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내내 골머리를 썩였던 실업계 고등학교 발표가 어제 있었고,
다행히 우리반 아이들 모두 합격했습니다.
사실 당연한건데도 이렇게 감격스러울수가.... ^^
(우리반은 아니지만 떨어진 애들도 있거든요. 그녀석들 얼굴을 보려니 마음이 참 착잡합니다)
이젠 정말 막바지에 들어선듯 싶습니다.
오랫만에 3학년을 맡아서였는지 유난히 이녀석들은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녀석들을 떠나보내고 나면 저도 이 학교를 떠납니다.
아이들이나 동료들과 헤어지는건 이제 몇번 반복하다보니 뭐 그리 새삼스럽게 섭섭하고 할 것도 없습니다.
어차피 내 반 아이들 남겨두고 가는 것도 아니고 다들 졸업으로 떠나보내고 가는 길이니...
그러고 보니 학교 마지막해에 3학년을 맡은게 감정적으로 깔끔하고 좋은 것 같네요.
근데 이 학교를 떠나기가 유난히 서운하게 있습니다.
바로 정든 교정이라는 상투적인 말속에 들어있는 바로 그 교정이 저의 뒷통수를 자꾸 낚아챕니다.
이 지역 학교 중에서도 이 학교의 주변환경은 환상적입니다.
가꾼듯 가꾸지 않은듯 봄부터 가을까지 무수히 많은 꽃들에서 단풍까지 만들어내는 학교 화단.
요즘은 기를 쓰고 가꾸는 사람이 없으니 오히려 식물들은 저희들이 본모습에 맞게 어지러이 잘도 자랍니다.
작년에는 도심지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패랭이꽃도 학교 화단에서 새초롬이 피어있는걸 봤다지요.
교실에서 바라보면 바로 앞으로 성큼 다가서는 뒷산의 모습도 아른거립니다.
내년에 제가 가고자 하는 학교들은 한 곳을 제외하고는 이런 환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 아무데도 없다죠.
그나마 그 한 곳도 이곳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고요.
이 학교에 있는동안 가끔 제 첫 부임지였던 학교 생각을 했었습니다.
첫 부임지야 본인의 희망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니 가라는데로 갈밖에....
그래서 갔던 학교는 두 가지 면에서 저를 첫인상부터 경악하게 했습니다.
먼저 1시간 반이 걸리는 출근길. 출퇴근에 하루 3시간을 써야 하다니...
하지만 그보다 더 경악스러웠던것은 도대체가 학교가 왜 이곳에 있는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공장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코딱지만한 운동장에 몇개 되지도 않은 나무들조차도 비실비실.....
하지만 악몽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풍겨오는 온갖 공장의 냄새들이라니....
그 때는 냉난방 시설도 안돼 있을 때니 여름에 창문이라도 열라치면
페인트 냄새, 고무 냄새, 닭똥냄새, 그외 정체불명의 온갖 냄새들....
안 그래도 제대로 잘 먹지도 못하고 다니는 애들은 유난스럽게 자주 아팠습니다.
가난과 무관심에 길들여져 있던 아이들은 참 험하기도 했었지만,
또 약간의 애정에도 감격하는 정이 참 많은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숨쉬기도 괴로운 곳에서도 아이들은 남자아이들이라 그런지 참 잘도 뛰어놀더군요.
쉬는 시간 10분에도 운동장은 축구며 농구며 아니면 그냥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로 늘 가득찼었습니다.
이렇게 환경 개판인데 학교를 지었으면 하다 못해 운동장이라도 좀 넓게 만들어주던지....
가난한 동네에는 국가나 교육청의 지원도 인색하기 짝이 없더만요.
그곳에서 3년을 보내고(여긴 환경이 안좋은 곳이라고 선생들은 3년만에 옮겨주더군요)
훨씬 가까워진 새학교에 처음 간날
교문을 들어서던 순간 저는 그만 눈물이 핑돌아 한참을 멍하게 있었습니다.
전의 학교의 딱 2배정도 되는 운동장.
조그만 산으로 둘러싸여 푸른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고
여기저기 예쁘게 가꿔진 화단들.
새학교는 여학교라 운동잘 별로 쓸일도 없겠더만(실제로 체육수업이나 체육대회 같은 거 아니면 운동장은 늘 비어있더만요)
하다못해 그 운동장이라도 떼어서 이전 학교 아이들에게 가져다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의 최소한의 다닐만한 학교의 기준은 늘 운동장입니다.
실업계 아이들 원서 쓰기전에 늘 그 학교 한 번만 가보고 오라고 늘 아이들을 닦달합니다.
그리고는 늘 묻느게 "그래 운동장은 제대로 있더나?"라고 묻죠.
중학교는 대부분 공립이라 왠만해서는 기본적인 시설이나 면적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고등학교의 경우 워낙 사립이 많고
또 성적이 낮은 아이들이 가는 사립학교들 중에서는 운동장도 없는 학교도 꽤 된답니다.
(왠만한 부자집 정원만한걸 운동장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아니겟지만요)
학교도 부익부 빈익빈
잘살거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운동장이 넓고요.
가난하거나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운동장도 코딱지만합니다.
제 첫학교의 아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 코딱지만한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논답니다.
우리 반 아이들 중 두 녀석 정도는 제대로 시설도 다 갖춰지지 않은 학교에 가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어쩌면 아파트로 둘러싸인 너무 너무 싫은 삭막한 학교에 가야할지도 모르고요.
아 제건 제낍시다. 무슨 배부른 투정이랍니까?
가끔은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이 돌아왔으면 합니다.
근데 어쩌다 얘기가 이렇게 샛을까?
원래는 내 학교 옮기는 얘기였던 것 같은데....
에고 모르겠다 ㅠ.ㅠ