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읽기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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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무 살 때 이걸 알았더라면…

영원한 사랑은 없다. 영원한 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잃어버릴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없다. 잃어버릴 두려움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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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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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 하나의 문장도 낭비하지 않는다. 마치 그 문장, 단어, 음절 하나하나를 벽돌처럼 쌓아 아름다운 성당을 세우듯 클레어 키건은 이야기를 짓는다. 무심코 주위를 한번 쓱 들러보고 하는 배경의 묘사 같은 것들도 결국 결론이 나고 나면 이야기에 중요한 하나의 단서였음을 깨닫게 될 때, 이 작가의 작품은 비로소 그 의미를 온몸으로 드러낸다. 지금까지 이런 소설들을 읽어본 적이 있었나? 하고 묻는다면 바로 떠오르는 작가가 그녀를 빼고는 없다.


표제작 <푸른 들판을 걷다>에 초반부터 묘사되는 결혼식의 정경은 평범하다. 결혼식을 진행하는 사제의 시선을 따라 마을 사람들의 한담과 신랑, 신부의 긴장된 모습과 그들의 부모들의 어수선함은 언제나 그러했던 것들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신부의 진주 목걸이가 끊어지고 그 진주알이 사제에게 굴러온 시점에서 이야기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방향을 튼다. 사제는 이 결혼식에서 소외된 사람이고 이 결혼식으로 고통받는 사람이었다. 그가 마을 사람들이 화제로 올릴 때는 무관심을 가장했던 중국 사람에게 가서 그의 손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당신 문제 있어요."라는 말을 연거푸 들을 때 사제는 예감한다. 자신의 상처를 그가 읽었음을. 그리고 이제 그는 다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 함을. 그건 체념이나 절망과는 다르다는 것을.


하느님은 어디 있지? 그가 물었고, 오늘 밤 하느님이 대답하고 있다. 사방에서 야생 커런트 덤불이 풍기는 짙은 냄새가 또렷하다. 양 한 마리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푸른 들판을 가로지른다. 머리 위에서 별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하느님은 자연이다.

-클레어 키건 <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은 자신이 자라난 아일랜드 전원 풍경 묘사를 통해 내밀한 곳의 울림을 자아낸다. 아일랜드에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사람들이 양 한 마리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푸른 들판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상상함으로써 허락받지 못한 사랑을 한 사제의 내밀한 심리적 변화를 손에 만지듯 감지할 수 있는 그 지점을 알고 있다. 이제 사제에게는 한때 흔들렸던 평화가 돌아왔다. 상처의 웅덩이를 지나간 자리에 그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걸어가야 함을, 그리고 그 발걸음이 가지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읽는 이들은 저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깨닫게 된다. 


하루키가 선집에 실었던 <물가 가까이>에서 주인공은 겨우 스물한 살이다. 그의 아버지와 이혼한 후에 재력가와 재혼한 어머니는 아들의 생일을 맞아 호화 리조트에 그를 초대한다. 하버드에 다니는 의붓아들의 성취를 비웃고 빈정대는 계부와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어머니의 모습 앞에서 아직 어린 그가 안쓰럽다.  그는 어린 시절 이혼한 부모 대신에 가부장적 할아버지에 억압받으며 살아온 할머니의 손에 자란다. 할머니가 떠나고 난 후에도 단 하루도 할머니를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그는 바다를 보고 싶어했지만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아내를 바닷가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려 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손녀가 아닌 손자가 자신이 처한 상황이 전부라 여기고 그 안에서 견뎌야 했던 할머니의 슬픔을 해원하듯 자유롭게 물속을 유영하는 장면은 한없이 먹먹하다. 받고 싶었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던 청년에게 진짜 사랑과 돌봄을 줬던 할머니의 생의 비원을 실현이라도 하듯 익사 직전까지 헤엄치는 그의 이야기.


<삼림 관리원의 딸>은 도발적이고 귀엽고 또 한편 묵직한 울림이 있는 이야기다. MBTI로 극J로 보이는 디건은 가장 자신의 아내로 적합해 보이는 마사에게 매달려 결혼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게 되면서 부부 사이는 냉랭해진다. 마사는 디건을, 디건은 마사를 사랑하지 않는다. 어느 날 장미 묘목을 팔러 온 남자를 맞은 마사는 그와의 사이에서 임신하여 막내 딸을 낳게 되고 디건은 일말의 의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 귀엽고 이상한 막내딸을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이는 척한다. 

막내딸의 생일날 숲속에서 남의 리트리버를 몰래 가지고 와 생색을 내며 딸에게 선물로 줘버린다. 딸도 마사도 그 리트리버에 애착을 가지게 되고 어느 날, 그 주인이 나타나게 되는데.. 

발달장애를 가진 둘째 아들이 매사에 계산적인 아버지와 상처 입은 어머니를 관찰하고 내뱉는 이야기들이 촌철살인이다. 사회적 금기나 예의를 벗어던진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들에는 위트와 말하여지지 않은 진실이 숨어있다. 모든 것을 잃게 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디건의 반응은 독자의 기대를 벗어난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가정의 어엿한 가장의 역할에 매달려 있던 그가 마침내 그 모든 것 뒤안에 숨겨져 있는 진짜를 발견하게 될까. 


다시 처음의 작품 <작별 선물>로 돌아온다. 어느 날, 가족을 두고 뉴욕으로 떠나는 딸인 당신. "당신이 떠나면 어머니는 어떨까." 이 질문에서 자유로웠던 작별이 있었을까. 그러나 여기에는 이 가족이 소유하는 더 큰 비밀이 있다. 딸을 성추행했던 아버지, 그를 방관, 방조한 어머니, 여동생의 그런 상황을 눈치채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그 상황을 어떻게든 방지해 보려고 노력했던 오빠를 두고 떠나가게 되는 것이다. 남기고 가는 그것들의 추악함에는 남들이 기대하는 소박한 그리움이 없다. 여기에 클레어 키건만의 독특한 지문이 묻어난다. 아름다운 묘사의 간극 사이로 냉정하고 가혹한 현실이 비어져 나온다. 주인공은 고통받고 고민하고 표류하지만 결국 거기에서 씩씩하게 걸어나간다. 


"바람이 강할수록 나무도 강해진다."


아름답고 허무한데 강인하다.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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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7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8-27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24-08-27 1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blanca님 멋진 글 감사드립니다♡ 클레어 키건 새 책 나왔는지 몰랐네요 저도 읽어봐야겠습니다.

blanca 2024-08-28 08:59   좋아요 1 | URL
달밤님, 반가워요. 새 책이라지만 초기 단편집이더라고요. 초기 단편집 완성도가 이 정도라니, 정말 놀라운 작가랍니다.
 
달리는 말 풍요의 바다 2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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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유작이 되어버린 '풍요의 바다' 시리즈 2권이다. 전권 <봄눈>의 시점 인물은 마쓰에가 가문의 기요아키였다. <달리는 말>에서는 금기시되는 사랑에 정열을 바치고 요절한 주인공의 죽음을 목격한 친구 혼다가 삼십대 후반의 나이에 오사카 항소원의 판사가 되어 재등장한다. 기요아키는 죽음 직전에 혼다에게 환생을 암시하는 재회를 약속한다. 



"또 만날 거야. 분명히 만나게 돼. 폭포 밑에서."


혼다는 항소원장을 대신해서 가게 된 신전 봉납 검도 시합에서 빛나는 소년 이사오를 만나게 된다. 혼다는 우연히도 그 소년에게서 기요아키의 표식을 읽게 된다. 검은 점 세 개, 그리고 순수를 향한 무모한 열정. 기요아키의 열정이 사랑을 향한 것이었다면 이사오의 무모한 열정은 우국으로 향한다. 부정부패에 물들고 타락한 정재계의 거물 인사들을 암살하고 할복 자살하겠다는 청년의 치기는 실제 청년들을 이 기치 하에 규합하고 거사를 결행하려는 음모로 비화된다. 

<달리는 말>은 열아홉 소년의 순수를 향한 무모한 열정, 그 순수성이 현실과 어떻게 충돌하고 어그러지는지 또 그것을 뛰어넘어 어떻게 승화되는지에 대한 미시마 특유의 미문의 거대한 향연이다. 


미시마 유키오의 탐미주의는 결국 아름다움과 젊음에 대한 천착이자 집착으로 이어진다. 그에게 있어 늙고 병들어 죽는 일은 하나의 치욕이었던 것 같다. <봄눈>에서 스무 살에 죽어버리는 기요아키와 <달리는 말>에서 열아홉 이사오로 환생한 친구를 확인하는 중년 혼다의 모습은 은연중 미시마의 그 아름다운 한때에 대한 회한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삶은 덧없고 청춘의 아름다움은 찰나인데 그 찰나에 갇힌 그 무의미의 향연은 미시마의 언어를 통과해서 하나의 예술이 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르셀이 유장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너지는 삶의 취약성을 돌아보며 결국 그 시간을 넘어서는 예술에 닿았던 길을 닮았다. 아름다움은 시간 앞에 무력하지만 그 시간을 넘어서는 그 지점에서 예술로 위대해진다. 


아름다움 바로 뒤에 또 다른 아름다움이 오는 일은 이 세상에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우리의 역사적 배경을 감안할 때 <달리는 말>은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자살만큼이나 다층적이고 혼란스러운 면이 있다. 신사참배 의식, 신사 검도 대련, 노가쿠, 천황 숭배 등의 묘사는 마치 그 현장에 있는 착시를 일으킬 만큼 생생하고 세밀한 만큼 또 억누르기 힘든 거부감을 자아내는 대목이 있다. 특히 이사오가 일본의 역사적 봉기를 기록한 책을 교본 삼아 또래 청년들을 규합하여 숭모하는 천황 중심 국가 조직을 이루기 위해 지도층을 암살하고 할복 자살하는 혈맹을 맺는다는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를 통과한 우리가 편안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가정이다. 그러나 미시마는 여기에서 단순히 천황에 대한 무모한 충성이나 극단적 우익 사상을 강제 주입하려는 오만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지배층의 사리사욕을 채우느라 소외된 계층에 대한 이야기와 고루하고 단편적인 일률적 역사관으로 재단하는 현실에 대한 경계, 심지어 이사오 같은 청년들이 보지 못하는 전체적인 세계상에 대한 안타까움 등에 대한 길항하는 시선을 놓치지 않는 주도면밀함이 놀랍다. 



흰 눈 같은 죽음 이후


대단한 이상을 향해 투신하는 그 행위들이 놓치는 사소하고 작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미시마 유키오 자신의 이야기가 가지는 한계에 대한 암시처럼 보여 인상적이다. 즉, 미시마 유키오는 스스로의 그 유려한 문장들, 탐미주의가 가지는 한계까지도 자인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대의, 열혈, 우국, 죽음을 무릅쓴 뜻도 사라지고, 대신에 주변의 것들,옷가지와 일상품, 바늘꽂이, 화장도구 같은 소소하고 아름답고 다정한 것들과 자신이 서로 섞여 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사물과의 친밀함이 생겨났다. 

-pp.421


그의 문장들은 더없이 에로틱하고 신비롭고 환상적이지만, 그의 작품에서 이상화되었던 대의, 열혈, 우국, 죽음 등을 넘어서는 것들은 그보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이 이야기에는 있다. 죽음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찾아 헤매는 작가의 도정에서 우리는 의외의 발견을 하게 된다. 작고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재발견이다. 죽음으로 부정했던 삶의 지리멸렬함을 그는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다시 긍정하는 모순을 보여줬지만 그 모순 자체가 미시마 유키오다. 


소년 이사오가 간직했던 역사 속 이야기 소년들은 "올해의 벚꽃은 마지막 벚꽃"이라 노래했다. 그 노래의 후렴구 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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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8-22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휴 저도 읽어야겠어요. 어휴 좋네요.

blanca 2024-08-22 13:34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 <봄눈> 아직 읽으시기 전이라면 연이어 읽으시길 추천드려요. 저는 앞의 내용을 다 잊어버려서 둘이 같이 펼쳐 놓고 보게 되더라고요. 미시마 유키오는 참 드러내어 놓고 좋다,고 말하기 민감한 작가지만 예술적 묘사력만큼은 진짜 압권인 것 같아요.

은하수 2024-08-22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너무 좋네요^^
모든 외부적 요소를 제외하고 읽고 싶을만큼 미시마 유키오의 문장은 너무 아름답고 또 아름답죠!
<봄눈> 읽고 도서관에 신청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나 올까요. 여세를 몰아 얼른 읽고 싶은데 안될 거 같아요 ㅠ.ㅠ
작품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거부감은 또 어쩔 수가 없네요. 이 딜레마를 어째야 할까요

blanca 2024-08-22 19:17   좋아요 1 | URL
미시마 유키오가 그래요. 누가 어떤 작가 좋아하냐, 고 물어볼 때 자신감 있게 얘기하기 힘든 작가죠. 그리고 이야기도 그래요. 일본 제국주의, 극단적 우익 사상 등을 작가의 미문으로 읽을 때는 참...마음이 힘들어요. 그런데 좀 문제가 있다,고 발끈하다가도 슬며시 이 작가는 자신의 사상 자체를 흔드는 통찰을 또 보여줘요. 이런 생각을 하지만, 이건 좀. 이런 식의 흔들림이요. 알다가도 모르겠다, 싶다가도 예술은 작가의 삶을 뛰어넘는 건가, 이러다가 참 어지러운 작품이에요. 아주 뛰어난 작품인 것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너무 아름답습니다. 놀라울 정도예요.

은하수 2024-08-22 23:1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인정이요.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글을 쓴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예요. 그래서 앞으로 계속 읽게 될 거 같아요.
이왕 읽는거 기쁘게 읽겠습니다. 놀라울 정도란 말씀어ㅣ 더더 얼른 읽고 싶네요^^
 

나이듦은 상실의 누적이다. 매일이 평온하고 모두가 영원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런 일은 없다.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이제 잘 기억하려 한다. 이 만남이 언젠가 결국 끝나고 만다는 사실을 이젠 상기한다. 나는 애도의 주체가 되겠지만, 그 대상이 되는 날도 결국 맞아야 한다. 깊이 생각하다 보면 두렵고 서럽다. 답이 없는 문제다. 명쾌한 해결책도 없다. 자꾸 잊으려 하지만. 하루하루가 결국 그런 날들을 향해 가는 그 자체를 막을 도리가 없다. 어린 사람들의 해맑음을 되찾을 수 없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상실과 발견>의 저자 캐스린 슐츠의 책은 사랑하고 존경했던 아버지의 상실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이 책이 다른 점은 그 상실과 대구를 이루어 평생의 반려자를 발견하는 일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를 잃어가며 사랑을 시작하는 이 아이러니라니. 그러나 인생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그렇지 않을까. 레이먼드 카버 또한 그랬다고 한다. 아버지가 죽어가는 바로 그 병원에서 아이의 탄생을 맞았다. 저자가 발견의 장을 상실의 장 뒤에 둔 것은 섣불리 사라짐에 관련한 절망으로 마침표를 맺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을까. 삶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것들이 찰나와 같음에도 여전히 빛나는 유의미한 무언가가 있다는 그 희망을 꿈꾸는 어려운 길에 대해 나는 여전히 매혹을 느낀다. 


사랑이 우리에게 처음 제기하는 문제는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이다. 한데 사랑이 꾸준히 제기하는 문제는, 삶이 꾸준히 제기하는 문제이기도 한데, 우리가 결국 그것을 잃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다루며 살 것인가이다. 

-캐스린 슐츠 <상실과 발견>



















이 이야기 또한 필멸자로서의 인간의 근원적 유한함에 대하여 다룬다. 다만 더 과학적으로. 저자 마리라 마르티논 토레스는 의사이자 고인류학자다. 우리 인간 종의 "병력전기학"에 대해 다룬다. 죽음, 늙음, 두려움과 불안, 수면장애, 암, 감염, 사춘기, 음식, 알레르기, 폭력, 죽음의 의식에 대해 과학적인 정보들과 더불어 저자 자신의 성찰과 문학적 식견을 안내자로 동행한다. 흥미롭고 감동적인 책이다.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 한계, 폭력성, 이기심에 대하여 언급하지만 그 한계 속에서 자신의 필멸을 의식하며 집단에 기억을 남기고 기여하는 방향에 대하여 고민하는 본성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한다. 이렇게도 나약한데 그렇게 위대해질 수 있는 우리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듣는 순간, 상실을 애도하고 사랑을 발견하는 길을 찾아 떠나는 <상실과 발견>의 저자와 다시 만나는 느낌이다. 


숱한 상실들로 인간들은 불완전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발견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우리 종이 비천해지지 않고 스러지지 않는 이유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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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바른 토너로 얼굴 전체에 트러블이 확 일어났다. 내 피부는 민감성도 아니고 그 토너는 처음으로 쓴 것도 아닌데. 

저는 민감성이 아닌데 왜 갑자기 이렇죠?

원래 그런 거예요. 사람이 평생 건강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기사, 그렇네요.


가슴 아픈 일은 언제나 부족함이 없다. 아름다움 또한 그렇다. 이야기에 질리지 않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일 터다. 
















미시마 유키오의 유려한 문장은 서사를 압도한다. 아니, 서사를 구축한다는 말이 맞겠다. 문장 자체가 주인공의 성장, 주인공의 삶 그 자체를 닮아 아름답고 빛나고 허무하고 때론 폭력적이다. 이런 문장.


나는 잃어버린 낮, 잃어버린 빛, 잃어버린 여름 때문에 울었다.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아버지의 유언대로 교토의 금각사의 도제가 된 소년은 절대적인 미의 상징과도 같은 금각사 앞에서 끊임없이 절망한다. 그건 닿을 수 없고 정복할 수 없는 실재의 현현으로 마치 약올리듯 가까워질듯 가까워지다가도 저만치 멀어져만 갔다. "한 손으로 영원을 만지면서 다른 한 손으로 인생을 만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어른의 문지방을 넘어가며 소년이 이루어 낸 성장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하나의 장례 절차였다.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은 언제나 그렇듯 아름답고 허무하다. 그는 어떤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하겠다는 의지 자체가 없다. 다만 본인이 상정한 절대미에 근접하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질 뿐이다. 거기엔 커다란 맹점이 있다. 그에게는 윤리가 없다. 선이 빠져 있다. 아름다움을 위해 그는 그러한 가치들을 방기한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 그래서 혼란스럽다. 내가 이런 글에 감동해도 되는 걸까.



















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이라니. 미처 기대하지 않았던 좋아했던,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반가운 해후 같은 작품집. 음악이라는 하나의 테마로 뭉쳤다지만 역시나 고수들은 그런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자기만의 색깔들로 울림을 주는 이야기들을 기꺼이 만들어냈다. 원래는 어떤 테마로 청탁 받은 이야기들의 작위성을 크게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소설집>은 그런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좋았다.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에는 화상 영어로 만나는 현업에서 은퇴한 원어민 교사와 중년 여성의 시간이 나온다. 아버지를, 어머니를 잃고 삶의 전장에서 격렬하게 싸우는 시간도 이미 지나온 그들의 외국어 수업이라는 체를 통과한 한계를 가진 미약한 소통은 그들의 상실의 시간들의 교감과 기대할 것이 많지 않은 남은 시간들에 대한 작은 기대들을 한데 불러온다. "이미 많은 걸 잃었다 여겼는데 여전히 잃을 게 남은 삶 속에서" 잠시잠깐 빛이 쨍하고 나는 그 시간의 마침표가 어떻게 될 것인지, 그 결말까지도 상세히 축조된 김애란 작가의 문장들이 참 좋았다. 


김연수가 의도한 사나운 어머니의 모습이 <수면 위에서>는 여전히 잔잔하고 애잔하게 그려져 있다. 무조건 희생하고 감내하고 묵묵히 가족을 위한 시간을 통과하는 전형성을 탈피한 지점에는 삶이 있었다. 우리 여기 지금에서의 삶들이 가질 궁극적인 의미에 대한 작가의 심오한 탐구는 여전히 울림이 크다. 나는 언제나 그의 이야기를 기대할 것이다.


윤성희의 <자장가>이 십대 여고생 화자의 이야기는 내도록 슬펐다. 과거의 어느 시점 내가 어딘가에 두고 온 내 여고생 시절의 모습을 환기하는 그 지점 때문일까. 우리는 부모가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거꾸로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내가 아직 덜 컸다는 사실을 항상 환기한다. 


은희경의 <웨더링>은 궁금증을 남겼다. 기차의 서로 마주 보는 4인석에서 처음 만났다고 생각했던 그 낯선 이들의 조합은 정말 처음이었을까. 옆자리의 노인이 주인공에게 양보한 우산이 가지는 여운이 길었다. 


편혜영의 <초록 스웨터>는 좀 의외였다. 이렇게 따뜻하고 포근한 작품을 편혜영 작가가 썼다고? 나는 그녀의 문장이 가지는 긴장감과 그 절제된 어두움을 좋아했었다. 그런데 죽은 어머니의 친구들을 이모라 부르며 그녀들과 교감하는 여주인공의 이야기에 기대보다 더 너무나 쉽게 빠져들었다. 받아야 할 돈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는, 아니 못하는 그 어처구니 없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관계가 어떤 것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얽히는 일은 수많은 결들이 차곡차곡 쌓여 누적되는 일이니까. 깔끔하게 단 하나의 문장으로 우리의 역사를 압축하기는 어려우니까. 그 행간에서 작가는 독자와 소통한다. 


얼굴의 피부염은 얼추 가라앉았다. 그런데 또 그럴까봐 무서워서 뭔가를 다시 얼굴에 얹는 일이 망설여진다. 마치 겁쟁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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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4-07-16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의문의 두드러기로 몸고생 맘고생이 말이 아니에요. ㅠㅠ 전에 없던 일이 자꾸 몸에 일어나는 것 보니까 나이가 많이 들어서 그런 거 같아서 더 슬퍼요. 지금 여행왔는데 예전과 달리 햇빛을 피하고 있으려니 더 슬프네요. 암튼 <음악소설집> 담습니다. 많이 좋아지셨다니 다행이에요. 겁쟁이처럼 망설이는 마음 아주 잘 알아요. 그래도 용기 내시길. 화이팅!!

blanca 2024-07-17 09:28   좋아요 0 | URL
라로님도요? 제 친구도 그러더라고요. 피부가 진짜 묘한 것 같아요. 쉽게 생각했는데...저는 최근 화장품에 자꾸 알레르기가 생겨서 선블럭도 못 발라요. 와우, 모처럼 편안한 휴식, 즐거운 여행 되기를 바라요.

2024-07-17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7-17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24-07-24 0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피부엔 둔감해서 잘 모르지만 뭔가 잘 나는 것 같아요. 제 경우엔 늘 어딘가 아프고 뒤틀린 느낌이라서 그게 갈수록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ㅎㅎ 나이를 먹어가고 있어요. 아마 제 서친님들 중 높은 연령대에 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ㅎㅎ 이제는요....

blanca 2024-07-24 12:48   좋아요 1 | URL
올해 나이듦을 여실히 느껴요. 인생의 유한함도 실감하고요. 컨디션이 완벽한 나날이 줄어가는 느낌 뭔지 정말 알아요..삼십대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삼십대의 그 강건한 신체 컨디션은 눈물나도록 그립습니다.

2024-09-03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03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