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리?
한겨레
▲ 정희진 서강대 강사·여성학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들은 불편하거나 ‘흥미진진’하다. 성폭력을 정치적으로 심각하게 문제 제기하거나 남성 권력을 비판하는 사람은 인기가 없다. “여성이 남성의 성욕을 자극해서 성폭력당해야 한다면, 살의를 불러일으킨 사람은 모두 죽어야 하나?”, “여성은 왜 웃통 벗은 단정치 못한 남성을 강간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성폭력 가해자도 무서워하지만, 이런 질문을 하는 여성운동가도 무서워한다. 그래서 여성들은 성차별에 대해 말할 때, “제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접두어를 강박적으로 사용한다. 성폭력을 고발하고 분노하는 여성들은, 남녀 모두에게 ‘불쾌감’을 주기 쉽다. 한국 사회의 성폭력 신고율은 발생 건수의 2~6%에 불과하며, 성폭력 가해자의 70%는 아는 사람이며(어린이 성폭력의 경우 80%가 넘는다), 그 중 15% 내외는 가족 내 성폭행이라는 진실을 누가 듣고 싶어 하겠는가? 반면, 피해 여성을 비난하거나 피해 상황을 선정적으로 ‘즐기는’ 기사들은 조회 수 폭발이다.

최근 검거된, 100차례 이상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일명 ‘발바리’ 사건은 우리 사회가 성폭력가해자를 어떻게 보호하는지 잘 보여준다. 예전에도 상습 성폭력범이 ‘관악산 다람쥐’로 불린 적이 있다. 범죄 용의자를 익명 보도하는 것은 당연한 인권 보호 방침이지만, 성폭력 피해 여성이 사건 이후 겪는 사회적 배제와 고통을 생각하면 인권 개념의 보편성에서 여성은 분명 제외된 것 같다. 살인, 방화, 강간은 강력 범죄다. 살인이나 방화를 100번 저지른 용의자에게 ‘발바리’나 ‘다람쥐’같은 귀여운 호칭을 붙이는가? 연쇄 살인범은 ‘살인마’라고 하지만, 연쇄 강간범은 ‘강간마’라고 하지 않는다. 어떤 범죄를 100번 이상 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라 권력이다. 절대로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며칠 전 30대 여성이 기지를 발휘해 성폭력을 모면한 사건이 있었다. 피해여성은 “지금은 몸이 아프니, 나중에 다시 찾아오라” 설득하면서 가해자에게 약속의 의미로 휴대 전화번호를 남기게 했고, 가해자는 검거되었다. 이 여성의 지혜는 감탄할 만하지만, 이 사건은 성폭력의 구조와 원인을 요약하고 있다. 어떤 범죄자가 범죄 현장에 기꺼이 자기 전화번호를 남긴단 말인가? 이런 사건이 가능한 것은, 가해남성이 성폭력과 섹스 또는 데이트를 구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에 관한 한, 남성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모든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들에게 성은 남성 고유의 특권이기에,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없다.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서 ‘X양 비디오’가 없다고 “장사 똑바로 하라”고 호통 치는 남성이 있는가 하면, 성 판매 여성에게 2만원 주고 원하는 체위대로 안 해 준다고 여성을 경찰에 신고한 남성도 있다. 이 남성들은 자신의 행위가 ‘현행법상 불법’인 줄 전혀 모르고 있으며, 성 구매자는 스스로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

‘발바리’ 사건과 관련해, “여성이 문을 잠그지 않고 자거나 낯선 사람을 집안에 들여 범행 기회를 제공했다”고 보도한 언론사가 있었다. 여성이 조심하라는 얘기다. ‘남의 집에 찾아간 낯선 남자’가 모두 강간범이 되지는 않는다. 모든 남성이 성폭력 가해자는 아니다. 그러나, 모든 여성은 성폭력의 공포에 떤다. 그렇다면, 성폭력 예방을 위해서 모든 여성이 조심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아니면, 남성들 중 극소수인 가해자를 신속하게 검거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정희진/서강대 강사·여성학

기사등록 : 2006-02-19 오후 06: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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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무기'인가, '욕망을 파는 문화상품'인가?

 

 반갑습니다. 박노자 선생님
  
  저는 학창시절 박 선생님께서 "안 보는 게 나은 백해무익의 눈요기 거리"일 뿐이라고 일축한 "미제" 영화에 빠져들었던 수많은 "할리우드 키드" 중 한 명입니다.
  
  초등학생 시절 저는 미국의 서부영화를 보다 포장마차를 타고 신천지로 향해가는 개척민을 공격하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잔인함에 마음을 졸이다가 기병대의 출동 나팔소리가 울리면 안도의 숨을 내쉬곤 했지요.
  
  좀 더 커서는 할리우드 자본과 기술로 만든 영국영화 007 시리즈에 보이는 최신 병기와 본드 걸의 섹시함에 눈이 멀고 세상을 적과 동지, 둘로 양분하는 냉전 이데올로기의 주술에 사로잡히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냉전 해체 이후에는 인디언의 시각으로 서부개척시대를 그린 "늑대와 춤을 (Dances With Wolves, 1990)"이나 "라스트 모히칸 (The Last Of The Mohicans, 1992)"
을 보면서 소수민족 탄압의 미국역사에 대한 성찰에 감동하기도 했고, "어 퓨 굿맨(A few goodman, 1992)'에서도 군대조직의 범죄행위에 맞서 싸우는 하급 법무관의 노력을 보며 미국사회를 썩지 않게 하는 각성된 개인들의 투쟁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자본의 친구이자 노동의 적인가?
  
  이런 말을 하면 박 선생님께서는 제가 할리우드 영화자본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그 어두운 이면을 읽지 못한다고 비판하시겠지요. 인디언에 대한 억압의 역사를 백인 남성의 눈을 빌려 이야기하는 것은 백인남성우월주의의 표출일 뿐이고,
제임스 본드의 남성적 매력에 빠져 조국과 이데올로기를 배반하는 본드 걸은 여성차별의 숨은 코드이며, 국가조직의 범죄에 맞서 싸우는 영웅의 싸움상대가 항상 부도덕과 부패한 문제 인물이라는 것은 미국의 국가 권력과 제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을 애써 회피하는 보수적 세계관의 투영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저 역시 할리우드 영화가 백인남성우월주의 시각에서 소수민족과 여성을 낮추고 자본과 국가권력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렇다 해도 저는 할리우드 영화를 한번 웃고 즐기는 킬링 타임용 눈요기 내지 구경거리로 "안 보는 게 나은 백해무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영화는 "자본주의의 악몽에서 세상을 깨우는" 도구여야 한다는 박 선생님의 생각과는 달리 욕망을 파는 문화상품이라고 보는 쪽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박 선생님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각인된 "모든 예술형식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이다"라는 레닌의 말도 러시아에서 내전이 끝난 이후에 휘몰아친 경제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레닌이 1928년까지 부분적인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 신경제정책(NEP, 1921-1928)과 관련이 있다고 하더군요. 사실 관객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는 선동영화나 계몽영화는 발붙일 수 없기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사회주의 소비에트에서도 역시 영화산업은 이윤창출을 위한 재생산구조를 만들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대중은 계몽되어야 할 우중인가?
  
  박 선생님은 영화를 노동 해방의 무기나 자본주의 세상을 바꾸는 혁명의 도구로 보는 영화운동의 입장을 취하기에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거나 대중 교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오락영화를 무가치 한 것으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또한 박 선생님은 나치스 독일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영화관을 따르기 때문에 영화를 부르주아의 헤게모니를 지켜주는 선전도구이자 노동자들의 의식을 마비시켜 문화적 부패와 타락을 조장하는 아편이나 알코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배우들을 "자본에 예속된 꼭두각시"로, 그리고 영화관객인 대중을 "몰개성적 우상을 숭배하는 몰개성적 우민"으로 보시는군요.
  
  허나 저는 상업영화를 비판하고 영화배우나 소비자를 우민시하는 이러한 계몽적 내지 엘리트주의적 영화관은 상대적 오만을 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대중은 사회적·정치적·문화적으로 계몽되고 일깨워져야 할 무지한 존재일까요?
  
  종래의 교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의 전 세계적 실현을 인간세상의 역사발전의 최종 단계로 확신했지만, 냉전 종식 이후 신좌파 지식인들은 현세에 낙원을 건설하는 것을 필연의 역사법칙으로 꿈꾸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을 확언하는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도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무너진 이후에 올 새로운 사회체제가 장밋빛 낙원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하지는 않더군요.
  
  사실 저는 영화의 역할을 기존의 체제에 기득권을 가진 세력들의 이익을 옹호하고 노동 대중들이 현실의 고통에 눈감게 하는 아편이나 종교로 치부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영화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봅니다. 특히 많이 소비된 영화는 시대정신을 잘 반영한 영화일 개연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절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던 007 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의 눈에 비친 세상은 적과 동지로 선명히 나뉘었지만. 냉전이 무너진 이제 이분법은 진부하지요. "공동경비구역JSA"(2000)을 떠올려 보시지요.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지 준별할 수 없지 않나요?
  
  신이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절 개개의 인간은 무력한 존재였습니다. 짜라투스트라가 신이 죽었다고 선언한 후 사람들은 백년 후에 일어날 일식과 월식도 알 수 있다고 자만했지요. 허나 오늘 우리의
이성은 바람에 흩날리는 물방울 포말이 어디로 날아갈는지조차 알아내지 못하지 않습니까?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인간은 불안합니다. 필연과 우연. 냉전 시대에는 필연의 역사법칙과 인간의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면, 냉전 해체 이후에는 우연의 혼돈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불가지(不可知)의 불확실한 세상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세계사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모르는 카오스의 세상에서 그 누가 누구를 계몽하고 깨우칠 수 있을까요?
  
  "아마겟돈 (Armageddon, 1998)"과 "딥 임팩트(Deep Impact, 1998)"를 보셨는지요? 소행성이나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위기상황을 가정해 만든 영화를 보면, 신은 요즘 인류의 운명을 판돈으로 걸고 주사위를 던지더군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우리를 구해주는 이는 신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는 영화 속 주인공이더군요. 허나 그는 영웅이기 이전에 평범한 인간이지요.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 앞에 구명조끼도도 걸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밀리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영화만큼 녹녹하지 않습니다. 영화들은 속삭입니다. 살고 싶다면 너 자신이 영웅이 되라고 말이지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영화는 해법을 제시하더군요. 딥 임팩트의 주인공은 여자 친구를 오토바이 꽁무니에 태우고 어마어마한 높이로 엄습하는 해일에 맞서 싸우지요. 영화 속 주인공은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살에 직면한 현실의 우리에게 온몸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나를 따라 응전하라고. 토인비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도전의 거센 물살에 당당히 맞서 싸워 이긴 창조적 소수자(creative minority)이겠지요.
  
  오늘날 신만 인류의 운명을 걸고 주사위 장난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쥬만지(Jumanji, 1995)"라는 영화 속 장면 하나를 떠올려 보시지요. 게임판에 새겨진 지시에 따라 던진 주사위의 숫자에 따라 듣도 보도 못한 괴수들이 튀어 나오고 엉겁결에 게임에 끼어든 아이들은 주사위에 운명을 걸더군요. 그들처럼 우리도 주사위 던지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 눈앞에 넘실거리는 해일은 민족이나 민중이라는 이름의 제방으로 막기에는 너무도 거센 것 같습니다. 무너지는 제방의 구멍을 손바닥으로 막아 마을을 구한 네덜란드 소년의 신화적 이야기,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는 구시대 대중 동원의 수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더 이상 설득력이 없습니다. 민족과 민중이란 방파제 너머 넘실거리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맞서 응전해야 할 오늘의 우리는 더 이상 국가 권력이나 이데올로기에 동원되는 우매한 존재가 아닙니다. 어제의 대중은 이제 민족이나 민중의 거대담론을 이용한 동원의 정치의 주술에서 놓여나 제국의 그물망에 맞서 개인의 양심을 지키며 남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를 꿈꾸는 각성된 주체로 우뚝 서는 개체로 진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무엇이 할리우드 영화에 맞서 한국영화를 살아남게 만들었나?
  
  박 선생님께서는 "실미도(2003)"와 "오몽녀(1937)"를 예로 들어 한국영화가 군사주의의 미학과 남성우월을 찬양하는 마초주의에 찌들어 "더 나은 사회로 우리를 인도하는 역할"을 포기한 "대중적 상업영화의 반동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저 또한 박 선생님이 지적하는 이러한 부정적 측면을 감싸거나 눈을 감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박 선생님이 지적하는 군사주의와 마초주의는 한국영화만의 고유한 특성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제작된 세계 모든 지역의 상업영화에 공통되는 일반속성이지 않습니까?
  
  따라서 저는 한국 영화의 부정적 측면을 성찰하기보다는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와 맞붙어서 수많은 관객을 불러 모은 힘은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로 찾을 수 있겠지요. 역량 있는 감독·시나리오 작가·배우의 등장, 자본 확대에 따른 제작 여건 호전, 사회의 다원화와 민주화에 따른 표현의 자유 증대, 관객의 호응, 외국영화제 수상, 그리고 장르의 다양화 등을 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우리보다 긴 역사와 충분한 자본, 시장, 인력을 갖고 있는 일본 영화의 침체에 비추어볼 때 충분한 답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저는 한국영화가 갖고 있는 저력을 역사적 전통과 관련지어 살펴봄으로써 이러한 의문에 답해볼까 합니다.
  
  보편과 특수. 사실 민족을 단위로 한 국민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외세에 의해 식민지 지배를 받고 이데올로기에 의해 분단된 질곡의 역사를 살아 온 데에서 비롯된, 한국 영화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특수속성은 무엇일까요? 남성성을 강조하는 전쟁영화를 비교해 봅시다.
  
  "패트리어트(The Patriot, 2000)"와 "태극기를 휘날리며(TaeGukGi: Brotherhood Of War, 2003)"의 주인공들은 모두 전쟁의 포화 속에서 가족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긴 전쟁영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 "패트리어트"의 주인공이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는 길은 미국이라는 국민국가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외세와 싸우는 길밖에 없음을 깨닫고 독립전쟁에 몸을 바치는 반면, "태극기를 휘날리며"의
장동건은 이데올로기와 동족간의 내전이 덧없음을 온몸으로 외치며 지킬 것은 가족밖에 없다고 절규하지요. 성조기를 자랑스럽게 휘날리는 "패트리어트"와 달리 반면 장동건에게 태극기와 인공기는 그 어느 것도 가족보다 중요하지 않더군요. 나아가 혈족 동생 구하기에 나선 "태극기를 휘날리며"의 특수성은 여덟 명의 병사가 목숨을 걸고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에 나서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1998)"에 흐르는 미국적 가치와도 충돌합니다. 허나 이러한 한국의 특수성은 아시아 사람들의 마음에는 공통적으로 흐르는 보편적 가치이기에 미국영화에 대한 한국영화의 특수성이야말로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와 맞붙어 살아남아 소위 한류라는 물결을 일굴 수 있었던 저력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영화는 아편인가, 욕망을 파는 문화 상품인가?
  
  박 선생님의 지적처럼, 영화를 정치적 헤게모니 장악의 도구로 이용하고 검열의 칼날을 번쩍이던 일제시대 영화정책은, 권위주의 시대 그것의 선행 모델이자 한국 영화의 발전을 가로막는 부정적 전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유래한 것 중 신파극은, 전래의 한(恨)의 정서와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관객의 기호에 맞는 새로운 변형을 새롭게 만들어냄으로써, 한국 영화가 관객의 사랑을 받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80년이란 짧지 않은 영화사에서 명멸한 수많은 영화들 중에 "눈물을 자아내게 하거나" 권선징악형 결말 같은 신파 영화의 기본에 충실하여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아직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를 영화화한 "장한몽"(1926)과 민족영화 "아리랑"(1926)을 비롯해 멜로물의 전형인 "미워도 다시 한번"(1968) 등이 대표적인 예이지요.
  
  1920년대 신파조 영화가 3·1운동 실패 후의 좌절감을 잘 어루만져 관객을 사로잡았듯, 해방 후 신파조 영화들은 외세침략과 동족상잔으로 점철된 근·현대사의 비극을 감싸주거나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갈등 요인들을 어루만져주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인터넷이란 현대적인 통신문화에 전통적 신파 정서를 잘 접목시킨 "접속"(1997)의 성공 이후, 멜로영화는 화려하게 부활해 다시 한번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신파 영화의 전통을 오늘에 잘 되살린 것이 그 상업적 성공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일본에 일고 있는 "겨울연가"로 대표되는 한류도 사실 그 뿌리를 찾아 들어가 보면 일본에서 유래된 신파 멜로의 한국적 재해석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화란 욕망을 만들어 파는 문화상품 아닙니까?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별들의 고향"(1974)을 몰래 보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여배우의 상반신 노출에 가슴이 달떴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1920년대 후반 서양영화를 상영하던 극장 풍경을 그린 글을 보니, "노부인, 여염집 부녀, 기생 그리고 여학생들로 매일 만원"이었던 부인석의 절반 이상이 "성에 갓 눈뜬 여학생"들로 채워졌고, 그녀들도 "키스 하는 장면, 그 순간에는 반드시 질식할 듯한 외마디 소리"를 터뜨리곤 했다는군요(「극장만담」,『별건곤』, 1927). 그녀들 역시 영화의 마술에 놀아난 우중(愚衆)들이라기보다 억눌린 욕망과 몸의 자유를 스크린을 통해서나마 발산하려 한, 나름대로 주체적이고 "현명한" 영화 소비자였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가 시대와 사회 변화에 따라 대중의 욕구를 채워주는 욕망의 상품화에 성공한 것에서도 또 하나의 요인을 찾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영화인들이
나운규의 "아리랑"이 남긴 전통을 이어 치열한 역사의식과 작가정신, 그리고 비판정신과 사명감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한국 영화 성공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분단과 이데올로기 갈등 같은 민족의 고통을 직시한 "쉬리"(1999)와 "공동경비구역"(2000), 노동자와 광주의 아픔에 귀 기울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과 "꽃잎"(1996), 한 개인의 삶이 국가폭력 앞에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그린 "박하사탕(1999)", 그리고 우리의 소리와 그림에 담긴 예술혼을 영상으로 옮긴 "서편제"(1993)와 "취화선"(2002) 같은 작품들이 있기에, 한국영화가 "우민화나 헤게모니 장악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박 선생님의 우려를 조금을 덜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깨어 있는 영화인들이 우리 곁에 있기에 한국영화는 자본주의적 상품화에 따른 타락의 유혹과 할리우드 영화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우리 문화를 다양하고 풍성하게 살찌워 나갈 자생력을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끝으로 식민지 시대 서구영화의 문화 전파력은 "학교의 수신(修身) 과정보다도, 목사의 설교보다도, 또한 어버이의 회초리보다도 감화되기에 빠른 것"이었다고 합니다(「모던 뽀이의 산보」, 『조선일보』 1928. 2.7)." 이를 서구의 문화 침략 내지 문화적 헤게모니 장악의 수단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이와 같은 적극적이고도 개방적인 자세가 서구문화의 빠른 수용과 소화의 기반이자, 장기적으로는 미국영화 직배시대에 한국영화의 생존을 가져다주고 한류라는 문화흐름을 일구어 낸 토대였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봄이 다가오는 수원의 연구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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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가시성 (可視性)과 동원의 정치

허동현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제가 어렸을 때 다녔던 학교의 벽에 마르크스와 레닌의 온갖 인용문들이 늘 걸려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예술은 바로 영화다"라는 말인데, 심심풀이로 헤겔의 책을 원문으로 읽곤 했으면서도 영화에 대한 별다른 개인적 관심이 없었던 대표적인 19세기형 인텔리 레닌의 주지주의(主知主義)적 모습을 염두에 둔다면 그가 과연 그러한 발언을 했으리라 믿어지십니까?
  
  그러나 생각해보면 개인으로서의 레닌이 아닌, 혁명의 지도자로서의 레닌은 분명히 그러한 생각을 가졌을 만도 합니다. 문맹자가 70%에 달했던 그 당시의 러시아에서 공산화 작업에의 대중적인 참여를 유도하려면 반드시 영화의 대단한 대중 동원력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문맹자 아닌 글 읽을 줄 아는 도시인이라 해도, 헤겔 책 속에서 영감을 찾는 레닌형 "골수 인텔리" 아닌 이상 이념적인 패러다임을 움직이는 이미지에 옮긴 영화에 의해서야 가장 잘 동원될 수 있었습니다.
  
  레닌 시대의 러시아도 정치적 동원 체계가 영화 없이 성립되지 못하는 사회였지만 문맹률이 러시아를 약간 웃돌았던 식민지 조선은 과연 달랐습니까? 식민지의 여러가지 통치 프로젝트들도 온건 우파의 문화민족주의도, 좌파의 계급전선 준비 작업도, 그리고 외국 자본의 침투도 다 영화를 필요로 한 셈입니다. 가사나 소설, 풍자물들을 풍부하게 싣곤 했던 개화기의 신문들도 직접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을 이용하긴 했지만, 영화만큼은 감수성을 자극하지 못했습니다.
  
  늘 제가 외부적으로 접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진보적 의미냐 반동적 의미냐"라고 마음 속으로 따져 보는 것이 저 개인의 편벽 (偏僻)인지도 모르지만, 제가 영화를 볼 때마다 꼭 한 권의 책이 떠오릅니다. 물론 비판적인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근대적인 문화산업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비판한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의 고전적인 〈계몽의 변증법〉 (1944)
의 "문화산업: 대중적 기만으로서의 계몽"이라는 꼭지입니다 (http://www.marxists.org/reference/archive/adorno/1944/culture-industry.htm ).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이 두 기수는 그 꼭지에서 영화라는 장르를 현존 체제를 유일하고 확고부동한 것으로 인식시키고 모든 탈주적 욕망들을 원색적인 "재미", "흥미"로 잠재우고 깨끗이 없애는 현대판 "대중을 위한 아편" 중의 가장 위험한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영화는 극소수의 자본과 그 자본에 마음을 판 예술적 고용인에 의해 제작, 배포되는 반면 수백만, 많게는 수천만 명에 의해 소비되는 등 "극소수에 의한 대다수의 심성적 조종"이라는 전체주의적 면모를 갖고 있고, 대개 기존의 사회적 체제를 "당연한", "정상적인" 것으로 묘사하여 그에 대한 어떤 미래 지향적인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있고, 자동차가 부품으로 만들어지듯이 인간 인식의 원색적인 부분에 호소하는 기성의 장면들로 기계적으로 "조립"됩니다.
  
  창조성이 없는 이 사이비 "예술"이 결국 문학이나 진정한 예술을 지배하게 되어 위기 속의 후기 자본주의의 심성적인 풍경을, 창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영혼의 사막"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살상무기인 폭탄을 대량 제조하여 이라크 같은 곳에서 대량 사용하듯이, 영화라는 이데올로기적 무기를 대량 제작하여 대중을 노예화시켜 로봇으로 만든다는 것은 그 글의 요지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를 읽으시면 허동현 교수님께서 "한 장르를 획일적으로 부정하는 좌파적인 교조주의"라고 비판하실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러한 측면들이 사뭇 있는 것은 부정할 수도 없지요. 예컨대 같은 좌파이긴 하지만, 발터 벤야민은 "복제 예술"로서의 영화가 가져다준 연기자와 관람자 사이의 유기적 관계 두절과 소외, 더 이상 육안으로 볼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소외된 연기자를 "스타", 즉 돈벌이 기계로 만들 수 있는 상업주의적 기능성 등을 경계하면서도 일단 공간과 시간, 인간 신체의 운동에 대한 육안의 관측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는 영화의 가능성들을 환영했습니다 (〈기계적 복제 시대의 예술품〉, 1936:
http://www.marxists.org/reference/subject/philosophy/works/ge/benjamin.htm ).
  
  그런데, 영화의 기술적인 가능성들을 다 인정하더라도 오늘날 상업 영화들을 생각해보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말이 절로 떠오릅니다. 예컨대 대중의 의식 속에서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지워버리고 "세상을 즐기는 태도"를 심어주어야 하는 영화계 "스타"들을 생각해보시지요.
  
  예외도 있지만 대개는 획일적인 연기 기법을 사용하고, 획일적인 "미남미녀"의 외모를 가지고, 온갖 "센세이션", "스캔들", "연애설" 등등과 같은 획일적인 여러 방식들로 자신의 이름들을 세인의 입에 오르고 내리게 하고, 몇 군데의 주요 연예계 자본에게 예속돼 있거나 유착의 관계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연예자본들을 보고 "스타 제작소"라 하는데, 사실 기본적인 연기 능력과 기준에 맞는 외모를 갖춘 선남선녀 누구라도 일정한 "프로모션" 과정만을 거친다면 "스타"로 제작될 수 있지요.
  
  그만큼 문화산업의 우상들이 몰개성적인 것이고, 그 우상 숭배는 연예계의 신도(信徒)인 대중들을 똑같은 몰개성적인 우민(愚民)으로 만드는 게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사회적으로 중대한 사안을 소재로 삼아 영화 만들기에 나선 재능이 있는 감독이라 해도, 이 "대중 기만술"의 기존틀들을 처음부터 일단 수용해서 그 영화를 애당초부터 속류화(俗流化)시키는 경향입니다.
  
  예컨대 "천만명 청중 동원 돌파"로 유명해진
강우석의 〈실미도〉(2003)를 생각해보시지요. 한편으로는 전과자 등의 "이등 국민" 내지 "비국민"들을 처음에 "국가를 위한 육탄"으로 만들었다가 나중에 폐물을 폐기하듯이 폐기하려 한 박정희 정권의 반인륜성, 나아가서 일제를 계승한 남한 군사주의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는 이 영화는 과거에 대한 예술적인 고발장일 뿐만 아니라 현재에 대한 고발장이기도 하지요. 일제의 악습들을 확대재생산한 군대는 지금도 본질적인 개혁을 거친 것이 아니고, 군대식의 "해병 캠프 체험"이나 "극기 훈련"에 대한 한국 기업체들의 높은 선호를 보면 보수적인 "주류"가 일제 식의 군사주의에 얼마나 젖어 있는지 당장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고발장이어야 할 이 영화를 보다보면 관객이 곧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군사주의의 미학"에 빠지게 돼 있습니다. 함께 훈련을 받고 서로 맞닿음으로써 "따뜻한 전우애(戰友愛)"의 분위기를 만드는 근육질의 남체 (男體)들이야말로 이 영화의 시각적인 코드인데, 이 영화에서 여성이 본격적으로 유일하게 등장하는 강간 장면이 상징하는 여성에 대한 배제, 억압, 물화는 바로 이 "남체들의 낭만"의 전제조건입니다.
  
  결국 군사주의를 고발하는 듯한 감독은 기존 영화의 상투적인 코드인 "근육질 남체에 의한 액션"에 그대로 옭매여 그 코드를 정치,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실미도"라는 상황에서 재현시킴으로써 상업적 흥행 효과를 극대화한 것입니다.
  
  한국 군사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해부는 사산(死産)된 반면, 그 군사주의의 미학에 대한 은근한 – 또는 어쩌면 너무나 명백한 – 음미는 한국 사회에 만연된 마초주의와 맞닿아 이 영화를 최고의 성공작으로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기존의 억압적 코드들의 끈질긴 주술(呪術)이야말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이야기했던 대중적 상업 영화의 "반동성"의 핵심인 듯합니다.
  
  대중 문화의 위와 같은 문제들은, 과연 식민지 시대의 초기의 한국 영화라고 해서 없었겠습니까? 주체적인 국민 국가가 만들어지지 못했던 식민지 시대라, 우리는 그 당시의 상업적 대중문화라 해도 일단 조선인에 의한, 조선에 대한 것이라면 다 "민족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이고 무조건 긍정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민 국가의 건설이 불가능했던 시절에 "민족 문화"가 그 기능을 말하자면 대체했다는 무의식이 거기에 깔려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대중 영화라는 이름의 "민족 문화"의 내용을 조금 더 클로즈업시켜 본다면 재미있는 측면들이 발견됩니다. 예를 들어서 "민족 영화 예술"의 상징이라 할
나운규(1902-1937)의 재기작(再起作)으로 평가 받는 1937년의 〈오몽녀〉(五夢女)를 생각해봅시다.
  
  사실, 제작을 일본인 자본이 맡아 했지만 감독과 배우들이 조선인이고 배경도 조선이라 국민국가 방식의 분류법으로 "민족 문화" 경계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더군다나 그 원작이 바로 1925년에 〈조선문단〉 7월호에 당선되어 나중에 〈시대일보〉에서 개작 연재했던 상허
이태준(1904-?)의 처녀작 〈오몽녀〉이었기에 우리로서는 "근대 민족 문화"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는 작품이 됩니다.
  
  인신매매가 횡행하고 식민지의 하급 관료들이 여성을 겁탈하고 남의 재산을 빼앗는 부조리한 조선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 당연히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기가 쉽습니다. 더군다나 토속적인 요소가 강하게 느껴지기에 "조선적인 것"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수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태준의 원작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남녀 관계의 모습은 기존 사회의 가부장적인 "상식"에 딱 그대로 틀어맞는 것입니다. 오몽녀라는 여자는 아홉살에 단돈 35원에 본인보다 20살이나 더 많은 객주이자 봉사 점쟁이 지참봉에게 팔려간 의미에서 일단 사회의 "희생자"입니다. "희생된 어린 여성"만큼은 가부장적인 상상력을 더 잘 자극하는 모티브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참봉과 비정상적인 부부관계를 강요 받는 성숙된 여성으로서의 오몽녀는 일차적으로 – 남성의 시선으로 관조(觀照)된 – 그녀의 "몸"으로 규정되어집니다: "(五夢女는) 美人이라는 것보다 거저 투실투실하고, 푸근푸근한 福스러운 계집이라고 할지? 그러나 이 족오마한 드멧거리에선, 제가 一色인체 하고 꼬리를 치기에는 넉넉하얏다". "투실투실, 푸근푸근한 계집"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남성들과의 관계 맥락에서만 전개됩니다.
  
  소설에서는 청년 어부 김돌이의 남성적인 기력과, 남순사라는 하급 관료의 부(富)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던 오몽녀는 결국 맛이 있는 음식을 가져다 주고 젊은 남체(男體)로 "여성적인 음욕"을 잘 채워주었던 김돌이를 택해서 같이 블라디보스톡으로 달아나는 것이고, 영화에서는 김돌이가 오몽녀를 거의 훔쳤다시피 자신의 배로 무인도로 데려가지만 어쨌든간에 여성으로서의 오몽녀는 "대남 (對男) 관계"와 "성적인 욕망"으로만 읽혀집니다.
  
  "여성"을 "음욕(淫慾)", "윤락(淪落)의 잠재적인 가능성"과 등가시(等價視)하는 가부장적인 사고의 전형을 바로 이 원작과 원작에 의해 만들이진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가부장적인 사고에 의해 이미 순치돼 여성의 성애화(性愛化)된 면모에서 "흥미진진"을 느끼는 대중 관객들로서는 환영 받을 "고품질 눈요깃감"이지만 과연 이러한 영화는 넓은 의미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합니까? 과연 보다 나은 사회로 우리를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까? "민족적"이라는 수사를 붙이려면 붙일 수 있지만 "식민지 시대의 민족 영화"라고 해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지적한 대중 문화의 본질을 결코 벗어난 것 같지가 않습니다.
  
  물론 허동현 교수님께서 제게 반박하실 수 있는 부분은, 남편을 박차고 원작 소설 같으면 외간의 남자를 스스로 택한 오몽녀의 적극성 정도면 적어도 전통 문화의 맥락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부분입니다. 물론 여성이 삼강오륜의 멍에를 벗어났다는 것만으로 해도 우리가 근대의 상대적인 진보성을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여성이 주역이 되는 일제 시대의 "민족 영화" 하나 하나를 보노라면 그 가부장적 상상에 의해 계속 눌리는 듯한 느낌이 대단히 강하게 듭니다. 예컨대 〈오몽녀〉가 나온 2년 뒤에 방한준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정비석(1911-1991)의 1937년의 소설 〈성황당〉을 생각해보시지요.
  
  〈조선일보〉에서 연재됐던 이 소설도, 그 각본이 〈삼천리〉(1939년 6월)에 실리기까지 했던 이 영화도 일제 말기의 "성공적인" 대중 문화 작품의 표본이라면 표본이겠지요. 잘 아시겠지만 이 작품의 분위기는 거의 오리엔탈리즘 방식으로 일종의 "이질적인 별천지"로 그려진, 원시적이며 성적인 두메산골인데, 줄거리는 숱을 구어 생계를 이어가는 현보의 아내 순이를 빼앗으려는 김상(김주사)의 "겁탈 시도"입니다.
  
  겁탈에 맞서야 할 순이는, 비록 "개 같은 놈" 김상에게 나름의 저항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순진무구하여 모든 것을 성황님의 덕으로 생각하고 어려울 때마다 "환상의 가부장" 성황님을 찾는 "의타 (依他)의 여성"으로 그려집니다. 김상의 흉계로 현보가 경찰들에게 넘겨지고 늦은 밤에 집에 혼자 있는 순이가 김상에 의해 거의 침범을 당하게 될 때에, 그녀를 구하는 것이 그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그녀를 구하기 위해 김상을 보기 좋게 때려준 남성 광부 칠성의 "남성적인 힘"입니다. 김상과 칠성의 격투신이 이 영화의 일종의 정정이기도 한데, 남자들이 격투를 할 때에 "약한 여자"는 성황당으로 달려가 "이 싸움을 좀, 성황님, 성황님!"이라고 호소하기만 합니다.
  
  남자는 "힘"으로 표상되지만, 순이가 나체로 하천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노력 들여 찍은 이 영화는 여성을 근본적으로 남성을 흥분시키는 "매혹적인 여체"로 만들었습니다. 식민지 시절의 영화에서는 여성의 이미지가 "요부(妖婦)"/"음녀(淫女)"와 "양처(良妻)"의 사이를 배회했지만 재미있게도 그 당시의 여성 스타들이 "음녀"보다 "현모양처"에 더 가까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컨대 오몽녀의 역을 맡았던 노재신 같으면 1930년대말 신문에서 "가정 생활을 충실히 하는 순박한 여성"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지경순(池京順) 같은 일제 말기의 대표적인 미녀 스타들에게 잡지사 등에서 늘 돌아오는 질문은, "언제 결혼할 것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삼천리〉, 1940년 5월호). 대중 문화가 공고화시키고 확대 재생산시키는 남성들의 상상이란 참 단순하지요?
  
  물론 대중문화는 남성 헤게모니라는 모든 가부장적 사회들의 가장 기본적인 틀을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그때 그때"의 구체적인 권력자들에게도 늘 유용하지요.
  
  총독부가 영화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양했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란 조선 통치에 필요한 영화들을 제작한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의 최초의 극영화로 평가받는 "
월하의 맹서"(1923년 4월 9일 시사됐음)는 바로 저축 장려용 선전 영화이었지요. 약혼녀 가정의 저축이, 도박으로 빚에 빠진 주인공을 구한다는 스토리도 드라마틱하면서 대중적이며, 도박의 무모함에 대한 비판이라는 테마도 "조선인들의 악습을 고치겠다"는 총독부의 "문화정치"의 표어와 잘 맞아떨어졌겠지요.
  
  물론 선전 영화라고 해도
윤백남의 시나리오의 테크닉이나 이월화의 뛰어난 연기력은 마땅히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며, 이 영화가 한국 영화사의 한 분수령이라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식민지 시기의 최초의 극영화가 바로 선전물이라는 점은 어쩌면 참 시사성이 크지 않습니까? 그 후에도 선전물들이 계속 나왔으며, 특히 1940년의 "조선영화령"으로 기존의 영화사들이 다 해체되고 유일한 국영 영화사만 영업하게 된 전시 체제 하의 영화란 조선인들에게 군입대를 강요하는 전쟁 선전의 일색이었습니다. 사실, 관중들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한 "월하의 맹서"와 같은 뛰어난 선전물들이야말로 그람시가 이야기했던 헤게모니 – 즉 통치에 대한 피치자들의 "자발적" 합의 – 만들기의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선전물들의 직접 효과도 무시 못하겠지만 넓은 의미의 식민지 통치자에 의한 영화의 이용이란 스크린의 마술이 가져다주는 대중의 탈(脫)정치화 효과라고 하겠습니다. 1940년에 영화극장의 총관람객의 수가 1천2백만 명을 넘은 조선에서는, 영화의 대중적인 마력이란 이미 그때에도 무시못할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사회주의적 지향의 지식인들이 "조선의 나 이어린 여자들이 하등의 민족적, 계급적 의식 없이 공상적 소부르조아 심리에서 스크린에서 나타나는 미모와 고운 목소리에 유혹된다" (
김유영, "영화여우 희망하는 신여성군", - 〈삼천리〉, 1932년 10월호) 라고 지적할 정도이었지요. 더군다나 성이 대중에게 개방되지 않았던 그 시대에 키스신이라도 구경할 수 있었던 영화란 대중의 성적 욕구의 분출구이기도 했었겠지요. 즉, 대중의 적접적 동원과 함께 대중의 정치적인 우민(愚民)화도 스크린과 – 그때까지는 아주 제한적인 – 스크린에서의 선정적 요소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모든 문화적 현상들이 다 그렇듯이 헤게모니 창출의 도구인 영화는 그 동시에 기존의 헤게모니와의 경쟁의 도구로도 얼마든지 이용될 수 있었습니다. 나운규(1902-1937)의 "아리랑"(1926)과 같은 "민족영화"들은, 잠재적으로 일제와의 대결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민족"에의 소속의 정서를 대중화시키는 데에 어떤 신문이나 소설보다도 더 크게 공헌한 셈이지요.
  
  그 당시의 한 비평가는 이 영화의 이와 같은 효과를 두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하얀 옷이 영화면에서 펄펄 날린다. 아! 얼마나 가슴이 저리고도 동포애 깊은 동경이냐? (…) 그 찌그러진 초가집, (…) 긴 두루마기 자락을 써늘한 바람에 나부끼면서 일하러 다니는 농촌의 인텔리겐차 박선생,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네를 부르고 춤추는 신. 이것이 조선에서 조선의 모든 것을 배경으로 하고 우러난 영화이다" (승일, "라디오, 스포츠, 키네마", - 〈별건곤〉, 1926년1월호).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만들기는 20세기에 접어들어 영화 없이는 상상할 수도 없는 작업이었습니다. 일제가 강요했던 식민지적 "동화주의"보다 조선의 주체적인 민족주의가 상대적인 진보라면 "조선 민족 만들기"에 동원된 영화는 상대적으로 진보의 도구가 됐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1926년 6월에 필름검열 부칙이 제정되고 본격적인 영상물 검열의 시대가 열린 관계로, 영화를 헤게모니 경쟁을 위해서 이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저항적 요소가 탄압을 받는 동시에, 조선의 스크린을 정복한 것은 서양의 영화였습니다. 서양의 유명 배우들이 조선 대중의 "스타"가 되고, 서구적인 미의 기준이 조선인의 미의식을 장악하고, 영화에 의해서 상상된 낭만적이고 극적인 "서양"이 대중의 상상 속으로 침투한 것은 바로 식민지 시대부터 아닙니까? 즉, 영화란 일본의 정치적 헤게모니 뿐만 아니고 서구의 문화적 헤게모니 성립에도 크게 기여한 것인 셈이지요.
  
  영화를 선전용으로 이용하는 것이나 영상물 검열, 그리고 스크린에 의한 우민화 정책은, 과연 식민지 시기의 종말과 함께 사라진 것입니까? 아닌 것 같습니다. "미제놈"들을 때려죽이는 신을 강조하는 북한의 "혁명 영화"나, 남한의 반공드리마와 스크린과 섹스에 의한 1980년대의 우민화 정책이, 총독부의 통치법을 계승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아직 영상에 의한 헤게모니의 시대를 벗어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국산 영화들이 거의 60%를 넘는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우리가 적어도 미국의 문화제국주의의 헤게모니적 마수(魔手)를 조금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상대적인 선(善)이라면 선입니다.
  
  〈실미도〉 같은 영화에서는 비록 유용한 사회 의식이 기존틀에 의해 왜곡되기는 해도, 아직도 박정희 신드롬을 앓고 있는 사회에 적어도 일정한 수준에서 필요한 이야기를 해준 부분이 있는 것이지만, 미제 영화의 대다수는 우리에게 말 그대로 "안 보는 게 나은" 백해무익의 눈요기거리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상업적 대중문화라는 범위 그 자체를 벗어나 높은 예술적 차원에서 가부장주의와 자본주의의 추태, 그리고 그 추태를 넘어서는 방법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비록 만들어진다 해도, 대개 저(低)예산의 독립영화라 대중으로서 접근이 힘듭니다. 저는 앞으로 〈오발탄〉과 〈바람 불어 좋은 날〉, 〈파업 전야〉의 전통이 계승ㆍ발전되어 한국 영화는 자본주의의 악몽에서 세상을 깨우도록 많이 주효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침 한국영화제가 진행 중인 오슬로에서 박노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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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정보사회'의 모순을 넘어서 - 홍성태

지식경제에서 독점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지식의 자본주의적 소유와 이용에서 비롯된다. 자본주의 하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지적재산권을 어느 정도 당연시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정보/지식은 본래 '이용에 배타성이 없는 재화'로서 '공공재'에 해당하는 것이며, 지적재산권법은 특정한 사회적 목적을 위해 이러한 공공재로서의 정보/지식을 사적인 재화로 변화시키는 제도적 장치이다(허희성, 1996: 48). 그러나 이같은 변화는 목적과 수단의 괴리라는 대가를 요구한다. 이로부터 지적재산권의 내적 모순이 비롯된다(Boyle, 1996: 156). 요컨대 시장 효율성은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요구하는 반면에, 정보의 생산을 위한 인센티브는 정보의 흐름을 지체시키고 제한하는 일시적 독점을 요구한다(Boyle, 1996: 35). 또한 이 일시적 독점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예에서 잘 드러나듯이 훨씬 심각한 구조적 독점을 유발할 수도 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지적재산권에 내재된 공공재와 사유재의 모순에 있다. 여기서 정보/지식의 사유재적 성격을 지속적으로 강화함으로써 자본주의가 도달한 한 귀결점이 현재의 이른바 지식경제이다. 달리 말해서 자본주의는 공공재를 사유화함으로써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식경제에 이르러 자본주의는 마침내 언어 자체를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의 언어학적 전환'(Poster, 1998b)을 달성하며, 그 결과 '이제 저작권법은 '정보권법'으로 탈바꿈을 시작했다. 모든 정보를 재산으로 인식할 때가 왔다'(황희철, 1996: 342)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러나 정보/지식을 단순히 사적 재산으로만 취급하게 되면, 당연히 효율성과 인센티브 간의 모순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독점의 폐해를 시정하는 것도 사실상 어렵게 된다. 나아가 이른바 정보부자와 정보빈자의 불평등 문제도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Schiller, 1996).

그러므로 경제적 반독점의 견지에서, 더 나아가 정보사회의 평등과 정의의 견지에서 정보재의 생산과 분배를 둘러싼 논의를 더욱 활성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의 공적 조정기구로서 정부의 역할이 새삼스럽게 강조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현실 정보사회'와 신자유주의의 연관을 끊는, 적어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정보화 정책이 변화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누/리눅스(GNU/LINUX)로 대표되는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운동은 소프트웨어의 산업화에 저항하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정보와 지식의 공유를 추구하는 새로운 사회운동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물론 생명특허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이 운동과 다른 방식의 대응이 필요할 것이다. 이 경우에는 강력한 생명윤리에 기반을 둔 국가 정책의 변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모든 사회운동이 그러하듯이, 자본주의의 정보적 확장에 저항하는 운동의 성패는 결국 문제를 개선하고 해결하려는 수많은 개인들의 자발적 참여에 달려 있다. '참여해서 개선하라!' 우리가 이 명백한 요청을 거부했을 때, '현실 정보사회'의 모순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 결과는 '세상의 모든 것'을 경제적 이해관계가 좌지우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간 자체가 하나의 정보재로 전락하여 자본의 사냥감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참여해서 개선하라!' 작은 참여가 모여서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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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매지 > '미학 오디세이'의 힘! - 진중권 인터뷰








1994년에 1권과 2권이 나왔어요. 3권이 2004년에 나와 10년 만에 완간 비슷하게 된거구요.


단문이고 구어체를 많이 썼거든요. 글을 써놓고 입으로 읽어서 잘 안 읽히면 끊어 썼어요. 입에다 맞췄죠. 책에 도판도 많이 들어갔고. 그때는 그게 튀는 거였어요. 경박하다, 젊잖치 못하다는 평을 들었죠. 그 후로 인터넷 시대가 되니까 구어체가 익숙해지고, 영상의 시대가 시작됐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그게 표준이 된 거죠.

지금은 입문서들이 가벼워지고, 영상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죠. 그때만해도 그런 책은 많지 않았거든요. 미디어 환경의 변화때문에 살아남은 책이 아닌가 생각해요.




삼성 대위법이라고...멜로디가 동시에 3, 4개가 동시에 진행되며 화음을 이루는 다성음악처럼, 이 책에서도 그렇게 3개의 다른 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요. 크게 미학사에 대한 이야기가 한 축 이구요. 또 한 축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대화를 통해서 미학에 필요한 기본적인 개념을 짚어주고 있어요. 간단한 철학사를 설명하는 거죠.

미학은 철학의 일부기 때문에 철학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워요. 마지막 한 축은 1권에서의 에셔, 2권 마그리뜨, 3권 피라네시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있죠. 이 세 가지 축이 각자 흐름을 가지고 서로 도움을 주면서 진행이 되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다 만나게 되요.



세 사람은 각자 다르죠. 에셔는 네덜란드, 마그리뜨는 벨기에, 피라네시는 200년 전의 이탈리아 사람 이예요. 이 사람들의 그림의 특징은 세계를 그린 게 아니라 자기들의 머리 속을 그렸다는 것이죠. 세계의 이미지가 아니라 관념의 이미지를 그린 거예요.

에셔는 수학과 논리학을 그림으로 그렸죠. 마그리뜨는 철학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요. 실제론과 관념론이죠. 지금 내가 보는 게 정말 존재하느냐 내 의식이 만들어 낸 거냐. 실제로 이건 철학에서 가장 오래된 주제예요. 피라네시 같은 경우는 그림 속의 건물들을 보면 말이 안 되요. 존재하지 않는 건물이죠. 머리 속에서 상상해서 그린 거예요.

이런 것들을 기술적 형상이라고 하는데, 요즘 굉장히 중요해 지고 있죠. 점점 우리 세계가 그림으로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내가 직접 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이죠. 그 그림 속에서 사람들은 그걸 보고 세계의 그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사진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고, 그 사람의 머리 속을 읽는 게 중요하죠. 그 사람들의 그림을 택했다는 건 그런 의미예요. 미학이라는 철학적 관념을 설명하는데 편했다는 거죠.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내 책 읽고서, 미학 공부 시작했다가 너무 어려워서 깜짝 놀랬다는. 어떤 분들은 책이 쉽다고 하면, 쉽게 쓴 줄 알아요.


재미 있으려면 놀아야 되는 거죠. <왕의 남자> 보면 광대들이 줄 위에서 놀잖아요. 줄 위에서 퉁퉁 튀면서 자유롭게. 하지만 그렇게 놀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겠죠. 사람들은 그건 모르고, 줄 위에서 재미있게 노는 것만 보잖아요. 사실 굉장히 힘들지만 힘이 드는 티를 내지 않는 거예요.

글을 대중적으로 쓴다는 건 그런 거 같아요.쓰는 사람이 글을 쉽게 쓰면 남는 게 없잖아요. 그렇지 않으려면, 많은 독서들과 계획들을 바탕에 깔아야 되거든요. 그에 대한 주체적인 해석들도 깔고 그 위에서 놀아야 되는데 그게 힘들다는 느낌을 주면 안 되는 거예요.




원래는 고등학교 이상을 염두에 두고 썼어요. 고등학생부터 대학교수님들 까지…그런데, 요즘은 중학생들도 잘 읽었다고 편지가 와요.

전 이 책에 이중코드를 넣었어요. 예를 들어,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모르고 봐도 재미있어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독서구요. 그런데, 인문학을 좀 알고 계신 분들이 보면, 이 책에 담긴 여러 가지 복잡한 코드들을 읽을 수 있거든요. 대중성과 전문성을 다 갖춘 것이 바로 이런 이중코드죠.


저는 이 책을 여러 번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번 읽으면 안돼요. 제가 거기에 집적해 놓은 정보량이 굉장히 많거든요. 농축하고 압축해야 책이 오래가요.

순간적인 베스트셀러처럼 확 팔리고 안 팔리는 책들은 참신한 생각 하나 가지고 쓰는 거죠. 그게 그 시대의 감각과 맞으면 되는 거고. 하지만 스테디셀러로 가려면, 밑에 기본적인 정보량의 있어야 되요. 그때 그때의 트렌드를 뛰어넘는 오래갈 수 있는 내용들, 근본적인 것을 깔아줘야 하는 거죠.



이 책을 읽고 대부분은 책에 나오는 걸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데, 전 사다리만 놓아준 거예요. 독자들이 그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가서 써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독서가 필요해요. 책에 나온 하나하나의 항목에 대해서 알아 가야죠.






네이버 뉴스 많이 보죠. 검색으로 네이버 지식인도 찾아봐요.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쓸 때 도움이 많이 됐어요.

저는 학생들이 질문하잖아요. 그럼 이렇게 얘기해요.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네이버에 찾아보라고. 가령 단순한 정보 같은 경우, 저는 대충 얘기해 주고 자세한 것은 네이버에 가서 찾아보라고 해요.




예전에는 지식이 사람 머리 속에 들어있었는데, 이제는 외장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인간의 두뇌기능이 다른 쪽으로 진화해야 되는 거예요. 예전에는 인간 두뇌의 중요한 기능이 계산 능력과 암기 능력이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암기는 데이터베이스가 대신해주고, 계산은 프로세서가 해줘요.

난 그게 인간이 퇴화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능력을 다른 방향으로 쓰는 거죠. 그게 바로 조합하는 것 이예요. 원하는 정보를 찾아서 새로운 정보로 조직해 내는 능력. 영화로 치면 몽타주 같은 것이죠. 어디 있을 지 모르는 보물섬을 찾아가듯이 항해를 해서 보물을 찾고, 그 보물을 조합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것이 인간의 역할이죠.

사실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은 필요한 자료의 80% 가량은 인터넷에서 찾았어요. 저도 놀랬어요.




점점 미디어 환경은 문자가 사라지고 문자가 소리와 그림이 되고 있어요. 예전에는 활자 권력이었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몰락하고, 소통의 중요한 수단이 소리가 되어 가고 있어요.

인터넷 글쓰기라는 것은 소리를 글로 쓰는 것 이예요.글을 쓰는 상황 자체가 대화적 이잖아요. 정서적 친교이구요. 사실 그 옛날 원시 때 존재했던 것이 구술 문화예요. 이제 새롭게 일어나는 지금의 현상을 전 제 2차 구술문화라고 부르는데, 거기엔 활자 문화를 뛰어넘을 소통의 가능성이 있어요. 하지만, 제 2차 구술 문화는 텍스트를 바탕에 깔고 일어나요. 이럴 때일 수록 텍스트를 읽고 쓰고 이해하는 능력이 굉장히 중요해질 거예요.

미래는 둘로 가는데 하나는 프로그램을 하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프로그래밍 당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프로그래밍 하는 사람들은 텍스트를 깔고 즉, 합리성과 독해, 이해 능력을 가지고 그림을 이해하고 만드는 사람이 세상을 움직일 거예요.

미래의 문맹자는 그림을 못 읽는 사람들 이예요.남들이 만든 그림에 주입 당하는 사람들이죠. 여러분들은 어느 쪽에 속하겠느냐. 그림 속의 텍스트를 이해하고, 자기 속의 텍스트를 그림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될거냐. 아니면, 남들이 만든 그림을 가지고 , 그걸 세상이라고 착각하고 살겠느냐.

저는 이런 시대에 오히려 결정적인 것이 이성이라고 생각해요. 활자 시대에 가장 중요했던 것, 그걸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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