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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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미없더라, 위대한 개츠비."
"나도 들었어, 그 책 재미없다는 사람 많더라." 
................................................................
영어학을 전공했던 친구의 재미없다는 얘기는 그 후로도 <위대한 개츠비>의 명성과 비례하는 부정적 아우라였다.
걸핏하면 쏟아져 나오는 가장 위대한 영어 소설이라느니 미국대학생들의 필독서라느니 하는 찬탄은 역으로
그 책을 더 얄밉게 보이게 했다. 사실 <위대한 개츠비> 재미없다고 학교 게시판에서 한 마디 거들다가 개츠비 추종자로부터
약하게 한 대 얻어 맞은 기억이 한 몫 단단히 했다. 



얄미운 개츠비가 성큼성큼 걸어온 것은 문학동네전집의 책 디자인이 요요하기도 했고, 번역자 김영하에 대한
무언가 있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김영하가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번역할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서점에서 남자 고등학생들이 <위대한 개츠비>가 "졸라 재미없다"고 성토하는 장면을 목도하게
되면서부터였다 한다. 그는 <위대한 개츠비>에 바쳐지는 각종 헌사들 그 자체를 다 받아들일 수는 없다손 치더라도
개츠비가 재미없는 소설이라는 점에는 동감할 수 없었다 한다. 그리고 그가 다시 만난 개츠비에 대한 기억의 고백은
되레 너무 재미있어서 중간에 덮어 놓고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만큼이었다. 정. 말. 이. 다. 그리고 사실 어쩌면
한 가난한 남자가 부잣집 아가씨에게 차이고 난후 절치부심하여 거부가 되어 나타나 그녀와 재회하고 밀회를
즐기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이 간단한 플롯의 로맨스가 사실 졸라 재미없을 정도로 처질 것은 아니지 싶다.  
충분히 재미있을 개연성을 품고 있는 스토리가 그간 번역의 한계의 틀 안에서 지루하게 처져버린 것이다. 
그 안타까움은 김영하가 다 스러지게 해 주니 고마운 일이다. 자~ 그럼 김영하 오빠의 귀환 신고식의 향연들~ 

좀 재수없었다. p.22
웬 촛불? p.24
나야 뭐, 올해 오십이고, 있어봐야 주책이고......p.93
미친 거 아냐? p.146

 

김영하 번역의 미학을 뛰어넘는 피츠제럴드의 저력은 상황과 풍경과 인물에 대한 생동감 있는 묘사다. 그 묘사는
여느 다른 고전의 나른함과는 다른 통통 튀는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개츠비가 사랑한 데이지의 집에서 커튼이
산들바람에 나부끼는 장면의 묘사는 그 커튼 자락을 독자의 코 앞까지 드리운다. 또 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분위기와
개츠비의 지향의 덧없음을 표상하는 데이지의 묘사는 당장 1920년대 중반 미국 동부의 된장녀를 끌어다 내 앞에
세워놓는 듯한 환각에 빠지게 할 정도다. 데이지는 이런 여자다.
 

"저 분홍색 구름 하날 가졌으면 좋겠어. 거기다가 당신을 집어넣고 밀고 다닐 거야." p.119
이런 뻔하고도 수작 좋은 얘기를 개츠비를 버리고 떠나 부유한 톰 뷰캐넌과 결혼할 때는 언제고 부자가 되어 컴백한
그한테 했던 여자라면 짐작 가능할 것이다. 

오후는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는데 허망한 꿈만이 홀로 남아 싸우고 있었다. 방 건너편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향해,
더이상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지려고 애쓰면서, 암울하지만 절망하지는 않으면서 끝까지 분투하고 있었다.-p.169 

물질만능주의로 흥청대던 전후상황에서 신생 제국 미국의 인격화라고 개츠비를 이해하는 당시 평자들이 많았다지만
우리는 이미 2010년을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 개츠비를 다르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개츠비는 누구나의 마음속에나
살고 있고 죽을 때까지 붙들고 싶은 무모한 순정에 대한, 무모한 열정에 대한, 무모한 도전에 대한 아련한 향수라고.  
그 지향이 덧없음이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순정을 가녀린 손끝에 걸치고 있었던 우리 스스로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개츠비의 외로운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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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마 2010-01-05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쿨럭... 이 뽐뿌질은 정말이지, 너무하십니다아아아아아아!
저 위대한 개츠비 이미 세권이나 가지고 있단 말이지요. 게다가 그 중 한권은 민음판 세계문학 전집의 75번 이구요. 저 또한번 강력 주장하건대, 민음판 세계문학전집 이미 백오십권!!!이 넘게 콜렉션 했단 말이여요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ㅠ.ㅠ
괜히 샀어, 괜히 샀어, 사지 말걸, 문학동네 기다릴 걸, 괜히샀어, 괜히샀어~!!!

자, 이제 제 앞에 요술봉을 삐리링 하고 휘저어 주셔요. 제발!

blanca 2010-01-05 14:23   좋아요 0 | URL
아시마님, 세 권이요?ㅋㅋㅋ 그럼 안사심이 맞을듯. 제가 저지하겠습니다. 아무리 김영하라지만 개츠비 네 권은 좀--;; 이 정도면 되나요? 개츠비 네 권 주르륵 꽂혀 있는 모습은 과히 바람직해보이지는 않을 것 같아요 ㅋㅋㅋ

순오기 2010-01-05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저도 민음사 위대한 개츠비지만, 이런 뽐뿌질은 피해갈 수 없을거 같아요.
다독다필상 적립금 들어오면 님께 땡스투 할랍니다.ㅋㅋ
고딩때 그러니까 30년도 더 전에, 로버트 레드포드가 연기한 개츠비에 껌뻑 넘어갔던 1인~ 내사랑 개츠비!^^

blanca 2010-01-05 16:2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대단하십니다. 연초부터 여기저기서 상금이^^ 로버트 레드포드가 개츠비였어요?
우와~ 지금 막 상상하고 있어요^^
 

신입사원 시절 사수의 추천으로 김훈을 만났다. 나이는 세살밖에 많지 않았지만
그는 명철하고 기민해서 조직에 맞춤한 사람이었다. 냉정과 실리가 점령한 사회에서 상처받아
기우뚱하고 허우적대는 나에게 그는 창의력을 기르려면 책을, 특히나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김훈의 <칼의 노래>를 얘기했다. 촌스럽게도 아무런 저항 없이 당장 그 책을 샀고 꽤나 힘겹게 읽어 갔다.
솔직히 나는 그의 문장에 적응할 수 없었다. 그 어떤 수사도 거부한 채 문장 자체를 툭툭 휘갈겨 던져내 놓은
듯한 인상은 내내 불편했고, 현학의 과시마냥 쉽지 않았던 단어들의 조합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재미가 없어 숙제하듯 읽어냈고, 그 후 무슨 의무마냥 그의 신간을 사모았다.
간간이 그가 발표한 단편들은 의외로 아주 재미있었다. 그의 작품은 진중했지만 흥미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신선했던 <언니의 폐경>과 <화장>이었다. <남한산성>도 몰입하여 읽지는 못했다. <공무도하>에서 마침내
그의 그 건조한 문장은,그 몸으로 밀어내는 듯한 연필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잔영들은,놀랍도록 처절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의 문장들은 여전히 짧고 여전히 버석댔지만, 그 간결함과 그 응축의 미가 드디어 나를 향해
깨어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너무 많이 인용되어 거의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그의 이런 문장. 

 인간은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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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는 이름이 주는 그 아련하고 섬세한 느낌이 문장에서도 그대로 풀려 나온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나는
이 문장에 줄을 긋고 따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그때까지의 내 인생은 물론이고 과연 있을지 없을지 짐작조자 할 수 없는 내 전생과, 그 전생의 전생과, 그 전생의 전생의 전생과 , 그 나머지 모든 전생들까지도 아주 근사한 것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줄줄이 비엔나 같은 표현기법이 그만의 것이 아니라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 이미 나왔다는 사실에 나는 약간 배신감을 느꼈다.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몽환적인 느낌이 서려 있는 이 귀여운 문장도 엄마가 있었던 것이다. 그의 소설에 열중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그의 어투를 닮게 된다. 이를테면, 을 자주 쓴다고 인터뷰했던 그의 기사를 읽고 다음날부터 나의 글들에는 부쩍 '이를테면'이 빈번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글을 쓰면서는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저도 모르게 문장을 닮아가기 때문이란다. 실제 리뷰에는 흔하게 작가들의 작품에서 등장했던 어휘들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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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가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나는 뒤늦게 읽은 <외딴방>을 더 좋아한다. 초기작인데
오히려 후속작들보다 문장들이 더 완성도가 높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문장을 읽고 나는 한동안 떨었다. 문학을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생각했던 바로 그 대목이 언어로 명징하게 떠오르는 순간, 바로 이거였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끊임없이 어떤 순간들을 언어로 채집해서 한 장의 사진처럼 가둬놓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문학으로선 도저히 가까이
가 볼 수 없는 삶이 언어 바깥에서 흐르고 있음을 절망스럽게 느끼곤 한다. 

그녀의 문장은 섬세하고 유려하고 시적이다. 한없이 보드라운 그 속살에는 문학 소녀의 여린 감수성이 향수처럼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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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의 <유년의 뜰>은 우리 모국어가 담아낼 수 있는 그 수많은 사연들의 응축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취를 이루어 낸 것 같았다. 그녀의 작품들은 놀라웠다. 수많은 사연, 광경을 그려낸 문장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빛나는 시의 어구 같았다.  

햇빛이 교장 선생님의 안경을 가로지르고 그 뒤 흑판에 아아아아아아 떨며 금을 긋고 있었다.  

낫을 벼리듯이 치열하고 처절하게 다듬어 내어놓은 문장은 그 자체로 작가들의 투혼을 발산하기에 찬란하다. 알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허섭쓰레기들을 반드르르하게 치장만 해서 호사스럽게 내놓았을 때 그것에 대한 공명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자신의 삶을,혹은 다른 그 누구의 공감하는 삶을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와 그것의 매개의 중추에 놓여 있는 언어를 화해시키고 어우러지게 하는 일은 영원히 끝날 수 없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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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1-02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멋진 페이퍼에요.
다음블로거특종으로 밀어요.^^

blanca 2010-01-02 22:58   좋아요 0 | URL
'멋지다'는 그 얘기를 순오기님한테 들으니 기분이 차암 좋아요^.....^

승주나무 2010-01-03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와 그녀의 문장들 만큼이나 블랑카 님의 문장 역시 멋집니다. 제가 장담하죠. 앞으로는 원전이 아니라 원전의 해석자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시대가 올 겁니다. 저자가 아니라 리뷰어들의 네트워크가 사회적 파장을 더 줄 수 있는 것처럼. (아직 그 수준은 아니지만) 지식인이 아니라 지식을 소화해서 자기 방식으로 퍼다 나르는 아마추어 활동가들이 세상을 바꿔놓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자신을 가지세요. "창의력을 기르려면 책을, 특히나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한다" 사수의 충고가 몹시 고마워 보입니다. 저도 그런 비슷한 충고를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창의력이라고 하는 것은 창의력만 빼서 볼 것이 아니라 자신과 사회, 경제, 문화, 철학, 일상 등등과의 관계 속에서 빛이 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모두 던져줄 수 있는 소설작품은 말씀하신 리스트가 견디기는 어렵고 고전소설이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창의력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떠받칠 수 있는 힘은 인문사회 자연과학 서적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초면에 말이 무척 길고 가르치려고 한 점은 죄송합니다. 댓글도 달아주시고 글의 마음이 너무 '예뻐서' 오버를 좀 하고 갑니다^^

blanca 2010-01-03 22:45   좋아요 0 | URL
승주나무님의 댓글을 두 번 읽었습니다. 승주나무님의 얘기가 구구절절이 와닿네요. 안그래도 소설에 편중된 독서는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곁가지로 인문사회서적들을 읽지만 그 이해의 폭이 너무 협소합니다. 정작 다 읽고나도 승주나무님처럼 누군가에게 풀어 나의 해석, 감상과 설명이 도통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무조건 읽는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이 부분은 토론이나 공부의 형태로 병행이 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리뷰어들의 네트워크에 대한 님의 장담은 저를 가슴뛰게 하네요^^ 무언가를 창조하지 못하고 해석 비판만 하는 것이 가지는 태생적 한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승주나무 2010-01-03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워서 몇 자 더 적고 갑니다.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읽는 것과 쓰는 것을 함께 하는 방법이라고나 할까요? 오랫동안 이 부분을 고민했어요. 책을 읽고 나면 모두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니니까 자꾸 페이지를 넘겨 보게 되고 그러면 생각을 또 놓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래서 독서메모장 같은 것을 끼워놓고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저의 경우는 세 가지로 구분하죠. 검은색 볼펜은 내가 요약한 부분, 파란색은 직접인용한 부분, 빨간색은 나의 그때그때의 감상. A4를 반으로 접으면 책에 대충 들어가더군요. 독서에 시간은 좀 걸리지만 메모의 힘은 글을 쓸 때 부족한 기억력을 보충해 주고 나름대로 독서를 더 깊이 있게 만들어줍니다. 저는 엑셀에 DB화를 하고 있어요. 2. 알라딘에서 인문학 공부를 한다고 강좌를 열었지요. 저는 알라딘 마을의 분위기라면 저마다 자신 있는 주제를 가지고 와서 발제를 모으는 식으로 서재지기 토론회 같은 것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앞으로 공부해보자는 분위기가 더 만들어지면 실제 성사도 가능할 듯해요. 이렇게 댓글에서부터 시작하지만, 피드백은 블랑카 님의 개운치 않은 속을 해소해주는 강력한 효험이 있답니다^^

blanca 2010-01-03 23:35   좋아요 0 | URL
실시간입니다.^^ 책갈피 대신 승주나무님의 방법을 따라해 볼까 생각중입니다. 옛날 읽는다는 것에만 집중하던 시절 읽어치워낸 책들은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것 이상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내용도 심지어 읽었는 지도 모르는 책들이 한가득입니다. 이런 독서는 근시와 교묘하게 잘난 척 하는 기술만 키워준 것 같아요. 알라딘 마을에 와서 부쩍 크는 느낌이 소중합니다. 승주나무님께 종종 질문도 드릴께요^^
 
이회영과 젊은 그들 - 아나키스트가 된 조선 명문가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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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간의 존재를 표준으로 내세워서 이 세계를 안과 밖, 이쪽과 저쪽으로 구분하지 않았고, 사물과 풍경에
함부로 구획을 설정하지 않았으며...(중략)...그의 마음은 모든 보이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과 친화할 수 있었고,
친화로써 비밀에 닿았고, 그 친화의 힘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통로를 열었고... 
                                                                                                               -김 훈의 <공무도하>

<공무도하>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인물은 여주인공 노목희가 작업했던 역사기행서의 저자 타이웨이 교수였다. 그에 대한
묘사는 이상적인 인간상에 대한 김훈의 천착과 그것을 담은 절제되고도 유현한 그의 문체가 어우러져 빛나고 있었기에 안구
속에 꾸욱 꾸욱 눌러 담고 싶은 것이었다. 

타 이 웨 이 교수를 나는 만났다.
여섯 명의 정승과 두 명의 대제학을 배출한 대명문가의 후예로서 1910년 한일합방후 지금가치로 대략 환산하여 600억 이상의 자산을 일시에 처분하고 가문전체가 중국 망명길에 올랐던 이회영 일가.
환갑이 훌쩍 넘어서도 조국을 위한 무장투쟁을 하겠다고 영국 선적의 제일 밑바닥 4등 선실에 몸을 웅크리고 떠났던 사람.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진부한 수식으로 그를 가두고 싶지 않다. 어떤 지향을 위해 몸을 던지는 것이 쉽진 않더라도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면, 세속의 잣대로 추앙받는 가진 것들을 모두 내던지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 욕망을 극복해야 하는 터라 불가능에 가깝다. 그는 그것을 해내고 비참하게 빈민가를 떠돌다 마침내 산화했다.  

국사에서 근대사는 유난히 간략하고 불친절하다. 학창시절 정력적이었던 국사 선생님도 근대사는 암기할 대목만 짚고 가버렸다. 이해와 공감이 빠진 근대사 공부는 청산리 대첩의 김좌진 장군 정도만 가까스로 남기고 도망가 버렸다. 지금에서야 통탄한다. 독립운동사는 사실 민족적 자각과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의 결정적인 매개의 지점에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근현대사는 객관적이기 힘들다는 명분을 가지고 온 식민사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인지 유난히 독립운동사에 대한 연구와 교육에 소흘해 왔다. 지금은 이미 독립운동가들이 사망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복원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고 한다. 어제를 연구하는 것은 오늘을 이해하고 내일을 예견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의 피를 따라 흐르는 선조들의 역사의식과 투쟁의 유전자를 확인하고 재생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은 내가 나를 알고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한 너무나 기본적인 전초작업이다. 

이 책은 아나키즘(자유연합주의)의 대동사회를 꿈꾸며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죽어간 이회영 일가와 더불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지배계층의 독립운동사를 복원하였다는 점에서 하나의 성취를 이루었다. 양반 사대부 계층은 대체로 전근대적이고 기회주의적이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런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복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비단 이회영 일가뿐 아니라 이상설, 이건승, 홍승헌 등 수많은 이들이 가진 것들과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극빈 상황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이국만리에서 조국의 해방도 보지 못하고 최후를 맞는다. 그들은 일제강점하의 고국에 자신들의 시신을
반장하지 말라고 유언한다.

당시 독립운동은 민족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이라는 세 가지 이념으로 분열되었고 이는 해방후 결국 분단으로 치닫는
하나의 촉매가 된다. 이런 이념의 구획은 극한 상황에서의 처절한 투쟁을 버티게 하는 하나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것 같다.
필요불가결했지만 이 구획의 언저리에서는 동족을 불신하고 배신하고 죽이는 비극의 불꽃이 점화되었다. 슬픈 대목이다.
오늘의 굶주림을 참기 위해 머리 속에 채워넣어 가슴으로 끌고 내려가야 하는 그 허위의 도식에 대한 집착은 인간 본연의
한계가 아닐런지.

또한 아나키즘이 단순히 무정부주의이며 허무주의적 색채가 강하다고 회의했던 나에게  철저한 아나키스였던 그가 주장한 지방자치주의, 무상 교육에 대한 선구자적 자각은 지금의 시점에서 봐도 놀랍다. 민중이 민중전체를 위하여 혁명적 선구가 되어
차별없는 대동사회를 건설하는 그 이상주의적 이념은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과 연대에 대한 희망이 본령이다. 하나의 이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염원, 하나의 꿈, 하나의 희망이다.

입을 옷이 없어 산책가자고 하는 지인의 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 쌀이 없어 시아버지 밥을 못지어 슬퍼하는
며느리 앞에서 퉁소를 불며 시름을 달래는 비장한 낭만을 아는 사람, 숱한 일제의 고문 앞에서도 함구하고 결국 비참하게 간 사람. 그의 삶이 외형적으로 찬란하지 않았고 오히려 동정받을 정도로 전락한 것은 그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었다.  

비루한 인간사에서
이렇게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공의의 지향을 위해 투신한 이의 삶을 듣는 것은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사람은 아름답다. 삶은 찬란하다. 또다른 한 켠에서 벌어지는 그 그악스럽고 던적스러운 삶이 있음을 알지만
그것만으로 고결한 가치로 열려 있는 삶의 가능성 전체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

민족주의 태내에서 무정부주의의 성장, 그 사상적 투쟁단계 그리고 전시의 전투체제로 전환 등의 과정을 우리는 우당이란
한 사람의 생에에서 읽을 수 있다. 우당의 최후는 이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의 장렬한 산화였다.
-하기락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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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 최영미 산문집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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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기 같은 눈에 폭폭 발을 담그며 만나러 간 고등학교 동창들의 눈에는 이제 더이상 열망이 없었다.
대신 피곤체념이 버무려진 눈동자가 각자의 고충과 애환들을 드러낼 때만 형형했다. 

난 전세계에서 터졌을 어마어마한 양의 불꽃들을 상상했고, 내가 옛날에 헛되이 쏘아올렸던 마음의 불꽃들을
생각했다. 내 것이 아니었던 열망들에 마지막으로 작별을 고하고, 난 돌아섰다. 안녕. 무모했던 날들이여.-p.230

에메랄드빛이 바랜 타자기가 잿빛의 물빛을 머금고 오롯이 놓여 있는 표지는 왠지 바랜 열망들과 꿈들을 상징하는 대유로
보여 마음이 끌렸다. 책을 읽다가도 몇 번이나 표지를 다시 넘겨보고 그 타자기를 쓰다듬어 보게 되는 묘한 마력이 있었다.
표지와 가볍고 화려해 보이지 않는 속지의 재질들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물리적인 책의 외형만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을 만큼이었다. 북디자인이 가지는 무게를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가벼운 책은 소박한 내용에 맞춤한 옷 같았다. 

한국에서 여류전업작가로, 게다가 시인으로, 독신으로 살아나가는 것에 대한 쓸쓸한 고충들이 서른에 끝난 잔치 타령으로
상처받은 그녀의 입에서 절절하게 나온다. 사실 나부터도 그냥 그 시 제목에 같이 흥청댔던 당시의 기억 속에
그녀를 도발적인 팜므파탈 정도로 찍어 넣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그 소비지향적 이미지에
더하여 더이상 시가 소비되지 않는 역설의 시대에서 자기 집 한 칸을 마련하기 위해 분투한다. 그 모습이 낯설고 슬펐다.  

그 해 여름, 나는 비를 막느라 비닐포장을 두른 슬레이트 지붕아래 러닝셔츠 차림으로 누워 생각날 때마다 시를 썼다. 매일
쓴 게 아니라 매시간 썼기 때문에 시를 쓸 때마다 옆에다 쓴 시각을 적어놓을 정도였다.-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中

시인은 닮았다. 가난하다. 김연수가 시인이 아닌 소설가로 방향을 틀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도, 조정래가 아내 김초혜를 시인이라 더 예우해 주는 대목도 결국 시는 삶이 아닌 천상의 가치와 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시인들은 생활인으로는
서툴 수밖에 없다. 

그녀가 끝까지 시인으로, 그리고 당당한 여류전업작가로서 이제는 뒤로 했다는 열망을 다시 앞으로 끄집어 내어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 생이 반드시 먹고 호흡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향하는 가치로 연결될 수도
있음을 믿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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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2009-12-30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 작품은 책만 사놓고 아직 못 읽고 있네요.
당장(!) 읽어야겠다는 다짐이.. ㅋㅋ

저도 대문 글 보면서 뭔가(!) 느끼고 갑니다. ^^;;

blanca 2009-12-30 20:55   좋아요 0 | URL
빨리 읽어 보세요. 책장이 잘 넘어간답니다.^^ 그리고 저 벌써 오늘 하루 3잔 마셔버렸습니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노이에자이트 2010-01-01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종종 들러서 댓글 남겨도 되죠?

blanca 2010-01-01 16:39   좋아요 0 | URL
고맙죠ㅋㅋㅋ 노이에자이트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그런데 노이에자이트를 줄여 노자라고들 하시던데 사람 이름을 딴 건지 궁금하네요. 오타날까봐 두번이나 되뇌었을 정도로 어렵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1-01 16:44   좋아요 0 | URL
'새로운 시대'의 독일어랍니다.
 
꿈엔들 잊힐리야 - 상 박완서 소설전집 12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박완서는 완독을 목표로 했을 만큼 좋아하는 작가다. 소설 사이 사이로 숨고르기처럼 내는 에세이의
구수함은 말할 나위 없이 좋다. 최근의 '친절한 복희씨'에서 그녀의 작품은 천천히 노년문학으로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년의 이해받지 못함에 대한 쓸쓸함과 그것에 단초를 제공하는 자식 세대들에 대한 섭섭함이
형상화되어 있다. 작가의 작품은 작가와 함께 걷는다. 전업주부였다 마흔에 등단한 그녀만큼 작품들은 하나같이
서두르지 않고 조곤조곤 얘기한다. 그 결 사이 사이에 스미는 여성의 감정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유현하다. 

그녀의 작품을 대부분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와중에 '꿈엔들 잊힐리야'가 왔다. 여느 그녀의 다른 작품들의
그 아기자기한 재미와 구수한 입씨름 대신 구한말에서 육이오 이전까지의 시대적 격랑의 틈바구니에서 고뇌와 번민으로
가득찬 인간 군상의 처절한 삶이 개성의 풍속과 어우러져 드러난다. 예전 '미망'으로 드라마화되었던 작품이다.
개성의 거상 전처만의 돈에 대한 계율과 이부제 동생 태남을 물려받은 태임이라는 여인의 파란 많은 일대기다.
몰락한 양반의 자손이자 할아버지 전처만과 애증으로 얽힌 집안 머슴 종상이와의 결혼을 감행하는 그녀는
청상과부였다 역시 집안의 사내종과 부정을 저질러 태남을 낳고 우물에 몸을 던진 그녀 어머니의 이율배반의 삶에
저항하듯 자신의 삶을 스스로 쟁취하고 이끌어나가고자 한다. 그러나 그런 그녀도 자신과 유독 닮았으나
두번째 부인으로 가정을 꾸리게 되는 딸 여란 앞에서 결국 좌절하고 만다. 시대와 인습, 운명의 그 불합리와 부조리에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투항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의 얘기는 인간의 그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내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작업에 성공하면서도 카리스마를 구현하는 데에는 약간의 마이너스를 감수하는 모습이다.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절대적으로 강인한 인간형을 여기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녀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은 그녀가 갖고 있는 것을 터무니없이 미화하고 과장하고 싶은 경쟁심을 불러일으켰다.
                                                                                                                                      -p.355(중)
개성만의 특색있는 풍속을 묘사한 장면들이 생생하고 재미가 진진하다.
태임이와 종상이의 혼례 장면은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풍속의 묘사가 그 생동감 있는 필체 앞에서
꽃처럼 생글거리며 피어난다.  

태남이의 독립자금을 대다 결국 발각되어 죽은 남편 종상이의 소년 시절을 떠올리며 죽어가는 태임의 모습이
얹힌 결말은 아릿하면서도 너무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또한 그의 임종을 결국 지키게 되는 태남이와의 그 일상적인
대화가 오히려 더 절절하다. 이 결말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아퀴를 제대로 짓는 법을 작가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예술성과 서사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한데 잘 어우러지게 묶은 그녀의 손속이 돋보였다. 

천상 이야기꾼인 그녀가 늙어가 더이상 그 보따리를 풀어 놓지 못할까 초조해질 따름이다. 다음 작품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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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2009-12-30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박완서 선생님 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아직이네요.
마흔에 데뷔했다고.. 자기가 그 동안 논 게 아니라고 한번 화를 내셨단 얘기를 들었어요. ㅋㅋ

blanca 2009-12-30 20:57   좋아요 0 | URL
그 동안 논게 아니라고 ㅋㅋㅋ 저도 단편 위주로 읽어서 최근에 읽었어요. 참 재미있더라구요. 그런데 이렇게 분권된 책들을 한 번 시작하면 생활이 피폐해져서. 정말 시간적 여유 있을 때만 읽으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