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121번째이자 여성으로는 18번째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이 출간한 책들은 지난해 10월 부터 최근 까지[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순번을 서로 번갈아 가며 1위 자리를 밀어 내고 올라서기를 반복했다.











한강 작품 열기 속에서 인기 아이돌이 추천하는 책, SNS열풍을 타고 화제를 불러 일으키는 책,영향력 있는 인사가 추천하는 책들이 빠른 속도로 베스트셀러 상위권으로 진입했다.












이 와중에 세상은 12·3 불법계엄 이후 대통령 탄핵심판이 열렸고 전국 주요 도심은 탄핵 찬반 시위, 시국 선언,집회 등으로 단 하루도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다.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두고 권력의 '별의 순간'을 잡으려는 대권 잠룡들이 여론의 추이를 살피는 동안 아이돌 그룹의 신간 앨범이나 사진집 발매 오픈 런 대기줄 처럼 어느 정치인의 자서전 책을 사려는 이들이 대형 서점 개점 전부터 100m가 넘는 줄을 서는 기 현상이 벌어졌다.

광화문을 지나가는 버스 차창 너머로 눈 앞에 이런 광고 문구가 스쳐 지나간다.


긴박한 순간을 디테일하게 묘사한 역사 다큐멘터리


누구든 책을 낼 자유가 있고 누구든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구매 할 자유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 역시 내가 읽고 싶은 책,손바닥 크기의 작은 문고본을 꺼내 무심코 펼쳐지는 페이지를 읽는다.


“어제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돌아보니 울컥 목이 메었다. 모두가 착하디 착한 이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루의 고된 생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눈매에서 뭐라 말하기 어려운 인간의 우수 같은 것을 느꼈던 것이다."


머릿 속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펼쳐 드는 책이 있다.


영혼의 스승’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납덩이처럼 무겁고 답답하기만 한 이 가을의 공기 속에서 그토록 선량한 눈매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어디서 무얼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이 뭘 잘못했다고 이 가을의 공기는 이렇게 숨이 막히는가. 언어가, 인간의 그 언어가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들으려야 들을 수가 없다. 요즈음 신문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라디오를 들어도 눈물이 난다. 인간의 말이 듣고 싶어서, 우리들 이웃의 나직한 그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내 귀는 도리어 문을 닫는다.

지형(紙型)까지 떠 놓았지만 언제 책이 되어 햇빛을 보게 될는지 알 수 없다. 영혼의 모음(母音)은 맑게 개인 하늘 아래서가 아니면 울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1972년 입동절 다래헌(茶來軒)에서 저자 합장.”

법정스님을 평가할 때 ‘무소유(無所有)’의 가르침을 실천한 수행자이자 고등교과와 대학 교과에 수필이 실리는 자연주의자 에세이스트로 인식한다.

하지만 스님이 남기신 글들을 찬찬히 읽다 보면 ‘비구 법정’은 반 세기 전 민주화에 앞장섰던 선구자자 였다.

1954년 입산 출가하여 조계산 불일암 시자인 법정(法頂)스님은 1960년부터는 통도사에서 운허스님이 주도했던 <불교사전> 편찬사업에 참여하고 1972년 12월 독재 정권 연장을 위한 유신 헌법이 발효되고 이에 항거한 학생, 시민, 민주계 인사 등의 유신 철폐 개헌 서명 운동이 일어나자 여기에 스님도 뜻을 함께 하였다.

1971년 법정 스님은 <현대문학> 3월호에 <무소유(無所有)>를 발표했다.

우리는 지금

다스림을 받고 있는

일부一部 몰지각자者

대한민국大韓民國 주민住民 3천5백만 다들 말짱한 지각知覺을 지녔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지각知覺을 잃었는가

아, 이가 아린다 어금니가 아린다.

입을 가지고도 말을 못하니

이가 아리는가

들어줄 귀가 없어 입을 다무니

이가 아리는가

들어줄 귀가 없어 입을 다무니

이가 아리는가

오늘도 부질없이

치과의원齒科病院을 찾아 나선다.

흔들리는 그 계단을 오르내린다.

「1974년 1월-어떤 몰지각자沒知覺者의 노래」(중에서)


1980년 법정스님은 해인사와 서울을 오고 갈 때 뉴스와 신문을 통해 5·16 군사쿠데타가 발발 한 것을 알게 된다.

몇 일 후 선암사의 어느 노스님이 군인이 쏜 실탄을 팔에 맞아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며 사회민주화에 대해 발원한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를 발표한다.


“민주화 운동을 할 때 박해를 받으니까 증오심이 생기더군요. 내 마음에 독을 품는 게 증오심인데 그때 ‘이래선 수행에 도움이 안 되겠구나’하고 느꼈어요. 순수한 마음에서 이탈하는 게 괴롭고. 중노릇하는 내 본분이 뭐냐고 스스로 물었지요. 본래 자리로 돌아가자. 해서 산으로 들어갔어요.'

-법정(法頂)


시국을 비판하며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던 어느 날, 법정스님은 정권에 대한 증오심이 스스로의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음을 깨닫고 서울 봉은사 다래헌에서 전남 순천 조계산 자락 불일암으로 들어가 모든 것을 버리고 한 칸 암자에서 혼자서 밭을 매고 밥 지으며 수행한다.

법정 스님이 세상의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산 속으로 들어간 지 17년의 세월 동안 그의 주옥같은 산문집들을 읽는 독자들 마음마다 사색의 깊이가 새겨지고 스님이 활자로 새긴 철학적 언어들은 현실의 고통 속에서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밝은 빛이 되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 열심히 찾고 있으나 침묵 속에 머무는 사람들만이 그것을 발견한다. 말이 많은 사람은 누구나 막론하고 그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간에 그 내부는 비어 있다.

스님의 말씀을 더 듣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산 속 암자까지 찾아 가자 법정 스님은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1992년 법정스님을 찾아온 한 프랑스 철학자가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이렇게 외진 곳에서 혼자 살고 계신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스님은 다시 붓을 들고 세상 밖으로 나갔다.


‘내가 사는 방식을 남에게 강요할 게 아니라, 이렇게 자연에서 배우고 얻어 들은 것들을 사람들과 나눠야 되겠구나.’


새벽 4시에 일어나 저녁 10시에 자는 일과를 매일 지키셨던 법정 스님은 세상을 향해 말로 글로 깨우침을 전하고 나서 2010년 3월 13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말을 남기고 입적 하셨다.

50년 동안 수행을 했던 법정스님이 다다른 곳은 과연 어디였을까...


“사람의 한 생애에서 남는 것은 재산도 명예도 아닙니다. 얼마나 주변 이웃에게 덕(德)을 베풀었는지가 중요해요. 바로 덕이야말로 사람의 근원적인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많은 사람들은 덕을 쌓을 줄을 모릅니다. 잘 살고 편리해도 덕이 없으니 외롭고 마음이 황폐해지는 것이죠. 무슨 일을 하든 이웃에 덕이 되는 따뜻한 가슴과 포용력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연을 통해서만 회복할 수 있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을 뽑기 위해 친인척을 채용하는 전통을 내세우는 매관매직을 하고 있는 무소불위 공무원들은 국민의 혈세 법카를 긁으며 잘 먹고 잘 사는 풀 소유의 삶을 누리고 있다.

국민의 삶을 좌지우지 하는 권력자들은 저마다 국민의 세금으로 현금 살포를 하겠다고 하고 미래 먹거리를 위해 인공 지능이라는 단어를 내뱉으면서도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킬 수 있는 법안만 통과 시키며 정치 개혁, 정권 교체를 외치고 있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외면하는 동안 사회 곳곳에 시퍼런 칼날들이 무고한 시민들의 생명을 찌르고 있고 부실한 사회 안전망은 언제 어디서 어떤식으로든 무너져 버릴지 모를 정도로 위태롭다.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우리 모두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의 역사다.

소유 하려는 열망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남들 보다 더 많이 내 몫을 챙기기 위해 끊임없이 싸울 뿐이다.

홀로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시며 청빈을 실천하셨던 법정스님은 빈 손으로 떠나셨다.

“그저 ‘현재의 나’일 뿐입니다. 과거를 회상하거나 불확실한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최대한의 삶을 살아갈 뿐이지요. 연륜 값을 하고 있는 건지, 수행자 답게 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고, 함부로 말과 행동을 하지 않을 뿐이지요.”

-법정(法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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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5-03-11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생각하니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세상이 혼탁하고 어지러울 수록 어서 빨리 맑고 향기로운 세상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scott님의 늘 좋은 글 감사 합니다.

2025-03-12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샤일록 작전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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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에 발표한 첫 번째 소설 <굿바이, 콜롬버스>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문학계에 데뷔한 필립 로스는 1969년 율법의 결벽 속에서 성(性) 불능이 된 유대인 변호사가 이스라엘로 돌아가 고통의 근원을 발견하는 문제작<포트노이의 불평> 출간 즉시 논쟁을 불러 일으키며 평단과 종교계를 뜨겁게 달아 오르게 만든다.

뜻밖에도 독자들은 세상을 소란스럽게 만든 <포트노이의 불평>에 열광하고 필립 로스는 단숨에 문학계 중심 인물이 된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필립 로스는 1970년대부터 유럽 문학계에서 전방위적인 활동을 벌이며 동유럽권 출신 작가들과 교류 하기 시작한다.


필립 로스는 체코 68혁명 세대의 중심 인물이였던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과 밀란 쿤데라와 만남을 통해 꾸준히 서신 교류를 이어가던 중 평소 자신이 존경 했던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무덤이 있는 체코 프라하를 방문한다.

그는 이념이나 사상 체제 비판은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서방 세계로 망명한 동유럽권 작가들과의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서 그들의 작품이 영미권에 출판 할 수 있게 힘을 쏟는다.

1970년대 필립 로스는 공산 체제하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유린 당하는 동유럽의 지식인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을 비롯해 자전적 분신(分身)인 네이선 주커만을 주인공 또는 관찰자로 등장 시킨 일련의 소설을 발표하며 학계의 부조리와 타락한 지식인의 이중적인 모습을 투영시켰다.

작가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던 1988년 경 필립 로스는 뉴욕 맨해튼에 머물던 어느 날,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친척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그는 "TV에 네가 나오고 있다"는 친척 앱터의 말에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여겼지만, 그 전화는 불길한 예감의 시작이었다.

나흘 후 작가 필립 로스는 인터뷰 취재 일정이 잡혔던 이스라엘의 소설가 아하론 아펠펠드로부터 "조만간 예루살렘에서 강연한다고 신문에 실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마침내 누군가 자신을 사칭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1988년 1월, 신년이 밝은 지 며칠 뒤에 나는 또 다른 필립 로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내 친척 앱터가 뉴욕의 내게 전화를 걸어, 이스라엘 라디오의 보도 내용을 알려 주었다. 트레블링카에 근무하던 공포의 이반이라고 알려진 존 데미야뉴크의 재판을 내가 예루살렘에서 방청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필립 로스의 <샤일록 대작전>

공포의 이반이라고 알려진 존 데미야뉴크의 재판을 방청 하고 있었던 또 다른 필립 로스라는 인물은 현시대 유대인을 가장 위협하는 요인이 이스라엘의 유대인 전체주의라며 유대인을 유럽에 재정착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당시 뉴욕에 살고 있었던 필립 로스는 수면제 ‘할시온’ 부작용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상태여서 이 모든 것이 수면제 부작용으로 인한 자신의 환각이 아닐까 의심한다.

때 마침 예루살렘에서 소설가 아하론 아펠펠드 인터뷰 일정이 잡혀 있었던 작가 필립 로스는 사칭범이 있다는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 511호실에 전화를 건다.

나는 수화기를 들어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로 전화해서 511호실로 연결 해 달라고 말했다. 목소리를 위장하기 위해 나는 프랑스 말씨를 썼다.

자신을 ‘필립 로스’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칭범에게 작가는 파리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기자 ‘피에르 로제’라고 역으로 사칭하고 진실을 알기 위해 그와 대화를 시도 한다.

" 여보세요, 로스 씨? 필립 로스 씨 입니까?" 내가 물었다.

"네."

"정말로 그 작가예요?"

"그렇습니다."

"<포트노이의 불평>의 작가?"

"그래요. 그래요. 누구십니까?"

진짜와 가짜가 뒤바뀌는 순간 독자들은 이 이야기가 실화 인지 작가 필립 로스가 창작한 허구적 사실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필립 로스는 앞선 작품에서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여러 편 집필했다.

그는 '샤일록 작전'에서도 자신을 사칭하는 '필립 로스'라는 인물을 통해 나치 집권기 유대인 수용소 간수의 전범 재판이 한창 진행 되는 것과 동시에 점점 격화 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봉기를 교차 시키며 펼쳐 보인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기로에 서 있는데 소설을 써요? 이제 저는 유대계 유럽인들의 재정착 운동에 모든 것을 바치고 있습니다. 디아스포리즘에."

작가 필립 로스의 사칭범은 예루살렘의 전범 재판을 방청 하고, 유력 정치인을 만나 정치적 주장을 공표한다.

사칭범은 '유대인은 유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른바 디아스포리즘을 주창하며 이스라엘 우파 정치인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발언을 일삼자 이 소식을 들은 진짜 필립 로스는 이스라엘로 가서 사칭범을 대면한다.

자신을 사칭하고 다니는 자를 만나러 간 작가 필립 로스는 이스라엘 땅에서 다양한 인물들과 만나고 이들의 입을 통해 박해를 받았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밀어내는 정복자의 잔혹한 이중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1967년 이스라엘이 6일 전쟁에서 승리 했다. 이와 함께 확인된 것은 유대인의 귀화 또는 동화 또는 정상화가 아니라 유대인의 힘, 홀로코스트의 냉소적인 제도화가 시작된다.

필립 로스가 마주한 이스라엘 땅의 사람들 중 친척 앱터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겪은 폭력의 후유증을 떨쳐 내지 못한 상태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짓밟은 이들에게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점령지 라말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팔레스타인 출신 조지는 작가에게 이스라엘 압제에 관해 열변을 토한다.

유대인들의 군사국가가 의기양양하게 으쓱거리는 가운데 이제 정복자가 된 유대인이 과거에는 희생자였으며 순전히 그 역사 때문에 정복자가 되었음을 온 세계에 시시각각 날이면 날마다 일깨워주는 것이 유대인들의 공식적인 방침이 된다.

군사 강국이 된 이스라엘은 촘촘한 첩보망을 통해 아랍과 팔레스타인의 협력을 붕괴 시키는데 몰두 하면서 요인 암살과 정적 제거 스파이 색출을 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세계적 영향력을 갖춘 지식인들을 지원하며 소설과 영화에서 유대인들이 박해과 억압의 희생자라는 걸 전 세계인들에게 주입시키는 작업을 주기적인 홍보 캠페인처럼 펼치며 잔혹한 방법으로 팔레스타인들을 죽이는 모습을 감춘다.

유대계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전 세계인들에게 유대인의 희생에 대한 걸 끊임없이 상기 시키는 동안 이스라엘은 점령지를 꿀꺽 집어 삼킨 뒤 팔레스타인들을 추방하고 역사적인 정의에 따른 정당 보복 조치라며 자기 방어 논리를 펼친다.

이스라엘 건국을 위해 평생을 바친 유대인 노인 스마일스버거는 이제 유대인이 죄를 짓고 있다고 말하며 "성경에 새로운 장이 하나 더 생긴다면 하느님이 죄를 지은 이스라엘 민족을 파괴하려고 일억 명의 아랍인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거기 실릴 것"이라고 한다.

-필립 로스의 <샤일록 작전> 중에서

작가 필립 로스를 사칭하는 자는 스스로 반유대주의와 싸우는 투사라며 “유럽 출신 유대인들이 유럽에 재정착해서 이스라엘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이 나라의 영토를 1948년 수준으로 줄이고, 군대를 해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아랍의 이웃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작가 필립 로스는 사칭범이 폴란드나 루마니아, 독일에 유대인을 재정착 시켜서 서구에 유대인을 분산 시키자는 주장에 맞서던 중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그 이면에 펼쳐 지고 있는 첩보 작전인 일명 <샤일록 작전>에 휘말리게 된다.

나는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저들에게 모이셰 피픽의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놈이 꾸미는 일과 내가 꾸미는 일이 어떻게 다른지 말해 줄 것이다. 그들이 조지 지아드에 대해 물어 보는 것에 모두 대답할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된 첩보 작전, '샤일록 작전'에 가담하게 된 필립 로스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유대인 정체성과 그들의 역사적 고난, 그리고 현대 정치 상황을 밀도있게 서술한다

작가 필립 로스는 이 작품 맨 첫 장에 법적인 이유로 여러 사실을 변형해서 책을 쓸 수 밖에 없었다며 현실의 이야기를 토대로 인물과 장소에 관한 세세한 정보를 변형 시킨 허구의 이야기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다.

필립 로스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샤일록 작전>은 1993년 출간 즉시 당시 첩보소설의 문법을 빌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에 성공한 작품이라는 평을 들으며 이듬해 미국 최고 소설에 수여하는 펜/포크너상을 받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필립 로스의 <샤일록 작전>에서 이스라엘 법정에 선 존 데미야뉴크의 실제 삶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1940년 나치 시절 강제 수용소에서 간수로 일하는 동안 유대인 수용자들을 잔혹하게 고문하는 걸로 악명이 높아 '공포의 이반'으로 불렸던 데미야뉴크는 1988년 1월 예루살렘 지방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데미야뉴크는 항소심에서 소련 측 증거를 제시하며 판결에 불복했지만 1심 판결을 받은 지 오 년 만에 사형 선고를 받았다.

1920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외곽에서 태어난 데미야뉴크는 스탈린 통치 당시 자행 되었던 대기근 홀로도모르(기아에 의한 살인 )에서 살아 남아 2차 대전 발발 이전 까지 집단 농장에서 트랙터 운전수로 일하다가 군에 자원 입대 한다.

2차 대전 발발 당시 독소 전쟁에서 패한 독일군과 유대인들을 수용했던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학살 증거가 철저히 사라져서 절멸 수용소라 칭함)에서 감시원 역할을 하다가 종전 후 수감자들을 국경 밖으로 내보내는 트럭 수송 담당을 하던 중 수용소에 탈출한 여성을 돕다가 미국으로 망명 신청을 한다.

1952년 미국 이민청에 등록된 데미야뉴크의 서류에는 우크라이나 태생의 소련군 출신으로 종전 후 난민 캠프로 이동하는 차량을 운전 했던 운전수라고 기록 되어 있었다.

미국 땅에서 강제 포로 수용소 간수였다는 과거가 사라진 데미야뉴크는 동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집단 거주하는 오하이오 주에 정착해서 포드사로 납품하는 자동차 부품 업체에서 전기 기술자 일을 하며 함께 도망친 아내와 세 아이를 낳고 시민권을 받는다.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수감자들은 수감 당시 잔혹하게 고문하는 걸로 악명이 높아 '공포의 이반'으로 불렸던 간수가 데미야뉴크라고 지목한다.

1986년 60세를 훌쩍 넘긴 데미야뉴크를 체포한 이스라엘 재판부는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

법정에 선 데미야뉴크는 자신은 수용소에서 수감자들 이송과 수송을 담당 했을 뿐이고 어느 누구에게도 고문을 가 한 적이 없다고 적극 항소 한다.

1991년 12월 26일 소련이 무너지고 연방 체제의 사슬이 사라지고 나서 국가 주요 기밀 문서가 공개 된다.

소련 국가 기밀 문서에 의하면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에서 '공포의 이반'으로 불렸던 간수는 데미야뉴크가 아닌 전혀 다른 인물이였다.

2차 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수감자들 이송과 수송을 담당했던 데미야뉴크를 기억하고 있는 생존자를 찾아낸 변호인단은 수용자들에게 데미야뉴크가 가장 친절했던 인물이였다는 증언을 받아 낸다.

장장 5년 동안 이스라엘 법원과 소송을 이어갔던 데미야뉴크는 독일과 폴란드에 남아 있는 모든 기록을 샅샅이 뒤져도 그의 범죄 행위가 발견 되지 않아 무죄 판결을 받고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어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간다.

2002년 유대계 단체와 이스라엘 정부는 데미야뉴크가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 뿐만 아니라 29000명의 유대인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독일 소비보르 수용소에서 간수로 일했던 기록을 찾아 내 그를 독일 법정에 세운다.

장장 10년에 걸쳐 미국 지방 법원과 이스라엘과 유대계 단체가 데미야뉴크의 시민권 박탈과 추방을 놓고 법정 공방을 펼치는 사이에 90세를 넘긴 데미야뉴크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독일은 소비보르 수용소 전범 재판을 종결 시켜 버린다.

데미야뉴크가 사망 하고 나서도 유대계 단체들은 끈질기게 그의 범죄 흔적을 찾아 다녔고 마침내 데미야뉴크로 추정되는 사진을 유대인 추모 기록관에 증거로 제출한다.

2025년 임기 두 번째를 맞이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 주민의 자발적 출국과 이주를 돕겠다는 외교적 발언을 하고 나서 이스라엘과 비밀리에 나눈 회담 자리에서 ‘가자지구'를 이스라엘에게 통째로 넘겨 주는 '가자 점령’ 계획을 논의 했다.

이는 유대인이 나치에게 당한 인종말살 정책을 가자지구 주민에게 행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왜 유대인들끼리 분쟁을 벌어야 하는가 단순히 유대인과 유대인 사이만 분열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 또한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오. 세상에 이보다 더 다중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이 있소?

모든 유대인의 내면에는 유대인 '무리'가 살아요. 착한 유대인, 못된 유대인, 새로운 유대인, 옛날 유대인, 유대인을 사랑하는 자, 유대인을 증오하는 자. 이교도의 친구, 이교도의 적, 거만한 유대인, 상처 받은 유대인, 경거한 유대인, 파렴치한 유대인, 거친 유대인, 점잖은 유대인, 반항적인 유대인, 달래는 유대인, 유대인 다운 유대인, 유대인에서 벗어난 유대인....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한 악독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이름을 차용한 <샤일록 작전>은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지만 역사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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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5-03-06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저의 두 거대 기둥 할배들끼리 실제로 만난 적도 있었군요. 할시온 거 별로긴 한데 로스 할배 시절에는 졸피뎀이 없었나 보군... 아직도 번역될 소설이 더 남은 것도 신기하네요. 난 아직 할배책 쌓아 놓은 것도 너무나 많은데...

2025-03-06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5-03-07 18:29   좋아요 1 | URL
ㅋㅋㅋ역시 모르는게 없는 척 척박사 scott님!!!!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 타이피스트 시인선 7
김이듬 지음 / 타이피스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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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을 찾기 힘든 세상에서 천 원으로 배를 채울 것도 없고 지하철을 탈수도 없다.

천 원으로 영혼을 고양 시킨다거나 지성을 갈고 닦을 수도 없으니 천원 지폐 만큼 가벼운 시집 한 권을 구입한다.

당신은 지금 잠의 가시 덤불 속에서 양 떼를 세고 있습니까?

한 마리의 양을 잃은 상실감으로 뒤척거리다 일어나, 모든 양을 풀어 주러 나왔습니까?

집들은 모두 낡은 목조 건물이고, 지붕에서 뜯어낸 판자로 만든 덧문 너머 별들이 빛나고 있습니까?

지붕 고치는 사람처럼 나는 사라져 가는 직업의 사람입니다.

어쩌다가 우연히 걸작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김이듬의 <목동의 밤> 중에서

진주에서 태어난 시인 김이듬은 2020년 『히스테리아』의 영미 번역본이 전미번역상과 루시엔스트릭번역상을 동시 수상하기 전 까지 시를 쓰는 것 만으로 생계를 잇기 힘들어서 일산에서 ‘이듬 책방’을 운영하며 시를 썼다.

시인은 낮에는 책방 주인으로 북토크를 열고 손님들과 함께 시를 읽으며 낭독의 시간을 가졌지만 책은 고작 하루 서너 권 정도 팔렸다.

대학 강사 수입까지 탈탈 털어 넣어도 매년 치솟는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서 결국 시인은 책방 문을 닫고 서울 변방에 작은 작업실에서 온종일 시어를 다듬었다.

젊은 시절에 나는 안락의자를 샀다고 말했던가?

이 의자에 눕다시피 앉아 나는 열 권의 책을 쓰고 서른 한 번의 겨울을 보냈다.

시인은 안전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얼어붙은 길목 앞에서 파쇄한 백지가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길 위에 서 있다.

비애와 불운의 배낭을 메고 길을 떠나는 시인의 고독은 세상과 엇물리는 자의 일방통행로를 따라 이어진 시어들이 누구에게도 사랑 받거나 이해 받지 못했던 이들과 함께 동행을 하듯, 정처 없이 떠돈다.

어제는 에밀리가 내민 지번 주소 들고 그의 부모 댁을 찾아갔지만 삼미시장으로 변한 거리만 확인했을 뿐 우리는 40여 년 전의 시간을 찾을 수 없었다

―블랙 아이스 중에서

또래들과 달리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던 나는 미술학원, 피아노 학원을 거쳐 학교와 학원, 다양한 국가의 문화원과 도서관, 여러 국가의 박물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알지 못한 세상, 가 보지 못한 세상을 향한 갈증이 강했다.

한국 땅을 떠나 영어와 독일어를 마스터 하고 프랑스를 여행하며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오스트리아를 거쳐 체코 프라하에서 연극에 심취하고 그리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서 이집트 고대 상형 문자를 배우며 어느 누구도 강요한 적 없는 고대 문명을 연구 해 보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유럽 전 대륙을 누벼 봤고 살아 봤고 북아프리카 이집트 카이로 부터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킬리만자로까지 올라가 봤다.

킬리만자로에서 표범은 보지 못했지만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 거대한 예수상을 보고 볼리비아의 소금 사막 우유니의 모래 가루 같은 소금도 만져 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20대 시절에 하고 싶었던 일들, 버킷 리스트에 적어 놓은 것들을 거의 다 해보았고 대학원까지 다니는 동안 수많은 스승들을 만났다.

하지만 막상 사회로 나와 보니 순수가 어떻게 위협 받고 배반 되는지, 열망은 어떻게 죄가 되는지 인생의 단맛과 쓴 맛을 두루 맛보았다.

그동안 나에게 좋은 스승이 있었던가?

학업의 성취를 넘어 사회에서 성실하게 일한 댓가를 정당하게 받고 있을까? 아니면 피 땀 눈물로 번 돈이 모두 중 범죄 짓을 저지르고 민주주의 체제를 뒤흔들고 국민의 생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들의 밥그릇만 챙기는 권력자들의 세금 루팡으로 전락해 버린 걸까?

시인 김이듬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풀도 가축도 무시하는 목동 같아요.'

퇴계 이황의 얼굴이 새겨진 천 원으로 시집 한 권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늦은 밤 시인이 써 내려간 시를 읽는다.

어떤 순정과 진심은 ‘명작’ 이지만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시는 명작이 되어 누구의 삶을 구원 할 수 있을까?

“길가에 앉아 사람들을 읽는다 내가 읽던 사람이 노란 버스에 탄다 구름을 읽는다 가로수와 새를 읽는다 건성으로 읽을 때도 있다 이상하게 나는 난독증을 고칠 의욕이 없다 다시 길을 걸으며 간판을 읽는다 독일어를 아는 게 도움이 된다 아우구스트스트라세에서 서점에 들어갔다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다 당나라 말기 러브레터 이집트 상형문자 벵골어 부기어 등 오래된 언어들이 적힌 얇은 책이었다 이상하게 나는 글자를 통해 사람을 읽는 게 재밌다 읽을 게 없으면 죽고 싶다 얼굴은 표지의 기능도 상실했다 워낙 리커버가 많으니까 나는 읽으면서 읽힌다 투명 비닐로 포장된 타이포그래프 잡지도 골랐다 셀프 계산대가 있었다 공항 검역대를 통과할 때처럼 소리가 난다 바코드 읽는 기계로 사람을 읽는다”

-「두 유 리드 미」 전문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은 시를 쓸 때 제목부터 적는다.

커다란 덩어리 같은 제목을 적고 감정의 살점을 붙이듯 한 단어를 쓰다 떼어내고 다시 한 단어를 붙이며 운율을 붙여서 풍경과 사람들이, 어떤 시선들이 온 몸을 관통한다

퇴근 후 늦은 시각 텔레비전을 켜고 OTT에 접속하면 내가 평생 뼈 빠지게 일해도 벌 수 없는 고소득의 개런티를 받는 예능인들, 배우들 모델들이 먹고 마시고 울고 웃고 있다.

나는 이들이 광대짓을 하며 돈을 버는 동안 내 시간을 허비 하며 삶을 소진 하고 싶지 않다.

글자를 깨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시를 읽지 않고 한 편의 시가 누군가의 일생을 바꾸지 못한다.

세상은 앞으로 점점 더 숨이 쉬기 힘들 정도로 탁해질 것이고 전파력이 강한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의 양식을 찾아 다니듯 천 원의 행복과 만족을 찾아 다이소에서 물건을 구입하듯 누구에게도 사랑 받거나 이해 받지 못해도 시를 쓰는 시인의 시집을 사러 갈 것이다.

극장에서 돌아와 글을 써요. 나는 지저분하며 조그마한 구역에 살아요 항상 떠날 궁리를 하죠. 안정감이 밤 물결 소리를 내며 떠나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요. 나를 여기 데려다 놓고 데리러 오지 않는 사람이 혹시나 들를지도 몰라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곤 합니다.

방 모서리엔 낡은 회색 슬리핑 백이 있어요. 오늘은 자지 않고 명작을 써요. 반투명한 해파리처럼 생긴 전등을 켜요. 미안하지만 당신을 위로하러 글을 쓰진 않아요.

이어링을 만지작거리며 명작을 써요.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 은밀하고 거칠며 쓰라린 글쓰기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죠.

-김이듬의 <밤엔 명작을 쓰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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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2025-03-09 1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이듬 시인의 시도 좋지만 님의 글도 놀랍네요.

scott 2025-03-09 15:0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주말 시간 행복하게 보내세요 ^^

media666 2025-03-09 2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무언가 값진 걸 주고 계시네요. 감사하고 또 부럽습니다 :)

scott 2025-03-09 21: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주말 밤 평안하게 보내세요 ^^

건빵 2025-03-09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책도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scott 2025-03-10 12:2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한 주 시작 활기차게 보내세요 ^^
 















드디어 그 계절이 찾아와 며칠 경부터 꽃 구경하기에 알맞다느니 하는 소식이 들려도 데이노스케와 에쓰코 때문에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택해야 했으므로 꽃이 한창일 때에 딱 맞출 수 있을지 어떨지,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 때마다 그녀들은 옛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진부한> 걱정을 했다. 꽃은 아시야의 집 부근에도 있고 한큐 전차의 차창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그러니 꼭 교토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도미도 꼭 아카시 도미여야 하는 사치코는 꽃도 교토의 꽃이 아니면 본 것 같지 않았다. 작년 봄에는 데이노스케가 가끔은 장소를 바꾸자고 우겨서 긴타이교까지 갔다가 돌아왔는데, 사치코는 뭔가 잃어버린 사람처럼 올해는 봄 다운 봄을 맞지 못하고 보내 버렸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사치코는 다시 데이노스케를 졸라 교토에 가서 간신히 오무로의 겹 벚나무 꽃을 즐겼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중에서

여성 숭배, 페티시즘,마조히즘에 빠진 주인공들을 작품에 등장 시켰던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사생활도 자신이 쓴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상인과 정치인에게 아내라는 존재가 필요 하겠지만 예술가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존재라며 첫 번째 아내를 친구에게 양도 하고 스무 살 연하인 문예지 기자와 결혼을 한다.

준이치로는 두 번째 결혼 역시 3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이혼을 하는데 그 이유는 혼인 생활 중에 알고 지냈던 네즈 마쓰코 라는 여인에게 흠뻑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간사이 지방의 오사카 거상의 딸이였던 네즈 마쓰코는 가세가 기울어져 갔던 시기에 집안을 살리기 위해 정략 결혼을 하지만 남편의 폭력으로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를 지켜 보았던 준이치로는 마쓰코의 불행한 결혼 생활에서 해방 시켜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 잡히고 두 사람은 몰래 동거를 시작한다.

마침내 마흔 한 살 생일 날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스물 다섯인 마쓰코와 결혼 도장을 찍고 서로 부부가 된 그날 준이치로는 마쓰코에게 자신을 하인으로 불러 달라는 계약서를 내민다.

아내의 하인이 되겠다고 계약까지 맺은 준이치로는 아내가 식사를 할 때는 옆에서 시중을 들었고 식사를 마친 후에야 밥을 먹었다.

준이치로는 숭배 하는 아내가 태어나고 자란 간사이 지방으로 이주 하고 고전 작품<겐지 이야기>를 현대어로 번역하면서 아내의 집안에 대한 작품 집필 구상을 시작한다.

1942년 세번째 아내 마쓰코가 태어나고 자란 간사이 지방의 상류 계층 여성들의 삶을 담은 <세설>은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절대로 탄생 되지 않았다.

간사이 지방의 독특한 문화와 고유의 언어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세설>은 몰락했지만 한 때 화려했던 가문의 명성에 맞는 사치를 즐기고 싶은 심정, 각기 다른 집안으로 시집을 갔지만 여전히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자매들. 화장하는 방법, 말투, 호흡법까지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섬세하게 자매들의 숨소리 까지 담아냈다.

다이쇼 시대(1912∼1926년)까지 명문가로 인정받았던 마키오카 가(家)의 네 자매 중 가장 가깝지 않은 맏언니를 제외한 나머지 세 자매의 결혼 문제를 중심으로 자매들의 결혼 준비와 혼담 그리고 출산등의 모습 속에서 봄 날 벚꽃 구경, 여름 밤 반딧불이 잡이, 가을 단풍 구경, 후지산, 가부키, 피아노, 인형 제작, 프랑스어 교습, 러시아와 프랑스 음식, 기모노, 미용실, 백화점, 해수욕, 온천, 기차, 여객선등의 풍속들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지는 작품 <세설>이 발표 했던 시기는 일본이 한창 전쟁의 열기를 동아시아에서 세계 대전으로 확전 시켜 나갔던 시기였다.

전쟁의 열기가 사그러들고 나서 출간한 <세설>은 도쿄 사람들 사이에서는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지만 정작 소설의 배경인 간사이 지방에서는 거의 팔리지 않았다.

도쿄 토박이인 준이치로가 간사이 방언인 센바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서 아내의 교열 작업을 마치고 나서 재 출간 되었지만 간사이 사람들에게 가슴이 울렁 거릴 정도로 감동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세설은 일본 밖으로 넘어가 세계의 언어로 번역이 되고 나서야 일본에서 재 발간 되며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 시작한다.

영어판으로 번역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은 서양 독자들에게 동양의 미를 문장으로 읽게 만들며 일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보다 앞서 번역 출간 되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노벨 문학상 유력 수상자로 거론되자 일본 정부는 그에게 아사히 문화상,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을 주며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반열에 올려 놓는다.

1960년 <세설>이 프랑스어로 번역되고 이 작품을 읽고 큰 감동을 받은 프랑스 작가이자 철학자 샤르트르는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다른 일정을 미루어 놓고 준이치로가 묻혀 있는 무덤부터 찾아 갔을 정도로 프랑스 인들에게 일본의 대표 문학가는 다니자키 준이치로 였다.

그의 책은 프랑스 시골 마을 서점에 꽂혀 있었을 정도로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 받았지만 정작 다니자키 준이치로 작품은 일본에서는 교과 과정에 실릴 뿐 국민 작가로 불리지 않았다.

동시대 활동 했던 요시모토 다카아키, 마루야마 마사오의 작품들 보다 덜 팔렸고 시바타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는 거의 모든 국민들이 읽었지만 다니자키 준이치로 작품은 학교를 졸업 하고 나면 그걸로 끝이였다.











요 몇 년 사이에 한국의 4대 문학상 수상 후보에 오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오르지 못할 장르 분야를 쓴 작가들의 작품들이 해외 유수 문학상 수상 후보에 오르자 새로운 커버를 입혀서 재 출간 되어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내부자의 시선의 평가와 외부자의 시선의 평가가 달라지면서 1쇄를 넘기지 못한 채 절판 되거나 소수의 매니아 독자들 사이에서만 읽혀지던 장르문학이 해외상 후보작 스티커를 붙이고 나면 한국 출판계는 들썩 거리며 K문학의 세계화라는 걸 꼬리표처럼 달아 놓는다.

출판사 측과 편집자들의 개인 성향 그리고 일명 문단의 권력자들의 시선과 독자들의 시선이 일치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대적 사회적 상황과 마케팅의 힘, 유명인들의 추천과 입소문을 타고 책 판매에 큰 영향을 주지만 외부자 시선에서 평가 받는 책일 때는 내부자들의 평가와 다른 전혀 다른 차원의 흥미를 자아 낸다.














일본에서 태어나 다섯 살에 영국으로 이주 한 일본계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아시아계나 일본인을 내세우지 않고 부모의 나라가 아닌 1930년대 세계 대전의 전운이 드리웠던 영국 귀족과 하인들의 모습을 담은 <남아 있는 나날>이 여러 문학상을 휩쓸며 영화로 제작 되었던 건 영국의 뿌리 깊은 계급 사회를 철저하게 외부자적인 시선으로 쓰여졌기 때문이였다.

대륙과 떨어져 있는 섬이라는 지형에 살고 있는 영국인들에게 계급은 숨을 쉬는 공기 만큼 익숙한 것으로 사용하는 언어, 습관 행동부터 뚜렷하게 차이가 나고 죽을 때까지 계급의 피라미드에서 벗어나 쉽게 신분을 상승 하기 힘든 사회 구조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에서 집사 스티븐스는 히틀러라는 악마와 내통한 고귀한 신분의 달링턴 백작이 명예가 회복 되길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일개 집사 신분인 그에게는 그럴 만한 힘도 없는 무력한 존재다.

영국 문학계에서 일부 비평가들과 작가들이 이 작품이 과대 평가 되었다는 평을 내리기도 하지만 영국인이 아닌 사람이 가장 영국적인 이야기를 해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판매 부수를 올리며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다.

화면을 터치 하고 손끝으로 눌러 다운로드 받아 읽는 시대에 세상의 거의 모든 고전 작품은 이북 라이브러리에 저장해 놓고 언제든지 볼 수 있고 베스트셀러 작품들 역시 종이책 보다 더 빠르게 이북으로 볼 수 있는 시대다.

빠르고 쉬운 정보와 지식,재미와 자극적인 스토리가 넘쳐 나는 시대에 문해력이 저하 되고 있다고들 하지만 무언가 읽고 보고 쓰는 사람들은 이 전 시대보다 더 많아 졌다.

다양한 창작 플랫폼에는 종이책으로 출간 되지 않는 기발하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넘쳐 난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시대에 꾸준히 독자들에게 읽혀지는 작품들이 살아 남기는 더욱 힘들어졌고 재능과 실력, 창작 에너지로 넘치는 이들이 많은 창작플랫폼에서 출판 경력이 없는 무명의 작가들은 읽어주는 독자들이 없으면 창작을 이어나가기 힘들다.

2024년 2월 1일 부터 쓰기 시작한 <굿바이, 부다페스트>는 1부 50회를 완결하고 2025년 1월 16일 부터 2부를 시작했다.

매회 에피소드의 글자수는 8천자에서 만자 이상을 넘기며 작품의 길이로 따지면 대하소설 급이고 앞으로 전개 되는 스토리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전쟁과 평화>와 비견 될 정도로 격변의 20세기 1914년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시대를 살았던 여러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의 총 출동 한다.


https://tobe.aladin.co.kr/s/9373


<굿바이, 부다페스트>의 작품 조회수는 종이책 판쇄와 비교 하면 1부 에피소드 32회까지가 1쇄를 넘겨서 2쇄에 돌입했고 33회부터 1쇄를 겨우 넘기거나 1쇄에서 멈춰 버렸다.


2025년 1월 투비컨티뉴드는 투비닷이라는 출판 브랜드를 론칭 해서 알라딘에서 발굴한 띵작들을 출간 할 계획이라며 축하 이벤트를 열고 있고 투비에서의 기록을 확인하고 2025년 신념 다짐을 적어 보라는 이벤트를 열고 있다.


https://tobe.aladin.co.kr/event/280468


신념 다짐 문장 칸에 2025년 나는 투비에서 [무명작가]다 라고 적었다.












띵작 발굴단에 창작 소설과 에세이들을 몇 번 응모를 했지만 운영측의 내부자 시선에서는 내 작품은 발굴 된 적이 없다.

띵작발굴단의 내부자 시선과 투비컨티뉴드의 독자들 시선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2025년 새해가 시작 되고 많은 무명 작가들이 투비컨티뉴드를 떠났다.

나는 작년에도 그랬듯이 무명작가지만 내 계획대로 꾸준히 써나갈 뿐이다.

오늘 무명작가가 쓰고 있는 대 장편 <굿바이, 부다페스트> 제 52회가 시작된다.

-제 52화 은총과 사랑


https://tobe.aladin.co.kr/n/31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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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일 생애 두 번째 창작 소설<굿바이, 부다페스트> 첫 회를 쓰기 시작했다.


https://tobe.aladin.co.kr/s/9373


191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한 <굿바이, 부다페스트>연재를 총 50부작으로 기획 해 놓고 나서 1914년과 2024년의 날짜가 적힌 두 개의 달력을 준비해 놓았다.

소설을 읽는 동안 인간은 소설 속 시대와 인물들의 삶을 상상하며 두 번째 삶을 살 수 있다.

마치 꿈 속에서 보았던 것을, 상상 했던 그곳을 활자로 읽는 동안 나와 다른 세상 사람들의 삶의 다양한 모습을 소설을 통해 간접 경험해 볼 수 있다.

불멸의 고전을 읽으면서 경험해 보지 못한 경이로움에 사로 잡혀 식사 시간을 건너 뛰고 날 밤을 꼬박 지새우며 책에 푹 빠졌던 시간 동안 허구 세계가 현실 세계 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 질 때가 있다.

세계의 거의 모든 작가들이 추천하는 불멸의 고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세기를 뛰어넘는 심리 묘사가 나온다.










기차가 페테르부르크에서 멈추었다. 그녀가 내리자마자 발견한 것은 남편 얼굴이었다.

아! 맙소사! 저이의 귀는 왜 저렇게 생겼을까? 그의 차갑고 당당한 풍채, 그리고 특히 지금 그녀를 놀라게 한 귀 연골(둥근 모자의 챙을 떠받치고 있는)을 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그는 예의 조롱기 섞인 미소를 입술에 띠고, 크고 지친 눈으로 안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다가왔다. 남편의 고집 세고 지친 시선에 부딪치자 불쾌한 감정이 가슴을 짓눌렀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중에서


살아 보지 못한 머나먼 시대에 관한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서 불멸의 고전을 꺼내 읽고는 크게 좌절 했다.

단 한 문장도 빼 버릴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플롯 구성과 각각의 인물들의 생생한 심리 묘사 그리고 감동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마지막까지 대가들의 작품은 마치 풋내기 창작자들이 절대로 열어봐서는 안되는 판도라 상자처럼 창작의 의욕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창작 클래스를 단 한 번도 수강한 적은 없지만 여러 다양한 이들이 창작에 대해 쓴 비법 중에서 '절대 변하지 않는 네 가지' 항목은 마음 속 깊이 단단히 새겨 두고 있다.

1.글쓰기 워크숍에 오는 사람들 가운데 99.9퍼센트는 자신의 글에 확신이 없다.

2. 5분 즉흥 글쓰기 훈련은 저마다 글쓰기에 대해 갖고 있는 불안감 속으로 뛰어들게 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3. 누구나 이야기를 갖고 있다.

4. 정답을 쓸 필요가 없다. 그저 자신의 능력 껏 이야기를 쓰면 된다.

시험에서는 정답을 도출 해야만 다음 단계 그리고 더 높은 단계로 넘어 갈 수 있지만 인간의 한 생애는 명확한 정답도 해답도 존재 하지 않는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신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은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세상을 이해 하고 받아 들인다.

책을 읽을 때도 영화를 볼 때도 음악을 들을 때도 상상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온 신경을 집중해서 읽고 보고 듣는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 유일하게 꿈을 꾸고 상상을 하며 이야기를 지어 낼 수 있는 인간은 마치 화가가 붓질을 하듯 사진기로 영상으로 찍어내고 촬영 하듯 말하고 쓸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손 안에 폰으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영상물을 볼 수 있는 시대에 문자 해독 능력이 저하 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한 편으로는 영상에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필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문화로 발전하고 있다.

기계들이 점점 더 AI에 의해 구동 되면서 어떤 일을 기계의 몫으로 나눠 주고, 어떤 일을 인간의 몫으로 남겨 두면 가장 좋을지를 결정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AI와 인간의 글쓰기에서 이런 딜레마에 봉착했다. 즉 우리의 개인적이며 전문적인 삶 양쪽에서 무엇을 양도하고, 무엇을 우리 몫으로 챙길 것인가?

-나오미 배런의 <쓰기의 미래>

가보지 못한 도시, 단 한번도 배워 본 적 없는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 뽀족한 첩탑이 보이는 도시, 붉은 기와를 얹은 지붕으로 가득 찬 마을, 무성한 밤나무 수풀, 폐허가 된 요새의 모습들이 머리 속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허구의 이야기 소설을 읽기 시작하는 동안 인간의 뇌 속은 엄청난 세상이 펼쳐 진다.

하지만 수동적으로 읽는 것과 능동적으로 한 단어를 써나가는 창작의 영역은 다르다.

무언가에 대해 쓰기 전까지는 모든 것들이 머릿 속에서 가능했지만 새 하얀 백지 위, 모니터 속에 빈 노트 창을 띄워 놓는 순간 단어와 단어들이 줄줄이 쏟아지지 않는다.

첫 문장을 쓰는 것 부터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 하다가 두 문장을 쓰고 나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모든 이야기는 어디에서 부터 시작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 할까?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는 동안 눈 덮인 상트페테르부르크 행 기차에 올라타는 안나의 모습을 상상 할 수 있지만 나의 창작 능력으로 그런 장면 그런 상황을 절대 쓰지 못한다.

머리로는 그려지던 풍경과 사람들이 글자로 옮겨 질 때면 마치 낯선 환경에 놓인 겁먹고 당황한 짐승처럼 제 갈 길을 가지 못한 채 배회 한다.

창작을 하고 부터 책을 다른 시각으로 읽게 되었다.

하나의 스토리를 따라 읽으면서 마주치는 풍경들 상황들이 등장 인물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앞으로 이어지는 스토리에 어떤 복선이 될지 하나 씩 체크 하면서 서술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곱씹어 가며 읽게 되었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나면 머릿 속에서 단어를 그림으로 형상화 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나에게 글을 쓰는데 주어진 시간은 하루에 단 몇 시간 뿐이고 일주일의 스케줄을 탈탈 털어 내고 불필요한 시간을 모두 제거 하고 나서도 소설을 집필 할 수 있는 날은 일주일 중에서 월요일과 화요일 또는 수요일 정도 뿐이다.


스무 살 무렵, 주말이면 유로 스타를 타고 칙칙한 런던을 벗어나 유럽 땅으로 건너갔던 시절이 있었다.

한 때 제국의 수도였던 빈의 링스트라세로 주르륵 연결 된 미술관과 박물관을 드나들며 헝가리 부다페스트 곳곳을 누비는 동안 언젠가 이곳에 관한 이야기를 쓰겠다는 마음을 단 한 번도 품어 본 적이 없었다.

창작의 세계는 나에게 너무나도 멀었고 내 능력으로 해 낼 수 없는 신의 영역이였다.

2024년 2월 1일 부터 쓰기 시작한 <굿바이, 부다페스트>에 20세기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인물들(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들)이 뒤섞여 있다.

나는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을까?

왜 나는 이 시대를 배경으로 쓰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2025년 1월 2일 제 1부 마지막 50회를 완성 했다.


-50회 새들의 힘겨운 날개 짓

https://tobe.aladin.co.kr/n/306335

소설은 특정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소설이 단지 이야기로만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라는 이야기 속에는 수 많은 사물과 소리, 대화와 상상, 추억과 지식, 생각과 사건들이 등장 한다.

매회 장면, 장면을 써 나갈 때마다 나는 2024년 그리고 2025년이 아닌 1914년으로 돌아가서 그 시대의 장군이 되기도 하고 황제로 군림하기도 하고 동화책을 즐겨 읽는 13살 소녀가 되기도 하고 부유한 저택을 매일 쓸고 닦고 청소하는 하녀와 하인이 되기도 한다.

<굿바이, 부다페스트>를 50회 쓰는 동안 두 개의 책장을 가득 채울 정도 분량의 책을 읽었고 1년 내내 쓰고 고치고 쓰기를 반복했다.

쓰는 동안 매번 한계에 부딪치고 쓰고 나서도 또 다른 장벽에 부딪친다.

이 장면에서 이렇게 밖에 쓰지 못하는 내 능력을 저주하다가 포기 하지 않고 꾸준히 쓰고 있는 내 자신을 스스로 대견스러워 하기도 한다.

창작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아 붓기 힘든 나는 일을 하는 동안 출장을 가는 동안 출퇴근 시간 동안 온전히 머릿 속으로 상상하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완벽한 문장이 떠올랐는데! 이렇게 완벽한 묘사가 떠올랐는데! 라고 외치다가 막상 쓰기 시작하면 입안에 침이 바짝 마를 정도로 능력의 한계에 부딪친다.

시대를 앞선 스타일로, 영미권에서 '통찰력 있는 에세이스트'를 넘어 신화가 된 조앤 디디온은 어린 시절 몸이 너무 허약해서 아프다고 징징대자 그녀의 어머니가 너무 아프면 노트에 글로 쓰라며 노트를 건넨다.

일곱 살 때부터 그날의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기 시작한 디디온은 보그지의 인턴 기자 생활을 시작으로 논픽션, 픽션, 에세이, 영화 시나리오, 칼럼등 다양한 글을 종횡 무진 하며 작가들의 작가로 불렸다.

글쓰기의 대가, 어떤 장르를 써도 주요 문예상을 휩쓸어 버리는 창작의 신 조앤 디디온은 후배 작가들과 예비 작가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못 쓴다고, 잘 쓰지 못한다고 징징 거리지 마라.

써 버려라. 누가 뭐라 해도 전부 써버려라.

네가 알고 있는 모든 단어를 모조리 써버려라.

쓰지 않으면 모든 것들이 너의 손에서 전부 빠져나가 버리고 누군가가 쓰고 만들고 찍은 것을 보는 데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주방 찬장 문을 열어 보아라.

단 한번도 쓰지 않은 그릇들, 은 식기들, 머그 컵들이 눈에 들어 올 것이다.

글을 쓸 것인가? 아니면 찬장 속의 식기들을 전부 써 버릴 것인가?

언젠가 우리 모두 한 줌의 재가 된다.

너무 아끼지 마라.

전부 써 버려라.

모두 사용해 버려라

-조앤 디디온


사는 동안 어떤 순간이 가장 소중할까?

일반 서민들이 죽을 때까지 벌어 들일 수 없는 수익을 단 한 편의 예능과 영화, 드라마로 수 억, 수십억을 벌어 들이는 이들이 놀고, 먹고, 마시고, 여행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일까?

아니면 매일 쓰지 않은 은식기를 사용하듯 꾸준하게 매일 무언가 끄적이는 순간일까?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야기가 있으면, 일단 이야기를 씁니다. ‘이걸 쓰고 나면 뭔가가 있겠다.뭔가가 없지는 않겠다’라는 확신은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는 상태로요. 그런데 그렇게 쓰고 나면 쓰는 동안 정말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그 ‘뭔가’가 들어가 있습니다.

―장류진

소설은 온갖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이 세상도 모순 덩어리다.

이렇게 서로 모순된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종횡 무진 하며 쓰는 동안 내면에서 서서히 삼차원의 세상이 펼쳐진다.

비록 무명의 작가가 창작한 작품이지만 읽어주고 응원해 주는 독자들 덕분에 2024년 2월 부터 50회까지 연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내가 보여준 또 다른 세상 <굿바이, 부다페스트>를 누군가 읽고 그 시절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 읽는 맛을 느꼈으면 좋겠다.


<굿바이, 부다페스트> 제 2부 제 51화 두더지 굴에 빠지다.

https://tobe.aladin.co.kr/n/30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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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2025-01-23 2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캇님 멋집니다. 또 조앤 디디온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캇님의 쓰기를 응원합니다.

2025-01-24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