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처음 읽었을 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감동을 받았다. 이제 그런 결말의 반전이 더는 새롭지 않은 시대라고 해도 여전히 이 부커상 수상작이 가졌던 강렬한 인상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내게 줄리언 반스는 젊고 예리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작가였다. 인문학적 소양과 픽션을 적절히 융합시킨 그의 소설은 어떤 것은 와닿았고 또 어떤 것은 내게 너무 난해했다. 그래도 줄리언 반스의 신작은 내게 언제나 챙겨보게 되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는 오십대 후반에 이미 죽음에 대한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책 속에서 형인 철학자와 죽음에 관해 나눈 대화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내게 아버지뻘인 그가 얘기하는 죽음은 어쩐지 좀 유쾌했다. 오십대 후반에도 죽음이 목전에 다가왔다고 느끼기는 힘들구나, 싶었고 또 그것을 읽었던 삼십대의 나는 더더군다나 '죽음'을 현실이 아닌 하나의 철학적 소재나 주제로 치환하여 마음 편하게 받아들였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작가인 그나 독자인 나에게나 그때의 죽음은 '아직은...'이었다.


그러던 그가 스스로 마지막 책이라 호명한 소설을 썼다. 아니, 이건 소설이라기보다 그 자신이 한국인 독자에게 쓴 편지에서 고백한 것처럼 픽션과 논픽션, 자서전이 합쳐진 하이브리드 책이다. 이제 만으로 팔십 살이 된 노작가는 자신이 소설가로서 살아온 삶과, 갑작스럽게 뇌종양으로 떠나보낸 아내의 상실, 코로나 시기의 암 진단, 친구의 연애와 이별, 다시 재결합의 메신저 역할을 했던 기억 등을 한데 모아 재구성한다. 이 책은 그 어느 인터뷰보다 그 어떤 소설보다 줄리언 반스에 대해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고백들로 채워진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어디부터가 작가 개인의 이야기인지 구분하기 힘든 모호한 지점들 경계에서 줄리언 반스는 특유의 호쾌한 농담으로 독자들과 밀고 당기는 게임을 한다.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 하지만 이 당연한 명제를 '나'를 주어로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란 어렵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일상 속에서 갑자기 들이닥치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멈칫한다. 주변 사람들이 떠나고 다음 차례는 내가 될 거라는 각성은 차갑다. 삶이란 영속성, 연속성의 관성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일들이 곧 흩어지고, 그 일들을 하고 말하는 내가 사라지는 세상을 매순간 가정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쓰는 글이 사실상 마지막 작별인사가 될 거라 선언하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소멸하고 말 거라는 걸 철학적이고 간접적으로 받아들이는 일과 직접적으로 육박하는 시간 속에서 인정하는 일의 낙차는 아찔할 정도로 크다. 그럼에도 줄리언 반스는 여전히 그의 글처럼 그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도 무겁지 않으면서도 예리한 논평가처럼 한다. 여기에서 멈추면 줄리언 반스가 아니다. 이제 줄리언 반스는 그가 만나지 못한 수많은 우리 같은 독자들에게 인사를 한다. 이 인사말이 어쩌면 이 책 전부를 아우르는 가장 아름다운 종결어일지 모른다. 


당신이 있어서 나는 즐거웠다. 사실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 팔에 잠깐 손을 얹었다가-아니, 당신은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나는 슬쩍 사라지겠다. 아니,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

-2022~2025년 런던에서

줄리언 반스


슬쩍 사라지지 말고 다음 책 한 권 정도는 더 써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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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저 - 난파선에서의 반란과 살인, 그리고 생존을 향한 사투
데이비드 그랜 지음, 김승욱 옮김 / 프시케의숲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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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이지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는 리뷰임.


극한의 상황에 갇혀도 인간은 인간다울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본능에 충실한 저열한 동물로 떨어질까. 우리는 논픽션 작가 데이비드 그랜의 역작 <웨이저>를 통해 그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책 서두에 인용된 "어쩌면 짐승이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우리뿐인지도 몰라."라는 <파리대왕> 소년들의 대사는 여기에서도 유효하다. 다만 18세기 영국의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패권주의는 개개인의 이야기를 자기 편의적으로 해석하고 종결지어버리는 폭력을 저질렀다는 걸 작가가 간파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데이비드 그랜의 문장을 따라가며 우리는 난파선 웨이저 호에 실제 올라 지진, 폭풍, 반란, 굶주림과 싸우는 승조원들이 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끝내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살아남아도 서로가 눈감은 그 저열한 행동들의 잔상은 마침내 사라질 수 있는지 따라가 보자.


18세기, 영국은 제국주의 패권 전쟁에서 라이벌이었던 스페인의 보물선을 가로챌 계획을 세운다. 이 위험하고 탐욕스러운 원정은 전함 다섯 척과 정찰선 한 척, 병력 2000명을 이끌고 대서양을 건너 케이프 혼을 끼고 도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웨이저>는 이 소함대의 전함 중 하나로 이 배의 선원들이 폭풍을 만나 난파되며 벌어지는 일들이 이 이야기의 골조를 이룬다. 여러 선원들의 시점에서 각자의 입장에 가장 유리한 이야기 덮어쓰기의 향연이 흥미롭다. 특히 시인 바이런 경의 할아버지가 되는 수습장교 바이런은 겨우 열여섯 살의 소년이었음에도 위기 상황에서도 대단히 침착하고 이성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끈다. 승조원들이 고압적이고 독선적인 칩 선장을 외딴 섬에 버리고 가는 반란을 일으켰음에도 끝내 그의 곁으로 다시 돌아가는 의외의 선택을 하기도 한다. 작가의 말처럼 "길고 위험한 항해는 사람의 숨겨진 영혼을 무정하게 끄집어내는 법이었다."


굶주리고 병들고 기약 없는 난파 상황에서도 인간들의 위계질서는 끊임없이 재편된다. 앞서 말했듯 외골수로 위험한 상황에서도 선원들의 안위보다는 임무 수행에 집착했던 선장 칩은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살인을 저질러 끝내 축출되고 지위는 낮았지만 영리하고 리더쉽이 있었던 벌클리가 반대 세력의 지휘관이 된다. 위기 상황에서 어떤 리더쉽이 설득력과 지지를 얻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형식적인 명분이나 위계는 생존 앞에서 무너진다. 허기는 모든 것을 압도한다. 죽은 동료의 이름을 기록하고 장례를 하는 일과 그의 시신을 먹는 일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사의 비극이기도 하고 희극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랑하고 미워하며, 존중하고 배척한다. 


사람은 누구나 혼란스러운 자신의 삶에 모종의 두서, 모종의 의미를 부여한다. 기억 속의 이미지들을 뒤지며 선택하고, 윤색하고, 삭제한다. 그렇게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면, 자신이 저지른 일 또는 하지 않은 일을 견디며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위대한 시인 손자를 낳게 될 존 바이런의 일기와 선장에게 반란을 일으킨 벌클리의 기록은 모순될 수밖에 없다. 그 불일치를 함부로 봉합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노력은 이 <웨이저>를 일관되게 흐르는 기조다. 즉, 각자의 시선에서 각자의 버전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게 내버려두는 그 거리두기는 읽는 입장에서의 새로운 버전의 이야기를 용인하는 관용이다. 우리는 우리의 해석을 유보하지 않고 각자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선원을 하나 택해 이야기에 뛰어들 수 있다. 그 행위 자체가 이 역사를 살게 하는 평행우주적 체험을 선사한다. 

이제, 우리는 그런 기록조차 남길 수 없었던, 그 역사에서 소외된 이들에게도 시선을 옮겨야 한다. 


여기엔 존 바이런에게 자신의 모자를 양보했던 유일한 흑인 수병도 있었고, 자신들의 문명을 짓밟은 백인들에게 끊임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 원주민들도 있었다. 어쩌면 <웨이저> 이야기 중 가장 감동적인 대목일지도 모른다. 기록을 통해 그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소외된 이들을 뭍으로 건져 올리는 글쓰기를 한 작가에게 경외감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기록으로 남은 역사를 통해 과거를 재구성하며 그 사이로 빠져나간 숱한 무명씨들의 잊혀진 역사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2년여의 표류 끝에 이들은 결국 살아 돌아왔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각자의 편견으로 윤색된 이야기를 가지고 그들은 영국의 군사법정 안에서 재회한다. 선상에서의 반란, 지휘체계의 교란, 살인 등 그들을 감옥에 가두거나 처형할 근거는 차고 넘쳤다. 하지만 영국 역사는 가장 편리하고 그럴듯한 버전의 역사를 채택하기로 한다. 에필로그는 살아남은 자들의 너무나 평안한 세속적인 삶들을 후술한다. 평탄하고 여유로운 일생을 누렸던 소년 수습장교 존 바이런은 후일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 남긴 트라우마를 고백한다. 살아남기 위해 감행하고 때로 방조해야 했던 비인간적인 일들이 끝내 인간으로 삶을 마감하기 위한 방편이 된 부조리와 모순은 우리가 여기에서 살아나가는 일상이 가지는 무게와 의미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한다. 


역사는 결국 살아남은 자들이 미래에 올 자들에게 남기는 하나의 변명일 수도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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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저 - 난파선에서의 반란과 살인, 그리고 생존을 향한 사투
데이비드 그랜 지음, 김승욱 옮김 / 프시케의숲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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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의 성인버전. 난파선, 보물선, 원주민, 배신, 반란, 살인, 구조. 온갖 드라마틱한 요소는 다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민낯을 건조하게 서사화한 작가의 필력에 감탄.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인간 군상의 오디세이아. 귀향 이후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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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각자 자신이 구성된 방식, 물려받은 유산과 비유산, 움직이는 정체성, 내밀한 브리콜라주를 조정해 나가며 살아간다."

-클레르 마랭 <제자리에 있다는 것>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하나의 이야기라기엔 하나의 현상이자 문화적 계보 역할을 하게 된 경이로운 작품이다. 중년의 남자가 어린 소녀에게 연정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는 사회적 금기, 금제, 윤리적 논란의 지점과 예술적 성취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 이쯤 되면 다들 나보코프의 삶 그 자체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혹시 어두운, 감춰진 자전적 역사나 욕망이 투영된 건 아닐까? 하는. 그러나 그런 질문에 나보코프는 삶으로 답한다. 그가 만들어 낸 허구의 세계의 조각들인 언어의 정묘함과 아름다움은 물론 그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비윤리적 도착의 세계는 그의 삶과 애정관과는 턱없이 멀다. 이제 이 자서전에서 그는 러시아어로 아로새겨진 기억을 영어로 서술했다, 다시 러시아어로 바꿨다, 최종적으로 영어로 바꿔 <결정적 증거>로 만들어 낸다. 


"요람은 심연 위에서 흔들거린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건대 우리의 존재는 두 영원의 어둠 사이 갈라진 틈으로 잠시 새어나온 빛에 불과하다."는 첫문장은 그의 네 살 세례식의 출발을 알린다. 19세기 말, 러시아 상테르페테르부르크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의 소년 시절의 기억의 워터마크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정밀하고 생생하다. 언어에서 색감을 보는 독특한 공감각적 인식의 재능을 가진 조숙한 소년은 여러 가정교사들을 거치며 광활한 극지의 자연과 아름다운 소녀들과 "경이로운 내일"을 기다리며 자신의 기억이 태피스트리를 찬란한 언어로 직조해낸다. 


타마라, 러시아. 오래된 정원과 서서히 섞여들던 야생의 숲. 북쪽의 자작나무와 전나무, 여름이 되어 도시에서 시골로 돌아올 때면 매번 땅에 엎드려 입을 맞추던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산과 커다란 떡갈나무-운명은 어느 날 이 모든 것을 허둥지둥 묶어 바다 한가운데로 던져버렸고, 나는 어린 시절과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말하라, 기억이여>


1919년 나보코프 일가는 이 모든 찬란했던 과거를 러시아에 남겨두고 서유럽으로 기나긴 망명길에 오르며 역사의 격랑에 휘말린다. 아버지는 암살당하고 어머니는 머나먼 이국에서 죽고 동생은 수용소에서 아사한다.  나보코프는 유럽을 떠돌며 테니스 교습, 번역 등의 일을 하는 와중에 수신자의 반응이 없는 글들을 쓰고 또 쓴다. 하지만 지금 이 과거 또한 "작은 유리공 안에 담긴 색색의 나선"으로서의 나보코프의 삶이다. 후일 자신의 반세기를 넘는 삶을 생생하게 복원해 내는 <롤리타>의 위대한 작가는 이 기억으로 재구성된 삶을 조망하며  "지나간다, 급행으로, 급행으로, 흘러가는 세월들이."라는 호라티우스의 시어를 선창한다. 모든 과거가 복선으로 작용하는 현재의 이야기를 우리는 또 완성되고 고정된 작가의 그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시간도 빠르게 급행으로 지나간다. 


이제 비로소 나보코프가 <롤리타>를 통해 이야기하려 했던 관능의 핵심을 그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짐작한다. 그것은 "나머지 것들의 성장이 잠시 관능적으로 멈춰 있는 상태"에 대한 그 자신의 처절한 그리움을 형상화한 것이다. 시인으로 출발했던 그가 끝내 닿을 수 없었던 "우주에 대해 자신의 위치를 표현하려는 충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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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1-09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말하라......> 이거 벌써 읽고 계시는군요!
저 오늘 사려고 하는데...... 땡투 드갑니다. ㅋㅋㅋ

blanca 2026-01-09 16:35   좋아요 0 | URL
기억력, 문장이 진짜 ‘캬‘ 소리 나오더라고요.

다락방 2026-01-09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언제 읽어도 블랑카 님의 글은 너무 좋아서, 블랑카 님이 계속 읽고 써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나보코프는 제가 딱히 좋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이 글을 읽고 나보코프의 이 책도 읽어봐야지 생각합니다.

blanca 2026-01-10 11:09   좋아요 1 | URL
제게 불가사의한 두 작가가 있는데요, 나보코프와 미시마예요. 문장력은 범접 불가로 좋은데 작품의 내용은 윤리적 논란의 지점을 아슬아슬하게 횡단하거든요. 그래서 이 두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들의 주제의식까지 동조하는 것처럼 보일까 좀 걱정스러워지는 작가군이요. 이 책은 나보코프 필력을 구경하는 재미만으로 소장 가치 충분하답니다.

카스피 2026-01-10 0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눈 롤리타라는 논란이 작품덕에 작가가 혹시 소아성애자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지만 실제 그는 아내 베라 나브코브와 평생을 해로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실제 일반인들은 롤리타를 변태성욕을 다룬 책으로 오해하는 편인데 문학사적으로 롤리타는 인간의 욕망,도덕적 타락,예술과 외설의 경계등을 탐구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고 하는군요.

blanca 2026-01-10 11:12   좋아요 0 | URL
나보코프 아내 사랑은 이 책 마지막 장을 아예 아내에게 할애하는 것으로. 거의 여신급 추앙을 받았더라고요. 대단하다 싶었어요. 저도 <롤리타> 읽고 완전 오해했잖아요. 그런데 알고 보면 나보코프만한 순애보가 있을까 싶어요. 소년 시절 사랑한 소녀를 위해 군입대 결심까지 하는 이야기도 있더라고요.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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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스로 되돌아간 디디에 에리봉이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우리 모두가 통과하게 되는 필연의 늙음과 죽음을 가지고. 가장 내밀한 사적 이야기를 공적인 장에 펼쳐 놓는 그의 쓰기에는 답이 없다. 묻어버릴 수 없는 질문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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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1-01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럽은 그나마 기본적인 사회 복지가 잘 되어 있어 다행이지마 한국의 경우 저 소득츠의 노년은 오로지 자식에게 의지해야만 합니다.나라의 보조는 일 부분이어서 독거 노인들은 누구의 보살핌도 없이 쓸쓸히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고 자녀가 있는 경우라면 요양원이라고 갈 수 있지만 비용 부담으로 자식들도 가난의 악습에 빠지게 되지요.
특히나 요즘은 남녀 모두 결혼을 하지 않아 혼자사는 가구가 늘어나는데 향후 20~30년 내에 커다란 사화적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blanca 2026-01-02 09:03   좋아요 0 | URL
에리봉 얘기처럼 이 노인 복지에 관련된 구조적, 사회적 문제가 너무 거대해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아예 손 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다락방 2026-01-01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랭스도 안읽었는데 에리봉의 새 책이군요. 저 순간적으로 디디봉 이라고 쓰려고 했네요. 하핫.
한국가면 랭스 부터 읽어야겠어요. 불끈!

블랑카 님, 해피 뉴 이어!

blanca 2026-01-02 09:06   좋아요 0 | URL
디디에 에리봉이 쓴 여성 서사도 정말 공감이 많이 갔어요. 랭스는 걸작이라 감히 말씀드립니다. 아, 오늘 영하 11도예요. 나갔다가 와, 정초부터 따귀 맞는 느낌이었네요. 다락방님도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