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곧 결혼하는 후배 두 명이(이 녀석들은 늘 붙어다니더니 결혼도 붙어서 한단다. 오죽하면 내가 전화에 대고 너네들 여자랑 결혼하는건 맞냐고 물었을까? ^^) 결혼전에 얼굴한 번 보자고 전화를 했다.
일종의 총각파티겠지...
근데 정확한 날짜를 깜박 잊고 있다가 당일날 "안와요?"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참 상황이....
만나는 곳이 사람북적이는 술집인데 아이들 둘을 떼놓을 수가 없다.
친정엄마가 아직 완전히 회복이 안되고 목발 짚고 다니는 상황에서 나 좋자고 아이들을 맡기지는 도저히 못하겠고.... 게다가 일주일동안 방치된 집은 거의 폭탄꼴이고.... 다음날 아침 일찍 시댁에 시할머니 생신에 가야하는 것도 부담이고....

하지만 다른 건 다 무시할 수 있겠는데 모처럼 휴일이라고 엄마 아빠 둘 다 일찍 왔다고 저리 좋아하는 아이들을 떼놓고 가는건 도저히 무시가 안된다.
그렇다고 그 시끄럽고 담배연기 자욱한 곳에 아이들을 데려갈 엄두도 안나고....

결국 주저앉았다.
그러면서 계속 마음이 무거웠다.
후배에게 미안한 것도 미안한 거지만 그거야 둘 다 결혼식에는 갈거고 집들이도 하면 갈거고 뭐 이럭저럭 미안함을 풀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만....
그것보다 오늘의 모임은 우리 부부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모이는 자리일테고,
또 정말 오랫만에 만나는 선배도 올테고.
다들 보고싶고 그리운 얼굴들인데......
아줌마라는 내 생활이 나의 행동을 이렇게 잡아챌때마다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그래서 알라딘에 이리 집착하는 걸까?
외로워서?
옛적에 채팅이 그렇게 유행하고 난리를 칠때도 난 곁눈질도 하지 않았다.
잠시 유행따라 해본 적은 있으나 딱 하루만에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
왜냐고?
재미없어서지 뭐...
컴을 통한 인간과의 만남이란게 도저히 적성에도 안맞고 재미없었다.
그저 사람이란 만나서 부딪히면서 정드는게 최고라고....

근데 그러던 내가 지금은 이놈의 알라딘 서재에 목매달고 이 곳 사람들의 이야기에 일희일비하는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 돌아보니 그게 딱 내가 외로워지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예전에는 언제나 내 옆에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때고 누구든지 만나서 얘기하고 술마시고 놀수 있는 마음 맞는 사람들을 여기저기 두고 있었다.
어떤 때는 복잡한 인간관계 정리좀 하고 살았으면 하던 시건방진 시기도...

근데 지금 본격적인 아줌마의 길로 들어서면서 어느샌가 내게는 그런 공간들이 하나 둘 없어져가기 시작했다.
늘 아이들이 따라붙고, 아이들이 머리속을 지배한다.
친구를 만나도 아이들을 데려갈 수 있는 곳이 주가되고....

결국 아줌마 신세한탄이다.
그래 결국 이놈의 알라딘에서 내가 헤어나지 못하는건 결국 외로웠기 때문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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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6-05-23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바람돌이님의 글 읽고 보니 저도 상황이 비슷한듯 합니다.
아무리 자유부인이라고 해도 아이들을 떼어놓고 돌아다니지 못하겠더라구요~~~
회식이나 모임은 1주일에 한번으로 못박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줌마의 끓는 피를 알라딘 수다로 풀수 밖에.....하면 할수록 중독되네요~
덕분에 글도 조금은 잘 쓸수 있게 되었고, 여기저기 서평도 싣고....실보다 득이 훨 많네요...

하늘바람 2006-05-23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러네요 저도 외로워서 알라딘 블로그를 그나마 제 블로그로 사용하려 했고 그러다 따듯하고 좋은 분들 많이 만났고요.
이젠 눈뜨자마자 달려오는 곳이죠

클리오 2006-05-23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알라딘을 만나면서 그나마 대화와 소통에 대한 욕구를 좀 풀었다는거 맞는거 같아요. 같은 공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도 말한마디 하기가 조심스럽고 무서울 때 알라딘의 이런저런 글들을 읽으면서 위안을 삼죠.. ^^

2006-05-23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6-05-23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직장 다니며 아이 키우는 엄마의 마음은 다 비슷할 것 같아요. 퇴근한 이후의 시간만이라도 아이와 같이 있어주고 싶은 것. 뭐 결국 지지고 볶고 나무래고 하면서 있지만 그래도 같이 있는 시간이 적으니 그 시간만이라도 늘리고 싶은 거죠. 실보다 득이 많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글이 늘은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도 책은 좀 더 다양하게 많이 보게 되었다죠. ^^ 근데 요즘은 워낙에 잘 안나가니 불러주는데도 없어요. ㅠ.ㅠ
하늘바람님/저도 아침에 컴 켜면 무조건 확인하는데가 여기라죠. 아줌마의 이런 넋두리도 받아주는 곳이 있다는게 저는 참 마음이 푸근하답니다. ^^
클리오님/맞아요. 낮에는 같은 공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득시글거리면서 있어도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은 별로 없죠. 그래도 전 요즘 다행인건 옆자리의 사람들이 좋아서 위안이 된답니다. ^^
속삭인님/저도 아이들때문에 주저앉을때가 많아요. 옛적에 제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전 안그럴줄 알았어요. 부부의 공간도 중요하다고 빨리 아이를 떼놓고 자야 한다고 생각까지.... 근데 말짱 꽝이더라구요. ^^ 그래도 님같은 분이 여기에 있어주기에 덜 외롭답니다. ^^

로드무비 2006-05-29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도 한 명 추가. 그 외로운 인간에...ㅎㅎ
바람돌이님의 자취 따라 저도 쌍다라집 가서 꼭
돼지갈비 먹어볼게요.
맛있다는 소문 듣고 소개한 거거든요.
텔레비전에서도 언제 보니 참 맛나게 생겼고 해서.
좋은 시간 보내셨다니 저도 흐뭇하네요.^^

바람돌이 2006-05-29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덕분에 돼지갈비 맛나게 먹었습니다. 근데 쌈싸먹을 상추를 안줘서 별 한개 깎아야 해요. ^^

진주 2006-05-30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외로워요 ㅠㅠ

바람돌이 2006-05-30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진주님이 뜸하셔서 더외로웠다구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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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아들 - 전2권 세트 - 법의관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퍼트리샤 콘웰 지음, 홍성영 옮김 / 노블하우스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6번짼가?
이제 이 시리즈를 읽기 시작하고도 거의 중반쯤에 온 것 같은데...
조금씩 힘이 달린다는 느낌이 든다.
초반에야 생소한 법의학에 대한 생생한 묘사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고,
좀 뒤에는 주인공 스카페타에 대한 동일시의 재미가 있었고,
근데 지금은 조금 힘이 빠진다.

사형수의 지문에서부터 시체농장을 거쳐 무려 3권에 걸쳐서 등장하는 희대의 살인마 탬플 골트와의 본격적인 대결이 벌어지는게 카인의 아들이다.
카인의 아들은 이전의 시리즈와는 미묘하게 달라지는 지점들이 있다.

일단 이전에는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었던 정체불명의 살인자를 ?는 형식이었는데, 그래서 범인이 어떤 사람일까를 찾는 흥미진진함을 가질 수 있었다.(근데 결과는 항상 엉뚱했다.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들이 범인으로 막판에 등장하는 바람에 추리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범인의 심리도 같이 ?아가는 재미는 좀 없었다고나 할까? 물론 시체농장은 예외지만....)

근데 카인의 아들은 애초에 범인이 누군지 모두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이 달라진다.
템플과 스카페타와의 대결 구도를 명확히 한 선에서, 템플의 행동에 따라 스카페타가 느끼는 감정과 추리를 따라간다.
시리즈가 이쯤 되면 독자는 당연히 스카페타에 대한 감정이입이 어느정도 되어있을테고, 따라서 이 둘의 본격적인 대결에 독자는 스카페타의 입장에 서서 손에 땀을 흘린만하다.
그녀의 고통, 그녀의 분노가 손에 잡힐 듯 안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이전의 작품에서 보여주었듯 결말은 언제나 뭔가 빠진 듯 늘 허전하다.
특히 이번 작품의 경우 이전의 시리즈처럼 익명의 범인이 아니기에 스카페타 뿐만 아니라 템플 골트에게도 보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했다고 생각되는데....
오로지 템플은 스카페타에 의해서만 나타난다.
그녀의 심증만으로....

따라서 템플을 ?아가나 그가 희대의 살인마가 되는 이유는 이해가 안되고,
스카페타에게 집착하는 이유도 도저희 감이 안 잡히고,
또 그런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가 스카페타에게 최후의 일격을 당해 죽어가는 것도 공감이 안가고.....

작가가 스카페타 박사에 대한 편애가 너무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범인에게도 자기 얘기를 할 기회를 좀 달라고....
그래야 이 모자란 2%의 목마름을 채울거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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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5-23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야심한 시각에 리뷰를 쓰시다니.... 누가 시켜서 하는거면 못할짓인데 말이죠. 그렇죠? ^^

바람돌이 2006-05-23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히 못하죠? 노동착취로 확 파업해버릴 거야요. ㅋㅋ
근데 야클님은 누가 시켜서 이 밤중에 여기서 노닐고 계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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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가랑비 > ㅍ/코끼리 이벤트

프레임을 전복하라 - 덧글 이벤트

 

 

명절에 온 가족이 모였을 때,

아니면 평소 직장 동료들과 회식할 때,

또 택시 기사와 대화를 나눌 때에도,

진보주의자들은 끊임없이 보수적인 주장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사회 경제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언론 보도를 그대로 믿고 말합니다.

그런데 언론은 대부분 보수주의적인 가치관을 전제로 깔아놓고

그 전제에 따라 문제와 해결책을 제시하기 때문에

진보주의자들은 별로 할 말이 없는 수세적인 상황에 몰릴 때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보수 언론에서는 미군기지 평택 이전에 문제를 제기하면

한미동맹이 약해질 우려가 있고, 이는 국가 안보에 해가 된다고들 합니다.

이러한 말의 바탕에는 한미동맹은 여하간 좋은 것이며,

미군이 없으면 나라가 위험해진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이렇게 말의 바탕에 깔려 있는 논리의 틀을 ‘프레임’이라고 합니다.

 

프레임에 대해 더 자세히 보려면 http://blog.naver.com/hsk5119/120024458142

 

도서출판 삼인의 책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책에 관한 정보는 ☞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2127096)

를 쓴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보수적인 프레임에 따라 정해진 대로 말하는 한, 진보주의자들은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합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본문에 나오는 이야기를 예로 들겠습니다.

부시 정부는 세금을 줄임으로써 가난한 사람에 대한 의료 보장 범위가 확대되지 못하도록 합니다.

누군가 그러한 부시 정부의 정책에 찬성하며 의료 보장 확대를 반대한다고 가정합시다.

 

사람들이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것은 그 사람들의 잘못이다.

그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았거나 돈 관리를 적절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취적이지 못하거나 돈 관리를 못한 것을 우리가 대신 부담해 줄 필요는 없다.

(본문 213~214쪽)

 

이러한 보수적인 주장을 들었을 때 그냥 "가난한 사람들도 열심히 일한다"

"돈 관리를 못 하는 건 교육을 잘 받지 못한 탓이다" 하고

아무리 반박해봤자 별 소용이 없습니다. 

"부자들은 더 열심히 일해" "누가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하지 말랬나?"

하는 대답이 나오면 할 말이 없어지니까요.

대신 진보적으로 프레임을 바꾸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의료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는 4000만 명(미국의 경우) 중 대부분은

사회에 꼭 필요한 직업에 전업으로 종사하고 있지만 그들의 급여로는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노동자들은 우리 인구 중 상위 4분의 3의 생활 방식을 지탱하고 있다.

그 4000만 명이 힘든 일을 대신 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의 생활 방식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힘든 노동에 대한 대가로서 살 만한 생활수준을 약속해 주는 나라이다.

(미국인이 하는 이야기라는 걸 염두에 두어 주십시오!)

그들은 나라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직업에 종사하는 것으로써

이미 자기 의료비만큼의 구실을 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경제는 그 정도를 감당할 여력이 있다.

세액 공제는 그 가장 쉬운 방법이다.

상위 2퍼센트가 이전에 내던 수준으로 세금을 내기만 하면

그들의 의료비는 충분히 부담할 수 있다.

이것은 부자들이 그들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자 지불하는 요금이며,

부자들의 생활 방식을 지탱해 주는 사람들이 받는 공정한 대가에 불과하다.(본문 214쪽) 

 

자,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한국 사회에서 바꿔야 할 프레임은 무엇일까요?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 문제나 한국인의 일상생활에서

바꿔야 할 프레임은 무엇인지, 어떻게 바꿔야 할지 덧글로 달아 주세요.

(↖ 위의 예처럼 길게 쓰실 필요는 없답니다. ^^)

5월 22일부터 6월 10일까지 덧글을 달아 주신 분들 중에서 열 분을 뽑아,
도서출판 삼인에서 펴낸 책 중에서 희망하시는 책 두 권을 드립니다.  

널리 퍼뜨려 주세요~

책 미리보기덧글 달러 가기

이벤트에 참여하려면 ☞ http://blog.naver.com/hsk5119/120024466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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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그림 같다 - 미술에 홀린, 손철주 미셀러니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저는 떠들게 있으면 더 뜨들어라 하는 주의입니다. 창피당하면 어떻습니까. 연습이 천재를 만드는 거나 무쇠가 두들겨맞고 단련되는거나 같은 발버둥 아닙니까. 수업료 안내고 익히려 드는 게 도둑놈 심보지, 클 놈치고 좌충우돌 안 하는거 봤습니까. 그림도 마찬가집니다. 보이는대로 한 마디식 지껄이고 쥐꼬리만한 지식이라도 갖다 붙여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그러면서 눈이 트이는 겁니다.(7페이지)

미술이라고 하면 주눅부터 드는 사람에게 저자는 참 시원하게도 주눅들지 말라고 첫마디를 내질러준다.
그러면서 한국미술과 서양미술, 미술평론가 동서양의 화가들에 이르기까지 참 부지런히도 종횡무진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그의 이야기 보따리는 소재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풀어놓는 주제도 내용도 다 참 부지런하다.
칼럼형식의 글들인지라 뭔가 일관된 주제하에 일목요연하게 풀어놓는 이야기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시종일관 강조하는게 있다.
바로 어려워말것. 자기가 느끼는대로 느낄 것, 그리고 그 느낌을 이야기하는데 부끄러워 말 것.
독자가 오역을 한다고 항의할 미술가는 없으니....

그래도 뭔가를 느끼려면 부지런히 잡다하다고 느껴지더라도 이것 저것 읽고 알아나가는게 또 그림을 보는 방법이란다. 
관련된 신변 에피소드라도 하나 알면 다시 보이는게 그림이고 그러면 못보던게 보인다고...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 책은 아주 잘 쓰여진 책이다.
온갖 장르의 미술을 넘나들면서 그는 미술의 세계로 독자와 여행을 한다.
마치 미술과에서 아주 친절한 큐레이터와 동행하는 기분이랄까
그림에 대한 에피소드나 그림이야기도 탁월하지만 그 그림을 넘어선 사람이나 삶에 대한 이야기도 어느 하나 놓칠 것 없는 명강사라고나 할까?

가끔은 그런 자의식이 강해서인지 느닷없이 어려운 한자어나 외래어가 툭툭 튀어나와 독자를 곤혹스럽게 하기도 하지만 뭐 그쯤은 그의 친절함에 비하면 참아줄만하다.
책을 덮을때쯤이면 그를 따라 나도 미술관에서 황당하면 황당한대로 창피하면 창피한대로 한 번 떠들어볼까 싶은 생각도 새록 새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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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유키 - 제1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두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에게 누구한테나 공평한 것이 죽는거라는 말을 한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일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죽었고, 이순신도 죽었고 그리고 도모유키도, 어린 병사 도네도 죽었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을 누가 동격에 두고 보겠는가?

누가 역사의 한페이지를 찬란하게 장식할 정도로 이름을 올려는가 하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도요토미나 이순신의 경우 자신의 신념을 위한 삶을 살아봤고, 그리고 죽었다.
하지만 자신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전쟁터에 끌려나가 이유도 모른채 죽어갔던 사람들은.....
그들 역시 누군가에게는 생명이고 사랑이었을게다.
그 생명과 사랑이 단지 쪽수라만 불리워질때 개인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화살받이로 나가야 하는 쪽수.
적군에 바쳐질 수급의 쪽수.
채워져야 할 포로로서의 쪽수.
이미 그들은 제 이름을 잊는다.
저는 안 잊었건만 누구도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

임진왜란을 그저 끌려왔을 일본 병사의 눈으로 본다는 건, 어쩌면 조선의 이름모를 수많은 희생자의 눈으로 본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게다.
그들의 모습은 겹친다.
세상사라는게 서러울 정도로 없는 이, 갖지 못한이들의 삶은 지지리도 닮았다.
그것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앞에 알몸으로 내던져진 이들에게는 더더욱!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을 위한 진혼곡!
역사의 이름으로 어쩌구하는 거대한 수식이 아니라 그 속에 묻혀있을 수많은 쪽수로만 분류되었던 사람들이 이제 겨우 한자락이라도 불려왔으니 그나마 위로가 되어질까?
마지막 도모유키의 눈에 조선의 여인이 모두 명외처럼 보이는건 우연이 아니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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