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우울증 - 수줍음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
크리스토퍼 레인 지음, 이문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생리 하루 전 우울감은 바닥을 쳤다. 체호프의 <슬픔>에서 그 단어만을 우울로 치환하면 나의 얘기였다. 나의 가슴을 찢고 그 우울을 밖으로 쏟아 낸다면 온 세상이 잠길 정도였다. 우울은 분노의 또다른 이름이라는 얘기를 체현하듯 사람마다 분노를 자아내는 그 자질구레한 역겨운 구석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무언가가 흐르면서 갑자기 그 우울감도 바닥에 가라앉고 다시 예의 그 단순한 나의 감수성이 되살아나 즐거워할 구실을 찾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월경전불쾌증후군 아니, 이 책에서는 불쾌장애라고 시니컬하게 명명되어지지만 그것을 경험하면서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고통을 아주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울감의  벼리는 바로 무서운 고독감이다. 소통을 갈구하는, 아니 소통을 갈구하라고 내모는 사회에서 다 웃고 있는데 혼자 울고 있는 것 같은 그 소외감은 치명적인 고통스러움을 동반한다.  

<만들어진 우울증>수줍음 같은 일상적 감정을 심리적 갈등이나 사회적 긴장이 아니라 뇌의 화학적 불균형이나 신경전달물질의 결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약물치료라는 단순하고 근시안적 해결책에 집중하는 미국의 정신의학계와 또 그것과 필연적으로 유착되어 있는 다국적제약회사들의 상업적 흑심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더 나아가 이러한 개성에 대한 억압이 사회 전체의 규범 강요와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짚어주고 있다.  

특히 저자 크리스토퍼 레인은 미정신의학협회의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이하 DSM) 개정작업을 주도한 로버트 L.스피처 박사가 환자들이 호소하는 고통 그 자체보다는 그들의 적응행동을 정신질환으로 범주화하는 데에 골몰했다고 지적한다. 실제 DSM의 진단 매뉴얼에는 인터넷 중독, 강박적 구매장애, 폭식 장애, 월경전불쾌장애를 추가할 것이 확실시된다고 한다. 이 매뉴얼의 진단에 따르면 현대인들의 과반수가 정신장애를 앓고 있어 시급히 SSRI류의 약물을 투여받아야 하는 것으로 결론난다.  

사실 이 책은 미국의 약물만능주의에 초점을 맞추어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실정에 완벽하게 부합하지는 않는다. 기분의 불균형에 대한 시급한 치유책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서구인들과는 달리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권의 문화는 우울하다,거나 분노가 치밀어오른다,는 감정의 발로 자체에만도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 감정이 휘몰아치는 불균형 상태도 병이라기보다는 개인의 부정적 기질이나 불운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성도 정신의학계 의 미국의 진단매뉴얼 도입과 다국적제약회사의 공격적인 마케팅 등으로 가파르게 그들의 약물신화에 경도되어 가고 있다. 비근한 예로 남발되는 ADHD 진단과 그에 따른 빈번한 약물투여만 봐도 그렇다. 이제 우리는 공공장소를 쿵쿵거리며 뛰어다니는 사내아이들을 활발한 기질이나 훈육의 부족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치료가 필요한 아픈 아이로 보는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이 전적으로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지만 어느 쪽으로든 과하게 닮고 치우치는 경향성은 위험을 담보하고 있다.  

약을 팔기 전에 병을 팔아라! 다국적 회사의 항우울제 마케팅의 그 교묘하고 은밀한 공격성은 경악스러웠다. 일단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우울감을 장애로, 질환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하고 나면 그 진단 사이클은 자체 순환하게 되어 있다는 얘기. 놀랍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언젠가부터 우울증 자가진단 매뉴얼을 쉽게 접하고 거기에 체크해 가며 스스로를 우울증 환자로 자가진단하는 풍경을 연출하게 되었다. 





이 광고는 마치 공익 광고같다. 수줍어하는 아가씨와 직장 업무에서 좌절하는 젊은 남자의 좌절감을 쓰다듬어주고 마법의 신효한 해결책을 제시해 줄것을 예고한다. 그러나 가만히 이 광고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것이 사실은 일상적 감정이 아니라 장애라고 속삭이고 스미스클라인의 팍실이라는 약물을 투여받을 것을 교묘하게 설득하는 작업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말미에 조너선 프란젠의 <교정>의 인용은 웅변적이다. 

"정신 '건강'이란 소비경제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이야. ....... 돈을 소비하려는 욕망의 부재는 값비싼 약물치료가 요구되는 질환의 한 증상이라고." -p.289 

저자가 현 미국의 약물투여가 성형 정신약리학으로까지 변질되었고 이 약물들이 인격조작이라는 극단의 환상까지 키워가고 있다고 성토하고 있는 것에서 더 나아가 구성원 개개인의 독특한 개성적 기질을 용인해 낼 수 없는 국가의 전체주의적 강요와도 맞물려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여기에서 이 책의 가치가 드러난다. 이 책은 단순히 프로이트와 이별한 미국의 정신의학계의 기계적인 정신질환 분류표 작성과 제약회사의 상업적 흑심만을 비판하는 그렇고 그런 대안없는 욕쟁이 할멈이 아니다. 환자 개개인의 고통의 그 심층적인 심연에 대한 이해 대신 쉽고 간편하게 매뉴얼에 그 환자의 증상을 귀속시킴으로써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치료 풍토와 사회적 규범의 틀 안에서 그것의 내재화에 순응하지 않는 수많은 외톨이들에 대한 강박적 따돌림에 대한 통찰력 있는 비판으로 나아간 그 지점에서 저자의 인간애의 지평은 확대된다.  

마음이 아픈 사람도 몸이 아픈 사람과 같이 배려받고 치료받을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데에는 극렬히 동의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특이한 기질을 가졌거나 조직에 융화될 수 없는 몇 몇의 특별한 사람을 내치는 데에 둔감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를 돌아봐야 할 것 같다. 개인들이 느끼면 사회는 휘청거린다,는 올더스 헉슬리 소설 속 얘기처럼 우리는 느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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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2-12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an't. I just can't.

제가 저 광고와 저 구절을 얼마나 연속적으로 많이 떠올렸는지! 그런데 이런 것이었는지!

blanca 2010-02-12 09:47   좋아요 0 | URL
Jude님 저 광고 어디서 보셨어요? 저는 처음으로 봤는데 그게 항우울제 광고라는게 참 충격적이더라구요. 알고 계셨다면 더 놀라셨을 것 같아요. 광고 자체만 놓고 보면 더없이 뭐랄까 상업광고가 아니라 공익광고 같은 느낌이라서요.

마녀고양이 2010-02-12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샀는데, 아직 못 읽었어여..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때, 우리나라는 심리 상담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져. 외국도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더 약으로 해결을 보려해여,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데도 불구하고. 결국 이 약들은 호르몬제잖아여? 그래서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빨리 읽어야지

blanca 2010-02-12 16:52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좋아하실 것 같아요. 참, 댓글에 쓰려다가 상담대학교 합격 정말 축하드려요! 약물 치료가 불가피할 때도 있지만 또 약물치료와 심리치료가 사려깊게 병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예민하고 중요한 부분이라 뭐라고 말하기는 참 망설여지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Kitty 2010-02-16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극히 단순한 O형 인간이지만 이 분야에는 좀 관심이 있어서
이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다뺐다하고 있는데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

blanca 2010-02-17 12:28   좋아요 0 | URL
제 친구 대부분이 O형인데. 저는 악명높은 ㅋㅋㅋ B형이랍니다. 키티님, 이 책 저도 오래 망설이다 하이드님 서재에서 보고 자꾸 눈에 밟혀 사고 말았답니다. 한 권쯤 두고 읽어도 괜찮을 만큼 내용이 좋더라구요.
 

제기랄, 그 후에도 그가 사후에 누리는 고가의 그림값과 정당한 예술적 평가와 존경에 접할 때마다 그 소리가 나왔다. 
                                                                                                         -『우리시대의 소설가 박완서를 찾아서』중 

박수근이다. 박완서가 『나목』이 여성월간지 소설 모집에 당선되어 소설가가 된 것도 결국 미8군 PX 초상화부에서 만난 가난한 화가 박수근을 증언하고 싶었던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어수룩하게 덩치만 큰 화가는 미군들이나 그들의 연인과 가족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단돈 4달러를 받아 생활했다. 그의 <빨래터>가 최근 사십오억 이천만원이라는 천문학적 숫자의 금액에 낙찰되었다는 소식은 그래서 감탄과 더불어 비감어린 씁쓸함을 꼬리처럼 달게 된다. 그가 생전 반도호텔 화랑에 매일 출근도장을 찍으며 "그림 팔렸어요?"를 외쳐댔던 것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그 호텔의 수세식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한 구실도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얘기를 고등학교 때 들었던 것도 같고 대학교 때 들었던 것도 같은데 그 순간 박수근을 잘 알지 못하면서도 그 예술가의 신산한 삶 전체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 같아 가슴이 참 먹먹했었다. 그 후로 나는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애잔한 슬픔을 느낀다. 죽고 나서 수많은 위작 논란에 시달릴 만큼 또 미술품 경매마다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는 뉴스의 중심에 설 만큼 경외받고 있는 그의 현재가 과연 그의 소외당한 삶 전체를 위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니 나도 박완서의 '제기랄'에 동조할 수밖에.  

 박수근 <빨래터>



너의 짐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를, 될 수 있으면 아주 많이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우리가 써버린 돈을 다시 벌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전혀 없다. 그림이 팔리지 않는걸...... 『반 고흐, 영혼의 편지』중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보며 언제나 그것을 완전하게 화폭에 담아내기를 소망했던 사내. 결국 그 별로 직접 가 닿고 싶었던 그. 삶 전체를 통해 유일하게 끝까지 사랑하고 죽음까지 내맡겼던 동생 테오에게 보낸 이 편지의 바로 이 대목. 그림이 팔리지 않는걸. 그림이 팔리지 않는걸. 테오는 시대가 우리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도 필요없다고 오기어린 대거리를 내던지듯 답장한다. 반 고흐는 미술계에서 하나의 보통명사처럼 자리잡은 화가다. 우리는 반 고흐를 모르거나 그의 그림을 부정하는 사람을 마주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우리 모두에게 반 고흐는 예술에 가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그 불편한 강박마저 무장해제시키는 그런 존재다. 그러나 그런 존재가 생전에는 경제적 고충에 너무 치여 물감과 종이마저 제대로 누릴 수 없었던 비참한 나날들을 보냈음은 주지하지 않는다. 그를 온전히 그 자체만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생계까지 해결해 주었던 테오마저 그의 사후의 명성과 보상을 누리지 못하고 형을 따라 몇 개월 안 되어 죽어버린다.   

 

그리고 다산 정약용. 그가 아들들에게 자신이 죽고 나면 그를 탄핵한 글과 재판기록만으로 자신을 평가할 것을 우려한 대목은 다산의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방대한 저술이 가지는 미래적 의미를 예견한 것이기도 했지만 현생에서 제대로 평가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학문성과에 대한 비통함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그러나 알아주는 사람은 적고 꾸짖는 사람만 많다면 천명이 허락해 주지를 않는 것으로 여겨 한 무더기 불 속에 처넣어 태워버려도 괜찮다. -자찬묘지명 중 

 

 

 

 

 

 

 

 

 

하늘이 내린 재능을 반석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그들의 예술적 학문적 성과의 탑은 드디어 우리를 굽어 내려다볼만치 성장하였다.  그러나 정작 그 탑을 삶의 고충들과 악전고투하여 만들어 낸 당사자들은 비참하게 삶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말았다.  

이제서야 환호작약하는 우리들. 화가는 자신의 작품으로 다음 세대에게 말을 건넨다는 고흐의 자기암시적인 얘기도 언제나 한 발 늦는 우리의 심미안의 그 허술함을 감싸주지는 못한다. 다시 한 번 그들을 살게 할 수 있다면. 다시 한 번 그들에게 붓을 잡을 수 있게 한다면. 이제 우리는 온 몸으로 지지해 주고 온 맘으로 후원해 줄 수 있을 터인데.
깨달음은 항상 늦게 오고 후회는 언제나 절절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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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08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안타까운 일이죠. 시대가 이해해주지 않았던 이들이 어찌 고흐와 다산 뿐이겠습니까마는...
40세의 박완서를 등단시킨 '나목'을 읽는 내내 박수근 화백이 가슴 아팠지요.

blanca 2010-02-08 22:31   좋아요 0 | URL
가만히 생각해 보니 순오기님 말씀처럼 사후에야 겨우 인정받은 예술가들이 한둘이 아닌 것 같아요. 지금도 현재진행형일거구요. 그런데 유독 저 세 사람은 더 짠하게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해서일 것 같아요^^;;

잘잘라 2010-02-09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다른 얘긴지는 몰라도..
제가 김추자 노래를 들으면서 늘 하는 말,
"와우~ 정말 대단하다. 그 시대에 어떻게 저런 노래를!!!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흠.. 그런데먈야. 난 이런 생각이 들어. 만약에,
김추자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마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또 다른 음악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그래서 김추자는 그냥 가수가 아니라,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어."
님의 글을 읽으니 또 김추자 노래를 듣고싶네요.

blanca 2010-02-09 13:59   좋아요 0 | URL
바닷가식당님 안녕하세요. 배경의 꽃과 예쁜 소녀가 너무 잘 어울리네요. 맞아요. 어쩌면 다 그 시대에 태어나 그런 노래를 부르고 그런 그림을, 그리고 책을 쓴게 나름대로 운명이고 또 결핍들이 그것들에 녹아 더 좋은 것들을 만들어 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추자는 그 멋진 춤솜씨만 기억하고 노래는 안들어봐서 아쉽네요. 기회가 되면 들어봐야겠어요^^

노이에자이트 2010-02-10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흐보다 정약용은 더 행복한 남자였죠.정조 집권기 때는 젊은 관리로서 위세도 꽤나 부렸지 않습니까?

blanca 2010-02-10 23:01   좋아요 0 | URL
예.그건 그런 것 같아요. 고흐는 단 한 번도 전성기라는 걸 가져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18년 간의 유배 생활, 산 자식보다 죽은 자식이 더 많았던 것. 정약용도 말년이 참 비참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이라...(이렇게 얘기하면 꼭 친밀한 지인처럼 들리지만^^;;) 좀 편향됐던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토요일 오후 두시 대형서점 풍경. 수많은 책표지에 떨어지는 그 수많은 무심한 시선들. 그 시선들은 약간의 설레임과
아주 약간의 책 그자체에 대한 관심과 그리고 또  익명의 옆사람들에 대한 무해한 호기심들을 담고 있었다. 

나는 메뚜기처럼 서가 사이를 요령좋게 뜀박질하는 아이와 책 표지를 동시에 챙기느라 분주해서 그 대열에 참가할 수는 없었다. 너무나 많은 책들. 그래서 되레 개별의 특별한 관심을 받을 수 없고 그저 반지르르한 표지만으로 자신을 호소해야만 하는 그 가벼운 한계. 그 속에서 나를 이끌던 이 책. 프랑수와즈 사강의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슬픔이여 안녕''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고 나서 적잖이 실망했었다. 줄거리 대신 가벼운 그 솜사탕 같은 느낌만 남았고 나는 사강을 그 시대의 패리스 힐튼 정도로 기억하게 되었다. 파티걸. 과대평가된 미모의 작가. 그러니까 문단계에도 항상 젊고 도발적이고 사랑스러운 요정을 필요로 하니까. 열아홉살의 베스트셀러 작가는 스피드,마약, 도박에 중독되어 수많은 스캔들의 중심에 서는 수순을 밟게 되었다.  

문학은 그 자체로 전부였다. <중략> 문학은 모든 것이었다. 최선의 것, 최악의 것, 운명적인 것이었다. 일단 그것을 알고 나면 해야 할 다른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p.204 

이런 문학에 대한 열정을 지닌 그녀가 도박에, 스피드에, 그리고 운명에 중독될 수밖에 없었던 그 자신을 변호하는 책은 아니다. 그녀는 변호하지 않는다. 합리화하지 않는다. 도박과 스피드가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악덕과 무모한 광기의 대명사가 아니라 섬세한 사려깊음과 미덕과 용기로의 이끌림을 포함한다는 얘기가 그녀의 매력과 맞물릴 때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아주 위험한 동조를 자아낸다. 기약 없는 사랑과 의미 없는 무분별에 도착되어 있는 그녀의 얘기는 빌리 홀리데이, 테네시 윌리엄스, 오손 웰스, 장 폴 사르트르에게 가 닿는다. 특별하고 의미있는 추억들은 그녀만의 청량하고 달콤한 문장들에 둘러싸여 하나 하나의 인물에 대한 아름다운 오마주가 된다. 특히나 정확히 삼십년 전 같은 날에 태어난 사르트르가 죽기 일 년 전 그녀와 가진 아름다운 추억은 너무 아름다워 기억의 갈피짬에 꼭 끼워두고 싶어진다. 

사르트르는 이미 그녀와 재회했을 때 실명 상태였다. 이 사려깊은 맹인과 이 아름답고 도발적인 젊은 작가가 열흘마다 저녁 시간을 함께 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 이 책은 충분히 그 역할을 다했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사강이 사르트르에게 보낸 편지를 여섯 시간에 걸쳐 녹음하여 건네 주었다는 얘기. 사르트르는 그 녹음 테잎을 들으며 저녁 시간을 보낼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이별. 영원한 이별. 둘이 만났을 때 그 둘을 제외한 그 어떤 다른 사람의 얘기도 나누지 않았다는 그들의 그 충만한 시간도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기억의 창고를 제외하고는. 

때때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 답을 나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 벼락 맞은 남자밖에 없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었다. 사르트르는 1905년 6월 21일에 태어났고, 나는 1935년 6월 21일에  태어났다. 이 지구에서 그 없이 삼십 년을 더 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p.192  

 

독서에 대한 얘기도 매우 인상적이다. 프랑스인들이 밟는 고전적인 독서의 경로가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카뮈의 '이방인', 랭보의 시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며 그 지점마다의 그녀의 깨달음과 추억들을 보여준다. 특히 그녀가 우리가 사랑에 빠지면 흔히 저지르는 오류인 연애 관계 속에서 상대방의 눈에 비친 자신의 미화된 영상에 대한 집착이 아닌 상대방의 진정한 본성을 추구하는 길을 걸어야 함을 책과 독자의 관계에서도 강조하는 것은 기억해 둘 만하다. 우리는 흔히 아름다운 책에 경도되어 있는 나 자신의 모습에 흠뻑 빠지게 되니까. 그래서 특히나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그 책에 그 사람에 경도되어 있는 자신을 나타내 보이는 그 행위에 중독되기 마련이니까.  

사춘기 소녀가 무신론자의 그 아슬아슬한 공포 속에서 기우뚱대다 기댄 어깨는 카뮈였다고 한다. 솔직히 카뮈가 대머리였다면 그렇게 '반항인'에 깊이 경도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대목은 무척 귀엽다. 산비탈 위 하얀 설원 위에 앉아 카뮈의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 안에 편하게 기대는 그녀의 모습은 영롱하다. 누구나 독서에 얽힌 특히나 유년이나 사춘기 시절에는 더더욱 소중한 추억들을 가지게 마련이지만 그녀의 추억은 더 강렬하고 더 의미있는 표지자 같다.  

나는 사강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를 파티걸이 아닌 문학 그 자체를 아주 진지하고 사려깊에 받아들이는 예술가로서 기억하게 되었다. 다시 '슬픔이여 안녕'을 읽어보게 될 것 같다. 이제는 열아홉살 그녀가 하고 싶었던 그 얘기가 사실은 그 시대의 달콤한 꿈에 대한 것이었다는 사연을 가지고. 

나는 지나치게 나 자신으로서 강렬하게 살았던 것이다. 그런 만큼 다른 누군가가 내 대신 살게 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말해, 나 자신의 존재가 완벽하게 느껴지도록, 다른 누군가가 살아가는 모습을 책을 통해 읽을 필요가 있었다.-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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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08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강~ 그녀는 우리 여고시절 에밀 아자르와 더불어 열광하게 만들었죠.
하지만 한때 유행처럼 지나친 작가라 그후 다시 찾지는 않았는데 이 페이퍼를 보곤 솔깃하네요.
님이 쓰는 글들은 어찌 그리 맛이 나는지...너무 좋아요.^^

blanca 2010-02-07 19:24   좋아요 0 | URL
근데 순오기님 저는 왜 여즉까지 에밀 아자르를 몰랐나 몰라요. 어디 갔다 온건지^^;; 순오기님이 너무 좋다니 제가 더 좋네요^^;;

후애(厚愛) 2010-02-08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서재에 방문해 주시고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blanca 2010-02-08 13:52   좋아요 0 | URL
이렇게 또 친절하게 와주셨군요. 이미 반나절이 지나갔는데 지금부터 행복하게 지내겠습니다.^^ 후애님은 지금 취침중이시겠죠?(아마도 시차가) 행복한 꿈 꾸고 계시기를....

gimssim 2010-02-08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강의 책이 새로 나왔군요.
고백하자면 먼 옛날 사강에 열광한 건...아마 그녀의 보이시한 모습 때문이 아니었나 싶군요.
나이들어 읽는 <슬픔이여 안녕>은 어떤 느낌일까?
그리고 지금에 와서 고백하는 <고통과 환희의 순간>은 또 어떨까? 기대가 됩니다.

blanca 2010-02-08 22:2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중전님. 반갑습니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짧은 머리, 그리고 당돌한 행동들. 전형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보이쉬한 모습인 것 같아요. 안그래도 제가 너무 뭘 몰랐을 때 대충 읽고 평가한 것 같아 조만간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고통과 환희의 순간>은 생각보다 훨씬 진지한 책이더라구요.
 
작가의 집 - 책들이 탄생한 매혹의 공간
프란체스카 프레몰리 드룰레 지음, 이세진 옮김, 에리카 레너드 사진 / 윌북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그 집은 우리를 볼 줄 아는 눈과 마음과 혼이 있었다. 그 집에는 합의, 요청, 깊은 공감이 있었다. 그 집은 우리의 일부였고 우리는 집의 신뢰를 얻어 은총과 축복의 평화 속에 살았다. -마크 트웨인 p.128  

죽어있는 사물의 틈새 마다 삶의 숨결을 불어넣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사물이 살아서 삶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우리는 그래서 집을 예사롭게 보고 지나갈 수가 없다. 특히 읽고 쓰는 것을 사랑하는 이들이 그것의 역사를 부려 놓는 서재에 대하여 가지는 그 소망과 애정의 깊이는 한정없다. 아름답고 특별한 서재를 가진 이들의 사연과 더불어 그것을 염탐하는 재미는 황홀하다.  

『보그 이탈리아』의 편집장을 지냈던 저자의 글과 『엘르 인터내셔널』등에 사진을 싣는 작가의 사진이 만나 이루어낸 공동성과는 아슴푸레한 추억의 그리움이 감싸는 반짝이는 사연들의 향연이다. 버니지아 울프, 마크 트웨인,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등을 제외하면 생소한 작가들이지만 그들의 독특한 서재와 각각 말미에 실린 작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만나는 지점에 서는 것은 안온하고 유쾌했다. 더불어 새로 알아가는 작가들의 생애와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축약된 그들의 저작에 대한 관심은 부록으로 얻는 셈이다. 



 

이탈리아의 소설가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서재가 인상에 남는다. 바다를 면한 통유리창 앞에서 읽고 쓰는 것에 대한 로망은 누구나 한번쯤 가져봄직하다. 하지만 그의 서재가 뇌리에 박힌 것은 친구 파졸리니와의 '두 집 살림'덕택이다. 

두 친구는 집을 반쪽씩 차지했다. 파도의 리듬처럼 이해,우정,애정이 갈마드는 짧은 시기가 시작됐다.-p.446 

연인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지만 친구와 공간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영역과 인생을 존중해 주는 일은 특별한 지향처럼 받아들여진다. 나의 절친한 친구와 각자의 연인을 둔 채 함께 읽고 쓰고 한다는 것은 각자의 인생이 평행선처럼 나란히 놓여지며 때로 교차하는 일이라 어렵고도 특별히 충만된 삶이다. 모라비아는 이 친구 파졸리니의 죽음으로 비극을 맞게 되지만. 

항상 하늘색 종이에 글을 썼다는 버지니아 울프와 한 때 그의 동성 연인이었던 비타 색빌웨스트의 집,서재를 같이 놓고 비교해 보며 읽는 재미도 가질 수 있다. 헤르만 헤세의 '클링소어의 마지막 여름'의 배경이 된 카사카무치의 집 사진을 같이 펼쳐 놓고 작품의 배경을 받아들인다면 생생하고 절절한 독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들이 가고 남아 그들의 펜끝에서 흘러나오던 수많은 이야기들의 마침표 만큼 허전하고 아쉬울 그 공간은 때로는 연인이, 때로는 자식들이 남아 그들의 삶 자체로 갈무리하고 있다. 과거로 흘러간 이야기들은 언제나 한 겹의 환상이 덧씌워져 꿈처럼 아득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삶이 꺼지고 남은 그 잔영이 드리워진 그들의 서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서재에서 시작하고 끝났을 그들의 읽고 쓰는 것에 대한 사랑이 전해져 와 그들의 문장들을 예사롭게 보아 넘길 수 없게 된다.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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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06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외국 작가들의 집, 책들이 탄생한 매혹의 공간이라니 관심이 확 쏠리네요.^^
서해문집에서 나온 '작가의 방'에서는 우리나라 대표작가 6인(이문열, 김영하, 강은교, 공지영, 김용택, 신경숙)의 서재를 보여주지요.

blanca 2010-02-06 23:59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이 얘기하신 비슷한 책을 읽었던 것도 같은데 작가 이름들을 보니 다른 책이군요. 솔깃합니다. 이런 류의 책은 그저 보는 것 만으로도 괜히 흐뭇해져요. 언젠가는 저도 아담한 서재를 꼭 가지고 싶어요.

순오기 2010-02-07 16:56   좋아요 0 | URL
작가들의 서재는 정말 부러움의 절정이지요.^^
 
독이 되는 부모
수잔 포워드 지음, 김형섭 외 옮김 / 푸른육아 / 2008년 10월
구판절판


우리는 가족의 규칙에 맹목적으로 복종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역자가 되기 때문이다. 국가나 정치적 이상, 종교에 대한 충성심은 가족에 대한 충성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충성심을 갖고 있다. 이 충성심은 가족체계와 부모,부모의 신념에 우리를 종속시킨다.-182쪽

독립된 인격체가 되는 걸 허용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란 킴과 같은 어른들은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에 중독되어 끊임없이 남의 인정을 갈구하게 된다.-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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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니앤 2011-11-29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겨서 사보앗는데 실제, 그다지 잘 읽히지는 않는 책이엇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