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으로 죽음을 앞둔 은사와 삶, 죽음, 문화, 노화, 회한 등 우리가 살며 언제나 당면한 문제들을 처리하느라 후순위로 미뤄놓고 미처 답하지 못하였던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 함께 성찰하고 해답을 찾아 나가는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은 한번 읽고 끝날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이자 제자였던 미치 앨봄과 비슷한 연령대에 읽었을 때에는 솔직히 지나치게 원론적인 이야기의 반복이 아닌가 싶었으니까. 그로부터 십 년 정도가 흐른 뒤에 다시 원서로 접하니 감상이 완전 달라졌다. 


















이번에 읽엇을 때에는 미치가 실제 모리 교수와 대학 시절 나누었던 교감을 추억한 장들의 여운이 길었다. 서로를 코치와 선수라고 친근하게 호명하며 함께 논문을 쓰고 청춘의 고민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조언해 주는 따뜻한 교수의 모습은 미치 앨봄이 이런 스승을 가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이유를 충분히 짐작케 했다. 이 시간 이후 십수 년이 지나 돌아온 탕자처럼 이제는 노쇠해진 노교수 옆자리에 서 있는 중년의 제자가 스승에게 바치는 사랑과 존경은 무에서 갑작스럽게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 읽었을 때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모리의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도 감동적이었지만 그 둘이 나눈 추억의 한 장이 유독 찬란하게 빛났다. 결국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노교수의 아포리즘은 그의 영정 앞에 이 책을 바친 제자와 몸소 경험한 것이라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다. "오늘이 마치 그날인 것처럼" 우리가 언제나 우리의 마지막을 의식하며 삶을 산다면 그 삶은 더욱 충만하고 절절한 것으로 공명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무엇보다 타인과의 깊은 유대와 사랑이 있다. 
















제목이 언뜻 진부하게 들리지만 심리학자 켈리 맥고니걸의 책들은 언제나 제목보다 몇 배는 강력하고 심오한 메시지를 명쾌하게 전해준다. 우리가 일상에서 혹은 삶의 상실을 겪으며 필연적으로 통과하게 되는 스트레스 상황이 이후에 우리의 심신에 미치는 영향이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다는 메시지가 여러 과학적 논거에 의해 제시된다. 긴장감, 심장 박동의 증가 같은 사전 스트레스 반응이 오히려 주어지는 과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준비 태세가 되고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긴 각종 재난 후에 오히려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조망하는 데에 변곡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기억할 만하다. 스트레스를 거의 경험하지 않는 사람의 삶은 행복감과 충만감을 느낄 확률도 그만큼 낮다고 한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온갖 부담스럽고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일들이 결론적으로는 우리의 삶 그 자체를 사는 행위 자체를 더욱 더 유의미한 것으로 확장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고립되기보다는 타인들과 더욱 연결되고 그들의 도움과 지지를 기꺼이 받으려는 자세와 역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려는 봉사의 자세가 병행되어야 더욱 효과적으로 스트레스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상황이 힘들고 암울할수록 오히려 더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말고 개방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결되어야 한다.  "스트레스를 통해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가?"라는 저자의 질문에 대한 여러 실용적인 해법이 예시와 더불어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 있어 추천한다. 


어떤 때에는 가장 진부해 보이는 것이 가장 명쾌한 답이 될 때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시마 유키오는 대단히 논쟁적인 작가다. 생전에 천황의 복권과 자위대의 독립국 군대에 걸맞은 지위를 부여하는 헌법 개정을 요구했으며 이 명분을 외치며 공개적으로 할복 자살했다. 노벨 문학상에도 회자되었던 천재적인 작가의 입지와는 별개로 이 부분은 일본 국내에서도 많은 논란을 촉발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이 작가에게 가지는 불편한 감정과 불온한 인상은 당연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의 평에는 언제나 거부감을 드러내는 의견이 따라온다. 전쟁을 미화하고 그 전장에서 전사하는 젊은이들의 충절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피해자의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것이라 불편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가지는 그 정묘한 세계의 깊이와 넓이는 경이롭다. 절로 감탄하게 되는 치열한 묘사들의 문장, 그 문장에 설복하지 않는 서사의 강력한 힘,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이야기의 힘과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저력이 놀랍다. 



















아름다우면서 깊이가 있으면서 편협하지 않으며  더불어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재미있다. 의지와 숙명의 대결, 정념과 이성의 대립, 역사와 개인의 긴장, 로맨스와 철학, 죽음과 삶의 의미, 이 모든 것이 태피스트리처럼 직조되어 있는 이야기다. 메이지 시대가 막을 내리고 다이쇼 시대가 시작된 1912년대를 배경으로  마쓰가에 후작가의 후계자 기요아키가 황실의 정혼자 사토코와 사랑에 빠지며 격랑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다. 당시의 최상류층의 습속을 엿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미시마 유키오는 기요아키의 청춘이 지나는 자기 본위의 시선과 그것의 배경을 균형감 있게 비중을 조절하며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감각적인 묘사의 문장들은 더없이 농염하고 농밀하다. 기요아키의 절친한 친구 혼다는 끊임없이 흔들리는 친구와는 달리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친구가 뛰어드는 정사의 관찰자이자 조력자가 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혼다는 주인공의 주변인이 아니라 주인공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게 할 정도로 시종일관 <봄눈>의 사고의 주류적 흐름을 담당한다. 특히 불교적 세계관에 대한 천착은 깊은 복선이 된다. 실제 미시마 유키오가 죽기 전 탈고하여 완결한 '풍요의 바다' 연작 중 <봄눈>은 1권에 해당한다. 죽음과 환생에 대한 이야기가 따르게 된다고 해서 기대가 크다. 


그는 바다의 조수와 기나긴 시간의 이행, 그리고 자신도 머지않아 늙으리라는 생각에 돌연 숨이 막혔다. 노년의 지혜 따위는 이제껏 한 번도 바란 적 없었다. 어떻게 하면 아직 젊을 때 죽을 수 있을까, 그것도 되도록 괴롭지 않게, 탁자 위해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 둔 화려한 비단 기모노가 어느 틈에 어두운 바닥으로 흘러 떨어지는 것 같은, 그처럼 우아한 죽음.

-미시마 유키오 <봄눈>


마치 미시마 유키오 본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 투영된 듯한 문장이다. 그는 사십대에 자살했다. '우아한 죽음'이라는 대목에서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의 지극한 탐미주의가 스며든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기요아키와 사토코의 사랑이 해피엔딩일 리가 없다. 그 처연한 결말의 증인으로서 혼다는 홀로 남는다. 혼다는 그 자신은 상처받지 않으며 친구 기요아키를 통해 청춘의 그 무모한 찰나적 열정의 간접 체험자가 된다. 살아남아 시대에 참여하는 그의 이후가 궁금하다. 유한한 인간이 찰나 같은 삶을 통해 억겁의 역사를 관통하는 이야기의 마력에 절로 빨려들어간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0-09-26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대에 목격자가 된 혼다 라는 인물에 더 집중하면서 읽었네요.
작가가 자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느낀 모든것을 다 담았다는 말 거짓이 아니라는건
해외에서 소세키 보다 더 대단한 작가로 평가하는 이유가 이책이 말해주는것 같아요.
올해 안에 2부 출간 안될것 같죠
안나 카레니나나 전쟁과 평화 같이 한꺼번에 4부작을 출간해주지 ㅜ.ㅜ

blanca 2020-09-27 09:33   좋아요 1 | URL
스캇님 덕분에 동네 서점 갔다 냉큼 집어 구입하게 된 거예요. 정말 경이로운 작품이었어요. 그냥 한꺼번에 4권 주욱 출시하면 안 되나요? 저 같은 기억력으로는 흑 2권 나올 때쯤 1권 내용 기억 못 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그래요. 민음사 번역으로 읽고 있는데 뭐 이건, 기다리다 목 빠지겠어요. 관계자분 좀 읽어주시기를. 전권 내용이 기억이 안 난다니까요.
 
유년기의 끝 - 아서 C. 클라크 탄생 100주년 기념판
아서 C. 클라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SF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은 단순히 제목에 이끌렸다. 상상력에 의거하여 작가가 세운 가상의 제국에 제대로 동화되지 않으면 SF는 몰입하기가 어렵다. <유년기의 끝>에는 묘한 이야기의 견인력과 흡인력이 있다. SF에 별로 관심이 없는 독자라도 쉽게 빠져들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유명세가 이름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년기의 끝>은 '오버로드'라는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내려와 인간들을 연구하고 지배하다 결국 개별성이 제거된 거대한 집단정신 에너지 군체가 되어 심우주로 뻗어나가는 인간들의 진화 작업을 마무리한 후 떠나는 이야기다. 결국 이것은 인류의 멸망이기도 하고 지구라는 행성의 절멸의 이야기이자 인간이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진화하는 스토리다.


오버로드 입장에서 인간은 자신들의 과학과 기술의 진보로 서로를 공격하고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어리석은 종족이다. 그들은 인간을 구원함과 동시에 자신들 또한 '오버마인드'의 지배를 받는 한계를 극복할 방법을 모색하지만 그 모든 시도와 질문의 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클라크는 거대하고 심오한 질문들만 남겨둔 채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한계는 보이지만 이 지구라는 행성과 지금이라는 시간의 차원을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조망하는 식견을 제공해준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지평을 넓힌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집착하고 추구하고 경쟁하는 것들이 과연 우주적 차원에서 가지는 가치나 의미는 무엇일까. 위에서 내려다 본 인간사는 볼품없고 미시적인 낭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서 C. 클라크의 질문은 고차원적이고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지점까지 천착해서 내려간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여기와 저기, 모든 시공간의 경계는 어그러지고 그러고 나도 남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근원적인 탐사가 가지는 심오한 무게가 느껴졌다. 


그러나 단순히 외계 생명체와 인간과의 관계를 지배와 피지배, 또 그 위에 '오버마인드'의 존재를 가정한 것 등은 이분법적인 식민지배관이 투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을 면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오버로드'가 지구라는 행성에 돌아와 행했던 지배 행위가 가지는 의미도 모호하다. 두 개의 대전과 냉전 시대의 군비 경쟁 등의 당시의 상황을 감안하면 모든 걸 은유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시각은 이 이야기를 지나치게 평면화시킬 우려가 있다. 이야기가 가지는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그가 설계한 우주의 배경과 시공간에 대한 촘촘하고 아름다운 묘사는 수많은 우주 공상 영화와 이야기들이 태어나는 토양 역할을 하게 된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고 명료하면서도 대단히 시각적이라 눈앞에 거대한 우주 정거장의 환시를 보여주는 차원의 것이다. 


"별들은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요." 

이 메시지는 <유년기의 끝>의 핵심이다.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이 이야기에 흠뻑 몰입하는 우주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일을 겪고 어떤 느낌을 가질 때 불현듯 드는 생각이 있다. 혹시 나만 이런 느낌을 갖는 건 아닐까? 나는 비정상일까? 아웃사이더인가? 그러다 어느 순간 지극히 정상적이고 세상에 속해 있다는 잠시의 환각이 지나가는 시기가 있긴 하다. 사람들을 만나 감정과 생각을 나누고 공감하고 그들이 내게 기대하는 역할을 무난히 수행하고 때로는 도움을 주고받고 그러면서 시간이 간다. 그러나 다시 이러한 고독과 고립의 순간은 반드시 돌아온다. 침잠과 우울의 시간이 온다. 해결되지 못했던 질문들 또한 다시 회귀한다. 그런 상태를 오고가며 삶이 간다. 


캐럴라인 냅의 에세이는 탁월하다. 모호하고 혼란스러웠던 감정들이 명확한 그녀의 언어로 제대로 기술된다. 내가 미처 표현 못했던 어두운 심연을 해체하고 너무 찰나로 지나가 차마 포착하기 힘들었던 단상들을 단정하게 채집하여 다시 돌려준다. 누구나 그녀의 글을 읽고 이 한때 엄청난 알콜 중독자였던 거식증이 있었던 명민한 작가의 얘기에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일 수밖에 없는 챕터를 만나게 된다. 


내 경우,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고독과 고립의 경계선을 잘 유지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둘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사회적 기술은 근육과도 같아서 위축될 수 있고 내가 경험한 바로도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사람과의 접촉을 유지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다. 

p.48


수줍음을 잘 타고 상류증 가정에서 자라 높은 기대치를 받고 자란 우등생 소녀는 삼십 대의 반려견을 키우며 고독과 고립의 경계선을 곱씹는 작가로 자라난다. 부모를 연달아 잃게 된 상실의 체험 또한 절절하다. 그녀는 그 과정에서 심각한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된다. 그 중독에서 헤어나온 자의 성찰은 용기 있고 심오하다. 어떤 종류의 중독이든 그것은 결국 고통을 정면으로 맞는 그 감각을 마비시켜 그것을 유예시킴으로써 결국 적절한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통찰은 놀랍다. 술이든 담배든 약물이든 결국 그것은 당면한 고통을 회피하는 몸짓과 닿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돌아온다.


특히 부모의 죽음을 생각해보는 챕터는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들을 들킨 듯 호소력이 있었다. 요 근래 나는 약해진 부모님을 느끼며 적잖은 걱정과 안타까움과 어떤 부담을 느끼며 남몰래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다. 캐럴라인 냅은 바로 이 시기가 "부모님 은혜의 시기"가 이제 끝난 지점이라고 명쾌하게 진단한다.


나와 같은 입장이 된 것을 환영한다. 당신이 그동안 누리던 '부모님 은혜의 시기'가 이제 끝난 것이다. 부모님 은혜의 시기란 당신이 부모에게 복종하지 않아도 될 만큼은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부모를 걱정할 만큼은 나이가 들지 않은 시기, 그 짧은 기간을 뜻한다.

p.119

그 은혜의 시기가 끝나면 "당신은 겁난다"고 그녀는 겁을 준다. 맞다. "당신은 기분이 나빠진다"고 덧붙인다. 우리가 나이 들수록 "삶이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니라 쉬워진다는 신화를 믿으며 자라는데"라는 얘기는 왜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삶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지 그 이유를 들이민다. 우리는 반대의 신화를 믿으며 성장해서 그것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다. 그래서 푸념한다. 왜 갈수록 더 힘들지? 그렇다면 갈수록 더 쉬워져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하는 얘기다. 왜 삶은 갈수록 더 쉬워져야 하는가? 어려워지는 것, 간단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지도교수와의 일화를 통해 이야기하는 여성주의에 대한 이야기의 설득력은 농밀하다. 암암리에 권력을 통해 그녀에게 성추행을 저지르는 교수를 그 현장에서 거부할 수 없었던 그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단죄했던 수많은 비슷한 상황에서의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웅변한다. 바로 거부하고 왜 뛰어나오지 않았는가? 그것은 어떤 힘의 역학 구도 안에서 쉽게 단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녀는 거부하지 못하고 그 교수의 역겨운 행동들을 지나갔던 과거를 통해 이 미묘한 성폭력의 복잡다단한 대응의 어려움을 얘기하며 문제의 그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실체에 다가선다.


우리 문화는 육체적인 측면이 아닌 측면에서도 자신에게 만족하는 여자아이, 자신을 한 온전한 인간으로서 본질적으로 귀한 존재라고 느끼는 여자아이를 길러내는 데 능하지 못하다.

p.250


<명랑한 은둔자>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글들이 많지만 이것을 읽는다고 절대 우울해지지는 않을 책이다. 캐럴라인 냅에게는 어떤 결기, 용기, 진실성이 가지는 역동성이 절로 전염되는 마력이 글 전체에 포진하고 있으니까. 지금 아픈 사람도 특히나 중독에 빠져 자신 앞에 높인 고통을 차마 직시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4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이 2020-09-17 1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블랑까님의 별 다섯이라니_ 갈등하고 있었는데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다음주에 지르려구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 지르고 싶지만_ 인용구도 가슴 깊이 닿아요.

blanca 2020-09-17 13:41   좋아요 0 | URL
수연님도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이 작가는 <드링킹>이 최고라고 하던데 저도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어요. 단명이슬퍼요.

잘잘라 2020-09-17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lanca 님 서재만 오면 주문할 일이 생겨요. (주문하고 싶어서 재빨리 달려왔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주문 중독자로서 이 책은 반드시 꼭 강력하게! 빨리 주문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blanca 2020-09-17 13:41   좋아요 0 | URL
잘잘라님 ㅋㅋ 저는 여기서 선포합니다. 시월달 책 주문은 없다고. 이렇게라도 적어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2020-09-17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7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7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7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0-09-17 17: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전에 드링킹 앞에 조금 읽고 포기했거든요. 저는 읽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 글을 보니 캐럴라인 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책으로 시작해야겠어요. 저 역시 부모님과 저 사이의 은혜로운 시기는 끝났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부분이 제일 와닿네요, 블랑카님.

blanca 2020-09-17 18:00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저도 솔직히 알코올 중독 내용이 주인 <드링킹> 읽을 자신은 없어요. 분량도 그렇고요. 두 권 사이에서 갈등하다 신간을 택한 거예요. 아, ‘부모님 은혜의 시기‘는 진짜 너무너무너무 좋아서 읽다 일어났다니까요. 요즘 드는 많은 생각들을 이미 냅이 다 먼저 겪고 훨씬 정확하고 정교하게 표현해놓았더라고요.

단발머리 2020-09-22 1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님 은혜의 시기‘ 너무 공감되네요. 저의 생각과 불안을 글로 만나기가 두려울 정도에요. 아까 오후에도 친구랑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그래도, 용기내서 함 읽어볼까요? @@

blanca 2020-09-23 08:54   좋아요 0 | URL
에세이라는 게 흔히 작가가 좀 비대화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자기의 특수성을 표현하려다 보면 갇히는 한계인 것 같은데 이 작가는 아주 독특하게 자기를 표현하면서도 어마어마한 공감을 얻어내는 힘이 있어요. 이건 내 생각인데! 이런 순간이 너무 많았어요.
 

산문과 소설을 둘 다 잘 쓰는 경우는 잘 없다고 생각했는데 츠바이크는 이러한 개인적인 믿음을 완전히 박살 낸 작가다. 그가 역사적 인물을 테마로 구축한 이야기들의 생생함은 물론 탄복할 정도였다. 심지어 마리 앙투네와트가 단두대에서 사라져 갈 때 마음을 저릿하게 만들 정도니까. 대책없는 발자크의 이야기는 또 어떻고. 이런 무모한 인물들도 그의 문장으로는 설득력을 친밀감을 매력을 얻는다. 그런데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은 훨씬 후에야 읽게 되었다. 별 기대 없이. 솔직히 조금 지루할 거라는 예상과 함께.

















심리 소설이라는 평가와 함께 다소 나름의 장광설을 늘어놓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이 한 청년의 선의에서 출발한 나약한 연민의 파국의 이야기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작품성은 차치하고 재미만으로 도저히 책을 내려놓을 수 없을 지경이다. 문장이 휘몰아치는데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소설의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접경지역의 군사 주둔지다. 가난한 청년 호프밀러 소위가 지역의 유지의 딸 에디트를 만나서 사소한 실수를 저지르며 이야기는 펼쳐진다. 장애를 가진 에디트에 대한 연민과 청년의 공명심과 무모함이 섞여 빚어내는 갈등 상황과 그 상황에서의 내면의 심리 묘사의 날카로움이 대단하다. 우리가 흔히 가치 판단의 영역에서 열외시키는 타인에 대한 사소한 연민, 나약함, 허영심에 대한 분석의 설득력에 저마다 자신의 어리석고 못난 허식을 들킨 기분이 들 정도다.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타인과 비교하여 자신이 가진 것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허점과 나약함을 드라마틱하고 우연적인 사건으로 드러내는 솜씨가 경이롭다. 나중에는 호프밀러 소위를 끊임없이 진퇴양난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에디트가 너무 미워 견디기 힘들 지경이다. 자신의 약점을 상대의 연민과 죄책감의 멍에로 이용하는 일종의 역학이 독자에게는 그대로 노출되며 거미줄의 사슬에 얽혀 옴쭉달싹 못하는 호프밀러의 모습에 스스로를 투사하게 되는 것이다. 


호프밀러가 결국 도망친 곳에 타협한 지점에 우리 모두는 낯익은 풍경을 발견하다. 하지만 끝내 속일 수 없는 그 눈은 우리 내면에서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는 사실도. 


나는 이 세상에서 나쁜 일이 발생하는 까닭은 사악함이나 잔인함이 아닌 나약함 때문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p.246


츠바이크의 미덕은 인간의 복합적인 심리의 다층구조를 탐사한다는 점이다. 전적으로 사악하거나 전적으로 선한 사람은 없다는 통찰은 결국 모든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모든 사악하거나 나약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 또한 츠바이크 특유의 도덕적 염결성의 표현이다. 


결국 그가 전쟁 앞에서 택한 죽음은 그러한 인간에 대한 그의 이해의 절망의 마침표 같아 마음이 무겁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0-09-16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서 나쁜 일이 발생하는 까닭이 어떤 깨우침과 반성을 유발하기 위해서인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blanca 2020-09-17 08:24   좋아요 1 | URL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지나가고나서야 아, 이건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어, 여기에서 난 이걸 배워야 해, 뭐 이런 비슷한 느낌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