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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때 지독한 육아 우울증에서 질척거리고 있었다. 하나의 너무 무기력한 작은 사람 하나를
코알라처럼 몸에 붙이고 다니며 쪽잠마저 황송하게 여기며 하루하루를 견디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처절하게 깨달아 갈 무렵 그 사람은 축축한 눈가를 예의 그 하회탈의 주름으로 감싸며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그 행복하다,는 말에 울었다. 행복하지 않은 내 자신을 절망하거나 그를 질투해서가 아니였다.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의 후반의 삶의 시작이 감동스러웠기 때문이다.
퇴임대통령이 그리는 새로운 지도가 신기루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죽어 버렸다. 아이는 많이 컸다. 달리는 아이를 쫓아다니며 나는 또 울며 다녔다.
아이를 업은 두 엄마가 함께 울었다. 눈물을 흘리고 다니니 웃는 사람이 다 미웠다.
웃으면 안돼, 정말 그러면 안돼는 거야,라고 타인의 감정까지 강요하고 다니는
내 자신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또 울었다.
많이 행복하다던 그가 스스로 삶의 마침표를 찍었다는 그 외형적 사실 밑에 가라앉아
미처 움트지 못한 수많은 가능성의 씨눈들이 아까워 진저리를 치기도 했다.   

벌써 그런지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아이는 이제 말대꾸를 한다.
자꾸 왜냐고 묻기 시작했다. 나도 왜냐고 묻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지는데
그것조차 어쩌면 허용안되는 그 분위기가 치사스러워서 웃음이 난다.  

언제 가장 그리우세요? 

밤에 혼자 숙소로 돌아갈 때 ...여기 일교차가 큰 날은 물안개가 짙거든요. 가로등 불빛에 몽환적인 분위기인데...문득 누가
등을 툭 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그런 느낌이 드어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돼요
<...> 소 같은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취재수첩을 덮었다. 

-한겨레 21 제811호 <그는 가고 뜻은 남았다>중 인용  

대학 농활 때 거머리가 무서워 논에 들어가지도 못했던 김전비서관은 이제 홈페이지에 농군일기를 올린다.
양복을 입고 책상에 앉아 문자로 세상을 이해하고 조직화했던 그가 이제는 논에 오리와 우렁이를 풀어놓으며
세상을 직접 만지고 더듬으며 새로 배워 나가고 있다. 그의 상관은 그의 기안서류에 서명을 해주는 대신
그의 가슴 속 상흔으로 결재를 해 준다.   

여름이면 늦반딧불이가 황홀하게 귀환한다는  그곳에 정작 그것들을 불러모으고
저편으로 저물어 버린 그가 또 그리워지고 만다. 
비겁하고 말뿐인 진보는 언제나 흘러넘치는 감정에 질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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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5-19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진보는 항상 흘러넘치는 감성에 질식하고 만다는 표현, 딱 맞아 떨어지는거 같아요.
어째 블랑카님 요즘 쳐진거 같아요? 나도 그런데...
우리 둘 다 흘러넘치는 감성을 감당하지 못 하고 있는 걸까요? 요즘 같아서는 미칠거 같아요.
그래서 내 주문을 걸며 날씨 탓을 하며 뉴스 탓을 하며 별 짓을 다하는데,, 빠져나오기 힘드네요.

노대통령 1주기네요. 그분이 그립습니다.

blanca 2010-05-20 13:40   좋아요 0 | URL
저는 대체로 쳐져요 ㅋㅋㅋ 벌써 1주기예요. 세월 너무 빠르죠? 마녀 고양이님도 저도 다 행복하다고 즐겁다고 자기주문을 걸면서 그렇게 살아가야되겠죠? 그런데 투표결과보고 더 기분나빠지면 어떡할까도 싶어요^^;;

2010-05-20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0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0-05-20 21:46   좋아요 0 | URL
ㅋㅋ 저는 제가 남매를 둔 사람으로서 장점을 말해볼께요. 일단 어느 정도 키워놓으니깐 둘이 놀더라구요. 전 거의 책 읽어주는 것 이외에는 애들사이에 잘 안 끼어들어요. 둘이 잘 노니깐...애들이 놀다가 잠깐 잠깐 불러 제낄때가 있는데 그 때 응해주는 척 하죠.
하지만 엄청 싸우기도 해요. 장난 아니여요.
단점은 진짜 돈 많이 들어요. 흑흑 오늘 우리 월급날인데..학원비 제하고 뭐 했더니 겨우 현금 삼십만원 쥐나봐요. 전 학원 많이 보내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70만원 넘게 깨져요.돌아버리죠. 아들한테만 50이고 딸애가 이십오만원이에요. 아들애는 방학중에는 미술 좀 보내달라고 하는데 일단 보내주기로 했는데 학원비 13만원을 어디서 쪼개야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애 낳지 말라고 해요. 어차피 크면 따로 노는데 궂이 형제애를 강조하고 싶지 않더라구요. 전 언니하고 친했는데 애 어느 정도 크니깐 거의 연락 안 하고 살게 되더라구요.
오히려 여기 블로그에서 친하게 지내는 분들하고 자주 연락하고 자주 만나요.
저의 고민도 거의 다 블로그 지인들에게 터 놓게 되고.
블랑카님, 애 낳을려면 터울 없이 낳으세요. 같이 놀게 하려면 터울 없이 낳는 게 좋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저의 아이들한테도 애 낳으란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부부끼리 여유롭게 즐기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는 거 같아요. ^^ 너무 현실적인가요!

2010-05-20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0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0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조지 오웰 지음, 신창용 옮김 / 삼우반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호텔의 뷔폐 식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동분서주하는 젊은 남녀의 시중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뭔가 모르게 불편했다. 그 불편함은 양 극단의 지점에 있었다. 하나는 과연 그들이 그렇게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받는 서비스들이 그에 합당할 만큼 보이는 그대로 양질의 서비스일까, 하는 일종의 의심이고 다른 하나는 똑같은 인간들이 계층적 층위에서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주고 받는 풍경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물론 그런 풍경이 그 두 집단의 전부를 표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순한 풍경에서 알레르기적 감상을 불러일으킨 나 자신이 감정적 프리즘을 들이대었을 여지도 있다. 여하튼 언제나 그런 풍경은 그 두 집단 어디에도 나를 제대로 놓아 볼 수 없을 만큼 불편하다.  

이 책은 조지 오웰의 첫 작품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파리의 콕도르 거리에서 투숙한 여관에서의 생활과 고급호텔 접시닦이의 체험, 런던에서의 싸구려 간이 숙박소를 전전하는 부랑자 생활에 관한 소설이다. 그의 전매특허이다시피 한 르포르타주 형식을 띠고 있어 사실 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을 만큼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가난의 체험에 대한 보고서다.  

그의 글이 힘을 발휘하는 부분은 체험적 진술이 과장 확대되지 않고 건조하지만 성실하고 재기어린 문장으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삶의 복판에 흠뻑 빠져든 저자의 목소리는 작위성과 허술한 틈새대신 통절한 고백과 통렬한 비판으로 사무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고급 호텔의 그 빛나는 샹들리에 밑에서 나비 같은 드레스와 어린 아이 눈망울 만한 다이아몬드 반지에 휘감긴 금발 미녀가 마시는 칵테일과 그 건너에서 그녀를 위하여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스테이크를 써는 연미복차림의 신사 뒤에 43도 이하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후텁지근하고 불결한 지하실에서 하루에 다섯 시간만이라도 자보는 것이 소원인 접시닦이들이 미친듯이 설겆이를 해대고 서로 악다구니를 해대고 울부짖는 풍경을 보게 된다.   

그 안에서도 하나의 계층의 층위가 형성된다. 가장 덜 노예적인 노동자 같은 계층인 요리사와 고용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병리적 환상에서 자신의 노예적 기술에 자부심을 느끼는 웨이터들, 그리고 미래의 전망이라곤 없고 강력한 피로에 굴복하여 하루하루를 견뎌 나가는 것으로 삶을 밀고 나가는 접시닦이들. 이들이 바로 불충분한 인원으로(자본주의의 핵심이 아닐까?) 그 거대하고 복잡한 서비스 체계의 순환을 가능케 하는 주역들이다. 복잡한 서비스를 단순하게 완성시키는 비결은 바로 불결의 비밀스러운 혈관이다. 이들이 낳는 서비스는 보여지는 서비스이고 우리는 보여지는 서비스에 비용을 지불한다. 우리는 더럽게 함으로써 시간을 절약했다,고 '나'는 고백한다. 호텔과 큰 음식점에서 100명이 200명에게 사치의 값싸고 조악한 모조품을 제공하기  위하여 악마처럼 고생한다는 대목은 우리가 흔히 누린다고 생각하는 서비스의 생득적 해악을 암시한다. 물론 1933년과 2010년의 시차를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은 하나의 사족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누구보다도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싶다. 인간이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용역을(물론 물질적 대가가 수반되지만)제공하고 제공받는 이 시스템의 순환에서 정작 잘려나가는 것들에 대한 응시가 절실하다.  

그는 돈이 미덕인 시대(이것은 현대에도 유효하다.)에서도 유일한 가난의 미덕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로 바닥까지 가 보는 그 절망의 심연이 주는 일종의 담담한 안도와 앞선 미래를 떠올리지 않고 그저 닥치는 대로 연명할 수밖에 없는 의외의 일상에 대한 깨달음이다. 가난은 미래를 전멸시킨다. 가난이 가장 슬픈 대목은 바로 이것이다. 생각할 시간이 없고 외부를 인식할 기회를 박탈당하다 보면 먼 미래를 꿈꾼다는 것은 하나의 불가능으로 다가온다. 가난의 표피적 이해의 껍질을 벗고 나온 저자의 진솔한 고백은 우리가 복지 정책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지에 대한 하나의 단초를 제공한다. 또한 자선을 받는 사람은 거의 언제나 은인을 미워한다는 얘기는 자선의 과시적 풍모의 속물적 더께를 과감히 벗겨내야 함을 강변한다. 복지라는 것이 황공한 자선의 형태로 광고될 때 수혜자들이 정작 받게 되는 것은 하나의 온정적 혜택이 아니라 비열한 권력의 또다른 횡포와 다름 아닌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베풀고 고맙다는 인사치레를 의당 당연한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이 기대에 섞인 불순한 구석을 자각하지 않으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진정한 공감과 이해는 요원한 것으로 되어 버린다.

현재로서는 가난의 언저리까지밖에는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돈에 쪼들리면서 확실히 배워둔 한두 가지는 짚어낼 수 있다. 나는 두 번 다시 모든 부랑인이 불량배 주정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고, 내가 1페니를 주면 걸인이 고마워하리라 기대하지 않겠으며, 실직한 사람들이 기력이 없다고 해도 놀라지 않겠고, 구세군에는 기부하지 않을 것이며, 옷가지를 전당 잡히지도 않겠으며, 광고 전단지를 거절하지도 않겠고, 고급 음식점의 식사를 즐기지도 않으련다. 이것이 시작이다.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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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5-17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치의 값싸고 조악한 모조품... 전 이 글귀가 현대 사회를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넘치는 상품들. 옷, 가방, 가구, 신발, 심지어 책까지.

저 요즘 책 거의 못 읽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일을 벌여놨나봐여.. 미치겠어염. ^^

blanca 2010-05-18 16:44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래요. 진짜 고개가 끄덕끄덕해지더라구요. 마녀고양이님, 전 벌여 놓은 일도 없는데 책 읽는 시간을 시간이 참 없네요^^;; 요새는 왜이리 게을러지는지. 글자를 읽는 것도 귀찮을 정도랍니다.-..-

기억의집 2010-05-18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두려워 하는 것이 바로 저 밑바닥 생활 아닐까 싶어요. 저도 이 책 읽었는데, 전 조지오웰의 산문은 다 좋아요. 그처럼 간결하고 논리적이고 딱 부러지게 에세이를 쓰는 작가가 또 있을까요? 순식간에 읽어 치웠던 거 같아요. 그의 글이 님 말씀대로 과장되지 않아서 더 그런 것일까요?

blanca 2010-05-18 16: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 분도 저의 완소가 될 듯^^;;해요. 진짜 간명하면서도 또 재미있게 쓰는 그 능력이라니. 재간둥이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10-05-18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일부가 예전에 고급영어독해집에 실렸는데 제목 번역이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이었어요.덕분에 따라지의 뜻을 알게 되었지요.

blanca 2010-05-19 13:48   좋아요 0 | URL
그랬어요? 알고 보면 옛날 영어 독해할때 명문들이 참 많았던것 같아요. 따라지 인생ㅋㅋㅋ 어감으로만 느끼지 말고 정확한 뜻을 한 번 찾아 봐야겠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05-19 19:06   좋아요 0 | URL
이호철 씨 소설에 월남한 따라지 인생 운운하는 장면이 있습니다.이 분이 월남자라서 그런 이야기는 실감나게 잘하지요.

루체오페르 2010-05-19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멋지다. 인간의 역사는 동서고금만 다를뿐 대동소이 하다는걸 느낍니다.

blanca 2010-05-20 13:43   좋아요 0 | URL
루체오페르님, 저는 이것 읽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인간이 느끼는 정서는 기본적으로 비슷한가봐요. 현실과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정말 신기했답니다.

순오기 2010-05-29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마이리뷰 당선작이네요.^^
블랑카님은 리뷰나 페이퍼 썼다 하면 당선작이군요. 축하해요!

blanca 2010-05-29 14:3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헤헤.그건 아니에요^^;; 주말 잘 보내고 계시죠? 축하해 주셔서 감사해요.

달팽이 2010-06-03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선을 받는 사람은 거의 언제나 은인을 미워한다...충격이네요
책읽는 것도 재밌지만 독후감 읽는 재미도 쏠쏠하네요ㅋ

blanca 2010-06-04 10:02   좋아요 0 | URL
그게 자선을 베푼 사람은 언제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조금 저자세에서 감격해주기를 바라는데 그런 심리까지 다 간파하나봐요. 그런 자선은 위선인가 봅니다. 야망의25시님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서운 여고생들은 미남자에 탐닉했다. 여기에서 무서운 여고생들이란, 용수철처럼 탄성 있는 지독한 곱슬머리, 혹은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원래 눈의 이분지 일 크기도 안보이게 하는 독한 근시렌즈의 안경, 무쇠 같은 종아리 중 어느하나라도 지녀 존재감을 빛내는, 그러니까 전혀 은교 같지 않은, 롤리타의 백만분지의 일도 안닮은 그런 여고생들을 뜻한다.  물론 그녀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눈부신 반전을 몸으로 이루어냈다. 그래서 그녀들은 자신들의 과거가 담긴 사진을 죄악시한다. 누군가가 그 사진을 싸이에라도 나도 친구좀 있었다며 올린다면 바로 그것때문에 늙어도 이지메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쩡! 쩡! 봤냐! 봤어? 역시 그녀는 그 날 아침도 다크호스 소식을 물어왔다. 스탠바이미, 쥑인다. 리버피닉스! 환장한다!
<스탠 바이 미>는 나에게도 특별한 추억이다. 초등학교 5학년때 개봉한 셈이었지만 한참이나 지나 비디오로 접하고 그 밤을 지새웠을지도 모르는 나의 절친은 영화 그 자체보다는 그 영화에 등장했던 어린 리버피닉스의 아우라에 굴복했다. 보지 않고도 하도 얘기를 많이 들어 지레 물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지금도 내가 그 영화를 정말 봤는지 봤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를 확신할 수가 없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스탠 바이 미>를 떠올리면 그 무서웠던, 무모했던 지독한 장난꾸러기 여고생 4인방들이 떠올라 미소짓게 된다. 그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녀들은 친하다. 목소리도 작아지고 웃음도 줄고 스티븐 킹이 얘기했듯이 단순한 설렘도 점차 잃어가면서. 그래, 설렘의 순간이 줄어든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감정의 외줄타기의 그 곤혹스럽지만 황홀한 스릴은 점점 희미해져만 간다.

 

빅맥 햄버거와 감자튀김의 문학적 등가물이며 평론가들이 개똥으로 안다는(그 자신의 표현이다.) 소설을 쓰는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로 만났었다. 글쓰기의 그렇고그런 작법이나 너절하게 늘어놓는 진부함대신 사실 그 자신의 문학적 자서전으로 재기와 말발이 용솟음치는 정말 사랑스러운 책이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책을 읽다 울기도 했다. 요즘같이 문자 텍스트가 천대받는 풍조에서 글만으로 독자를 미친듯이 웃길 수 있는 것은 정말 대단한 재능임에 틀림없다. 한편 이 책은 그 자신에 대한 하나의 선입견을 공고하게 하는데 일말의 책임이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덮여 있을 것이라고 독설을 뿜고 진부한 플롯이나 문체에 치중하는 작품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모습은 역설적으로 그 자신이 어떤 예술적인 성취에 대한 열등감이 있지 않나, 하는 추측을 몰고 오니 말이다. 그는 허술한 반전에 걸핏하면 등장인물을 죽여대며  그렇고 그렇게 독자를 속여먹어 부자가 된 작가로 오인받을 여지를 남겨두었다. 그리고 나는 속았다. 그의 그런 작위적 허풍에. 그는 자신이 느끼는 것보다 더 훌륭하다.  

그가 중편의 작품들을 독립 출간할 기회를 벼르다 드디어 네 편을 두 권으로 묶어 내놓게 되었다. 그리고 이 네 편은 그가 단순히 공포물 작가가 아님을 방증한다. 그의 작품이 개똥으로 폄하될 이유가 없음을 강변한다. 이 두 권을 아우르는 타이틀 사계 중 가을, 겨울에 각각 속하는 '스탠 바이 미'와 '호흡법'을 거의 단숨에 다 읽고 나머지 봄,여름편을 같이 구입하지 않은 것을 통탄했다. 여기에는 그 유명한 '쇼생크 탈출'의 원작이 실려있다.  

제일 중요한 일들은 제일 말하기도 어렵다,로 시작하는 '스탠 바이 미'는 그의 자전적인 작품 같다. 서른 네 살 베스트셀러 작가의 늙어가는 몸뚱이 속(너무하잖아. 겨우 서른 네 살인데.)에 잠들어 있던 열두 살의 '나' 고든 라챈스의 그 여름을 복기해 나가는 얘기다. 그 여름, 열두 살에서 열세 살로 넘어가던 그 찌는 듯했던 여름, 죽은 형의 존재감 속에 부유하는 '나'는 블루베리를 따러 나갔다 실종된 레이 브라워라는 아이의 시체를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찾아 나서게 된다.

1960년 여름, 그들이 철길을 따라 간 길은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왜 하필 캐슬강 교각 위에서 기차를 간발의 차로 피하며 건너는 그 무모한 경로를 택했는지, 곧죽어도 두 개의 선로 위를 고집했는지를 한참 후에야 의아해하면서도 그래서 그 대단찮은 여행이 대단한 것으로 변모했음을 깨닫는다. 그 시절에는 항상 어리석고도 과감하고도 우직한 길을 선택한다. 나중에는 항상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길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선택으로 되돌아 갈 수 없는 전진을 했음을 안다. 그건 성장이다. 꼭 그 길이 아니었어도 됐었을 것이라고 깨닫는 순간 그 길을 고집했던 치기와 미숙함은 저멀리 흩어져 간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을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은 언제나 씁쓸하고 알딸딸한 슬픔이 치밀어 오른다.

결국 그 불쌍한 아이의 시체를 두고 갑자기 차를 타고 편하게 오는 반칙을 한 형들과 서로 접수하겠다고 다투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러다 결국 누구도 그 시체를 접수하지 못한다. '나'는 그 아이를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지 않고, 안 하고, 못하고, 해서도 안 되고, 하려고 하지도 않고, 하려고 해도 못하는 죽음에 대해 섬뜩한 이해를 가지게 된다. 과거를 이해하고 죽음에 대비하기 위하여 소설을 쓴다는 그의 고백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별볼일없는 하층민 집안의 아이로 없어진 우유값의 도둑으로 지목되고 대학진학반의 천덕꾸러기로 낙인찍혔던 크리스가  그 아이의 시체가 '우리 거'였어 라고 얘기하는 대목은 그가 갈망했던 것이 결국 어른들의 이해와 존중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들이 잘해나가는 아이들한테만 정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해나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더 절실함을 호소한다.이 은근히 진중하고 의젓한 아이는 미래의 유명작가가 될 '나'에게 이런 아름다운 조언을 한다. 이 대목은 정말이지 더없이 문학적이다. 개똥이라니! 

네가 그렇게 소설을 쓸 수 있는 건 하느님이 재능을 주셨기 때문이야. 이건 하느님의 말씀이야.너한테는 이걸 주겠다. 꼬마야. 잃어버리지 마라. 그런데 누가 돌봐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뭐든지 잃어버리기 마련이야. -p.180 

이런 친구가 물 속에서 나를 아무리 끌어내릴지라도 결국 같이 살기 위해 그의 소망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임은 당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넘어가는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던 철로를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 것으로 묘사했던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시 이 책에도 그 보석처럼 군데군데 빛나는 통찰들이 박혀 있다. 특히 글쓰기에 대한 적나라한 자기고백, 삶에 대한 깨달음들. 

내 경우에는 글쓰기는 언제나 섹스를 대신하고 싶어 하지만 언제나 섹스에 미치지 못하는 어떤 것이다. <...>지금은 글을 쓰는 것이 나의 직업이다. 그래서인지 즐거움이 조금은 줄어들었고 자위행위처럼 죄책감이 섞인 이 쾌감이 내 머릿속에서 인공 수정처럼 냉정하고 분석적인 이미지와 결합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진다. 다시 말하자면 출판 계약서에 명시된 규칙과 규범에 따라 사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p.151

그가 끼적인 소설을 누군가가 보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던 경험을 회고하는 대목은 글쓰기가 가지는 그 은밀하지만 이중적인 즐거움을 얘기해준다. 글을 쓰는 행위는 지극히 사적이고 비밀스럽지만 또 단 한명의 독자라도 염두하게 되는 모순적인 행위다. 또 그 점이 글쓰기가 가지는 아주 독특한 매력이기도 하다. 나 혼자서만 간직하고 싶으면서도 또 공유하고 싶기도 한.  

이 무모하고 약간 괴기스럽기도 한 탐혐이 이 작품의 전부는 아니다. 그 탐험의 와중에 친구들을 거의 미칠 정도로 매혹시킨 작가지망생 소년의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작품 두 편도 감상할 수 있다. 특히나 블루베리 파이 먹기 대회의 반전을 다룬 액자 소설은 또다른 수확이었다. 스티븐 킹은 문자 텍스트로 영상 이미지를 띠워 올리는 특출난 재능을 가진 것 같다. 축 늘어지기 쉬운 문자들에게 쭉쭉이를 시켜줘서 신나게 뛰어다니게 한다. 독자는 그러니 지루할 틈이 없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스펜스는 영화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그의 소설에서는 이런 추체험이 가능하다.   

 함께 실린 <호흡법>은 그가 공포작가로 찍히기를 주저하지 않고 이 중편집에 실은 유일한 작품이다. 우연찮게 노년의 남성들의 기묘한 클럽에 들어가 그 멤버중 한 명이 산부인과 의사시절 환자로 만났던 미혼모와의 얘기를 듣게 되는 구도로 진행되는 얘기는 섬뜩하면서도 흥미진진하다. 그 아름다운 미혼모가 순산을 도와주는 호흡법을 열심히 연습하며 사회적 편견들을 헤쳐나가다 맞게 되는 비극적인 최후는 스릴러처럼 흐르려던 작품의 기류를 하나의 처절한 비극적 아취로 마무리지어 주고 있다. 그러니까 의지의 겨울, 인간의 의지가 무력하지만은 않음을 모정을 통해 보여준다.  

스티븐 킹이 알고 있는 가장 따뜻한 마법,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는 현실을 잠시나마 잊어버리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따뜻한 곳으로 가는 그 환상적인 체험을 하고 오는 길, 주인공 고든 라챈스의 바람은 나의 것이기도 했다. 

내 마음의 일부는 언제나 6월처럼 거의 9시 반까지 하늘 한 구석에 햇빛이 어슴푸레 남아 있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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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5-10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탠 바이 미> 영화를 못 봤답니다. 그런데 4월 행사로 DVD 세일을 하는거여여..
그래서 냉큼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지나친 구매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며칠을 미루었어요...
그 사이에 홀랑 품절 되었답니다. 으흐흑...

blanca 2010-05-11 18:00   좋아요 0 | URL
아, 그랬던 거였어요? 저는 품절된 상태만 봤는데 그랬군요. 지나친 구매에 대한 반성의 의미 ㅋㅋㅋ 저도 자숙과 반성기간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또 무슨 책을 주문했는지 기억 못하는 상태로 치닫고 있답니다. 무서워요, 제 자신이--;;

L.SHIN 2010-05-11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군요. 추천을 2개 주고 싶은데.

"네가 그렇게 소설을 쓸 수 있는 건 하느님이 재능을 주셨기 때문이야. 이건 하느님의 말씀이야.너한테는 이걸
주겠다. 꼬마야. 잃어버리지 마라. 그런데 누가 돌봐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뭐든지 잃어버리기 마련이야."

생각해봤습니다. 나를(재능을) 돌봐주는 것은 수 많은 책들과 알라디너들의 이야기들 때문은 아닌가 하고.
나를 키운 것은 책이 5할이었어요.

blanca 2010-05-11 18:01   좋아요 0 | URL
L.SHIN님 8할이 아니라 5할이라고 하시니 그 나머지가 더 궁금해집니다. 저도 이 대목을 읽으며 괜히 뭉클하더라구요. 저는 잃어버리지 않았나 싶어서요--;;

순오기 2010-05-1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킹은 참 매력적인 작가예요~ 결코 공포작가로만 기억하면 안되겠군요.

blanca 2010-05-12 14:12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저는 정말 몰랐어요. 그렇고 그런 작가인 줄만 알았는데 자녀분들이 좋아한다고 하셨죠? 참, 좋은 작가인 것 같아요.

순오기 2010-05-13 00:53   좋아요 0 | URL
우리 애들은 스티븐 킹 많이 읽었어요.
나는 책을 빌려오거나 사주기만 하고 '유혹하는 글쓰기'외에는 제대로 안 봤지만, 영화는 제법 봤어요.^^

穀雨(곡우) 2010-05-12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다닐 때 스티븐 킹에 빠져 한 동안 헤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순오기님 말씀처럼 공포스릴러 작가로만 기억하면 스티븐 킹의 한면만을
보는 일이네요.

blanca 2010-05-12 14:13   좋아요 0 | URL
곡우님 그러셨군요. 저는 대중소설적 재미만 추구하는 작가인 줄 알았어요.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순오기 2010-05-13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말은 글샘님이 전공이시니 관련 책도 많이 보셨을 듯합니다.
저는 어린이 책은 몇 권 봤지만 일반인을 위한 책은 달랑 '건방진 우리말 달인' 하나 봤거든요.^^

blanca 2010-05-14 16:42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순오기님 오늘 날씨 정말 너무 더워요. 근처 공원에 갔다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었답니다.

후애(厚愛) 2010-05-15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은 왜 하나밖에 안 될까요... 속상해~ ㅜ.ㅜ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

blanca 2010-05-16 16:55   좋아요 0 | URL
후애님, 주말이 거의 다 저물었네요. 벌써 초여름 날씨 같아요. 행복하게 보내셨죠?

후애(厚愛) 2010-05-17 08:16   좋아요 0 | URL
이곳은 아직 일요일 오후에요.
조용히 잘 보내고 있어요.^^

2010-05-16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7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0-05-18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탠바이 미에 나왔던 리버 피닉스를 알고 있는 십대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스탠바이미는 우리 세대를 위한 책이 아닌가 싶어요.

blanca 2010-05-18 16:42   좋아요 0 | URL
기억의 집님, 그럼요. 그 책을 읽고 정말 꿈을 꾸는 느낌이었어요. 다시 그 시절로 귀환한 듯한. 그리고 리버 피닉스는 바로 그 모습 그대로 정지되어 있고요. 스티븐 킹에 대하여 과연 책이나 많이 팔아치우는 싸구려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원서로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 포인트를 다 모아 알라딘의 책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며칠 전에 알았다. 포인트파크에서 KT마일리지를 끌어와 채워 놓아 배가 두둑하다. 읽고 싶은 책을 공짜로 받아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옆지기에게 강권했다. 당장 포인트닷컴 회원가입을 해서 그 포인트를 날좀 달라. 흑흑. 포인트파크와 헛갈려서 엠한 포인트닷컴에 회원가입을 시킨 것이다.--;;
다시 회원가입을 제대로 시켰으나 타인의 마일리지로 내가 책 구입을 하는 것은 불가하단다.
어버버버 하면서 회원가입을 두 군데나 시켜놓고 무용지물이 됐다. 

# 요즘 단편의 사람 이름과 그 사람의 성격을 기억을 못해서 중간만 가도 다 까먹고 만다. 다 새롭다. 그러니 단편을 읽을 수가 없다. 벌써 이러다니. 장편은 계속 나오니 기억하기가 좀 쉽지만 단편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어야 한다. 돌아서면 다 잊고 마는 내가 유일하게 등장 인물의 이름과 성격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소설은 <태백산맥>과 <안나카레니나> 뿐이다.  명작이라는게 다 이유가 있나 보다. 

# 내가 무슨 책을 주문했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연습을 한다. 갑자기 하루중 갑자기 그래, 내가 주문한 책은 이거저거이거다, 라고 떠올려 본다. 떠올리면서 꼭 나머지 한 권은 기억이 안 난다. 이쯤되면 정말 서글퍼진다. 

# 왜 울 부모님이 대화를 하시면서 고유명사를 다 빼버리고, 왜 그거 있잖아, 저거, 그거 하며 지시어를 남용했는지를 깨달아 가는 중이다. 옆지기와 대화하며 사람이름, 장소가 생각이 안나 소통이 안될 지경이다.  

# 기억력이 좋고 (특히 고유명사) 운동신경, 미술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젤 부럽다. 담 세상에는 꼭 이 세가지를 탑재하고 태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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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05-06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러니까, (그 포인트 체계를 잘 모르지만) 옆지기님보고 블랑카님이 원하는 책을 사달라고 하는 건 안 되나요?
# 나는 지구를 떠나기 전에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그 빌어먹게 긴 이름들, 책 지문의 1/3은 차지하고 있을
것 같은 너무나 많은 등장인물들을 무시하고 그 신화들을 다 읽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_-);
# 전..하도 질러대서, 주문한 것 자체를 아예 잊어버리고 있다가, 우체국으로부터 문자라도 오면 '잘못 안 거 아냐?'
라는 그런 소리를 지껄이..;;;
# 저는 가끔 주어를 통째로 빼고 말해서 상대의 빈축을 사기도 한답니다.(웃음)
# 지구에 올 때 그 3가지를 옵션으로 달고 오기는 했는데, 그게 의욕이 있을 때만 가동되는지 몰랐어요.
이래서 뭐든지 설명서를 꼭 읽어야..아하하하핫...ㅡ.,ㅡ

blanca 2010-05-06 22:05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러러면 알라딘 회원가입을 또 시켜야 해서요. 도합 세 군데 회원가입시키려니 그래도 알라디너로 만들어 줘야겠지요?^^;; 주문한지도 모른다, 그럼 저는 좀 나은 편에 속하는 거죠? 주문한 사실은 기억한답니다.^^;;

마녀고양이 2010-05-07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람 이름을 워낙 못 외워서, 그냥 다 언니, 오라버니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히죽.
그리고 집에 있는 책을 보고 이거 샀네? 하고 놀랍니다. 심지어 두번 주문한 책도 세번이나 있었습니다.
아....... 저는 대인 관계 좋은 사람이 제일 부럽습니다. 오늘 심리 검사 결과 나왔는데,
사회 회피 지수 최고랍니다. 으이구. 난 왜이리 붙임성이 없는건지 모르겠어여... ㅡㅡ;;;

blanca 2010-05-07 14:30   좋아요 0 | URL
두 번 세 번 주문한 책도 있다구요?^^;; 근데 그 책이 어떤 책인지 궁금해져요. 그만큼 마녀고양이님이 끌렸다는 애기니까요. 저 토지 검색하다 마녀고양이님 페이퍼에 빨간머리앤이랑 같이 있어서 마녀고양이님한테 물어봐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토지랑 빨간머리앤이랑 강추하시는지요?^^

마녀고양이 2010-05-07 16:26   좋아요 0 | URL
토지는 당연히 강추입니다. 아마 토지 팬이 상당히 많은걸로 알고 있는데요..
빨간머리앤은 동화같아요.. 성인이 되서도 꿈같이 나오죠. 아이를 8명이나 낳아서 키우는 이야기이며, 주변 사람들 이야기이며.. 이런거 좋아하시는 분은 굉장히 좋아하실거구요, 어떤 분들은 거들떠도 안 볼듯도 하고... 그래염~

프레이야 2010-05-07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세가지를 탑재하고 태어나리라~,
이 대목에서 ㅍㅎㅎㅎㅎㅎ

blanca 2010-05-07 14:30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어떤 이들은 힘든 세상 왜 또 태어나냐 하지만 저는 꼭 한 번 더 태어나서 이 생에 갖추지 못한 것들 다 가지고 또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요 ㅋㅋㅋㅋ

프레이야 2010-05-07 20:04   좋아요 0 | URL
저도저도 완전히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용~

후애(厚愛) 2010-05-07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기억력이 참 좋았는데 이제 갈수록 기억력이 안 좋아지고 있어요.ㅜ.ㅜ

blanca 2010-05-07 14:31   좋아요 0 | URL
후애님, 그래도 기본적으로 기억력 좋은 분들은 확연히 다른 것 같아요. 후애님 기억력이 아무리 안 좋아져도 저보다는 훨씬 좋을 거예요^^;;

후애(厚愛) 2010-05-08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늘 건강하시구요.^^

blanca 2010-05-08 14:55   좋아요 0 | URL
후애님도요. 여긴 지금 여름 날씨네요. 짬뽕 먹고 들어왔어요^^;; 후애님은 마니또 공원 가실래나? 펜과 종이 잊지 마세요^^

후애(厚愛) 2010-05-09 13:53   좋아요 0 | URL
물어보신 꽃이름 올렸습니다.^^

stella.K 2010-05-09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력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시시콜콜 다 기억 못해요. 근데도 뭐...
단지 저 같은 경우는 나이를 먹으니 그나마 기억하는 것도 내가 맞게 기억하고 있나
확실하다고 주장하지 못한다는 거죠.ㅜ

blanca 2010-05-09 14:20   좋아요 0 | URL
그죠! 확신을 못하겠다는 거. 그래서 괜히 말끝을 자꾸 흐리게 된다는거요^^;; 스텔라님 저 은교 당장 질렀어요^^ 기대가 큽니다.

穀雨(곡우) 2010-05-1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포인트모으기. 한번 빠지면 은근 중독됩니다.^^

blanca 2010-05-12 14:11   좋아요 0 | URL
곡우님. 포인트도 사실 눈가리고 아웅인건데 자꾸 공짜처럼 느껴져 이 포인트로 책폭탄을 맞았답니다. 책이 밀려 있어요. 벌써 거의 다 써버렸답니다.
 
더블린 사람들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5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병철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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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직껏 어떤 여자에 대해서도 그 자신 이런 감정을 가져본 일이 없었으나, 그는 이런 감정이야말로 사랑에 틀림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눈물은 더욱 글썽거리며, 희미한 어둠 속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나무 밑에 서 있는 한 청년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자기라는 존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뿌연 세계로 사라져가고, 그들 죽은 사람들이 한때 살던 현실의 세계 그 자체는 허물어져 점점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 <死者> 중 

제임스 조이스의 초기작인 <더블린 사람들>은 더블린의 중하층 계급인들의 나른한 일상을 덤덤하게 스케치한 열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만큼은 그도 살아날 희망이 없었다.'로 시작하여 역시 '그의 영혼은 천천히 의식을 잃어갔다.'로 끝나는 이 단편집은 마치 의도적으로 죽음으로 시작하여 죽음으로 문을 닫은 듯한 인상마저 준다. 제임스 조이스가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소재로 택한 것은 이 작은 도시가 마비의 중심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년시대, 사춘기, 성숙기, 노쇠기의 민중의 생활은 질벅거리고 침체되어 있으며 극적인 사건도 낭만적인 로맨스도 없다. 발전소 구경을 위해 학교를 빠지고 나룻배로 강을 건넌 소년들은 우연히 맞닥뜨린 노인의 삶의 체념을 들어주어야 했고, 하숙집 여주인이 딸과 맺어주려고 했던 손님은 비겁하게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 헤맨다. 개인은행의 출납계원은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나 어설픈 로맨스를 만들어가다 짐짓 그 정열적인 움직임에 겁을 먹어 발을 뺐다 그녀의 부음기사를 읽고 외로움을 재확인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이야기들은 제임스 조이스가 인간 간의 소통 자체를 믿지 않는 것으로 대변된다. 그는 모든 인연은 설움으로 이끄는 인연이라고 얘기하며 운명에 거슬려 싸우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강변한다. 그의 메시지가 메타포에 실려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 작품으로 엘리엇도 극찬한 <사자>는 이런 그의 소통에 대한 불신과 운명앞에서의 인간의 무력함에 대한 사무치는 이해와 죽음에 대한 유리알 같은 통찰이 돌올하게 빛난다. 나머지 단조로운 단편들이 줬던 나른함은 이 작품 앞에서 서곡 역할을 했던 것으로 이해될 정도로 경이롭기까지 한 작품이었다.  

어셔스 아일랜드의 어두컴컴하고 초라한 집에서 늙은 모컨의 자매와 그녀들의 조카가 함께 연 댄스파티의 흥청거리면서도 아늑한 생동감들은 그 파티에 참석한 조카 가브리엘의 아내가 우연히 <오그림의 처녀>라는 민요를 듣고 황홀해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에게 아내의 가치와 그녀와 엮은 추억들에 대한 영롱한 아름다움을 재확인하게 해줌으로써 절정에 달한다. 그러나 그의 이런 생각들과 기대는 하나의 착각이었음이 드러난다. 아내는 소녀시절 가스공장 소년공에게서 그 노래를 들었고, 고향을 떠나던 날 그가 아픈 몸을 이끌고 비를 맞으며 창문에 돌을 맞혀 자신이 왔음을 알렸던 추억을 얘기한다. 그리고 그 소년은 죽고만다. 아내는 첫사랑의 애달픈 추억으로 울먹인다. 가브리엘은 지금은 늙어버린 아내가 한때는 한 소년을 죽게까지 한 로맨스를 간직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찰나에 절절하게 스며 시간의 괴력 앞에서 스러지고 만다. 결국 시간의 횡포 앞에서 인간들은 모두 저마다의 오해와 착각을 품고 죽음의 장막 뒤로 퇴장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가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결국 다 그림자가 될 것이고 이런 인식을 하는 나마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자각은 삶 앞에서 몸을 떨게 한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재력, 권력, 사랑 등 세속적인 기준으로 모든 것을 소유한 레빈이 그 눈 앞에 펼쳐진 모든 광경이 찰나에 지나지 않으며 다 스러지고 말것이라는 것을 절절하게 인식하는 대목이 결말을 장식한 것은 제임스 조이스의 그것과 절묘하게 맞물리고 있다. 가브리엘은 아내의 사랑의 추억에 질투를 느꼈다기 보다는 비를 맞으며 눈물을 글썽이며 소녀를 기다리는 장면을 떠올리고 옆에 누워 있는, 이제는 결코 젊고 아름다워 그 때 그 소년의 사랑과 동경을 복원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아내의 모습을 서글프게 느끼며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에게 덮이고 있는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죽음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얘기하며 이 오묘한 대구를 완벽하게 형상화해낸 작가에게 경외를 느끼며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의 마음에도 그런 절절한 추억이, 사무치는 사랑의 기억이 있나 싶어 들여다 보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내어 줄 수는 없다,는 작가의 얘기는 내 자신을 덜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젊은 날의 맹목적 믿음이 허무하지만 그 자체로 가치가 있음을 반증하는 것 같다. 회상 속의 사랑은 언제나 박제되어 가장 아름답고 처절한 모습으로 정지되어 있다. 돌아보면 그 자리에서 잡힐 듯 한데 이미 나는 그 때의 모습도 그 때의 투명한 감정들을 지니고 있지도 않다. 이 깨달음을 주렁주렁 달고 늙어가는 일은 그래서 언제나 조금 쓸쓸하다. <사자>를 읽기 위해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펼쳐 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 쓸쓸함과 잃어버린 순수의 흔적을 더듬어 보는 추체험이 오롯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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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0-05-07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느끼기에 알라딘에서 가장 글 잘 쓰는 작가 중의 한 분인 블랑카님, 잠시 잠깐 들러 보는 것만으로도 저를 흥분케하는 님~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해서 이런 재능(어쩌면 노력일수도...)을 선물 받았을꼬... 봄밤 없는 봄날씨를 탓하며 부러워해 봅니다.

blanca 2010-05-07 14:32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님의 과찬은 저를 너무 행복하게 합니다. 오늘 이 칭찬 먹고 오후를 행복하게 보내렵니다. 감사합니다.!

穀雨(곡우) 2010-05-12 09:46   좋아요 0 | URL
느와르님 말씀에 백배동감. 베스트 오브 베스트.^^

노이에자이트 2010-05-09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나도 알라딘에서 글 잘쓰는 사람이란 평을 받아보고 싶어...블랑카님.부러워라...요즘은 제 서재에 댓글 달러 오는 사람도 없답니다.

blanca 2010-05-10 13:13   좋아요 0 | URL
노자님.ㅋㅋㅋ 댓글 읽다 웃습니다. 제가 부러워할 만한 사람은 아닌데요^^;; 노자님의 박학다식은 어쩌구요? 노자님 서재에 가봐야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5-09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임스 조이스...요즘엔 많이 안 읽히는 작가인데...그래도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더블린 사람들은 조금씩 팔리는 편이죠?

blanca 2010-05-10 13:15   좋아요 0 | URL
솔직히 재미는 없더라구요^^;; 더블린 사람들은 조이스 뒤의 단편작가들 대부분 모방한 것 같아요. 한 마을 사람들 모습을 연작형식으로.

노이에자이트 2010-05-10 16:17   좋아요 0 | URL
맞아요.우리나라에도 이문구<관촌수필><우리동네> 박영한<왕룽일가>가 있지요.<원미동 사람들>도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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