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를 앞둔  2018년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이 소장 하고 있는 자필 원고와 초판 본 , 전 세계 언어로 번역된 번역 본들 그리고 평생 동안 전 세계 중고 레코드 가게를 뒤지며 수집했던 레코드 판을 비롯해 기타 소장품들을 자신이 모교에 기증 하겠다고 발표 했다.

하루키의 소장품들로 채워질 예정이였던 와세다 대학 국제 문학관 설계는 건축가 쿠마 켄고가 맡아서 2018년 가을 부터 공사를 시작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여러 차례 공사가 지연 되고 있었다.

2019년 12월 코로나 전염병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공포에 사로 잡혔던 시기에 나는 단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

2021년 10월에 완공될 예정인  일본 도쿄 와세다 대학  '국제 문학관' (일명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에 등록증을 만들어 작가 하루키가 직접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앨범으로 꾸민  재즈 오디오 룸을 구경하고 그의 집필실을 그대로 재현 방을 둘러보고 펜으로 원고지에 끄적였던 원고뭉치를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코로나 시기로 전 세계 국경 문이 굳게 닫혔던 시기에  내 목표였다.

그리고 드디어 코로나 대 유행이 한 풀 꺾이고 난 후 2021년 10월 1일 일본 도쿄 와세다 대학  국제 문학관이 오픈 했다.

반드시 하루키의 소장품들로 채워진 와세다 대학 국제 문학관에 방문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여러 복잡한 일들과 업무에 치여서 좀처럼 스케줄을 비우지 못했다.

2025년  여름의 강력한 태풍이 불어 닥치기 직전 도쿄 출장 일정이 잡혔고 마침내 비행기에 몸을 싣고 도쿄로 날아갔다.

빡빡한 일정을 모두 소화 하고 나서 단 하루 남은 시간 동안 와세다 국제 문학관을 둘러 볼 수 있었다.

하루키가 출간 한 모든 책들(전 세계 번역본 까지)과 그가 수집한 희귀 LP판이 함께 전시 된 국제 문학관은  하루키 팬들이라면 두 눈이 번쩍이는 것들이 전부 모여 있다.

국제 문학관에서 가장 돋보이는 곳은 하루키의 서재 공간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방과 하루키가 작가로 데뷔 하기 전에 운영 했던 재즈 카페 "피터캣'에서 실제로 사용 했던 피아노와 각종 음향 기기들이 전시 되어 있는 공간이다. 

 가게를 정리 하면서 피아노와 음향 기기 들은 팔지 않고 소장 하고 있었던 하루키 부부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옆에는 "오렌지 캣'이라는 카페 공간 인테리어부터 판매 되는 메뉴 구성까지 직접 기획했다.

방문객들은  오렌지 캣 카페에서  하루키가 수집한 레코드 판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도넛과 커피를 먹을 수 있고  하루키 작품 속에 자주 등장했던 카레나 샌드위치도 골라 먹을 수 있다.

오디오 룸과 음악 방송이 가능한 방송실과 각종 학술 연구를 할 수 있는 세미나 실이 갖춰져 있어서 하루키 문학 작품 뿐 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초청한 대담회나 연주가들이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콘서트도 열리고 있었다.

하루키의 모교  와세다 대학측은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이라는 명칭을 사용 하고 싶어 했지만 하루키는 재학생을 비롯해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용 할 수 있는 도서관이자 모두를 위한 도서관이 되길 바란다며 '국제관'으로 명칭 해 달라고 부탁 했다.

무라카미 라이브러리 외관과 내관의 모습은 하루키의 작품 속 세계관을 반영해서 라이브러리 입구를 터널의 입구 처럼 만들어서 천정까지 둥근 아치형 모양으로 나뭇가지에 잎이 무성하게 우거진 곳을 통과 하면 큰 책장과 마주 하게 설계 했다.

책장의 형태가 끝도 없이 쏟아 올라 있어서 도저히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책들은 영원히 만질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언제든지 손 만 내밀면 책이 있지만 이 라이브러리에서는 손에 넣고 싶어도 넣지 못하는 책들이 존재 한다.

와세다 대학 국제 문학관은  하루키 팬이 아니여도 책을 사랑하고 아날로그적인 음악과 영화를 사랑한다면 매일 가고 싶고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공간이다.2026년 1월 27일 유튜브 채널에 첫번째 숏츠를 업로드하고 열 흘의 시간이 지난 후 하루키에 관한 영상을 제작 하기 시작했다.

처음 기획한 영상은 기획은 커녕 영상 편집조차 미숙해서 음성 삽입 타이밍이나 소리 조절 장면 전환의 매끄러운 같은 미세한 조정을 하지 못했다.

2월 17일 하루키 영상을 채널에 처음 올리고 나서 3월 8일까지 하루키에 관한 영상을 열 개 올렸다. 하루키의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한 가난이라는 단편을 직접 영어로 번역해서 3분 남짓한 분량의 스크립트로 작성해서 본격적으로 단편의 주요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기획하고 캐릭터 설정부터 세세한 배경과 인물 생김새. 등장하는 조연들(고양이와 턴 테이블)과 빛의 움직임과 사물의 명암 조절하는 법까지 섬세하게 설계해서 제작해 나갔다.







여전히 미흡하고 영상이 업로드 된 이후로 조회수의 오름세는 미비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영상으로 제작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인상 깊게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글로 쓰는 것과 영상으로 제작하는 건 사고의 방식과 구현 방식의 차이 만큼 크다.

작품의 주요 장면을   나눠서 시퀀스로 기획하는 과정은 종이에 연필 자국을 지우개로 지우는 것처럼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고 즐겨 읽는 작품을 영상으로 제작하는 이유는 주변 환경 탓을 하며 헛되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서다.

소설을 즐겨 읽고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조차도  '소설'은 그저 허구의 이야기, 작가 개인의 상상력에 불과한 종이 뭉치일 뿐이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살아 보지 않은 인생과 가보지 않은 그 곳을 간접 경험 할 수 있는 허구의 이야기라는 소설은   누군가에게  끝이 보이지 않았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게 만들기도 하고 내일의 희망을 품게 만들기도 한다.

인생을 바꾸게 하거나 희망을 품게 하고 좌절을 극복하게 만든 허구의 이야기를 내가 직접 기획해서 영상으로 제작해 보니 궁극적으로  내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나 자신 뿐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때로는 느슨하고 허술하고 엉터리에 우스울 정도로 자존감만 높으면서도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으로 가득한 감독. 그 감독이 직접 기획하고  제작한 영상이  오늘 오전 8시   유튜브 채널 @Scott-MoveableFeast에 업로드 되었다.

https://www.youtube.com/@Scott-MoveableFeast

기획부터 완성까지 정확하게 한 달이 걸려서 만든 영상을 하루키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아도 그리고  하루키의 팬이 아니여도 클릭을 하고 끝까지 시청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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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세계의 어느 날, 모든 사람들의 팔뚝에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알려주는 카운트 바디 시간이 새겨져 있습니다.

눈부신 과학 기술 혁명으로 인간의 신체 노화는 25살에 멈추고 사람들은 나이와 상관 없이 25살 이후 부터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 숫자는 25살이 될 때까지 멈춰 있다가 25살이 지나면 팔뚝에 새겨진 숫자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1년이라는 시간이 제공되면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됩니다.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마다 팔뚝에 새겨진 숫자만 찍으면 계산이 되니  미래 세상에서  화폐는 지폐도 카드도 코인도 아닌  시간이 돈의 가치가 됩니다.

시간이 돈인 미래 세상에서 부모, 자식, 형제 모두 25살의 신체적 노화가 멈춰 버리니  나이에 상관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만큼 생을 살아 갈 수 있게 됩니다.

 미래 세상에서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을 더 많이 오랫동안 누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최상류층들은 타임 존 공간을 건설해서 이 곳에서  누릴 수 있는 수백 년의 시간을 팔둑에 새겨서  영생을 누리고 부자들에게 시간을 빼앗겨서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한 사람들은  부자들의 사업체와 주택과 공공 시설을 관리 하는 인력에 투입되어 교대 근무를 마치고 받는 시간이 자신에게 할당된 생명의 시간이 됩니다.

시간이 화폐인 미래 세상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한 사람들의 일자리가 끊기기라도 한다면 교대 근무가 끝나는 다음날 부터 생존할 시간이 팔둑 시계에 채워지지 않게 됩니다.

시간이 돈과 생명줄이 된 미래 세상에서 사람들은 하루의 생명을 연장 하기 위해 위험한 노동 현장에 몸을 던져서 죽음을 무릅쓰고 하루라는 생명의 시간을 얻기 위해 사투를 벌이게 되겠죠?

제가 상상하는 미래의 모습이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소설에 등장 할 법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라고 생각 하실 수도 있지만  현재  이 순간에도 돈을 벌기 위해서는 시간을 벌어 들여야 하고 생명을 유지 하기 위해서 시간을 채워 나가야 합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부터 숨막히는 물질의 세상에 내던져 지는 운명입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각자 일터에서 주어진 시간만큼  돈벌이를 하고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를 구입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먹고, 쉬고 잠을 자는 하루 살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따끔씩 휴가 기간 동안  여행을 떠나거나, 뜻하지 않게 여유가 생겨서 전에 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하는 날을 제외 하고 쳇바퀴 생활을 하고 있다.

교육업계나 공무원 조직 생활을 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한 달의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특별 휴가, 산재 휴가, 병가 역시 최대 2주일에서 3주일까지 끌어다 쓸 수 있지만 이마저도 시간이 부족해서 부지런히 움직이며 하루 하루 근근이 살아갈 뿐입니다.

노동자들이 일용직에서 벗어나 파트 타임 근무조에 파견 되는데 들어가는 시간 비용은 하루 16시간

 빠듯하게 일해야 벌어 들일 수 있는 1개월의 시간이 걸리고 파트타임직에서 정규직으로 올라가려면 3년 이상의 경력과 특정 분야의 자격증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일자리가 보장되는 연봉제 일자리에 취직을 하려면 최대 3년에서 5년의  시간이 걸리고 정규직 일자리를 얻고 나서 직장과 가까운 곳에 원룸을 얻으려고 하면 최대 5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시간을 쪼개서 잠자는 시간에 공부하고 남들 노는 시간에 일터로 나가서1개월-3년-5년-5년의 시간에 피 땀 눈물을 모조리 갈아 넣고 나면 1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10년 동안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며 초과 근무를 마다 하지 않고 휴가도 반납하며 시간을 벌기 위해 조직의 쳇바퀴 속에서 온 몸을 던지고 나도  상류층들이 누리는 프라임 타임 존으로 들어 가지 못합니다.

상류층들의 프라임 타임존의 생활 비용은 일반 서민들의 한 달 식비를 훌쩍 뛰어 넘는 몇 배의 비용으로 이 정도의 비용을 벌어 들이려면  부양할 가족도 없어야 하고 학자금 빚도 없어야 하고 결혼을 포기 하고 해외 여행이나 취미 활동 비용을 모두 줄이고  나서도 40세 전후로도 진입이  불가능합니다.

고유가 시대에도 부자들은 자차로 출근하며 고유가 시대 초단위로 올라가는 비행기 가격에 상관 없이 퍼스트 클래스로 해외 여행을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럴 시간도 돈도 없는 저는 하루 식비 가격의 시집 한 권을 구입했습니다.












오늘의 운세 따위를 믿는 건 아니지만 

머릿속이 답답하니 주변을 정리하라길래 창문을 열고 쓸고 닦고 방 청소를 했다.

창밖은 건물뿐이지만

잘 보면 사다리꼴 모양의 하늘이 빼꼼 청명함을 드러냈다.

책상 서랍 속에는 찢어진 노트 한 장

뒤집어 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에게는 아직 끝내주는 인생이 남아 있다"

그게 꼭 부적 같아서

바깥만 나가면 하늘이 드넓다는 걸 알게 되어서

바깥을 씩씩하게 걸었다.

하늘색이 행운의 색깔이라는 건

보통 행운이 아니다.

나도 부적 하나 써 줄게

만사 형통이나 만사대길 말고

남을 돕는 팔자를 가진 이의 이름 하나 적어 줄게

그러니까 이 시 꼭 사서 간직해

알았지?

-고선경 <신년 운세> 중에서 



 


어떤 운명가나 점술가 그리고 인간의 보조 도구로 점점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AI의 신 기술도 인간의 생노병사를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앞날의 미래는 내일의 일기예보보다 더 불확실한 상황에 직면 하기 때문에 운명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오로지 자기 자신 뿐입니다. 

부자만 들어 갈 수 있는 타임 존 구역에 들어갈 수 없으니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진 24시간이라는 시간 중에서 수면 시간 5시간을 제외하고 사회라는 일터에서 영혼을 탈탈 털릴 정도로 일한 후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원하고 꿈꾸었던 모든 것을 영상과 사운드로 재현 하는 작업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2026년 1월 27일 첫번째 숏츠를 업로드한 제 채널 [@Scott-MoveableFeast]은 4월 24일 현재  118명이 구독해 주셨고 [@Artistway-official] 채널은 4월 24일 현재 80명이 구독해 주셨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 매일 단 하루도 쉼 없이 영상 구상과 기획,촬영과 편집을 해서  [@Scott-MoveableFeast] 채널에는 영상 133개와 [@Artistway-official] 채널에는 영상 141개를 업로드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Scott-MoveableFeast


https://www.youtube.com/@Artistway-official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 사는 이들은 극히 드물 겁니다.

 주어진 대로 어쩔 수 없이 혹은 다른 분야는 해 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거나 환경이 주어지지 않아서 포기하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냐며 자책하며 체념 하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을 겁니다.

매일 무언가에 몰두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건  멈춰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현재 채널 운영자는 인간인 저 한 명이고 영상 구상과 기획, 촬영과 편집을 혼자 하면서 영상 작업 도구로 구글 제미나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생성형 AI는 작업 과정에 있어서 변동이 심해서 엉뚱한 결과물을 생성하는 경우가 많고 확고한 지침과 프롬프트를 영어로 입력을 해도 의도치 않은 결과나 오류를 반복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상 콘텐츠를 기획해서 여러 작업을 하는 도중에도 단 한 개의 오류 때문에 수십개가 넘는 기획과 스크립트를 수정하거나 버리고 다시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의도치 않은 결과나 오류를 반복 하는 인공지능의 학습 진화는 한계가 있고 인간의 시선과 큰 차이를 보이는 괴상한 지점이 많아서 이 모든 과정을 검토하고 수정하고 재 편집하고 구성해서 완전한 결과물로 완성해 나가는데 전적으로 인간인 저 혼자 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상의 스크립트와 자막에 들어가는 문구의 기본 원고 작성까지 저 혼자서 하고 있고 직접 현장 촬영과 사진 이미지 생성과 편집까지  하면서 영상 작업을 하고 있어서 제 채널에 올라가는 롱폼 영상 중 상당수는 생성형 AI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저 혼자서 제작한 영상들 입니다.

거장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팬인 저는 그가 남긴 영화를 전부 보았고 그가 저술한 책도 한국어 번역본이 아닌 영어로 읽었습니다.

슬라브어 권 언어와 러시아어를 할 수 있는 저는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을 번역 없이 보고 읽을 수 있어서 해외에 출간된 저작들 중에서 현재 품절된 것들도 소장 하고 있습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아버지 아르세니 타르코프스키는 유명한 시인으로 그가 남긴 시는 러시아 인들이 암송 할 수 있습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영화 '거울'에서 자신의 아버지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미장센으로 사용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르세니 타르코프스키가 쓴 시를 제가 직접 제작한 이 영상에 러시아어를 영어로 번역해서 삽입했습니다.


A white day                    

                                                Arseny Tarkovsky(1907-1989) 

By the jasmine lies a stone, Beneath the stone lies treasure.

 On the path stands Father. It is a white, white day. 

The silver poplar’s flowering, And the centifolia rose, 

Beyond — grow curling ramblers, 

And tender, milky grass. 

Never again have I been As happy as then. 

Never again have I been As happy as then. 

There can be no returning, Nor has it been given

 To tell what perfect joy Filled that garden heaven.
 


























한 달에 만 원도 안 되는 비용이면 일 평생 죽기 전까지 보아도 다 볼 수 없는 콘텐츠들이 이 세상에  스트리밍 되고 있습니다.

이제 어떤 콘텐츠도  구독할 수 있는 시대에 '가성비'는 '품질'의 문제가 아니라 들인 시간만큼의 효율을 어떻게 내는가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2026년 1월 29일 두 개의 채널을 개설하고 쉼 없이 영상을 제작한지(구독자들에게 다양한 영상을 보게 하기 위해) 석 달이 채 안되었지만 콘텐츠의 질적인 수준 만큼은 뒤떨어진다거나 시간을 낭비하는 깡통 같은 영상은 제작 하지 않습니다.



규모가 크고 장비가 화려한 크리에이터들과 비교 할 수 없지만 2026년 부터 1인 크리에이터로 활동 할 수 있게 해주신 모든 구독자님들에게 큰 감사를 드립니다. 

첫 번째 업로드한 숏츠 영상부터 바로 이 순간까지 여러분의 구독이 제 심장을 뛰게 해줍니다.
1,000명의 구독자를 꿈꾸고 있는 제 채널은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이야기를 더 멋지게  확장할 계획입니다.


유튜브  @Scott-MoveableFeast 채널과 @Artistway-official 채널에 1000명의 구독자 숫자를 채워 주는 분들에게   행운의 선물을 부디 보내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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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전 장우성이 그린 정약용 초상화. 1974년 표준영정으로 지정

반듯하게 틀어올린 상투, 옥색의 두루마기, 꼭 다문 입, 이마의 선부터 곧게 뻗어 있는 코 큼지막한 눈 망울, 짙은 구렛나루의 턱수염에 사방관을 쓴  선비가 비스듬히 바라보고 있다.

이 선비는 어디를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깊은 상념에 잠겨 있는 얼굴로 무언의 생각에 잠겨 있어 보이기도 한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년 ~ 1836년)'이다.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줄줄이 따라오는 수식어들은 정조-수원-화성-실학사상-천주교 그리고 목민심서로 '다산(茶山) 정약용'은 조선을 대표하는 통합형 지식인  르네상스 맨이다.

70세를 남짓 살다 간 정약용이 남긴 저술은 모두 182 분량의 책으로 권수로 세어보면 503권에 달한다.

큰 뜻을 품은 자여,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큰 뜻을 품은 자여,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정약용 지음, 이근오 엮음

모티브 / 2025년 6월


1762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정약용은 네 살 때 천자문을 통달 해서 일곱 살 나이에 '산(山)'이라는 한(漢) 시를 지었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어요. 

먼 땅도 있고 가까운 땅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의 인생의 첫번째 산은 아버지 정재원(丁載遠)으로 영조 집권기에  특지로 벼슬길에 올라서서  연천현감, 화순현감, 예천군수, 호조좌랑, 한성서윤, 울산부사, 진주목사까지 사회적으로 승승장구 했고 가족을 훌륭한 인품과 자상한 성품으로  보살폈고   가난한 백성들의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해 주려고 노력했던 진짜 선비였다.

아들 정약용의 첫 번째 스승이였던 아버지 정재원은 천자문을  다 익힌 아들에게 경서와 사서를 가르쳤고 아들 정약용은 이를 반복 학습하며 성호 이익이 남긴 저서를 홀로 독파 해나갔다.

그는 18세에 성균관에서 시행하는 승보시에 선발되어 22세에 성균관에 들어가 증광 감시에서 초시에 합격하고 곧바로 회시에 생원으로 합격한다.(당대 조선 문과 전체에서 수석 합격함)

 마침내 평생의 큰 스승이자 조선 후기 최고의 군주 정조를 알현하게 된다.

삶을 바꾼 만남

삶을 바꾼 만남

정민 지음

문학동네 / 2012년 8월


새로운 조선을 만들고 싶었던 개혁 군주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노론 세력을 눌러 버릴 새로운 정치 집단이 필요 했다.

그는 세종 시절에 존재 했던 규장각을 재정비 해서 가문과 출신을 따지지 않고 젊고 영특 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20대 조선 청년들을 직접 선발하고(면접을 통과 해야 했음) 이들 중에 가장 먼저 정약용이 발탁된다.

그는 규장각으로 정식 입부 하기 전 성균관에서 여섯 해 에 걸쳐서 정조에게 명을 받아 수 많은 보고서와 연구서를 작성하고 정조는 다른 이들이 올린 보고서들을 제쳐 두고 가장 먼저 정약용의 보고서를  읽고 최고 평점을 주었다.

28세에 전시에서 수석으로 급제한 정약용은 종 7품(4급 사무관 직급) 벼슬자리에 올라 규장각의 초계 문신으로 선발 된다.


초계문신(抄啓文臣)은 조선 후기  규장각에서 특별교육과 연구과정을 밟던 문신(文臣)들을 칭하는 용어로 나이가 어린 관리 중 유능한 인재를 재교육하기 위해 정조가 실시한 제도다.

1781년 정조는 자신이  직접 주관하고 창시한 초계문신 선발 시험장에  나와 20대 청년 관리들의 시험 과정을 직접 살폈고 급제자를 정하는 친시(親試)를 실시하기도 했다.

첫 번째 초계 문신 시험에 참가한 정약용은 전체 참가 인원(약 180명) 중에 1등을 했고 같은 해 정조의 명을 받아 한강을 건너 갈  배다리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1795년 정조는 즉위 20년을 맞이하여 이 다리를 건너  화성으로 행차 했다.

정약용은 이 다리 건설을 시작한 지 3년의 세월이 흘러 먼 미래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1997년에 등록됨)에 등록 될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답고 견고한 수원성을 설계 하기 시작한다.


출처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약용은 수원성 설계를 시작함과 동시에 거중기를 발명해서 10년을 예상 했던 공사 기간을 8년이나 앞당겨서 2년 9개월 만에 완공해버렸다.

일찌감치 정약용의 영특함과 근면함을 눈여겨 보았던 정조는 그를 마주 할 때 마다 틈틈이 어려운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구하기 힘든 기술 서적이나 의학서적을 몰래 주며 배우는 걸 게을리 하지 않는 그의 천성을 깊이 아꼈다.



출처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조의 아낌 없는 지원과 근면한 천성 그리고 영특한 두뇌를 갖춘 정약용은 공사기관과 인건비를 아껴서 수원성을 완공 하기 까지의 모든 기록을 남긴 <화성성역의궤>를 통해  후대인들이 언제 어디에서 성을 구축하게 된다면 필히 긴요하게 참고 할 수 있게 당대 최고의 정부 공식 기록물을  집대성했다.

의학서까지 집필한 정약용은 종두를 직접 실험하고 관찰한 <마과회통>까지 21세기 AI기술로 완성할 수 있는 지식과 경영학습,정부 관료의 실무 정책,매뉴얼 경영까지 갖춘 18세기 인간 지능의 결합체 였다.

조선 후기 정조 시대때는 조선 최고의 우수한 인재들이 서울 도성안에 가득 모여 있었던 시절이였음에도 어떤 지식인과 맞붙어도 정약용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는 후학들에게 항상 이런 말을 하며 '배움'을 강조했다.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생에서 공부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살다 간 보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정약용이 살았던 시대의 평균 수명은 40세로 정조는 50세를 채우지 못하고 47세에 세상을 떠났다.

73세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오랜 귀양 살이로 몸 곳곳이 성할 곳이 없었던 정약용은 책을 너무 많이 읽고 초록과 필사, 집필을 병행하다가 복숭아 뼈에 구멍이 났고 팔목 관절 통증에 평생 시달렸고 두 눈의 시력이 급격하게 나빠서 돋보기 없이는 활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약용은 57세에 <목민심서>를 완성하고 70세에 들어섰을 때   18년 동안의 기나긴 유배 생활을 마치고 고향 마재 마을로 돌아와 후학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책 읽기는 짐승과 벌레의 부류에서 벗어나 저 광대한 우주를 지탱 할 수 있는 힘을 만든다. 이것이야 말로 사람의 본분이다.'

그가 고향 땅에서 마지막으로 완성한 산수화 한 점이 있다.


<원인필의도 元人筆意圖>


그림 한 가운데 텅 빈 정자가 있고 뒷편으로 높은 산이 굽이 굽이 이어져 있다.

정자를 에워싸고 있는 키 큰 나무들 앞으로 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선명한 선이 아닌 흐릿 흐릿 몽환적인 붓질로 완성 한 이 산수화 속 정자가 있는 곳은 정약용이 태어나고 자란 경기도 광주의 마재 마을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그 곳에 큰 강이 흘렀는데 이 강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서로 만나는 교찹 지역으로 구불 구불한 협곡을 넘어가면 곧바로 서울 한강으로 흘러갈 수 있었던 지역이였다.

마재(마현馬峴) 마을의 유래는 임진왜란 때 이곳까지 침입한 왜구들이 산의 정기를 누르기 위해 무쇠로 만든 말 모양의 부적 같은 것을 산 정상에 묻었고 마을 주민들은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이를 물리치기 위해 철마를 모시고 제사 지내면서 동네 이름을 ‘마현(馬峴)’, 마재 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정약용이 살던 시절에 마재 마을은 큰 강이 흘렀지만 협곡에 부딪쳐서  휘감아 돌아갔기에 홍수 피해가 적었고, 넓은 퇴적층이 형성되어 어획량이 풍부했고 씨만 뿌려도 농작물이 잘 자랐던 풍요로운 땅이였다.

1925년 일본은 이곳 마재 마을 앞에 흐르는 강에 댐을 설치해서 물의 흐름을 바꿔 버렸다.

 댐이 가동 되고 부터는  마재 마을에는 가뭄도 자주 찾아 왔고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 마다 홍수 재해가 발생해서  다산 정약용이 남겼던 책들도 물에 잠기는 안타까운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했었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국인 지식인들은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 단 두명으로 미국 대학에서 개설된 한국학과에 '퇴계학'과 '다산학' 분야로 나눠져 있다.

특히 정약용이 남긴 사상은 인류의 위대한 지식문화 유산으로 2012년 유네스코는 정약용을 세계 기념인물로 선정했고 이는 한국인 최초였다.

18세기 최고의 지식인이자 조선 땅에 수 많은 업적을 남긴 정약용은 기나긴 유배 생활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서  실제 모습의 초상화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안타까움에 후대인들이 50세 전후의 다산의 생전모습을 화폭에 담기 위해 사후 자손들의 증언을 토대로 밑 그림 삼고  다산 후손인 '나주 정씨 월헌공파 종회'를 찾아가서 총 300명이 넘는 후손들의 인상을 직접 관찰하며 이들 중에서 다산의 자손들의 증언과 가장 비슷한 모습의  직계후손 4명의 인상을 면밀히 살폈다.

우연 곡절 끝에 1974년  월전 장우성 화백이 다산 정약용의 영정 초상화를  완성했다.

정약용은 생애 마지막에 배워야 할 학문을 <주역>이라 생각해서  이 학문 만은 정조에게 반드시 배우겠다고 결심했지만 부친 상중에 정조 마저 승하해서 그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50세를 넘기고  홀로 주역 공부에 파고 들었다.

그가 남긴 주역 사전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천하의 일이란 한 사람이 다 할 수 없다. (天下之事 非一人所爲也)”

그가 50세에 남긴 <목민심서>에도 이와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정선 목민심서 (다산의 지혜 에디션)

정선 목민심서 (다산의 지혜 에디션)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창비 / 2025년 1월


세상을 우습게 여기고 남을 깔보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재주와 능력을 뽐내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영예를 탐내고 이익을 좋아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남에게 베푼 것을 잊지 못하고 원한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생각이 같은 사람과는 한 패거리가 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은 공격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잡스런 책 보기를 좋아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함부로 남다른 견해만 내놓으려고 애쓰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니, 가지가지 온갖 병통들을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여기에 딱 맞는 처방이 하나 있으니 ‘고칠 개(改)’자가 그것이다. 

-정약용의 목민 심서 중에서

입만 열면 '개(改)’를 외치는 이들이 넘쳐 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누구부터 무엇을 어디 까지  '개(改)’해야 하고 고치고 수정 할 수 있을까?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로 유배를 떠나던 날 정약용은 가족에게 시 한 편을 남겼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다산의 지혜 에디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다산의 지혜 에디션)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창비 / 2025년 1월


“아버지 아시나요 모르시나요 

어머니 아시나요 모르시나요 

우리 가문 갑자기 뒤집어져서 

죽고 사는 문제가 이 지경이 되었네요.

자식 낳아 부모님 기뻐하시며  

잡아주고 끌어주고 애써서 길렀는데 

 부모 은혜 갚으리라 응당 말했지 

 이같이 꺾이리라 생각인들 했겠어요 

 이 세상 사람들께 바라는 바는  다시 자식 낳았다 기뻐 말기를.

-다산 정약용의 시  ‘하담의 이별’ 중에서






















4월 23일은 책의 날이다.

 온 세상 안과 밖이 뒤숭숭하고 세상 모든 것들이 미친듯이 올라가고 있고 전쟁 발발로 인한  유가 급등에 서민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인구 소멸의 시대 저 성장, 고물가 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을 위한 '개(改)’를 외치는 이들은 정작 자신들을 위한 '개(改)’를 실천하려고 부단히 노력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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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수많은 빌딩 사이에 구부정한 자세로 망치를 천천히 내리치는 동작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망치질 하는 조각상이 서 있습니다.

이 조각상은 평일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망치질을 하고 주말과 공휴일에는 망치질을 하지 않습니다.

1979년에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 ‘노동자’라는 제목으로 처음 발표된 망치질 하는 조각상은 10년 뒤 미국 워싱턴에 ‘서류가방을 든 '화이트 칼라 직장인으로 도심 한 가운데 설치 되었지만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박물관 옆으로 옮겨졌습니다.

서류 가방을 든  조각상과 달리 망치질 하는 조각상은 전 세계 11개국 도시에 세워질 정도로 인기가 많은데 그 중에서 서울 광화문 흥국 생명 앞에 세워진 조각상이 가장 큽니다.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 망치질 하는 사람을 조각한 조너선 보로프스키는 예술적 분위기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용접으로 추상 조각을 만들고 부터 철제 조각물을 다루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보로프스키가 대학을 마쳤던 1960년대 미국 사회는 대통령을 비롯해서 사회 저명 인사들과 유명인들의 잇따른 암살, 베트남 전쟁에 반대 하는 반전 시위, 인종 간의 갈등과 부의 불평등으로 사회 곳곳은 시한 폭탄이 매일 터졌던 혼돈의 시기 였습니다.

이런 혼돈의 시기와 달리 정작 예술계는 다양한 실험과 혁신이 가득한 자유로운 분위기가 조성 되어 어떤 재료로 작업을 해도 부유한 자산가들과 후원자들 덕분에 전시장을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창작 환경이 이전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지만 정작 브로프스키는 작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어떤 창작물도 생산 할 수 없게 된 그는 매일 두 세 시간씩 앉아서 종이에 숫자를 쓰기 시작 합니다.

첫 날 1에서 1000까지 숫자를 쓰기 시작한 브로프스키는 다음 날 1001부터 쓰기 시작하자 그의 부모는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한 아들이  창작은 하지 않고 매일 숫자만 세고 있다며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매일 두 세시간씩 숫자만 종이에 적어나갔던 브로프스키는 2년 동안 지속한 후에야 마침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때 부터 작품을  완성하게 되면 그 날 센 숫자와 작업을 연결 시켜서 서명 대신 그 날의 마지막 숫자를 적어 나갔습니다.

2년 동안 매일 두 세 시간씩 숫자를 적은 브로프스키는 5년 동안 조각품을 만들면서 완성품을 전시 할 때 1에서 234만6502까지가 적힌 종이 더미를 작품으로 내놓았습니다.

서울 광화문에 세워진 '망치질 하는 조각상'에 새겨진 숫자는 ‘2,669,857’

이 숫자는 그가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숱한 망치질을 한 회수에 해당합니다.

브로프스키가 ‘2,669,857’의 망치질로 22m, 55t에 육박하는 거대 조각상을 탄생 시켰고 저는 지난 2023년 1월 12일 부터 지금까지 1150일 동안 2048개의 글을 투비컨티뉴드에서 발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3년의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매일 하루에 하루에 두 편 씩 자정을 넘기면 '모닝 페이지'를 발행 하고 오전 10시에는 연재 시리즈 노트를 발행하는 동안  한 회  당 글자 수가 700자 이하로 써 본 적이 없습니다. 

그동안 20개 시리즈 노트를 매일 발행 하면서 회 당 4천에서 5천을 넘는 분량의 글을 썼고 창작 소설 <그 해 여름의 수수께끼>와 100편 분량의 대 장편 <굿바이, 부다페스트>의 마지막 회는 3만 5천 자를 넘게 쓰고 대장정의 마무리를 했습니다.

제가 지난 3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써온 글자 수를 종이에 새겨서 발행 해 본다면 망치질 하는 조각상이 서 있는 빌딩 높이 만큼 될 것이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베스트셀러 한 권 판매량 인세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이고 노동자의 최저 하루 임금 수준에 달하는 보상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콘텐츠가  '헐값'이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한 달에 만 원도 안 되는 비용으로 평생 보아도 다 볼 수 없는 콘텐츠를 스트리밍 하는 OTT를 구독할 수 있기 때문에  '가성비'는 '품질'의 문제가 아닌 지불한 가격 만큼의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볼 수 있는 영상물을  많이 봐야 시간 대비 성과까지 챙기며  남들보다 '빠르게 정보를 취득'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추세로 인해  영화나 드라마의 콘텐츠의 미학적 질도 저하 시키게 되었지만 어쨌든 만 원 한 장이면 두툼한 세계사 책을 읽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되었고 죽기 전에 봐야 하는 100편의 명작 영화도 빨리 감기로 봐서 이 전 보다 더 많은 영화의 이름과 스토리를 대충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래 세월의 먼지가 쌓인 묵직한 고전 보다 단순한 스토리 전개, 통속적인 스토리, 손 끝 터치 하나 만으로 소설 한 편을 뚝딱 읽을 수 있고 종이책 여러 권을 탑처럼 쌓아 놓지 않아도 손으로 넘겨 보지 않아도 다양한 장르의 만화와 웹툰을 볼 수 있는 시대에 저는 더 이상 방구석에서 글만 쓰는 글쟁이 무명의 창작자가 아닌 나만의 영상 채널을 펼쳐 보이기 시작 했습니다.

2026년 1월 27일 첫번째 숏츠를 업로드한 제 채널 [@Scott-MoveableFeast]은 4월 22일 현재  115명이 구독해 주셨고 [@Artistway-official] 채널은 4월 22일 현재 79명이 구독해 주셨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 매일 단 하루도 쉼없이 영상 구상과 기획,촬영과 편집을 해서  [@Scott-MoveableFeast] 채널에는 영상 133개와 [@Artistway-official] 채널에는 영상 141개를 업로드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Scott-MoveableFeast



https://www.youtube.com/@Artistway-official



현재 채널 운영자는 인간인 저 한 명이고 영상 구상과 기획, 촬영과 편집을 혼자 하면서 영상 작업 도구로 구글 제미나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생성형 AI는 작업 과정에 있어서 변동이 심해서 엉뚱한 결과물을 생성하는 경우가 많고 확고한 지침과 프롬프트를 영어로 입력을 해도 의도치 않은 결과나 오류를 반복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검토하고 수정하고 재 편집하고 구성해서 완전한 결과물로 완성해 나가는데 전적으로 인간인 저 혼자 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상의 스크립트와 자막에 들어가는 문구의 기본 원고 작성까지 저 혼자서 하고 있고 직접 현장 촬영과 사진 이미지 생성과 편집까지  하면서 영상 작업을 하고 있어서 제 채널에 올라가는 롱폼 영상 중 상당수는 생성형 AI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저 혼자서 제작한 영상들 입니다.

따라서 현재 생성형 AI는 윈도우 기본 프로그램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의 하루 수면 시간은 5시간을 채 넘지 않습니다.

아침 출근 길에 나서자 마자 사회라는 챗바퀴 속으로 들어 가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노트북의 전원을 켜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4시간 정도 뿐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물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은 정확하게 24시간

태양의 주기를 받아 자전과 공전의 주기로 회전하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시간이라는  에너지는 단 한번도 운동을 멈춘 적이 없고  태초의 모습 그대로 길들여지지 않은 채  끊임없이 흘러가는 컨베이어 벨트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24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 된 재화이지만 팔목과 귓속에 스마트 폰과 연결 된 기기를 장착하고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1분 1초에 의미를 부여해서 시간을 쪼개 쓰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하늘에 떠 있는 무수히 많은 별만큼 다양한 콘텐츠를  구독할 수 있는 시대에  '가성비'는 '품질'의 문제가 아니라 들인 시간 만큼의 효율을 어떻게 내는가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2026년 1월29일 두 개의 채널을 개설하고 쉼 없이 영상을 제작한지(구독자들에게 다양한 영상을 보게 하기 위해) 석 달이 채 안되었지만 콘텐츠의 질적인 수준 만큼은 뒤떨어진다거나 시간을 낭비하는 깡통 같은 영상은 제작 하지 않습니다.

유튜브  @Scott-MoveableFeast 채널과 @Artistway-official 채널에 1000명의 구독자 숫자를 채워 주는 분들에게   행운의 선물을 부디 보내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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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7일 첫번째 숏츠를 업로드한 제 채널 [@Scott-MoveableFeast]은 4월 21일 현재  114명이 구독해 주셨고 [@Artistway-official] 채널은 4월 21일 현재 80명이 구독해 주셨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 매일 단 하루도 쉼없이 영상 구상과 기획,촬영과 편집을 해서  [@Scott-MoveableFeast] 채널에는 영상 132개와 [@Artistway-official] 채널에는 영상 140개를 업로드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Scott-MoveableFeast


https://www.youtube.com/@Artistway-official


현재 채널 운영자는 인간인 저 한 명이고 영상 구상과 기획, 촬영과 편집을 혼자 하면서 영상 작업 도구로 구글 제미나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생성형 AI는 작업 과정에 있어서 변동이 심해서 엉뚱한 결과물을 생성하는 경우가 많고 확고한 지침과 프롬프트를 영어로 입력을 해도 의도치 않은 결과나 오류를 반복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검토하고 수정하고 재 편집하고 구성해서 완전한 결과물로 완성해 나가는데 전적으로 인간인 저 혼자 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상의 스크립트와 자막에 들어가는 문구의 기본 원고 작성까지 저 혼자서 하고 있고 직접 현장 촬영과 사진 이미지 생성과 편집까지  하면서 영상 작업을 하고 있어서 제 채널에 올라가는 롱폼 영상 중 상당수는 생성형 AI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저 혼자서 제작한 영상들 입니다.

따라서 현재 생성형 AI는 윈도우 기본 프로그램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글을 깨우치기 전 부터 악보를 먼저 읽은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글렌 허버트 굴드는 네 살 무렵부터 음악 신동으로 불리며 15세 나이에 연주 데뷔를 하며 전 세계를 압도했던 세기의 천재였습니다.

1955년 22세의 나이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한 글렌 굴드는 연습곡에 불과 했던 이 작품을 현대 피아노 레퍼토리로 재조명했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81년  절제된 감정을 응축 시킨  두 번째 음반발매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유작 앨범으로 발매 되었습니다.

발매 당시 클래식 음반 중에서  180만장이라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릴 정도로 굴드가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이후 수 많은 음악가에 의해 연주되고 앨범으로 발표 되었지만 굴드의 성역을 넘어 섰던 음악가가 없습니다.

그가 남긴 음악에 깊은 감동을 받아 제작한 영상은 기획부터 사진 편집, 영어로 작성한 스크립트와 음성 삽입 그리고 마지막 영상 편집까지 모두 저 혼자 했습니다.

2분 38초 분량에 불과 하지만 제작 기간은 한 달이 걸린 영상 입니다.

크레페에 딸기를 싸 먹으면 딸기 크레페이지만 접시 위에 크레페의 모양을 어떻게 접어서 어떤 재료로 포인트와 액센트를 주는지에 따라 평범한 크레페에서 예술의 영혼을 입은 크레페 작품으로 탄생 할 수 있습니다.

영국 런던의 전시장에서 마주한 에드워드 드가의 발레 하는 소녀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이 영상은 1분 남짓에 불과 하지만 벨벳 질감의 누텔라 초콜릿으로 발레하는 소녀의 형태를 그리고  크레페를 겹겹이 겹쳐서  튀튀(Tutu) 치마에 발레리나가 무대에서 춤을 추듯  신선한 딸기로 액센트를  주는 과정을 직접 기획했습니다.

8초 단위 장면 생성을 위한 영어 스크립트를 직접 작성해서 한 달 동안 생성형 AI와 작업해서 쓸모 없는 장면은 잘라 버리고 초 단위로 장면을 잘라 수 백번의 편집을 하고 사운드를 기획하고 삽입해서  1분 내외 분량의 영상으로 완성한 결과물입니다.

규모가 크고 장비가 화려한 크리에이터들과 비교 할 수 없지만 2026년 부터 1인 크리에이터로 활동 할 수 있게 해주신 모든 구독자님들에게 큰 감사를 드립니다. 

첫 번째 업로드한 숏츠 영상부터 바로 이 순간까지 여러분의 구독이 제 심장을 뛰게 해줍니다.
1,000명의 구독자를 꿈꾸고 있는 제 채널은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이야기를 더 멋지게  확장할 계획입니다.

유튜브  @Scott-MoveableFeast 채널과 @Artistway-official 채널에 1000명의 구독자 숫자를 채워 주는 분들에게   행운의 선물을 부디 보내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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