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최대·최초, 행복하십니까?

[강준만의 세상읽기]

초고층 건물에 집착하고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배기량으로 인격을 재는 한국인…좌파 지식인들도 거대담론 증후군… ‘지속가능한 우쭐’을 위해 성찰이 필요하다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국 사회는 오래전부터 ‘동양 최고’ ‘동양 최대’ ‘동양 최초’ ‘세계 최고’ ‘세계 최대’ ‘세계 최초’ 등과 같은 ‘최고병’ ‘최대병’ ‘최초병’을 앓아왔다. 역사적으로 너무 당한 경험이 많아서인지 한국인들은 최고·최대·최초주의에 한이 맺혔다. 최고·최대·최초를 향해 목숨 걸고 질주한다. 황우석 사건에 대해 말이 많지만, 남 이야기인 척하진 말자. 그거 우리 이야기고 내 이야기다.

초고층건물론의 원조는 이건희 회장

최고·최대·최초주의가 한국 고유의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예컨대, 하늘로 치솟은 초고층 빌딩을 가리키는 마천루를 만드는 경쟁은 서양인들이 먼저 시작했다. 유럽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던 미국인들은 1932년 뉴욕에 102층짜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만들어놓고 유럽인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이거 세계 최고다. 너네 이런 것 없지?” 이에 열받은 영국의 버트런드 러셀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대해 말하는 뉴욕 사람에게선 시민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자기네 시정(市政)에 대해서도 항상 그런 자부심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라고 썼다.

자부심에 집착하다 실패한 경우도 있다. 북한은 88 서울올림픽에 자극을 받아 89년 제13차 평양청년축전을 과도한 비용을 낭비해가면서 치렀는데 이때부터 경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프랑스 기업과 합작으로 평양에 세우려다 중단한 105층짜리 유경호텔이 그런 과시 사업의 하나였다. 지금도 평양에는 공사가 중단된 105층의 구조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 지난해 9월12일 서울 신라호텔에 열린 삼성전자 2005 반도체 총괄 발표회에서 황창규 사장이 50나노 기술을 이용한 16기가 반도체의 '세계최초' 성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최근 들어 ‘세계 최대’ ‘세계 최고’ ‘세계 최초’에 집착하는 대표적인 나라는 두바이다. 아랍에미리트에 소속된, 인구 120만 명의 작은 토후국이다. 세계에 이름을 알릴 길이 없어 거대한 토목공사로 ‘세계 최대’ ‘세계 최고’ ‘세계 최초’의 기록을 만들어내느라 여념이 없다. 국가 홍보 전략인 셈이다.

두바이의 그런 집착은 ‘콤플렉스’가 아니라 ‘실질’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도 그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한국은 실질을 말하기엔 제법 큰 나라가 돼버렸다. 한국은 여전히 자부심과 자존심에 집착한다. 그래서 초고층 건물을 짓자는 이야기도 계속 나오고 있다.

애국심이 강한 소설가 이문열은 여러 나라들이 저마다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초고층 건물로 국가적 자긍심을 고취하기도 하고 경제성장을 과시하기도 하는데, 서울도 지금쯤은 세계가 돌아볼 만한 초고층 건물 하나쯤 가져도 좋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초고층건물론의 원조는 삼성 회장 이건희다. 이건희는 지금의 타워팰리스 자리에 원래 102층짜리 초대형 사옥을 지으려 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69층짜리 타워팰리스로 만족해야 했다. 이건희는 최고·최대·최초주의의 전도사이기도 하다. 사실 이게 바로 그가 인기를 누리는 비결이다. 그의 어록을 살펴보면 ‘최고·최대·최초’라는 단어들이 난무한다. 그와 삼성의 오빠부대 요원들도 ‘반도체 세계 1위’ ‘LCD 세계 1위’ ‘휴대폰 세계 3위’ 등과 같은 순위를 들먹이기에 바쁘다.

한국 민주주의도 과도하게 폄하?

사실 길게 이야기할 것 없다. 올림픽 시상식에서 은메달 받고서도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선수는 한국인밖에 없다. 이것 하나로 다 정리된다. 이런 현실이 시사하듯이, 한국의 최고병·최대병·최초병이 조만간 치유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그간 많은 걸 이루었지만 아직도 한국인의 자부심 또는 자존감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2005년 6월 취업 포털 잡링크에 따르면 대학생을 대상으로 국적 포기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45.8%가 ‘필요하다면 국적을 포기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이화여대 학보사가 광복 60주년을 맞아 2005년 9월 이대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출생 전 자신의 의지로 조국을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62%의 학생이 선택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왜 그럴까? 한국이 그만큼 형편없는 나라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비교 대상에 문제가 있다. 신문도 좋고 학자들의 논문도 좋다. 국가 간 비교 사례를 보라. 예외 없이 선진국과의 비교 일색이다.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나라와 비교하는 법은 없다. 비교 대상은 죽으나 사나 미국, 일본, 유럽이다. 그거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제공되는 비교 연구 자료가 그것밖에 없으니 그런 경향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늘 비교만 했다 하면 선진국과 비교하는 버릇은 빨리빨리 정신에 따른 과욕일까? 한국 민주주의도 그런 비교 대상이 돼 과도하게 폄하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 주장을 펴는 대표적인 학자는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강정인이다.


△ 황우석 사태는 한국인의 최초, 최대병이 상징적으로 나타난 사건이었다. 지난해 5월 런던 황우석 교수와 피츠버그대 의대 제럴드 섀튼 교수의 기자회견 모습. (사진/ 연합)

강정인은 ‘서구 민주화 경험에 비춰본 한국의 민주화 과정’이라는 논문에서 일부 지식인들이 한국 민주주의의 짧은 역사는 생각하지 않고 서구 중심주의적 시각으로 한국의 민주화를 폄하하는 걸 비판하면서 “한국의 현실은 비록 급진주의자들의 눈에는 불만스러울지언정 참을성 많은 역사가의 눈에는 상당히 고무적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서구 국가들은 현재의 자유민주주의로 성숙하는 데 적어도 200년 이상 걸렸다”면서 “지난 50년간 이룩한 한국의 민주화를 자기 비하적으로 ‘일탈’ ‘파행’ ‘왜곡’으로 보는 시각을 시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선진국과의 비교 중독증은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하나는 늘 더 높은 곳을 향해 따라잡자는 전투성을 배양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국민적 자기 모멸 또는 자학을 심화시켰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이 큰 성과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계속 자존감 투쟁에 일로매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면 최고병·최대병·최초병은 사라질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사이즈의 문제는 남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토 크기와 인구 크기는 세계 대비 각각 0.078%에 0.73%다. 이걸 모른 척하고 넘어갈 한국인이 아니다.

큰 사이즈에 민감, 얼굴 크기만 예외

한국인의 자존감을 위한 투쟁은 꼭 밖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내부적으로 생성되기도 한다. 그 내부적 생성 요인마저 처음엔 밖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일망정 시간이 흐르면서 내면화된 질서로 자리잡게 된다는 뜻이다. 밖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열등감이 내적인 권위주의를 낳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파란만장한 역사의 질곡에 휘둘린 사람들일수록 권위주의적 성격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권위주의적 성격의 핵심은 삶의 모든 것이 외부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신념이기 때문이다. 내면적 가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밖에서 몰아치는 격랑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에 늘 밖과의 비교와 관계에 모든 관심이 집중된다. 이게 한국 사회에 각종 ‘신드롬’을 양산하는 심리적 기반이기도 하다.

밖과의 관계에선 늘 사이즈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실제로 한국인은 사이즈에 대단히 민감한 민족이다. 꼭 크다고 성능까지 좋은 건 아닌데 왜 그렇게 큰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작은 걸 크게 늘리기 위해 별일을 다 한다. 신체의 특정 부위에서부터 아파트 평수에 이르기까지 개조하는 걸 무척 사랑한다. 그래도 얼굴 크기는 작을수록 좋다고 보는 게 기특하다.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배기량 크기로 인격을 재거나 사람을 차별한다는 건 이젠 상식이 됐다. 특히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왜 그렇게 큰 차를 좋아하고 경소형차를 천대하는지 신기할 정도다. 한동안 티코를 조롱하는 개그가 유행했던 걸 생각해보라. 티코의 바퀴가 도로 위의 껌에 붙어 꼼짝도 안 하더라는 둥, 티코가 그랜저를 추월해 어찌된 일인가 알아봤더니 때마침 거세게 분 바람에 날아갔기 때문이라는 둥, 자기 승용차도 없는 사람들까지 주제를 모르고 그걸 개그랍시고 해대며 키득거리곤 했다.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경소형차 이용자의 82%가 차가 작다는 이유로 무시·차별당한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총 쏘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다. 10년 전엔 충남 아산시 국도에서 볼보 승용차와 프레스토 승용차가 추월 경쟁을 벌이다 볼보 승용차에 탄 사람이 공기총을 쏴 프레스토 승용차를 탄 사람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왜 볼보가 프레스토를 향해 총을 쐈겠는지 각자 생각해보시라.

사정이 그와 같으니 경소형차 사용 비중이 높을 리 없다. 일본이 20%를 넘는 것에 비해 한국은 4.5%로 일본의 5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다. 비슷한 이유로 자동차 교체주기도 엄청나게 빠르다.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 교체주기와 비교해 한국은 2배 이상 빠르다.


△ 경소형차 이용자의 82%가 무시, 차별당한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한국은 경소형차 비중이 일본에 비해 아주 낮다. 강남 거리를 대형 외제차들이 달리고 있다. (사진/ 류우종 기자)

거창한 개념에 매료되기 시작하면…

전국의 자동차 번호판이 통일되면서 달라지고 있긴 하지만, 자동차 번호판마저 차별의 요인이다. ‘서울 52’나 ‘서울 55’로 시작하는 서울 강남구 번호판을 달고 다니면 고급 식당이나 호텔 등에서 대우가 달라지기 때문에, 한 해에 신규로 강남구에서 발행하는 자동차 번호판 중 강남 비거주자 비율이 절반을 웃돌았었다.

“큰 것은 아름답다”는 신념은 지식계에까지 파고들었다. 이른바 ‘거대담론증’이다. 한양대 교수 임지현은 “남한 지성사의 파국은 마르크스주의 사상이 세련된 자유주의와의 공개된 논쟁 속에서 단련되지 못하고, 밀폐된 공간 속에서 ‘정통’과 ‘최대주의’의 장막 속에 안주했다는 점이다”며 “남한의 좌파 지식인들은 한마디로 거대담론 지향적이었다”고 주장했다.

날카로운 지적이지만, 거대담론 지향성은 좌파 지식인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한국인 모두의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거대담론이란 게 과연 무언가? 거대한 걸 이야기하는 걸 거대담론이라고 그러는가? 꼭 그렇진 않다. 실천과의 연계성이 중요하다. 예컨대, 바닥이 더러우면 우선 걸레질부터 하고 찾아온 손님을 모셔야 할 것이다. 그런데 걸레질할 생각은 않고 그 자리에서 그 집의 구조에서부터 창문과 바닥재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입으로만 떠들어대는, 입으로만 떠들어댈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거대담론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닐까?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니 ‘시대정신’이니 하는 거창한 개념에 매료되기 시작하면 모든 미시적 분석은 쓰레기통에 내던져지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마키아벨리즘이 기승을 부리게 된다. 크게 봐서 옳기 때문에 무조건 지지한다는 자세를 갖게 되면, 자기 성찰과 교정은 불가능해진다. 자기 성찰과 교정을 위한 시도는 크게 봐서 나쁜 편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성토의 대상이 된다. 말을 거창하게 하는 사람을 경계하는 풍토가 조성되지 않는 한 거대담론 증후군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최고·최대·최초주의와 거대담론 증후군은 ‘우쭐’의 산물일 수 있다. ‘우쭐댄다’함은 ‘남을 의식해서 자기 자신을 꾸며서 나타내는 행동’을 말한다. 잘난 척한다, 젠체한다, 폼 잡는다, 목에 힘준다, 거들먹댄다, 으스댄다, 뻐긴다 등등이 그런 경우다. 이런 정의를 내린 심리학자 최상진은 한국인에겐 우쭐대는 기질이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세계에서는 유일하게 금배지를 달고 다니며 외국 유학생들은 하버드나 스탠퍼드 같은 ‘알아주는 명문대학’을 실속 있는 대학보다 선호하고, 미국에 이민간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에 관계없이 벤츠차를 타고 다니는 것도 이와 유관한 현상으로 읽어볼 수 있다. 근래에 들어, 한국 사람들이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와 같은 발전도상국을 여행할 때, 돈을 잘 쓰며 ‘우쭐’대는 행세를 하며, 이러한 한국인의 행동에 대해 비판 기사가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심지어는 경제 선진국인 미국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에서도 한국 사람들은 기죽지 않고 활보하면서, ‘미국 별거 없어’라고 자기들 간에 이야기하는 것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기가 살았고, 또 어떻게 보면 우쭐댄다고 볼 수 있다.”

황우석에 던진 돌을 자신에게!

물론 우쭐대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 지구상에서 일본인들을 우습게 보는 사람은 한국인들이 유일하다고 하지 않는가. 우쭐대더라도 ‘지속 가능한 우쭐’을 위해 피땀 흘려 노력하면 되는데, 불행 중 다행히도 한국인에겐 그게 있다. 그래서 한국인의 ‘우쭐’은 영원하다.

‘우쭐’은 왕성한 삶의 투쟁 의욕을 키우는 것이기도 하니, 너무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다. 적어도 자존감을 지키고 누리기 위한 한국인의 ‘최고·최대·최초’ 투쟁에 돌을 던지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제 밖과의 관계에서 자기 의미를 찾는 자존감이 이대로 좋은지 생각해볼 때다. 사는 게 너무 피곤하고 살벌하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자존감’을 위해 황우석에게 던질 돌을 각자 자기 자신에게 던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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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2-11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퍼가요. ^^ 꾹.

2006-02-12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남성 테러클럽 | 권보드래

▣ 권보드래/ 서울대 강사·국문학과


만약 그대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테러를 당할 수 있다면? 제국주의적인 미국인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미국인이라서 테러 대상이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적인 남성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남성이라서 테러 대상이 될 수 있는 그런 세상에 산다면? “서울 ○○동에서 윤아무개씨가 피살당한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새벽 2시경 귀가하던 윤씨는 M16­A2로 무장한 괴한들에 의해 습격을 당했다고 합니다. 예의 남성 테러조직의 범행으로 추정됩니다. …”라거나 “부산 ○○동 술집에서 폭탄이 터져 13명이 사망하고 22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망자는 모두 남성으로서, 사건 직후 ‘반군 6’에서는 자신들의 범행임을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반군 6’은 최근 10년 사이 결성된 남성 테러조직 중 하나이며….” 이런 소식이 TV 뉴스에 심심찮게 보도되기 시작한다면?

‘발바리’의 공포…


△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저런, 농담만은 아니다. 암컷 호모사피엔스 중 절대 다수가 이런 테러의 공포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밤늦은 귀갓길, 가로등 없는 50m 남짓의 거리를 지나노라면 온몸이 바짝 긴장되곤 한다. ‘어이, 왜 이래’ 하면서 스스로를 달래보지만 긴장은 거의 본능적이다. 택시를 타거나 인적 드문 화장실에 가거나 낯선 남자와 단둘이 엘리베이터를 탈 때, 불쾌한 긴장감에 압도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매일매일 느끼는 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 공포 중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겪는 몫은 아마 절반쯤? ‘발바리’에다 ‘용인 발바리’까지 출몰하는 세상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대남성 테러조직이 출현하더라도 꼭 경악할 필요는 없단 말이다. 수천 년간 테러에 시달려온 여성 사이에 그런 반작용이 없었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페미니스트로 자처하거나 그렇게 불린 적은 없다. 오히려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는 늘 ‘경계, 경계 경보!’라는 식이었다. “전 아니거든요.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하는 변명투를 섞어서. 명절 때마다 여성이 겪어야 하는 불평등에 대한 항의가 연래에 무성했지만, 큰집 큰딸에 일 많은 집 맏며느리면서도 한 번도 그런 항의에 공감하지 않았다. 부엌 바닥에 퍼질러 앉아 파 다듬는 것도 좋은데요, 왜? 오직 식(食)을 위해 분투해야 하는 그런 ‘동물적’인 생활이 삶의 근거에 눈감을 수 없게 만드는데요, 왜요? 오며 가며 귀향길에만 이틀이 걸릴 때도 있었고, 두 평도 안 되는 좁은 부엌 바닥에 며느리 여럿이 뒤엉켜 자야 할 때도 있었지만, 다 재미있었다. 부엌에서의 연대는 또 얼마나 끈끈한가.

여자라서 분노를 느낄 때가 없었을 리 없다. 면밀한 인정과 보상의 체계로 조직돼 있는 가족을 벗어나면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정색을 하고 항의하고 싶진 않았다. 여성의 항의는 으레 귀찮거나 피곤한 걸로 치부돼버리니까. 여성 정책이란 어딘지 봐주지 뭐, 하는 냄새가 나니까. 귀찮고 피곤한 존재가 아니라 위협적이고 공포스런 존재가 될 수 있었다면 나도 분노를 다르게 표출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으려나? 차라리 남성 테러조직이라도 출현한다면 거기를 동경했으려나?

이런 배짱 갖곤 멀었어

공포로 군림하거나 생산의 힘을 발휘하거나, 둘 중 무엇도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페미니즘 앞에서는 늘 조마조마했다. 관심이 없을 리 없고, 페미니즘의 성과는 담뿍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그랬다. 페미니즘은 어디까지, 어떻게 갈 수 있으려나? 명절의 ‘며느리 대반란’이 영악한 이기주의를, 대가족 대신 핵가족을 택하는 자가당착식 결론을 넘어설 수 있으려나? 반가족주의는 정말 가족 너머를 발견할 수 있으려나? 저항은 언제 생산의 힘을 낳는가? 차라리 파괴는, 남성 테러클럽식 폭발력은 어떨까? 설 연휴 여파로 아픈 허리를 두들기다가 잠깐 공상에 잠기지만, 남편과 아들 얼굴을 떠올리곤 화들짝 놀라고 만다. 어이구, 마누라 있고 딸 있는 남자들은 잘도 파렴치한 짓을 해대더구만. 이런 배짱 갖곤 멀었어, 정말 멀었어. 심장 단련 삼아 소문 높았던 <미저리>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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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사건에 관하여  

이 름 진중권(SBSadmin) 등록일 2006-02-02 18:18:50 조회수 262


데카르트


“옳게 판단하고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능력은 자연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배분되어 있다.” (<방법서설>) 데라르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성적 존재다. 모든 이의 정신이 “균등하게” 이성적이라면, 중요한 것은 남보다 “좋은 정신”을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잘 사용”하는 것일 게다. ‘네가 가지고 태어난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라.’ 이것이 바로 합리주의의 정신이다.

“양식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된 것이다.” 이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나, 현실은 그와 달라, 정작 이성적으로 인식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사람들이 타고난 이성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진정으로 이성적 존재가 되려면, 정신을 올바로 사용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 방법을 기술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방법서설>이다.

왜 데카르트인가? 학부 시절에 읽었던 데카르트를 다시 끄집어낸 것은 최근의 황우석 사태 때문이다. 합리주의 철학이 등장한 지 400년이 흐르고, 계몽의 역사가 시작된 지 200년이 흘렀지만, 사람들은 아직 충분하게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게 이번 사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나라는 몰라도 적어도 한국에서는 데카르트가 아직 시의성을 잃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신앙에서 회의로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많은 잘못된 견해들을 참된 것인 양 받아들였고, 그렇게 불안정한 원칙들을 근거로 해서 내가 쌓아올린 것이 불확실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학문에서 어떤 확고부동한 것을 이룩하려고 한다면,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견해를 벗어나 아주 기초부터 새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얼마 전부터 깨달았다.”

‘확실한 지식성에 도달하기 위해 먼저 모든 것을 의심에 부치자.’ 이것이 그 유명한 ‘방법적 회의’다. 중세 이래로 서구인들에게 믿음은 ‘미덕’이요, 불신은 ‘악덕’이었다. 교회에서 믿음은 진리요, 불신은 거짓이라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이런 낡은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확실한 진리에 도달하려면 먼저 불신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믿음에서 출발하고, 과학은 의심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종교와 과학의 차이이자, 중세와 근대의 차이다. 황우석 사태를 보자. 황 박사는 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는 그의 연구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또 논문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도 황 박사에 대한 대중의 믿음은 여전히 깨지지 않는다. 이 집요한 믿음은 과학적 신뢰일까? 아니면 종교적 신앙일까?

감각을 불신하라

방법적 회의의 원칙에 따라, 이제 데카르트는 먼저 감각으로 받아들인 상들을 의심하라고 권한다. 왜 감각을 불신하라고 권하는 걸까? 예를 들어 보자. 물 속에 담근 숟가락은 휘어져 보인다. 감각은 우리를 속이나, 이성은 우리에게 ‘숟가락은 휘어지지 않았다’는 진리를 말한다. 따라서 이성적 존재가 되려면 되도록 “감각으로부터 우리의 정신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감각을 믿지 말라고 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게다. 예를 들어 우리의 감각에는 지동설보다 천동설이 더 옳아 보인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누가 감히 부정하겠는가. 바로 그래서 천동설이 그토록 오래 유지되어 온 게 아닌가.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였다. 이렇게 과학적 진리는 종종 우리의 감각경험에 배치된다.

데카르트의 시대와 달리 오늘날 세계는 주로 미디어를 통해 주어진다. 황우석의 찬란한 업적에 대한 인식도 실은 모두 미디어를 통해 받아들인 허상에 불과하다. 그 이미지는 척추가 손상된 개가 펄펄 뛰어다니는 동영상일 수도 있고, 수염을 깎지 않은 초췌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황 박사의 사진일 수도 있고, 2004년과 2005년 논문에 실린 줄기세포의 사진일 수도 있다.

황우석 박사의 지지자들은 그 허상의 실재를 믿었고, 또 아직도 믿는다. 이들과 대조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준 것은 아마 ‘브릭’의 자연과학도들. 이미지를 의심하는 이들은 논문에 실린 사진에서 조작의 흔적을 찾아냈고, 황 박사가 연출한 수난극에서 촌스런 신파를 보았고, 그가 배포한 선전용 동영상들의 진위에 의혹을 제기했다. 한 마디로 철저한 합리주의자의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

상상력을 배제하라

<성찰>에서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내부에 있는 상상력은 (...) 나의 본성이나 본질에, 다시 말하면 내 정신의 본질에 조금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의 귀에 이런 요구는 해괴하게까지 들린다. 오늘날에는 외려 상상력을 창의성의 근원으로 상찬하는 분위기가 아닌가. 그런데 왜 그는 상상력을 멀리하라고 가르치는 걸까?

이 역시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이해가 된다. 중세인들은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가 실재한다고 믿었다. 근대인들 역시 초자연적인 마법을 부리는 마녀의 존재를 진지하게 믿었다. 이렇게 합리주의 이전의 세계 속에는 실재의 사물과 상상의 산물이 구별되지 않은 채 뒤섞여 있었다. 데카르트가 “가능한 한 주의하여 상상력을 멀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황우석 지지자들이 모인 사이트에서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것은 그들의 왕성한 상상력이었다. 누군가 줄기세포 기술을 빼앗아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황 박사를 궁지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즈메디 음모론, 서울대 음모론에서 CIA 음모론과 유태인 음모론을 거쳐, 프리메이슨 음모론까지, 황 박사를 옹호하는 상상력은 참으로 풍부하고 다채롭기 한이 없었다.

이들과 대조가 되는 것이 바로 ‘브릭’ 사이트의 건조한 태도다. 그 사이트의 글 목록을 보면 종종 괄호치고 “추측성 내용 삭제”라고 표기한 글들이 눈에 띈다. 여기서는 확실한 근거가 없이 추측의 나래를 펴는 글을 올리면 곧바로 관리자에 의해 가차 없이 삭제된다. 한 마디로 이곳은 사실을 논하는 곳이지, 상상의 나래를 펴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답답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엄격함이 바로 데카르트가 말하는 합리주의적 태도다.

정념을 다스리라

마지막으로 데카르트는 우리에게 ‘이성적 존재가 되려면 정념, 즉 희로애락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나친 정념은 “이성의 사용을 전적으로 제거하거나 아니며 왜곡시킬 수가 있다.” 때문에 “정념으로 쏠리는 경향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좋다고 할지라도, 얼마 뒤에는 가능한 한 그로부터 해방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해야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노베르트 엘리아스가 <문명화 과정>에서 지적한 것처럼, 문명화 이전의 인간들은 정념을 요란하게 분출하는 경향이 있었다. 선악 이분법에 따라 친구에는 무한한 애정을, 적에게는 무한한 잔혹함을 드러내고, 감정의 진폭도 넓어 조증에서 울증으로 순식간에 넘어가곤 했다. 한 마디로 “인성의 안정성”이란 게 아직 없었던 것이다.

황우석을 지지하는 사이트에서, 상상력만큼 풍부한 것이 바로 다채롭게 표출되는 감정의 스펙트럼. 대문에 전투 공고가 나붙어 있는가 하면 (“사상 최대의 결전 -2일”), 욕설은 물론이고(“진보 먹물이라는 진00, 이 놈을 뭐라 부를까요. 저는 개라 부르겠습니다.”), 신체적 위해의 협박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놈들은 집 밖을 나돌아 다니지 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 얼마나 뜨거운 열정의 향연인가.

그에 비해 ‘브릭’ 사이트의 게시판은 마치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 듯 차갑기만 하다. “펌글, 비방, 욕설, 추측성 내용에 대해서 더욱 강경하게 경고 조치 할 예정이며, 단순 실수가 아닌 의도적으로 규정을 위반하여 글을 작성하는 회원에 대해서는 강제탈퇴 조치를 할 예정입니다.” 이 규칙은 아주 철저하게 지켜져, 감정을 배설하는 글은 곧바로 삭제되고, 글의 작성자는 곧바로 추방된다. 이것은 ‘정념’을 대하는 완전히 다른 태도다.

중세냐 포스트모던이냐

황우석 지지자들의 태도를 단순히 ‘전근대적’이라 규정할 수 있을까? 1500년대의 유럽과 2000년대의 한국이 같을 수가 없기에, 사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네티즌들의 이런 비합리적 태도는 ‘탈근대’의 제2차 영상문화, 제2차 구술문화를 배경으로 하여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른바 ‘황빠들’의 비합리적 태도에는 전근대적 요소와 탈근대적 요소가 섞여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보드리야르가 얘기했듯이 오늘날 세계는 점점 더 가상의 이미지로 만들어지고 있다. 플루서가 지적한 것처럼 오늘날 가상과 현실을 가르는 분별력보다 가상을 현실로 바꿔놓는 상상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게다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합리적인 근대인에서 벗어나 정념의 자유로운 표출을 노래하는 시대가 아닌가. 한 마디로 황우석 신드롬은 탈근대의 창조적 가능성을 가지고 근대 이전으로 퇴행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황우석 신드롬을 ‘계몽’ 이전의 현상이라 볼 있을까? 그럴 수도 없다. 글쓰기가 모든 이의 것이 되고, 인구의 80%가 대학에 들어가는 사회에서, 과거에 지식인들이 누리던 계몽의 권력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이른바 ‘황빠들’은 자신들이 충분히 배웠다고 믿기에 ‘지식인들의 훈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계몽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계몽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재미있는 것은, 황우석 박사가 늘 전문가 집단을 거치지 않고 늘 대중을 향해 직접 말을 했다는 점이다. 데카르트가 살던 시대에 보통 사람들은 수도승과 과학자 중에 누구 말을 더 믿었을까? 인터넷의 시대의 대중들은 황 교주가 내놓은 장밋빛 영생의 약속과,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줄기세포 연구의 회색빛 현실 중에서 어느 것에 더 귀를 기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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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2-09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로운 발바닥 2006-02-10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황우석..참 많은 생각거리를 남기네요..근데 이거 왜 안퍼지죠? ^^;;

가을산 2006-02-10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쥐모임 참고문헌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추천.
 

최근 노르웨이에서는 ‘제2의 황우석 사태’라고 불릴 만한 일이 일어나 유럽 전체의 대학가와 학계를 경악하게 했다. 의사이자 오슬로대학교 겸임교수인 욘 수드보 박사가 2005년 10월 영국의 최고 의학 저널이라 일컬어지는 <랜싯>에 낸 구강암 관련 논문이 완전한 조작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 분야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던 수드보의 조작 방법은 대담했다. 환자 조사를 기반으로 한 연구에서 약 500명의 존재하지도 않은 ‘환자’를 등장시키고 그들의 사회보장 번호까지 날조했다.

그런 논문의 결론이 환자의 치료에 반영됐다면 어떤 불상사가 일어났을지 알 수도 없는 일인데, 무엇보다도 그 논문에 이름을 넣어주도록 허락한 13명의 공저자들이나 <랜싯>의 심사위원들도 조작임을 밝히지 못했다는 사실이 주목을 끌었다. ‘유령 환자’ 중 약 절반이 생일이 똑같았는데 심사위원이나 공저자들이 그 논문을 정독하기만 했어도 이를 발견하고 의심했을 것이다.

문제는, 새로운 연구성과를 경쟁적으로 발표하여 주가를 올리려고 날림공사 심사를 하는 ‘정통 저널’들도, 과학의 진정한 의미를 망각한 채 연구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논문의 양적 생산에 매달리는 동료 과학자들도, 그 논문들을 비판적으로 읽을 만한 성실성과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황우석 사태는 연구실 내의 군사식 문화 등 우리의 폐단을 노골화했지만, 수드보 사태 역시 연구비 따내기 산업으로 전락한 서구 과학계를 ‘벌거벗은 임금’으로 만들었다. 수드보의 조작은 유별나게 대담해서 결국 걸렸지만, 과학계의 권위지에 실린 자료들의 상당 부분은 작문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이곳 대학가에서 나돌고 있다.

이 사건들을 접했을 때 필자의 머리에선 한 가지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술·과학의 파탄은 국내나 국외나 마찬가지인데 도대체 왜 우리는 구미의 ‘권위지’를 이렇게까지 숭배하고 있는가? 수드보의 조작을 밝혀내지 못한 <랜싯>에 국내 교수의 논문이 실린다면 국내 언론의 큰 기사감이 되는 것이다. 황우석이 세인의 눈을 어둡게 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가 무엇인가. 그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던 <사이언스>의 권위가 아니었던가? 물론 과학 발전 수준의 객관적인 차이를 감안하는 것이야 좋지만, 우리는 합리적인 차원을 넘어 구미 ‘권위지’에 거의 사서삼경 격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어느 분야보다도 우상을 파괴해야 할 학술계에서 왜 외국 저널이라는 큰 우상이 생겼을까? 이유는 많지만 한 가지를 짚어보자면 그것은 한국 지배계급의 자기 정통성 부여의 전략으로부터 비롯된다. 반공 친미 국가 남한의 ‘건국 아버지’ 이승만이나 조병옥 등도 미국제 “박사님”으로 통했지만, 지금도 외제 박사학위는 한국 사회 귀족의 가장 귀중한 문화자본으로 남아 있다. 미국제 박사들이 거의 장악하다시피 한 학술계에서는 구미 저널에서 논문을 낸다는 것이 엘리트 집단에서 확실하고 굳건한 ‘소속’을 나타내는 핵심적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그 저널들이 한국 지배자 그룹의 권위의 원천이 됐기에 국내에서 ‘신주단지’의 위치를 점하는 것이다. 세인이 쉽게 접근할 수도, 검증할 수도 없는 신비한 외재적 권력, 그 권력에 가까울 수 있는 우리네 상전들의 ‘위대성’을 이 저널들이 대변하는 것이다. 철학은 회의(懷疑)로부터 시작된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계급사회의 권위에 얽매이는 ‘학문’은 이미 학문이 아니다. 외국저널에 이름 싣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이웃들에게 도움이 되는 학문을 도모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 학자가 아닌가.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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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2-07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꾹.

페일레스 2006-02-08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꽉.
 

염치

알고 보면 이번 스크린쿼터 파동이란 골 때리는 일이었다. 스크린쿼터는 GATT는 물론 그 후신인 WTO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문화적 예외 조항'으로 볼 때, 현재로선 어떤 '경제 논리'로도 축소나 폐지를 거론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문제가 안 되는 일이 문제가 된 셈이다. 내막은 문화 의식이 결여된 한국 공무원들이 '공정 무역'이라는 채찍과 '5억 달러 투자'(외자 유치!)라는 당근으로 꼬드기는 미국 공무원들에게 은근슬쩍 땅문서(스크린쿼터라는) 내주려다 소란이 난, '실화'보다는 '야담'에 가까운, 그런 일이었다.

영화인들은 전례 없이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싸웠냐 하면 '자신들의 모습에 자신들이 놀랄 정도'라고 했다. 두 달이 넘게 계속된 영화인들의 싸움은 공무원들이 꼬리를 빼고 국회 결의안이 관철되고서야 일차 마무리되었다. 농성을 풀며 영화인들은 "국민의 지지를 얻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영화인들이 제아무리 열심히 싸웠던들 국민들이 외면했다면 결과는 전혀 달랐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왜 이리도 민망한가.

과연 한국 영화인들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만한 사람들인가. 제 밥그릇이 걸린 일에는 '자신들이 놀랄 정도'로 열심인 영화인들은 남의 밥그릇에는 어떤 관심을 보였던가. 자신들의 불행을 언제나 민족이라는 이름에 호소하는 영화인들은 정작 민족이 불행할 때 어디에 있었던가. 이번 싸움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독점 자본'으로 해석하는 참신함을 보인 영화인들은 다른 업종의 노동자들이 진짜 독점자본과 싸울 때 무엇을 도왔던가. 이번 싸움에서 한국 영화를 '민족 고유의 것'으로 해석하던 영화인들은 농민들이 신토불이를 외치며 미국쌀과 싸울 때 어떤 지지를 보냈던가. 이 나라의 유한 계급을 뺀 모든 백성들이 불행해진 구제금융 시대가 일년을 넘기고 있지만 그 동안 영화인들은 그 잘난 영화 예술로 세상의 어떤 모습을 그려냈던가. '경쟁력'을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고 길거리를 헤매는 이 나라의 백성들이 그런 염치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경쟁력'을 유보하는 아량을 베풀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한번도 사회적이지 않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사회적 혜택은 과연 공정한가.

이번 싸움을 통해 개발된 영화인들의 자기 논리가 전례 없이 정교함에도, 이번 싸움의 열기가 밥그릇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체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냉소하고 일상의 우연에 천착한다는 지성파 감독까지 연단에 오르는 이변이 생길 리 있었겠는가.('정치 의식'을 초월한 듯 행동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경제 의식' 아래에 머물 뿐이다.) 나는 영화인들의 '경제 투쟁'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 경제투쟁이 경제투쟁에 머물지 않기를,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열정이 남의 밥그릇도 함께 생각하는 사회적 지평으로 확대되기를 바란다. 영화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억울함과 고통을 이 나라의 백성들이 겪는 보편적인 억울함과 고통 속에서 재발견하여야 한다. 영화인들은 이번 싸움을 통해 지켜낸 스크린쿼터가 오로지 영화라는 업종에만 주어지는 소중한 혜택임을, 그들의 장사가 매우 특별한 장사임을 다시금 생각하여야 한다. 그것은 산업의 문제이자 예술의 문제지만, 오히려 '염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족 : 이 만큼 말하고도, 내 속은 여전히 찜찜하다. 한국 영화인들이 농성장에서 함께 흘린 눈물은 모두 같은가. 영화 자본가의 눈물과 영화 노동자의 눈물은 싸움이 끝난 다음에도 연대하는가. 싸움의 성과로 얻어지는 산업적 이익은 함께 흘린 눈물처럼 공정하게 분배되는가. 한국영화인들은 같은 민족인 동시에 같은 계급인가. 한국 영화인들에게는 '상식선'의 정치의식이 필요하다. | 씨네21 1999년_3월

 

 

그 후 7년

스크린쿼터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7년 전에 염치라는 글을 썼었고 그 후 새로 보탤 이야기는 찾지 못했다.” 그나저나 ‘한국영화인들’과 ‘한국영화계’는 그 후 7년을 어떻게들 살아왔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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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7 14: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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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7 15: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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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7 18: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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