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상대성 원리. 떠나는 길은 언제나 멀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가깝다. 내 안에 돌돌 말려 있는 길들. 때로는 얌전히 차곡차곡 말려 있는 길, 때로는 울퉁불퉁 삐져나와 금방이라도 다시 풀릴듯한 길. 거쳐온 길들의 모습.
중독. 나는 길에 중독되었다.-21쪽
"준, 언젠가 또 한 번 기차를 놓치렴. 그러면 우리가 또 만나잖아."
편지를 접으며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기차를 놓치며 살 거라고, 기차를 놓쳐야 사람을, 운명을, 인생을 만날 수 있다고. 기차를 놓치면 나도 며칠은 서커스의 소년이 될 수 있다고.-73쪽
여행이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모험이어야만 할까?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익숙한 곳이라 해도 그곳에 사는 친구의 일상을 잠시나마 공유하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하는 삶의 부분들을 퍼즐처럼 찾아내는 여행 또한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결국 가장 멋진 여행은 언제나 사람을 찾아가는 여행이므로.-74쪽
옴 샨티, 옴 샨티......샨티, 평화. 최면처럼 내 입에서 느리게 말들이 빠져나왔다.
"나는 이곳에서 처음 죽음이 평화가 되고, 평화가 슬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나는 언제나 평화는 가볍고 밝은 것이라고 알고 있었어. 이렇게 무겁고 어두운 평화는 무엇이지?"
나는 그를 쳐다보지 않으며 이야기 했고, 그도 강물에서 얼굴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Let it flow, Let it go, Let it be."
오렌지빛 석양이 스러지고 어두워졌을 때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묻지 않고 헤어졌다.-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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