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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1월
평점 :
자식을 낳고 나면 겁이 많아진다. 옛어른들의 "간이 바닥에 두 번은 떨어져야 아이를 키운다",는 말, "애간장을 녹인다",는 표현은 그 강도가 무시무시하지만 단순한 엄포나 거짓말이 아니었다. 특히 아이의 몸과 관련된 문제가 그랬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의 시누이 다리야가 안나에게 가는 길 마차에서 아이들과 관련된 상념에서 아이들의 건강과 관련된 끊임없는 불안을 떠올리는 대목은 모든 어머니들을 만나게 한다. 임신 중간중간 각종 검사들의 출발부터 "나의 아이는 당연히 건강하고 건강할 것이다."라는 기본 전제는 든든한 지지대를 잃기 시작한다. 현대 의술의 발달은 판단 지점이나 조력 지점이 미묘하지만 마음껏 불안할 수 있는 영역에 어머니들을 모이게 했다는 점에서 과거 그러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었던 어머니들이 지녔던 근본적인 무기력의 무기와 겨룰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모성은 불확실, 불안과 힘겨루기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기는 태어나고 얼마 안 있어 B형 간염 접종을 시작으로 무수히 많은 백신의 일정의 단계를 차곡차곡 밟아 간다. 아기를 안고 병원에 가서 그 일정을 따르는 일은 기계적으로 행해지다 어느 순간 때로 의문을 야기한다. 내가 어렸을 때에도 이렇게 주사를 많이 맞았나? 이 예방주사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각종 보존, 첨가제, 부작용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그것을 충분히 부풀릴 만한 많은 확인되지 않은 근거, 사례들이 인터넷에 범람하며 나는 아이를 각종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한 게 아니라 오히려 각종 유독한 물질에 무방비로 내맡긴 듯한 죄책감에 혼란스러워진다. 보존제에 수은이 있다던데(이미 제거되고 생산된 지 오래다), MMR과 자폐증이 상관관계가 있다던데...제약회사도 이윤을 남겨야 하는 사기업인데 과연 백프로 선한 의도로 백신을 생산할까? 등, 끝이 없다. 그렇다고 필수접종을 건너뛸 용기는 없으니 슬그머니 선택 접종인 독감 예방 주사를 건너뛰기 시작한다. 그런데 마치 그런 의도를 간파하기라도 한 듯 독감 주사를 맞추지 않은 그 해에 A형 독감 광풍이 불었고 큰 아이는 육개월이 되지 않아 미처 독감 접종을 하지 못한 아기 동생까지 감염시켰다.
엄마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예방접종에 대한 의견 개진은 대단히 민감한 문제다. 무조건적 거부도 선별적 거부도 또 그 거부 자체에 대한 반감도 대부분 아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문제이기에 어떤 논리의 대결 구도로 가면 모두가 상처 입는 논쟁이 되고 만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접종의 문제를 공공의 문제로 인식하는 엄마들의 의견이 귀에 들어왔다. 단지 내 아이를 보호하고 보호하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공공의 면역을 형성함으로써 다른 아이들까지 함께 치명적인 질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하는 문제가 예방접종의 장으로 들어온 것이다. 실제 미국 상류층에서 자신의 아이에게 MMR을 맞추지 않음으로써 홍역 전염을 일으켰던 사례는 접종의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선택권으로만 수렴될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 책은 어린 아이를 키우며 예방접종에 대하여 가지게 되는 많은 의구심, 혼란, 불안에 대하여 실제 어린 아이를 키우며 저자 율라 비스가 가졌던 그 불확실성에 대한 천착, 때로 그것을 교묘하게 부추기고 이용하고는 책임감 없이 발을 빼는 집단에 대한 비판적 성찰들과 더불어 찬찬히 모색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더 나아가 우리가 접종을 통하여 형성하게 되는 면역의 장이 공공의 장이라는 이야기는 모성이 사적인 공간 안에 고이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되는 일이 공공의 영역에 걸쳐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시인도 언론인도 아니고 그저 에세이스트이자 시민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오만하거나 감정적이나 지나치게 학구적이지 않아서 와닿는다. 자신에게서 끌어올리는 감정을 부정하지도 않지만 최선을 다해 사실 논거를 수집하는 과정은 흥미롭다. 최초의 종두법부터 최근의 수두파티, 홍역 파동, 제3세계의 백신 접종을 둘러싼 논란 등의 사례가 그렇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우리는 두려움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두려움으로 무엇을 할까? 내게 이 질문은 시민이 된다는 것과 어머니가 된다는 것 둘 다에 있어서 핵심적인 문제처럼 느껴진다. 어머니로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우리의 힘과 우리의 무력함을 조화시켜야만 한다. 우리는 아이를 어느 정도까지 보호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전혀 취약하지 않게 만들 순 없는 것처럼, 아이도 전혀 취약하지 않게 만들 수 없다. 도나 해러웨이가 말했듯이, <인생이란 취약성의 기간이다>.
-p.231
저자는 진부한 은유에 대하여 경계하지만 덧붙여 언급한 "시민이 된다는 것"이 "어떻게 해서든 우리의 힘과 우리의 무력함을 조화시켜야만 한다."는 이야기가 시선을 잡아 끈다.
삶은 지극히 사적이지만 결국 공적인 공간을 넘나들며 전개된다. 그러니 우리는, 어머니는 연약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더불어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아이들과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려는 숭고한 노력으로 강건해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