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 제148회 나오키상 수상작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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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의 작가 아사이 료가 23세에 쓴 소설로 최연소 나오키상 수상작이다. 대학교 5학년 취업 준비생 다섯 명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긴장을 늦추지 않는 흡인력으로 독자를 끌고 간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는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호흡이 짧은 단문의 문장들은 단 하나도 남용되거나 모자라지 않게 있어야 할 딱 그 자리에 있다.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이 작가가 얼마나 주제 의식에 충실한지, 그리고 그 주제로 뻗은 자기만의 경로를 확실하게 제대로 짚어 나갔는지 깨닫게 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첫장면은 주인공이자 화자인 다쿠토의 룸메이트 고타로의 밴드 은퇴 라이브 공연 현장이다. 대학 시절의 낭만은 이제 끝났다. 연극 동아리를 했던 다쿠토, 고타로의 여자친구였던 미즈키, 미국 유학생으로 온갖 스펙이 짱짱한 리카, 그런 리카와 동거하며 취업 전선에서 한 발짝 떨어진 척 은근히 과시하는 다카요시, 다쿠토가 아르바이트 하는 곳의 선배 사와. 이들은 이제 모두 사회로 나가야 하는 시점에서 자신들을 증명해 내기 위해 서로 정보를 나누고 응원하며 함께 한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물론, 이게 이 소설의 전부일 리는 없다. 다쿠토는 주인공이면서 주인공이 아닌 듯 이들을 관찰한다. 누구나 욕망으로 들끓고, 사회가 제시한 기준에 맞추기 위해 분투했던 그 한때를 떠올리는 모습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트위터, 페이스북에 자신들의 다른 속마음을 올리고, 현실을 부풀려 전시하고, 은밀히 서로를 공격하는 그 이면은 적나라하다. 관심 없다고 이야기했던 회사의 면접장에서 마주치고, 나보다 먼저 입사한 친구의 회사를 은근히 깎아내리고 공격하는 일도 낯설지 않다. 그 기저에는 '불안'이 있다. 이제 더는 어른이 생애 주기에 맞게 끌고 가주지 않는 생의 전장에 떠밀려 나가야 하는 청년들의 불안은 초라하고 찌질한 자신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당당히 내보일 수 있는 '누구'가 되고 싶은, 되기 위한 초조함말이다. 


결국 들키고 마는 그 이면에서 진짜를 찾아낼 수 있을지 그 마지막 희망의 틈새를 엿보는 결말도 넘치지 않는다. 온라인에 전시하는 그 숱한 페르소나들 틈새에서 진짜를 찾아 헤매는 청춘들의 서글픈 자화상의 민낯에서 문득 누구나 자신의 한때, 지금, 미래를 만나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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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관점의 양 극단에 선 책을 읽었다.



























제목만 봐도 두 책이 대척점에 있다. <인간의 비참>과 <가치 있는 삶>. <인간의 비참>의 저자인 데이비드 베너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학 교수로 소위 반출생주의자다. 말 그대로 비참한 존재이자 필멸의 소멸을 품고 있는 인간을 재생산하는 출산을 일종의 생식적 폰지 사기로 보고 있다. 삶의 큰 질문, '우리의 삶에는 의미가 있는가?'에 제한된 지상적 관점에서 그럴 수는 있지만 우주적 관점에서는 단호히 그 어떤 의미도 없으며, 이런 곤경이 삶뿐 아니라 존재의 궁극적 소멸인 죽음에도 있다고 단언한다. 태어나는 것도 나쁘지만, 죽는 것 또한 그 못지 않게 나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가망 없는 존재를 세상에 퍼뜨리는 출산 또한 나쁘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진실은 종종 추하다.'의 그의 이 '인기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철학을 듣다 보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우리를 살게 하는 건 비관이 아닌 끈질긴 낙관주의다. 그러나 이 낙관주의가 때로 책임 없는 모호한 환상이나 기만일 경우가 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누구나 생로병사를 통과하여 결국 비존재로 간다. 지금 내가 '내'가 가진 것이라 느끼는 소망, 의지, 꿈, 추억도 결국 존재의 소멸로 종결된다. 이 덧없음을 직시하기란 어렵다. <인간의 비참>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가 그간 묻어두거나 간과했던 이런 인간의 비참함에 대해 환기하며 퇴장한다. 이미 존재함으로써 겪어야 하는 생래적 고통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불필요한 일들이었다. 


<가치 있는 삷>은 <인간의 비참>보다 훨씬 전에 읽은 책이다. 저자 마리 루티는 정신분석학자 줄리 크리스테바의 제자다. 마치 <인간의 비참>에 대항하듯 이 삶의 덧없음에도 불구하고 유한한 삶의 의미를 길어올리는 위대한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과적으로 삶의 덧없음은 삶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고 드높인다.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삶의 덧없음을 사랑한다는 의미다."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논거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불가지론과 불가사의함은 삶의 신비를 드높인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우리의 한계가 아니라 더 큰 차원의 의미로 통합될 수 있다는 '끈질긴 낙관성'을 견지한다. <인간의 비참>의 데이비드 베너타라면 분명 이 저자가 순환론적 오류에 빠졌다 비판할 지점이다. 왜 살아야 하는가? 삶에는 의미가 있으니까. 그 의미는 어디에서 오나? 살아내면 안다. 논리성 앞에서 선 삶은 허술하다. 


이 모든 인간적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한다면, 어떤 심원한 우주적 의미가 있어 그렇다고 얘기할 수 없다. 의미가 있어 사는 게 아니라, 그냥 태어났으니 실존적 불안을 안고 견뎌낼 수밖에 없다. 어차피 이 존재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소멸로 간다. 낙관주의도 비관주의도 침범할 수 없는 생의 자기 보존 의지는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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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독서모임이라면, 기꺼이 참여하고 싶다.


우린 동그랗게 모여 앉아 차를 마셨지 어디로 가는지 모를 하루를 쪼개 무엇이든 한 장씩 읽어나가자 그렇게 모아서 만든 구슬들을 쿠션 보자기에 담아와 동그란 탁자 위에 풀어놓아보자. 

-박상수 <서촌 일요 독서회>



이상하게 읽기도 전에 마음이 가는 책이 있다. 이 시집이 그랬다. 파스텔 민트 단일 색감의 이 시집을 동네 서점에 주문하고 찾으러 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지. 

"제가 주문한 책 왔다고 해서요."

서점 주인이 제목을 말해 보라 하자 갑자기 튀어나온 뜬금 없는 말은.

"트렁크요."

서점 주인이 "메신저 백이죠."

내가 말해놓고 내가 포복절도했다. 친절한 서점지기가 "어차피 여행 갈 때 필요한 가방들이니 그럴 수 있어요."라고 위로해준다. 


시인의 '트렁크'가 아닌 '메신저 백'을 읽는다. 오랜만에 시집을 몰입해서 읽는 경험을 하게 됐다. 시인의 어휘들은 짧은 단편들, 작은 그림들, 단편 영화를 연상시킨다. 과거에 두고 온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현실 자본주의에 소모되는 처절한 노동의 나날들이 교차하며 그 경계를 넘나든다. 아름다움을 환기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냉정한 관조를 피하지 않는다. 서정성과 서사가 기막히게 어우러진다. 맞아, 시는 이런 거야, 라고 절로 수긍하게 되어버리는 마법. 


좋아해요, 라는 말이 떨리면서 흘러나오는 순간을 더할 수 없는 기분으로 좋아해요.

-박상수 <다하지 못한 마음>


내가 있는데 없는 것처럼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박상수 <파견>-기울기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그 고백을 기다리는 시간과 나를 마치 투명인간, 종이상자 하나 정도로 취급하는 근로의 나날들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이 형언하기 힘든 모순의 지점을 통과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시인은 많지 않다. '언제든 밀려날 수 있는 한줌의 사람'이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구나, 누가 한숨처럼 내뱉어도

우리가  여기 모인 게 기적이야! 그런 말로 되받을 줄 아는" -박상수 <오래된 집의 영혼으로부터>


그런 정경을 그려낼 수 있게 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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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6-04-16 09: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집을 정리하고 구매를 자제하는 중인데, 블랑카 님의 글 때문에 장바구니에 넣습니다.

blanca 2026-04-16 09:41   좋아요 0 | URL
저는 자목련님 만큼 시에 조예가 깊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이 시집은 진짜 압도적으로 좋았어요. 소장하려고 줄도 박박 그었네요. 오랜만에 진짜 시를 읽는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가족이란 어떤 존재일까.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한 가정 공동체로 묶여 서로의 가장 내밀한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 애증의 관계는 행복의 원천이기도 하고 불행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우리 가정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나는 전부 다 드러내어 말할 수는 없다.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가슴이 미어질 만큼 슬픈 시간들은 더 많았다. 나와 아이들의 시간도 그럴지 모른다. 마냥 행복하기만 했을까, 그럴 수는 없다. 운명의 힘 앞에서, 인간의 한계 안에서.




찬탄이 나올 만한 명작이었다. 다 읽고 나니 이 특수한 집안의 이야기가 왜 이리 가슴을 아프게 하는지 알았다. 유진 오닐의 가족사를 고스란히 반영한 자전적 이야기는 그 누구의 가족사와도 만나는 부분이 있다. 열심히 살아보려 했던 빛나던 부모가 현실에 부딪혀 좌절하는 이야기, 그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보려 했지만 끝내 넘어지는 성인 자식들의 이야기는 현실 그 자체다. 현실은 언제나 이상보다 먼저 도착해 있다. 사랑하지만 상대의 기대나 소망을 충족시켜 줄 수 없음은 실존의 치트키다. 이러한 일들이 더 빈번히 노골적으로 일어나는 역학이 가족 관계다. 


극 중 어머니 메리는 유랑극단 배우인 남편 제임스 타이론을 따라 싸구려 호텔을 전전하다 거기에서 아이들을 낳는다. 한 명은 어려서 죽고 다른 한 명은 폐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 자신 아이 출산 후 처방받게 된 모르핀으로 약물 중독에 빠지게 된다. 여름 별장에 모인 네 가족은 저마다의 고통을 떠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서로 사랑하지만 미워하고, 기대했다 원망한다. 실제 유진 오닐의 어머니는 유진을 호텔에서 낳았다고 한다. 몰락한 배우 아버지 타이론은 어린 시절의 가난에 사무쳐 미친듯이 땅을 사모으고 가족에게 쓰는 현금은 아까워한다. 언제나 가성비를 따지는 선택을 하고 그게 가족을 위한 거라 둘러댄다. 심지어 어린 아들의 폐병 요양소도 가장 싼 곳을 찾아 헤맨다. 그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게 비극이다.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진정한 자신을 잃고 마는 거야.

-pp.72


이 가족의 부유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는 막내 아들 에드먼드가 이야기하듯 '바다 밑을 걷고 있는 기분'을 전염시킨다. 우리 모두가 여기, 현재 정주하는 삶이라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모두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타이론 가족들처럼 어느 누구나 '안개 인간'으로 언젠가는 흩어져버릴 수밖에 없는 현재를 살고 있다.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닌 이 슬픈 가족사를 재현한 희곡은 유진 오닐 사후 25년 후에 공개되는 것으로 약속을 맺었으나 그 약속은 깨지고 만다. 유진 오닐이 가장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던 아들의 자살로 더는 상처를 줄 사람이 남아 있지 않게 되어서. 가장 슬픈 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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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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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게 죽는 게 당신의 책임이 아니듯 부자로 사는 게 결코 당신의 성취도 아니라는 과학적 근거를 이보다 유려하고 유쾌하게 댈 수 있을까. 오늘날 모두를 불안하게 만드는 자유의지도 책임도 성과도 그릿도 쓸려나간 자리는 황량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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