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의 <연수>를 읽으며 기시감이 들었다. 나에게 도로 연수를 해줬던 오십대 여자 강사와 너무나 닮은 인물의 모습에. 벌써 면허를 땄지만 겁보라 혼자 운전대를 잡지 못하는 나에게 맘 카페에서 소개 받은 노련한 그녀는 열 시간의 연수를 마친 후 바로 나를 매정하게 독립시켰다. 


"아, 조금만 더 해야 할 것 같은데요. 혼자 아직은 무서운데."

"됐어. 이제 혼자 할 수 있다니까. 혼자 해요. 할 수 있다니까 그러네."

그녀가 둥지 위에서 새끼 새를 날리듯 나를 떨어뜨리고 난 후 며칠 뒤 다리를 덜덜 떨며 나는 난생 처음 혼자 운전을 하게 되고 바로 그날 사고를 내는 기염을 토하고 만다. 이 사고 이야기는 또 너무 길어져서 생략하기로 하고. 여하튼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운전대를 잡지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주연이 마침내 그 연수 강사에게서 독립해서 홀로 운전대를 잡고 나가는 장면은 다시 읽어도 여전히 울컥했다. 그것이 가지는 의미 때문이다. 사회적 성공을 거둔 주연은 어머니에게서 또 적절한 연령에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에서 심정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이 연수를 통해 마침내 홀로 도로에 나서게 된다. 뒤에서는 주연을 든든히 지켜주는 강사가 따른다. 사실 운전 연수가 아니라면 연령대도 종사하는 분야도 전혀 다른 두 여성이 만나 이렇게 교감을 나눌 기회는 흔치 않을 것이다. 주연이 비로소 자신을 옭아매던 그 모든 속박과 사회적 통념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지점이 눈에 보이는 듯해서 모처럼 통쾌했다. 장류진 작가는 우리가 그냥 꼭꼭 묻어두고 사는 답답한 지점을 놓치지 않고 그것을 이야기로 해소하는 장점이 있는 작가다. 더운 여름 그녀의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땀이 식는다. 







언제까지 청춘일 것처럼 보였던 작가 김연수는 이제 오십대가 됐다. 그가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에 길어 올린 어떤 깨달음들은 나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준다. 그가 예고했던 사십대의 그 계곡 같은 고통의 지점도 그러했고 이제는 반추의 양이 더 많아진 오십대의 삶의 긍정에 대한 전환도 그러할 것 같다. 마지막에 실린 표제작 <너무나 많은 여름>은 그가 겪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투영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죽음과 작별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다. 뉴욕제과의 막내 아들이었던 그가 복기하는 어머니와의 아련한 추억들과 코로나 시국에 겪은 어머니와의 작별까지 따라 읽다 보면 자꾸 책장을 덮고 한숨을 쉬게 한다. 그건 복습과도 같고 예습과도 같아서. 그가 이야기하는 생의 정경들이 얼마나 핍진한지 나는 그것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기에 그의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 속으로 툭툭 떨어진다. 이 짦은 이야기들을 어느 서점에서 독자들에게 낭독해 들려줬었다 하니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부러워진다.





고독을 주제로 스물두 명의 작가가 쓴 에세이집이다. 사실 어떤 것을 테마로 여러 작가가 글을 써서 책을 만드는 것에 개인적으로 약간의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마치 초등학교 시간 과제로 했던 특정 단어를 넣어 만들어야 했던 짧은 글 짓기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어서 였다. 그러나 이 책은 달랐다. 미리 다 숙고했던 것처럼 단 한 편의 글도 가볍거나 억지스럽지 않다. 아니,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저마다 삶의 한 대목에서 가장 고독했던 그 지점을 신중하게 길어올린다. 아, 이래서 작가구나, 싶을 정도로 마치 잘 정제된 단편처럼 자신들의 삶에서 가장 외로웠던, 고독했던 그 정경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다. 


개인적으로 제프리 레너드 앨런의 <어머니의 지혜>가 감동적이었다. 싱글맘의 노동과 사랑에 기대어 컸던 어린 시절과 이제는 노쇠해져버린 어머니와의 관계의 역전에 대한 묘사가 심지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그들을 고통에서 구해낼 도리가 없는 바로 그 가장 고독한 지점에서 삶을 살아간다는 상기가 마음을 울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가장 고독하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이 인생의 가장 황폐하고 잔인한 대목이다.




뜨거운데 춥다. 그런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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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7-03 18: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라디오에서 <연수> 소개를
해주더라구요.

마침 도서관에 가는 길이라 빌리
려고 했는데, 신간이라 이미 대출
중이더라구요. 아마 읽어 보려면
시간이 마이 걸리지 않을까 싶네요.

좋은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만나
면 좋겠으련만.

blanca 2023-07-04 07:49   좋아요 1 | URL
아, 라디오에 소개됐군요. 저는 <연수>만 따로 문예지 발표되었을 때 읽어서 사실 이 단편은 두 번 읽게 된 거였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마지막 대목은 뭉클하더라고요.

2023-07-04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04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이십 대였다. 남들이 보면 별것도 아닌 일들이었지만 나는 이 일들이 꼭 해결되지 않더라도 시간과 함께 스러질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안 들었다. 출근길이었고 신입사원이었고 나는 전공과 다른 분야의 일을 맡았는데 그 일을 다 배우기도 전에 가장 일이 밀려드는 시기, 같은 팀 가장 큰 역할을 하던 사수가 예정된 연수에 들어갔다. 일은 해도 해도 끊임없이 밀려들었고 사람들은 자기 것부터 해달라고 전화로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든 억지로 에너지를 짜내려고 하루에 네 잔씩 마시는 커피로 위는 너덜너덜해졌다. 같이 일하는 차장님이 먼저 이러다 어쩌면 자기가 과로사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얘기했고, 나는 그의 짐을 덜어주기는커녕 민폐가 되는 존재처럼 느껴져서 차장님의 얘기가 더 가슴을 파고들었다.  


지하철이 승강구로 들어왔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회사에 죽기보다 가기 싫은데 가야 했다. 내가 이 직장을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건 지는 거니까. 배제되는 거니까.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그러나 나는 무사히 지하철을 탔다. 끝이 안 보이는 갱도 안에 갇힌 것만 같았다. 그 마음을 누구한테 이해시킬 수 있었을까? 남자 동기는 우리가 군대에 왔다고 생각하자고 했지만 나는 군대에 가보지 않아서 그 고통과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어 그의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 겉으로만 보면 나는 잘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옥 속에 있었다. 

















우리는 모두 살고 싶었다. 죽으면 게임에서 배제된다는 뜻이었다. 게임의 규칙이 아무리 모호하고 제대로 갖추지 못했더라도, 모두가 게임에서 계속 살아남고 싶었다.

-돈 길모어 <강물 아래, 동생에게>

캐나다의 저널리스트 돈 길모어에게는 괴짜 동생 데이비드가 있었다. 방랑벽이 있었고 밴드 활동을 했고 이따금씩 마약도 했지만 결국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아서 자리를 잡는 듯 보였던 시기에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죽는다. 혼란스럽고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안온하고 평화로워 보였던 날에 동생은 사라져버린다. 돈 길모어는 그러한 동생과의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한 역사를 재건하면서 자신의 사적 경험을 공적인 것으로 치환한다. 바로 중년의 위기다. 죽음에 대한 이끌림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다. 


모든 경험은 이처럼 아름다운 선율과 좋은 화음, 리드미컬한 흐름 같은 것을 유지한다. 그렇게 한순간 앞선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녹아들어 계속 선율이 흐르는 것이다. 


그런데 자살하는 사람은 선율을 듣는 게 아니라 하나의 동떨어진 음만 듣는다. 

-돈 길모어 <강물 아래, 동생에게>


지금, 현재의 순간에 매몰되는 건 여러 의미를 갖는다. 행복한 순간과는 다르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닥치면 그 시간이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시간의 착시 현상에 사로잡힌다. 즉, 지금 이 고통이 나의 전부를 덮치고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도 미래의 밝은 희망도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 기이한 순간에 대한 이해를 나는 이제 비로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어떤 고통과 고난의 시간도 영원하지는 않다,는 전망을 반드시 가져야 견딜 수 있다. 그건 자연사로 가기 위한 통찰이다. 누구나 결국 죽는다. 그리고 그것은 하찮은 것이 아니다. 중년이 된 지금 이 시기를 지나 마침내 노년이 되어 그 쇠락과 퇴락을 감당하며 자연이 주는 죽음을 맞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위대한 영웅적 서사다. 


이제야 알겠다. 들어오는 지하철을 바라보던 과거의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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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6-12 09: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블랑카 님, 이 글이 참 묵직하고 좋습니다.

다락방 2023-06-12 11: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땡투 두 건 들어올겁니다. 접니다.

blanca 2023-06-12 12:31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덕분에 월요일 오전 기분 좋게 출발하네요,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3-06-12 23: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옛날부터 느낀 거지만 정말 블랑카 님의 리뷰는 명문입니다.
그래서 놓치기 힘들어 친구 신청 했었어요.^^
잘 읽고 고이 담아 갑니다.

blanca 2023-06-13 10:12   좋아요 1 | URL
과찬이십니다. 감사합니다.^^

꼬마요정 2023-06-13 1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은 글입니다. 마음이 먹먹해지다가도 잔잔해지네요. 이 책 꼭 읽어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blanca 2023-06-13 21:04   좋아요 1 | URL
고맙긴요^^ 시간 내서 읽어주시니 더 고맙네요.
 

너무 아름답거나 예쁜 걸 보면 이상하게 슬픈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 대상은 자연이 될 때도 있고 사람인 경우도 있고 심금을 울리는 연주회인 경우도 있다. 이건 대체 무슨 감정일까? 가짜 중에 진짜를 봐서 그런가? 진짜가 있긴 한 건가? 이것도 결국 사라질 텐데...


체호프의 <미녀>를 읽다 무릎을 쳤다. 십대의 소년은 할아버지와 우연히 아르메니아인 마을에 들렀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소녀의 아름다움을 은밀히 음미하다 그만 슬퍼지고 만다.  소녀가 가진 아름다움은 이윽고 늙은 할아버지,  소년 그 자신, 소녀를 모두 불쌍하다고까지 생각하게 만든 촉매제가 된다. 우리가 사는 삶은 아름다움을 영구적으로 가질 수 없다.  우리 모두 그 삶을 통과해서 사라지니까. 바로 그거였다. 내가 언어로 형상화할 수 없었던 그 모든 것을 체호프는 당연히 해냈다. 그만의 방식으로 더없이 아름답게.


이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느낌은 묘한 것이었다.  마샤가 나의 마음속에서 불러일으킨 것은 욕망도, 열광도, 쾌감도 아니었으면 어떤 달콤하면서도 괴로운 슬픔이었다. 그것은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마치 꿈처럼 모호한 슬픔이었다. 어째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자신과 할아버지와 아르메니아인이, 나아가서는 이 아르메니아 소녀까지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 네 사람 모두가 인생에서 중요하고 꼭 필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렸으며 이제는 그것을 영영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체호프 <미녀>



체호프의 모든 단편이 그러하다. 뭐라 콕 집어 말할 수 없는데 달콤하면서도 괴로운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자신을 굳게 믿는 친구의 아내와의 외도의 현장을 결국 그 친구에게 들켰을 때에 느끼는 자괴감,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는 주교가 되어서도 자신이 죽으면 그 누구도 자신을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 속에 느끼는 허무, 한 청년의 삶을 저당 잡은 내기에서 그 판돈을 아꼈음에도 패배자의 고뇌를 절절히 경험하게 되는 그 아이러니. 이 모순, 역설, 아이러니 그 자체가 체호프가 우리의 삶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치트키인지도 모른다. 체호프의 이야기는 설사 그게 체호프에게 실패였다 할지라도 언제까지나 계속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문지혁 작가가 미국에서 한국어 교사를 한 경험과 귀국하여 글쓰기 창작 수업을 한 과정 자체가 두 이야기의 뼈대다. 수업 시간 에피소드들과 군데군데 작가의 어린 시절, 문학에 대한 감상, 가족의 이야기가 잘 버무려져 있다. 실제 학생들과의 교감이 느껴지는 생생한 현장감, 어린 아이를 키우며 경험하게 되는 경이로움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이야기로서의 힘과 잘 정제된 단단한 문장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몰입감이 좋다. 개별적인 자신만의 경험을 확대하고 심화하는 작가 특유의 힘이 느껴졌다. 재미있고 뭉클한 대목이 많았다. 어린 시절을 써내야 하는데 어린 시절 기억이 아예 없다고 했던 학생 무영은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쓰인다. 




장강명 작가의 문장은 리듬감이 있다.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단문의 깔끔한 문장이 읽는 행위 자체에 박차를 가한다. 그가 소설가로 살며 느끼는 단상들, 글을 쓰는 자로서 보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눈치 보지 않는, 포장하지 않는, 솔직담백한 자신의 입장, 의견에 대한 이야기들에 공감 가는 대목이 많았다. 한편 집 청소를 전담하게 되면서 그 일을 조직화한 작가의 노력과 위트에 박수를 보낸다. 청소 동선, 배분이 정말 효율적이라 따라하고 싶어진다. 참, 그러고 보니 두 남자 작가가 다 카버의 이야기를 한다. 서로 다른 시각에서 보는 카버의 이야기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같다.



내가 하는 경험은 언어화하기 이전에 결코 내면화할 수 없다. 막연하게 무언가 강렬한 감정을 느끼고 그것의 이름을 잃어버렸을 때의 허탈함을 모처럼 세 작가 덕에 잊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느끼는 달콤한 슬픔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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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5-04 12: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체호프 너무 좋습니다 ㅜㅜ 제대로 설명할수 없는 좋음이 있는거 같아요. 미녀를 보니까 체호프 단편을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blanca 2023-05-04 18:22   좋아요 2 | URL
저 이번에 또 느꼈어요. 왜, 톨스토이가 체호프를 사랑했는지, 오죽하면 부인이 그 둘 사이를 의심하고 질투했다는 풍문도 있더라고요. 이 사람은 뭐지? 이 사람은 대체 어떻길래 이런 글을 쓰지? 나중에 해설로 생애까지 듣고 나니 아, 이래서 체호프구나, 또 싶고요.

다락방 2023-05-04 15: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 실린 단편집을 제가 엄청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네요. 크- 체호프 좋지! 하며 읽어내려가다, 문지혁 작가가 궁금해집니다. 링크하신 책들 저도 한 번 봐야겠어요. 미국에서 한국어 교사를 한 경험이라뇨. 그러고보니 수키 김이 평양에서 영어교사 한 경험을 쓴 에세이가 있지 않았나요? 그것도 함께 검색해봐야겠어요.

언제나 믿고 읽는 블랑카 님의 글입니다. (저는 장강명은 비호감 ㅎㅎ)

blanca 2023-05-04 18:26   좋아요 2 | URL
체호프 단편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네요. 우리나라 번역된 게 다가 아닌가 봐요. 겹쳐서 읽게 되기는 한데 읽을 때마다 정말 너무 좋아요. 대체 왜 장편을 안 남긴건지...문지혁 작가는 일단 제가 유튜브 구독자라서요. 어디 한번 읽어볼까, 했는데 오랜만에 참 재미있는 한국 소설 만났다 싶더라고요. 그리고 그럴 수 있어요. 저 어떤 지점인지 알 것 같아요. ^^;;;;

coolcat329 2023-05-04 15: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체호프 저 단편집 읽었는데 <미녀> 내용이 전혀 기억이 안나서 당황했어요. 너무 아름다운 꽃 날씨 이런 거 볼 때 저는 순간 슬퍼지는데 체홉이 저렇게 묘사했군요. 저도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blanca 2023-05-04 18:27   좋아요 2 | URL
아, 저 <미녀> 읽고 너무 좋아서 접고 줄치고...체호프 이렇게 멋있어도 되는 겁니까? 사람까지 좋아질라 해요. ㅋㅋ 저거 읽고 작품 싹 다시 검색 중이네요.

책읽는나무 2023-05-06 1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지 손더스 작가의 에세이를 읽다가 체호프 단편집 펭권 출판사 걸로 한 권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전 앞에 두 개 정도 읽었는데요.
체호프에 대한 리뷰가 더 친밀하게 읽힙니다.
달콤한 슬픔이라니...
저도 빨리 느껴보고 싶네요^^
문지혁 작가와 장강명 작가의 책도 읽어보고 싶구요. <초급 한국어>랑 <중급 한국어> 서점 갈 때마다 눈에 띄었었는데 한국어 교사 시절 이야기가 담겨 있었군요. 재밌겠어요^^

blanca 2023-05-07 16:36   좋아요 1 | URL
조지 손더스는 체호프를 부르는 책이죠. 저는 을유문화사 단편집을 읽어서 이번에는 민음사 걸로 읽었어요. 워낙 단편을 많이 쓴 작가라 여전히 아직 읽지 않은 보석 같은 단편들이 많다는 데에 안도를 느낍니다. 체호프는 생각 없이 편안하게 읽다 갑자기 가슴이 찡해져요. 거장이란 이런 거구나, 싶더라고요.

고양이라디오 2023-05-09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체호프 희곡 <바냐 아저씨> 읽어보셨나요?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이 희곡 알게 됐는데 너무 좋아요!

체호프가 읽고 싶어지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ㅎ

blanca 2023-05-09 17:10   좋아요 1 | URL
안 그래도 희곡집 샀는데 꼭 읽어볼게요.

yamoo 2023-05-12 06: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체호프, 포, 고골 등의 단편집들은 여타 출판사들이 중복출판해서 서로 겹치는 단편들이 너무 많아요. 체호프 단편집 출간된 거의 모든 책이 있는데, 중복된 단편들이 너무 많고 도 어떤 출판사는 제목의 어휘를 다르게 번역해 읽어 봐야 중복 작품인지 알아요.

애드가 알레 포의 단편들도 너무 중복된 책들이 많아요.

저는 체호프의 단편집을 거의 다 읽었는데, 이 중에서 제일 웃기고 재밌었던 건 지만지고에서 나온 유머 단편집입니다. 거기 가물치가 좀 길게 수록되어 있는데, 진짜 웃겨서 죽는 줄 알았네요..ㅎㅎ

blanca 2023-05-12 10:21   좋아요 0 | URL
오, 그렇군요. <가물치> 꼭 읽어봐야겠네요. 제목만 들어도 웃기네요. ㅋㅋ 가물치라니...
 

십대 딸이 가족 카톡방에 뜬금없이(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갑자기 바퀴벌레가 되면 어떡할 거야?"라고 물었다. 이미 오전에 부모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낸 중고등학생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런 질문을 받으니  솔직하게 답변하기 힘들었다. 나는 다리가 많은 바퀴벌레를 싫어하고 무서워한다. 그런데 하필 내 딸이 바퀴벌레로 변신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줄 수 있을까.



이 질문 참 낯익다. 카프카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쓴 이야기가 백 년이 지나 자신은 알지도 못한 한 아시아의 나라 청소년들의 밈이 될 줄은.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출근 전에 자신이 침대 위에서 거대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 황당한 설정은 얕은 판타지가 아니다. 카프카는 그레고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레의 몸으로 자신이 자본주의 사회의 일원으로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수행해야 하는 책임을 상기하고 그것을 벌레의 몸으로 하지 못하는 데에 대하여 느끼는 죄책감에 주목한다. 벌레로 변한 그를 연민하거나 사랑해 주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가족들조차 그런 그를 부끄러워하고 피하고 제거하고 싶어한다. 그가 무능력한 가족들의 빨대가 되어주어 집안에 실질적인 경제적 도움이 되어줬을 때에도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보다는 당연시했고 그게 불가능해진 시점이 오자 그를 무시하고 조롱한다. 


그레고르 잠자의 변신은 한 인간이 더 이상 사회가 부여한 외형적 가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 그가 느껴야 하는 절망과 소외감을 놀랍도록 명징하고 세련되게 형상화한 우화다. 생명이 생명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을까? 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적인 전제를 전복시키는 이야기는 인간이 잘 살겠다고 만들어 놓은 구조적 헤게모니가 얼마나 강력하고 잔인한지 시사한다. 카프카의 냉소적인 시선은 사랑은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한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하는 기능과 기여로 의존하고 존중하고 존중받았는지도 모른다는 불편한 예감을 카프카는 현실화시킨다.


십대의 사춘기 아이들은 어쩌면 이런 그레고르의 변신을 둘러싼 가족의 변심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성적으로 평가되는 자신들의 성과로 부모와 불화하고 더 이상 존재만으로 기쁨을 주던 영유아기의 매력을 소유하지 못할 때에도 부모들은 자신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줄 수 있는가? 이 질문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너가 바퀴벌레가 되어도 난 기꺼이 난 너를 안아줄거야, 라고 말할 수 있어야 사랑이겠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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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3-04-09 15: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딸아이가 (저도 십대 아이) 엄마 내가 서울대에 못 가도 나를 사랑할 수 있어? 라고 말하더라구요. 물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근이지, 라고 카톡 아니 디엠을 보내고난 후 공부를 잘 하는 아이와 공부를 못하는 아이를 대할 때의 엄마 마음이란 건 어떤 식으로 다를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는데 수치심과 자랑스러움 그 사이겠구나 싶었어요. 저는 공부를 못하는 딸이었는데 엄마에게 물어보니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공부를 잘하는대로 예뻤고 공부를 못하는 아이여도 뭐 내 새끼니까 공부를 못한다고 그런 걸로 막 애정이 식고 그러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말씀하시더라구요. 블랑카님이 말씀하신 문장들을 다시 읽어보니 역시 그래도 내 새끼가 공부를 잘해서 인 서울 하는 편이 지방대 가는 편보다는 자랑스럽겠구나 어쩔 수 없이 뼈를 때리더라구요. 있는 그대로 그 존재 자체를 마주하고 사랑하는 일조차 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쉽지 않구나 새삼 느낍니다. 아이들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을까요. 내가 바퀴벌레가 된다 해도, 내가 서울대 아닌 지잡대를 간다고 해도 엄마는 아빠는 나를 사랑해줄 거야 라는 믿음과 그 믿음이 바탕이 되어 내게 물어보았을 때 아이가 원하는 대답을 스스럼없이 해주면서도 다시 한번 통렬하게 깨닫게 되는 거 같습니다. 머리로는 이미 합리적인 답변이 준비되어 있지만 아이들이 듣고 싶어하는 대답은 이미 하나로 올곧게 정해져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고. 바퀴벌레 말씀하시니 떠오른 건데 전 거미나 지네 뭐 바퀴벌레도 그렇고 탁탁 죽일 때마다 아 만일 저게 전생에 우리 아빠였다면 어쩌지, 내가 보고싶어서 지네로 나타난 거면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 들더라구요.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카프카의 변신.

blanca 2023-04-09 16:42   좋아요 1 | URL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게 한국 사회에서는 소위 좋은 학교에 보낸 결과론적인 걸로 치환되잖아요. 그걸 민감하게 느끼는 게 십대 아이들이고요. 공부를 잘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조건부적 사랑을 느끼게 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은 사람 그대로 사랑받아야 한다는 기본 명제가 있고, 저도 어려워요. 그런데 최근들어 다시 보이긴 해요. 카프카는 정말 선각자구나 싶어요. 아이를 낳기 전에도 이미 다 알았던 거예요.

페넬로페 2023-04-09 15: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런 질문을 엄마한테 보내는게 유행이라고 하네요.
저도 받았어요.
카프카의 변신을 이미 읽어서 질문이 어떤 의미인줄 알아채고 딸아이가 좋아할 만 한 내용으로 답장을 보냈어요.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blanca 2023-04-09 16:43   좋아요 1 | URL
그런데 왜 갑자기 카프카일까요? 그것도 너무 신기해서요. 저는 안 읽어봐서 이번 기회에 처음 읽었는데, 우아, 입이 딱 벌어지더라고요. 카프카가 카프카했더라고요.

책읽는나무 2023-04-09 15: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딸 아이에게 저 질문을 받았습니다^^
전 변신을 예전에 읽어서인지?
어? 그거 카프카 소설이랑 비슷한 내용인데?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와.. 너 그 책 읽었단 말? 와...... 수선 떨었더니 안 읽었지만 일단 대답해 보라고 윽박질러, 뭔가 좀 이상하단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냉큼 엄마는 니 방에 밥도 주고 평소처럼 벌레가 아니고 넌 내 딸이다! 세뇌시키며 살 거라고 말해줬더니 씨익 웃더라구요. 역시 뭐가 있군! 생각하고 빨리 말하라고 했더니 역시나 요즘 유행하는 십 대들의 질문이래서, 전 좀 뜬금없으면서 부모의 사랑을 확인한다는 게 아이들답다! 싶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책을 읽지 않은 남편의 반응이 궁금해서 아빠한테도 물어보라고 시켰더니, 박스 안에 넣어 먹이를 주며 키운다.라고 대답해서 응? 무슨 뜻? 그랬었네요ㅋㅋㅋ
전 질문을 받아도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보질 못했는데 블랑카 님의 글을 읽으니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질문이네요^^

blanca 2023-04-09 16:44   좋아요 1 | URL
아버님 답변 ㅋㅋㅋ 명답이시네요. 아이들 참 엉뚱하죠. 갑자기 카프카 소환...카프카가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떤 말 했을까 궁금도 하고요...그런데 읽어보니 참 십대 아이들에게 아주 적절한 상황 가정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일까? 저도 돌아보게 됐습니다.

바람돌이 2023-04-09 16: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 질문이 요즘 청소년 사이에 밈이군요. 이제 십대 딸이 없으니 이런 거 아무도 안보내네요. 근사하게 답 잘해줄 수 있는데.... 안타깝다. ㅎㅎ
blanca님이 말하는 그런 불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요즘 아이들이 카프카의 변신을 읽는다면 독특한 해석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랑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으로 읽는다든가 말입니다. 제가 읽을 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파편화되고 도구화되는 인간존재의 문제 뭐 이런걸로만 생각했는데, 어쩌면 전자가 더 근사하게 카프카를 읽는 방법이 되지 않을가 뭐 그런 생각이 들어요. ^^

blanca 2023-04-09 16:46   좋아요 1 | URL
저는 이번에 이 유명한 소설을 처음 읽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또 다른 측면으로 읽었어요. 카프카와 아버지와의 관계에 드리운 암운...뭐 그런게 좀 읽히더라고요. 안 그래도 아주 불화했다는 얘기가 있긴 하더라고요. 자식이 나의 자랑이 될 때 가계에 도움이 될 때 지지해 주는 부모의 허울 좋은 사랑이 사실 자본주의의 인간 도구화와 통하죠. 여하튼 덕분에 벼르던 <변신> 읽고 저는 감동 받았어요. ^^

페넬로페 2023-04-09 17:19   좋아요 0 | URL
20대들에게도 유행이예요 ㅎㅎ

새파랑 2023-04-10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새 청소년들 사이에서 카프카가 유행인가 보네요. 요즘 청소년들 수준이 너무 높은거 같아요~!!

blanca 2023-04-10 10:41   좋아요 2 | URL
저는 정말 궁금한 게 누가 가장 먼저 이 질문을 생각해냈을까요? 그리고 그게 호응을 얻은 것도 너무 신기하고요. 뭔가 카프카는 세대와 지역을 넘어 쿵하게 하는 지점이 있나 봅니다.

다락방 2023-04-10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랑카 님도 피해갈 수 없었군요! 요즘 SNS 에서 이거 엄마한테 질문하고 서로 답변 공유하더라고요. 하하하하.
저는 저한테 질문할 사람은 없지만 만약 정말 너무나 평범한 바퀴벌레라면, 그렇다면 내 소중한 사람이 변했다고 인지할 수 있을까, 인지한다면 사랑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겟어요.

blanca 2023-04-10 13:54   좋아요 0 | URL
카프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능하던 역할을 잃어도 사랑받을 수 있나? 이 질문을 바퀴벌레로 형상화한 것 같기는 한데 단도직입적으로 바퀴벌레가 되면 어떡할 거냐,고 아이가 물으니까 솔직히 말문이 막히더라고요. 뭔가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라 더 그런가 봐요. 저는 그냥 ㅋㅋㅋ 이러고 말았어요.

앤디 2023-04-18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일전 이십대의 딸이 이 질문을 했을때 나의 대답은 -나도 ‘바퀴벌레‘로 변해서 딸과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바퀴벌레 다 이미 나는 벌레같은 사람이다

blanca 2023-04-19 12:01   좋아요 0 | URL
아, 아이가 듣고 싶은 답은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05-04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좋아요 블랑카님! 블랑카님도 글 엄청 잘 쓰시네요. 알라딘에는 왜케 글 잘쓰시는 분들이 많은지ㅎㅎ 이 글보고 블랑카님하고 친해지고 싶었어요ㅎㅎ <변신>도 다시 읽고 싶어지고요^^

고양이라디오 2023-05-04 12:33   좋아요 1 | URL
역시 제 느낌이 틀리지 않았군요. 페이지를 넘겨보니 이달의 당선작이 수두룩... 멋지십니다^^b

blanca 2023-05-04 18:28   좋아요 1 | URL
기분 좋은 댓글이네요. ^^;; 감사합니다. 꾸벅.
 

나는 심한 저질 체력에 근육량도 형편 없지만 어떻게든 운동을 생활화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이런 사설은 지난 주 일어났던 비극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한동안 운동을 쉬다 다시 운동을 시작했고 많이 아주 많이 무리했다. 하필 1킬로 아령이 근처에 보이지 않고 평상시 무거워 잘 쓰지도 않는 3킬로 아령이 옆에 있길래 그걸 들고 상체 운동을 아주 열심히 했다. 생각보다 무겁게 느껴지지 않아 신 났다. 다음 날 지하철을 타며 모든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다 걸어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아, 나 체력이 이렇게 올라오나봐. 이거야. 그 다음날은 석촌 호수 주변을 다 돌았다. 2.4킬로 정도? 비극의 서막은 그날 오후에 올랐다. 이상스럽게 몸이 가라앉았다. 열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장렬히 전사했다. 


그로부터 과장 좀 보태 일주일 후에 깨어났다. 임파선도 붓고 열도 나고 입안은 다 헐고 약 때문에 속은 쓰리고. 내 몸에 가했던 그 모든 하중이 통렬히 나에게 복수했다. 이런 거였다. 결국 이럴 것을. 그 기간 나는 아주 몸에 대해 나이듦에 대해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하루키가 왜 그렇게 몸타령을 했는지 젊은 시절부터 왜 그렇게 몸 관리 연설을 했는지 절절하게 이해가 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젊은 작가들이 쓴 이야기. 수상 작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코멘터리 북에서 성혜령 작가의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혜령 작가는 청소년 시기 암투병을 했다. 지금은 건강히 회복해서 직장도 다니고 있지만 그 경험에서 얻은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의 유한함에 대한 자각과 정기 검진이 주는 그것에 대한 각성, 나에게서 아주 긴 미래를 상정하지 않는 신중함, 그리고 지금 여기 이 현실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 그런 것들은 정말로 사소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을 품고 나온 작가의 이야기 그 자체도. 


















김멜라의 <제 꿈 꾸세요>는 죽은 자가 산 자의 꿈으로 찾아가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인데 몽환적이면서도 유쾌하고 또 어쩐지 서글프다. 과거의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 속으로 찾아갈 수 있다면 나도 가고 싶은 날이 있다. 그건 아마도 중학교 시절 시험이 끝나던 날이 될 것이다. 나도 주인공처럼 우리가 시험 끝나던 날 사먹던 시장통의 떡볶이를 먹으러 가고 싶다. 주인공의 엄마가 좋아하던 커피포리에 빨대를 잘 조준해 달라 부탁한 마무리에 괜히 콧날이 시큰해졌다. 불가역성을 가능성으로 변환할 수 있는 건 소설 안에서만 가능한 이야기겠지. 


성혜령의 <버섯 농장>은 도발적인 작품이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와 그 친구의 기묘한 복수 여정에 동행하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지대에서 긴박한 클라이맥스를 형성한다. 언제나 그렇듯 사적 복수가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 제기와 지금 청년 세대들이 당면한 기성 세대와의 갈등의 지점에 대한 복합적 이해, 젊은 여성이 가진 자본으로 다시 그들이 계층화되고 그것이 가로막는 서로의 소통에 대한 예리한 통찰은 서늘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그들은 그 남자를 과연 죽였을까? 


현호정의 <연필 샌드위치>를 읽으며 내가 왜 앓는 동안 그렇게 음식을 넘길 수 없었는지 그럼에도 단 음료에 집착했는지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건 나의 개별적 경험이 아니었다. 먹는다는 일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먹여야 한다. 내가 먹는 일은 때로 내가 억지로 연장하는 생으로 인해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이에게 고통이 될 수도 있다. 먹기 싫어도 먹어야 이어질 수 있는 삶이 가진 은근한 폭력성. 그것은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단순한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니었다. 무심코 넘겼던 먹는다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를 준 이야기였다. 


일곱 편의 작품이 고르게 잘 읽혔고 현실이 환상, 꿈, 과거와 교차하고 섞이는 서사가 많았다. 우리가 규정하고 확정하는 현실의 근간을 흔들고 진짜는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탐색, 그럼에도 그 탐색을 구조화하는 과정에서 읽히고자 하는 의지가 보여 어렵지 않았다. 


나는 더이상 젊다고 할 수는 없는 나이지만 젊은 작가들이 하는 이야기에 여전히 공명할 수 있다는 건 안도감을 주는 동시에 어떤 도전 의식을 일깨운다.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저 감상하고 감당하는 수준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방향 전환을 모색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이야기들은 여전히 나를 깨어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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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 2023-04-08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읽고 싶어지는 리뷰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건강이 최고죠. 저도 요즘 아 이러다 갑자기 가는 수도 있구나 실감했어요. ^^;;

blanca 2023-04-08 16:57   좋아요 1 | URL
Persona님, 반갑습니다. 죽음이 사실 멀리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잊고 일상을 살다 한번씩 아프면 다시 상기하게 됩니다.

cyrus 2023-04-08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자주 가는 책방지기가 <젊은 작가 수상작품집>을 읽고 계시던데, 오늘 <연필 샌드위치>에 묘사된 어떤 문장이 뭘 의미하는지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연필 샌드위치>에 대한 그분의 감상을 듣고 보니 초현실적인 느낌이 나더라고요. ^^

blanca 2023-04-09 09:57   좋아요 0 | URL
꿈 속에서 연필로 샌드위치 만드는 장면이 의미하는 바가 식이의 폭력성 같기도 하고 그 근저에 깔린 돌보는 자의 희생을 감춘 것 같기도 하고 묘하게 복합적 의미가 연상되는 작품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올해 수상작들은 생각의 여지가 많고 여운도 길었어요.

다락방 2023-04-10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순간부터 젊은 작가상 작품집 안읽어야지 하게 되었는데 블랑카님의 리뷰를 보니 또 읽어볼까 싶어지네요.
인생의 흐름을 같이 타고 있는 것 같아요, 블랑카 님과 저는요. 그래서 블랑카 님의 글을 읽는 것이 참 감사하고 좋아요.

blanca 2023-04-10 13:17   좋아요 0 | URL
제가 안 젊으니까 ㅋㅋ <젊은작가상 작품집>은 해마다 숙제처럼 읽습니다. 올해 좋았어요. 그리고 그 마일리지로 살 수 있는 코멘터리 북이 생각보다 너무 좋아 놀랐어요. 인터뷰 내용들이 다 참 깊더라고요. 어떤 해는 솔직히 기대 이하인 적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올해는 잘 읽히고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더라고요. 노안이 없는 젊은 그들이 부럽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