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탄 지하철 안 붐비는 사람들을 등지고 펼쳐든 한겨레21에서 무척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표제는 악마라는 '종족'은 태어나는가
기사 링크는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6380.html 
희대의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를 다루면서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가 언급되어 있었다. 

전직 경찰이었던 앤 룰이라는 여성이 봉사활동 단체에서 테드 번디라는 젊은 심리학도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당시 암으로 시한부선고를 받은 남편과의 이혼을 고민하고 있었고
결단을 내리도록 친근하게 조언해 준 그와 친구가 된다.
그런데 이 당시부터 번디는 젊은 여성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첫사랑의 실패 이후 시작된 이 연쇄살인은
결국 번디의 사형으로 막을 내리지만 경찰도 대체 그가 몇 명의 여성을 살해했는지 정확하게 밝혀 내지 못하고
3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고 하니 그 극악무도함에 몸서리가 처진다. 

평범한 우리와는 다른 종족. 언제든 우리의 평화를 깨고 우리의 당연한 가치들을 파괴할 그들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가 적나라하게 해부된 작품. 노벨상 수삭작가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는 그렇게 왔다. 

 200페이지도 안되는 이 얇은 소설은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두 남녀가 빅토리아풍 대저책에 건설한 그들만의 대가족이 어떻게 그들의 꿈을 기만할 수 있는지 낱낱이 지적해 준다. 

다복한 가정의 틀처럼 그들이 계획한 다산은 폭력적이고 일상에 적응이 불가능한 다섯째 아니 벤이 태어남으로써 결렬된다. 다섯째 아이는 잉태부터가 불길했고 물고기의 유영처럼 아름답고 간지러운 그 태동이 끔찍하게 여겨져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할 만큼 유별났다. 그리고 태어난지 얼마 안되 집단보호시설에 보내졌다 껍질뿐인 모성애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온다. 

각종 사고에 상상으로 연루되는 그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 해리엇 뿐만 아니라 여타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어쩌면 그 외계의 아이보다 더 타락해 있다. 저마다 나름대로의 자기 구역 안에 그 애가 목을 디밀까 전전 긍긍하며 위장된 무심함 밑에 도피한다.  

변경의 시선을 가진 작가로 알려져 있는 도리스 레싱은 이 부적합한 가족 구성원인 다섯째 아이보다는 그 나머지 가족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집단적 위악, 때로는 위선에서 고립되는 나머지 한 명에 대한 비참함에 대한 절제된 연민이 돋보인다. 그녀는 사람들이 그의 본질을 보는 일을 거부하고 있다고 성토한다. 그녀는 인간 본성에 대한 신뢰를 가장 기만적인 이데올로기라고 한다. 성선론을 믿고 싶어하는 나에게는 조금 불편한 대목이다.  

 

가족주의의 허구를 적나라하게 해부한 작품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박완서는 구순하게 인간 간의   정서를 풀어나가는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녀만큼 인간 본성에 대한 그 교묘한 위선과 위장술, 자기 합리화의 부패를 여실하게 드러낸 작가도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대체로 굉장히 리얼하게 사악하고 위선적이다. 너무나 사실적이라 절망스럽다.  

가족이 가족을 버리고 그것을 합리화해나가는 그 여정이 이 작품의 줄거리다. 결말에서 인간에 대한 신뢰의 가능성을 열어놓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은 거두지 않고 있다. 도리스 레싱과 닮은 부분이다. 박완서가 그 위선과 위악에서 소외된 이를 가족과 여성주의 안에서 가두는 한계를 보였다면, 도리스 레싱은 사회의 전체적 틀에서 고립된 이탈자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일보 전진했다. 하지만 도리스 레싱이 지나치게 건조하고 생략된 터치로 독자를 좀 망연하게 한다면, 박완서는 그 세심하고 성찰어린 필력으로 독자들이 철저하게 추체험을 하게 한다는 데에 또 우위에 있다. 

 

가족의 틀 안에서마저 소외되는 이가 있다. 상징적 장치라 해도 결국 집단적 사고의 구획 밖으로 내처지는 이탈자는 항상 있기 마련이다. 물론, 도덕의 절대적 가치의 잣대를 들이댈 때 분명 용서받지 못할 사악한 자는 있다. 그러나 그런 자의 탈선에도 분명 매듭은 있기 마련이라고 믿고 싶다. 우리는 어쩌면 영원히 그들의 본질을 보기를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안온한 일상에 파문을 던질 지도 모를 그 불가항력이 두려워서. 연쇄 살인범 번디도 사형집행 전날 엄마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내 안에는 엄마가 기억하는 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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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1-08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는 20여년 전 드라마로 나왔지요.남자 주인공은 임성민 여자주인공에 나영희,김도연이 맡았습니다.도리스 레싱과 비교하시니 더 읽어보고 싶군요.<그해 겨울~>은 읽은지가 꽤 되었어요.
<휘청거리는 오후> 초판을 헌책방에서 본적이 있어요.세로줄에 굉장히 두툼하더군요.결국 구입은 못했어요.요즘 박완서 전집에는 나와있더군요.

blanca 2010-01-09 15:12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어렸을 때 김도연이 나오는 드라마를 엄마랑 같이 봤던 기억이 나서... 남자 주인공이 임성민이었군요 ㅋㅋㅋ 나영희가 언니였겠죠? 읽어 보니까 어렸을 때 본 드라마 기억은 어떻게 하나도 안나더라구요.도리스 레싱은 고작 이 책 한 권 읽었는데 해설만 읽고 후덜덜 했습니다. 공상과학소설부터 완전 손안댄 분야가 없더라구요. 완전 파파할머니인데 지금도 블로그 운영을 혼자 한다고 하더라구요.

노이에자이트 2010-01-09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리스 레싱의 노익장은 대단하죠.
70년대 초의 박완서 초기 장편 <휘청거리는 오후>는 읽어보셨나요? 자료에 보니 영화로도 나왔고 최불암이 나왔네요.

blanca 2010-01-09 23:01   좋아요 0 | URL
한창 읽기만 하고 정리를 전혀 안하던 시절 몰아 읽었던 작가가 박완서에요. 그래서 제가 대체 어떤 작품을 읽고 어떤 작품을 안읽었나도 모를 정도랍니다. 그 시절의 독서는 하나의 공백 같네요. 영화화된 작품이 있군요. 최불암 ㅋㅋ <휘청거리는 오후>를 한 번 찾아봐야 겠어요. 노자님은 모르는 분야가 없군요.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박완서 소설전집 9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통속적인 재미와 인간의 비열한 위선에 대한 통찰이 어우러진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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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구입의 원칙을 세웠다. 다 읽기 전에는 결코 추가 주문하지 않는다.
주문하고 배송오는 그 뜨는 간격 동안 남는 시간 한자 공부를 하기로 했다. ㅋㅋㅋ
반드시 교육부 선정 상용한자 1,800자를 통달한다.(--;)
경복궁에 가서 현판을 못읽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 그 참담한 기분이란.  
혼자 계면쩍어져서 괜히 손만 비빈다.

그리고, 소장 가치 있는 책만 구입하고, 쓰윽 읽고 두 번 다시 안 볼 책은 되도록 안사고 사더라도 바로 처분한다.
읽고 싶은 책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는 악평도 많아서 망설여진다.  바람직한 문장들을 훈계조로
조합한 자기 계발서를 읽을 나이는 이제 지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불현듯 요즘 이런 도서에 탐닉중이신
아버지가 떠올라서^^ 이 생각을 취소한다.

30대 중반으로 가면서 갑자기 내가 너무 많은 것들을 쟁여 두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각에
버리는 연습을 조금씩 시작해야 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일들을
바로 내가 하게 되는 변화의 길목에 서게 되는 것 같다.
<고등어를 금하노라>가 그 이정표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안나 카레니나>는 실물을 직접 보고 완전 반해버렸다. 즉시 업어오고 싶었지만.
표지에 반해 그 두터운 세 권의 책을 쓸어오는 것은 좀 모험인 것도 같아 주춤했었다.
소피 마르소 주연의 동명 영화가 참 재미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고전답지 않게 재미있다는 중론이라
망설이지 않고 도전해 보기로 했다. 아, 다시 봐도 너무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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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1-08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당분간 책을 사지 않고 산 책을 다 읽으려구요. 물론 벌써 오늘 선물받은 문화상품권으로 책을 사려는 강렬한 욕구에 사로잡혀있지만 ㅎㅎㅎ

blanca 2010-01-08 21:47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완전 집착 수준이에요. 정말 참아야 되는데. 읽을 책이 없으면 심장이 막 뛰어서 ㅋㅋㅋ 오죽하면 집에 온 사보를 다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겠어요. 이것도 치료받아야 할 듯.

무해한모리군 2010-01-08 23:17   좋아요 0 | URL
전 길가면서 간판이며 벽보를 보는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ㅎ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큰 눈에, 분명 성형했을 거라고 수군대며 깎아내렸던 오똑한 코를 뽐내던 도덕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어보면 그 스프 건더기 하나 더 먹으려고 하는 모습이 말이야~" 

그 뒷부분에 어떤 얘기가 이어졌는지, 아니 왜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도덕시간에 호사스러워뵈는
외모를 지닌 그 샘으로부터 나왔는지를 나는 지금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중2였나 그 때쯤 그 도덕샘이 하라는 대로
모조리 다 했던 우리 반 아이들은 너도나도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그 왜곡된 기억의 편린들을 조합해 보면 도덕샘은 산다는 것의 신산함과 그 구차함에도 살겠다고 버둥거리며 일상을 꾸려나가는 그 생의 의지를 얘기하고 싶어하셨던 것 같다. 얇은 대작가의 명작은 고전답지 않게 더없이 재미있고 익살스러웠다. 실제 솔제니친의 유형생활에 기반한 그 작품은 건더기가 더 많은 스프그릇쪽을 교묘하게 자기 쪽으로 돌려 놓는 장면이 전체를 압도하고 내 기억 속에 남았다. 어떤 기억은 특정한 감각 하나로 편집되는데 그것은 경험하지도 경험할 리도 없는 바로 그 희화화된 바로 그 장면이 풍기는 비릿하고 시척지근한 살의 냄새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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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소설책을 줄치면서 읽어 본 적 있니?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네 형제들>은 정말 한 줄 한 줄 줄치면서
읽게 된다." 안경 뒤로 느끼하다고 폄하했던 노총각 문학샘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을 때 나는 단정지었다.
 

<카라마조프네 형제들> 되게 재미없겠다! 그럼에도 무슨 부책감처럼 <카라마조프네 형제들>을 꼭 다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후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읽었다면, 적어도 픽션을 단순한 상상력의 구획이 아닌 기억해 두고 싶은 삶의 전언으로 간직할 정도의 독서를 한 사람에게는 나름대로의 존경을 바치게 된다. 아직 가보지 않은 그 세계에서 찬란히 빛나는
그 작품을 나는 쉽지 않은 독서가 되리라는 짐작과 줄을 좍좍 그어대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의 모습을 조금 미루어 두고 싶은
욕심 때문에 아직 시작하지 않았고 당분간도 시작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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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년대 민주화 운동에 투신, 여러 번의 투옥을 거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창립, 고문을 역임한 함세웅 신부님
만난 것은 종교적 회의론에 빠져 있으면서도 끝내 다른 프리즘 안에서 나를, 나의 신에 대한 사랑을, 복원해 보고 싶은
그 관성 같은 열망이 사그라들지 않았을 때였다.  

첫영세를 받는 그 6개월의 예비자 교리 막바지 즈음하여 신부님의 강론을 듣게 되었고 당시 둔중한 울림이 나의 몸 전체를 관통하는 듯한 느낌에 전율했다. 함신부님은 성직자 이전에 치열한 학자였고 삶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각성으로 말 하나 하나에 실은 그 진실의 추가 작은 성당 전체를 드리우는 듯했다.  

종교 안으로 사람과 인간사 전체를 가두려 하지 않았고 말장난으로 공허한 메아리를 매듭지으려 하지 않았다.  
그의 강론을 듣고 있으면 나는 다시 대학교 신입생이 되어 있는 듯 했다. 강론을 메모하고 정리하고
또 되새김질하는 것은 모처럼 생경하지만 찬란한 경험이었다.
 

부활절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함신부님은 톨스토이의 <부활>을 통해 강론을 열고 닫았다.
어린 시절 분명 치기로 일역에서 다시 한역으로 오독된 그 엉망의 번역서를 다 읽은 것도 같은데 그 어떤 기억도 담지 못한
나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톨스토이의 <부활>과 관련지어 설명하는 그 분의 그 빛나던 눈동자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부활은, 인생의 고난을 겪고 난 후에 그것의 의미를 알고 거기에 하느님의 사랑이 있었다고 깨닫는 순간 이루어집니다.
그 곳에 예수님의 부활이 있습니다.
고난이 지나가고 난 그 자리. 훗날 그 자리는 분명 다시 피어난다. 비로소 그것의 의미를 깨달으며 그 고난도 남기고 간 것이
있음을, 그 고난 덕택에 지금 이자리에 내가 있음을 안도했을 때 뿌듯하게 차오르던 그 미지의 느낌 속에 꼭 나의 하느님을
모시고 오지 않더라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멋진 얘기였다.
톨스토이의 <부활>은 그렇게 나의 기억 속에 드디어
아퀴를 짓게 되었다. 

 

 

 

 

 

 

 

 

정작 냉담으로 불편하고 자신없는 마음과 러시아로 떠났던 예쁜 친구의 귀향이 우정의 복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이 추억들에 얽힌 나의 슬픈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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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1/4 정도 읽게 되면 불편해진다, 에로티시즘의 향연이 너무 노골적으로 펼쳐질까봐 지레 난감해진다.
1/3 정도 읽게 되면 생각보다 음탕하지 않아 지루해진다.(저자 나보코프는 예리하게 독자들이 멈출 것이라 예견한다.)
1/2 정도 읽게 되면 대체 롤리타와 험버트가 어떤 결론을 맺을까,에 대한 궁금증으로 길을 서두르게 된다.
다 읽게 되면. 에로티시즘의 정수에 있는 어떤 아이콘으로 잘못 길을 찾은 롤리타를 데려와 도덕과 관습의 틀마저
부수어 버린 정열이 공글린 사랑 안에 가두어 놓고 싶게 된다. 

의붓 아버지가 열 두 살의 법적인 딸을 끌고 다니며 벌이는 변태스러운 도피 행각으로 <롤리타>를 규정지어 버리면 더 이상 이 책의 가치를 논할 여지가 없다. 흔히 롤리타의 이미지에 덧댄 음란하고 노골적인 장면을 기대했다면 이 책은 더없이 실망스럽고 지루하다. 그 수많은 암시들, 해독하기 힘든 암호들이 어우러져 펼져지는 난해한 기류가 몽환적인 에로티시즘을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은 결코 포르노나 각종 에로영화에 영감을 주는 것 이하로 전락할 만한 졸작은 아니다. 

험버트는 어린 소녀들에 대한 도색적 성기호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지만, 첫사랑 애너벨에게서 출발한 롤리타에 대한 사랑의 여정이 단지 육체적인 쾌락을 희구하는 욕망으로 점철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떠나버린 롤리타가 더이상 아름다운 님펫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만삭의 여인이 되어 재회했을 때도 그는 돌아오라고 눈물로 애원한다.  또한 그녀의 행복한 유년을 갈취한 것 같은 죄책감으로 몸을 떤다. 그는 미성숙이 주는 그 완전성에 대한 무한한 기대에 매혹당했지만, 그 매혹이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존중해 주지 못한 것으로 끝났음에 절망한다. 험버트는 뻔뻔하지 못했다. 그의 자책과 스러져가는 시간에서 침식당하는 롤리타에 대한 여전한 사랑은 우리가 그의 롤리타를 철저히 잘못 이해하고 그 이미지를 차용해 왔음을 깨닫게 한다.

퍼즐 같이 난해한 각종 암시 및 끊잆없는 시점의 이동, 인칭의 파괴 등이 다소 어지럽고 불편했다. 그러나 늙수그레한 중년 남자의 옆구리에 끼인 듯한 미성숙한 소녀의 이미지로만 롤리타를 생각해 왔던 나에게 롤리타는 저자 나보코프의 잃어버린 유년에 대한 비대한 그리움이고 자유롭게 쓸 수 없었던 모국어에 대한 애상어린 비가였다는 발견만으로도 값진 독서였다. 

나의 개인적인 비극은 타인의 관심사가 될 수도,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그토록 자연스러운 내 말, 자유롭고 풍요하고
끝없이 온순한 러시아어를 버리고 이류의 영어를 해야 하는 내 설움에 있다.-블라디미르 나보코프

p.s. 이 책을 들고 다니면 표지의 그 예쁜 소녀의 두 눈과 제목이 한데 모여 묘한 오해받기 쉽상이다. 다들 한번씩 책 표지와 책 주인을 물끄러미 볼 수도 있다. 그게 롤리타의 현주소다.^^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동명의 영화가 재미있고 잘 되었다는 평이다. 비감어린 애상이 잘 재현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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