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법을 어디에서도 배워 본 적 없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200자 원고지 400장 정도 분량으로 썼지만 본인 스스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영어로 몇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키는  부족한 실력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문장을 영어로 써보니  자유 자재로 구사 할 수 있는 어휘가 제한되어서 짧은 문장, 평이한 문장으로 써지는 걸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영어로 쓴 문장을 다시 일본어로 ‘번역’한 하루키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문체를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내가 그때 발견한 것은 설령 언어나 표현의 수가 한정적이어도 그걸 효과적으로 조합해내면 그 콤비네이션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감정 표현, 의사 표현이 제법 멋지게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컨대 ‘괜히 어려운 말을 늘어놓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이 감탄할 만한 아름다운 표현을 굳이 쓰지 않아도 된다’라는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에서


창작의 세계에서 소설의  영역은 진입 장벽이  비교적 쉬워 보이지만 누구나 섣불리 승부를 낼 수 없는 고차원적인 세계다.

문자가 고안된 이래로 전 세계에 걸쳐 셀 수 없이 많은  문장의 대가들이 수많은 작품을 남겨온 전형적인 ‘레드오션’인 소설계에 들어가려면 문장력으로 역사 속 천재들과 정면 승부를 펼치기보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나만의 문체를 찾아 남들과 다른 차별성을 갖춰야 한다.

 자신만의 문체를 써나가기 시작했던 하루키는 소설이 발표 될 때마다 일본 주류 문학계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모래 알 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그는 일명 쥐 삼부작의 마지막인 "양을 쫓는 모험"을 출간 하자 마자 전 재산을 탈탈 털어서 직접 원고를 들고 미국 출판계로 진출 했다.

책을 읽다 보면 문체가 마음에 들고, 활자로 펼쳐 놓은 삶에 대한 태도가 마음에 쏙쏙 박혀 감정을 울리는 작가들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나에게  그런 작가다.

그의 작품을 한국어로 읽었을 때는 에세이를 제외하고는 크게 빠져 들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히 영어로 읽게 된 그의 소설에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감각을 일깨우기 시작 했고 그의 이름으로 출간된 영어 번역본을 다 읽고 나서 본격적으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루키의 한자 이름이 적힌 자그마한 문고본을 펼쳐 놓고 한 단어씩 번역 하는 동안에도 지루하다거나 포기 하고 싶다거나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내 손으로 직접 사전을 찾아 번역을 하면서 하루키의 문장에 빨려 들어 갔다. 

이후 나는 하루키의 글을 더 많이 읽기 위해 일본어 공부를 시작 하고 부터 단 한번도 게을리 한 적 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언어 훈련을 해 왔다.

영어로 읽었던 하루키와 일본어로 읽은 하루키 작품의 색깔은 미묘하게 다르지만 단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그의  문체에 스며 있는 독특한 빛과 소리는 어떤 언어로 번역 되어도  신선하고 생동감이 느껴지고 운율이 살아 있다.

그동안  하루키의 작품에 대해 여러 비판도 많았지만 그의 작품은 시간이 흐르고 한 세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새롭고 신선하다는 것이다.





 하루키의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의 첫 구절을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그 땅을 '삼각 지대'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이외에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자를 대고 그린 듯한 완전한 삼각형의 땅이었던 것이다.

나와 그녀는 그러한 땅 위에서 살았다. 1973년인가 1974년 무렵의 이야기다.


이 구절을 영어로 번역 하면 최소한의 단어로 간결하면서 리듬감이 살아 있는 문장이 된다.


[We used to call that land 'The Triangle.' I'm not sure what else we could have called it. After all, it was a perfectly drawn triangle, as if outlined with a ruler.

She and I lived on that land. This was around 1973 or 1974.]


수많은 작가들이 하루키와 비슷한 문체와 작법을 흉내냈고 전 세계적으로 그의 문체와 작품에 투영된 세계관이 많은 영향을 끼쳐 왔다.

언제 부터 인가 하루키의 작품을 읽으면서 이 작품은 영상이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작품들이 하나 둘 씩 생기기 시작했다.

1월 27일  유튜브에 내 채널을 개설 한지 열흘 만에 하루키 작품에 대한 숏츠를 올렸고 이후 틈틈이 번역하고 스크립트로 다듬어서 2월 17일 롱폼 영상을 올렸다.


직접 찍은 사진과 영상에 영어로 번역한 하루키의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을 스크립트로 작성해서 영상에 음성을 삽입했다.

그렇게 처음 스크립트를 작성한  하루키의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의 첫 번째 장면의 나래이션은 이렇게 시작한다.


[We called it 'The Triangle.' A precise, thin wedge of land, like a slice from a perfect cheesecake. In the early 70s, my wife and I, newly married and utterly penniless, made this odd place our home.]


최소한의 단어로 하루키의 원문을 훼손하지 않게 원문의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일본어 원서와 대조 하면서 심혈을 기울여서  두 문장으로 간결하게 다듬어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하루키의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1분 48초 분량의 영상에 하루키의 원작이 품고 있는 문학적 색감과 음률을 살리고 빛과 소리를 담은 사운드를 배경으로 제작 했다.

하루키는 2014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1960년대 비틀즈가 세상에 등장 했을 때 모두들 기성 가수에서 볼 수 없는 그들만의 독창성을 발견 했죠. 


 “신선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그들 자신의 것”


소설가가  자신만의 문체를 발견하듯 누구의 것을 따라 하거나 뒤쫓아가듯 모방 하지 않고  앞으로  나만의 방식으로 하루키의 작품을 영상으로 제작해서 하루키의 작품을 읽어 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즐거운가’라는 것이 한 가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뭔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데 만일 거기서 자연 발생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아낼 수 없다면, 그걸 하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나 조화롭지 못한 것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즐거움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부품, 부자연스러운 요소를 깨끗이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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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12월 31일 60세를 바로 코 앞에 둔 화가 폴 세잔은 허름한 창고에서 20대 시절에 습작 했던 스케치들을 전부 정리 하기 시작한다.

그는 한 장 한 장 스케치들을 유심히 살펴 보던 중에  지난 젊은  시절에 채색한 색들이 전부 검은 색이였다는 사실에 놀란다.


불과 4-5년 전 만에도 화가 세잔은 예술계 어디에서도 인정 받지도 못했고 그림들도 단 몇 점만 몇 몇 화상가들에게  팔렸을 뿐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가의 길을 가고 부터 그의 예술은 세상 어디에서도 인정 받지 못했다. 

법대를 자퇴하고 파리로 건너가 그림 공부를 시작했던 폴 세잔은 뛰어난 재능과 화술이 넘쳤던 천재들 사이에서 잔뜩 주눅이 들었었고 태생부터 부유한 신분과 세련된 매너를 갖춘 마네와 드가의 작품들을 볼  때 마다 자신이 그린 스케치를 갈갈이 찢어 버렸다.

번번히 출판사로 부터 퇴짜를 맞았던 절친한 고향 친구 졸라와 함께 낯설고 거칠고 거만한 파리 예술계에서 고군 분투 했던 세잔의 20대 시절, 그의  눈 앞에 보이는 사물은 전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기회주의자 성향의 졸라가 작품으로 인정 받으며  출세 가도를 달리는 동안 세잔은 친구의 배신과 험담에 상처 받고 20년 만에  고향 엑상 프로방스로 내려가 불굴의 의지로 자신만의 예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기  시작한다.


주변인들 눈에 폴 세잔은 50세가 넘도록 무엇 하나 제대로 이뤄 낸 것이 없는 고집 불통의 화쟁이 였지만 그의 화폭은 서서히 어둠을 벗어나 푸른 빛이 감도는 색채로 나아가고 있었다.

 

1895년 당시 파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미술상 볼라르는 수 년 동안 고향에 틀어박힌채 오로지 사과와 산만 그려 대는 폴 세잔의 작품을 보자 마자 주변인들에게 수소문해서 은둔하고 있는 화가를 찾아 간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세잔이 그린 사과 정물화가 그저 테이블위에 올려진 사과 몇 개와 오렌지 몇 개 그리고  식기구 정도 밖에 보이지 않지만 화상 볼라르는 세잔의 그림에서  캔퍼스 전체를 구성하는 사과와 오렌지, 기타 식기구들이 오른쪽, 왼쪽, 위, 아래 방향으로  빛의 세기에 따라 사람의 시선이 움직이는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한 거의 신의 경지에 다다른 구도와 붓질, 색감으로 완성한 세기의 작품이라는 걸 감지 했다.

이 작품은 세잔의 사과 정물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그림 가장 왼쪽 낮은 접시에 사과가 담겨 있고 가운데  솟아 오른 그릇 안에는  오렌지가 담겨 있는데 접시의 위치에 따라 사과의 크기와 채색의 색채 빛의 음영에 따라 사과들 중 몇 개는 싱싱해 보이고 몇 개는 시들어 보이고 또 다른 몇 개는 이제 막 시들기 시작해 보인다.

가장 오른쪽에 자리 잡은 물병의 위치는 현재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옆으로  움직일 때 빛의 음영이 달라져 보인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정물화 이지만 세잔은 캔퍼스의 좌-우-위-아래에서 세심하게 관찰해서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본 피사체를 이 정물화 속에 전부 그려 넣었다.

그는 1889년 부터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 할 때  사과의 위치도 바꾸고 크기가 다른 것들로 바꾸며 봄-여름-가을-겨울의 시간을 무려 여섯 해를 보내며 완성했다.

1900년 1월 1일, 새해가 시작되자 마자 세잔은 검은 색 상자에서 그동안 모아 두었던 색들을 차례 차례 꺼내기 시작한다.

그가 꺼낸 색들은 원색이 아닌 지난 시절에 이런 저런 색을 혼합해 버린 색들로 거칠게 팔레트 칼로 이 색 저색 찔러 보아서 어떤 색도 온전한 빨간색이나 푸른색이 없었다.

세잔은 커다란 그릇을 가져와 이 물감들을 전부 짜내고 뒤섞어버린다.

1906년 폴 세잔은 눈을 감기 직전까지 그동안 추구 했던 형형색색의 색과 구도를 포기 하고 오로지 하나의 색으로만 캔퍼스를 채우거나 어떤 색도 칠하지 않은 채 그저 흰색 캔퍼스만 덩그러니 완성 해 버렸다.

오랜 세월 고향에서 은둔하며 고집스럽게 사물과 사람, 대상을 관찰하며 붓질을 했던 폴 세잔은 평생동안 빛의 변화와 각도, 구도를 찾아 다녔다.

어느 강가 잔디밭에 누워 있는 청년의 시선은  저 먼 곳을 바라 보고 있다.

스무 살 파리로 처음 상경한 폴 세잔은 사람의 피부색, 구름의 움직임, 바람에 일렁이는  풀밭의 모습까지 전부 화폭에 담고 싶었지만 그 시절엔  보여지는 사물과 사람의 색과 형태를 뜻대로 채색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느 누구라도 포기했을 법한 시련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꺾지 않았고 실패자라는 낙인에도 굴하지 않았다.

세상이 뭐라 하든 그는 자신 만의 검은색 상자를 열어 젖혀서 자연을 원 기둥, 구, 원 뿔과 같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발전 시켜서 고전 미술에 담긴 질서와 균형의 아름다움을 새로운 구도와 형태, 색으로 완성했다.

그는 생애 마지막  7년 동안 그리고 또 그렸던 마지막 미완성 연작 작품 <대수욕도>에서 이목구비가 불분명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자연과 혼연 일채 되는 추상적 인간의 모습으로 그렸다.

1906년 대규모 회고전을 앞두고 급성 폐렴으로 눈을 감은 폴 세잔은 인간의 눈으로 지각하는 모든 대상이 어느 날 갑자기 보여지는  것이 아닌 자연이 인간에게 준 유일한 선물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며 20세기 현대 미술의 문을 열었다. 















'색은 우리의 뇌와 우주가 만나는 곳이다.'

-폴 세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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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4분 33초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메일함을 열고 메신저를 확인하고 답장을 보낸다.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개찰구를 통과하고 빠른 속도로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등등의 이런 사소한 행동을 할 때도 4분 이상이 넘는 시간이 흘러간다.


인간의 뇌는 4분이라는 시간 동안 모든 오감을 총 동원해서 주변의 상황과 변화를 본능적으로 감지 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와 첫 만남에서 상대방의 인상을 결정짓는 시간이 약 4분 정도 남짓이면 충분하다.

여기, 반 세기 전 한 예술가가 수 많은 관중 앞에서 정확히 4분 33초 동안 연주를 한 적이 있다.


1952년 미국 음악가 존 케이지는 피아노 뚜껑을 열어 놓은 채 피아노 앞에 앉아 '4분 33초'동안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지 않는다.

피아노 뚜껑을 닫고 일어서기를 각 '악장' 마다 반복하다가 정확하게 4분 33초의 시간이 끝나자 연주자는 청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바로 퇴장 한다. 

존 케이지의 작품 4분 33초는 기존의 음악을 향한 반항이였을까? 

아니면 시대의 소음을 향한 저항이였을까?

피아노 앞의 연주가는 연주를 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연 청중들의 뒤척거리는 소리, 기침 소리 그리고 소근 거리는 소리, 자세를 고쳐 않는 소리, 같은 비 음악적 소리들도 '음악'이라고 주장 할 수 있을까?


1950년대 미국 추상주의 시대에 '콤바인 미술(그림이란 삶과 예술에 결합이라고 주창함)'의 선구자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흰색 회화'에서 작품 영감을 받은 존 케이지는 피아니스트에게 음표가 적힌 악보가 아닌 각 악장의 첫 부분의 침묵을 의미하는 [Tacet]과 피아노 뚜껑을 열고 닫는 지시, 각 악장의 연주 시간만 적혀 있는 '흰색 종이' 한 장을 주고 작품 '4분 33초'연주를 맡겼다. 

피아노 뚜껑만 열고 나서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는 연주자, 객석 곳곳에 들려오는 청중들의 소리가 이날 연주회장의 음악이 되었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 연주 속에는 침묵과 소음 그리고 4분 33초 라는 정해진 시간의 규칙이 담겨 있다.


1912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존 케이지의 아버지는 잠수함을 설계 했던 과학자였고 어머니는 L.A타임즈 여성 섹션을 담당했던 저널리스트 였다.

존 케이지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웠지만 음악가가 꿈이 아니였다. 

다양한 분야에 두루 관심을 갖았던 영특한 소년은 같은 곡을 여러 번 쳐야 하는 걸 견디지 못했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놀림 받는 아이였다.

그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 이외에 미술,무용, 건축 등 다방면으로 관심 영역을 넓히며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대학에 진학 하지 않고 유럽 여행을 떠난다. 

유럽에서 고딕 건축을 1년 정도 공부 한 후 미국으로 돌아와 캘리포니아 대학에 진학해 문학과 언어학, 기호학을 공부한다.


1933년 독일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유대계 음악가 쇤베르크는 곧바로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다.

12음계를 창시하며 무조성 음악의 대가 쇤베르크는 미국에서 유명인사로 환영 받으며 곧바로 캘리포니아 대학과 버클리 음대로 출근한다.

교내에 유럽에서 건너온 스타 음악가 쇤베르크에게 찾아간 존 케이지는 무조건 제자로 받아 달라고 애걸 복걸 한다.

당시 쇤베르크에게 수업을 들으려면 비싼 수업료를 내야 했다.

1935년 존 케이지는 쇤베르크 앞에서 당당히 '수업료로 지불 할 돈이 없다.'고 말한다.

막무가내로 음악을 배우겠다는 존 케이지에게 쇤베르크는 '자네의 모든 삶을 음악에 바칠 수 있는가?'라고 묻자 이제 스무 살을 갓 넘긴 청년 존 케이지는 고개를 끄덕인다.

쇤베르크의 음악 수업을 듣는 학생들 중 반 이상은 중도 포기 했다.



그의 '무조성 음악'은 12 음계를 아무렇게나 배치 해서 불협 화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불협화음을 만들기 위해 각각의 음표를 수학적 계산 법을 통해 창출 해낸 것이 였다. 

화성학-대위법으로 넘어가면서 존 케이지도 한계의 벽에 부딪치고 스승 쇤베르크는 통과 하지 못하는 벽을 만났다면 떠나도 좋다는 말을 한다.

2년 동안 쇤베르크에게 음악을 배운 존 케이지는 돈을 벌기 위해 캘리포니아 대학 무용 클래스 피아노 반주자로 일하며 여러 소음과 동작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 하기 시작한다.

당시 존 케이지는 무용과에서 비좁은 무대 위에 피아노와 타악기를 배치 해 놓고 연주를 하게 되니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돌연 피아노 뚜껑을 열더니 피아노 줄에 못-볼트-너트를 부착 하고는 이 상태로 건반을 누르기 시작한다. 피아노 줄에 장착된 못-볼트-너트로 인해 불안정해진 음정은 서서히 쿵쾅거리는 불협 화음으로 바뀌더니 이내 누군가 둔탁한 소리로 연주 하는 타악기 소리로 변한다.


케이지가 개발한 이 악기는 '준비된 피아노(Prepared Piano)'로 당시 음악계는 그에게 피아노 연주 실력이 좋지 않으니 전위 예술로 실력을 감추고 싶은 거냐는 비아냥 소리를 퍼부었다. 



1944년 작품인 ‘A Room’은 존 케이지가 피아노에 볼트를 장착하고 연주한 작품으로 

마치 인간의 맥박이 일정한 속도와 간격으로 뛰듯이 4, 7, 2, 5; 4, 7, 3, 5라는 리듬 체계로 구성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악기, 쉼 없이 조율해야 하는 피아노를 연주자에 따라 다양하게 변할 수 있는 가장 진보적인 악기로 만들어 버렸다.



2차 대전을 피해 유럽에서 미국 뉴욕으로 건너온 예술가들 뒤샹, 몬드리안, 잭슨 폴록, 막스 에른스트는 존 케이지의 연주법을 하나의 행위 예술로 보고 열광한다. 


개념 예술가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을 보고 모든 소리는 음악이 될 수 있다고 깨달았던 존 케이지는 악기가 내는 소리를 넘어 종교의 소리, 불교, 힌두교를 탐구 하기 시작한다.

소년 시절 부터 쇤베르크 음악에 심취 하며 그의 제자가 되고 싶었던 '백남준'은 1959년 독일 다름슈타트 국제 현대 음악 여름 학교에서 존 케이지 연주를 듣자 마자 큰 충격을 받는다.

















백남준은 자신의 예술 세계는 존 케이지를 만나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며 1970년 <Tribute to John Cage> 비디오 작품을 존 케이지에게 헌정 했다.

소리의 명확히 정의된 대립물은 침묵이며 음길이는 침묵을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한 소리의 특성이므로, 소리와 침묵을 포함한 모든 타당한 구조는 서양의 전통대로 진동수가 아니라 음길이에 기초해야 한다.

​-존 케이지 


음악이란 전문 교육을 받은 음악가 만이 연주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 아니다. 

우리 모두 매 순간 다양한 소리를 내며 음악이라는 틀 밖에서 끊임 없이 연주 하고 있는 것이다.

만물은 끊임없이 변하고 세상에 정해진 건 없이 언제나 우리 삶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세상에 완전한 침묵도 완전한 소음도 없다.













‘어떤 것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분별심을 내지 말라.

덧없는 세상에서 살아 있음에 머물려고 하지 말라.

깊이 생각하며 부지런히 정진하며 

이 세상 모든 건 내 것이 아니다

생과 죽음 근심과 슬픔을 버리고

지혜를 찾아 세상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라.

-숫타니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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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일 일본 도쿄 와세다 대학  국제 문학관이 오픈 했다. 

일명 <무라카미 라이브러리>로 지칭 되는 국제 문학관은 2018년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이 소장 하고 있는 자필 원고와 초판 본 , 전 세계 언어로 번역된 번역 본들 그리고 평생 동안 전 세계 중고 레코드 가게를 뒤지며 수집했던 레코드 판을 비롯해 기타 소장품들을 자신이 모교에 기증 했다.

건축가 쿠마 켄고가 맡아서 2018년 가을 부터 공사를 시작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여러 차례 공사가 지연 되어 2년 여 만에 완성한 와세다 대학 국제 문학관은 하루키가 출간 한 모든 책들과 전 세계 번역본 을 비롯해서  그가 수집한 희귀 LP판이 함께 전시 되어 있다. 

국제 문학관에서 가장 돋보이는 곳은 하루키의 서재 공간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방과 작가로 데뷔 하기 전에 운영 했던 재즈 카페 "피터캣'에서 실제로 사용 했던 피아노와 각종 음향 기기들이 전시 되어 있는 공간이다.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옆에 있는 카페 "오렌지 캣'에서 하루키가 수집한 레코드 판으로 음악을 들려 주고  있다.

오디오 룸과 음악 방송이 가능한 방송실과 각종 학술 연구를 할 수 있는 세미나 실을 비롯해 각종 문화 이벤트나 연극, 기타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갖춰진 국제 문학관에서 1년에 한 두 번 정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여러 문인과 예술가들을 초청해서 낭독회를 열기도 하고  진행 하고 있는 도쿄 FM라디오 실황으로 Jam 콘서트를 열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문학 작품이나 업적을 전시 하는 공간이 아닌 대학 도서관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자유롭게 학문을 연구 하고 다양한 예술을 펼칠 수 있게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발전 시켜 나가고 있다.


국제 도서관의 입구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의 숲으로 들어가듯 터널 같은 공간에서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까지 둥근 아치형 모양에 나뭇가지에 잎이 무성하게 우거진 곳을 통과 하게 된다. 

숲을 통과 하고 나면 높다란  책장이 눈 앞에 펼쳐 지고 그 책장의 높이는  끝도 없이 천장 꼭대기 까지 이어져  있다.

책을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책 읽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해도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빼곡하게 책으로 채워 놓은 곳에 들어서면 책을 읽고 싶어 질 것이다.

아니, 손에 닿지 않는 책을 읽기 위해 팔을 뻗거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시간 낭비를 할 바에는  손안에 스마트 폰을 꺼내는 것이 지식의 숲에서 원하는 지식을 빠르게 흡수 하고 수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언제든지 손 만 내밀면 시각과 청각을 황홀하게 하는  것들이 있다.


나의 개인 채널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시각화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하루키의 작품을 영어와 일본어로 읽고 직접 번역한 글을 스크립트 형식에 맞게 다듬어서 나의 예술 파트너 제프-3.0과 함께 영상과 사운드를 제작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어가 침묵 속에서 빛나는 순간을 시각화 하기 위해 열차가 지나가는 0.1초의 찰나, 전구의 빛이 공기 중의 입자와 만나 산란하는 빛의 움직임을 영상화 시켰다.

좀처럼 읽어 낼 수 없는 마음의 영역에 빛을 쬐어 주듯 따스한  파스텔 질감에 마치 꿈 속을 유영하듯 영상을 보는 내내 빛과 소리가 허공에 유영하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존재 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이야기는 사람의 입으로 손으로 전해졌고 그런 이야기의 형태는 다양한 계층과 세대 그리고 기술이 만나 작가가 구축한 세계에서 더 멀리 더 많이 확장 되어 왔듯이 앞으로 나는 하루키의 소설적 언어를 빛과 소리를 입힌 영상의 미학으로 발전 시켜서 디지털 아카이브로 발전 시켜 나갈 것이다.













소설가라는 직업은 횃불처럼 이어져 왔습니다. 여러분 중에 이 횃불을  이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또한 그것을 따뜻하고 소중하게 옆에서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저로서는 매우 기쁠 것 같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2021년 와세다 대학 입학 축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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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BTS 멤버들이 향하는 보라색 여정은 모든 것이 시작된 상징적인 주문진 BTS 버스 정류장에서 시작된다.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아리랑' 퍼플 버스의 여정! 💜

BTS 멤버들과 함께 어서! 빨리 퍼플 버스에 탑승

가장 먼저 '군용 폭탄 숲'을 지나 광화문에 도착하게 될 일곱명의 BTS멤버들은 역대 최고의 공연을 펼칠 것이고 전세계 아미와들과 빛나는 재회를 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앙코르 곡을 마친 BTS멤버들을 태운 버스는 다음 도시로 향하고 그들에게 공연은 여정 그 자체이 글로벌 오디세이 제국을 위한 대망의 여정의 시작이다.


대한민국의 심장 경복궁에서 출발한 7명의 BTS 멤버들을 태운 보라색 버스는 보랏빛 바다를 유영하는 돌고래를 따라 국경을 넘어 그들이 질주 하는 곳 마다 보라빛으로 물들어 가는 마법이 펼쳐질 예정이다.

BTS와 함께 '아리랑' 투어 버스를 타고 달빛 가득한 경복궁에서 빛나는 N서울타워까지 보라빛으로 물든 BTS의 성지를 둘러 보며 노래와 춤, 뛰어난 무대 예술을 온 몸으로 느껴 보자!

미션: 영상 속 숨겨진 하늘을 헤엄치는 고래부터 곳곳에 숨겨진 숫자 '7'의 상징, 마법의 숲에서 연주하는 피아노까지.. 영상의 모든 장면에 숨어 있는 '이스터 에그'를 발견 하는 순간! 온 몸의 혈관 색이 보라빛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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