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전 장우성이 그린 정약용 초상화. 1974년 표준영정으로 지정

반듯하게 틀어올린 상투, 옥색의 두루마기, 꼭 다문 입, 이마의 선부터 곧게 뻗어 있는 코 큼지막한 눈 망울, 짙은 구렛나루의 턱수염에 사방관을 쓴  선비가 비스듬히 바라보고 있다.

이 선비는 어디를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깊은 상념에 잠겨 있는 얼굴로 무언의 생각에 잠겨 있어 보이기도 한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년 ~ 1836년)'이다.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줄줄이 따라오는 수식어들은 정조-수원-화성-실학사상-천주교 그리고 목민심서로 '다산(茶山) 정약용'은 조선을 대표하는 통합형 지식인  르네상스 맨이다.

70세를 남짓 살다 간 정약용이 남긴 저술은 모두 182 분량의 책으로 권수로 세어보면 503권에 달한다.

큰 뜻을 품은 자여,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큰 뜻을 품은 자여,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정약용 지음, 이근오 엮음

모티브 / 2025년 6월


1762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정약용은 네 살 때 천자문을 통달 해서 일곱 살 나이에 '산(山)'이라는 한(漢) 시를 지었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어요. 

먼 땅도 있고 가까운 땅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의 인생의 첫번째 산은 아버지 정재원(丁載遠)으로 영조 집권기에  특지로 벼슬길에 올라서서  연천현감, 화순현감, 예천군수, 호조좌랑, 한성서윤, 울산부사, 진주목사까지 사회적으로 승승장구 했고 가족을 훌륭한 인품과 자상한 성품으로  보살폈고   가난한 백성들의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해 주려고 노력했던 진짜 선비였다.

아들 정약용의 첫 번째 스승이였던 아버지 정재원은 천자문을  다 익힌 아들에게 경서와 사서를 가르쳤고 아들 정약용은 이를 반복 학습하며 성호 이익이 남긴 저서를 홀로 독파 해나갔다.

그는 18세에 성균관에서 시행하는 승보시에 선발되어 22세에 성균관에 들어가 증광 감시에서 초시에 합격하고 곧바로 회시에 생원으로 합격한다.(당대 조선 문과 전체에서 수석 합격함)

 마침내 평생의 큰 스승이자 조선 후기 최고의 군주 정조를 알현하게 된다.

삶을 바꾼 만남

삶을 바꾼 만남

정민 지음

문학동네 / 2012년 8월


새로운 조선을 만들고 싶었던 개혁 군주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노론 세력을 눌러 버릴 새로운 정치 집단이 필요 했다.

그는 세종 시절에 존재 했던 규장각을 재정비 해서 가문과 출신을 따지지 않고 젊고 영특 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20대 조선 청년들을 직접 선발하고(면접을 통과 해야 했음) 이들 중에 가장 먼저 정약용이 발탁된다.

그는 규장각으로 정식 입부 하기 전 성균관에서 여섯 해 에 걸쳐서 정조에게 명을 받아 수 많은 보고서와 연구서를 작성하고 정조는 다른 이들이 올린 보고서들을 제쳐 두고 가장 먼저 정약용의 보고서를  읽고 최고 평점을 주었다.

28세에 전시에서 수석으로 급제한 정약용은 종 7품(4급 사무관 직급) 벼슬자리에 올라 규장각의 초계 문신으로 선발 된다.


초계문신(抄啓文臣)은 조선 후기  규장각에서 특별교육과 연구과정을 밟던 문신(文臣)들을 칭하는 용어로 나이가 어린 관리 중 유능한 인재를 재교육하기 위해 정조가 실시한 제도다.

1781년 정조는 자신이  직접 주관하고 창시한 초계문신 선발 시험장에  나와 20대 청년 관리들의 시험 과정을 직접 살폈고 급제자를 정하는 친시(親試)를 실시하기도 했다.

첫 번째 초계 문신 시험에 참가한 정약용은 전체 참가 인원(약 180명) 중에 1등을 했고 같은 해 정조의 명을 받아 한강을 건너 갈  배다리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1795년 정조는 즉위 20년을 맞이하여 이 다리를 건너  화성으로 행차 했다.

정약용은 이 다리 건설을 시작한 지 3년의 세월이 흘러 먼 미래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1997년에 등록됨)에 등록 될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답고 견고한 수원성을 설계 하기 시작한다.


출처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약용은 수원성 설계를 시작함과 동시에 거중기를 발명해서 10년을 예상 했던 공사 기간을 8년이나 앞당겨서 2년 9개월 만에 완공해버렸다.

일찌감치 정약용의 영특함과 근면함을 눈여겨 보았던 정조는 그를 마주 할 때 마다 틈틈이 어려운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구하기 힘든 기술 서적이나 의학서적을 몰래 주며 배우는 걸 게을리 하지 않는 그의 천성을 깊이 아꼈다.



출처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조의 아낌 없는 지원과 근면한 천성 그리고 영특한 두뇌를 갖춘 정약용은 공사기관과 인건비를 아껴서 수원성을 완공 하기 까지의 모든 기록을 남긴 <화성성역의궤>를 통해  후대인들이 언제 어디에서 성을 구축하게 된다면 필히 긴요하게 참고 할 수 있게 당대 최고의 정부 공식 기록물을  집대성했다.

의학서까지 집필한 정약용은 종두를 직접 실험하고 관찰한 <마과회통>까지 21세기 AI기술로 완성할 수 있는 지식과 경영학습,정부 관료의 실무 정책,매뉴얼 경영까지 갖춘 18세기 인간 지능의 결합체 였다.

조선 후기 정조 시대때는 조선 최고의 우수한 인재들이 서울 도성안에 가득 모여 있었던 시절이였음에도 어떤 지식인과 맞붙어도 정약용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는 후학들에게 항상 이런 말을 하며 '배움'을 강조했다.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생에서 공부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살다 간 보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정약용이 살았던 시대의 평균 수명은 40세로 정조는 50세를 채우지 못하고 47세에 세상을 떠났다.

73세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오랜 귀양 살이로 몸 곳곳이 성할 곳이 없었던 정약용은 책을 너무 많이 읽고 초록과 필사, 집필을 병행하다가 복숭아 뼈에 구멍이 났고 팔목 관절 통증에 평생 시달렸고 두 눈의 시력이 급격하게 나빠서 돋보기 없이는 활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약용은 57세에 <목민심서>를 완성하고 70세에 들어섰을 때   18년 동안의 기나긴 유배 생활을 마치고 고향 마재 마을로 돌아와 후학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책 읽기는 짐승과 벌레의 부류에서 벗어나 저 광대한 우주를 지탱 할 수 있는 힘을 만든다. 이것이야 말로 사람의 본분이다.'

그가 고향 땅에서 마지막으로 완성한 산수화 한 점이 있다.


<원인필의도 元人筆意圖>


그림 한 가운데 텅 빈 정자가 있고 뒷편으로 높은 산이 굽이 굽이 이어져 있다.

정자를 에워싸고 있는 키 큰 나무들 앞으로 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선명한 선이 아닌 흐릿 흐릿 몽환적인 붓질로 완성 한 이 산수화 속 정자가 있는 곳은 정약용이 태어나고 자란 경기도 광주의 마재 마을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그 곳에 큰 강이 흘렀는데 이 강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서로 만나는 교찹 지역으로 구불 구불한 협곡을 넘어가면 곧바로 서울 한강으로 흘러갈 수 있었던 지역이였다.

마재(마현馬峴) 마을의 유래는 임진왜란 때 이곳까지 침입한 왜구들이 산의 정기를 누르기 위해 무쇠로 만든 말 모양의 부적 같은 것을 산 정상에 묻었고 마을 주민들은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이를 물리치기 위해 철마를 모시고 제사 지내면서 동네 이름을 ‘마현(馬峴)’, 마재 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정약용이 살던 시절에 마재 마을은 큰 강이 흘렀지만 협곡에 부딪쳐서  휘감아 돌아갔기에 홍수 피해가 적었고, 넓은 퇴적층이 형성되어 어획량이 풍부했고 씨만 뿌려도 농작물이 잘 자랐던 풍요로운 땅이였다.

1925년 일본은 이곳 마재 마을 앞에 흐르는 강에 댐을 설치해서 물의 흐름을 바꿔 버렸다.

 댐이 가동 되고 부터는  마재 마을에는 가뭄도 자주 찾아 왔고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 마다 홍수 재해가 발생해서  다산 정약용이 남겼던 책들도 물에 잠기는 안타까운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했었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국인 지식인들은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 단 두명으로 미국 대학에서 개설된 한국학과에 '퇴계학'과 '다산학' 분야로 나눠져 있다.

특히 정약용이 남긴 사상은 인류의 위대한 지식문화 유산으로 2012년 유네스코는 정약용을 세계 기념인물로 선정했고 이는 한국인 최초였다.

18세기 최고의 지식인이자 조선 땅에 수 많은 업적을 남긴 정약용은 기나긴 유배 생활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서  실제 모습의 초상화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안타까움에 후대인들이 50세 전후의 다산의 생전모습을 화폭에 담기 위해 사후 자손들의 증언을 토대로 밑 그림 삼고  다산 후손인 '나주 정씨 월헌공파 종회'를 찾아가서 총 300명이 넘는 후손들의 인상을 직접 관찰하며 이들 중에서 다산의 자손들의 증언과 가장 비슷한 모습의  직계후손 4명의 인상을 면밀히 살폈다.

우연 곡절 끝에 1974년  월전 장우성 화백이 다산 정약용의 영정 초상화를  완성했다.

정약용은 생애 마지막에 배워야 할 학문을 <주역>이라 생각해서  이 학문 만은 정조에게 반드시 배우겠다고 결심했지만 부친 상중에 정조 마저 승하해서 그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50세를 넘기고  홀로 주역 공부에 파고 들었다.

그가 남긴 주역 사전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천하의 일이란 한 사람이 다 할 수 없다. (天下之事 非一人所爲也)”

그가 50세에 남긴 <목민심서>에도 이와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정선 목민심서 (다산의 지혜 에디션)

정선 목민심서 (다산의 지혜 에디션)

정약용 지음, 다산연구회 편역

창비 / 2025년 1월


세상을 우습게 여기고 남을 깔보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재주와 능력을 뽐내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영예를 탐내고 이익을 좋아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남에게 베푼 것을 잊지 못하고 원한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생각이 같은 사람과는 한 패거리가 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은 공격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잡스런 책 보기를 좋아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함부로 남다른 견해만 내놓으려고 애쓰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니, 가지가지 온갖 병통들을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여기에 딱 맞는 처방이 하나 있으니 ‘고칠 개(改)’자가 그것이다. 

-정약용의 목민 심서 중에서

입만 열면 '개(改)’를 외치는 이들이 넘쳐 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누구부터 무엇을 어디 까지  '개(改)’해야 하고 고치고 수정 할 수 있을까?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로 유배를 떠나던 날 정약용은 가족에게 시 한 편을 남겼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다산의 지혜 에디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다산의 지혜 에디션)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창비 / 2025년 1월


“아버지 아시나요 모르시나요 

어머니 아시나요 모르시나요 

우리 가문 갑자기 뒤집어져서 

죽고 사는 문제가 이 지경이 되었네요.

자식 낳아 부모님 기뻐하시며  

잡아주고 끌어주고 애써서 길렀는데 

 부모 은혜 갚으리라 응당 말했지 

 이같이 꺾이리라 생각인들 했겠어요 

 이 세상 사람들께 바라는 바는  다시 자식 낳았다 기뻐 말기를.

-다산 정약용의 시  ‘하담의 이별’ 중에서






















4월 23일은 책의 날이다.

 온 세상 안과 밖이 뒤숭숭하고 세상 모든 것들이 미친듯이 올라가고 있고 전쟁 발발로 인한  유가 급등에 서민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인구 소멸의 시대 저 성장, 고물가 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을 위한 '개(改)’를 외치는 이들은 정작 자신들을 위한 '개(改)’를 실천하려고 부단히 노력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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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수많은 빌딩 사이에 구부정한 자세로 망치를 천천히 내리치는 동작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망치질 하는 조각상이 서 있습니다.

이 조각상은 평일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망치질을 하고 주말과 공휴일에는 망치질을 하지 않습니다.

1979년에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 ‘노동자’라는 제목으로 처음 발표된 망치질 하는 조각상은 10년 뒤 미국 워싱턴에 ‘서류가방을 든 '화이트 칼라 직장인으로 도심 한 가운데 설치 되었지만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박물관 옆으로 옮겨졌습니다.

서류 가방을 든  조각상과 달리 망치질 하는 조각상은 전 세계 11개국 도시에 세워질 정도로 인기가 많은데 그 중에서 서울 광화문 흥국 생명 앞에 세워진 조각상이 가장 큽니다.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 망치질 하는 사람을 조각한 조너선 보로프스키는 예술적 분위기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용접으로 추상 조각을 만들고 부터 철제 조각물을 다루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보로프스키가 대학을 마쳤던 1960년대 미국 사회는 대통령을 비롯해서 사회 저명 인사들과 유명인들의 잇따른 암살, 베트남 전쟁에 반대 하는 반전 시위, 인종 간의 갈등과 부의 불평등으로 사회 곳곳은 시한 폭탄이 매일 터졌던 혼돈의 시기 였습니다.

이런 혼돈의 시기와 달리 정작 예술계는 다양한 실험과 혁신이 가득한 자유로운 분위기가 조성 되어 어떤 재료로 작업을 해도 부유한 자산가들과 후원자들 덕분에 전시장을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창작 환경이 이전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지만 정작 브로프스키는 작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어떤 창작물도 생산 할 수 없게 된 그는 매일 두 세 시간씩 앉아서 종이에 숫자를 쓰기 시작 합니다.

첫 날 1에서 1000까지 숫자를 쓰기 시작한 브로프스키는 다음 날 1001부터 쓰기 시작하자 그의 부모는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한 아들이  창작은 하지 않고 매일 숫자만 세고 있다며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매일 두 세시간씩 숫자만 종이에 적어나갔던 브로프스키는 2년 동안 지속한 후에야 마침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때 부터 작품을  완성하게 되면 그 날 센 숫자와 작업을 연결 시켜서 서명 대신 그 날의 마지막 숫자를 적어 나갔습니다.

2년 동안 매일 두 세 시간씩 숫자를 적은 브로프스키는 5년 동안 조각품을 만들면서 완성품을 전시 할 때 1에서 234만6502까지가 적힌 종이 더미를 작품으로 내놓았습니다.

서울 광화문에 세워진 '망치질 하는 조각상'에 새겨진 숫자는 ‘2,669,857’

이 숫자는 그가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숱한 망치질을 한 회수에 해당합니다.

브로프스키가 ‘2,669,857’의 망치질로 22m, 55t에 육박하는 거대 조각상을 탄생 시켰고 저는 지난 2023년 1월 12일 부터 지금까지 1150일 동안 2048개의 글을 투비컨티뉴드에서 발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3년의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매일 하루에 하루에 두 편 씩 자정을 넘기면 '모닝 페이지'를 발행 하고 오전 10시에는 연재 시리즈 노트를 발행하는 동안  한 회  당 글자 수가 700자 이하로 써 본 적이 없습니다. 

그동안 20개 시리즈 노트를 매일 발행 하면서 회 당 4천에서 5천을 넘는 분량의 글을 썼고 창작 소설 <그 해 여름의 수수께끼>와 100편 분량의 대 장편 <굿바이, 부다페스트>의 마지막 회는 3만 5천 자를 넘게 쓰고 대장정의 마무리를 했습니다.

제가 지난 3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써온 글자 수를 종이에 새겨서 발행 해 본다면 망치질 하는 조각상이 서 있는 빌딩 높이 만큼 될 것이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베스트셀러 한 권 판매량 인세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이고 노동자의 최저 하루 임금 수준에 달하는 보상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콘텐츠가  '헐값'이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한 달에 만 원도 안 되는 비용으로 평생 보아도 다 볼 수 없는 콘텐츠를 스트리밍 하는 OTT를 구독할 수 있기 때문에  '가성비'는 '품질'의 문제가 아닌 지불한 가격 만큼의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볼 수 있는 영상물을  많이 봐야 시간 대비 성과까지 챙기며  남들보다 '빠르게 정보를 취득'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추세로 인해  영화나 드라마의 콘텐츠의 미학적 질도 저하 시키게 되었지만 어쨌든 만 원 한 장이면 두툼한 세계사 책을 읽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되었고 죽기 전에 봐야 하는 100편의 명작 영화도 빨리 감기로 봐서 이 전 보다 더 많은 영화의 이름과 스토리를 대충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래 세월의 먼지가 쌓인 묵직한 고전 보다 단순한 스토리 전개, 통속적인 스토리, 손 끝 터치 하나 만으로 소설 한 편을 뚝딱 읽을 수 있고 종이책 여러 권을 탑처럼 쌓아 놓지 않아도 손으로 넘겨 보지 않아도 다양한 장르의 만화와 웹툰을 볼 수 있는 시대에 저는 더 이상 방구석에서 글만 쓰는 글쟁이 무명의 창작자가 아닌 나만의 영상 채널을 펼쳐 보이기 시작 했습니다.

2026년 1월 27일 첫번째 숏츠를 업로드한 제 채널 [@Scott-MoveableFeast]은 4월 22일 현재  115명이 구독해 주셨고 [@Artistway-official] 채널은 4월 22일 현재 79명이 구독해 주셨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 매일 단 하루도 쉼없이 영상 구상과 기획,촬영과 편집을 해서  [@Scott-MoveableFeast] 채널에는 영상 133개와 [@Artistway-official] 채널에는 영상 141개를 업로드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Scott-MoveableFeast



https://www.youtube.com/@Artistway-official



현재 채널 운영자는 인간인 저 한 명이고 영상 구상과 기획, 촬영과 편집을 혼자 하면서 영상 작업 도구로 구글 제미나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생성형 AI는 작업 과정에 있어서 변동이 심해서 엉뚱한 결과물을 생성하는 경우가 많고 확고한 지침과 프롬프트를 영어로 입력을 해도 의도치 않은 결과나 오류를 반복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검토하고 수정하고 재 편집하고 구성해서 완전한 결과물로 완성해 나가는데 전적으로 인간인 저 혼자 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상의 스크립트와 자막에 들어가는 문구의 기본 원고 작성까지 저 혼자서 하고 있고 직접 현장 촬영과 사진 이미지 생성과 편집까지  하면서 영상 작업을 하고 있어서 제 채널에 올라가는 롱폼 영상 중 상당수는 생성형 AI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저 혼자서 제작한 영상들 입니다.

따라서 현재 생성형 AI는 윈도우 기본 프로그램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의 하루 수면 시간은 5시간을 채 넘지 않습니다.

아침 출근 길에 나서자 마자 사회라는 챗바퀴 속으로 들어 가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노트북의 전원을 켜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4시간 정도 뿐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물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은 정확하게 24시간

태양의 주기를 받아 자전과 공전의 주기로 회전하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시간이라는  에너지는 단 한번도 운동을 멈춘 적이 없고  태초의 모습 그대로 길들여지지 않은 채  끊임없이 흘러가는 컨베이어 벨트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24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 된 재화이지만 팔목과 귓속에 스마트 폰과 연결 된 기기를 장착하고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1분 1초에 의미를 부여해서 시간을 쪼개 쓰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하늘에 떠 있는 무수히 많은 별만큼 다양한 콘텐츠를  구독할 수 있는 시대에  '가성비'는 '품질'의 문제가 아니라 들인 시간 만큼의 효율을 어떻게 내는가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2026년 1월29일 두 개의 채널을 개설하고 쉼 없이 영상을 제작한지(구독자들에게 다양한 영상을 보게 하기 위해) 석 달이 채 안되었지만 콘텐츠의 질적인 수준 만큼은 뒤떨어진다거나 시간을 낭비하는 깡통 같은 영상은 제작 하지 않습니다.

유튜브  @Scott-MoveableFeast 채널과 @Artistway-official 채널에 1000명의 구독자 숫자를 채워 주는 분들에게   행운의 선물을 부디 보내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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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7일 첫번째 숏츠를 업로드한 제 채널 [@Scott-MoveableFeast]은 4월 21일 현재  114명이 구독해 주셨고 [@Artistway-official] 채널은 4월 21일 현재 80명이 구독해 주셨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 매일 단 하루도 쉼없이 영상 구상과 기획,촬영과 편집을 해서  [@Scott-MoveableFeast] 채널에는 영상 132개와 [@Artistway-official] 채널에는 영상 140개를 업로드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Scott-MoveableFeast


https://www.youtube.com/@Artistway-official


현재 채널 운영자는 인간인 저 한 명이고 영상 구상과 기획, 촬영과 편집을 혼자 하면서 영상 작업 도구로 구글 제미나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생성형 AI는 작업 과정에 있어서 변동이 심해서 엉뚱한 결과물을 생성하는 경우가 많고 확고한 지침과 프롬프트를 영어로 입력을 해도 의도치 않은 결과나 오류를 반복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검토하고 수정하고 재 편집하고 구성해서 완전한 결과물로 완성해 나가는데 전적으로 인간인 저 혼자 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상의 스크립트와 자막에 들어가는 문구의 기본 원고 작성까지 저 혼자서 하고 있고 직접 현장 촬영과 사진 이미지 생성과 편집까지  하면서 영상 작업을 하고 있어서 제 채널에 올라가는 롱폼 영상 중 상당수는 생성형 AI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저 혼자서 제작한 영상들 입니다.

따라서 현재 생성형 AI는 윈도우 기본 프로그램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글을 깨우치기 전 부터 악보를 먼저 읽은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글렌 허버트 굴드는 네 살 무렵부터 음악 신동으로 불리며 15세 나이에 연주 데뷔를 하며 전 세계를 압도했던 세기의 천재였습니다.

1955년 22세의 나이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한 글렌 굴드는 연습곡에 불과 했던 이 작품을 현대 피아노 레퍼토리로 재조명했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81년  절제된 감정을 응축 시킨  두 번째 음반발매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유작 앨범으로 발매 되었습니다.

발매 당시 클래식 음반 중에서  180만장이라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릴 정도로 굴드가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이후 수 많은 음악가에 의해 연주되고 앨범으로 발표 되었지만 굴드의 성역을 넘어 섰던 음악가가 없습니다.

그가 남긴 음악에 깊은 감동을 받아 제작한 영상은 기획부터 사진 편집, 영어로 작성한 스크립트와 음성 삽입 그리고 마지막 영상 편집까지 모두 저 혼자 했습니다.

2분 38초 분량에 불과 하지만 제작 기간은 한 달이 걸린 영상 입니다.

크레페에 딸기를 싸 먹으면 딸기 크레페이지만 접시 위에 크레페의 모양을 어떻게 접어서 어떤 재료로 포인트와 액센트를 주는지에 따라 평범한 크레페에서 예술의 영혼을 입은 크레페 작품으로 탄생 할 수 있습니다.

영국 런던의 전시장에서 마주한 에드워드 드가의 발레 하는 소녀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이 영상은 1분 남짓에 불과 하지만 벨벳 질감의 누텔라 초콜릿으로 발레하는 소녀의 형태를 그리고  크레페를 겹겹이 겹쳐서  튀튀(Tutu) 치마에 발레리나가 무대에서 춤을 추듯  신선한 딸기로 액센트를  주는 과정을 직접 기획했습니다.

8초 단위 장면 생성을 위한 영어 스크립트를 직접 작성해서 한 달 동안 생성형 AI와 작업해서 쓸모 없는 장면은 잘라 버리고 초 단위로 장면을 잘라 수 백번의 편집을 하고 사운드를 기획하고 삽입해서  1분 내외 분량의 영상으로 완성한 결과물입니다.

규모가 크고 장비가 화려한 크리에이터들과 비교 할 수 없지만 2026년 부터 1인 크리에이터로 활동 할 수 있게 해주신 모든 구독자님들에게 큰 감사를 드립니다. 

첫 번째 업로드한 숏츠 영상부터 바로 이 순간까지 여러분의 구독이 제 심장을 뛰게 해줍니다.
1,000명의 구독자를 꿈꾸고 있는 제 채널은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이야기를 더 멋지게  확장할 계획입니다.

유튜브  @Scott-MoveableFeast 채널과 @Artistway-official 채널에 1000명의 구독자 숫자를 채워 주는 분들에게   행운의 선물을 부디 보내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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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way-official ] 채널은 순수미술과 한국 편의점에서 영감을 받은 창의적인 레시피부터 글로벌 박물관의 고요한 풍경까지.  요리하고, 여행하고, 일상의 모든 것에서 찾아낸 예술적 영감을 테이블과 접시 위에서 펼쳐 보이는 채널 입니다.

예술가의 테이블 시리즈 첫번째 영상에서 한번 먹으면 절대로 끊어 버릴 수 없는 마법의 초콜렛 누텔라를 물감 삼아 한국 간식의 상징 붕어빵으로 창의력을 발휘해 보았습니다.

누텔라로 가득찬 붕어빵이 천만 달러짜리 그림이 전시된 곳에 있으면 이 붕어빵은  간식일까요?걸작일까요?

(c)마우리치오 카텔란 <코미디언>,2029

어디서든 구입 할 수 있는 은색 테이프로  전시장 벽에 붙여둔 바나나 한 개

 과연 이런 것이 작품이 될 수 있을까라며 관람객들이 작품의 제목<코미디언>이라고 적혀 있는 걸을 확인하고 도대체 이 바나나가 무슨 의미일까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사이에  20대 대학생이 아침을 먹지 못해 배가 고프다며 이 바나나를 먹어 치웠습니다.

관람객이 먹어 치워 버려서 더 유명 해진 이 작품은 어떤 예술적 철학이나 진지함도 없이 오로지 미디어적인 소란과 관심을 유도한 코미디 같은 작품이지만 예술작품처럼 전시장 벽에 붙어 있습니다.

바나나도 예술작품이되었으니  개당 천원짜리 붕어빵도 미술관 전시장에 진열 된다면 예술작품이 될 수 있겠죠?

 천원을 주고 사 먹을 수 있는 붕어빵에 예술적 의미를 채우고 싶어서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선구자 잭슨 폴락을 선택했습니다.

잭슨 폴락이 바닥에 펼쳐진 수평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이젤을 버리고 물감을 사방에 흩뿌린 액션 페이팅 기법을 펼치듯 저는 미니멀리즘 화이트 세라믹 판을 무대로 삼고  풍부한 헤이즐넛 초콜릿의 끈적함이 담긴 누텔라를 붕어빵에 가득 채워서 인간의 호기심으로 붕어빵을 만지는 순간 억누를 수 없는 식욕을 발산 시켰습니다.

예술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을 접시에 담아 먹듯이 테이블 위에 올려둔 접시위의 토스트에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발도장을 찍을 수도 있고 별다방에서 주문한 라테의 풍부한 우유거품 위에 뱅크시가 그린 소녀가 빨간 풍선을 그려 넣을 수 도 있습니다.

영국 런던의 전시장에서 마주한 에드워드 드가의 발레하는 소녀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영상에서 벨벳 질감의 누텔라 초콜릿으로 발레하는 소녀의 형태를 그려서  수작업으로  크레페를 겹겹이 겹쳐서 발레리나의 (튀튀 - Tutu) 치마에 발레리나가 무대에서 춤을 추듯  신선한 딸기로 액센트를  주었습니다.

크레페에 딸기를 싸 먹으면 딸기 크레페이지만 접시 위에 크레페의 모양을 어떻게 접어서 어떤 재료로 포인트와 액센트를 주는지에 따라 평범한 크레페에서 예술의 영혼을 입은 크레페 작품으로 탄생 할 수 있습니다.

캔버스와 주방이 만나는 아티스트 웨이 채널에서 모네의 정원에서 한국 전통 디저트 부터 에드워드 드가의 발레리나의 영혼을 입은 크레이프까지 걸작을 맛보세요.

https://www.youtube.com/@Artistway-official


유튜브  @Scott-MoveableFeast 채널과 @Artistway-official 채널에 1000명의 구독자 숫자를 채워 주는 분들에게   행운의 선물을 부디 보내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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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7일 첫번째 숏츠를 업로드한 제 채널 [@Scott-MoveableFeast]은 4월 19일 현재  114명이 구독해 주셨고 [@Artistway-official] 채널은 4월 19일 현재 80명이 구독해 주셨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 매일 단 하루도 쉼없이 영상 구상과 기획,촬영과 편집을 해서  [@Scott-MoveableFeast] 채널에는 영상 131개와 [@Artistway-official] 채널에는 영상 139개를 업로드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Scott-MoveableFeast


https://www.youtube.com/@Artistway-official


현재 채널 운영자는 인간인 저 한 명이고 영상 구상과 기획, 촬영과 편집을 혼자 하면서 영상 작업 도구로 구글 제미나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생성형 AI는 작업 과정에 있어서 변동이 심해서 엉뚱한 결과물을 생성하는 경우가 많고 확고한 지침과 프롬프트를 영어로 입력을 해도 의도치 않은 결과나 오류를 반복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검토하고 수정하고 재 편집하고 구성해서 완전한 결과물로 완성해 나가는데 전적으로 인간인 저 혼자 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상의 스크립트와 자막에 들어가는 문구의 기본 원고 작성까지 저 혼자서 하고 있고 직접 현장 촬영과 사진 이미지 생성과 편집까지  하면서 영상 작업을 하고 있어서 제 채널에 올라가는 롱폼 영상 중 상당수는 생성형 AI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저 혼자서 제작한 영상들 입니다.

따라서 현재 생성형 AI는 윈도우 기본 프로그램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 페이스 북의 팔로워를 하고 있는 독일 뮌헨에 위치한 디 노이에 잠룽(Die Neue Sammlung, 국제 디자인 미술관)이 @Artistway-official 채널에 업로드한 뱅크시의 작품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영상을   공유하고 퍼갔습니다.

이 영상은 37초에 불과 하지만   토스트에 누텔라를 바르고 딸기잼으로 빨간 풍선을 묘사하는 것부터 배경으로 등장하는 식사 공간과 주인이 없는 틈을 타고 식탁 위로 올라가 발도장을 찍는 고양이의 등장까지 모두 제가 직접 기획했습니다.

 8초 단위 장면 생성을 위한 영어 스크립트를 직접 작성해서 한 달 동안 생성형 AI와 작업해서 쓸모 없는 장면은 잘라 버리고 초단위로 장면을 잘라 수 백번의 편집을 하고 사운드를 기획하고 삽입해서  37초 분량의 영상으로 완성한 결과물입니다.

 독일 뮌헨에 위치한 디 노이에 잠룽(Die Neue Sammlung, 국제 디자인 미술관)은 1925년에 설립되어 바우하우스 정신을 계승하며  20세기 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산업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예술 공예 분야에서 독보적인 예술적 영향력을 미치며 일상적인 디자인 제품을 미적 향유의 대상으로 격상 시키고, 기능주의 디자인의 예술적 토대를 구축한 세계적인 미술관입니다.

제가 제작한 뱅크시의 토스트 아트 시리즈는 팔로우를 하지 않은 체코의 DOX 현대미술센터 (DOX Centre for Contemporary Art)에서도 공유하고 영상을 퍼갔습니다.

생성형 AI 도구를 사용 할 때 마다 저는 더 많이 공부하고 연구 하고 브레이밍 스토밍을 해서 하나의 콘텐츠를 여러 갈래로 확장 시키는 작업을 더 정교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용자가 요구하는 것에 따른 맞춤형으로  생성형 AI가 해 줄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했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이 가진 지식의 인프라가 탄탄하지 않으면 생성형 AI와 제대로 협업 하기 힘든 것이 현실 입니다.

1분 21초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제작 하기 위해 지난 한 달 동안 로봇과 강아지 캐릭터 이미지 작업부터 시작해서 색감 조절과 배경 구상 그리고 장면 기획과  스크립트 작성을 비롯해 사운드 기획과 편집을 하는데 저의  창작 에너지를  총 동원 해서 쏟아 부었습니다.
AI라는 신 기술의 도구는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결과물이 완전히 달라지고 AI는 쓰면 쓸 수록 마우스를 움직이는 영상 생성 도구 일 뿐 모든 작업 과정에 인간의 머리와 감성 그리고 기획의 손길과 편집 기술이 결합하지 않으면 온전하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기능을 탑재한 가전 제품이 출시하듯 Ai가 세상에 등장 하고 부터 저는 직업적인 위기 의식 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내 삶을 꾸려 나가야 할 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온라인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적이 거의 없지만 Ai 등장은 저 같은 고학력자에게 치명적이면서도 한 편으로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현재 세상은 Ai 등장 이전의 시대로 되돌아 갈 수 없을 정도로 미래는  곧 내일의 시간으로 앞당겨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콘텐츠는 사실 '헐값'이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창작자나 제작자가 헐값의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채널을 공급하는 플랫폼들의 등장으로  소비가 확산이 되면서 공급 수요의 법칙에 따라 무한 공급에 가까운 생태계가 조성되어 버렸습니다. 

한 달에 만 원도 안 되는 비용이면 일 평생 죽기 전까지 보아도 다 볼 수 없는 콘텐츠들이 이 세상에  스트리밍 되고 있습니다.

이제 어떤 콘텐츠도  구독할 수 있는 시대에 '가성비'는 '품질'의 문제가 아니라 들인 시간만큼의 효율을 어떻게 내는가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2026년 1월29일 두 개의 채널을 개설하고 쉼 없이 영상을 제작한지(구독자들에게 다양한 영상을 보게 하기 위해) 석달이 채 안되었지만 콘텐츠의 질적인 수준 만큼은 뒤떨어진다거나 시간을 낭비하는 깡통 같은 영상은 제작 하지 않습니다.

규모가 크고 장비가 화려한 크리에이터들과 비교 할 수 없지만 2026년 부터 1인 크리에이터로 활동 할 수 있게 해주신 모든 구독자님들에게 큰 감사를 드립니다. 

첫 번째 업로드한 숏츠 영상부터 바로 이 순간까지 여러분의 구독이 제 심장을 뛰게 해줍니다.
1,000명의 구독자를 꿈꾸고 있는 제 채널은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이야기를 더 멋지게  확장할 계획입니다.

유튜브  @Scott-MoveableFeast 채널과 @Artistway-official 채널에 1000명의 구독자 숫자를 채워 주는 분들에게   행운의 선물을 부디 보내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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