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독을 말하다 인터뷰로 만난 SCENE 인류 2
지승호 지음 / 수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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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맞아요. 실제로 무성애자들이 있다잖아요. 대부분 이성애자고, 나머지 소수가 동성애자고, 거의 그만큼의 비율로 무성애자가 존재한다는 가설이 있던데요.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그것 때문에 상처받고, 누군가와 같이 살아야 하고, 혼자 있으면 죽을 것 같고 하는 마음이 없는데도, 이 일부일처제의 사회가 혼자 사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인 양 느끼게 하기 때문에 억지로 '나도 연애해야 되나? 혼자 있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누군가와 살아야 된다는 강박도 없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받는 무언의 폭력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사실 주변에 보면 연애 안하고도 잘 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지승호) (중략)...옛날에 <한겨레>에 나온 기사 중에, 10명이면 10개의 성(性)이 있다고 하더군요. (중략)

김태용) 맞아요. 말씀하신 대로 모든 사람의 수만큼의 성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33쪽

김태용) 영화에 점점 빠져 들어가는 이유 중 하나가, 하는 사람들 생각을 굉장히 많이 바꾸게 만들어준다는 거죠. 나쁜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잘 만들 수는 있지만, 영화를 잘 만드는데 나빠지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80쪽

박찬욱) 저도 남의 영화 가지고 글을 많이 써봤는데, 글을 쓰면서도 감독이 이걸 의도했는지 아닌지에 대한 관심은 없었어요. 그렇게 보인다, 그렇게 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거지, 그렇게 보이려고 했는지 아닌지는 감상하는 우리로서는 본질적인 관심사는 아니라고 봅니다.-150쪽

박찬욱) 공포영화를 무서워서 못 본다고 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공포영화 감독들이 원하는 그런 효과를 정말 100%, 120% 받아들인다는 거죠. 그들이 조정하는 대로 느끼는 것인데, 그게 너무 지나치니까 보지를 못하게 돼버렸죠. 신체를 훼손시키는 그런 이미지들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어요.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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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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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이 한없이 작아진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무도 나를 기억해주지 않고 어떤 순서도 내게 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라는 존재가 호치키스나 진공청소기보다 못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이 세계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가치로 존재하고 있는지를 눈치채게 되는 것이다.-226쪽

(수상작가 인터뷰) "저는 작가란 존재가 '있는' 것을 고스란히 '있게' 만드는 자라고 봅니다. 작가가 뭔가 창조하는 게 아니죠. 아름다운 것은 이미 있고 작가는 이미 있는 것을 소설 속에 집어넣는 거죠. 그런데 이 '있다'의 세계를 구현하는 데 최대의 적이 바로 작가 자신인 거예요. 바로 불량한 서술자죠. 서술자는 자신의 편견으로 '있는' 것을 왜곡시키고 축소시키는 존재죠. 서술이란 건 본질적으로 폭력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작가는 멀쩡하게 잘 있는 것을 굳이 기술해서 파괴하는 사람입니다."-379쪽

"네, 어려움은 쉽게 해결되지 않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냉소대신에 해학적인 웃음으로, 자조가 아니라 건강한 푸념으로 어려움을 넘기죠. 그러면서 그 시간들을 견디고, 그 시간들을 풀어냅니다. 바로 여기가 이야기가 탄생하는 순간인데 저는 그 이야기를 캐비닛에 담는 것이죠. 있는 그대로, 훼손시키지 않고 고스란히 말이에요. 그게 '있다'의 세계이고 소설쟁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소설가가 이야기를 담아두는 기술자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이야기를 허름한 캐비닛에 보관하는 사람이죠."
"그러니 '캐비닛'은 자신의 소설 창작론에 대한 제목이네요."(전경린)-3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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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앵 - 한 디자이너가 그린 파리지앵의 일상과 속살
이화열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8월
품절


여행의 참맛을 아는 사람은 한적한 골목과 값싼 식당, 그리고 활기찬 시장에 발길을 두는 사람들이다.-211쪽

"...(중략)요리라는 것은 일단 재료를 고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하고, 열의 원리, 시간에 대한 감각, 그리고 맛을 추적할 줄 아는 혀가 있어야 해." [담백하게 살다 -뱅상]-284쪽

결국 크리스마스까지 나는 가방을 고르지 못했다.
"그냥 봉투로 줘."
그날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는 정말 봉투가 있었다. 수표나 돈이 들었겠거니 생각하고 봉투를 열었는데 웬 편지가 있었다. 편지를 펼쳐보니 잡지에서 오려낸 수많은 가방 사진이 몽타주되어 있었고, 밑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언젠가는 갖게 될 거야."-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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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와이 하야오 지음, 고은진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0월
구판절판


그런(미국의 불행한) 아이는 말이 없어지거나, 폭력을 휘두르며 다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치유되는 겁니다. 엄청난 힘으로 말이죠.
일본의 경우는 울면서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한가"하고 불평만 늘어놓을 뿐입니다. 결국 스스로 극복해 나갈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정도는 좀처럼 되지 않습니다. 불행의 책임이 모두에게 있다고 여기니까요. "내 불행을 어떻게든 해결해 주세요"라는 식이기 때문에 잘 치유되지 않는 겁니다.-24쪽

일본의 경우 특히 불행한 점은, 큰 전쟁이 있었기 때문에 너무 급진적으로 폭력을 부정하게 된 것입니다. 평화가 소중하다고 해서 아이에게 병정놀이나 칼싸움까지 전부 금지했습니다. 즉 일본의 아이는 자신이 갖고 있는 폭력성을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채 성장하기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춘기가 되면 갑자기 난폭해집니다. 뭔가 난폭한 짓을 하고 싶어져서, 이지메를 하기도 합니다. (중략)
그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경험이 너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무튼 현대의 일본인들은 '화목'이라는 점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고 또한 정신과 육체가 괴리되어 있어 폭력을 몹시 억압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문화, 일본의 현대는 잠재적으로 폭력을 엄청나게 짊어지고 있습니다. 폭력은 어떻게든 나타날 것이며 모두 심각하게 자각해야 합니다.-132쪽

일본인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이 폭력을 의식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내려 노력하지 않으면, 돌발적으로 생겨나는, 억제할 수 없는 폭력에 의해서 가해자가 될 위험이 높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135쪽

결국 일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전쟁이 끝난 후 그 전쟁의 엄청난 폭력을 상대화할 수 없었던 점입니다. 모두가 피해자처럼 되어, "이런 잘못은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매우 애매한 말로 대체되고, 아무도 그 폭력 장치에 대한 내적인 책임을 지지않았던 것입니다. (가와이 하야오)-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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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드보일드 라이프 스토리
임경선 지음 / 뜨인돌 / 2007년 2월
절판


하루키: 그저 내 안의 멜로디를 따라갈 뿐이에요. 일단 시작하면 아무도 못 막죠. 온천수가 터져 나오듯 글이 내 안에서 넘쳐 솟아오르니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서서히 만들어 가는 것에 소설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엔 막막해도 반드시 의미 있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이 저에겐 있어요.-151쪽

하루키: 읽기 쉽고 즐거우려면 문장에 리듬이 있어야 합니다. 그건 작가 고유의 문체라고도 할 수 있죠. 소설의 기본 기능은 독자를 '유혹'하는 데 있습니다. 소설은 분석하면서 읽지 않습니다. 오로지 읽으면서 느끼면 되지요. 따라서 소설의 문체는 여자를 유혹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어야 합니다.-156쪽

하루키: (좋은 문장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차별화되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잘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리한 리듬이 있고, 친절함이 깊이 녹아 있으며, 유머감각도 있고, 반듯한 의지를 느낄 수 있는 문장, 쉽게 말하면 심플하고 읽기 쉬운 문장이죠.-159쪽

하루키: 내가 그(마일스 데이비스)로부터 배우고자 했던 것은 '새로운 것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는 다이나믹함'과 '그 후의 철저한 나사 조임' 그 두 가지였죠.-164쪽

하루키: 인생이라는 건 '질 걸 뻔히 아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아요. 빠르던 늦던 우린 언젠가는 쓰러져 죽으니까. 존 어빙도 '인생은 불치병일 뿐이다'라고 말했잖아요. 어찌되었거나 빤히 질 걸 안다면 규칙을 지켜 제대로 지는 것도 후회가 되진 않을 듯합니다. -169쪽

그들(하루키의 친구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는데, 침묵을 불편해하지 않았고, 술을 먹어도 자기 자랑이나 인생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거나 남의 욕을 하지 않았다. 또 그들은 하루키가 쓴 글을 아예 읽지 않거나 읽었어도 거의 흥미를 갖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나는 친구들을 많이 사귀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좀더 정확히 말하면 친구를 거의 일부러 만들지 않습니다. 대신 한번 친구로서의 정을 느끼게 되면 그들을 정말 소중하게 여깁니다."-193쪽

그를 우연히 길에서 만날 수 있을까? 운 좋게 만나게 된다면, 당신은 나의 '북극성'같은 작가라고 꼭 말해 주고 싶다.

정말 고마워요.-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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