 진보 언론은 닉슨의 깃발이 꽂혀진 대법원을 ‘닉슨 대법원’이라고 불렀다.

1972년 1월 7일 일명 닉슨의 꼬리표가 붙은 대법관들로 구성된 미국 대법원은 잇달아 진보적인 판결을 내리면서 닉슨 정부를 경악 시켰고 미 전역으로 엄청난 진보적 개혁의 바람이 불게 만든다.

가장 먼저 1971년 4월 대법원은 먼 거리에서 통학 시켜서 라도 스쿨버스로 백인 학생과 흑인 학생을 통합 시켜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많은 백인 학생들이 멀리 떨어진 흑인 학생이 많은 학교로 스쿨버스를 타고 다니게 돼서 백인 학부모들의 강력한 저항이 시작되었다.

곧바로 닉슨은 이 문제에 연방법원이 개입하는 데 반대했으나 버거 대법원장은 대법관 전원 판결로 자신을 지명한 닉슨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

두 번째 진보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던 판결은 ​1971년 6월 30일 미국 정부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기밀문서로 분류된 펜타곤 페이퍼를 게재하는 것을 금지할 수 없다고 판시했지만 대법원은 6대3 판결을 내리고 뒤이어서 사형에 대해 잔혹한 형벌이며 자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이유로 대법원은 5대4 판결로 위헌으로 판시했다.

이 판결로 사형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주(州)는 형법을 개정해서 사형 판결 요건을 엄격히 정해야 했고 차츰 미 전역으로 사형 집행이 중지된다.


지금까지도 찬반의 대립을 불러 일으키며 미국 땅을 분열 시키고 있는 낙태 문제는 1973년 1월 22일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낙태 문제에 대법원이 낙태금지법이 헌법이 보장하는 여성의 사생활권을 침해한다며 7대2로 위헌 판결이 선고되기 시작하면서 미 대륙을 넘어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당시 대법원은 임신 첫 3개월 동안 여성은 자신의 의사로 낙태를 할 수 있고 3개월 동안 미국의 주정부는 여성의 건강을 위해서 규제할 수 있으며, 마지막 3개월 동안은 여성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경우가 아니면 주 정부 법으로 낙태를 금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닉슨이 꽂아 놓은 대법관들 모두 진보적인 성향으로 돌아서서 이번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낙태 문제 판결로 낙태를 둘러싼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판결은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와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한 생명 운동(Pro-Life Movement)을 촉발 시키면서 미국을 두 개의 이념과 사상, 종교로 대립하는 양극화에 불을 질러 버렸다.


1980년대 낙태에 대한 입장은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정체성 차원의 문제가 되었고 1980년 11월 4일 공화당 대선 후보인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 되면서 대법원에 또 다시 보수주의 깃발이 꽂히게 된다.

2016년 11월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앞에서 복음주의자들이 ‘생명을 지켜라’ 등의 팻말을 들고 낙태 반대 집회를 열었다. 당시 이들은 5개월 전 대법원이 텍사스주에서 낙태금지 법에 위헌 결정이 내려지자 이에 반발해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일명 바이블 벨트 지역에 거주 하며 활동하고 있는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대선 같은 대형 정치 행사에서 낙태 및 동성애 반대, 작은 정부, 총기 자유화를 내걸며 강한 조직력과 결속력을 바탕으로 일반 유권자보다 적극적으로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전미복음주의연합(NAE)에 따르면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예수를 구원자로 믿으며 다음과 같은 신념을 내세우고 있다.


- 성경주의(성경이 절대적 기준)

-십자가 중심주의(예수의 희생을 강조)

-회심주의(성경에 의한 거듭남을 강조)

-행동주의(사회 참여)


​미국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2004년 대선과 2016년 대선에서 모두 공화당 후보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79%)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81%)에게 완전한 몰표를 던져서 당선을 시켰고 2016년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당선 시키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단합하는 정치 집단세력이라는 걸 증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진보 성향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사망 한지 불과 8일 만에 낙태 반대론자인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를 후임으로 지명 했고 2022년 6월 24일 .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을 제외하고 보수 성향으로 채워진 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고 낙태는 각 주가 스스로 규제하도록 판결하면서 후 폭풍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삶 중 어떤 부분에서도 불의를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는 공정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부자와 특권층 뿐만 아니라 가장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공정한 사회입니다. 요즘 흑인의 힘이니 여성의 힘이니 이런저런 힘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태아의 힘은 어떨까요? 비록 세포에 불과 하다 해도 그들 역시 권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들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권리를 위해 싸울 겁니다.]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 중에서


1971년 닉슨 대통령이 낙태에 반대하는 연설을 패러디한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은 ‘트릭 E 딕슨’이라는 가상의 대통령을 내세워 그가 재선을 위해 펼치는 정치적 공작을 거침 없는 독설과 조롱, 유머를 뒤섞으며 공화당 출신 미국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을 향해 빅 펀치를 날려 버린다.


낙태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태아의 권리’를 주창한 1971년 4월 닉슨의 샌클레멘테 연설을 마치 한편의 풍자극 시나리오처럼 구성한 필립 로스는 태아 권리를 명분 삼아 (1972년 재선거 전) 태아 투표권까지 법제화 시켜서 재선에 당선 되기 위해서 온갖 모략을 참모들과 도모하는 소설 속 대통령 트릭 딕슨을' 리키(Tricky, 사기꾼)'로 부른다.


“이 나라가 다시 위대해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바로 대량의 무지”라는 위험한 생각을 품고 있는 미 합중국 트리키 대통령은 12~13살 짜리 보이스카우트 단원 소년 세명이 반정부 세력 집단으로 파악한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숨지자 정치·군사·법률 참모들을 모아 놓고 사살 진압과 즉결 처분 안부터 좌파 화 공작 시나리오를 짜기 시작한다.

트리키 대통령은 국가의 모든 정책을 마치 미식축구 전략 짜듯 추가 논의로 밀어붙이고 보수성향과 반대의 길을 가는 진보적인 국가를 향해 포르노 정부라 지칭한다.

그는 국가의 공권력으로 사회의 정의와 공공 이익을 우습게 보며 법원에 자신들의 가치 성향에 부합하는 법관들을 앉혀 놓고 시민들의 눈과 입을 가려 버린다.

이렇게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줄 법관들을 앉혀 놓은 트리키 대통령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가 아니”라,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전체주의적 지배 논리를 시민들에게 늘어 놓는다.

이토록 음험하고 음흉한 다크 베이스 같은 독심술을 품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작가 필립 로스는 1970년대 미국 사회를 두 개로 갈라 버리며 첨예하게 대립했던 사건들을 수면 위로 올려 버린다.


[목사, 이건 내 정치 생명이 걸린 문제요! 목사와 내가 보기에 더 훌륭한 퀘이커 교도가 되기 위해서라도 지금 우리가 상대하는 어린 녀석 무리는 무시무시한 거짓말에 오염되어 있소. 그들의 정신을 깨우면서 동시에 대통령직의 위엄과 신망을 회복하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만약 이 두 가지 중요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내가 텔레비전에 나가 동성애자라고 말해야 한다면 나는 그렇게 하겠소. 예전에 나는 앨저 히스가 공산주의자라고 용감하게 말했어요. 흐루쇼프를 가리켜 약자를 들볶는 불한당이라는 말도 용감하게 했고, 분명히 말하지만 지금도 나는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용감하게 말할 수 있소!]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 중에서


1971년 이 작품을 발표 할 당시 필립 로스를 향해 복음주의자들이 닉슨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라고 맹비난을 퍼붓자 필립 로스는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렇게 맞 받아쳤다.


'저는 제 2차 세계 대전 동안 뉴저지에서 성장하면서 오로지 국민 전체를 '전쟁 사업'에 총 동원 시키기 위해 라디오와 신문 같은 언론들이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서 전투 소식으로 국민의 마음을 자극했었죠.

저도 그 시절엔 열심히 깡통 모으는데 동참하며 동전 한 푼이라도 이념을 위해 자유를 위해 싸우는 군인 아저씨, 삼촌, 사촌 그리고 이웃들에게 보내줬습니다.

아주 대단히 헌신적인 뉴딜 당원이였죠.

1968년 닉슨 대통령은 우리 집안에서 악당으로 불렸고 종종 이모들은 신문에 그의 얼굴이 실리면 손에 부엌 칼을 들고 찍어낼 정도로 증오 했습니다.

저는 베트남 전쟁 시기에 제 인생에서 가장 정치적인 활동을 활발하게 했고 공산국가를 돌아 다니면서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했습니다.

제가 쓴 <우리 패거리>에 등장하는 트리키 대통령을 닉슨 대통령을 풍자하고 우스꽝스러운 똘아이로 그린 것이 아니라 리처드 닉슨 자체가 우스울 정도로 미국 땅에 똘아이 짓을 많이 했습니다.

그만큼 부패하고 음험 하고 무법적인 대통령은 닉슨이 처음이였고 조 매카시도 그 사람보다는 덜 했을 정도죠.

저는 일개 소설가로 고작 이런 이야기로 세상이 바뀌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쓰지 않았습니다.

단지 저는 시위대 한 가운데서 고함 치며 피켓을 흔드는 것보다 종이로 인쇄되어 이런 인간이 버젓이 내뱉는 '미국'이라는 말에 어떤 애국심도 없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애착심도 없는 패거리들끼리 사기 치고 수작 부리는 꼴을 널리 읽혀지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1974년 필립 로스

마흔 살을 갓 넘긴 필립 로스가 6개월이 채 걸리지 않고 뚝딱 완성한 <우리 패거리>는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기 6개월 전에 발표되었고 이 똘아이들의 행동으로 인해 반 세기를 지나 2022년 미국 땅을 두 개로 갈라 버린 낙태법 폐기 법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까지 충격일 정도로 이 작품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서 예언서처럼 읽혀진다.

복음주의가 미 정계 전반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시기는 1970년대 닉슨 집권기로 1973년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절 권리를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내리자 낙태를 죄악시하는 복음주의자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거리로 나섰다.

2003년 부시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찬반 논란이 극심했던 ‘부분 출산’(태아의 머리나 몸통 일부를 먼저 꺼내는 낙태 방식)을 금지하자 낙태 반대파는 이 방식이 매우 잔인하며 사실상의 영아 살해라고 반발했고 찬성론자들은 감염 위험이 적고 산모에게 안전한 시술이라고 반박했지만 부시 정권은 밀어붙였다.

2016년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강력한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 된 트럼프는 집권 이후 줄곧 반낙태, 반이민 정책을 펴며 복음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정책을 구현했고 재임 중 3명의 보수성향의 대법관을 임명했다.

이 세 명 모두 닉슨 시절에 헌법을 반기를 들며 진보로 돌아섰던 대법관들과 달리 보수적 판결을 충실하게 내리며 미국 사회를 ‘분열과 증오의 정치’로 대립 하게 만들었다.

현재 대선을 앞둔 미국은 전체 비율로 미세하게 바이든이 앞서고 있지만 경합주인 총 6개 지역에선 트럼프가 앞서고 있고 이 지역에는 미국 복음주의자들이 몰려 살고 있다.

필립 로스가 1971년에 쓴 <우리 패거리>의 우두머리이자 미국 역대 최고의 똘아이 대통령 트리키는 이런 말을 내뱉는다.


[미국 대통령, 또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십 대 소녀가 이분을 '자유 세계의 지도자'로 부르는 걸 들었습니다. 자유 세계의 지도자, 제 친구이자 저명한 재판관으로 현재 남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법조인은 얼마 전 제게 보낸 편지에서 흥미로운 말을 했습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최고급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어떤 남자가 이분을 '미군 최고 통수권자'로 부르는 걸 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분은 평범한 의미의 지도자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는 비범한 의미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알았던 우리가 마치 반려동물에게나 붙일 법한 소박하고 허물없는 이름으로 그를 생각하는 겁니다.

어린 강아지에게나 붙일 법한 편안하고 친숙한 이름이죠.]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 중에서


트럼프는 미국 언론에서 "불법무도한 사이코패스(lawless psychopath)"로 심리 전문가들에게는 자기도취적 인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자로 불리고 있지만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에게는 우리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권력자로 칭송 받고 있다.

여러 우려 속에서 이번 미 대선에서 복음주의자들과 지지자들이 똘똘 뭉쳐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게 된다면 포퓰리스트 사이코패스 패거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을 만나게 될 것이고 이는 현재 한국 정치 집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만들 것이다.



무능하고 교활한 정치인에게 작가가 펜으로 맞서는 최대치의 항거를 보여준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는 전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익 집단의 패거리들의 행태와 악행을 실랄하게 풍자한 세기를 뛰어넘는 걸작이다.


[이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이념 전쟁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자신의 이상을 지킬 의욕과 능력이 있는 대 악마가 필요합니다. 오늘 밤 여러분은 우리의 삶 전체에 대해 판정을 내려야 합니다. 역사의 흐름은 우리 편입니다. 우리는 그 흐름을 계속 우리 편으로 묶어둘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옳은 편이니까요. 우리가 악의 편이니까요.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만약 제가 대악마로 선출된다면 악이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할 겁니다. 우리 자녀들, 자녀들의 자녀들은 올바름과 평화의 끔찍한 고통을 결코 모르게 할 겁니다.]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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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의 말 - 황무지에서 대성당까지, 절망에서 피어난 기묘한 희망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레이먼드 카버 지음, 마셜 브루스 젠트리.윌리엄 L. 스털 엮음, 고영범 옮김 / 마음산책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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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하루 종일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다 보니

내가 깊이 생각했던 것, 그래서

하게 된 일이

떠올랐다. 내가 그 오랜 세월 동안

메리엔-지금 그녀는 자신을 애나라고

부른다- 에 대해 품었던 마음들

나는 물을 한 잔 받으러 갔다.

창가에 한참 서 있었다.

다시 돌아 왔을 때 우리는

다음 주제로 쉽게 넘어갔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대못처럼 파고드는 그 기억.

1983년에 발표한 <대성당>으로 전미 도서상과 퓰리처상 후보에 오른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예술문학아카데미에서 제공하는 스트라우스 기금의 수혜자로 선정되면서 3년 전 부터 학생들을 가르쳤던 시러큐스 대학 정교수 자리에 과감히 사표를 던진다.

그는 자신의 문학적 뮤즈이자 동반자인 시인 테스 갤러거와 함께 위싱턴 주 포트앤젤레스로 이주하고 방문객 사절이라는 팻말을 붙여 놓고 타자기를 치는 동안에는 집안의 전화 선까지 모조리 빼버린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시를 읽고 반나절 동안 시 한 편을 써낸 카버는 <대성당> 성공 이후 단 한편의 소설을 쓰지 못했지만 그의 명성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인터뷰가 줄을 이었고 서평과 추천사를 써 달라는 출판사에서 보내는 편지들이 매일 한 가득 도착했고 문학 행사를 여는 도시 마다 그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각종 문예지마다 카버의 문장을 흉내 낸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을 정도로 1980년대 미국 문학계에 최고의 스타는 레이먼드 카버 였다.


1971년 <에스콰이어> 잡지에 <이웃 사람들> 단편이 처음 실렸을 때부터 카버의 글은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불러 일으켰고 이후 카버의 문장을 대폭 뜯어 고쳐서 미니멀리스트라는 호칭을 받게 만든 고든 리시가 편집하는 작품 마다 호평을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더러운 삶을 사는 밑바닥 백인의 이야기를 팔아 먹는다는 악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의 단편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이 출간 되면서 대중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고 수록된 단편들이 영화로 제작되면서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다.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집안에 책이라곤 없었던 환경 속에서 여덟 살 때부터 술을 마셨고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열 여섯 살의 여자 친구와 결혼식을 올렸던 레이먼드 카버는 지독한 가난과 파산과 알콜 중독으로 파멸 직전까지 내몰리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학업을 이어나갔고 글쓰기를 포기 하지 않았다.


사랑과 이별, 미움, 질투, 두려움, 슬픔 같은 살아가는 동안 느끼고 겪게 되는 인간의 모든 감정들이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흘러 가게 되는지 카버는 자신이 창조한 모든 인물들의 구석 구석을 냉정하게 들여다 보지만 개개인의 고유성을 존중 해주면서 연민의 시선으로 접근 한다.

단어 하나 하나에 인간의 생각과 행동의 의미를 담은 그의 글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사소하지만 살아가는데 절대로 잊어 버려서는 안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스무 살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카버는 아이들을 양육하기 위해 미 전역을 돌아 다니며 주유소 시급일 부터 튤립 수확, 병원 청소, 화장실 청소, 장난감 조립, 쿠키 공장,교과서 편집일을 전전 하는 동안 파산과 불화, 중독과 이혼으로 삶의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대부분은 부부 사이에서 발생한 이야기들로 그의 출세작인 <제발 조용히 좀 해요>에서 보여준 의심과 질투, 분노는 이후에 출간한 작품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사랑'을 전면으로 내세운 이야기까지 지난 시절 고통과 절망에서 몸부림쳤던 모습을 겹겹이 이어 붙여 놓았다.



카버의 단편들을 모조리 읽고 나서 맨 앞 장으로 돌아가 두 번 세 번 읽어 나갈 때마다 그가 살아 왔던 인생들이 보였다.

16살 나이에 임신해서 무일푼에 카버와 결혼한 아내 메리엔은 불안정한 주거지에 극심한 생활고 속에서도 어떤 일이든 마다 하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 다녔고 남편 카버가 변변치 않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글을 쓸 수 있게 배려 했고 아이들 양육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반면에 남편 카버는 아내가 사회적으로 승승 장구 할 때마다 외도를 의심했고 수시로 폭력을 휘둘렀다.

그는 알콜 중독으로 치료소를 들락 날락 거리는 동안에는 아내에게 칼을 휘둘러서 경찰이 출동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이런 불화 속에서도 아내는 10여 년 동안 힘겹게 대학에 다녔고 법률가 꿈을 포기 하지 않았고 남편 카버는 아내가 장학금 수혜자로 선정 될 때마다 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리는 속 좁은 남자였다.


남편 카버에게 가정 폭력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결혼 생활을 지키려 했던 아내 메리언 역시 몸과 마음에 병이 들어 알콜에 빠져서 병원에 드나들었고 이런 부모를 뒷바라지 했던 속 깊은 딸 역시 알콜 중독자가 된다.

1977년 지역 문학 행사에서 만난 시인 테스 갤러거와 사랑에 빠진 카버가 먼저 이혼 서류를 내밀었고 5년 후 이혼을 한 카버는 과거의 나쁜 남자에서 벗어나 시라큐스 대학의 교수로 부임하면서 새로운 인생의 날개를 펼쳤다.


미국의 북서쪽에 위치한 워싱턴주의 내륙의 소도시 야키마 출신인 카버는 미국의 전형적인 백인 노동자 남성의 마초적이면서 비굴하고 소심한 성격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흑인과 백인이 완전히 분리된 시절에 성장했던 카버는 초기 작품에서 흑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간주하는 태도를 보이며 작품 속에서 거친 용어를 내뱉으며 노골적이게 흑인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과 공포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흐를 수록 그는 사랑과 공감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나갔고 <대성당> 이라는 작품에서 장애를 가진 흑인과 백인이 하나의 펜을 잡고 함께 대성당을 그려내는 행위를 통해 나와 다른 피부색과 출신의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나누고 만들어 나가는 모습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레이먼드 카버는 다중적인 시점으로 현란한 기교를 섞은 실험적인 성격의 스토리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숨어 있는 나약한 모습을 그린 그는 한때 평론가들로 부터 '더러운 리얼리즘'이라는 혹평을 들었고 그가 쓴 시는 어떤 평론가도 공개적으로 평론을 쓰지 않을 정도로 일절 시인이라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1983년 <대성당>이 퓰리처 상 후보에 올라갔고 종신직 교수직에 엄청난 문학 기금의 수혜자가 되고 미국을 넘어 전 세계 언어로 책들이 번역 되어 미국 단편 소설의 르네상스 시대를 주도 하며 비로소 삶에 환한 등불이 밝혀지던 시기인 1986년 폐암 선고를 받는다.

연기와 기만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타티야나 이바노브나가

뜨개질거리를 붙들고 조용히 앉았을 때, 그는 그녀의

손가락들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어갔다.

'살아가려면 최대한 서둘러야 해요. 내 친구...'그가 말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말아요! 현재에는 젊은, 건강, 불이 있지만 미래는 연기와 기만일 뿐이에요.! 스무 살이 되는 즉시 인생을 시작해요.

티티야나 이바노브나는 뜨개바늘을 떨어뜨렸다.

-안톤 체호프, <비밀 조언자>

폐의 3분의 2를 들어낸 대 수술을 받은 카버는 매일 아침 동반자 갤러거가 안톤 체홉의 단편 하나를 읽으면 그는 늦은 저녁 시간에 시 한 편을 썼다.

레이먼드 카버는 50년의 세월을 사는 동안 총 두 번의 인생을 살면서 마지막 생애 끝자락에서 체홉의 단편 속에서 자신이 살아 온 지난 날의 삶을 읽었다.

마지막 몇 해를 앞 둔 카버는 체홉의 단편들 속에서 시어들을 골라내고 행갈이를 해서 부분적으로 문장을 다듬어 시의 형태로 만들어 나가면서 체홉의 글 속에 자신의 삶을 끼워 넣었다.


예감

'어떤 예감이 들어요... 어떤 이상하고

암울한 예감 때문에 우울해요. 꼭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을 것만 같아요.'

'결혼하셨나요, 의사 선생님?' 가족이 있으시죠!'

'아무도요. 홀몸이에요. 심지어 친구도 하나 없어요.

부인 말씀해보시죠. 예감을 믿으시나요?'

'오, 그럼요. 믿죠.'

-안톤 체홉 <영원한 기계>


카버의 단편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삶에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서 싸움이 시작 되기도 전에 포기하거나 희생하거나 방관하거나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선택을 한다.

너무나도 잔인하고 너무나도 무작위적인 주변부 인물들의 암울한 삶의 문제들을 카버는 마치 깃털로 살짝 건드리듯 부드러운 어조로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다는 전조등을 켜놓고 속삭이듯 긴장감 넘치는 대화체로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린다.

30여 페이지 분량 속에 시작과 중간과 마지막이 담긴 인물들의 삶을 담아낸 카버는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시와 소설을 동시에 썼을 정도로 밑바닥 부터 창작을 차곡 차곡 다져나갔다.



'꿈이란, 결국 우리가 거기에서 깨어나야 하는 어떤 상태입니다. 그런 순간은 발견되어야 하고 상상 되어야 하는 것이다.'

-레이먼드 카버

나는 지난 시절에 읽었던 카버의 단편집 보다 그의 시를 자주 읽고 있다.

그가 남긴 시들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사소한 기억들과 아버지, 낚시, 사냥, 여행,첫 번째 아내와 두 아이들 그리고 두 번째 아내인 시인 갤러거와 기타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 그리고 마지막 눈을 감는 모습까지 담고 있다.



만약 내가 운이 좋다면, 온갖 줄을 다 꽂은 채 병원 침대에

누워 있겠지. 튜브가 내 코로도

기어 들어가고 하지만 친구들 겁먹지 마!

지금 얘기해두지만 그거 다 괜찮아.

마지막 순간에 그 정도는 요구 할 수 있지

누군가가 그랬으면 좋겠는데, 모두에게 전화를 돌려서

이렇게 말하겠지 '빨리 와, 얼마 못 갈 것 같아!'

그러면 다들 오겠지. 그러면 나로서는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

생길 거야. 내가 사랑하던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의 죽음 중에서

1988년 5월 마지막 인터뷰에서 카버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저는 가난한 노동자 계급에 속한 사람입니다. 어린이였을 때도 어른이였을 때도 저는 그들 중 한 사람이였습니다. 작품을 출간하자 마자 미니멀리스트라는 말을 들었지만 제 소설은 미니멀리즘을 넘어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습니다. 평론가들에게 검은 잉크로 휘갈겼다는 소리를 들은 시에는 제 삶의 모습이 투영 되어 있습니다.

비록 시인으로 불리지 않지만 지난 시절에 사나흘 정도 술이 깨어 있을 때 시를 쓰고 나면 이야기가 떠올랐고 정신을 차려서 문장에 리듬감을 담아서 수시로 찾아 오는 잔인한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것에 대해 쓰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쓰다보니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으니 곧 좋아 질 것이고 어쨌든 전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레이먼드 카버


이 인터뷰를 마친 카버는 한 달 후 양쪽 폐에 모두 암이 재발하고 6월 17일 네바다주 리노에서 시인 갤러거와 결혼식을 올린다.

7월 알래스카로 낚시 여행을 떠나고 돌아 와서 시애틀 병원에 입원하지만 시한부 선고를 받고 퇴원한다.

1988년 8월 2일 포트앤젤레스 자택에서 숨을 거둔 카버는 2틀 후 입관 되어 오션뷰 공동묘지에 안장 되었다.

그는 평생 동안 가난과 고통에서 발버둥치며 사랑 받기 위해 글을 썼고 사랑 받았다고 생각할 때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무덤에 세워진 화강암 묘비에는 '시인, 단편소설 작가. 에세이스트'라고 적혀 있고 가장 마지막 줄에는 <만년의 편린 Late Fragment>라 새겨져 있다.


어쨌거나, 이번 생에서 원하던 걸

얻긴 했나?

그랬지.

그게 뭐였지?

내가 사랑 받은 인간이었다고 스스로를 일컫는 것, 내가

이 지상에서 사랑 받았다고 느끼는 것

-시집< 폭포로 가는 새로운 길>의 '만년의 편린' 중에서

50세로 세상을 떠난 카버는 25년 동안의 다섯권 분량의 소설과 시, 산문, 그리고 서문이 담긴 작가 선집에 수록된 것 까지 포함 해서 총 73편의 글을 남겼다.


그리고 여기 이 책 속에 25년의 작가 인생을 사는 동안 했던 24개의 인터뷰가 500여페이지 분량 속에 그의 인생 철학과 창작 과정들이 모두 담겨 있다.

각각의 인터뷰가 곧 인간 레이먼드 카버의 인생 이야기들로 이어져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결국 읽고 쓰는 행위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재능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지만, 열정이 있는 사람들만 계속해서 씁니다.'

-레이먼드 카버(1938-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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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4-05-31 09: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이 정말 좋네요 재능은 누구나 있지만 열정이 있는 사람들만 계속 쓴다...ㅠㅠ

scott 2024-05-31 10:50   좋아요 2 | URL
네, 열정만이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힘 ^^

2024-06-01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01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들은 각자 만의 불을 품고 모였다. 나는 이들의 손에 들려진 불들이 다음 세대를 위한 것임을 믿는다. 신은 알 것이다. 나의 태어나지 않은 딸을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노라고.'

-1970,11.27 빌리지 보이스, 비비언 고닉


1970년 미국 전역을 뜨겁게 달구었던 여성 해방 운동가들의 시위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갔던 인물은 '빌리지 보이스' 소속 기자 비비언 고닉으로 그녀가 취재한 티그레이스 앳킨슨, 케이트 밀렛,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필리스 체슬러, 엘런 윌리스, 앨릭스 케이츠 슐먼 운동가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뉴욕 래디컬페미니스트 창설에 불씨를 싹트게 만들었다.




[독자가 내 시선을 그대로 따라 보도록, 허구를 창작하듯 서사를 설정했는데 그렇게 나 자신을 참여적 서술자로 활용하니 독자로 하여금 그날 밤 사건을 겪은 그대로 경험하고 내가 느낀 날 것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끔 할 수 있었다. 그 땐 미처 몰랐지만 나는 이미 '일인칭 저널리 즘(독자가 화자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 보게 만드는 새로운 논픽션 저널리즘 양식)을 연습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비비언 고닉

1980년대 미디어 홍수의 시대 속에서 비비언 고닉은 날카로운 통찰력과 예리한 비판으로 우파와 좌파 지지층으로 부터 맹 공격을 받았지만 그녀가 개척한 일인칭 비평은 SNS시대의 1인 미디어 체제가 도입 되기 반 세기 전부터 독보적인 서사로 비평계에 새로운 물결을 선도 했다.

1970년대 세상을 뒤흔들며 강렬하게 들끓어 올랐던 페미니즘은 1980년대 부터 와해 되고 느슨해지면서 연대의 공감대가 무너졌고 비비언 고닉은 '이론과 실천의 괴리'사이에서 갈등하며 좌절을 거듭한 끝에 그동안 몸담았던 빌리지 보이스를 떠난다.

그녀는 대학원에 진학하고나서 사회적 공분을 불러 일으키는 공개적이고 비판적인 글쓰기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서서 다른 곳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분야를 찾기 시작한다.


그건 바로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마흔다섯 살의 딸과 일흔 일곱 살의 어머니가 뉴욕의 거리를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독특한 형식의 자서전 <사나운 애착>을 쓰기 시작하면서 눈앞의 소재에서 구출되기를 기다리는 귀중한 이야기를 찾아 다니는 진정한 글쟁이로 다시 태어난다.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발견해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인정한다. 이것이 나의 직업이었다. 그래야만 우리의 한계를 알고 연민으로 삶을 견뎌낼 수 있다.'

-비비언 고닉


1990년대 부터 프린래서 작가가 된 비비언 고닉은 회고록과 에세이, 대학 강연과 각종 일간지 서평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녀가 출간 한 책들은 2000년대 들어서 절판을 하고 독자들 사이에서 잊혀진 존재가 된다.

2006년 여성 사회 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미국에서도 가장 약자인 소수 인종 여성과 아동들이 성폭력, 언어 폭력,감금, 폭행등의 피해 사실을 함께 공유하고 연대해서 세상을 향해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어 추가 발생 피해자들을 막기 위한 운동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이 촉발된다.

그리고 지난 반 세기 전 페미니즘 물결의 선봉자들의 목소리를 적극 취재 했던 기자 '비비언 고닉'의 이름이 언론과 출판계에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지난 시절에 출간 되었던 그녀의 책들이 새로운 표지로 출간 되면서 페미니즘과 저널리즘을 강의 하는 강의 시간에 화자 되어 참고 도서로 읽혀지게 되었고 1987년에 발표한 자전적 회고록인 <사나운 애착>이 2015년에 재 출간 되면서 주요 신문의 서평란에 다시 등장하게 된다.

2015년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은 미국 문단에서 지난 50년간 출간된 회고록 중에 최고의 회고록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20세기 100대 논픽션 라이브러리에 이름을 올렸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뭔가를 소유하는 데 무관심한 인간으로 통한다.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다고들웃는다. 나는 뭐든 이름도 잘 모르겠고 가짜와 진짜, 고급스러운 것과 평범한 것도 한눈에 알아차리지 못한다.]

-비비언 고닉의 '짝 없는 여자와 도시' 중에서


80세에 비로소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비비언 고닉은 영국 가디언지 인터뷰에서 '이젠 더이상 한 달 렌트비와 병원비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며 서서히 주변 지인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요양원에 들어 간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얼마 전 한 때는 잘 알았지만 한동안 들춰보지 않았던 책의 사실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몇 장 넘기다 보면 기억나지 않은 그 정보를 금세 찾을 거라 생각했다.]

-비비언 고닉의 <끝나지 않은 일 >중에서


세상 일을 까맣게 잊은 채 손에 책을 들고 있지 않았던 시간이 기억에 없었을 정도로 스스로 태어날 때 부터 책을 읽었다고 생각 했을 정도로 독서광이였던 비비언 고닉은 자신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책장 속에 꽂혀진 책들을 정리하면서 그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내 경험으론 인생 초년에 중요했던 책을 다시 읽다 보면 긴 의자에 누워 정신분석을 받는 느낌이 들 때가 꽤 있다.'

-비비언 고닉


지난 시절에 읽은 책들을 하나 씩 다시 읽으면서 사회 경험이 별로 없고 세상 물정을 몰랐던 시기에 어떻게 '빌리지 보이스'에 기사 원고를 투고 했는지, 사회 깊숙이 스며있는 성차별과 어떻게 맞섰는지 날 것의 잔혹하고도 범상하고도 내밀한 비비언 고닉의 독특한 1인칭 자기 고백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 나는 몇 편의 기사를 써낸 공격적인 스타일의 이혼한 서른다섯 살 ‘여자‘가 되어 뉴욕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허세 아래 혼란은 깊었고, 막막함 역시 엄청났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날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리고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


서른을 앞두고 결혼을 한 비비언 고닉은 1년 만에 이혼하고 뒤 이어 또 한번 결혼 하지만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두 번째 이혼을 한다.


'어느 영문학 교수가 손에 <아들과 연인>을 쥐어 주었을 때 나는 스무 살이었다.'


스무 살에 처음 읽은 D.H로런스의 <아들과 연인>은 이후 15년의 세월이 흘러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 후에 다시 펼쳐 들고 팔십세를 넘기고 나서 세 번째로 펼쳐 든다.


'앞 날을 바라보고 삶을 조망하면 산 채로 매장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D.H로런스의 <아들과 연인> 중에서


성애 소설인가? 성장 소설인가? 마마보이의 성장기 인가? 라는 의문을 품으며 이 책을 펼쳐 들었을 당시에 비비언 고닉은 두 번째 이혼 절차를 밟고 있었거나, 언론사를 그만두고 떠돌이처럼 기사를 썼거나, 두 번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신경전을 벌이거나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 마저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겨진다.

그녀가 인생의 매 순간 마다 펼쳐 보았던 D.H로런스의 <아들과 연인>에서 이상적인 삶, 교육받은 삶, 용감한 삶, 더 넓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 그리고 사랑만 추구 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목표가 있는 삶이 무엇인지 살아가는 지혜와 통찰에 이르기 까지 50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독서는 머릿속 가득한 혼돈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며 순수하고 온전한 안식을 허한다. 이따금, 책 읽기만이 내게 살아갈 용기를 준다는 생각이 든다.'

-비비언 고닉


여든 넷의 고닉이 다시 읽기 시작한 책들은 D.H로런스의 <아들과 연인>,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마그리뜨 뒤라스,엘리자베스 보엔,델모어 슈워츠,나탈리아 긴츠부르크,J.L카, 팻 바커,도리스 레싱,토머스 하디까지 40년 전에 읽었던 책들로 오랜 세월 책장 속에 잠들어서 종이색이 바래지고 활자들까지 희미해진 책들이다.


[갑자기 40여년 전 쯤 내가 그은 게 틀림없는 밑줄이 주의를 붙들더니 다음에는 내가 동그라미 쳐둔 문단이 여백에 나란히 적힌 두 개의 느낌표가 눈에 띄었다. ]


밑줄이 그어진 페이지, 동그라미를 친 구절을 읽어나가던 고닉은 '뻔한 문장에 왜 밑줄을 그었을까? 넌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거니? 이거 정말 흥미로운 대목인데 ?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면서 마치 고고학자들이 흩어져 있는 파편의 조각을 맞추듯이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의 지난 삶과 현재의 삶을 되돌아 본다.

(c) vivian gornik house, lux magazine


그녀가 다시 읽기 시작한 책들은 총 아홉권(미국판에 있는 E.M포스터의 하워즈 엔드 작품에 대한 내용은 한국어판에서 빠짐, 미국판은 총 열권의 책이 언급됨)으로 지극히 사소하지만 개인적인 그녀의 인생에 큰 변화를 불러 일으켰던 책들이지만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책들도 있고 개인적으로 유대계 역사나 작가에 관해 큰 흥미가 없거나 배경 지식이 없다면 이 책은 전에 출간 된 책들 보다 그리 큰 감동이나 인상을 주지 못 할지 모른다.


이 책의 맨 첫장에 적혀 있는 작가 노트에서 비비언 고닉은 앞서 출간 된 책들 중에 문장과 문단을 인용 하거나 한 대목을 통쨰로 옮겨다 적어서 자기 표절을 서슴지 않게 했다고 독자들에게 고백한다.

80세를 넘긴 자기 자신이 다시 읽고 썼으니 독자들도 앞서 출간 된 책에서 언급했던 대목을 다시 읽는 것도 꽤 쓸모가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비비언 고닉이 다시 읽기 시작한 책들 중에서 나의 인생의 책은 딱 한 권으로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다시 읽고 또 읽는 작가, 출간된 모든 작품을 모조리 찾아 읽고 있으며 읽을 때 마다 필 사하며 새기는 작가는 단 한 명이다.


'나 한테 삶을 더 사랑하게 하는 작품들을 자주 써준 작가는 나탈리아 긴츠부르그다.'

-비비언 고닉


나는 이탈리아 사실주의 문학과 네오리얼리즘 시대와 나온 영화와 예술을 사랑한다.

가부장적인 사회와 지독할 정도로 카톨릭 신앙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의 폭력이 들불 처럼 일어 났을 때 활발하게 활동했던 작가들 중에서 목숨 걸고 자유를 울부짖었던 남성작가들이 있다.


반면에 피난 도중에 홀로 아이를 낳고 양육하면서 저녁을 준비하는 사이에 먹을 것을 구하고 와서 내일 먹을 양식 걱정을 하지 않게 된 날에 총성 소리가 멎은 날에 배고픔에 칭얼거리는 아이들이 잠든 사이에 틈틈이 조각 조각 파편화 된 글을 쓴 작가 나탈리 긴츠부르그가 있다.












[전쟁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수 많은 집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의 집에 있어도 예전처럼 편안하거나 안전하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는다. 어떤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인간의 자식' 중에서

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 태어나서 세살 무렵부터 토리노에 살았던 나탈리아 레비(결혼전 성)는 토리노 대학 생물학 교수 였던 아버지가 온갖 병균이 창궐한다는 이유로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트리에스테 출신의 유대계 아버지는 완고한 성격으로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장성한 아이들이 있었고 나탈리아의 어머니는 밀라노 태생의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성장해서 현실성이 전혀 없는 몽상가적인 사람이였다.

어머니에게 개인 교습을 받았던 나탈리아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성이 다른 형제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세상과도 단절되어 어른들의 삶을 관찰 하는 고독한 아이였다.


[난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만 썼다. 그래서 시대를 기록한 소설을 기대하는 독자는 공백이 너무 많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지만 이 책을 소설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가족어 사전' 중에서


파시즘과 전쟁의 상흔이 사라졌던 시기인 1963년에 발표한 <가족어 사전>은 1930년 이탈리아 토리노의 한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녀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실존 했던 인물이고 나이도 이름도 모두 허구가 아닌 실제 이름을 차용 했다고 소설 맨 앞장 서문을 통해 '기억'에 의지해 문학적 양식으로 쓴 회고록 이라고 밝혔다.


'가족어 사전'의 첫 장을 열면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아버지가 고함쳤다.

'교양 없는 짓 하지 마라.'

우리가 빵을 소스에 적셔 먹으면 이렇게 소리쳤다. '빵으로 접시 닦지 마라! 교양 없는 짓 하지 마라! 추잡스러운 짓 하지 마라!'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가족어 사전' 중에서


사회적으로 존경 받고 명망 있는 학자였던 아버지는 무자비 할 정도로 가정에서 독재자로 군림했고 파시즘이 거세 질 수록 가족을 옭아맸다.

학교에 가지 않고 집안에만 있었던 어린 나탈리아는 집안의 공기의 기류를 바꾸며 끝도 없이 치닫는 감정적 폭력으로 몸과 마음이 멍든 가족의 모습을 기록한다.


[아버지의 다른 행동이 다 그렇듯이 중재 역시 폭력적이었다. 아버지는 달라붙어 상대를 두들겨 패고 있는 두 오빠 사이로 뛰어 들어가서 그들의 따귀를 때렸다. ]


나탈리아는 돈은 없지만 놀랍게도 가난하지도 않았던 집에서 벗어나서 겨우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지만 낙제를 하고 이 상처와 굴욕감을 글쓰기로 극복하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한다.


첫 단편 소설을 발표하고 나서 러시아 문학을 가르치는 오데사 출신의 유대인 레오네 긴츠부르그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비로소 그녀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난다.

십대 후반의 나탈리아의 마음을 단 번에 사로잡은 레오네 긴츠부르그는 토리노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가르치며 작가로 활동하다 당국에 의해 반파시스트 운동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어 투옥 된다.

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미워하고 갈등 했던 형제들은 막내 나탈리아를 보호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탈출을 도와 주고 나탈리아는 레오네가 감옥에서 출소 한 후 결혼을 한다.

유대인 박해가 극에 달 했을 때 나탈리아는 남편과 함께 두 아이를 데리고 아브루초 지방으로 추방 당하고 온 세상이 얼어 붙어 버린 한 겨울 추위 속에 남편은 비밀 경찰에게 끌려간다.




[내가 말하고 있는 마을에 왔을 때 처음에는 모든 얼굴이 다 똑같아 보였다. 여자들은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젊거나 늙거나 생김새가 다 비슷했다. 대부분 이가 없었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아부르초의 겨울' 중에서


두 아이들과 낯선 곳에 고립된 그녀는 이 시절 집중적으로 글을 쓰면서 언제 어떤 식으로 죽거나 끌려갈지 모른 상황 속에서 삶의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전쟁이 끝나고 남편이 먼저 로마로 돌아가고 나탈리아는 갓 태어난 셋째 아이와 두 아이와 함께 유배지인 아브루초에 남지만 독일군의 침공으로 마을 전체가 폭격을 당한다.

그녀는 이웃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해서 세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이 있는 로마로 돌아 오지만 만난지 28일 만에 남편은 독일 게슈타포에게 끌려가 처형 당한다.


[남편은 우리가 그 마을을 떠난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로마의 레지나 코엘리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고독한 그의 죽음이 가져온 공포에 직면해서 그의 죽음에 앞선 고통 스러운 선택들 앞에서 이것이 지로네 가게에서 오렌지를 사서 눈 속을 산책하던 우리에게 벌어진 일이 맞는지 자문해보곤 한다. 그때 나는 바라는 게 다 충족되고 다양한 경험과 함께 하는 모험들이 가득한 평탄하고 행복한 미래가 찾아오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고 영원히 사라진 지금에서야, 이제야 그것을 알게 되었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자신에게 찾아 온 불행을 담담한 어조로 읊조리듯 이야기하는 나탈리아는 남편을 감옥에 보내 놓고 아이들과 유형지에서 살아가는 동안 비로소 결혼과 육아로 중단했던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생겨난다.

남편이 감옥에 투옥 되어 있는 동안 홀로 셋째 아이를 낳은 나탈리아에게 매일 매일 불안한 나날의 연속이였지만 유형지에서 3년 동안의 시간은 그녀를 작가로 살아 갈 수 있게 만든 시간이 되고 남편이 처형 당하고 나서는 행복했던 시절은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나탈리아아는 세 아이와 함께 로마에서 삶을 다시 시작하며 에이나우디 출판사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이 출판사는 남편이 살아 생전 동료 교수와 함께 토리노에 차렸던 출판사 지사로 나탈리아는 이 출판사에서 유대계 출신의 작가 체사레 파베세, 이탈로 칼비노, 그리고 토리노 출신의 유대계 작가이자 홀로코스트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은 프리모 레비의 책을 출간하며 전후 이탈리아 문학의 황금시기를 맞이 하게 만드는 작품을 출간한다.

어린 시절 영어 개인 교습을 받았던 나탈리아는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번역일도 하며 틈틈이 자신의 글을 쓰며 동시대 작가들과 달리 정치적인 주제나,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지극히 사소하지만 개인적인 이야기에 집중하며 어떤 문학적 사조에 관여하거나 휩쓸리지 않았다.

1950년에 영문학과 교수인 가브리엘레 발디와 재혼한 나탈리아는 그가 영국의 이탈리아 문화원장으로 근무 할 때 함께 체류하며 개인의 기억에서 벗어나 세상과 사회 그리고 현재의 삶에 대한 글을 쓴다.


1960년에 발표한 에세이 <나의 일>은 비비언 고닉, 리디아 데이비스,엘레나 페란테 , 데버라 리비등 현재 영미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창작 활동을 펼치는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20대 후반에 들어섰지만 허구만 섞어보려 하면 한 줄도 생동감 있게 안 나오는 마당에 어떻게 위대한 미국 소설을 쓰겠다는 건지 막막하고 깜깜하기만 했다. 그런데 때마침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에세이 '나의 일'을 읽었고 거기서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았다.]

-비비언 고닉


지난 50년동안 가장 뛰어난 회고록으로 평가 받는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의 첫 문단은 이런 장면으로 시작한다.


[나는 여덟 살이다. 엄마와 나는 아파트에서 나와 2층 층계참에 서 있다. 옆집 드러커 아줌마가 자기네 집 문을열고 담배를 피우고 있다. 엄마가 우리 집 문을 닫으면서 그 아줌마에게 말한다. ˝거기 서서 뭐해?˝ 아줌마는고갯짓으로 집 안을 가리킨다. ˝저 남자가 하자고 해서.

나 건드리려면 샤워부터 하라고 했지.˝ 나는 ‘저 남자가아줌마의 남편이라는 걸 안다. ‘남자‘는 언제나 남편이다.]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 중에서


1961년에 출간 된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저녁의 목소리>라는 작품을 펼치면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어머니가 말했다. '목구멍에 덩어리 같은 게 느껴져.'

-어머니가 말했다 ' (저 장군은) 어쩌면 머리숱이 저렇게 많니, 저 나이에!'

그분이 말했다. '개꼴이 얼마나 흉해졌는지 너 봤니?'

그래도 새 의사는 고혈압이 있는 걸 찾아냈지 뭐니? 난 항상 혈압이 낮았는데 항상..'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저녁의 목소리' 중에서

이런 진부하면서도 지극히 사소한 대화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뭐지? 왜 이런 쓸데 없는 말을 하지 등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한 페이지 넘기고 다음 장면 그 다음 장면을 이어서 읽어나가다 보면 전쟁의 한 복판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삶에 스며들어온 살의와 두려움 그리고 전쟁의 무서움 보다 더 끔찍한 굶주림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비비언 고닉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글을 처음 읽고 두 번째 읽을 때 부터 마치 자신 안에 잠재 된 가능성을 발견하며 스승이 직접 작가의 삶이란 이런 거다. 창작을 하는 건 이런거다라는 걸 시연해 보여 주기라도 한 것처럼 흥분과 전율에 사로잡힌다.


2022년에 출간 한 나탈리아 긴츠부르크의 소설 <All Our Yesterdays>의 서문을 21세기 샐린저로 불리는 아일랜드 출신 작가 샐리 루니가 썼다.

그녀는 서문에서 이 작품이 지금까지 읽은 어떤 소설 보다 완벽한 작품, 완벽한 서사로 나탈리아 긴츠부르그가 구사하는 모든 문장이 마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듯, 삶을 엿본듯 표현해서 소름이 끼친다고 솔직한 심경을 드러냈다.

전쟁이 발발하고 가족과 뿔뿔이 흩어지고 형제들과 남편은 감옥에 투옥되고 홀로 아이를 낳는 동안에도 글을 썼던 나탈리아는 글을 쓰는 동안에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쪼개지고 갈라지며 그칠 줄 모를 정도로 폭탄이 쏟아지는 지옥의 시절을 견뎌 냈다.

이런 삶을 견뎌 내며 글을 쓰고 살아 남아 문학역사에 이름을 새긴 작가들이 많고 남편을 잃고 홀로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필사적으로 글을 쓰고 마침내 문학상을 거머쥔 작가들도 있다.

그런데 수 많은 작가들이 나탈리아 긴츠부르그를 글쓰기 스승을 삼고 칭송 하며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탈리아 중등 과정 교과서에 실리는 <가족어 사전>에 이런 문단이 나온다.


[알베르토는 휴일을 맞아 학교에서 집에 와서 식탁에 앉아 오믈렛을 먹으려 하면 종이 울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교장이 방에 들어와 말했다.

'오믈렛은 나이프로 써는 게 아니라고 한 번 더 말해줘야 겠구나!'

그리고 다시 종이 울리면 교장이 사라졌다. 아버지는 이제 스키를 타러 가지 않았다.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늘 그랬다.

'산이라니! 위험천만한 곳이지!' 어머니는 스키를 탈 줄 몰랐고, 실내에만 있었다. 그러나 막상 남편이 스키를 타지 않는다고 하니 아쉬워 했다.]

-나탈리아 긴츠버그의 '가족어 사전' 중에서

과거와 현재가 뒤죽 박죽인 시점 사이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가 초현실적이면서도 눈 앞에 모든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게 묘사 했다.

이런 스타일의 글쓰기는 후대에 모더니즘 적인 기법으로 1994년생 밀리니얼 세대 작가 샐리 루니가 <노멀 피플>에서 차용한 기법 중 하나다.



[나의 일은 글을 쓰는 것이다. 나는 그걸 오래 전 부터 잘 알고 있다. 내 말을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글의 가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아는 건 글을 쓰는 게 내 일이라는 사실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편안함을 느끼며 내가 특히 잘 아는 것 같은 본래의 영역 안에서 움직인다. 내가 잘 알고 친숙한 도구들을 사용하는데 그것들이 내 손에 딱 맞는 게 느껴진다. 다른 일을 한다면, 가령 외국어를 공부하거나 역사나 지리나 속기를 배워보려 하거나 대중 앞에서 말을 하거나 뜨개질을 하거나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면 나는 괴로워하며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일을 어떻게 하는지 끊임없이 궁금해 했을 것이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나의 일> 중에서


비비언 고닉에게 스승 같은 글쓰기 교본이자 너는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에피파니 였던 이 에세이를 나는 안정된 환경을 보장해 주었던 런던을 떠나 북서쪽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중세 시대 건물로 에워 싸인 대학의 도시에서 고군분투 하던 시절에 처음 읽었다.


[우리는 이미 눈물이 말라버린 사람들이다. 우리 부모가 감동했던 것에 우리는 전혀 감동하지 않는다. 모두 사색 하고 공부하고 자신의 삶을 평화롭게 가꾸어나가길 기대했다. 그때는 다른 시대였고 아마 그 나름대로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고뇌의 끈을 끊어버리지 못한다. 그래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으로서의 우리 운명에 만족한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그동안 내가 읽은 어떤 작가도 이런 문장을 쓰지 않았고 이런 목소리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다.

일상에서 겪은 경험들과 목격한 것들에 대해 이토록 치열한 성찰과 인간 심리에 대해 예리한 관찰력으로 글을 남긴 작가는 나탈리아 긴츠부르그가 유일하다.

최고의 에세이스트, 저널리스트, 독보적인 이야기를 구사하는 작가들로 칭송 받고 있는 비비언 고닉, 리디아 데이비스 ,엘레나 페란테 그리고 데버라 리비의 작품들은 출간 되면 챙겨 읽지만 전 작품을 섭렵하며 수시로 들춰 보지 않는다.


우리는 허구의 이야기가 넘쳐 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유툽이나 OTT에 온갖 이야기가 넘쳐 나고 있고 게임 세상에도 온통 이야기 천지고 예능과 웹툰까지 모든 것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긴츠부르그는 고립된 외톨이 어린 시절부터 피와 폭력의 파시즘 시대에 유형 생활과 전쟁 중 피난 생활 그리고 종전 후 비로소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들을 지켜보며 인간이 한 시대를 통과 하며 비로소 어른으로 성장 하는 과정을 글로 엮어 냈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는 이 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앞에 있는 사람만 바라보는 대신 뒤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내 뒤에서 침묵하는 죽은 사람의 존재를 느낄 때 미약 하나마 자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될까?

언제 비로소 이 세상에 어른 같은 삶을 살아 갈 수 있을까?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어떤 권력이나 위세를 행세 하지 못하는 미약한 어른으로 하루 하루 성실하게 일해서 꼬박 꼬박 세금이 털려나가는 유리 지갑을 갖고 있다.

만일 권력을 갖고 있다면 한번 쯤 위세나 가식을 떨며 모순투성이의 나라는 결점을 세상에 숨기게 될지 모른다.

나에게 세상을 향한 권력이 없기 때문에 나는 날마다 새로운 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내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읽고 쓰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의 끝은 단 하나다.

결국엔 우리 모두 죽는다. 사랑하는 이들, 미워 하는 이들 모두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것이고 이 땅의 행성도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열평형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우주 속 먼지가루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모든 것이 사라져서 텅 빈 공 空의 상태가 될 것이다.

그토록 치열하게 요란을 떨 정도로 열심히 오만하게 살았던 생명체들 모두 무無로 존재 하지 않은 상태, 모두가 0의 지점에서 끝이 난다.

이런 진실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듯, 끝이 죽음이 아니라는 듯 살아간다.

바쁘게 하루 하루 일분 일초를 낭비하지 않고 살아도 텅 빈 공 空의 상태는 채워지지도 않고 영원히 사라지지도 않는다.

이 텅 빈 공 空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순간 허무와 우울 그리고 모든 것이 헛되어 보이고 커다란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이런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이들이 살아 온 모습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얻기도 하고 무언가에 몰두하고 열의를 쏟아 부으며 견디고 극복한다.

1935년생 비비언 고닉은 아흔 살을 앞두고 있다.

그녀는 매일 친구들의 안부를 물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쉼없이 걷고 읽고 쓰며 정신과 육체가 온전 할 때 더 열심히 하루를 보내고 있다.

84세부터 지난 시절의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한 비비언 고닉은 읽는 자는 영원히 늙지 않고 성장한다는 말을 했다.

그녀는 회고록, 사회비평, 심층 심리 탐구와 문학 비평으로 글쓰기 영역을 넓혀 나가며 과거의 기억과 의식을 과감하게 받아들이고 끌어 안으면서 영원히 자신을 탐구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롤랑 바르트는 다시 읽기 과정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다시 읽기 과정은 자신의 지난 시절에 고착된 기억과 생각을 되돌아 보고 뜯어 고치고 개혁하는 힘든 과정이다. 기존의 습관을 바꾸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듯이 다시 읽기 과정은 자아를 재 발견하게 되어 다시 읽기 시작하는 순간 부터 인간은 새로 태어나게 된다.'



비비언 고닉은 다시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아서 더 오래 살고 싶다며 세상이 변하고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절대 두려워 하지 말고 읽고 쓰는 통합된 자아를 갖춘 지식인으로 거듭 태어나라는 조언을 했다.

'나는 여전히 대문자 L로 적힌 Life 삶의 압력을 느끼려고 읽는다.'

-비비언 고닉

2024년 1월 부터 대대적으로 책장을 정리하며 곳곳에 쌓아 놓은 책탑에 책들 중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을 추려 내고 있다.

볼거리가 넘쳐 나는 세상에 다시 읽기에 시간을 할애 하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다.

드라마 한 편은 빨리 돌려 보고 되감아 보면서 한 시리즈를 하루 몇 시간 만에 정주행 할 수 있지만 장편 소설을 다시 읽는 데는 시간 뿐만 아니라 고도의 집중력과 끈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다시 읽어 나가면서 전에는 이해해 보지 못했던 것들, 인간관계 그리고 이 세상의 한 부분을 이제는 경험하고 체득했기에 또 다른 나의 자아를 들춰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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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4-05-20 2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끝나지 않은 일>을 조금씩 읽고 있는데 읽으면서 ‘소설 다시 읽기‘에 대해 감명을 받고 있어요.
스콧 님도 다시 읽고 싶은 책을 추려내셨군요. 어떤 책일런지?^^

Life 삶의 압력을 느끼려고 읽는다.
고닉은 참 존경스럽습니다.^^

2024-05-30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란공 2024-05-21 0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비언 고닉에 대해, 나탈리아 긴즈부릌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어 반깁고 기쁘네요! 정성이 담긴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요사이 ‘읽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있어요. 읽을 수 있는 책은 한계가 있고, 눈은 나빠지고, 집중력과 체력은 바닥나고있어서 더 그렇기도 하구요. ^^;

scott 2024-05-30 19:21   좋아요 0 | URL
이 책은 고닉의 앞서 출간된 책에서 언급했던 이야기가 이어지거나 중복되기도 하고 팔순을 넘긴 나이에 이정도 기억력과 필력을 갖춘 것 만으로도 대단!

읽고 싶은 책은 많지만 눈과 집중의 한계가 있어서 먹고 자는 시간을 줄여야 이번 생에 책읽기의 행위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란 공님의 읽기는 지적인 읽기
저는 그냥 팔랑, 팔랑, 휘리릭 ^^

물감 2024-05-30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에서 비비언 고닉에 대해 많이들 얘기하지만 손이 안갔던게, 어쩐지 어렵게 느껴진다는 편견이 생겨서였거든요. 스캇님 글 보고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듭니다. 감사합니다!

2024-05-30 19: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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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옷의 어둠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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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 중에 히로시마 우지나에 있는 육군 선박포병교도대에 소속되었던 '모토로이 하야타'가 승선한 무장선이 부산해협에서 침몰한 뒤 우지나로 돌아 왔을 때 타고 나갈 배가 단 한 척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야타는 남아 있는 연료조차 없어서 고립 된 와중에 어느 날 만주 건국대학에서 함께 공부한 동기 몇 명과 함께 대학 은사를 만나려고 노우미 섬으로 건너간다.

​모토로이 하야타가 은사의 집이 있는 노우미 섬에 체류하는 동안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서둘러 우지나로 돌아와 곧바로 폭탄이 투하된 지역을 돌아다니며 구호 활동을 펼치던 중 동료들은 방사선에 피폭 되어 죽었고 그만 살아남게 된다.

일본이 미국에 무조건 항복을 하자 패전과 함께 하이타가 소속된 육군 선박 포병 교도대가 해산한다.


[당연히 너는 앞날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고민하고 있을 테지만 그런 일은 혼자 고민해봤자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릴 수 없으니까 일단 이리로 놀러와라.]


하야타는 우연 곡절 끝에 도쿄로 올라와 여러 번 전차를 갈아타서 마침내 대학 동창인 가이 신이치와 약속한 우에노 역에 도착하자마자 전쟁 이전과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버린 모습에 큰 충격을 받는다.

도쿄의 주요 번화가 들은 거듭된 공습으로 초토화 되었고 온갖 물건들을 불법으로 거래하는 거대한 암시장에는 국가의 통제 밖에 있는 이들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되었다.

전쟁 전에 노점을 관리했던 조직인 데키야가 도쿄 곳곳에 은밀하게 퍼져 있는 암시장을 관리하는 동안 일본군 징용으로 끌려 온 중국과 조선, 대만 사람들이 패전 후 일본에 남아 장터를 차지 하면서 서로 간의 영역을 다툼이 시작되었다.

전쟁 고아들과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들, 거리의 부랑아들이 데키야 조직과 야쿠자 조직에 합류하면서 암시장의 규모는 거대해 졌고 이곳에선 일본의 법이 적용되지 않는 무법의 영역이 되었다.

화물 운반 거룻배 운항일을 하는 집안 출신인 하야타와 데키야 두목의 아들인 신이치는 패전 후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공통된 신념을 갖고 있었다.

하야타는 편입한 대학에서 민속학을 전공하고 국가 재건에 보탬이 되기 위해 탄광촌에 뛰어 들어가서 그곳 탄광 종사자들이 살고 있던 주택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해결 하고 심리적 변화를 일으키며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검은 세력의 배후를 쫓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그의 친구 신이치는 데키야 조직을 이끄는 아버지를 통해 쇠퇴의 길을 가고 있는 암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괴이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 하야타에게 해준다.


'해가 지며 어디선가 빨간 망토를 입은 괴인이 나타나 아이를 유괴해 죽인다.'


마을에 전설 처럼 내려왔던 괴담이 1906년 2월 11일 밤 후쿠이현 사카이군 미쿠니초에 있는 선박 화물 중개상 하시모토 리스케가 운영하는 상점에서 발생한다.

비좁은 미로 같은 붉은 암시장 거리에는 여성들을 뒤쫓는 '붉은 옷'의 정체불명의 괴인이 잔혹한 살인으로 시장 사람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 넣는 무시 무시한 사건이 발생하자 신이치는 이 암시장을 좌지우지 하는 상인 조합의 보스인 삼촌에게 자신의 대학 동창인 친구 하야타를 소개 하며 이들은 괴이한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정체 불명의 '붉은 옷'을 입은 자가 저지르는 살인 사건은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곳에 있는 상점들마다 붙어 있는 밀실 공간으로 하야타가 이 사건을 추적하고 쫓기고 미행 당하는 동안 1936년 육군의 친황파 청년 장교들인 일으킨 2.26쿠데타 사건부터 일본이 일으킨 대동아 전쟁부터 전쟁 중 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는 군부대에 위안소를 설치해 놓고 중국과 한국, 대만의 미성년자 여자 아이들을 끌어다가 몹쓸 짓을 하게 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죽이거나 버려 버린 20세기 최악의 비극적인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붉은 노을이 진 깊은 밤, 붉은 옷에

쫓겨 도망친 게 어느 날 밤이었나.

가게 계산대의 매상을

데키야에게 넘긴 건 환각이었을까

열 다섯 누나는 어둠이 되어

고향에 보내는 소식도 끊겼네

붉은 노을이 진 깊은 밤, 붉은 옷을

바라 보고 있어요. 바로 뒤에서

일본 땅 어디에도 주소지를 두고 살지 못했던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붉은 미로의 판자촌 기사이치유가장의 밀실에서 발생한 사건은 단순히 희대의 살인마가 저지른 사건이 아니였다.

전쟁을 시작한 일본 땅의 남자들을 위해 한반도와 중국 전역 그리고 아시아 곳곳에서 끌려온 소녀들은 전쟁에 패배하는 날 부터 짐승 같이 죽거나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일본 땅 빈민굴에서 숨어 살며 어둠의 세력이 되고 그 어둠의 세력들은 또 다른 약자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며 살아간다.

작가 미쓰다 신조는 20세기 총과 칼로 무장해서 이웃 국가의 무고한 생명들을 마구 짓밟았던 일본에게 강제로 끌려가서 간신히 죽음의 사선에서 살아 남았지만 돌아갈 집도 가족도 모두 잃어 버린 한국인들과 중국인들 그리고 전쟁 고아들이 일본 땅에서 어떻게 살아갔는지 모토로이 하야타라는 20대 청춘이 붉은 옷을 입고 여자와 아이들을 잔혹하게 죽이는 희대의 살인마를 뒤쫓으면서 근대 암울한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 했다.


이 책의 맨 마지막 장에는 작가 미쓰다 신조가 참고한 문헌에 대한 기록이 두 장에 걸쳐 적혀 있다.

일본 고전문학 전집 부터 시작한 참고 문헌은 숨겨진 전쟁 기록- 도쿄 암시장- 매매춘의 근현대사- 아무도 모르는 국가 매춘 명령-종전 직후의 일본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은 점령하의 일본- 불타버린 벌판의 암시장- 환락가는 암시장에서 탄생했다. - 0년 도쿄 블랙홀-역의 아이의 싸움 이야기하기 시작한 전쟁고아-중국 전선, 한 일본인 병사의 일기 1937년 8월- 1939년 침략과 가해의 일상 까지 작가는 오랜 기간동안 일본이 동아사이와 한국 땅에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소설적 상상력으로 버무린 허구의 세계가 아닌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다.

일본은 무모하게 전선을 확대 시켜 나가면서 한국인들의 집안에서 쓰는 가제도구는 물론이고 산과 들 그리고 가축과 짐승들까지 모조리 빼앗아서 군수 물자로 썼고 소녀들을 납치하거나 돈을 많이 주는 공장에서 일하게 해준다고 거짓말을 하고 군부대 마다 차려 놓은 위안소로 끌고 갔다.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나 형무소 생활을 하는 죄인들까지 모조리 끌고 간 일본은 아시아 전선에 군수물자를 보내지 않고 한반도 땅에서 빼앗은 금과 은, 구리 그리고 땅 속 깊은 곳에 파묻힌 광물을 모조리 군수 공장으로 보내 무기를 제조하는데 쏟아 부었고 각 전선마다 배치된 군부대들에게는 철저하게 현지에서 조달하라고 명령했다.

총과 칼로 무장한 일본 군인들은 중국 난징 시를 살육의 처형장으로 만들어 버렸고 만주 전역과 대만 본토에는 희귀한 나무와 나비들까지 전부 뽑아버리거나 멸종 시켰고 일본 땅에서 발발한 간토 대지진 당시 일본 민간인들은 한국인들을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하고 몰살 시켜 버렸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의 가죽을 벗겨 먹었던 일본 군인들은 국가의 명령을 받아 인간으로서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고 전쟁에서 무조건 승리 하기 위해 일본은 '메스암페타민' 이라는 피로와 졸음을 없애는 마약 성분의 각성제까지 먹여서 반 미치광이 상태로 만들어 살인기계들이 아시아 전역에서 핏물로 물들였다.

패전후 미군에게 항복한 일본은 모종의 거래를 통해 경제적 실익을 차곡 차곡 챙겨서 전쟁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처벌을 전혀 하지 않은 채 한국 땅에서 발발한 6.25 전쟁으로 경제적 특혜와 군사적 이익을 모조리 쓸어 담아 경제 대국의 자리에 올라서서 자신들이 저질렀던 만행을 역사에서 지우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일본은 자신들의 역사책에서 줄창 미군에게 원폭을 맞고 전쟁 중 도심 곳곳에 폭격과 공습으로 굶주림과 공포에 시달렸던 것만 기록하고 있고 패전 후에도 살아 남은 일왕은 이웃 국가에게 극악의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어떤 사죄를 하지 않고 [통석의 염]이라는 장례식을 거행할 때 치루는 입관 용어를 내뱉고 퇴위했다.

왕이 통치 했던 시절의 아시아 군주 국가에서는 왕이 국가의 모든 시간을 지배한다는 의미로 연호(年號)를 썼지만 20세기 두 차례 전쟁을 겪고 나서 더 이상 연호를 쓰지 않지만 일본은 유일하게 연호를 쓰고 있다.

2019년 10월에 즉위 해서 레이와 시대라 명명한 나루히토 일왕 아키히토는 할아버지·아버지와 달리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

그는 즉위식에서 세계 헌법 준수와 평화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외교적 수사 발언을 했다.

2023년 전쟁 피해자 추도식에서 일왕은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재차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고 아직까지 전범들이 묻힌 야스쿠니(靖國)신사는 참배하지 않았다.

작가 미쓰다 신조가 창조한 20세기 청년 하야타는 탄광에서 검은 얼굴의 여우로 불리는 괴기스러운 사건을 해결하고 암시장에 있는 붉은 미로 속 유곽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파헤치고 나서 자신이 나아갈 길은 일본 경제를 다시 세우는데 보탬이 되기 위해 해상 보안청 소속의 항로 표식 직원으로 취직해서 어느 섬의 등대지기가 된다.

붉은 옷의 유래는 풍수지리에서 동쪽의 청룡의 청색, 서쪽의 백호의 백색, 남쪽의 주작은 적색 그리고 북쪽의 현무는 흑색이라 명명하고 천상의 북극성은 황색을 상징했다.

남방 불교에서 아축여래는 청색, 아미타여래는 백색, 보생여래는 적색인 붉은 색, 불공성취여래는 흑색 그리고 대일 여래는 황색으로 다섯 여래를 오색 으로 대응 시킨다.

티베트에서 시작되어 중국 대흥선사에서 자리 잡은 남방 불교의 한 종파인 밀교를 한국의 혜초스님이 일본 땅에 전파 해서 일본인들의 민간 신앙과 뒤섞여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금빛으로 빛나는 네명의 보살을 거느리고 일체의 재물과 보배를 맡고 있는 붉은 색의 보생여래는 중생들의 평등한 삶을 관장 해서 교화하고 구제하는 역할을 한다.

작가 미쓰다 신조는 <붉은 옷의 어둠>이라는 책에서 일본 땅에서 가장 미천한 존재들을 잔혹하게 죽이는 살인마에게 붉은 색 옷을 입혀 놓았다.

아이가 태어나면 탯줄을 보관하는 포 항아리와 검붉은 옷 그리고 붉은 홀겹 옷의 한자에 모두 옷의衣라는 한자가 들어가고 검붉은 옷 색을 의미하는 자赭 한자에 붉을 적赤 한자가 들어가고 홀겹의 옷도 붉다.

이 셋을 합치면 혁의赭衣,즉, 죄인이 입는 <붉은 옷>이라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작가 미쓰다 신조는 이 책에 등장하는 희대의 살인마에게 붉은 색 옷을 입혔고 그 붉은 색 옷을 입은 살인마 죄인은 지난 시절 일본이 대동아 전선에서 아시아인들에게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한 형벌을 의미한다.

단순히 밀실 미스터리라 생각하고 이 책을 집어 들고 읽다 보면 청년 하야타가 추적하는 붉은 미로 속 밀실 사건의 붉은 옷을 입은 살인마에게 희생된 불행한 시대의 한국인들의 처참한 모습을 마주하게 되고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인들 손에 희생 당했는지 미약하게나마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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