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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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심가 건널목에 서 있을 때면 낯선 이가 느닷없이 불쑥 나타나 '복이 많게 생기셨네요.', '곧 귀인이 찾아 오겠습니다.' '지금 하고 계신 일이 잘 안 풀리죠?"라며 다가와 사주 관상을 봐준다며 따라 붙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 부딪칠 때면  가던 길을 가버리거나 무시하면 그만 이지만 마음의 근심 걱정이 가득 할 때나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상태 일 때 맞닥뜨리게 될 경우 피싱 문자에 걸려 들듯 ,무엇에 홀려 버린 듯 사주 관상을 봐주겠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그 낯선 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전부 맞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는 순간 그가 내 인생의 막힌 부분을 속 시원하게 해 줄 [앤서 맨]이 아닐 까라는 생각을 하며 지갑에서 지폐를 불쑥 꺼낸다.

여기,  한 청년이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고민 하던 중 단순한  호기심에 이끌려서 자신의 발로 직접  앤서 맨을 만나러 간 남자가 있다.

1937년 10월, 법과 대학원을 갓 졸업한 스물 다섯 살의 필 파커는 결혼을 약속한 약혼녀에 전도 유망한 미래를 앞두고 있었지만 무엇 하나 확실하게 결정 된 것들이 없었다.

 법학 대학원 졸업장만 달랑 쥔 필은 결혼과 취직 사이에 고민 하던 중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부모님의 여름 별장이 있는 뉴햄프셔의 작은 마을에 찾아 간다.

차를 몰고 가던 필은 손 글씨로  “앤서 맨까지 3㎞.” 라는 팻말을 발견한다.

손 글씨로 쓰여진 이 팻말을 처음 보았을 때 필은 코웃음을 쳤지만 언덕을 넘어 마을로 진입하는 도로에서 두 번째 팻말에 ‘앤서 맨까지 1.5㎞’라는 것을 발견하자 잠시 머뭇거리다 운전대를 돌려 앤서 맨이  있다는 그 곳을 찾아 간다.

필은 파라솔 그늘 아래  흰색 셔츠에 회색 바지를 입고 검은색 신발을 신은 앤서 맨을 발견한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그 앤서 맨의 나이는 대략 50살 쯤 보였고   발치에 왕진 가방처럼 생긴 가방이 놓여 있었다.

대형 로펌의 중간 간부 같은 지적인 그의  분위기에 호기심이 발동한 필은  이 남자의 정체를 알아 보기 위해 자리에 앉는다.

앤서맨에게 질문을 하려면 몇 가지 주의 사항이 있었다.

-5분 당 25달러

-처음 두 개는 무료.

- “앞으로의 행보”는 묻지 말 것.

접이식 캠핑용 의자에 앉은 필이 팻말에 적혀 있는 주의사항을 물어 보자 앤서맨은 이렇게 대답한다.

"똑똑해 보이는 청년이로군요. 자동차 안테나에 달린 페던트를 보니 대학 공부를 한 청년이에요. 그것도 무려 하버드를 '!

자신이 누구인지 단번에 꿰뚫어 보는 앤서 맨을 신뢰 하게 된 필은   단 5분 동안 25달러를 지불하는 것이 너무 비싸다고 푸념하자 앤서 맨은 필이 자신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알아 보고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린다.

앤서 맨과 밀고 당기는 질문을 하던 필은 “당신의 답이 정답이라는 걸 내가 무슨 수로 알 수 있죠?”라고 묻자 그는 “지금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겁니다”라고 모호하게 대답해 버린다.

스물 다섯 살의 필이 앤서 맨에게 5분 동안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내 여자 친구의 이름은 뭐죠?

-그녀가 청혼을 받아 줄까요?

-우리는 행복하게 살까요?

-우리 아버지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말해보세요.

-내 경력이 예상하는 것 만큼 승승장구 할까요?

-내 여자친구의 부모는 제 의견을 존중하게 될까요?

-전쟁이 벌어진다면 미국이 참전하나요?

-저도 참전하나요?

-부상을 당하나요?

-제가 전쟁터에서 전사하나요?

5분 동안 속사포 처럼 쏟아낸 필의 질문에 앤서 맨은 이름, 태어난 장소, 인간 관계, 앞으로 발생할 일을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앤서맨을 만나고 나서 필은 과연 사회 초년생에게 작지 않은 돈의 가치를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었지만 그의 인생의 방향은 뜻밖에도 앤서 맨이 예견한 대답처럼 흘러갔다.

약혼녀와 결혼을 하고 장인 장모에게도 인정을 받고 변호사 경력도 원하는 대로 승승장구 하다 미국이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앤서 맨이 대답한 대로   필은 지상군에 파견 된다.

치열한 교전 속에서도 필은  앤서 맨의 예견대로 전사 하지 않고 살아서 가족 품으로 돌아간다.

1937년 10월,  스물 다섯 살에  앤서 맨을 처음 만났던 필은 무사히 전장에서 돌아와 사랑하는 아내 사이에서 첫 아들이 태어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을 무렵인  1951년 10월, 서른 아홉 살에 두 번째 앤서 맨을 찾아간다.

어느 덧 중년의 나이가 된 필과 달리 앤서 맨은 처음 만났을 때와 변함 없는 모습이였지만 처음 두 개는 무료에 5분에 25달러였던 가격이 3분에 50달러, 무료 질문은 한 개로 질문의 규칙이 바뀌어 있었다.

 과거 사회 초년생 시절과 달리 변호사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던 필은 단번에  50달러 지폐를  척 꺼내서 앤서 맨에게 질문을 던진다.

-제가 상원 의원에 출마하게 될까요?

-우리 아들은 프로야구 선수가 될까요?

-다른 종목은 요?

-대학 야구는 요?

-우리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죠?

두 번째 만난 앤서 맨은  스스로 규칙을  깨 버리고 갑자기 필에게  3분에 200달러로 훌쩍 비용을 올리더니  아들에 관한 질문이 이어지자 대답을 멈춰 버리고 자리를 떠난다.

두 번째 앤서 맨을 만나고 나서 부터 필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가장 소중하고 사랑했던 아들과 아내를  잃고 나서 필은 자신의 삶에 찾아 온 불행을 원망하고 저주 하지만 잃어 버리고 사라지고 떠나 버린 것들은 두 번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 오지 않았다.

우울과 분노에 사로 잡혀 살던 필의 인생에  승소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의뢰인이 방문하면서 그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 

인생의 한 축이 무너지고 나서 찾아 온 행운을 덥석 쥐게 된 필은 가족의 상실과 아픔을 잊어 버리고 일에 몰두 하고 마침내 인생의 황혼기에 다다라서는 자신의 이름으로 장학 재단을 세우며 자신이 이룬 성공과 부를 지역 사회에 환원 하는 나날을 보낸다.

주변의 지인들이 차례 차례 세상을 떠나고 유일한 가족으로 곁을 지켰던 반려견을 땅에 뭍은 필은 1995년 10월, 마지막 세 번째 앤서 맨을 찾아간다.

세 번째 만나게 된  앤서 맨은 뜻밖에도 필에게 무료 이벤트라며  시간 제한이 없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늙고 병든 필은 앞으로 남겨진 자신의 삶에 대한 궁금증도 사라져서  딱히 앤서 맨에게  물어 보고 싶은 질문이 없었다.

 필은 시간 제한도 없고 무료이니 생각 나는 대로 앤서 맨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죽은 뒤에도 계속 존재 하나요?

-우리가 가는 곳은 천국인가요? 지옥인가요? 환생 인가요?

-우리는 야전히 우리로 남을까요?

-과거를 기억할까요?

-나는 아내와 아들을 만나게 될까요?

-좋을까요? 끔찍할까요?

-거기서 꿈도 꾸나요?

-거기서 슬픔이나 기쁨이나 다른 어떤 감정을 느끼나요?

 앤서 맨은 필의 모든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맨 처음 필이 앤서맨을 만났을 때 그가 사기꾼인지 알아보기 위해  “당신의 답이 정답이라는 걸 내가 무슨 수로 알 수 있죠?”라고 물으니 앤서 맨이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겁니다”

필이 살아 온 인생의 추이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신이 그의 인생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조종하듯이  앤서 맨의 대답대로 흘러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만일 필이 그 날 앤서 맨의 손 글씨 팻말을 지나쳐 버렸다면 그의  인생의 방향이 달라졌을까?

첫 번째 필이  앤서 맨을 만났을 때  하버드 법학 대학원을 졸업한 자신을 의심하자 그에게 이런 조언을 한다.

이 일을 한 지 워낙 오래됐으니 도움이 안 되는 질문을 하는 똑똑한 사람들을 겪을 대로 겪어 봤는데도 여전히 놀랍네요. 다들 너무 흐리멍덩해요. 너무 게을러요. 똑똑한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찾으려는 답이 뭔지 정말 알고 있을까 싶을 때가 많아요. 그냥 자부심이라는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날아다니며 틀릴때가 많은 추측을 남발하는 건 아닌지. 나로서는 그들이 그렇게 무능한 질문을 하는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네요.

-스티븐 킹의 <앤서 맨 > 중에서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 쯤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면 누군가 내게 인생의 정답을 알려주면 훨씬 더 멋지고 완벽한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대신 아파 줄 수 없듯이 살아가는 동안 부딪치는 숱한 것에 대한 정답을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한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 생-노-병-사라는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 날 수 없다.

인간이  태어나 성장하는 동안 부딪치게 되는 숱한 고난과 고비, 불운과 행운의 순간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 지에 따라  인생의 결이 달라 질 뿐 앤서 맨에게 앞날의 일을 물어 본다 해도 생-노-병-사라는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서 살 수 없다.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이 승승장구 하길 바라지만 이 세상은 무엇 하나 누군가의 의지와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길을 돌아서 갈 지라도 벽을 넘지 못하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없듯이 사는 동안 겪게 되는 고난과 고통, 실패와 좌절의 과정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 과정과 인내의 시간의 길이가 각자 다를 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이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건 앤서 맨이나 점술가. 인공지능도 아닌 자기 자신 뿐이다.

어떤 선택으로 인생의 방향이 의도 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버릴 때도 있지만 어제와 오늘이 쌓여서 앞으로 내달리는 동안 불운과 고난, 역경을 스스로 극복 해 나가야 한다.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 있지만  그 선택이 나와 우리를 만들며 그 선택으로 인해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된다. 

 지금 우리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 혼돈의 시대에 서 있다.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를 앞두고 병오년 1년 운세를 ‘예측’하는 역술인들의 글과 영상들이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다.

“앞으로의 행보”는 묻지 말아야 한다는 앤서 맨의 규칙이 없는 인공지능은 과연  2026년 새해 재물운·애정운·승진운·사업운에 대한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 줄 수 있을까?

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질문을 던진  자기 자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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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5-12-30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겁니다˝ 라는 앤서 맨의 답은 scott 님 말씀처럼 우리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데 동의 합니다.
현재를 살면서 항상 미래를 예측하려고 하니까 지금은 여전히 모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미래는 예측이 아니라 현재가 만들어 내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요.
미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고 결과는 늘 현재죠.
어쩌면 시간은 과거-현재-미래가 아니라 과거- 미래- 현재일 수도... ^^
scott 님, 얼마 안 남은 2025년 마무리 잘 하시고, 병오년 새해엔 항상 좋은 일만 생길 꺼예요. ㅎㅎ
 










1867년 오스트리아와 합동 제국이 되기 전 헝가리는  크로아티아 왕국과 트란실바니아공국까지 지배 하면서 중부 유럽에서 강력한 왕국으로 군림 하고 있었다.

헝가리의 강한 통치력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방패막이가 되어서  루마니아의 중심부가 되는 왈라키아-몰다비아공국과 보스니아, 루멜리아, 실리스트르 지역(이 지방은 1차 대전 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세르비아,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불가리아가 되었다)을   통치했던 오스만 제국이 유럽 중심으로 진격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스만 제국은 중세시대 부터 존재 했던  불가리아왕국, 세르비아왕국, 보스니아 왕국의 땅을 차지 하면서 거친 산악 지대 위에 세워진 몬테네그로 까지 통치 하고 있었지만 이들 왕국에 대해 강한 통치를 하지 않고 세금만 거둬 들였고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왕국인 헝가리와의 전쟁에 용병으로 나선 이들에게는 토지권을 주는  유화 정책을 펼쳤다.

자잘하게 쪼개져 있는 남부 유럽 국가의 자원 용병에 힘을 얻은 오스만제국은 1526년부터 1680년대까지 중부 헝가리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었고, 여기를 발판으로 북쪽의 합스부르크 영토를 침입했지만 성벽에 둘러 싸인 요새 도시 빈을 함락하는데 실패 한다.

서유럽 정복 전쟁에서 불가리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사람들은 오스만 제국 군대의 제복을 입고 싸웠지만 오스만 제국의 술탄에 대한 존경심이나 제국을 향한 애국심은 눈곱 만치도 없었고 이슬람으로 종교를 개종한 이들은 단 한 명도 존재 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 오스만 군대에서 받은 돈을 받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갔다.

이 지역의 통합성의 뿌리는 서유럽의 종교나 민족성에 영향을 받아도 근본적인 민족과 종교를 바꾸지 못했다.

여러 세기에 걸쳐 로마 시대를 제외 하고  단 한 번도 통합된 적이 없었고 1000년 경에 도래한 기독교는 라틴 기독교와 그리스 기독교 두 형태로 나눠져서 민족의 토속 신앙과 결합한 독특한 종교로 발전 되었다.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동유럽은 서유럽의 문화나 종교에 뒤섞이지 않은  변방 지역의  미지의 땅으로  오랜 전쟁으로 인구 이동의 물결이 일어나서 한 집안에 기독교와 정교회 교인, 유대교, 무슬림교가 뒤섞여 있는 다종교 사회 구성원을 이루고 있었다.

1880년 유럽 중동부 지역에는  네 개의 국가만 존재 했다.

 러시아제국, 오스만제국, 프로이센왕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이 네 개의 국가들 영토 내에서 과거의 정치적 경계를 나눠보면  북쪽에는 1795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의 분할로 소멸된 폴란드-리투아니아연합왕국이 있었다.

 남쪽에는 1526년부터 합스부르크 왕가 소유가 된 헝가리 왕국과 보헤미아왕국이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남부 유럽 지역의 사람들의 운명을  완전히 통제 했던 국가는 없었다.

1867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합동 제국으로 거대한 영토를 차지 하면서 지난 세기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았던 보스니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가 행정 자치 구역이 되어 간접 통치를 받게 되었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제국이 남부 유럽 지역을 하나로 통합 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찾지 못하는 사이에 경제적으로 서유럽에 비해 낙후된 남부 유럽 지역에 주변국 종교인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고 종교와 메시아 전통에 익숙했던 시민들은 종교적 믿음을 통해 세속적인 해방을 갈망 했다.

남부 유럽의 혁명가들이 시민들에게  제국들 보다  가난하고 낙후된 경제 상황을 위협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며  독립을 향한 투쟁 만이 부유하게 살길 이라며 선동을 하는 동안 부다페스트 시민들은 지하철을 타고 움직였고 집집마다 정제된 깨끗한 수도물이 쏟아지는 수도관이 설치 되었고 거리마다 환한 조명등이 켜졌다.

제국이 밝힌 조명등은 멀리 떨어진 통치 지역인 르비우의 집집마다 등유 램프가 설치 되었고 루마니아 땅은 전기로 불을 밝히는 유럽의 첫 국가가 되었다.

철로가 유럽 대륙을 종횡 무진 달리면서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된 곡물이 유럽 전역으로 팔려 나갔고 리투아니아의 삼림지대에서 벌목된 목재가 바다 건너 영국의 건설 붐을 일으키게 된다.

목재업으로 곡물업으로 벼락 부자가 된 이들이 남부 유럽 지역에 등장 하면서 금융 시장에 대 호황이 이어지는 동안  남부 유럽의 혁명가들은 시민들에게  제국들 보다  가난하고 낙후된 경제 상황을 위협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며  독립을 향한 투쟁 만이 부유하게 살길 이라며 선동하며  민족들 사이를 이간질 하며 분열 시켰다.

민족의 분열은 테러범을 양성해서  이들이 저지르는 살인은 민족을 위한  성스러운 대의로 둔갑했다.

20세기  유럽이 눈부신  과학발전과 기술 혁명으로  빈과 부다페스트에 일급 호텔과 경마장, 무도회장 ,카지노들이 들어서는 동안 남부 유럽에  온갖 종교인들과 사상가들 혁명가들이 몰려 들었다.

 그 결과 파시즘과 공산주의, 민족주의가 움트는 토양이 되어 폭력적인 방법으로 평화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거대한 제국에 맞서는 테러범들을 양성 했다.

다인종, 다종교의 조각보처럼 꿰 맞춰진 이 지역은 20세기에 불어 닥친 변혁의 폭풍으로 인해 가장 밑바닥부터 파괴 되기 시작했다.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이념에 사로잡힌 이들이 모이자 강력한 집단 정체성이 종교보다 더 강한 민족주의를 일으키며  제국의 운명을 뒤 흔들었다.

만일 타임 머신을 타고 1914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의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된다면 중앙역에서 출발하는 전차에 올라타서 1번지부터 19번지를 지나는 정거장 마다 역사적인 인물들이 살고 있는 곳을 지나칠 수 있다. 

가장 먼저 제국의 최고위 공무원이자 통치자인  황제 요제프의 집무실이 있는 호프부르크 궁을  시작으로 베르크가세에 있는  현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 집에 도착한 후 길 건너편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면 20세기 세계 대전 발발에 큰 기여를 한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아나키스트들이 격론을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카페를 나와 거리를 걷다가 서부역으로 향하는 전차에 올라타면 그루지아 출신의 농노 스탈린이 은신하고 있는 주택지구를 지나 레온 브론슈타인이라는 가명으로 러시아 사회주의 신문을 발행하고 있는 레프 트로츠키가 살고 있는 부촌 지역인 슐로스스트라세에 다다르면 황족들과 황실 가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쇤부룬 지구까지  탐방 할 수 있다.

쇤부룬 지구에는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출신 청년의 총에 맞는 비극적인 죽음으로 세계 1차 대전 발발의 불씨를 터지게 만든  합스부르크 제국의 2인자 황태자 페르디난트의 집무실이 있는 벨베데레 궁을 지나 거대한 궁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공원을 가로 질러 가면 군대에 징집 되지 않으려고 친척집 지하에 은신하고 있는 스물 넷의 화가 지망생 아돌프 히틀러를 만날 수 있다.

1900년 오스트리아 '빈'의 정신과 의사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출간한 20세기는 심리학의 세기 였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의학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심리를 정밀하게 측정한 작업을 시도 하며 여러 임상 실험을 통해  인간의 사고와 행동 발달의 추이를 심리학적으로 치료하면서 인간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통해 지각과 감각, 주의력, 기억, 의사 결정을 포괄적인 연구를 통해 인간의 심리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데이터를 구축해 나갔다.

20세기 세계 역사를 뒤흔들어 놓았던 세기의 인물들을 일렬로 늘어 놓고 그들이 남긴 흔적과 유산을 하나의 선으로 이어 보면 놀랍도록 21세기 현재 시대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00년전의  유럽은  어제 마차에 탔던 이들이 오늘은 전차를 타고 출근 했고 휴가 때는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를 여행했고 전화선이 연결 되어 밖을 나가지 않고도 편지를 주고 받지 않아도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연락 할 수 있었다.

중부 유럽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헝가리는 유럽에서 가장 드넓은 영토를 차지 하고 있었던  합스부르크  제국에 여러 차례 맞서 혁명과 봉기를 일으켰지만 전장터의 수장들이 차례 차례 참수형을 당하고 나서 굴욕적인 타협 끝에  제국의 형제가 되었다.

황제 프란츠 요제프는 잠재적 봉기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제국의 수도 보다 먼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지하철을 개통 시켰고 독일에 맞먹을 정도로 열차선을 건설할 수 있게 했다.

헝가리의 산업 혁명을 주도 했던 지식인들과 엘리트 가문들은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의과 대학과 건축 대학을 설립해서 도시의 산업화를 앞당겼다.

1890년대부터  부다페스트에는 환자 긴급구호차가 출동했고 소방차도 프랑스, 독일 보다 앞선 시스템을 도입하고 운행 하며 도시의 안전을 책임졌다.

1900년대부터 수도에 전화 케이블 선이 깔렸고 도나우 강물은 전 지역에 깔린 수도 공급용 파이프를 타고 흘러 들어갔고 배관으로 공급하는 가스로 시민들은 집에서 손쉽게 요리 할 수 있게 되었다.

도로가 정비 되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생생 달리는 자동차가 운행 되고 전차선이 들어서고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전보와 우편을 받아 보고, 전화로 소식을 전달할 수 있게 된 시대는 스마트 폰 하나로 연결 된 지금의 시대 만큼 매일 매일 놀라움으로 가득 찬 기대감으로 넘쳤다.

하루 아침에 말이 모는 마차에서 디젤 엔진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타고 등유가 아닌 전기 불로 어둠을 밝히며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넘나들었던 20세기는 눈부신 기술 과학 혁명의 시대였다.

하지만 인공 지능과 함께 공존하고 있는 현 시대인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 유럽 대륙에 가본다면 가장 먼저 낯선 언어와 방언에 의사 소통에 불편함을 겪게 될 것이고 지금과 판이하게 다른 지정학적 질서와 사회 제도와 규범에 놀라게 될 것이고 현재와 너무나도 차이가 큰 기술과 의학 수준에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환경 적응에 탁월한 인간은 어느 시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살아 남았다.

그 이유는 문명의 발달과 눈부신 과학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의 기본적인 원초적 욕구인 식욕과 성욕 그리고 탐욕은 어느 시대에 어떤 세대 모두의 DNA이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20세기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역시  탐욕과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  과거의 인물들이 그랬듯이 국가와 사회, 개개인의  리스크에 영향을 받아,시기심에 휩싸이며 사소한 분쟁이 지역과 민족, 인종갈등으로 번져서 국가간의 무력 충돌이 빈번했다.

현 시대와 전혀 다른 국경을 서로 맞대고 있었던 유럽 대륙에서 21세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신 인류의 눈에 집단 소속감을 중시하는  20세기 사람들을 목격하게 될 것이고 그들의 지나친 자신감과 근시안적 태도 역시 현재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수구 시설이나 공공 시설 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 살았던 최하층민들도 탄압과 박해를 피해 살아 남기 위해 제국의 난민 생활을 했던 떠돌이 이민자들 모두 단 하나의 인생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미래의 희망을 품고 굶지 않고 끼니를 채울 수 있는 일상의  행복이여서 불확실한 현실에서 내일을 위해 살아갔다.

타임머신을 타고 20세기 세상을 둘러 보면 지금과는 모든 것이 다른 낯선 세상임에도,  그들의 사는 모습을 지켜본 뒤 입에서 절로 이런 말이 튀어나올 것이다. 

“똑같네, 똑같아. 지금과 전혀 변한 게 없구나.”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에서 독자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가?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가 독자들에게 던진 위의 질문은 유럽이 전쟁으로 어제의 세계가 무너지기 직전이나 직후 그리고 21세기 현 시대까지 관통하는 세기의 질문이다.

 사람이 살아 가려면 최소한 것들 인간 답게 살 수 있는 환경과 이를 뒷받침 해줄 탄탄한 법과 사회 제도와 질서가 필요 하다. 하지만 살아 가는 동안 여전히 뜻하는데로 가질 수 없는데도 무리 할 정도로 소유 하고  더 소유 하기 위해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의 굴레에 갇혀 버린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1900년 심리학으로 20세기로 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나서 세계 곳곳에서 한 목소리로 외친 것은  변화였다.

변화는 우리의 주의와 호기심을 끌어당긴다. 새롭고 놀랍고 흥미롭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사상으로 인민의 삶과 정신을 지배 하고자 했던 레닌과 그의 동지들인 트로이츠키, 스탈린 모두 세상을 전복 시켜서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는데 앞장 섰다.

레닌이 창당한 당에 가입하고 그가 인민을 향해 외친 선언문에 깊은 감동을 받아 기존의 사회 질서를 전복 시키는데 동조 하고 협력했던 세대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불러 일으킬 파장이 전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알지 못했다.

그동안  역사의 흐름을 바꾼 중대한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접촉이나 별생각 없이 무심코 내린 결정 때문에 일어났다.

그 결정은 때로는 경이로운 결과를 낳기도 하고, 끔직한 비극을 불러오기도 했다. 


2024년 2월 1일 부터 연재 하고 있는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의 역사적 배경은 60여 년 동안 제국의 황제로 군림한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통치 하던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다.

-굿바이, 부다페스트

https://tobe.aladin.co.kr/s/9373

역사적 사실과 실존 인물 그리고 내가 창작한 허구의 인물이 뒤섞여 있다.

공통의 언어나 종교, 역사가 없었던 합스부르크 제국은 하나의  국가라기 보다 필요한 곳에 적정하게  설치된 미니어쳐 같은 거대한 허상의 국가로 황제의 명을 받아 움직이며 똑같은 멜로디를 들려주는 오르골 같은 국가 였다.

19세기 말 부터 시작된 민족주의의 열풍이 20세기에 들어서서 계급의 차별과 부의 불균형으로 인해 붕괴 직전의 위기에 처한다.

제국의 제 1공무원 자리를 60여년의 세월이 넘도록 지키고 있던 황제 요제프 1세는 자신의 임무는 헌신적으로 지치지 않게 성실하게 수행 하는 것이라 믿었다.

반면에  제 2 공무원 자리에 있었던 제국의 후계자인 황태자 페르디난트는 낡고 오래된 제국의 관행과 관습을 전부 뜯어 고치고 싶었다.

이중 제국의 지위에 있었던 헝가리는 이 두 사람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최악의 규율 준수자이자 강요자로 이루말 할 수 없이 멍청했다.'

몇 세기 동안 군림했던 제국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다.

 변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 할 때 국가의 최고 권력자들이 어떤 통치력으로 국가를 이끌고 가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한 순간에 바뀌어 버린다.

20세기에 불어 닥친 변혁의 폭풍은 오랜 시간 유지되어 왔던 제국의 표층을 서서히 침식 시키고 파괴했다.

역사의 한 순간도 단 하나의 사건 때문에 발발 한 것이 아니라 앞서 발생했던 여러 복합적인 문제들이 점과 점으로 이어져서 여기 저기 실타래처럼 엉켜진 것이 특정한 시기에 분출 되고 발발하게 되는 것이다.

20세기 아름다운 시절을 회고했던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런 글을 남겼다.








1910년 부터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거의 똑같은 정도로 느낄 수 있었던 갑작스러운 융성이 시작 되었다. 도시는 해를 거듭할수록 한층 더 아름다워졌고 인구도 증가해 갔다. 1914년의 부다페스트는 1900년에 살고 있었던 그곳이 아니였다. 일국의 수도에서 세계적인 도시로 변모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런던, 파리, 베를린, 암스테르담에 부호들이 부다페스트로 몰려와 저마다 화려한 저택과 호텔에 둥지를 틀었다. 거리는 화려한 가게들로 즐비했고 웅장한 건물마다 멋지게 차려 입은 이들이 드나들었고 매일  도서관, 극장, 박물관에서 지식을 쌓고 여가를 즐겼다. 이전에는 소수의 상류층만 누렸던 특권이 일반인들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노동 시간이 단축되어 여행도 즐기며 한 채의 집과 그림, 자동차를 살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든 일에서 부의 증대와 파급을 느꼈고 점점 더 새로움을 추구 하며 우리 앞에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 확신했다. 젊은 세대, 늙은 세대들 모두 흔히 그랬던 것처럼 '옛날에는 참 좋았지.'라며 어제의 시간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슈테판 츠바이크

 1914년 세대는 지금의 세대보다 더 행복했을까?

평생 동안 진리를 추구 하면서도 동시에 모든 진리의 한계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20세기 천재 중 한 명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100퍼센트 알콜이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100퍼센트 진리도 없고 100퍼센트 행복도 없다'는 말을 남겼다.

1차 대전의 화마가 발발하기 직전  1914년 세상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오늘 보다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고 지상의 새로움이 건설되고 창조 되었던 시대였다.

역사를 보면 세상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곳인지 깨닫게 된다.

 20세기 최악의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의 그 시절의 세상을 지난 2년 동안  <굿바이, 부다페스트>에 100회에 걸쳐 펼쳐 보였다. 

글을 쓸 때 마다 매번 한계에 부딪친다. 특히 누군가에게 읽혀지는 글을 쓴다는 건 단순히[ 나는 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갔다. 지하철 역까지 걸어갔다]. 라는 문장 만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 되지 않는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하루를 마감하는 날에 다음날에 해야 할 목록의 우선 순위를 세워 놓을 때면  제 1순위에 <창작>을 적었다.

그렇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창작>  안에는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여행을 떠나기 위해 준비를 하든 어떤 식으로든  내 스스로 무언가 만들고 창조 하는 작업을 의미 했다. 

따라서 내 삶의 버킷 리스트의 1위 자리에 항상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창작>이다.

투비에 소설을 쓰고 연재 하는 동안 하루의 시간을 배분하며 일의 우선 순위에 맞춘 생활 습관을 바꾸게 되었다. 

가장 먼저 독서의 양과 범위를 이전 보다 더 폭 넓혀졌다.

창작 소설을 집필하기 이전과 이후로 독서의 양과 종류를 비교 해 보면 나의 독서량은 살아온 생애 주기 중에 현재 최정점을 찍고 있다.

글을 쓰면서 책을 읽게 되자,  단순히 읽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쓰기 위한 독서가 되었다.

러시아의 망명객으로 미국에서 영어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블라디미르 나보코브가 매번 새 작품의 원고를 담당 편집자에게 넘겨 줄 때 마다 들었던 소리는 바로 ' 한 인간이 평생 동안 쓸 수 있는 원고 분량이 정해져 있다.'라는 말이였다.  

특정 직업이나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하루에 우리가 내뱉고 사용하는 언어의 양은 정해져 있다. 문자와 톡 메시지가 아닌 한 페이지 이상을 오로지 문장으로 가득 채운다는 건 그리 쉽지 않다.

 200여페이지의 단행본 분량을 채우는 글자 수는 대략 150,000자 정도로 이 숫자를 쌀로 환산 하면 27가마니 정도 분량이다.

“소설을 쓰는 데는 세 가지 원칙이 있으나 불행하게도 그 원칙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윌리엄 서머싯 몸의 말처럼, 글쓰기는 운동과 악기를 배우고 일련의 전문 기술을 배우는 것과 달리  정해진 원칙도 기술을 갈고 닦을 교재도 없다.

 2024년 2월 1일 부터 쓰기 시작한 창작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가 100회 완결을 목표로 지난  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에 한 회 씩 투비컨티뉴드에 올려서 2025년 12월 25일 마침내 100회 완결에 다다랐다.

지난 2년 동안  창작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를 쓰기 위해 내 안의 지식과 창조적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 읽은 책은 영하의 추위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책 탑을 쌓아 올릴 수 있다.

톨스토이가 던진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던져 보면 

-내 안에 무엇이 있는가?

-나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2025년의 시간도 딱 5일 남겨 두고 있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무언가 이룩하고 창조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의 끝은 단 하나다. 

결국엔 우리 모두 죽는다. 사랑하는 이들, 미워 하는 이들 모두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것이고 이 땅의 행성도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열평형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우주 속 먼지가루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모든 것이 사라져서 텅 빈 공 空의 상태가 될 것이다. 그토록 치열하게 요란을 떨 정도로 열심히 오만하게 살았던 생명체들 모두 무無로 존재 하지 않은 상태, 모두가 0의 지점에서 끝이 난다. 이런 진실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듯, 끝이 죽음이 아니라는 듯 살아간다. 바쁘게 하루 하루 일분 일초를 낭비하지 않고 살아도 텅 빈 공 空의 상태는 채워지지도 않고 영원히 사라지지도 않는다. 

이 텅 빈 공 空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순간 허무와 우울 그리고 모든 것이 헛되어 보이고 커다란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이런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이들이 살아 온 모습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얻기도 하고 무언가에 몰두하고 열의를 쏟아 부으며 견디고 극복한다.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될까?

 언제 비로소 이 세상에 어른 같은 삶을 살아 갈 수 있을까?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어떤 권력이나 위세를 행세 하지 못하는 미약한 어른으로 하루 하루 성실하게 일해서 꼬박 꼬박 세금이 털려나가는 유리 지갑을 갖고 있다. 

만일 권력을 갖고 있다면 한번 쯤 위세나 가식을 떨며 모순투성이의 나라는 결점을 세상에 숨기게 될지 모른다.

 나에게 세상을 향한 권력이 없기 때문에 나는 날마다 새로운 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내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읽고 쓰고 있다.

어쩌면 책을 읽는 시간은 가장 헛된 시간일지 모르고 삶에 그리 큰 교훈이나 깊은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한 생을 단 한 단어로 줄이면 [이야기] 즉,서로 다른 이들의 삶의 [이야기]다. 

살아 온 세월은 이야기의 연속이고 인생 자체가 이야기 보따리다. 

따라서 책을 읽는 동안 허구의 인물들의 시선으로 두 번의 삶을 살게 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2025년 한 해 동안 모두가 어렵고 힘겨운 시기를 무사히 견뎌 내고 12월 25일 행복한 성탄절을 맞이하는 오늘 무명의 작가가 2년 동안 써온 기나긴 대 장편 <굿바이, 부다페스트>이  오늘 마지막 100회가 시작된다.

해피 메리 크리스마스 ‪꙳⋆🎅🏻 ࣪⊹ 𝙼𝚎𝚛𝚛𝚢 𝚇𝚖𝚊𝚜  ·🌲


-굿바이, 부다페스트 100회. 누가 세상을 지배하는가.(완결)

https://tobe.aladin.co.kr/n/54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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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성큼 찾아 오니 밖을 나서기 전 챙길 것들이 많다.

머플러, 장갑, 모자, 마스크 그리고 언제나 몸과 혼연 일체여야 하는 스마트 폰...

옷이 두툼해지는 겨울에는 가능한 가방 속에 많은 물건을 넣고 다니지 않으려고 하지만 다른 것은 빼놓더라도 종이책은 반드시 가방 속에 넣고 다니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 마자 커피를 내리는 시간 동안 오늘 하루 나와 함께 할 책을 고르는 것도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다.

무작위로 눈에 들어 오는 책을 고를 때도 있고 전문 지식분야를 쌓기 위한 책일 때도 있고 누군가의 추천을 받은 책일 때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책을 선택 할 때는 그동안 무심코 클릭한 것들이나 구입한 목록들의 정보를 수집한 알고리즘 추천을 가능한 의지 하지 않고 내 스스로 특정 주제를 정해 놓고 내가 구상하고 원하는 포트폴리오에 맞춰 책을 선택하고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종류와 여러 장르의 책을 읽을 수 구독 서비스 책읽기도 1년 동안 해보았다.

전자책은 종이책을 읽는 속도에 비해 압도적으로 빨리 읽어도 제대로 완독 하는 책도 없었고 눈으로 스킵을 하다 보니 머릿 속에 남는 구절도 없었다.

특히 전자책을 읽다가 다른 앱을 열고 딴짓을 하기 일 수였고 이 책을 클릭하다가 또 저 책을 클릭하며 앞 장 몇 구절만 읽다 만 책들이 수두룩하다.

여전히 이북 기기와 스마트 폰에 저장된 책은 천 여권이 넘지만 지구가 종말 하기 전까지도 저장된 책을 전부 읽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다양하게 볼 거리가 넘쳐 나는 세상에 300페이지가 넘는 소설 한 권에 집중하기도 힘들다.

몇 주전 영화 <국보>를 보고 나서 일본 가부키 극에 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유툽이 없던 시절이라면 분명 국보 원작을 구입해서 읽었을 것이고 가부키에 관한 책이 있는지 찾아 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두 권을 완독 한 다음엔 일본 근 현대사 책을 찾아 그 시대 역사에 대해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감명 깊게 보았던 마지막 장면을 OST와 함께 보기 위해 유툽에 접속하니, 가부키에 관한 영상이 주르륵 떴다.

추천 알고리즘을 따라가 보니 가부키 역사부터 분장, 유명 가문과 공연에 대한 여러 정보를 10분 내외 영상으로 모두 섭렵할 수 있었다.

이런 시대에 책을 왜 읽어? 유툽이나 넷플릭스를 보면 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자 중독인 나는 요시다 슈이치의 국보를 종이책으로 구입했다.










[막이 단숨에 걷히자, 불길한 태고 소리와는 정반대로 무대 위에는 큰 눈 속에서 어째서인지 벚꽃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중앙에 선 큰 벚나무, 천장에선 만개한 벚꽃 가지가 가득 매달려 있습니다. 그런 호화로운 무대를 보며 객석에서 탄식이 새어 나오고, 태고 소리가 더욱 높이 울려 퍼진 바로 그때, 거목 줄기에 걸려 있던 까만 천이 스르르 풀리면서 나무 안에서 유녀遊女 스미조메墨染가 나타났습니다. 강한 조명 아래 드러난 것은, 연회색 옷감에 늘어진 벚꽃 가지 장식을 수놓은 복장의 유녀 스미조메. 츠부시시마다(つぶし島田: 에도시대 후기에 유행한 머리 모양-옮긴이) 스타일의 머리를 수많은 기생용 비녀로 꾸민 모습입니다. 예상치 못한 변주에 객석에선 파도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고, 2대손 하나이 한지로도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호오. 세키노토関の扉인가?” 이것이 바로 가부키 무용극의 명작 <쌓이는 사랑 눈 세키노토>의 명장면으로, 무대 아래쪽에는 이야기꾼 역할을 맡은 게이샤들과 샤미센이 쭉 늘어서고, 큰 벚나무 옆에는 관문지기인 세키베이関兵衛가 가만히 대기하고 있습니다.]

-요시다 슈이치의 <국보> 중에서






인공지능(AI)이 일상과 일터 학습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사용 되면서 이전과 상당히 달라진 세상이 삶의 깊숙한 영역까지 파고 들었다.

강의 음성만 녹음하면 AI가 요약본과 정리 노트, 예상 문제까지 만들어줄 정도로 기술이 발전해서 학생들은 더 이상 수업을 듣고 손으로 필기 하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수업에 출석하지 않고 녹음본을 사서 AI를 활용해 학습하거나 비대면 수업 강의에서는 사전이나 법전 종이책을 펼쳐 놓지 않고 AI를 학습 도구로 적극 사용하고 있다.

리포트는 기본이고 복잡한 코딩, 정보 분석까지 AI가 순식간에 해내다 보니 학생들은 AI에 사실상 모든 것을 위임하고 있다.

생성형 AI가 등장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이젠 어디서든 AI를 사용하지 않으면 구 시대 사람 취급을 당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AI 몰고오는 광풍은 허리케인 급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AI를 ‘어떻게 쓰나’를 고민했다면 이젠 ‘AI 없인 어디에도 못 가고 일도 공부 못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TV가 아닌 AI ‘바보상자’가 덮친 세상에서 선택한 책은 최신 AI트렌드나 사용 방법에 관한 책이 아닌 살만 류슈디의 <진실의 언어>다.

부커상 3관왕 수상에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살만 루슈디는 '악마의 시’ 출간 이후 이슬람교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살해 위협에 시달려왔다.

목숨이 위태로운 시기에 은둔 하지 않고 왕성하게 집필하며 전 세계인을 향해 펜의 힘을 보여 줬던 살만 류수디는 2022년 여름 미국 뉴욕대가 주최하는 문학 강연 연사로 초청 받아 무대에 오르는 순간 괴한이 휘두르는 잔인한 칼 끝에 한 쪽 팔과 한 쪽 눈을 잃어 버렸다.

구사 일생으로 살아남은 살만 루슈디는 현재 왼쪽 팔의 신경이 완전히 끊어졌고 한 쪽 눈 시력도 완전히 상실했다.

살만 루슈디는 자신을 향한 칼에 펜으로 맞서며 언어로 세상을 베고 찌르면서 종교의 관습과 굴레로 겹겹이 쌓여 있는 불평등을 향해 진정한 자유의 힘이 무엇인지 언어의 힘으로 증명해 보였다.

회복 기간 동안 써 내려간 <나이프>에서 루슈디는 이런 말을 한다.


합리주의자의 신앙에서 러셀은 이렇게 말해. '사람은 자신의 열정에 어울리는 신념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 잔인한 사람은 잔인한 신을 믿고, 자신의 잔인함에 핑계를 대기 위해 믿음을 이용한다. 오직 친절한 사람만이 친절한 신을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 경우에든 친절하게 행동한다.

-살만 루슈디의 <칼> 중에서


죽음의 칼 끝이 자신의 몸을 관통 해서 생과 사의 경계에서 살아 돌아 온 살만 루슈디는 <진실의 언어>라는 책에서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가장 유감스러운 기질은 무엇입니까?”


일터나 사적인 장소에서 MBTI로 상대가 내 기질을 궁금해 하고 물을 때면 어느 순간엔 I이였다가 E일 때도 있고 F일 때도 있다는 대답에 상대방은 카멜레온 같은 사람이라고 평가를 내린다.

혈액형이 같다고 기질도 똑같지 않듯이 MBTI로 상대의 기질을 정확하게 나눌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와 다른 MBTI로 편을 가르며 섣불리 장 단점에 대해 낙인을 찍어 버린다.

1인 SNS와 유툽 시대는 어느 시대보다 만나 본 적 없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대는 쓰잘데기 없는 말이 넘쳐 나는 시대다.

특히 챗 GPT의 등장으로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믿고 말하게 되어서 스스로 생각하고 유추하며 의문점을 찾아 해결하고 처리 하는데 쓰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

말만 하면 척척 원하는 걸 찾고 해결 하는 시대에 진실된 말과 언어, 문장들이 챗 GPT의 힘을 빌려 하는 말들과 뒤섞여져서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인간은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아 챙겨 먹듯이 타인과 다른 세상을 향한 왕성한 호기심에 무엇에 대한 것이든 찾아 읽으며 학습해 나갔다.

인간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설령 상상력으로 빚어낸 허구의 이야기 일지라도 그 이야기 속에서 사랑과 증오, 용기와 비겁,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는 ‘진실’을 찾아 다녔다.

종이책, 전자책 그리고 유툽 영상까지 현 시대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 상당수는 내가 아닌 누군가가 보고 경험하고 맛보고 시험해보고 보여주는 것들 뿐이다.

전문가나 특정 기술을 연마 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일반인들의 관심을 단번에 끌어내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반면 넷플릭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비슷비슷한 포맷의 예능물과 드라마들이 고스란히 소설의 장르로 배어 들어서 뛰어난 상상력 보다 주변에서 흔히 찾아 보고 마주 할 뻔한 일과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신간들 중에서 읽는 맛을 느끼게 하는 책이 드물어졌다

무릇 이야기란 신비롭고 흥미롭고 초현실적이며 때로는 상스럽기도 해야 영상 시대에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

그렇게 살아남은 이야기는 비록 상상력으로 빚어졌을지라도 걸핏하면 서로 다투며 증오하고 미워 하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순 덩어리 인간이 유일하게 ‘진실’에 도달 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준다.

살만 루슈디는 작가들이 제대로 구사해낸 '거짓된 진실'이야말로 현재와 같이 진실이 모든 곳에서 공격 받는 시대에 진정으로 이야기의 힘을 발휘 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된다고 말한다.

현 시대는 자기 이익과 결부된 거짓말이 감쪽같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여론을 선동해서 좀 더 믿을 만한 정보가 오히려 '가짜 뉴스'라고 퍼뜨린다.

언제나 논쟁의 여지가 있었던 진실이 현 시대만큼 논쟁적이였던 적은 없었다.

AI 시대에 인간은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 더 이상 누군가의 말에 경청하지도 않고 복종하지도 않고 매일 숨 쉬는 공기만큼 믿기 힘들 거짓 정보가 곳곳에 떠다니고 있다.

진실이 결여된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AI가 거짓을 찾아 내 줄 수 있을까?

무엇이든 상상해서 말과 글로 지어낼 수 있는 인간의 자아는 동시에 많은 자아가 될 수 있는 존재다, 허구의 세상을 보여주는 문학은 이런 인간의 다면적인 자아와 모순된 기질을 다른 시각으로 보여준다.

해고 없는 세상이 오고 있다.

왜냐하면 기업이 더 이상 사람을 고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던 일 만큼을 해내는 것을 넘어 10배, 100배의 생산성을 가진 AI의 경쟁력이 막강해져서 가까운 미래에 기업은 사람이나 특정 부서가 수행하던 기능과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AI를 구독할 것이다.

엄청난 생산성을 가진 AI의 구독료가 월 최저 급여의 절반도 안 된다면 기업의 경영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

직원 소수와 다수의 AI 에이전트들로 재편될 미래 사회에 기업은 더 이상 사람을 고용하지 않을 것이고 인간은 AI에게 일자리를 물어보고 AI가 던져준 일을 처리하는데 급급하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노예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AI로 인해 구조 조정 당한 인간에게 도래할 미래는 중세시대 만큼 암울하다.

AI의 지속적인 발전과 진화 가능성에 거품론이 제기되고 있는 이 시기에 미래에 닥쳐 오게 될 해고 없는 시대에 대비 할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에게 동등하게 할당 된 24시간을 누군가가 먹고 놀고 마시고 체험하고 즐기는 영상을 보는데 흘려 버리지 말아야 한다.

태초 이래로 이 세상은 여러 거짓과 진실이 이리 저리 뒤섞이면서 인간의 삶을 변화 시켜 왔지만 AI가 인간의 영역에 파고 들면서 중요한 정보와 완전한 쓰레기가 언뜻 보기에 동일한 수준의 권위를 가지고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

AI 사용이 급증할 수록 거짓과 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평행 우주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해고 없는 시대에도 살아 남을 수 있을까?

문자와 활자로 눈부신 발전을 이끌었던 인간은 제 3자의 시선으로 쓰여진 책을 통해 내면에 잠재된 본능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서 자아를 찾고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읽어내며 진실과 거짓을 구별해 왔다.

매일 쏟아지는 허풍쟁이나 비 전문가들이 쏟아내는 불확실한 정보와 거짓들의 홍수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챗 GPT에 의지 하지 말고 스스로 찾아 보고 고민하고 사유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더더욱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

오늘 내가 읽는 이야기는 결국 나의 일부가 되어 가치관을 형성하고 이 세상을 이해 할 수 있는 기틀이 되어 줄 것이다.

민주주의는 공손하지 않다. 광장에서 소리 지르기 시합인 경우가 많다. 논쟁에서 이길 기회를 잡고 싶다면, 그 논쟁에 참여해야 한다. … 작가의 경우에는, 증거에 근거한 주장에 대한 우리 독자들의 믿음을 재건하고, 소설이 항상 잘 해오던 일,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사실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해를 구축하는 일을 해야 한다.

-살만 루슈디의 '진실의 언어' 중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살아 남은 작가 살만 루슈디가 펜의 힘으로 쓴 <진실의 언어>는 칼의 힘보다 강하고 거짓을 그럴듯한 진실처럼 말하는 챗GPT보다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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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30 0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자신의 열정에 어울리는 신념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귀절을 필사합니다.

scott 2025-11-30 22:3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마힐 2025-11-30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AI버블론이 나오더라구요. AI의 발전 속도는 놀라웠지만 어느 순간 정체되고 있다고 하네요. 막대한 전력량과 뜨거운 열을 냉각시키기 위한 냉각수, 그리고 아주 큰 데이터 센터 규모를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들. 하지만 AI는 이미 정치, 경제, 과학, 교육 분야로 확장하여 더 판을 키우고 있다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는 인간의 기대심리가 너무나 깊게 깔려 있다고 봐요. 막대한 자금과 앞으로 투자할 시간과 기대 비용이 기술의 발전보다 더 빠르고 크기 때문에 버블론이 나온 것 같아요. 이제는 웬만한 AI기술로는 사람들이 놀라지 않아요. 즉 인간의 기대심리가 AI발전을 넘어선 거죠. 결국 AI보다 인간의 마음이 어떤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의미 속에서 scott님의 리뷰 속 말씀이 더 와 닿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인간만이 희망이지 않을까요?

2025-11-30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1-30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1-30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5-12-05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서재 달인 발표했어요 scott 님 축하합니다 2025년에도 서재 달인이 되셨네요 늘 그렇지만 한해 빨리도 가는군요 다른 해보다 더 빨리 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뭔가를 해도 빨리 가지만, 별로 안 해도 잘 가요 남은 십이월은 조금 천천히 가면 좋겠네요 며칠 꽤 춥네요 scott 님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밤 시간 보내세요


희선

2025-12-25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햇살과함께 2025-12-25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영화보고 왔는데 너무 감동이네요! 책도 읽어보고 싶어요! Scott님 남은 크리스마스 잘 보내시고 연말 잘 마무리하시고요~!

scott 2025-12-25 21:55   좋아요 1 | URL
국보
정말 잘 만든 예술 영화죠!
반드시 극장 큰 화면에서만 봐야 느낄 수 있는 감동!
책은 영화와 다른 깊이가 있습니다(영화는 카메라 연출이 일품!)
기온이 급강 하고 있습니다
햇살님 따스한 연말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네가 누구든
올리비아 개트우드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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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실리콘 벨리의 테크 산업 대 호황으로 하루 아침에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 들인 갑부들이  주변 토지를 대거 사들이면서 일대 부동산 가격이 폭등 하자 여름 한 철 관광 기간 동안에만 외지인들로 북적였던 팟벨리 지역의 부동산 가격도 치솟기 시작한다.

한적한 휴양지 바닷가에 가장 전망 좋은 지역에 살고 있던 토박이들은 몇 십배로 폭등한 가격을 받고 살던 집을 처분한다.

부자들이 입지가 가장 좋은 자리에 새로운 건축물을 올리는 사이에 지역 거주민이자 세입자들은 몇 십 배로 뛴 월세를 내기 힘들어 도시 중심부에서 벗어난 곳으로 이주 하거나 살던 곳에서 쫓겨날 지경에 이른다.

실리콘 벨리 산업이 대 호황이기 전  팟벨리의 주민들은 여름 한 철 외지인들을 상대로 공유 숙박이나 음식점 장사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문단속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서로를 믿었던 이웃들이 사라지고 난 후 팟벨리에서 유일하게 팔리지 않은 낡고 허름한 집이 있다.

엄마의 친구 베델와 함께 사는 미티는  실리콘 벨리 산업이 대 호황이기 전 부터 산타크루즈 해변 마을 팟벨리에 살았던  미티는 이웃들이 모두 떠나고 난 후 마지막 남은 거주민이라는 묘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부터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인근 부자 동네를 돌아 다니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화려한 장식물을 구경했던 아이였던 미티는  매일 밤마다   어느 집에 누가 이사 오게 될지 내심 궁금해 하며 새롭게 변해 가는 마을 풍경을 관찰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타코 식당에 설거지 하는 일을 할 때를 제외 하고는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 살고 있는 미티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생계 때문에 어머니 친구 베델에 집에 맡겨지고 나서  또래들처럼 정상적으로 학교 생활을 하지 못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온라인으로 교육 과정을 마친 미티에게 졸업식 가운과 베레모를 사주고 노트북을 사준 것도 엄마 친구 베델이였다.

관광지로 유명한 캐피톨라 부두의 타코 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하는 미티는 손님들에 받은 팁 액수에 따라 삶의 희비가 엇갈리는 나날을 보내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

갖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모든 것들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만 보았던 미티는 타인의 삶을 관찰 하는 묘한 취미를 갖는 어른으로 성장 했다.

그렇게 백화점 쇼윈도에 화려하게 장식된 상품을 구경하듯  지나가는 행인척 하며 새로운 이웃들의 사는 모습을조용히 관찰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던 미티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웃이 나타난다.

가녀린 목선과 희미하게 반짝이는 검은색 눈동자를 가진 매혹적인 외모의  레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미티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에 그녀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부러워 하기 시작한다.

커튼을 달지 않은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외부로 보여지는 레나에게 실리콘 벨리에 테크 기업을 소유한 부유한 남자 친구가 있다.

미티는 무엇이든 최고만 누리며 최고로 행복한 삶을 누릴 것만 같았던 레나가 매 순간 남자친구 서배스천에게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관찰을 통해 알게 된다.

단 한번도 레나가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미티는  우연히 화단에 나와서 화분의 흙을 담고 있는 레나가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미티는 레나가 남자 친구에게 신체적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용기내어 그녀에게  첫 대화를 시도 한다.

낯선 이웃의 방문에 크게 당황하지 않은 레나는 미티에게  마치 프로그래밍 된 로봇처럼 남자 친구 이력을 줄줄 읊어 대는 기이한 모습을 보인다.

서로 안면을 트고 난지 몇 일 후 레나는 미티와 베델이 살고 있는 허름한 집을 찾아 온다.

레나는  미티의 낡은 집에 페인트 칠하는 걸 도와주면서  남자 친구가 어떤 사업으로 실리콘벨리에서 거부가 되었는지 자신은 어디 출신에 어떤 가정 환경에서 자랐는지 이야기를 한다.

비슷한 또래의 친구가 된 미티는 레나에게 친밀감을 느끼면서 내심 세련되고 부유한 그녀의 삶을 부러워 한다.

레나는 자신의 모든 걸 통제 하고 감시 하는 남자 친구 서배스천에게 질식 당하기 일보 직전에  미티를 따라 해변 놀이 공원에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부터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집은 조용하다. 서배스천은 두세 시간은 더 있어야 돌아올 것이다. 레나는 거실 가운데에 서서 고요 속으로 침잠한다. 바깥 세상에서 하루를 보낸 뒤 현실로 돌아오니 낯선 느낌이 든다. 집은 전보다 더 내 집 같지 않다. 차갑고 날카로운 대리석 조리대, 윤기로 반들 반들한 식탁, 시체처럼 경직된 고리 버들의자.

-올리비아 개트우드의 <네가 누구든> 중에서 

남자친구에게 일상의 모든 걸 감시 받고 조정 당하는 삶을 살고 있는 레나는 거울을 볼 때만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 할 정도로 온전히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 보던 레나는 신체 부위 중에서 오작동 되는 곳이 없는지 직접 점검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베스천에게 통제 당하고 부터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지 못하게 된 레나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몇 주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지막으로 서핑 할 때의 일 뿐이다.

서핑 할 때 따개비에 물렸던 상처에 피딱지가 생겼던 흔적을 발견한 레나는 서랍에서 핀셋을 꺼내 다리 꽂아 버린다.

다리에 상처가 생긴 것 조차 기억이 희미 해 질 무렵 피가 배어 있는 침대 시트를 발견한다.

레나의  삶을  집요하게 관찰 하고 있던 미티는  겉으로는 친밀하고 사려 깊은 행동을 하고 있는  시배스천이  레나를 학대 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때마침 어느 테크 기업 엔지니어가 의식이 있는 AI 로봇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신입 사원들에게 살해 당하는 사건이 발생 한다.

이런 불길한 소문이 감도는 가운데  시배스천은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잘해 준 이웃인 베텔과 미티를 저녁 식사에 초대 한다.

 미티는 시배스천이 베텔과 이야기 하는 동안 슬쩍 화장실을 간다며 자리를 뜨고   집안에 수상한 흔적을 찾아 곳곳은 은밀한 시선으로 둘러 본다.

미티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시배스천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연인인 레나를 바라 보면서도 여성을 지칭 할 때면 항상 깔보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식사 후 레나가 바다로 수영 하러 가자는 말에 미티가 따라 나서고 바닷물 속에 뛰어든 레나 입에서 미티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는 순간 미티는  십 년 전 자신이 동경했던  발레리나 에스미의 사고가 단순 사고가 아니였다는 걸 알게 된다.

미티는 생각한다. 다음 세대 언젠가, 모든 윤리적 논란이 세월에 묻혀버릴 때면 서배스천의 업적을 칭송하는 프로필이 작성될지도 모른다고 그 프로필은 레나를 한때 지나간 프로젝트 수명이 미리 정해져 있었던 작품으로 언급할 것이다. 그때 쯤이면 레나를 만든 기술은 낡은 기술이 되겠지. 실험실에서 만든 로봇 유모의 모유를 먹고 자라,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일 만큼 연필을 잡아 본 적도 없으며 그냥 만들어 낼 수도 있는데 굳이 사람을 사랑해 할 이유를 상상 할 수 없을 그 시대의 어린이들은 그저 웃어 넘기고 말. 그런 낡은 기술.

-올리비아 개트우드의 <네가 누구든> 중에서 

소설 <네가 누구든>은 아버지와 행복했던 기억이나 유년기의 추억이 별로 없었던 미티와 남자들에 의해 철저하게 자아가 짓밟혀 버린 레나의 삶이 서로 맞물려 가면서 전개 되는 동안  고도로  발전 하고 있는 AI기술이 머니 게임에 승자 위치에 있는 남성들에 의해 여성의 삶이 어떻게 짓밟히고 파괴되고 있는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여성의 몸으로 AI시대에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릴러의 문법을 차용하여 섬세하게 탐구한 올리비아 개트우드의 <네가 누구든>의 첫 페이지를 펼치면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사랑하오, 살아 있는 여인이여.

시 구절 같은 문장을 쓴 사람은  조 단위에 달하는 이혼 위자료를 지불하고 이탈리아 베네치아 도시를 하루 동안 빌려서 두 번째 결혼을 한 세계 최고 거부 중 한 명인 제프 베이조스다.

독자들에게 제프 베이조스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든 이 소설에서  최첨단 산업을 주무르고 있는 테크 산업의 큰 손인 남자들이 여성의 신체를 교묘하게 착취하며 악랄하게 이용하고 있는 모습을 스릴러 기법으로 내밀 하게 묘사 했다.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관음증이 사람의 눈이 아닌 기계가 대신 할 때 삶의 터전이 어떻게 달라지고 성별이 다른 성이 어떤 차별과 학대를 당하게 되는지 뛰어난 구성과 감각적인 문체로 펼쳐 보인 올리비아 개트우드의 <네가 누구든>을 다 읽고 나면 우리의 몸은 항상 누군가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된다.

AI에 의해 가장 많은 복제가 되어 딥페이크 사기와 범죄에 가장 많이 이용 당하고 있는 여성은  세계적인 컨트리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다.

전 세계에 걸쳐 거대한 팬덤을 갖고 있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가짜 영상과 사진들은 검은 손들에 의해  성적 착취물이 제작 되고  있고 그 사진을 누르는 순간 개인 정보가 탈탈 털리고 있다.

인간의 삶을 빠르고 편리하게 만들고 있는 AI 기술에 의해  여자 유명인들 뿐만 아니라 유명인, 인기인 같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들 모습 뿐만 아니라 가까운 지인들 내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 또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얼굴과 몸은  교묘하면서 악랄한 해커들의 먹잇감이 되어 버렸다.

의뢰인의 취향에 맞게  원하는 걸 말하면 무엇이든지 척척 해 주는 AI기술을 발전 시킨 주역들은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의 삶을 대량으로 수집하고 착취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 들이고 있다.

 최첨단 기술이 등장 하기 전 인간의 삶은 많은 모순을 갖고 있어도 그 나름대로 질서를 갖춰 나갈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네가 누구든 ...당신이 누구든. 인간의 삶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인공지능의 알고리즘 덫에 걸려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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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른 새벽에 근처 공원 빗자루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중년의 남자가 있다.

침대도 TV도 없는 좁은 다다미방에 이불을 개고 화분에 물을 준 이 남자의 이름은 히라야마

‘도쿄 토일렛(Tokyo Toilet)’이란 문구가 새겨진 작업복을 입고 매일 새벽마다 도쿄 시부야에 있는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는 히라야마는 청소 일이 끝나면 인근에 있는 대중 목욕탕에 들려서 깨끗하게 몸을 씻는다.

목욕을 마치고 나면 지하철을 타고 아사쿠사역에서 내려 단골 지하 선술집에서 하이볼 한잔을 마시며 조촐한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친 남자는 지하철을 타고 깔끔하게 정리된 집으로 돌아와 지난번 헌책방에서 구입한 문고본을 읽고 하루를 마감한다.

홀로 살고 있는 도쿄의 어느 중년 남성의 완벽한 하루를 보여주는 영화<퍼펙트 데이즈>에서 주인공 히라야마는 집과 직장을 오고 가며 카세트 테이프로 록 음악을 듣고 틈틈이 주변 공원을 산책하며 카메라로 나무를 찍으며 지극히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는 동안 평온한 일상을 깨는 일이 터지거나 어떤 불운한 운명에 휩싸이지도 않는다.

이렇게 하루 하루 완벽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동안 연락이 뜸했던 여동생의 딸 니코가 찾아와 몇 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이 이 남자의 얼굴에서 행복과 환희, 후회와 회한 그리고 슬픔의 그림자들이 간간히 드러난다.

도대체 이 남자는 왜 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단골 헌책방에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공포와 불안의 차이>라는 책을 구입하는 이 남자는 단골 술집 주인이 '히라야마씨는 참 지적이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멋쩍어 하는 이 남자는 동년배들처럼 삶에 찌들리거나 가족에 둘러 싸여 왁작 지껄하지 않은 현실의 근심 걱정을 떨쳐 버린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현인으로 보인다.

집을 나가버린 딸 니코를 데리러 온 남자의 여동생은 개인 운전사가 운전하는 멋진 자동차에서 세련된 모습으로 등장하며 오빠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손수 마련한 도구로 공중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있는 남자에게 젊은 동료는 이렇게 묻는다.

'뭘 그렇게 까지 하세요? 어차피 더러워 질 텐데.'

화면에서 보여지는 이 남자의 하루의 시간은 지극히 평범하고 지루해 보이지만 자세히 관찰 하다 보면 단 한 순간도 허비하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나 진솔하게 대하며 매사 성실한 자세로 살아가고 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처럼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하면서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예순 살의 혜숙은 매일 아침 출근이 시작 되기 전에 건물 곳곳을 청소하는 사람이다.

청소를 마치고 나면 혜숙은 친구가 사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친구는 혼자 되어 딸을 부양 해야 하는 혜숙을 자신의 집에 살게 했다. 친구의 배려에 고마웠던 혜숙은 친구 집 정원을 관리 해 주고 있다.

오피스텔에서 청소하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밥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유튜브를 보다 잠든다.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반복하며 살고 있는 혜숙에게 소설가인 딸 미래는 상에 떠도는 말들, 유행하는 것들, 드라마, 영화, 연애, MBTI, 새벽 배송 같은 이야기를 늘어 놓으며 엄마인 혜숙의 단조로운 인생에 속도를 내게 만들기도 하고 급브레이크를 밞게 만들기도 한다.

[“난 살면서 몇 번이나 울었나 무엇이 나란 사람을 울리나 오늘 하루가 왜 끝나질 않지 해가 길구나 시간이 다르게 흐르네. 그런 생각을 했다. 깜깜한 밤에 좁은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을 땐 앞으로는 나란히 누울 일이 없겠다 그런 생각을.”]

-이주란의 〈겨울 정원>중에서

매일 단조로운 삶을 살던 혜숙의 삶에 모임에서 만난 어떤 남자가 마음 속에 파고 들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얼어 붙은 마음에 씨가 뿌려지고 꽃이 피기 시작한다.

[그때 난 오인환씨를 알게 된 후의 내 시간이 조금 다르게 흐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엔 누가 보지도 않는데 누가 보는 것처럼 너무 조심하며 살았었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까 너무 빨리 내 본모습을 보인 것도 후회되지 않았다. 후회는 할 때도 있지만 될 때도 있는데 둘 중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한데 또 너무 단순한가.]

그동안 그냥 살아야 해서 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혜숙은 누군가를 사랑 하고 부터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 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예순의 나이에 사랑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였다.

엄마 혜숙의 사랑이 시들어 버려서 어느덧 저 멀리 떠나 버렸을 때 딸 미래는 오랫동안 짝사랑 했던 상대와 드디어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

사랑이 떠난 후에 혜숙은 친구의 집 정원을 가꾸는 동안 슬픔을 삭히며 잡초를 뽑고 흙을 다진다.

중년을 지나 노년의 시간으로 접어든 혜숙의 삶에 꽃을 피울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겨울 내내 얼어붙은 정원일지라도 봄이 되면 싹이 트고 줄기를 뻗어 무성한 잎사귀를 티워 꽃을 피우듯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텅 비어 있는 겨울 정원일지라도 피지 않은 꽃을 기다린다.

2025년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 ‘겨울 정원’에서 보여주는 일상은 그 어떤 수치와 모욕이 삶에 틈입해도 슬픔에 지지 않으려는 마음, 고통에 엄살 부리지 않겠다는 다짐 그리고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 살아지는 일상에 최선을 다해 사는 동안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많은 사랑과 슬픔이 마음의 정원 속에서 피고 지는지 보여준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히라야마가 잠들기 전에 읽은 책 중에서 고다 아야의 <나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쓰러진 나무 위로 자란 높이 30센티미터 정도 되는 아직 어리디어린 나무를 시험 삼아 살짝 흔들어보았다. 줄기는 손길을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지만, 뿌리는 의외로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다. 가느다란 뿌리는 쓰러져 죽은 나무의 안쪽을 파고들어 껍질과 속살 사이로 촘촘한 그물을 펼쳐놓았고, 다소 굵은 뿌리는 바깥쪽을 타고 내려가는 형태를 띠고 있어서 얼른 지면에 도달하고 싶은 듯 보이는 자세다. 오로지 살겠다는 일념으로 용맹함을 숨기지 않았다. 죽은 나무 위에도 조심스레 손을 올려본다. 차갑고 축축하다. 전날부터 내린 비 때문인지 흠뻑 젖어 있다. 하지만 나무를 직접 만진 것은 아니다. 나무의 온몸을 이끼가 빈틈없이 뒤덮고 있다. 자연이 입혀준 수의 (壽衣) 같다.]

-고다 아야의 <나무> 중에서


비 바람에 노목이 쓰러질 경우 바깥쪽 부터 썩어 들어가지만 가장 마지막 뿌리까지 썩으려면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10년 동안 노목의 썩는 동안 그 노목에게 영양분을 주는 나무들은 주변에서 40년에서 50년의 세월을 버텨낸 중년의 나무들이다. 노목의 썩은 기둥과 중년의 나무들이 만들어 준 그늘 아래서 어린 나무들이 함께 성장 하면서 거대한 산을 이룬다.

숲속에서 자생하는 나무의 시간은 인간 세상의 시간과는 많이 다르다.

오래된 나무는 그냥 죽어 있는 것이 아니고 새로 자란 나무도 그냥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마음의 정원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화려한 색과 향을 가진 꽃도 100일 이상을 버텨 내지 못하고 눈부신 의학 기술로 인간의 수명이 아무리 늘어 났다 해도 100년 가까이 살기 힘들다.

계절의 시간 속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시기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별다른 의미 없이 “그냥”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삶에도 수많은 슬픔과 웃음, 후회와 그리움이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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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01 0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차피 더러워질텐데‘란 말에서 많은 감정이 떠오릅니다. 등산을 싫어하던 한 직장후배는 팀 단체 산행에 항상 빠지면서 팀장인 나에게 ˝어차피 내려올 일이라 의미없어서‘라고 단정하길래 내가 이 후배에게 들려준 지적은 ‘어차피 죽을텐데 넌 왜 숨을 쉬냐?‘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