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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 진경산수를 개척한 우리나라 화성 ㅣ 새로 쓰는 화인열전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6년 2월
평점 :
조선시대 사대부 가문의 선비들에게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명소가 있었다.
그 명소는 한반도 땅에서 가장 신성하고 아름다운 금강산으로 이 산에 올라갔다는 것 만으로도 사대부 가문 족보에 새겨 놓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였다.
하지만 조선 시대 금강산을 간다는 건 단순히 시간과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했던 것이 아니였다.
한양(서울)에서 출발 해서 금강산까지 가려면 몇 달이 걸리는 여정마다 머물러야 하는 숙박비용과 목적지까지 무사히 다다르게 인도하는 짐꾼과 말이 필요했다.
여러 달이 소요 되는 한양에서 금강산까지의 여정은 험준한 길목마다 수시로 출몰하는 짐승과 도적 무리들이 도사리고 있는 지역을 피해 가려면 곳곳에 자리 잡은 마을을 거쳐 가야 했다.
따라서 조선 시대 사대부 집안에서 금강산 여행을 가려면 쌀 몇 마지기 비용 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귀중품을 모조리 팔거나 밭을 팔아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탈탈 털어서 생애 마지막 여정을 하듯 조선 시대 선비들은 한양에서 벼슬 자리에 올라갔다면 반드시 금강산에 올라가야만 사대부 가문을 빛내는 것이라 여겼다.
그렇게 성지 순례를 하듯 재산을 탈탈 털어 금강산으로 향했던 조선 시대 사대부들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금강산의 전경을 그린 그림을 보고 난 후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굳이 금강산을 가보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에 동요 되기 시작한다
조선 회화의 전성기 18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이 70세 무렵에 그렸다고 추정되는 <금강전도>는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그려진 전도(全圖) 형식의 그림이다.

출처: 금강전도(국보). 개인 소장
조선 회화의 전성기 18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이 70세 무렵에 그렸다고 추정되는 <금강전도>는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그려진 전도(全圖) 형식의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본 선비들 중에서 금강산을 가본 사람은 여행의 추억을 회고할 수 있었고, 가보지 못한 사람은 봉우리와 골짜기 곳곳을 그림으로 감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었다.
금강산을 다녀온 선비들의 입소문으로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가 실물에 가깝다는 소문이 나자 성지를 순례하듯 재산을 털어 금강산으로 향했던 사대부들이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산 그림을 수집하는데 혈안이 되기 시작한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조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 금강산의 빼어난 절경과 ‘아름다움의 본질’을 붓과 먹으로 탁월하게 표현한 진경 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은 몇 대에 걸쳐 풍비 박산된 몰락한 양반 집안을 금강산 그림으로 일으켜 세웠다.
조선 숙종이 집권 한지 2년에 접어 들었던 1676년 한성부 순화방(현재 서울 청운동)에서 태어난 겸재 정선의 집안은 증조할아버지부터 3대가 연속으로 과거에 낙방 해서 가족 모두 무너져 가는 흙집에서 겨우 끼니만 해결 할 정도로 빈궁한 처지에 있었다.
모든 것이 과거 시험제도 중심으로 돌아갔던 조선시대에 과거 시험에 3대 째 낙방 했던 겸재 정선 집안에서 생계를 책임졌던 이들은 여자들이였다.
겸재 정선의 아버지는 7살 때부터 과거 시험을 공부 했지만 연달아 떨어지고 막내인 겸재가 열 네 살이 되던 해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가문의 마지막 희망이였던 아버지가 사망하자 간신히 비 바람을 막아 주었던 흙집이 빚쟁이들에게 넘어가고 겸재는 어머니의 친정집에서 눈치 밥을 먹으며 살게 된다.
겸재의 어머니는 아들의 과거 합격을 위해 부유한 친척들이 맡긴 옷들을 수선하며 뒷바라지를 했지만 공부 머리가 뛰어나지 않았던 겸재는 과거 시험을 보러 갈 때마다 유명하다는 환쟁이들을 찾아 다니며 어깨 너머로 그림을 배웠다.
양반 사회에서 화가는 환쟁이로 손가락질 받았던 비천한 신분이였지만 자신이 공부에 재능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겸재는 주변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그림 공부에 매진한다.
일찌감치 과거 시험에 합격한 양반 가문 친척들이 높은 관직에 올라가 손주 손녀를 볼 나이인 36세가 되던 1711년, 겸재는 금강산 근처의 고을에서 현감으로 재직하던 오랜 친구 이병연이 금강산 여행길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는다.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친구 이병연을 찾아간 겸재는 때마침 같은 고을에 살고 있던 부유한 양반 신태동을 만나고 마음씨가 후한 그가 겸재의 여행 경비를 적극 지원해 주었다.
드디어 조선 시대 사대부 가문 사람들이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그곳, 금강산을 올라가게 된 겸재는 금강산 인근 지역의 풍광을 틈틈이 그려서 화첩으로 묶어서 금강산 여정길에 나서려는 양반들을 상대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게 된다.

출처: 금강내산(해악전신첩, 보물).간송미술문화재단
단순히 산봉우리만 그리지 않고 전체를 조망 하듯 산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거대한 구름막과 바다까지 볼 수 있었던 겸재의 그림은 한반도를 넘어 중국에 까지 널리 알려져서 거액에 거래되는 귀한 그림이 된다.
겸재 정선이 70대에 이르러 필력이 무르익은 필법과 묵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남긴 불멸의 명화 ‘박연폭포'는 층층이 먹을 겹쳐 칠해 폭포 물살 주위 암벽의 거칠고 장대한 물성을 돋우고, 내리 쏟아지는 물살의 결들을 마른 먹붓질로 그어 소리의 울림을 시각적 이미지의 대비를 통해 절묘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일 평생 동안 겸재 정선은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우리를 올라가서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 등 금강산의 주요 명승을 둘러보며 산세를 따라 대각선과 원형 구도를 사용해 그렸고, 산봉우리 명칭을 적거나 길을 표시해나갔다.
1751년 76세에 접어든 겸재 정선은 인곡정사 너머로 비 안개 걷히며 환히 드러나는 인왕산의 준수한 자태는 몇 겹으로 붓질을 가하면서 그 붓질은 각도만 달리해서 농묵으로 폭포와 바위에 슬쩍 강약의 리듬을 주어 인왕산 바위 봉우리의 양감과 질감 그리고 음영까지 실감나게 묘사했다.
겸재 정선 이전에도 한반도 풍경을 그린 화가는 있었지만 겸재와 같이 탁월한 수준과 왕성한 작품 활동을 통해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준 화가는 없었다.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연대순으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정점에 도달한 뒤에는 선과 색 그리고 빛과 어둠 만으로 피사체의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완성하는 경지에 달하는데 겸재 정선은 조선 회화의 황금기인 18세기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그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고차원의 그림 세계를 펼쳐 보인 불멸의 화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